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이음 활동 소식

자료나누고 되살리어 피어난 아름다운 마을꽃 - 아름다운 재활용 가게 ‘나눔꽃 ․ 살림꽃’

2015-03-31


‘나눔꽃’은 사단법인 한생명 회원들이 기부해 주신 옷, 신발, 소품 등을 정성스럽게 모아 작지만 알차게 꾸며가고 있는 아름다운 재활용 가게입니다. 회원들의 자발적인 활동을 통해 나눠 쓰고 되살려 쓰며 버릴 것을 최소화하는 친환경적 생활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한편, 편안하고 따뜻한 나눔 사랑방을 꾸려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엄마, 이 바지 이제 나한테 작아.”

- 그래? 나눔꽃에 갖다 주자.

 “엄마, 나 실내화 필요한데 어디서 사?”

- 음, 우선 나눔꽃에 가볼까? 

 

겨울이 코앞인데 눈썰매용 장갑 한 짝이 안 보일 때, 할머니한테 세배하고 세뱃돈 받아야 하는데 때때옷이 아쉬울 때, 오랜만에 도시로 진출해야 하는데 블라우스 한 장이 마땅찮을 때 우리 가족은 나눔꽃에 간다. 물건을 사기도 하고 가끔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건을 나눔꽃에 내놓기도 한다. 그래서 나눔꽃으로 향하는 우리 가족의 손엔 계절이 바뀌어 작아진 아이들의 옷, 나에겐 쓰임이 없지만 누군가에겐 소용될 그릇, 먼저 읽어 행복했으니 나눠 읽고 싶은 책 또한 들려있다. 그렇다. 우리 마을에는 옷, 신발은 물론 책과 그릇, 각종 완구 및 문구에 이르기까지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아름다운 재활용 가게 ‘나눔꽃’이 있다. 

 


나눔꽃에 가면 있을 거야

 

사단법인 한생명 사무실 한 쪽에 마련되어 있는 나눔꽃 매장. 둘째아이는 꼭 맞는 실내화를 찾을 순 없었지만 평소 탐내던 반짝이 구두를 손에 넣었다. 큰아이는 작아진 바지를 내놓은 대신 제 몸에 맞는 멋내기 바지를 득템 했다. 얇으면서도 보온성 좋은 웃옷이 필요했던 나는 넉넉한 길이에 허리는 약간 잘록한 맞춤옷을 찾아냈다. 입어보고 신어보고 써보고 둘러보니 두 아이와 내가 각각 다섯 품목 이상씩을 손에 넣었다. 물품 대금 단지에 만원을 넣는다. 열다섯 품목에 만원이라니! 한 품목 당 단가가 500원이니 15품목이면 만원이 안 되는 가격이다. 거스름돈을 돌려받는 대신 남은 금액은 나눔꽃 운영기금으로 기부한다. 

 

“일주일에 한 번 마을주민들이 기증하신 물품을 정리해요. 숙현씨, 혜원씨, 저 이렇게 셋이 하는데요, 대부분은 되팔거나 돌려 입어도 괜찮은 물품들이지만 가끔씩 쓰레기봉투에 넣어야 할 물품이 들어오기도 하죠. 그럴 땐 솔직히 마음이 좀 힘들어요.”

 

지난해부터 나눔꽃 지기를 담당하고 있는 류정희씨의 이야기다. 얼룩이 있거나 구멍 난 옷은 양반인 셈이다. 지퍼나 단추가 고장 나 되팔 수 없는 옷도 있고 신발의 경우엔 세탁하지 않은 채로 기부하다보니 구매력을 잃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게 중에는 곰팡이 핀 옷도 있다. 때문에 자원봉사자들이 일일이 물품을 살피고 점검해야 한다. 생각 외로 귀농한 사람들이 옷 낭비를 많이 하는 편이라는 게 정희씨의 얘기다. 도시에서 지니고 있던 것들을 그대로 가지고 내려오다 보니 옷장과 서랍장에 처박힌 옷은 몇 해째 주인의 손길을 타지 못하고 점점~ 더~ 잊혀져 간다. 때문에 “나눔꽃에는 비워내려는 마음이 있다”는 나눔꽃 창단 멤버 숙현씨의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나눔꽃에 진열된 수많은 물품들은 쌓아두고 재워두려는 축적의 마음이 아니라 비워내고 덜어내려는 나눔의 마음이다.

 


나누는 마음, 비워내는 마음

 

 

나눔꽃에 기증된 물품들을 분류하는 기준은 이렇다. 우선 되팔 수 있는 물건을 나눔꽃 공간에 진열하고, 그 다음으로 리폼이 가능한 소재들을 골라내며, 마지막엔 제 3세계 국가들에 보낼만한 물품들을 선별해낸다. 리폼이 가능한 소재들은 살림꽃 작업장으로 옮겨져 솜씨 좋은 살림꽃 회원들의 손끝에서 새 생명을 얻는다. 나눔의 기쁨을 만끽하지 못할 뻔 했던 물품들이 되살려지는 곳, 그곳이 바로 살림꽃이다. 

