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이음 활동 소식

자료대안교육 16년, 함께 불러온 성장의 노래 – 산청간디고등학교

2014-08-12

월요일 아침, 선생님과 아이들이 둘러앉는다. 몇몇 아이들이 아이돌의 최신 곡에 맞춰 칼 군무를 춘다. 현란한 핑거스타일 주법으로 기타를 연주하는가하면, 때 묻은 습작노트를 꺼내어 자신이 꿈꾸는 세상에 대해 시를 읊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선생님도 아이들이 섰던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의 첫사랑을 고백한다. 짝사랑으로 점철된 청소년기의 일기장을 공개하기도 하고 아이들의 기타 반주에 맞춰 자신의 애창곡을 부르기도 한다. 매주 월요일 간디학교는 이렇게 한 주의 문을 연다. 그 흔한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조차 없다. 각자에게 주어진 10여분의 시간동안 자신을 드러내고 내가 아닌 다른 이와의 소통을 시도한다. 1년 동안 120명의 학생과 20여명의 선생님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10분, 간디학교의 ‘주를 여는 시간’이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여는 월요일 아침

 

 


94년 산청 외송리에 <간디 농장>이 문을 열었다. 이듬해에 성인을 위한 <간디 대학> 단기 강좌가 개설되었고 97년에는 <간디청소년학교 교육노동조합>이 창립되었으며 그 해 3월 마침내 <간디청소년학교>가 문을 열었다. 의욕적으로 내딛은 대안교육의 첫 발자국이었지만 녹록치 않았다. 학교 운영을 위한 각종 자금이 필요했으나 그 모든 비용을 학부모의 주머니에서 끌어낼 수는 없었다. 국가로부터 예산을 받으면 보다 체계적인 교육이 가능하리라는 학부모의 기대도 무시할 수 없었다.

 

중고통합과정으로 출발한 간디학교는 98년 교육청으로부터 특성화고등학교로 인가 받았다. 김대중 정부가 막 들어선 시기였고 국민의 정부는 대안교육을 법적인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제스처를 취했다. 공교육의 파행적인 운영과 청소년의 자살이 급증하던 시절이었다. 교육부의 인가를 통해 경제적인 어려움은 다소 해결되었지만 내적인 갈등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대안교육이라는 커다란 이념에 동의하였다고 해도 그 이념을 실현하는 방법은 함께 하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했다.

 

그 즈음 경상남도 교육청의 특별감사가 시행되었다. 특성화고등학교로 인가 받은 간디학교가 의무교육인 중학교 과정을 운영하는 것은 불법이며 따라서 중학교를 해산하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3년간의 투쟁의 서막이었다. 학교 측이 이를 수용하지 않자, 예산지원이 중단되었고 도교육청은 당시 2대 교장이었던 양희창 선생을 고발하였다.

 

"아주 힘든 시기였어요. 대안교육이라는 큰 뜻을 어떻게 실현할지, 저마다 다른 방법을 내세우던 시기였으니까요. 가치지향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현실적인 문제 해결이 더 시급한 사람도 있었죠. ‘개학하면 선생님은 또 안 계시겠죠?’라고 아이들이 물어올 만큼 이직률도 높았고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내부적인 갈등이 교육청과의 싸움 때문에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어요. 바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부적으로는 오히려 똘똘 뭉치게 된 거죠."

 

현재 산청간디고등학교 교사이자 당시 대책위 집행위원장이었던 최보경 선생님의 이야기다. 파장은 컸다. <간디학교 살리기 시민모임>이 결성되었고 여론 또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공중파의 탐사 보도 프로그램을 통해 간디학교 문제는 전국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저런 학교도 있구나.’ 하는 단순한 호기심은 ‘저런 학교도 있어야 하겠구나.’ 라는 대안적 사고를 가능하게 했다. 줄어든 예산을 충당하기 위해 교사들은 임금을 삭감했고 기금을 모았다. 학부모는 릴레이 1인 시위와 단식을 통해 도교육청의 결정이 부당함을 널리 알렸다. 교장선생님이 법정에 섰고 학교는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다. 양희창 선생의 공판을 법정 체험 수업으로 채택, 50여명의 학생이 공판을 지켜봤다. 판사는 선고유예를 선언했다. 무죄와 다름없는 판결이었다. 3년간의 싸움은 헛되지 않았다. 선고유예를 이끌어 낸 것도 그러했지만 그 과정은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 학부모에게도 생생한 배움의 기회가 되었다. 또한 대안교육을 무화시키려는 부당한 시스템을 통해 사람들은 거꾸로 대안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왜, 대안교육? 그래, 대안교육!

 

“1999년에 그저 한번 둘러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간디학교에 왔었어요. 아이들이 축구를 하면서 뛰어노는데 돼지랑 거위가 그 사이를 가로질러 가더라고요.” 그 광경이 잊히지 않았기 때문일까. 최보경 선생은 얼마 후 간디학교에 지원했고 99년부터 지금까지 산청간디고등학교에 몸담고 있다. 학교라고 생각하기 조차 힘든 ‘학교’였다. 하나에서 열까지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뒷간을 직접 만들고 모인 똥을 스스로 푸고 숲을 교실삼아 수업을 했다.

