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은 명실상부 귀농 1번지로 통한다. 1990년대부터 귀농 운동의 거점 역할을 한 이래, 2013년 현재 귀농인구가 전체 인구의 16%를 차지하고 있는 이 곳. 통상 귀농공동체라 불리는 이곳 사람들은 가끔 “실상사 공동체는, 산내 귀농 공동체는 어디 있어요?”라는 웃지 못 할 질문을 받기도 한다. 그 느슨하고도 편안한, 아무데도 없고 혹은 어디에나 있는, 이제는 귀농 공동체이기 보다는 마을 공동체를 꿈꾸는 산내면에, 귀농운동의 흐름을 묵묵히 지켜온 ‘사단법인 한생명’이 있다.
1983년 함양댐 건설계획에 따라 실상사가 수몰될 위기에 처했다. 댐 건설 계획은 철회되었으나 문화재를 바라보는 정부 당국과 관료들의 의식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여실히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그 후 실상사의 옛 모습 회복운동이 펼쳐졌다. 그 첫 걸음은 절 주위 땅을 사들이는 ‘땅 한 평 사기 운동’ 이었다. 1997년까지 1만7천6백64평의 옛 절터가 복원됐다. 같은 해 선우도량 강사로 초빙된 이병철 귀농운동본부 대표는 농촌과 농업을 살리는데 불교계가 앞장 서 줄 것을 요청했고, 이 요청을 받아들인 실상사는 귀농인을 위한 농업 실습용 땅으로 1만 평을 내놓았다. 이것이 전국 귀농 역사의 물꼬를 튼 실상사 농장의 출발이었던 것이다.
귀농 운동의 흐름은 도도하고도 활기찼다. 1998년에는 예비 귀농인들을 위한 귀농 교육의 산실, 실상사 귀농학교가 문을 열었으며 1999년에는 인드라망 생명공동체가 설립되었고 2001년에는 최초의 불교계 대안학교인 실상사 작은학교가 개교하였다. 인드라망공동체의 가치와 철학을 실천할 산내마을 공동체를 구현하기 위해 사단법인 한생명이 창립한 것도 바로 이즈음의 일이다.
인드라망 공동체 제1실현지, 산내마을공동체
2014년 한생명 정기총회 모습
한생명이 창립한 이듬해인 2002년, 여성농업인센터가 개관하였고 사회문화교육원이 개설되었다. 대체의학, 천연염색, 집짓기, 우리 옷 만들기 등 다양한 강좌가 열렸다. 2003년에는 방과후 학교인 ‘어린이스스로배움터’가 운영되었으며 마을 주민들의 건강지킴이를 자처한 건강사랑방이 문을 열었다. 제1회 산내면 족구대회를 개최하여 마을 주민의 체력을 다지고 친목을 도모하는데 일조하기도 하였다. 2004년에는 농림부 여성 농업인센터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산내들 어린이집이 개관하였다. 교육을 지나 보육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는 순간이었다.
"한생명이 벌인 사업 중에 가장 보람되고 내외부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는 사업은 역시 보육 사업이에요. 귀농인들의 보육이념을 지켜가면서 그 자녀들의, 마을 아이들의 놀이터 역할은 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초대 한생명 사무국장이자 현재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수지행 위원장의 자체평가다. 그 이후에도 친환경농산물 유통매장인 느티나무 매장 개장, 지리산친환경영농조합법인 설립, 산내면 가을한마당과 글쓰기 한마당 개최 등 크고 작은 행사들과 단체들이 꾸려졌다. 또한 2010년에는 전원마을로 확정된 백일지구에 지리산 작은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20가구가 입주하였다. 어른 및 청소년 인문학 교실, 어르신 한글 교실 등 지역 교육 및 문화 활동의 구심점으로서의 역할 또한 지속되었다. 그러나 사업의 확장과 지속적인 활동이 실현되어가는 가운데 갈등이 불거지기도 하였다. 햇수로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모두 6명의 사무국장이 한생명을 다녀갔다. 그 속에서 들고난 활동가의 숫자는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처음과는 달리 시간이 흘러 새로운 사람들이 결합하면, 목표는 같더라도 일을 대하는 마음의 결은 많이 달라지잖아요. 공동체를 위해 모였다고는 하지만 어쩌면 모두 다른 공동체를 꿈꾸었는지도 몰라요. 외부에서 내려와 이 곳 상황에 적응하기 전에 서둘러 일에 결합하는 활동가가 대부분인데 그러면 아무래도 태도 자체가 협소해지죠. 관계를 알고 대하면 이해할만한 일들도 ‘왜 저럴까’하고 생각하기 쉽고요."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지역에서 마을 공동체 사업을 벌이는 것도, 귀농인들이 지역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도, 귀농인들과 지역민이 어우러져 사는 일도 서두른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10년 전에 비해 지역민과의 갈등은 많이 수그러든 편이다. 갈등을 부추기는 특별한 사안이 없는 한 귀농인과 지역민들은 각자의 마을 속에 섞여 잘 산다.
