지리산이음 활동 소식

자료연극의 뿌리는 마을, 그래서 마을에서 시작합니다. – 구례 군민극단 ‘마을’

2014-07-15

일주일에 한번, 지리산둘레길 구례 센터가 들썩인다. 구례 지역에 사는 주부, 농부, 귀농․ 귀촌인 뿐만 아니라 멀리 순천에 사는 이들도 이곳을 드나든다. 배낭을 둘러매는 대신 대본을 손에 쥐고 센터의 문을 여는 사람들. 안내센터의 직원도, 둘레길 길동무도 아닌 이들은, 구례 군민 극단, ‘마을’ 단원들이다.

 


일주일에 한번, 우리는 ‘연극’ 한다

 


술자리에서, 농담처럼 시작된 일이었다. 취기로 얼버무려진 그날의 약속은 기획력 있는 한 친구 덕분에 치기로 끝날 수 없었다. 열 명 남짓이 모여 극단이 꾸려졌다. 다들 생업과 연극연습을 병행해야 하는 빠듯한 상황이었지만 창립공연 무렵에는 인원이 더 늘어났다. 음악극이었던 첫 공연에는 밴드도 투입됐다. 300석의 객석이 채워졌고 부지런하지 못했던 몇몇 관객은 서서 공연을 지켜봐야 했다. 해를 거듭하면서 떨어져나가는 단원도 있었고 다시 그 자리를 메우는 단원도 있었다. 예정된 수순이었다. 자신의 속살을 내보여야 하는 연극이라는 작업, 그 속에서 도출될 수밖에 없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 즉 인간문제였다.

 

"저는 경험이 있어서 괜찮았지만 처음 하시는 분들이니 힘드셨을 거예요. 오히려 첫 공연은 쉬워요. 두 번째, 세 번째가 어렵죠. 연기라는 게 결국 자기를 드러내는 거잖아요. 햄릿을 연기하든, 네로를 연기하든 결국은 자기를, 자기와 연결되는 것을 연기하는 거죠. 쉽지 않는 일이에요. 하지만 연기를 하려면 반드시 유념해야 할 일이기도 하죠. 지금은 단원들이 들기도 하고 나기도 하는 형편입니다."

 


군민극단 마을의 공연모습


 

구례극단 ‘마을’의 단장인 이상직씨의 설명이다. 구례 극단 ‘마을’은 2011년 창단하여, 지금까지 총 3회의 정기공연과 한차례의 기획공연을 치러냈다. 매주 모여 연기 연습을 하고 공연을 앞둔 시점엔 2개월 동안 매일 연습을 한다. 공연의 면면도 이채롭다. 창단공연이었던 <인생콘서트 39.5>는 닐 사이먼의 ‘굿닥터’를 각색한 것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웃음과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2013년에 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다리오 포의 ‘안 내놔, 못 내놔’를 우리 실정에 맞게 각색하여 <슈퍼마켓 습격사건>으로 무대화하였는데, 다리오 포는 이 작품을 통해 당시 이탈리아의 정치 경제 종교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바 있다. 또한 2014년 정기공연작인 <겨울 해바라기>는 재일 희곡작가가인 정의신의 작품으로 동성애자라는 멍에 속에서 고통 받는 소수자들의 엇갈린 사랑과 그 사랑의 이면을 조망하는 문제작이다.


 

“아직은 연극이 뭔지 맛을 봐야하는 시기라 웃음을 통해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하고 있어요. 하지만 작품들이 전하는 메시지가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들을 제기하고 질문하는 작품들이라고 할까요. 연극은 질문하는 일과 같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큰 메시지보다는 연극 자체의 매력에 집중하는 시기지만 구례라는 이 지역에서 이야기를 발견하고 그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단원들과 함께 체험해 보고 싶어요.”

