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이음 활동 소식

자료먼저 나선 이들을 위한 작은 쉼표 하나 – 사회연대쉼터 인드라망

2014-07-21

남원시에서 19번 국도를 따라 장수 방향으로 달린다. 산동면에 이르러 왼쪽 길로 접어드니 사위가 사뭇 고요하고 아늑하다. 대상면 보건소를 지나 왼쪽으로 길을 잡는다. 마을로 접어드는 길 못 미쳐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길이 나온다. 길을 따라 오른다. 눈이라도 내리면 도리 없이 몸과 마음을 내려놓아야 할 투박하고 외진 길이다. 길의 끝자락에 귀정사가 있다. 장엄한 위용을 자랑하기 보다는 편안함이 느껴지는 절이다. 귀정사는 백제 무령왕 15년, 현오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일찍이 만행사라 불리다가 백제의 왕이 사흘간 고승의 설법을 들으며 국정을 살피고 돌아갔다 하여 귀정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한다.

 



쉼터, 귀정사에 둥지를 틀다

 

남원 귀정사에 자리를 잡고 있는 사회연대쉼터



송경동 시인은 2012년 겨울을 이곳 귀정사에서 났다.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으로 20년을 매진해온 삶이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과정에서 뒤꿈치가 산산조각 나는 부상을 입었고 희망버스 기획과정에서는 수배와 투옥을 감당해야 했다. 몸과 마음은 이미 바닥이 드러난 상태였다. 현 조계종 화쟁위원장인 도법스님을 비롯한 불교계 인사들로부터 귀정사를 추천 받았다. 귀정사 공양주 보살님에 의하면 ‘시커먼 게 절뚝거리면서 들어오더니 보얗게 되어서는 제 발로 걸어 나가’ 던 이, 그가 바로 송경동 시인이다. 시인은 4개월간 머물렀던 귀정사를 떠나면서 귀정사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과 같은 처지의 동료들에게도 쉼터가 되어주길 바랐다. 도법스님과 귀정사의 전 주지스님이었던 중묵처사가 의기투합했다. 마침 도법스님이 귀정사의 운영방침을 ‘스님이 아닌 재가자가 중심 되는 절’로 표방한 터였다.

 

기존의 요사체와 만행당을 쉼터로 쓰고 쉼터로 사용할 귀틀집 두 채를 더 지었다. 이 귀틀집을 짓기 위해 한진중공업 해직노동자,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 남원시 산내면의 귀농자․목수가 한 자리에 모였다. 이윤엽 판화가는 현판을 만들었고 파견미술활동가들은 쉼터로 사용될 방의 문패를 만들어 달았다. 귀정사 측의 적극적인 공간 확보가 일을 추진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쉼터에서는 어떤 정해진 프로그램 없이 자기만의 시간을 가진다.



쉼터에는 보통 열 명 남짓의 사람들이 들고 난다. 시민운동가, 비영리단체 활동가, 노동운동가, 농민운동가 그리고 암 투병 중인 환자와 일반 직장인에 이르기까지 방문객의 현황 또한 다양하다. 그들은 대부분 스스로 시간을 꾸린다. 쉼터에서 정해놓은 프로그램은 없다. 말 그대로 자기주도적인 쉼인 셈이다. 스님과 함께 예불을 드리거나 명상을 하거나 차를 마실 수도 있다. 텃밭 가꾸기 같은 공동 작업에 참여하는 것 역시 자유의사다. 

 

방문자 중 글을 쓰는 이가 있다면 독서모임이 만들어지는 등, 쉼터 방문자의 특징에 따라 모임이 꾸려지기도 한다. 최근에는 컨테이너를 개조해 작은 사무실 겸 카페를 만들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하지만 아무래도 현장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라 소통이 잘 되는 편이다. 일주일에 한번은 한의사에게 진료도 받는다. 중묵처사와 함께 쉼터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순천 들풀 한의원의 윤성현 원장을 통해서이다.

 



회원의 연대를 통해 꾸려지는 쉼터

 

“다른 영역 활동가들에 비해 노동현장에 있는 동지들은 잘 쉬러 오질 않아요. ‘나만 쉴 수 없다’는 일종의 죄책감 때문이겠죠. 노조 집행부에서 좀 쉬라고 추천을 하면 정작 추천받은 사람이 안 와요. 지금까지 쉼터를 방문한 사람 중에 노동운동에 몸담고 있는 동지들은 다섯 명 정도에 불과할 거예요.” 쉼터지기인 최정규씨가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최 씨는 독일로 파견된 광부출신 노동자이다. GM자동차에서 근무하였고 줄곧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노동운동에 관여하였다. 2002년에는 민노당연수원지기를 맡기도 하였는데 그 후 독일에 머물다가 쉼터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와 쉼터지기로 인연을 맺게 되었다.