"한생명이 십여 년간 겪어온 갈등이 있었다면 그것은 아마도 지역민과 한생명 간의 갈등이 아니라 귀농인과 한생명 사이의 갈등일 거예요. 조직의 논리가 아니라 사람 사는 이야기로 풀어냈어야 했는데 자꾸만 한생명을, 인드라망을 내세웠어요. 이게 도리어 한생명이나 인드라망에 대한 반감을 사게 했죠."
산내들어린이집 아이들의 일상
한생명은 귀농인들의 사랑방이자 예비 귀농인들의 교두보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러나 산내마을공동체를 지향하는 한생명의 역할이 귀농인을 지원하는 것이냐는 비판도 피해갈 수 없었다. 또한 귀농인이 증가하자 꼭 한생명이나 귀농학교를 통해서가 아니라 기존의 귀농인들을 통해 들어오는 인구도 늘어났다. 2011년 25기를 끝으로 실상사 귀농학교가 문을 닫고 남원귀농귀촌학교로 옮겨간 것도 귀농인 유입 현황에 변화를 가져온 요인 중 하나였다. 한생명의 새로운 역할 모델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산내면 번영회에 산내면의 발전 방향을 위한 공부 모임을 제안하였고 간사 역할을 자청하였다. 결과적으로 모임이 잘 꾸려지지는 않았지만 일종의 지역 포럼을 통해 산내를 새롭게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의 계기가 된 움직임이었다.
새로운 역할 모델의 필요성이 대두되다.
산내에는 이미 40여 개의 소모임이 자생하고 있으며 그 운영 역시 개별적이며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교육, 문화적 움직임이 한생명을 통해 이루어지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자생적으로 모임이 생겨나고 이것이 의미 있는 활동으로 연결되는 것이 반가워요. 한생명을 통해 산내를 조망한 시기가 있었다면 이제는 한생명이 그러한 모임들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생명 내부적으로는 활동가의 소양을 키우는 일이 중요하겠죠."
귀농운동의 출발점이 되어 주었던 실상사 농장은 상대적으로 위축된 상태다. 지리산친환경영농조합이 설립되어 농업의 활성화를 꿈꾸기도 하였으나 만족할 만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그러나 산내 지역에 친환경 농업을 보급하고 확대시키는데 실상사 농장이 남긴 발자취는 크고도 깊다. 공동체 교육 및 귀농학교 실습장의 역할을 수행했던 초기부터 사부대중 공동체의 먹거리 공급에 주력했던 최근에 이르기까지 실상사 농장의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다. 실상사 농장은 2012년 한생명 체제로 전환되어 공동체의 먹을거리 공급뿐만 아니라 나눔 텃밭 등 귀농인 및 지역주민의 농사 실습지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앞으로 한생명의 역할은 이런 게 아닐까요. ‘우리가 처음 산내에 내려와서 살려고 한 이유가 뭐였을까.’, ‘마을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바는 무엇일까’ 이런 화두를 던져 주는 역할이요. 또한 활동가들이 내부 기관 운영에서 벗어나 지역으로 자기 자신을 보냈으면 해요. 그러기 위해선 지역에서 활동하는 방식에 대한 훈련이 필요하겠죠. 더불어 활동가들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위축되지 않는 것도 중요하고요."