 

공교육 변화의 필요성을 느낀 학부모나 대안적인 삶이 필요했던 아이들은 그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아이들과 안정적인 생활을 꾸리는 것이 급선무였다면 교육청과의 싸움이 끝난 후에는 보다 내실 있는 수업을 꾸려내는 일에 집중했다. 교사연수가 시작되었다. 지속적인 사례발표가 이루어졌고 체계적인 대안교육을 위한 교재를 직접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최보경 교사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정에 서게 되었고 현재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간디학교의 교육철학은 ‘사랑’과 ‘자발성’의 원칙으로 표현된다. 즉 교사와 학생 사이의 신뢰와 사랑의 관계가 이루어지고, 그 관계 위에서 가르침과 배움 모두 자발성에 의해 이루어질 때 참교육이 실현된다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시작하여 그 책임 또한 자발적으로 감당하는 간디학교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바로 ‘식구총회’다. 일주일에 한번 열리는 ‘식구총회’를 통해 교사와 학생이 한자리에 모여 학교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협의한다. 이른바 간디학교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이다. 의장단 역시 학생들로 꾸려지며 교사는 가능한 한 말을 아낀다. 여기에서 일반 학교의 학칙에 해당하는 학교의 규칙도 정해진다. 그 규칙을 지켜야 하는 사람은 학생만이 아니다. 수업 시간 중에 휴대폰이 울리면 3일간 압수당한다. 물론 식구총회에서 결정된 규칙이다. 실제로 최 교사도 압수를 당한 경험이 있다. 이 공평하기 이를 데 없는 식구총회의 회의록은 ‘공동체의 약속’이라는 이름으로 쌓여간다.

 

"재작년에는 10년 동안 모아두었던 ‘공동체의 약속’을 포맷하자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어요. 그래서 작년 1년 동안은 아무런 규칙 없이 지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규칙의 필요성을 느끼는 아이들의 의견이 수렴되어 다시 규칙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97년 개교하였으니 대안교육의 첫 삽을 뜬지 만 15년이 지났다. 졸업생의 스펙트럼 또한 넓다. 대안교육활동을 하고 있는 졸업생이 있고 문화재단이나 장애인종합복지관에 둥지를 튼 졸업생도 있다. 세 엄마의 아이가 된 졸업생도 있으며 제자에서 동료가 된 졸업생도 있다. 산청간디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안군’이라 불리는 안준영 선생님은 간디학교 4기 졸업생이다. 이들은 간디학교에서 ‘무엇’을 하느냐 이전에 ‘어떻게’ 보느냐를 배웠다. 대안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이제 대안적인 삶을 고민하고 더 나아가 대안적인 사회를 꿈꾼다. 온몸으로 비를 흠뻑 맞고 운동장을 뛰어다니거나 숲 속 바위에 누워 낮잠을 청해본 자라면 아주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졸업생들이 이곳에 와서 터를 잡고 새로운 일자리를 얻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자라서 간디학교에 다니고…….이것이 공동체의 순환 모델이 아닐까 생각해요. 마을공동체가 제대로 서려면 학교가 구심점 역할을 해줘야죠. 아직은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이 대안학교와 지역의 연대라는 이상을 좌절시키지만 10여년 쯤 시간이 더 흐르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최보경 선생님은 진정한 공동체는 마을에 뿌리를 내려야하고 그 중심에 학교가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청과의 싸움 이후 충북 제천으로 중등과정이 이전하면서 제천간디학교가 세워지고 간디학교는 산청간디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꿨다. 간디학교에서 미처 수용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 금산 간디학교가 문을 열었으며 산청 갈전에 중등과정인 간디마을학교와, 산청간디고등학교에서 조금 더 떨어진 곳에 초등과정인 어린이 학교가 세워졌다. 2011년에는 ‘아시아에 봉사하는 리더를 기르는 학교’를 표방한 필리핀 간디학교도 문을 열었다. 이들은 모두 간디학교의 철학을 공유하며 문화제, 영화제 등을 통해 학생들 간의 교류를 도모하고 매년 교사연합연수도 한다. 자매학교의 성격을 띠지만 운영은 별개다. 이사회도 모두 개별적으로 조직되어 있다.

 



사랑과 자발성에서 출발하는 대안교육

 

 

"기다립니다. 처음엔 강하게 끌고 나간 적도 있어요. 이젠 기다려요. 아이들의 내면을 끌어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다립니다. 하지만 여전히 쉽진 않아요. 화를 낸다고 상황이 달라지진 않습니다. 화를 내지 않고 기다리고 있는 저를 보면 가끔은 제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웃음) 아이들 덕분에 저도 성장하는 거겠죠."

 


자갈밭에서 퍼 올린 첫 삽이었으나 그 흙은 수많은 호미와 괭이와 삽으로 인해 곱디고운 흙이 되었다. 그리고 그 흙을 뚫고 나온 대안교육의 싹은 이웃 텃밭의 씨앗이 될 만큼 자라났다. 산청간디고등학교의 한 학기는 ‘물레제’로 마무리된다. 축제의 마지막은 언제나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부르는 합창이다. “한 사람이 영적으로 성장하면 온 세계가 성장한다.”는 간디의 금언이 선생님과 아이들의 입을 통해 울려 퍼진다. 함께 불리는 성장의 노래는 맑고도 우렁차다.

 

 



About The Author

똥폼 (세상똥폼 여든까지! 가끔은 예술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여 행복하다. 백살까지 건강하게 책보며 살고 싶은 철들긴 글러먹은 욕.심.쟁.이)

 



<지리산 이음>에서 함양, 남원, 하동, 산청, 구례 등 지리산권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들, 지리산권의 사람들이 지역을 기반으로 벌이고 있는 새롭고 재미있는 실험들을 찾아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리산권의 여러 커뮤니티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연결되어 관계를 맺어가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