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이음 활동 소식

자료별난 선택? 아니, 살 맛 나는 선택! - 지리산 시골살이학교

2015-03-24

"지리산 시골살이학교는 시골살이에 필요한 정보와 지식은 무엇이고, 어떤 자세와 경험, 기술이 필요한지를 살펴볼 수 있는 학교입니다. 시골에 사는 것이 특별한 삶이거나 부정적인 선택이 아니라 삶의 방식 중 하나라는 것을 인식하고 시골살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는 학교입니다. 시골에서 농사 외에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오래 전부터 시골살이를 해온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학교입니다. "

 


햇살 받은 땡감은 눈부시다. 

  

담장 아래 봉숭아가 손톱을 물들일 마지막 손님을 기다리는 오후, 시골살이학교 1기 신입생들이 속속 숙소로 들어선다. 조심스럽고 긴장된 표정이지만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감을 감출 수는 없는 모양이다. 문득 겹쳐지는 그림 하나가 있다.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지리산 자락으로 접어든 13년 전의 나. 돌아서도 산이요, 굽이쳐도 산이던 그리하여 마침내 지리산 천왕봉과 대면하고 나서야 들어설 수 있었던 산내. 그 덜컹대던 버스 안에서 나는 혹·떨고 있었던가. 


시골살이학교의 숙소인 ‘감꽃 홍시 게스트하우스’ 뒷마당에서 조촐한 입학식이 열린다. (누가 뭐래도 학교니까!) 행정실장임을 자처하는 운영진 현택 샘의 사회로 입학식이 시작되고, (누가 뭐래도 식이니까!) 귀빈의 인사말씀도 청해 듣는다. 산내 농민회 회장님의 “재밌어야 즐겁습니다.!” 라는 임팩트 있는 한마디! 이어지는 강사소개 시간은 산내면 귀농 1,2세대임을 자부하는 막강 라인업 강사진임이 인증되는 순간이다. 

 

어럽쇼! 입학 선물 증정식까지?! ‘입학 선물은 있으나 졸업 선물은 없다’는 운영진의 으름장에도 불구하고 명품 옻칠 목기 컵과 수저를 양 손에 든 신입생들은 싱글벙글이다. ‘생각에만 머물렀던 시골살이를 직접 경험하고 싶어 참가했다’는 지원씨도, ‘책을 통해서는 얻기 힘든 살아있는 체험을 하고 싶어 입학했다’는 선혜씨도, ‘대안적인 삶을 위해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다’는 서연씨도 그 누구도 떨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새로움에 대한 기대가 낯설음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는 순간이다. 돌이켜 보면 13년 전 덜컹대던 그 버스 안에서 나는 웃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정말이지 아무, 생각, 없이. 

 


알고 싶어요. 시골살이

 

남원시 산내면은 인구 2천명 남짓의 조그마한 마을이지만 귀농, 귀촌 인구가 300명을 웃도는 귀농, 귀촌의 메카이다. 10여년 전만해도 귀농운동본부와 사단법인 한생명을 중심으로 귀농인구가 유입되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일정한 구심점을 통해 귀농하기보다는 이미 귀농한 현지 귀농인들을 통하거나 그의 지인들이 유입되는 등 창구가 다양하게 열려있는 형편이다. 자연히 귀농, 귀촌 후의 삶의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이전에는 실상사 농장 중심의 농사와 소규모 울력이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원천이었다면 현재는 모여든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소모임과 다양한 삶의 방식이 공존한다. 덕분에 시골살이학교에서는 기본적인 농사, 농촌체험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사람책과의 만남’이라는 독특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지금껏 산내면에 살아오면서 시골살이를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시골살이학교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사람책의 면면은 이렇다. 십년이상 시골에서 살아온 사람들, 아이를 셋 이상 키우며 살아온 사람들, 농사 이외에 다른 일을 하며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오로지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사람들 등 시골살이의 어제와 오늘, 양지와 음지를 속살거릴, 그야말로 사람으로 된 책이다.  

 

이미 시골살이를 하고 있는 여러 사람책들과의 만남


 

“시골살이의 현실적인 면면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귀농한지 10년 이상 되신 분들과 대화를 나눴는데요, ‘10년을 살아도 이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다’던 말씀이 지금도 마음에 남네요.” 새참 시간에 유난히 빛나던, 자급자족에 관심이 많은 민선씨의 이야기다. 한편 농사짓지 않고 시골에서 살아가는 방법이 궁금했던 경원씨는 해결책을 찾았을까? “지나치게 단순한 삶이 걱정되기도 해요. 그런데 농사를 짓지 않고도 시골살이를 하고 있는 사람책들처럼 뭔가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분을 뵈니 용기가 납니다.”