가치 있으며 바람직한 어떤 일이 정착되기까지는 보통 한 세대, 3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10년, 한생명이 걸어온 길은 굴곡진 길이긴 하지만 어느 누구도 걷지 않은 길이다. ‘우주 만물은 한 몸 한 생명’ 이라는 한생명의 기본 이념이 마을과 지역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크게 아우를 ‘큰 생명’으로 거듭날 앞으로의 20년, 그 속에 한생명의 미래가 있다.
About The Author
똥폼 (세상똥폼 여든까지! 가끔은 예술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여 행복하다. 백살까지 건강하게 책보며 살고 싶은 철들긴 글러먹은 욕.심.쟁.이)
<지리산 이음>에서 함양, 남원, 하동, 산청, 구례 등 지리산권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들, 지리산권의 사람들이 지역을 기반으로 벌이고 있는 새롭고 재미있는 실험들을 찾아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리산권의 여러 커뮤니티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연결되어 관계를 맺어가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은 명실상부 귀농 1번지로 통한다. 1990년대부터 귀농 운동의 거점 역할을 한 이래, 2013년 현재 귀농인구가 전체 인구의 16%를 차지하고 있는 이 곳. 통상 귀농공동체라 불리는 이곳 사람들은 가끔 “실상사 공동체는, 산내 귀농 공동체는 어디 있어요?”라는 웃지 못 할 질문을 받기도 한다. 그 느슨하고도 편안한, 아무데도 없고 혹은 어디에나 있는, 이제는 귀농 공동체이기 보다는 마을 공동체를 꿈꾸는 산내면에, 귀농운동의 흐름을 묵묵히 지켜온 ‘사단법인 한생명’이 있다.
1983년 함양댐 건설계획에 따라 실상사가 수몰될 위기에 처했다. 댐 건설 계획은 철회되었으나 문화재를 바라보는 정부 당국과 관료들의 의식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여실히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그 후 실상사의 옛 모습 회복운동이 펼쳐졌다. 그 첫 걸음은 절 주위 땅을 사들이는 ‘땅 한 평 사기 운동’ 이었다. 1997년까지 1만7천6백64평의 옛 절터가 복원됐다. 같은 해 선우도량 강사로 초빙된 이병철 귀농운동본부 대표는 농촌과 농업을 살리는데 불교계가 앞장 서 줄 것을 요청했고, 이 요청을 받아들인 실상사는 귀농인을 위한 농업 실습용 땅으로 1만 평을 내놓았다. 이것이 전국 귀농 역사의 물꼬를 튼 실상사 농장의 출발이었던 것이다.
귀농 운동의 흐름은 도도하고도 활기찼다. 1998년에는 예비 귀농인들을 위한 귀농 교육의 산실, 실상사 귀농학교가 문을 열었으며 1999년에는 인드라망 생명공동체가 설립되었고 2001년에는 최초의 불교계 대안학교인 실상사 작은학교가 개교하였다. 인드라망공동체의 가치와 철학을 실천할 산내마을 공동체를 구현하기 위해 사단법인 한생명이 창립한 것도 바로 이즈음의 일이다.
인드라망 공동체 제1실현지, 산내마을공동체
2014년 한생명 정기총회 모습
한생명이 창립한 이듬해인 2002년, 여성농업인센터가 개관하였고 사회문화교육원이 개설되었다. 대체의학, 천연염색, 집짓기, 우리 옷 만들기 등 다양한 강좌가 열렸다. 2003년에는 방과후 학교인 ‘어린이스스로배움터’가 운영되었으며 마을 주민들의 건강지킴이를 자처한 건강사랑방이 문을 열었다. 제1회 산내면 족구대회를 개최하여 마을 주민의 체력을 다지고 친목을 도모하는데 일조하기도 하였다. 2004년에는 농림부 여성 농업인센터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산내들 어린이집이 개관하였다. 교육을 지나 보육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는 순간이었다.