 

"투쟁은 연대하자면서 생활은 각자의 몫으로 넘겨버리는 한국 노동운동의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운동이 지속되려면 삶도 연대해야 하거든요. 독일 저항 운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68혁명 노동자들은 건물을 공동으로 임대해서 40명 정도가 함께 생활했어요. 누군가가 일 때문에 가정 혹은 가족을 지킬 수 없는 경우 다른 동지가 그 무게를 나누는 거죠.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나, 자기만큼 일하지 않는 동지를 평가절하 하는 분위기도 문제에요. 쉬는 것이 재충전의 기회라는 걸 자꾸 잊어버리는 것 같아요."

 

최정규씨의 이야기 속에는 후배 활동가들에 대한 절절한 안타까움이 배어있다. 아직은 쉼터가 널리 알려지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공짜로, 자기만, 쉬러간다는 미안함이 크다. 쉼터의 공간사용료는 무료다. 공간운영 기금은 인드라망과 뜻을 같이하는 연대회원들을 통해 충원된다.

 

쉼터의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장병관씨는 공공연맹에서 활동하다가 남원 산내로 귀농했다. 그는 쉼터 생활을 통한 방문자들의 변화를 귀농 후 달라진 자신의 삶 속에서 찾아낸다.

 

"귀농 전에는 아내와 마주 앉아 얘기할 시간이 없었어요. 근데 이젠 시간이 넘쳐나서 자연히 둘이 얘기를 많이 하게 되요. 그런데 그 대화 속에서 나를 돌아볼 여유를 갖게 되더라고요. 결국 그 여유가 다른 사람을 보는 시선에도 변화를 가져 오죠. 다른 것을 인정하게 된다고 할까요. 일하는 것과 쉬는 것 모두 삶의 일부이고 똑같은 비중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하는 것과 쉬는 것, 그 모두가 삶의 일부

 

장병관 집행위원장은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쉼터가 전국적으로 확대되기를 소망한다. 공간의 확장과 함께 쉼터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현황도 실업이나 취업, 생활 전반이나 문화적 이슈 등 다양한 범위로 확장되었으면 한다.

 

"인드라망 쉼터가 일종의 촉매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업에 연수원이 있듯이 노조에는 쉼터가 있었으면 해요. ‘너희 정도 규모면 쉼터 하나는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라고 자극하는 거죠.(웃음) 사실 쉬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쉴 수 없는 활동가들이 너무 많아요."


엊그제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방문하겠다는 전화를 받았다는 최정규씨는 “그렇게 오랫동안 고생한 동지들이 온다고 하면 몸이 떨려요.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금껏 얼마나 힘들게 버텨왔을까…’하는 생각에 마음이 저리죠. 부디 짧은 시간이나마 이곳에서 편안하게 쉬었으면 좋겠습니다.” 라며 애틋해한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2007년 일방적인 공장 폐쇄 조치 이후 지금까지 7년간 끝나지 않는 복직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 투쟁의 깊이를 가늠하고도 남을 선배 노동자 최정규씨의 눈두덩이 뜨거워지는 이유다.

 


 


지친 그대들을 위한 따뜻한 쉼터를 희망하며

 

귀정사는 사망 후에 왕생(往生)하는 정토가 아니라 현실을 불국토로 만들고자 염원했던 원묘국사가 머물렀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멀리 만행(萬行)산 자락이 보인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다. 현실을 불국정토로 만들기 위해 만인이 다녀갔을, 혹은 만 가지 고행 후에야 도달 할 수 있을 법한 오르막이다. 그 오르막 앞에, 가슴 뜨거운 이들의, 앞장섰기에 멈출 수 없었던 이들의 작은 쉼표, ‘사회연대쉼터 인드라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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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폼 (세상똥폼 여든까지! 가끔은 예술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여 행복하다. 백살까지 건강하게 책보며 살고 싶은 철들긴 글러먹은 욕.심.쟁.이)

 



<지리산 이음>에서 함양, 남원, 하동, 산청, 구례 등 지리산권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들, 지리산권의 사람들이 지역을 기반으로 벌이고 있는 새롭고 재미있는 실험들을 찾아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리산권의 여러 커뮤니티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연결되어 관계를 맺어가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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