 



용기가 나요. ‘시골살이’ 

 

 


 8박9일의 시간동안 그들은 고추와 토마토를 따고, 사과나무 가지를 정리하고, 배추 모종을 심고, 깔끄러운 옥수숫대를 이고 지고 잘라가며 거름을 만들었다. 부상투혼을 발휘하며 손수 톱을 켜 나무 액자를 만들었는가하면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직접 고추장을 담가보기도 했다. “가족 중심, 개인 중심의 시골살이를 생각했는데 관계 중심적인 시골에서 잘 생활할 수 있을지 염려가 되요. 하지만 학교생활 종반으로 접어드니 뭔가 손에 잡히는 느낌입니다.” 음식문화사를 공부하고 있는 하나씨의 염려처럼 8박9일간의 시골살이학교 생활을 통해 시골살이에 대한 확신을 얻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삶의 방식 중 시골살이 역시 그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는 점, 시골살이는 불안하고 위험한 선택이 아니라 색다른 삶의 모습이라는 점, 이것이 지혜로운 시골살이학교 1기들이 취한 선물은 아니었을까.

 

“직장생활이 만만치 않았어요. 마음이 바닥나니 결국 몸도 상했죠. 몸이 아플 때는 ‘돈 그 따위 게 다 무슨 소용이야!’ 싶다가도 조금만 나아지면 다시 돈을 벌어 양껏 소비하고 싶은 욕망을 어쩌지 못했죠. 불안감에 지배받는 삶이었다고 할까요. 공항 철도를 타고 인천 공항까지 가서 라운지에 앉아 이륙하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제주도에 가야겠다고 결심했죠. 제가 바람 맞는 걸 좋아하거든요. 비가 추적대는 흐린 날이었지만 오름에 올라 온 몸으로 바람을 맞았어요. 순간 제 입에서 “아, 행복해!” 라는 말이 흘러나오대요. 자연이 주는 선물이 이런 거구나. 행복과 평화라는 게 이런 거구나. 온 몸으로 느낀 순간이었죠.“ 

 

현정씨의 이야기다. 그렇다. 왜 시골살이를 꿈꾸냐고, 왜 여기까지 왔냐고 묻기는 쉬우나 대답은 간단치가 않다. 말과 정신에 앞서 몸이 느끼는 순간, 바로 그 한 순간 때문에 시골살이를 결심하기도 한다. 유난히 길게 느껴졌던 지하철 환승로, 부지런히 빠져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속도를 맞추지 못하는 나, 나는 어쩌면 뱀처럼 긴 그 통로를 터덜터덜 빠져나오며 시골살이를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요즘은 그런 폼 잡는 설명이 거추장스러워 “음식물 쓰레기 때문에요.”라는 모범답안을 정해놓긴 했지만.

 



함께 해 보아요. 시골살이

 

하늘은 맑고 푸르다. 졸업식을 앞두고 학생과 교사 그리고 운영진이 함께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다. 중황마을에서 상황마을로 가는 길목, 늘 물이 말라있던 그 길에 작은 개울이 생겼다. 잠시 멈춰 서서 손을 씻고 얼굴을 적신다. 중황마을을 지나 숲길을 벗어나니 저 아래 다랑이논이 펼쳐진다. 탁 트인 시야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상쾌해지는 들판이다.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 상황쉼터에 도착! 보기만 해도 아밀라아제가 분비되는 엄청난 반찬과, 산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시원한 풍광과, 무엇보다 같은 뜻을 가진 도반이 함께 있으니 아, 천국이 따로 없구나. 

 



 

시골살이학교의 마지막 날, 8박 9일의 일정을 마무리 하는 졸업식이 마을 카페에서 펼쳐진다. 먼저 영상을 통해 시골살이학교 생활을 돌아본다. 조금은 수줍어하던 입학식 풍경이며, 고추밭, 사과밭, 배추밭 정경이 지나간다. 남다른 노동 강도로 기억되는 옥수숫대 거름 만들기와 목공수업까지. 

 

8일간의 일정을 돌아본 후, 맏언니 수연씨가 남긴 담담한 한 마디, “꿈, 같, 다.” 졸업소감을 나누고 나니 졸업선물 증정식이 거행된다. 입학선물은 있되, 졸업선물은 없다던 운영진이 약속을 깨고 준비한 졸업선물은 무엇일까? 아하, 액자다! 목공수업시간 학생들이 손수 만든 액자에 시골살이학교를 추억할 만한 사진을 담았다. 소감을 밝히며 눈가가 촉촉해진 학생들은 목공 선생님께서 깔끔하게 마무리해주신 나무 액자에 감탄하고 8박 9일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진 사진에 또 한 번 가슴이 먹먹해진다.

