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이음 활동 소식

자료음식에 맛을 내니 사는 맛도 남달라요 - 천연조미료 협동조합 ‘자연에서’

2015-04-17


 ‘협동조합 자연에서’는 “바른 먹거리는 기본적 권리”라는 생각으로 건강한 밥상을 차리는 한편, 공정한 기준과 바른 양심을 바탕으로 윤리적 나눔과 상생의 경영을 통한 식생활 개선에 앞장서고자 합니다. 조합원과 그 가족뿐만 아니라 ‘협동조합 자연에서’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참된 먹거리를 즐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작업일지1

솔치 (청어새끼) 내장과 아가미 떼기 작업을 했다. 가뭄을 해갈할 봄비 소리에 귀가 호강하고 작업장 뒤편 산수유꽃 덕분에 눈이 훤해진다. 단단한 솔치의 몸에서 내장을 제거하고 나면 손톱 끝이 싸하게 아프다. 

 

#작업일지2

주말 동안 충전 빵빵하게 하고 조합원들이 다시 모였다. 위생복 입고, 위생모자 쓰고, 위생장갑 끼고, 위생마스크 착용하니 완전무장이 따로 없다. 이제 작업장으로 고고씽~ 들어갈 수는 있으나 내 맘대로 못나오는, 새우잡이 배보다 더 무시무시한 작업장. 한쪽에서는 솔치 내장 제거 작업을 하고, 한쪽에서는 무쇠솥에 솔치를 덖는데 문득 창밖을 바라보니 옥수수밭으로 토끼 한마리가 뛰어다닌다. 옥수수 사이사이 심어놓은 상추 맛을 본 모양이다. 아줌마들 일제히, “토끼다~~~~~~~·” 하며 환호성. 이럴 땐 애, 어른 따로 없다. 

 

#작업일지 3

많은 물량은 아니지만 추석 선물과 한가위 큰 장터가 겹치면서 생산물량이 몰려 정신이 없다. 낮에는 유기농 건표고를 손질하고 저녁에는 다시마를 손질한다. 표고 밑둥에 붙어 있는 이물질을 가위로 떼어내고, 갓의 먼지를 솔로 닦아내야 한다. 다시마는 표면에 붙어 있는 해조류나 조그마한 바다 생물들을 일일이 떼어낸다. 틈틈이 유리병을 씻어 소독하고 손질된 재료들 덖고 분쇄하니 한바탕 태풍이 지나간 것 같다. 

 

#작업일지 4

지난주부터 내린 비 탓에 바다에서 온 원재료들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른바 습기와의 전쟁이닷! 제습기 2대와 에어컨을 동시 가동하여 눅눅해지는 현상을 막는다. 내내 에어컨이 돌아가니 몸에 냉기가 돈다. 낮에는 따뜻한 차로 몸을 녹이고 밤에는 가마솥에서 다시마를 덖으며 몸을 덥힌다. 서로를 살피며 온기를 주고받는 조합원들 덕분에 작업은 즐겁고 마음은 따뜻하다.

 


온기를 주고받는 작업장 

 

아줌마 다섯이 모였다. 미술치료모임에서 만난 인연은 출산과 육아의 시기로 이어졌다. 내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의 기저귀를 가는 일이 익숙해지고, 옆집 아이를 재우는 데 내 등을 빌려주는 일이 자연스러워질 즈음 남원아이쿱협동조합이 세워졌다. 다섯 명 모두 남원아이쿱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되었고 아이쿱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교육을 함께 받으며 내실을 다졌다. 다섯 가족의 아파트를 오가며 골목에서 아이를 키우듯 그렇게 함께 육아기를 보냈다. 

 

늘 그렇듯 일은 우연히 시작됐다. 다섯 중 한 명의 고향인 부안에서 멸치가 공수되었고 그저 양념으로 먹기 위해 가루를 냈다. 각자의 집으로 가져가 시식을 하다 보니 노하우가 쌓여갔다. “언니, 나 그거 떡볶이 할 때 넣었더니 맛있더라.”, “김치찌개에 넣어 봐. 진짜 짱이야.” 손 큰 아줌마들의 양념 만들기인지라 끼리끼리 먹기엔 그 양이 어마무시했다. 지인들에게 가루를 나눠주었다. 시간이 경과하자 공짜로 가루를 받아먹던 지인들이 난색을 표하기 시작했다.  “맛있다. 돈 받고 팔아라.” 

 


돈 받고 팔아도 되겠는데!

