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오후 3시, 아이들이 삼삼오오 들어선다. 책가방을 내던지고 서너 명이 둘러앉아 유희왕 카드를 꺼내 늘어놓는다. 카드 배틀이 시작된다. 수요일 오후 1시 반, 도서관 문을 열려면 30분이 남았는데도 아이들이 문 앞에 모여 있다. 제법 더운 날씨 속에서도 아이들은 시그림책을 만드느라 꼬박 2시간을 버틴다. 목요일 오후 4시, 고학년 여자아이들이 쪼르르 청소년실로 들어간다. 이면지도 가져가고 매직도 달라하고. 단체로 연애편지라도 쓰는 것일까? 수요일 저녁 7시, 도서관은 문을 닫았지만 소모임은 계속된다. 이름하야 개똥철학!, 중학교 언니 오빠야가 굳게 다문 입을 열까 말까 고민하는 시간이다.
악양에 거주하는 십여 명의 학부모가 모였다. 학교 얘기를 하다가 교육 전반을 걱정하다가 대안교육을 꿈꾸기도 하였다. 그러다 아이들이 안전하고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공간에 생각이 미쳤고 그것이 도서관이였다. 하지만 공간이 없었다. 이미 악양의 땅값은 치솟은 지 오래고 적당한 공간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기에는 그들의 욕망이 너무나 컸다. 냅다 일을 벌였다. 악양 주변의 유적지나 나들이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을 찾아 소풍을 갔다. 섬진강변을 거닐기도 했고 평사리 공원에서 뛰놀기도 했다. 도시락을 함께 나눠 먹었고 도서관을 왜 만들려고 하는지 취지를 설명하는 기회로 삼기도 했다. 이름 하여 ‘동네 한바퀴’였다.
다 같이 돌자, 동네한바퀴~ 다 같이 생각하자, 마을도서관!
마침내 2010년 9월, ‘작은 도서관 책 보따리’가 문을 열었다. 이천 원에서 만원까지 십시일반 후원하는 CMS회원이 150여 명에 이르렀다. 그렇게 모인 5~60만원으로 한 달 한 달 도서관 살림을 꾸렸다. 다음 달, 책 보따리 도서관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작은 도서관 조성지원사업에 선정되었고 리모델링 사업 지원금으로 1억 원이 들어왔다. 지역민과 귀농인 사이의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지역의 사랑방이자 아이들이 책을 보는 공간으로 도서관 일을 시작했을 뿐인데 지역민들은 이것을 귀농인들의 단체행동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급기야 지역의 토박이 단체에서 사업권을 달라고 요구했어요. 지지하는 정당을 내세우며 정치적인 대립각을 세우기까지 했지요. 지역민과 귀농인의 소통을 위한 사랑방으로 생각했지만 지역민들에게 이곳은 귀농인들 만의 사랑방이었던 것 같아요."
현재 책 보따리 도서관 관장을 맡고 있는 최난주씨가 당시를 회고한다. 모임 초반, 그들은 그저 모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거웠다. 때문에 도서관에 대한 공부는 상대적으로 충실하지 못했고 공간을 구하는데 급급했다. 도서관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왜 도서관이어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한 시기였다. 외적인 갈등이 오히려 초심을 돌아보게 했다. 동네 한 바퀴가 도서관의 취지를 알리기 위한 행사였다면 이후에는 사람들을 도서관으로 유도하기 위해 행사를 치렀다. 아나바다 장터가 그랬고, 토요일의 영화상영이 그랬으며 주말 간식시간이 그랬다.
1년 만에 마무리 될 사업이었으나 대상자로 선정 된지 2년이 되어서야 리모델링 부지가 결정되었고 이듬해인 2013년 7월, 지금의 농협 창고로 도서관을 이전했다. 길고도 힘든 시간이었다. 그 때마다 도서관이 생기기 전과 도서관이 생긴 후 아이들에게 일어난 변화를 생각했다. 변화는 아이들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른들 역시 도서관을 준비하고 개관하고 갈등을 겪으면서 성장해야만 했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았죠.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접근해서는 지역민과 소통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사실 이 도서관에서 일하는 귀농인들도 모두 개인적으로는 지역사람들과 잘 지내요. 그런 관계엔 의도가 없으니까요. 목적의식 없이, 시간이 걸리더라도 녹아들어가야 하는 관계라는 생각이 들어요."
원활한 소통 이전에 찾아온 성장의 고통
현재 책 보따리 도서관의 가장 큰 역할은 방과후 배움터의 역할이다. 악양 역시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받는 아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도서관을 드나드는 아이들은 학원을 가지도 과외를 받지도 않는, 말하자면 ‘갈 데 없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그 아이들의 본분인 ‘노는 일’을 하러 도서관으로 온다. 이럴 때마다 최 관장은 지금의 도서관 자리가 아쉽다. 이사하기 전, 도서관 맞은편에는 취간림이라는 큰 숲이 있었다. 아이들은 취간림에서 실컷 뛰어놀고 남는(!)시간을 때우러 도서관에 왔다. 책은 2순위고 뛰어노는 일이 먼저였던 것이다. 그래서 최 관장은 지금의 도서관 주변이 아이들이 뛰노는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이렇게 초등학교 시절을 놀이터 드나들 듯 도서관에서 보낸 아이들은 중학생이 되어서도 온다. 실은 와이파이가 되는 공간을 찾아들어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 바에야 안전한 도서관에서 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 최 관장의 생각이다.