 


졸업식에 모인 시골살이학교 1기 학생들 


 

“대충 세어 봐도 8박 9일간의 시골살이학교를 위해 직간접적으로, 때로는 우연히 도와주신 산내마을 분들이 모두 35명이나 되요. 여건이 될지 모르지만, 1기 참가자 중에 산내에 정착하거나 오랫동안 머물면서 이후의 삶을 모색해보는 사람이 생겼으면 좋겠고, 2기, 3기, 4기... 꾸준히 이어져서 마을에 에너지 충만한 젊은 열기들, 발랄한 기운들, 긍정의 힘들이 계속 쌓여 가면 참 좋겠어요.” 시골살이 학교를 기획하고 운영진으로 활약한 조양호씨의 소회다. 

 

‘시골살이학교 식구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소중한 사람책이었다’는 다현씨의 이야기처럼 시골살이학교에 참가한 모든 이들은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되어주었다. 함께 했던 8박9일 동안 그들은 아무 것도 약속하지 않았고, 다짐하지 않았다. 다만 각자의 가슴에 작은 등불을 피웠고 이젠 그 등불이, 한 사람 한 사람의 걸어갈 길을 밝혀 주길 바랄 뿐이다. 저 감나무에 감꽃이 피어날 때면 또 다른 시골살이학교 학생들이 산내를 거닐겠지. 햇살과 바람을 받아 안은 땡감이 붉고 달콤한 홍시가 되듯 시골살이에 첫발을 내딛은 이들 또한 곱고 충만하게 자라나기를. 

 

‘지리산을 캠퍼스 삼아, 마을주민을 스승삼아,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도반을 등불삼아 시골살이의 참맛을 익히는 마을 학교, 여기는 지리산 시골살이학교입니다.’   <끝>

 



     




 

다음은 시골살이 학교 1기 졸업생이자, 지난겨울 산내 삼화리에 둥지를 튼, 2기 시골살이학교 운영진 조현정씨와의 일문일답입니다.

 


Q. 어쩌다가 시골살이라는 오래된 미래에 마음을 뺏기셨답니까?

A. 이일훈 건축가의 ‘밖에서 불편하게 늘려 살기’ 라는 강의를 들었는데요. 그런 관점에서 같이 공감하고 고민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있었어요. 도시에선 이런 고민을 나눌 사람이 없었는데, 여긴…. 

 


 


Q. 도시 부적응 환자들이 죄다 모여 있으니까. (웃음)

A. 네.(웃음) 도시에선 나만 이상한가? 이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이 누굴까? 그런 생각에 막막했거든요. 여기 와서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풀어놓고 싶었어요. 그치만 시골살이학교에서 그런 고민들이 속 시원히 해결된 건 아니에요. 시골살이를 꿈꾸는 결들이 워낙 다양했거든요. 단순히 공간이동을 꿈꾸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았고, 삶의 형식과 내용 자체를 바꿔보려는 사람들도 있었죠. 처음 입학 할 땐 자신감과 희망에 가득 차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막막해졌어요. 

 

Q. 그럼에도 불구하고 1기 중, 제일 먼저 시골살이를 시작했네요.

A. 시골살이학교 과정이 끝나갈 즈음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건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다. 시골이든 도시든 내 삶을 온전히 내가 살아낼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 아마도 이곳에 살고 계신 분들은 여기가 아니더라도 어디서든 잘 살 수 있는 분들 일 거다.’

 

Q. 그렇게 훌륭하게 생각해 주다니. (웃음)

A. 근데 막상 창원(집)으로 돌아가니 기분이 이상한 거예요. 공기 덩어리가 되어 떠다니고 있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적응이 안됐어요. 제가 해외에 나가 본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졸업하고 여행갈까 생각도 했었는데 안 당기더라고요. 무서워서 그랬나?

 

Q. 여기 둥지 트는 것 보다 외국으로 여행가는 게 더 쉬운 일이었을 수도 있어요.

A. 여행 후에 다시 산내로 들어오면 뭔가 어색해질 것 같았어요. 무엇보다 결단을 내리고 싶었던 것 같아요. 도시에서 살든 시골에서 살든 뭔가 이 불안한 삶에 종지부를 찍고 싶었다고 할까요. 그래서 별 생각 없이 내려왔죠.

