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은 사다리를 타서 뽑았다. 인터뷰는 머리털 나고 처음이지만 들이대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 사진작가는 없고 따뜻한 사진을 찍고 싶은 사람은 있다. 교정교열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자격증이 없다. 전문 디자이너에게 창간 준비호의 편집을 딱 한 차례 부탁했고 이제는 그마저 자체 해결 중이다. 겁도 없고 대책 없고 사무실도 없고 있는 거라곤 소통의 열망뿐인 이들, 오합지졸의 결정체이자 막무가내식 수공업자의 화신, 남원시 산내면에는 산내마을신문모임이 있다.
2013년 4월 창간하여 현재 17호까지 월간으로 발행되고 있는 산내마을신문
오합지졸? 혹은 완벽조합!
산내마을신문은 2013년 3월 창간준비호로 돛을 올렸다. 그 해 5월에는 창간호를 발행하였고 지금까지 17호(발행호수로는 18호)째 신문을 내며 순항 중이다. 산내마을신문은 그 누구도 아닌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신문이다. 산내에서 살아오신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나무가 만난 사람), 산내면 17개 마을의 유래와 역사 그리고 현주소를 살펴보는가 하면 (산내 마을을 찾아서), 학교 및 학생, 그리고 어린이의 소식을 전해 듣기도 하고 (산내의 아이들), 산내에 자생하고 있는 40여 개 소모임의 면면을 확인 할 수(산내 모임을 찾아서)도 있다.
처음 마을신문 만들기를 제안한 조양호씨에 따르면 산내면에서는 줄곧 마을신문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다고 한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늘 진정한 소통에 대한 열망이 잠재되어 있었다. 하지만 단지 열망만으로 신문을 만들 수 있었을까.
“두려움이 있었죠. 전문 기자나 전문 편집인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모두 경험이 없는 상태였으니까요. 창간준비호로 시작하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창간준비1호, 준비2호 계속 이렇게 준비만 하자고 했어요.” 편집장인 정충식씨는 사람 좋은 웃음으로 당시를 회고한다. 적잖은 부담감이 느껴지는 일이었다. 취재를 하는 방법도, 취재한 정보를 기사로 다루는 일도 모두 낯설었다. 전문가가 아니면서 전문적인 영역의 글을 쓰는 일은 조심스럽기만 했다. 그런데 모두들 노련하지 않으니 오히려 모두가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다. 일방적으로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모두들 서로를 가르치고 서로에게 배웠다.
“내가 좀 부족하게 준비해 와도 누군가가 그 부분을 메워주더라고요. 채워지고 공부가 되는 조합, 신문을 내면 낼수록 참 똑 떨어지는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부터 일이 되려고 이렇게 모였구나 싶었죠.” 은근 슬쩍(!) 산내마을신문의 사진담당기자로 자리 잡은 임현택씨의 이야기다.
마을카페에 모여서 인쇄 직전 편집본을 보면서 교정/교열작업을 함께 하고 있는 산내마을신문모임
어떤 신문에서도 실어주지 않지만 산내면 사람들에게는 소중하고 절실한,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각각의 이야기를, 그 기사에 보다 관심이 있고 그 일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담당한다. 신문을 만드는 일이 무거운 노동이 아닌 편안한 즐거움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만드는 이들의 자발적 의지는 신문을 보는 사람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마을 기자가 늘어났고 처음에는 신문모임 사람들의 십시일반으로 메워졌던 인쇄비용도 지금은 신문 후원금과 신문 지면에 실리는 광고료로 충당한다.
신문을 배달하는 과정도 인상적이다. 해당 마을이나 인근 마을 주민이 직접 신문을 배달하는데, 부모 손을 잡고 따라나서는 아이들도 있고 혼자 힘으로 신문을 돌리는 이른바 ‘배달의 기수’도 있다. 이렇게 신문을 직접 배포하면 신문에 대한 반응을 체감할 수 있고 신문을 건네며 주고받는 이야기를 통해 기삿거리를 확보할 수도 있다고.