 

공동육아 시스템을 그대로 이어받아 각자의 집 주방을 돌며 이루어졌던 천연조미료만들기 작업이 본궤도에 오른 것은 2014년 지금의 작업장에 새롭게 둥지를 틀면서부터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표고양, 새우군, 멸치오빠, 다시마언니, 엄선자(엄마가 선택한 자연에서. 솔치, 새우, 다시마, 표고를 혼합한 제품) 등 5종의 천연조미료를 개발하고 협동조합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조합원도 아홉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일 년 여의 준비기간이 만만치만은 않았다. 10년에서 15년차 전업주부들이 덤벼들자니 어설프고 미숙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모르니 배워야 했고, 관련된 교육이 있으면 죽자고 쫓아다녔다. 외부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뿐만 아니라 내부적인 소통도 중요했다. 미술치료모임으로 속살을 드러냈고 육아기를 함께 보내며 끈끈한 동지애를 과시했으며 생협 활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삶이었으나 새로운 일에 걸맞은 또 한 번의 성장을 경험해야 했다.

 


( 남원생협분들과 협동조합 자연에서에 대해 토론하는 모습 / 출처 : 협동조합 자연에서 블로그 )

 

 

“돈 자체가 목적이었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거예요.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는데 갈등이 안 생긴다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저희는 타의든 자의든 일단 얘길 하고 봅니다. 제가 막내인데요, 언니들이 물어요. ‘넌 어때?, 넌 어떻게 생각해?’ 그러니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있어야죠. 쌓이기 전에 풀어서 서로의 마음을 알아채고 알아주는 것이 함께 일을 하는 힘인 것 같아요.” 


인터뷰 중에도 노트북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현정씨의 이야기다. 현정씨는 온라인을 통한 홍보와 정보 수집을 맡고 있다. 자타공인 판매왕 설아씨는 속칭 ‘잡히면 끝이다’로 통한다. 장터건 행사건 설아씨한테 한번 손목을 잡히고 나면 벗어나기 어렵다. 처음에는 쑥스럽기도 했지만 차츰 용기도 생기고 어느 새 ‘무서운 아줌마 판매왕’에 등극하기에 이르렀다. 

 

“조합원 가족이 모두 모이면 애들만 11명에서 13명을 육박해요. 연령대도 6살에서 12살까지 다양하죠. 어른들이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아도 아이들끼리 제 나이에 적합한 놀이를 찾아내고 자연스레 위아래를 구별해요. 이렇게 섞여있다 보니 ‘나 혼자만’이라는 생각은 설 자리가 없어요. 어울려 살아간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싶네요.” 


설아씨는 건강한 먹거리를 만들기 위해 시작한 일이 건강한 정신까지 담보해 냈다면서 만족스러워한다. 조합 이사장이자 포장에 일가견이 있는 영수씨는 설아씨와 이틀 차이로 셋째를 낳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임신, 출산, 육아의 과정도 함께 할 수 있는 이가 있어 외롭지 않았다. 

 

“뒤늦게 셋째를 가지니 아이가 어려서 아무래도 똑같은 비중으로 일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근데 다들 그런 상황을 이해해 주고 배려해주니 정말 고맙더라고요. 그래서 할 수 있을 때 더 열심히 하자며 마음을 다졌죠.”


전문서류처리반(!) 수진씨가 발견한 공동작업의 묘미는 ‘내 일이 제일 힘들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었다. 나만 힘든 일을 하고 있다는 잘못된 판단은 해야 할 일의 과정과 목적 모두를 흐트러트린다. 때문에 조합원들은 ‘모두, 함께’ 일에 뛰어들었다. 홍보 전선에도 같이 나서보고, 손끝이 아리도록 포장상자도 함께 접어보고, 모자라는 대로 서류를 작성하느라 함께 골머리를 썩기도 했다. 그렇게 ‘함께’ 하고나니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 이른바 전문 분야도 생겼다. 일 년을 고군분투한 결과였다.