 

살림꽃 모임이 있는 목요일 오후, 혜원씨는 청바지 주머니를 이용한 사물함을, 수경씨는 청바지와 체크무늬 남방을 이용한 냄비용 장갑을, 다기는 알록달록 짜투리 천을 이용한 머리띠를 만드느라 분주하다. 티셔츠를 세모지게 재단하여 박음질 한 후 똑딱 단추로 마감한 유아용 멋내기 스카프는 유아용이 아니었으면 싶을 만큼 탐이 난다. 한 동네에 살면서도 살림꽃을 바느질 솜씨 좋은 아줌마들의 취미활동 이상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이 모인 이유는 그 태생부터가 남다르다. 바느질을 하되 부재료를 제외한 모든 소재를 나눔꽃에 들어온 물품에서 충당한다. 바느질을 통한 리폼, 즉 바느질을 통한 되살림의 활동이 살림꽃의 핵심 활동인 것이다. 

 

“매 순간 깨어있어야 한다고 할까요. 새 천을 사서 만드는 게 아니니까 조각조각들을 이어내야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다 보니 결국 물건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달라지기도 하죠. 많이 생각할수록 버릴 것이 줄어들어요.”

 

 ‘이렇게 하기 위해 일상에 얼마나 집중해야 하는지, 그 온전한 일상에 대한 집중이 얼마나 아름다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마흔이 훌쩍 넘어 깨달았다’는 정희씨의 생각은 옷을 다루는 회원들의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혜원씨는 자칭, 타칭 티셔츠로 실 만들기의 대가다. 티셔츠를 잘라 실로 만드는 과정은 묘기에 가깝다. 로터리 커터칼이 있으면 수월하겠건만 비용이 만만치 않아 손수 가위를 들고 손가락에 물집을 잡혀가며 실을 만든다. 그렇게 마련한 실은 다시 발매트나 냄비받침, 바구니 등을 만드는데 쓰인다. 실을 만들고 남은 티셔츠의 자투리 천도 쓰일 데가 있다. 모아 두었다가 묵은 먼지를 닦아내는 등 물티슈처럼 한번 쓰고 버리는 용도로 사용한다. 

 


티셔츠로 실만들기

 


“일상에서 물건 하나를 놓고도 정말이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요. 리폼을 하려면 옷감 하나 고르고 거기에 어울릴만한 다른 천들을 조합하는 데 시간이 제법 필요하거든요.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이라 무조건 싸게 팔수는 없는데, 쓰던 것을 재활용했다는 생각 때문인지 많이 사질 않으세요. 그게 딜레마죠.”

 

혜원씨가 토로하는 아쉬움이다. 마을에서 모여진 물품을 나눠 쓰고 되살려 씀으로써 버려질 것들을 최소화하는 것, 이것이 나눔꽃과 살림꽃이 공존하는 이유다. 때문에 나눔꽃과 살림꽃의 결과물을 시중의 상품과 단순하게 가격비교 하는 시선들 또한 안타깝다. 나눔꽃 살림꽃 식구들의 신묘함은 한 땀 한 땀 정성이 들어간 바느질 솜씨에 있을 뿐 아니라 한 순간 한 순간 물건의 타고난 쓰임새를 존중하려는 깨어있음과 살핌에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깨어있기. 마을에서 순환하기

 


살림꽃 식구들은 다음 달 열리는 마을 장터에서 지금껏 연마해온 솜씨를 뽐낸다. 얼마에 물건을 내놓을지, 내 놓은 물건이 얼마나 팔릴지 정확한 계획도 예측도 불가한 상태이지만 수익금의 일부를 다시 나눔꽃에 환원하겠다는 의지만은 확고하다. 재료공급처이자 기술을 배울 수 있었던 원천에 대한 예우의 표시다. “수익금의 얼마를 환원할지는 몰라요. 아직 한 번도 안 팔아 봤으니까요.” 호탕한 웃음으로 답하는 정희씨의 얼굴에서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그렇기 때문에 그 기쁨을 온전히 만끽할 수 있는 사람의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자원봉사로 근근이 이어가고 있는 이 일을 생계 때문에 포기하게 될까봐, 그게 두려워요. 공익적은 측면을 따져 봐도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도시의 실버가게에 뒤지지 않을 만큼 소중한 일인데 유지, 관리비 정도의 지원금만으론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없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계속 나눔꽃과 살림꽃을 키워갈 수 있도록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적당한 보상이 주어지면 좋겠어요.”  

 

 

계절이 바뀌면 우리 가족은 다시 옷장 문을 활짝 열 것이다. 내게는 어울리지 않지만 다른 이가 멋들어지게 입어 줄 티셔츠 한 장, 큰 아이에 이어 작은 아이도 즐겨 입었건만 이제는 깡충 짧아진 원피스 한 벌, 폼 나게 들고 다닐 공간이 마땅치 않아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핸드백 등 쌓아두고 재워둔 물건들이 새 인연을 만나 나눔꽃을 피우고 새 생명을 얻어 살림꽃을 피운다. 그 속에서 나를 돌아보고 일상을 소중히 여길 마음의 꽃 또한 조용히 피어난다. 문득 돌아보니, 꽃향기 그윽하다.

 

 

 



About The Author

똥폼 (세상똥폼 여든까지! 가끔은 예술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여 행복하다. 백살까지 건강하게 책보며 살고 싶은 철들긴 글러먹은 욕.심.쟁.이)

 



<지리산 이음>에서 함양, 남원, 하동, 산청, 구례 등 지리산권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들, 지리산권의 사람들이 지역을 기반으로 벌이고 있는 새롭고 재미있는 실험들을 찾아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리산권의 여러 커뮤니티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연결되어 관계를 맺어가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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