현재 도서관은 5명의 고정 당번과 3명의 구원투수에 의해 관리되고 운영된다. 이들은 모두 자원봉사자들이다. 하지만 엄마들도 점차 일자리를 찾는 추세라 당번을 구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도서관 자원봉사는 우선순위에서도 밀린다. 하지만 당번을 서는 일에는 ‘도서관을 관리한다’는 액면 그대로의 가치 이상의 그 무엇이 있다. 당번을 서는 엄마들에게 도서관은 휴식의 공간이며 내가 어떤 역할을 해 내고 있다는 자부심을 만들어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책 보따리 도서관이 어떻게 지금에 이르렀는지 그 면면을 알고 있는 엄마라면 더욱 그렇다. 실제로 지난 석 달 동안 공공근로를 통해 당번 일을 대신하기도 했다. 엄마들은 휴가 얻은 셈 치고 그 기간 동안 당번 일을 쉬었다. 공공근로도 일을 참 잘 해주었다. 그런데 당번을 서지 않는 동안 정작 도서관에 대한 관심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당번이 없으니까, 아는 얼굴이 없으니까 도서관에 안 가게 되더라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사랑방 역할이 줄어들었다고나 할까요. 공공근로가 서는 동안에도 매주 당번회의를 하긴 했죠.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꼭 나와 보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당번 구하기가 점점 힘들어지니 공공근로를 거부할 수도 없고, 공공근로가 오면 아무래도 우리들의 도서관이라는 생각이 엷어지고. 참 고민되는 부분이에요.
마을 도서관의 의미를 되새기며
지역민과 귀농인이 어우러지는 사랑방이라든가 아이들이 뛰노는 공간 확장에 대한 꿈은 아직은 이루지 못한 꿈이다. 여력이 없으니 욕심에 불과하다. 책을 읽고, 책을 이야기하고, 책을 통해 세상을 보는 도서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하는 것, 그것이 책 보따리가 바라는 미래다. “그래도 학교 말고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꼭 있었으면 좋겠어요.” 최 관장의 바람은 어쩌면 놀이 보따리를 풀러 도서관에 들어서는 아이들의 소망이고 바람인지도 모른다.
About The Author
똥폼 (세상똥폼 여든까지! 가끔은 예술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여 행복하다. 백살까지 건강하게 책보며 살고 싶은 철들긴 글러먹은 욕.심.쟁.이)
<지리산 이음>에서 함양, 남원, 하동, 산청, 구례 등 지리산권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들, 지리산권의 사람들이 지역을 기반으로 벌이고 있는 새롭고 재미있는 실험들을 찾아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리산권의 여러 커뮤니티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연결되어 관계를 맺어가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화요일 오후 3시, 아이들이 삼삼오오 들어선다. 책가방을 내던지고 서너 명이 둘러앉아 유희왕 카드를 꺼내 늘어놓는다. 카드 배틀이 시작된다. 수요일 오후 1시 반, 도서관 문을 열려면 30분이 남았는데도 아이들이 문 앞에 모여 있다. 제법 더운 날씨 속에서도 아이들은 시그림책을 만드느라 꼬박 2시간을 버틴다. 목요일 오후 4시, 고학년 여자아이들이 쪼르르 청소년실로 들어간다. 이면지도 가져가고 매직도 달라하고. 단체로 연애편지라도 쓰는 것일까? 수요일 저녁 7시, 도서관은 문을 닫았지만 소모임은 계속된다. 이름하야 개똥철학!, 중학교 언니 오빠야가 굳게 다문 입을 열까 말까 고민하는 시간이다.
악양에 거주하는 십여 명의 학부모가 모였다. 학교 얘기를 하다가 교육 전반을 걱정하다가 대안교육을 꿈꾸기도 하였다. 그러다 아이들이 안전하고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공간에 생각이 미쳤고 그것이 도서관이였다. 하지만 공간이 없었다. 이미 악양의 땅값은 치솟은 지 오래고 적당한 공간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기에는 그들의 욕망이 너무나 컸다. 냅다 일을 벌였다. 악양 주변의 유적지나 나들이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을 찾아 소풍을 갔다. 섬진강변을 거닐기도 했고 평사리 공원에서 뛰놀기도 했다. 도시락을 함께 나눠 먹었고 도서관을 왜 만들려고 하는지 취지를 설명하는 기회로 삼기도 했다. 이름 하여 ‘동네 한바퀴’였다.
다 같이 돌자, 동네한바퀴~ 다 같이 생각하자, 마을도서관!