누구도 실어주지 않지만 우리에겐 소중한 이야기
하지만 마을신문은 규모에 상관없이 ‘언론’ 이었다. 작은 시골마을에서 갈등의 소지가 있는 사안을 다루는 것은 민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고 갈등이 두려워 사안을 회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편향적인 글을 쓰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일 터였다. 객관성을 유지하되 지역 정서를 자극하지 않는 기술이 필요했다.
“천성적으로 듣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편집장을 맡고는 그런 습관이 더 강화됐죠. 사석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말을 아끼게 되요. 하지만 신문은, 아무리 마을 신문이라도 언론의 역할을 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정확한 정보에 입각해서 개인적인 사리사욕을 배제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지요.” 1년 이상 신문 편집장 일을 맡고 보니 주변사람들도 정충식씨에게 꼭 한마디씩 신문에 관한 이야기를 던진다. 가볍든 무겁든 마을의 이야깃거리를 만들기 위해 시작한 신문이었으니 목표는 달성된 셈이다. 이런 정 씨에 비해 조양호씨는 조금 더 욕심을 낸다.
“작은 규모의 지역사회이다 보니 아무래도 지역의 목소리 큰 몇몇의 의견이 대다수 주민들의 의견으로 대변되기가 쉽죠. 몇 사람에 의해 좌우되었던 지역의 여론이 마을 신문을 통해 힘의 균형을 이루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처음 신문을 만들고자 모였을 때 이들이 원했던 것은 소통이었다. 조중동이 아닌,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신문, 그 신문이라는 마당에서 어울림의 춤사위가 펼쳐지길 바랐다.
“내가 굳이 몰라도 되는 사람들 얘기는 들을 만큼 듣고 살았잖아요. 신문을 펼쳐봐야 거기에 펼쳐지는 건 그들의 세상이죠. 이젠 내 이야기, 내 이웃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이웃의 이야기는 외면하면서 어떻게 세상의 이야기를 나누고 해결할 수 있겠어요?” 정충식씨는 산내마을신문이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담아내는 신문임을 강조한다. 정씨는 얼마 전 면사무소에서 “너도 이거 읽어봐. 우리 동네 얘기야.”하며 친구에게 신문을 건네는 마을 청년을 마주하였다. 뿌듯함과 동시에 책임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귀농인과 지역민, 아이들과 어른들이 신문을 통해 이야기를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개인적으로 가장 큰 소득은 신문이 제 명함이 되었다는 점이에요. 전에는 제 자신을 소개할 때 ‘누구누구 엄마예요.’ ‘어느 마을에 살아요.’ 이렇게 이야기 하곤 했는데 신문을 만들면서부터는 ‘신문모임의 조창숙이에요.’라고 절 소개하거든요.” ‘산내 마을을 찾아서’라는 마을 안내 기사를 담당하고 있는 조창숙씨는 마을을 찾아가 이장님을 만날 때마다 마을신문이라는 명함을 내민다. 이런 과정을 통해 조 씨가 얻은 것은 주변인처럼 느껴졌던 산내에서의 삶이 마을 안으로 깊숙이 자리 잡았다는 충만함이다.
신문, 명함이 되다
산내마을신문의 편집회의는 한 시간을 넘기는 법이 없다. 회의는 간결하고 뒤풀이는 조금 더 넉넉하다. 신문을 만드는 ‘일’은 ‘사람’을 통해서임을 그들은 안다. 신문 자체의 의미보다는 신문이 파생하는 다양한 일들에 기대를 거는 ‘아이디어 뱅크 조 모’씨가 있고, 마을의 아이들이 자라서 산내마을신문을 만들 즈음 편집 주간 자리를 꿰차고 싶은 ‘산내 대표 오지랖’이 있고, 신문이 나오는 날을 마을 축제의 날로 허하고 싶은 ‘은근 슬쩍 사진전문기자’가 있으며, 마을 주민들의 야생의 소리를 담아내고 싶은 ‘사다리 편집장’도 있고, 5년 후 십년 후에도 여전히 신문을 만들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분위기 메이커 겸 살림꾼 총무’도 있고, 결국은 신문이, 신문지라는 타고난 운명을 잘 받아들이길 바라는 ‘짝퉁 교정녀’도 있다.