 

Q. 시골살이 학교 숙소였던 감꽃홍시 게스트하우스에서 시골살이를 시작했어요. 그것도 겨울에. 엄청 추웠죠?

A. 한 번은 창원 집에 갔다가 다시 산내로 들어오는데, 분명히 창원은 날이 맑았거든요. 약간 쌀쌀하긴 했지만. 함양에 도착해서 산내 쪽을 바라보니 거대한 눈구름이 몰려있는 거예요. 겨울왕국이 따로 없더라고요. 버스 타고 산내 쪽으로 들어가는데 눈보라가 치기 시작하더니 버스에서 내려 숙소까지 걸어가는 동안 거의 우산에 매달리다시피 해서 갔어요. 홀딱, 정말이지 홀딱 젖었죠. 곳간은 비어있고 날은 춥고, 뭐 먹고 살아야하나 매일매일이 걱정이었어요.

 

Q. 그러다가 동기들이랑 의기투합해서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빌렸어요?

A. 의기투합이라기보다는 우연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요. 시시콜콜한 이유에 대해선 서로 잘 몰라요. 그냥 해보자, 재밌겠다. 이런 출발이었던 것 같아요. 내가 시골살이에 적합한 사람인지 아닌지 테스트 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구성원이 생겨서 그 테스트를 더 연장할 수 있게 됐어요. 

 

Q. 어떤 시골살이를 꿈꿔요?

A. 그런 거 안 정하려고요. 정하면 스트레스더라고요. 시골에 오면 지역 먹거리 먹을 줄 알았는데 할인마트 가요. 인월장에서 장을 본 적이 있는데요, 워낙 큰 단위로 파니까 저처럼 혼자 사는 사람의 경우엔 결국은 다 못 먹고 버리게 되더라고요. 기준을 만들어 놓고 살기에는 너무나 다 새롭고 적응할 게 많은 삶이라, 규정짓지 않고 최소한의 의식만 가지고 살아야지 하는 정도에요.

 

Q. 최소한의 데드라인은 뭐예요?

A. 너무 이기적이거나 폭력적으로는 살지 않는 거요. 

 

Q. 이기적이지 않고 폭력적으로 살지 않기에 도시보다는 시골이 나은 것 같아요?

A. 아무래도 비교대상이 없으니까요. 도시에 나가면 부러워요. 좋은 차나, 명품 이런 거 나도 좋아하니까. 근데 여기서는 그렇게까지 비교할 일이 잘 없으니까 덜 힘들어요. 물론 여기 있어도 욕심은 나요. 차도 갖고 싶고, 집도 갖고 싶고, 땅도. 근데 그게 나한테 꼭 필요한 건지 다시 생각하게 돼요.

 

Q. 봄 되면 뭐할래요?

A. 전공이 사진인데 사진을 잘 안 찍었어요. 졸업 후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어서 사진이 자꾸 우울해지더라고요. 이제 사진 찍고 싶어요. 봄나물도 캐고 오디 따서 효소도 담고요. ‘프랑스적인 삶’이라는 책에 보면, 어떤 사진작가가 나무를 찍어달라는 의뢰를 받는데요, 그 사진작가는 나무를 그저 나무로 찍는 게 아니라 그 나무가 가장 나무다울 시간과 공간을 포착해서 찍어요. 그걸 보면서 ‘나도 이런 작업을 죽기 전에 한번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했어요. 

 

Q. 1기 시골살이학교 졸업생이자, 그 중 시골살이 1호이자, 2기 시골살이학교 운영진으로서 2기에게 해 줄 조언은?

A. 제 성격상 동기들이랑 더 깊게 얘기한다든가 물어본다든가 그러질 못했어요. 주어진 상황에서 그 순간에 더 적극적으로 생활하지 못한 게 아쉬워요. 산내, 지리산의 기운도 중요하긴 한데, 사람과 사람에 대해 좀 더 느끼고 가면 좋을 것 같아요. 꼭 시골에 살지 않더라도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게 참 소중한 일이라는 걸 알면 좋지 않을까요. 시골살이학교 선생님들을 2기에게 양보해야 하는 건 싫지만요.

 


 

 



About The Author

똥폼 (세상똥폼 여든까지! 가끔은 예술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여 행복하다. 백살까지 건강하게 책보며 살고 싶은 철들긴 글러먹은 욕.심.쟁.이)

 



<지리산 이음>에서 함양, 남원, 하동, 산청, 구례 등 지리산권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들, 지리산권의 사람들이 지역을 기반으로 벌이고 있는 새롭고 재미있는 실험들을 찾아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리산권의 여러 커뮤니티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연결되어 관계를 맺어가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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