마침내 2010년 9월, ‘작은 도서관 책 보따리’가 문을 열었다. 이천 원에서 만원까지 십시일반 후원하는 CMS회원이 150여 명에 이르렀다. 그렇게 모인 5~60만원으로 한 달 한 달 도서관 살림을 꾸렸다. 다음 달, 책 보따리 도서관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작은 도서관 조성지원사업에 선정되었고 리모델링 사업 지원금으로 1억 원이 들어왔다. 지역민과 귀농인 사이의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현재 책 보따리 도서관 관장을 맡고 있는 최난주씨가 당시를 회고한다. 모임 초반, 그들은 그저 모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거웠다. 때문에 도서관에 대한 공부는 상대적으로 충실하지 못했고 공간을 구하는데 급급했다. 도서관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왜 도서관이어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한 시기였다. 외적인 갈등이 오히려 초심을 돌아보게 했다. 동네 한 바퀴가 도서관의 취지를 알리기 위한 행사였다면 이후에는 사람들을 도서관으로 유도하기 위해 행사를 치렀다. 아나바다 장터가 그랬고, 토요일의 영화상영이 그랬으며 주말 간식시간이 그랬다.
1년 만에 마무리 될 사업이었으나 대상자로 선정 된지 2년이 되어서야 리모델링 부지가 결정되었고 이듬해인 2013년 7월, 지금의 농협 창고로 도서관을 이전했다. 길고도 힘든 시간이었다. 그 때마다 도서관이 생기기 전과 도서관이 생긴 후 아이들에게 일어난 변화를 생각했다. 변화는 아이들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른들 역시 도서관을 준비하고 개관하고 갈등을 겪으면서 성장해야만 했다.
원활한 소통 이전에 찾아온 성장의 고통
현재 책 보따리 도서관의 가장 큰 역할은 방과후 배움터의 역할이다. 악양 역시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받는 아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도서관을 드나드는 아이들은 학원을 가지도 과외를 받지도 않는, 말하자면 ‘갈 데 없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그 아이들의 본분인 ‘노는 일’을 하러 도서관으로 온다. 이럴 때마다 최 관장은 지금의 도서관 자리가 아쉽다. 이사하기 전, 도서관 맞은편에는 취간림이라는 큰 숲이 있었다. 아이들은 취간림에서 실컷 뛰어놀고 남는(!)시간을 때우러 도서관에 왔다. 책은 2순위고 뛰어노는 일이 먼저였던 것이다. 그래서 최 관장은 지금의 도서관 주변이 아이들이 뛰노는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이렇게 초등학교 시절을 놀이터 드나들 듯 도서관에서 보낸 아이들은 중학생이 되어서도 온다. 실은 와이파이가 되는 공간을 찾아들어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 바에야 안전한 도서관에서 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 최 관장의 생각이다.
현재 도서관은 5명의 고정 당번과 3명의 구원투수에 의해 관리되고 운영된다. 이들은 모두 자원봉사자들이다. 하지만 엄마들도 점차 일자리를 찾는 추세라 당번을 구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도서관 자원봉사는 우선순위에서도 밀린다. 하지만 당번을 서는 일에는 ‘도서관을 관리한다’는 액면 그대로의 가치 이상의 그 무엇이 있다. 당번을 서는 엄마들에게 도서관은 휴식의 공간이며 내가 어떤 역할을 해 내고 있다는 자부심을 만들어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책 보따리 도서관이 어떻게 지금에 이르렀는지 그 면면을 알고 있는 엄마라면 더욱 그렇다. 실제로 지난 석 달 동안 공공근로를 통해 당번 일을 대신하기도 했다. 엄마들은 휴가 얻은 셈 치고 그 기간 동안 당번 일을 쉬었다. 공공근로도 일을 참 잘 해주었다. 그런데 당번을 서지 않는 동안 정작 도서관에 대한 관심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마을 도서관의 의미를 되새기며
지역민과 귀농인이 어우러지는 사랑방이라든가 아이들이 뛰노는 공간 확장에 대한 꿈은 아직은 이루지 못한 꿈이다. 여력이 없으니 욕심에 불과하다. 책을 읽고, 책을 이야기하고, 책을 통해 세상을 보는 도서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하는 것, 그것이 책 보따리가 바라는 미래다. “그래도 학교 말고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꼭 있었으면 좋겠어요.” 최 관장의 바람은 어쩌면 놀이 보따리를 풀러 도서관에 들어서는 아이들의 소망이고 바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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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폼 (세상똥폼 여든까지! 가끔은 예술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여 행복하다. 백살까지 건강하게 책보며 살고 싶은 철들긴 글러먹은 욕.심.쟁.이)
<지리산 이음>에서 함양, 남원, 하동, 산청, 구례 등 지리산권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들, 지리산권의 사람들이 지역을 기반으로 벌이고 있는 새롭고 재미있는 실험들을 찾아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리산권의 여러 커뮤니티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연결되어 관계를 맺어가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