2014년 6월, 전국마을신문워크숍을 준비/실행한 산내마을신문모임 편집팀
오합지졸과 완벽조합을 넘나드는 이들은 지난 6월 산내에서 제1회 전국마을신문워크숍을 주관하기도 하였다. 이미 마을신문을 만들고 있거나 마을신문을 만들고자 하는 100명의 사람들이 산내에 모였다. 산내의 산과 들, 푸른 하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문을 통해 각자가 꿈꾸는 세상은 조금씩 다른 빛깔이지만 신문을 만드는 일이 ‘가볍고’, ‘재미나고’, ‘유연한’ 일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어디서 뵀더라’ 가 ‘신문에서 뵀지!’로, ‘카더라 소식통’이 ‘산내마을신문소식통’으로 전환되는 그 날을 위해 오늘도 산내마을신문모임은 딱 한 시간만 편집회의를 한다. 기민하고 신속하기 이를 데 없는 회의 속에서도 그들이 잊지 않는 점이 있다. ‘산내마을신문은 산내마을주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산내마을주민의 신문’이라는 당연하고도 엄연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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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폼 (세상똥폼 여든까지! 가끔은 예술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여 행복하다. 백살까지 건강하게 책보며 살고 싶은 철들긴 글러먹은 욕.심.쟁.이)
<지리산 이음>에서 함양, 남원, 하동, 산청, 구례 등 지리산권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들, 지리산권의 사람들이 지역을 기반으로 벌이고 있는 새롭고 재미있는 실험들을 찾아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리산권의 여러 커뮤니티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연결되어 관계를 맺어가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편집장은 사다리를 타서 뽑았다. 인터뷰는 머리털 나고 처음이지만 들이대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 사진작가는 없고 따뜻한 사진을 찍고 싶은 사람은 있다. 교정교열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자격증이 없다. 전문 디자이너에게 창간 준비호의 편집을 딱 한 차례 부탁했고 이제는 그마저 자체 해결 중이다. 겁도 없고 대책 없고 사무실도 없고 있는 거라곤 소통의 열망뿐인 이들, 오합지졸의 결정체이자 막무가내식 수공업자의 화신, 남원시 산내면에는 산내마을신문모임이 있다.
2013년 4월 창간하여 현재 17호까지 월간으로 발행되고 있는 산내마을신문
오합지졸? 혹은 완벽조합!
산내마을신문은 2013년 3월 창간준비호로 돛을 올렸다. 그 해 5월에는 창간호를 발행하였고 지금까지 17호(발행호수로는 18호)째 신문을 내며 순항 중이다. 산내마을신문은 그 누구도 아닌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신문이다. 산내에서 살아오신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나무가 만난 사람), 산내면 17개 마을의 유래와 역사 그리고 현주소를 살펴보는가 하면 (산내 마을을 찾아서), 학교 및 학생, 그리고 어린이의 소식을 전해 듣기도 하고 (산내의 아이들), 산내에 자생하고 있는 40여 개 소모임의 면면을 확인 할 수(산내 모임을 찾아서)도 있다.
처음 마을신문 만들기를 제안한 조양호씨에 따르면 산내면에서는 줄곧 마을신문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다고 한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늘 진정한 소통에 대한 열망이 잠재되어 있었다. 하지만 단지 열망만으로 신문을 만들 수 있었을까.