 


연극, 나와 세상에게 질문을 던지는 일

 


국립극단 출신 이상직 씨



단원들은 공연 연습을 통해 말 그대로 ‘배우’로서 살게 된다. 가끔은 이상직씨의 요구가 힘에 겨워 투덜대기도 하지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고 또 다시 묻는다. 그렇게 단원들이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행복하고 소중하다. 결국 작품을 통해 나를 발견하는 셈이다.


이상직씨는 국립극단 수석배우 출신의 전문배우다. 그는 지난 2010년, 20년 넘게 몸담아 왔던 국립극단과 도시생활을 접고 구례로 귀농했다. 현재 삼천평 규모의 감나무 밭을 경작하고 있는 그는 공공노조 국립극장지부 소속 배우로서 자본주의 사회의 상품으로 전락하고 있는 연극의 실체를 목도해야 했다.

 

"도시는 그 규모가 너무 커서 고통에 시달려도 그 고통의 원인이 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나 지역은 다르죠. 규모가 작으니 그 모순이 더 극명하게 드러나거든요. 지역에 내려와서 보면 자연이란 늘 이렇게 인간과 함께 공존하는 건데, 인간이 만들어놓은 인위적인 시스템에 갇혀 살다보니 자연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시스템의 모순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역에서, 도시보다 더 극적인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상품화되어가는 연극, 단지 그것 때문에 귀농을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마흔 다섯에 귀농한 그는 10여 년 전인 30대부터 이미 귀농을 꿈꿨다. 이상직씨는 연극의 제의적인 성격에 주목한다. 원시부족국가의 제천의식이나 마을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마을굿, 대동놀이가 바로 연극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귀농을 하더라도 연극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마을로 들어가 마을사람들에 의한, 마을사람들을 위한 연극을 하면 될 일이었다. 때문에 이상직씨는 찾아가는 공연, 읍내의 극장까지 나오기 어려운 할머니, 할아버지도 함께 즐길 수 있는 마을순회공연을 꿈꾼다. 그러기 위해선 극단의 공연을 마을에 연결시켜 줄 수 있는 기획력이 절실하다. 생업과 연극을 병행해야 하는 단원들로서는 적잖이 부담스런 일이지만 마을 속으로 들어가길 원하는 단원들도 없지 않다. 때문에 이 씨는 도시의 동료들에게 지역으로 내려오라고 부추긴다.

 



지역과 도시가 융합하는 대안적 연극을 꿈꾸며

 

구례에서 성장하는 배우들과 도시에서 내려오는 전문가들이 만나 연극을 할 수 있다면 이것 자체가 연극의 대안이 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실제로 후배 하나가 내려와서 같이 작업을 했는데, 보람을 느끼더라고요. 관객층은 다양한 편이에요. 비단 구례에 사시는 분뿐만 아니라 각지에서 보러 오시거든요. 구례는 둘러 볼 곳도 많고 휴식을 취하기에도 좋은 지역이기 때문에 이러한 계획을 사업으로 현실화하는 것도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이상직씨가 차기 공연 작품으로 점찍어 놓은 작품은 독일의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이다. 브레히트는 <사천의 선인>에서 주인공인 셴테를 통해 신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신이시여, 이웃을 부러워하지 않고, 남을 이용하지 않고, 약한 자를 괴롭히지 않으면서 살고 싶지만, 착하게 살기는, 정말, 계명을 지키면서 살기는 정말 힘들어요.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이상직씨와 구례 극단 ‘마을’은 이토록 간절한 셴테의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하게 될까. ‘그저 착하게 살면 된다.’ 는 극 중 신의 무성의한 대답과는 다른, 극단 ‘마을’ 만의 따뜻하고 현명한 대답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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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폼 (세상똥폼 여든까지! 가끔은 예술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여 행복하다. 백살까지 건강하게 책보며 살고 싶은 철들긴 글러먹은 욕.심.쟁.이)

 



<지리산 이음>에서 함양, 남원, 하동, 산청, 구례 등 지리산권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들, 지리산권의 사람들이 지역을 기반으로 벌이고 있는 새롭고 재미있는 실험들을 찾아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리산권의 여러 커뮤니티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연결되어 관계를 맺어가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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