초대 한생명 사무국장이자 현재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수지행 위원장의 자체평가다. 그 이후에도 친환경농산물 유통매장인 느티나무 매장 개장, 지리산친환경영농조합법인 설립, 산내면 가을한마당과 글쓰기 한마당 개최 등 크고 작은 행사들과 단체들이 꾸려졌다. 또한 2010년에는 전원마을로 확정된 백일지구에 지리산 작은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20가구가 입주하였다. 어른 및 청소년 인문학 교실, 어르신 한글 교실 등 지역 교육 및 문화 활동의 구심점으로서의 역할 또한 지속되었다. 그러나 사업의 확장과 지속적인 활동이 실현되어가는 가운데 갈등이 불거지기도 하였다. 햇수로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모두 6명의 사무국장이 한생명을 다녀갔다. 그 속에서 들고난 활동가의 숫자는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지역에서 마을 공동체 사업을 벌이는 것도, 귀농인들이 지역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도, 귀농인들과 지역민이 어우러져 사는 일도 서두른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10년 전에 비해 지역민과의 갈등은 많이 수그러든 편이다. 갈등을 부추기는 특별한 사안이 없는 한 귀농인과 지역민들은 각자의 마을 속에 섞여 잘 산다.
산내들어린이집 아이들의 일상
한생명은 귀농인들의 사랑방이자 예비 귀농인들의 교두보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러나 산내마을공동체를 지향하는 한생명의 역할이 귀농인을 지원하는 것이냐는 비판도 피해갈 수 없었다. 또한 귀농인이 증가하자 꼭 한생명이나 귀농학교를 통해서가 아니라 기존의 귀농인들을 통해 들어오는 인구도 늘어났다. 2011년 25기를 끝으로 실상사 귀농학교가 문을 닫고 남원귀농귀촌학교로 옮겨간 것도 귀농인 유입 현황에 변화를 가져온 요인 중 하나였다. 한생명의 새로운 역할 모델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산내면 번영회에 산내면의 발전 방향을 위한 공부 모임을 제안하였고 간사 역할을 자청하였다. 결과적으로 모임이 잘 꾸려지지는 않았지만 일종의 지역 포럼을 통해 산내를 새롭게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의 계기가 된 움직임이었다.
새로운 역할 모델의 필요성이 대두되다.
산내에는 이미 40여 개의 소모임이 자생하고 있으며 그 운영 역시 개별적이며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교육, 문화적 움직임이 한생명을 통해 이루어지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귀농운동의 출발점이 되어 주었던 실상사 농장은 상대적으로 위축된 상태다. 지리산친환경영농조합이 설립되어 농업의 활성화를 꿈꾸기도 하였으나 만족할 만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그러나 산내 지역에 친환경 농업을 보급하고 확대시키는데 실상사 농장이 남긴 발자취는 크고도 깊다. 공동체 교육 및 귀농학교 실습장의 역할을 수행했던 초기부터 사부대중 공동체의 먹거리 공급에 주력했던 최근에 이르기까지 실상사 농장의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다. 실상사 농장은 2012년 한생명 체제로 전환되어 공동체의 먹을거리 공급뿐만 아니라 나눔 텃밭 등 귀농인 및 지역주민의 농사 실습지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가치 있으며 바람직한 어떤 일이 정착되기까지는 보통 한 세대, 3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10년, 한생명이 걸어온 길은 굴곡진 길이긴 하지만 어느 누구도 걷지 않은 길이다. ‘우주 만물은 한 몸 한 생명’ 이라는 한생명의 기본 이념이 마을과 지역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크게 아우를 ‘큰 생명’으로 거듭날 앞으로의 20년, 그 속에 한생명의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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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폼 (세상똥폼 여든까지! 가끔은 예술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여 행복하다. 백살까지 건강하게 책보며 살고 싶은 철들긴 글러먹은 욕.심.쟁.이)
<지리산 이음>에서 함양, 남원, 하동, 산청, 구례 등 지리산권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들, 지리산권의 사람들이 지역을 기반으로 벌이고 있는 새롭고 재미있는 실험들을 찾아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리산권의 여러 커뮤니티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연결되어 관계를 맺어가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