“두려움이 있었죠. 전문 기자나 전문 편집인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모두 경험이 없는 상태였으니까요. 창간준비호로 시작하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창간준비1호, 준비2호 계속 이렇게 준비만 하자고 했어요.” 편집장인 정충식씨는 사람 좋은 웃음으로 당시를 회고한다. 적잖은 부담감이 느껴지는 일이었다. 취재를 하는 방법도, 취재한 정보를 기사로 다루는 일도 모두 낯설었다. 전문가가 아니면서 전문적인 영역의 글을 쓰는 일은 조심스럽기만 했다. 그런데 모두들 노련하지 않으니 오히려 모두가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다. 일방적으로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모두들 서로를 가르치고 서로에게 배웠다.
“내가 좀 부족하게 준비해 와도 누군가가 그 부분을 메워주더라고요. 채워지고 공부가 되는 조합, 신문을 내면 낼수록 참 똑 떨어지는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부터 일이 되려고 이렇게 모였구나 싶었죠.” 은근 슬쩍(!) 산내마을신문의 사진담당기자로 자리 잡은 임현택씨의 이야기다.
마을카페에 모여서 인쇄 직전 편집본을 보면서 교정/교열작업을 함께 하고 있는 산내마을신문모임
어떤 신문에서도 실어주지 않지만 산내면 사람들에게는 소중하고 절실한,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각각의 이야기를, 그 기사에 보다 관심이 있고 그 일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담당한다. 신문을 만드는 일이 무거운 노동이 아닌 편안한 즐거움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만드는 이들의 자발적 의지는 신문을 보는 사람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마을 기자가 늘어났고 처음에는 신문모임 사람들의 십시일반으로 메워졌던 인쇄비용도 지금은 신문 후원금과 신문 지면에 실리는 광고료로 충당한다.
신문을 배달하는 과정도 인상적이다. 해당 마을이나 인근 마을 주민이 직접 신문을 배달하는데, 부모 손을 잡고 따라나서는 아이들도 있고 혼자 힘으로 신문을 돌리는 이른바 ‘배달의 기수’도 있다. 이렇게 신문을 직접 배포하면 신문에 대한 반응을 체감할 수 있고 신문을 건네며 주고받는 이야기를 통해 기삿거리를 확보할 수도 있다고.
누구도 실어주지 않지만 우리에겐 소중한 이야기
하지만 마을신문은 규모에 상관없이 ‘언론’ 이었다. 작은 시골마을에서 갈등의 소지가 있는 사안을 다루는 것은 민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고 갈등이 두려워 사안을 회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편향적인 글을 쓰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일 터였다. 객관성을 유지하되 지역 정서를 자극하지 않는 기술이 필요했다.
“천성적으로 듣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편집장을 맡고는 그런 습관이 더 강화됐죠. 사석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말을 아끼게 되요. 하지만 신문은, 아무리 마을 신문이라도 언론의 역할을 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정확한 정보에 입각해서 개인적인 사리사욕을 배제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지요.” 1년 이상 신문 편집장 일을 맡고 보니 주변사람들도 정충식씨에게 꼭 한마디씩 신문에 관한 이야기를 던진다. 가볍든 무겁든 마을의 이야깃거리를 만들기 위해 시작한 신문이었으니 목표는 달성된 셈이다. 이런 정 씨에 비해 조양호씨는 조금 더 욕심을 낸다.
“작은 규모의 지역사회이다 보니 아무래도 지역의 목소리 큰 몇몇의 의견이 대다수 주민들의 의견으로 대변되기가 쉽죠. 몇 사람에 의해 좌우되었던 지역의 여론이 마을 신문을 통해 힘의 균형을 이루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처음 신문을 만들고자 모였을 때 이들이 원했던 것은 소통이었다. 조중동이 아닌,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신문, 그 신문이라는 마당에서 어울림의 춤사위가 펼쳐지길 바랐다.