 

“사업자의 입장으로 돌아오면 여전히 판매가 제일 문제죠. 아직 남원특산물 인증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춘향애인 같은 매대에는 올라가질 못해요. 원재료가 남원산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인데요, 남원에서 남원사람이 만든, 그러니까 인적자원이 이미 남원산인 물품인데도 특산물로 인증 받지 못한다는 점은 많이 아쉬워요.” ‘협동조합 자연에서’ 조합원들은 불리한 조미료 단품 판매를 김부각 생산 판매와 더불어 독려하고 할랄 푸드 열풍에 발맞춰 엄선자가 들어간 카레가루를 연구 개발할 예정이기도 하다. (한국이슬람교중앙회에서 인증하는 한국의 할랄 푸드 인증)

 



함께 하자. 조금 서툴면 어때 

 


( 2015년 전라북도 사회적경제 설맞이 장터에 출동한 협동조합 자연에서 / 출처 : 협동조합 자연에서 블로그 )


 

뱃속에 있던 아이가 6살이 되었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엄마도 함께 자랐다. 아이들은 여름 방학이면 사업장 한 쪽에 마련된 아이들 공간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사업장에서 살다시피 한다. 아이들 공간 빼곡히 각자의 여름방학 계획표가 붙어있고 사무실 입구에는 사업장에 들어서는 아이들이 모두 볼 수 있도록 아이들의 행동지침 또한 명시되어 있다. 협동조합 자연에서 사업장은 사무실임과 동시에 아이들의, 엄마들의, 그리고 가족 모두의 아지트이기도 하다. 아빠들끼리 연락을 취해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저녁을 해결할 수도 있고, 식당에 함께 들어가기 민망한 대부대가 눈치 보지 않고 정겨운 밥상을 차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엄마들의 외도에 아빠들이 태클을 걸어올 만도 한데, ‘너희끼리 하니까 재밌냐?’, ‘언제 셔터 내리러 가면 되냐?’ 는 둥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아내들에 대한 마음속의 지지가 먼저다. 

 

“사업장에 대한 월세라고 생각하면 수익을 올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기지만 가족들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이용료라고 생각하면 급할 게 없어요. 좋은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 이렇게 함께 가꿔나갈 수 있는 공간이 생겼으니 어쩌면 수익을 올리는 것 보다 그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네요. 남들은 철없다고 혀를 찰 일이지만요.”   

 

육아를 함께 하고 협동조합을 함께 만들어낸 그들은 이제 함께 살아갈 마을 만들기를 꿈꾼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또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그 마을을 꾸려나가기 위해 천연조미료 협동조합 자연에서가 화수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자칫 그들만의 리그로 보일 수도 있을 그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는 연대의 가능성 또한 열려있다. 주부나 노인을 위한 일자리 창출에도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그들은 함께 할 의지와 꿈이 있는 분이라면 언제든 손을 맞잡으리라 다짐한다. 음식의 맛을 내는 ‘천연조미료 협동조합 자연에서’는 이제 삶의 맛을, 더 나아가 세상의 맛을 내기 위한 더 큰 걸음을 준비 중이다.  

 


협동조합 자연에서 홈페이지 : http://www.naturcoop.net/ 


 


남원아이쿱생활협동조합

2004년 아파트 거실에서 대여섯 명의 조합원이 모여 출발한 남원 생협은 2011년 3월 법인창립총회를 개최하고 같은 해 6월 아이쿱생협남원센터 '나:비(飛)'의 문을 열었다. 나와 이웃과 지구를 생각하는 '윤리적 소비'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뜻하는 이름, '나:비(飛)'는 나비효과 이론을 인용한 명칭이다. '나:비(飛)' 1층에는 친환경 먹을거리를 판매하는 아이쿱자연드림남원생협 도통점이, 2층에는 제3세계 농민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공정무역 카페, 그리고 다양한 문화적 체험이 가능한 나:비(飛)소극장이, 3층에는 조합원의 소모임을 위한 오픈 공간 나:비(飛)교실이, 4층에는 남원 생협 사무실과 게스트 하우스 多樂安(모든 사람이 즐겁고 편안한 곳)이 운영되고 있다. 남원 센터는 소비자 운동의 메카이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니다. 그곳에서 그들이 주고받는 것은 물건이며 문화이고 윤리적 소비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다. 센터 ‘나:비(飛)’는 오늘도 나비효과를 꿈꾸며 천만 조합원의 날갯짓으로 비상 중이다.      

 





About The Author

똥폼 (세상똥폼 여든까지! 가끔은 예술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여 행복하다. 백살까지 건강하게 책보며 살고 싶은 철들긴 글러먹은 욕.심.쟁.이)

 



<지리산 이음>에서 함양, 남원, 하동, 산청, 구례 등 지리산권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들, 지리산권의 사람들이 지역을 기반으로 벌이고 있는 새롭고 재미있는 실험들을 찾아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리산권의 여러 커뮤니티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연결되어 관계를 맺어가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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