“내가 굳이 몰라도 되는 사람들 얘기는 들을 만큼 듣고 살았잖아요. 신문을 펼쳐봐야 거기에 펼쳐지는 건 그들의 세상이죠. 이젠 내 이야기, 내 이웃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이웃의 이야기는 외면하면서 어떻게 세상의 이야기를 나누고 해결할 수 있겠어요?” 정충식씨는 산내마을신문이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담아내는 신문임을 강조한다. 정씨는 얼마 전 면사무소에서 “너도 이거 읽어봐. 우리 동네 얘기야.”하며 친구에게 신문을 건네는 마을 청년을 마주하였다. 뿌듯함과 동시에 책임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귀농인과 지역민, 아이들과 어른들이 신문을 통해 이야기를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개인적으로 가장 큰 소득은 신문이 제 명함이 되었다는 점이에요. 전에는 제 자신을 소개할 때 ‘누구누구 엄마예요.’ ‘어느 마을에 살아요.’ 이렇게 이야기 하곤 했는데 신문을 만들면서부터는 ‘신문모임의 조창숙이에요.’라고 절 소개하거든요.” ‘산내 마을을 찾아서’라는 마을 안내 기사를 담당하고 있는 조창숙씨는 마을을 찾아가 이장님을 만날 때마다 마을신문이라는 명함을 내민다. 이런 과정을 통해 조 씨가 얻은 것은 주변인처럼 느껴졌던 산내에서의 삶이 마을 안으로 깊숙이 자리 잡았다는 충만함이다.
신문, 명함이 되다
산내마을신문의 편집회의는 한 시간을 넘기는 법이 없다. 회의는 간결하고 뒤풀이는 조금 더 넉넉하다. 신문을 만드는 ‘일’은 ‘사람’을 통해서임을 그들은 안다. 신문 자체의 의미보다는 신문이 파생하는 다양한 일들에 기대를 거는 ‘아이디어 뱅크 조 모’씨가 있고, 마을의 아이들이 자라서 산내마을신문을 만들 즈음 편집 주간 자리를 꿰차고 싶은 ‘산내 대표 오지랖’이 있고, 신문이 나오는 날을 마을 축제의 날로 허하고 싶은 ‘은근 슬쩍 사진전문기자’가 있으며, 마을 주민들의 야생의 소리를 담아내고 싶은 ‘사다리 편집장’도 있고, 5년 후 십년 후에도 여전히 신문을 만들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분위기 메이커 겸 살림꾼 총무’도 있고, 결국은 신문이, 신문지라는 타고난 운명을 잘 받아들이길 바라는 ‘짝퉁 교정녀’도 있다.
2014년 6월, 전국마을신문워크숍을 준비/실행한 산내마을신문모임 편집팀
오합지졸과 완벽조합을 넘나드는 이들은 지난 6월 산내에서 제1회 전국마을신문워크숍을 주관하기도 하였다. 이미 마을신문을 만들고 있거나 마을신문을 만들고자 하는 100명의 사람들이 산내에 모였다. 산내의 산과 들, 푸른 하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문을 통해 각자가 꿈꾸는 세상은 조금씩 다른 빛깔이지만 신문을 만드는 일이 ‘가볍고’, ‘재미나고’, ‘유연한’ 일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어디서 뵀더라’ 가 ‘신문에서 뵀지!’로, ‘카더라 소식통’이 ‘산내마을신문소식통’으로 전환되는 그 날을 위해 오늘도 산내마을신문모임은 딱 한 시간만 편집회의를 한다. 기민하고 신속하기 이를 데 없는 회의 속에서도 그들이 잊지 않는 점이 있다. ‘산내마을신문은 산내마을주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산내마을주민의 신문’이라는 당연하고도 엄연한 사실이다.
About The Author
똥폼 (세상똥폼 여든까지! 가끔은 예술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여 행복하다. 백살까지 건강하게 책보며 살고 싶은 철들긴 글러먹은 욕.심.쟁.이)
<지리산 이음>에서 함양, 남원, 하동, 산청, 구례 등 지리산권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들, 지리산권의 사람들이 지역을 기반으로 벌이고 있는 새롭고 재미있는 실험들을 찾아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리산권의 여러 커뮤니티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연결되어 관계를 맺어가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