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내 놀이단은 겨울철 농한기를 맞아 동네 어르신들을 모시고 신명나는 놀이판을 펼치는 아마튜어 놀이단입니다. 2014년 12월부터 2015년 2월까지 4차례의 공연을 통해 몸판인 춘향전을 비롯하여 노래 공연, 차력쇼, 마술쇼, 댄스 공연, 농악 등 다채로운 볼거리를 선보인 바 있습니다. 배우, 연출뿐만 아니라 기획부터 공연진행까지 전 과정을 산내마을 주민들의 힘으로 일궈내고 있는 산내 놀이단! 놀이단과 함께 산내의 진화는 계속됩니다.
“자, 이제 준비하세요! 어머님, 아버님들 입장하십니다!” 무대 뒤 배우들의 움직임이 부산스럽다. 조명팀도 음향팀도 마지막 큐사인을 체크하느라 분주하다. 비록 탁구대를 옆으로 세워 급조한 배우 대기실이지만, 불안한 걸음걸이로 사다리를 기어 올라가야 하는 부실한 조명실이지만 첫 관객을 맞이하기 위한 배우와 스텝의 눈빛은 전문 공연단 못지않다. 공연장인 산내초등학교 체육관 입구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손수 어머님, 아버님의 신발에 실내용 덧신을 신겨드린다. 놀이판 구경하면서 주전부리하시라고 떡과 음료를 챙겨드리는 일도 잊지 않는다. 차량 운행 자원봉사자들이 골짝 골짝의 어르신들을 체육관까지 모셔오면 산내 대표 광대이자 놀이단 단장인 여정씨와 월매, 각설이 등 일인 다역을 맡은 오순이가 판을 뜬다.
“어머님, 아버님 안녕하세요! 어제 밤새 눈이 많이 내려서 어머님, 아버님들 놀이판 구경 못 오시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다행히 날이 갰네요. 이렇게 보러와 주셔서 정말 감사하구요. 자식 같은, 손주 같은 마을 사람들이 함께 준비한 공연이니까 웃고 싶을 때 크게 웃으시고 박수치고 싶을 때 맘껏 박수치면서 재미나게 구경하세요.”
( 시작하기 전 신나는 트로트로 어르신들의 마음을 풀어주는 산내의 가수들 )
산내 대표 ‘카수’ 두례언니가 멋들어지게 달타령을 한 곡조 뽑고, 오늘만큼은 앞치마 대신 빤짝이 미니스커트를 걸친 치킨 집 명효가 황진이를 목청 돋아 부르니 객석도 덩달아 흥청댄다. 원천마을 두부공장 준모오빠의 가슴에 단 빨간 꽃만큼이나 어머님들의 애정공세는 뜨겁기만 하다.
“아이고, 춘향아. 니가 그렇게 칼 쓰고 앉았는 꼴을 보니 내 기가 맥혀서 대사를 다 잊어뿌렸다. 니가 먼저 혀 봐라.” 몸판인 춘향전의 막이 올랐다. 어제 밤늦게까지 민박 손님 치닥거리를 했다며 피곤해하던 오순이가 기어코 대사를 놓쳤다. 그러나 당황스러운 건 상대역을 맡은 나뿐인 듯. 조명을 잡은 현택씨도, 음향키를 조절하던 나무아저씨도, 공연이 시작되기 전만 해도 긴장된 모습을 감추지 못하던 놀이단 추진위원장 상용씨도 박장대소를 하며 즐거워한다. 변학도의 생일 축하연에는 밸리 댄스 팀, 부부 살사 팀, 청소년 마술사 등 산내의 특급 소모임이 대거 출연했다. 흡사 동아리 한마당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다. 까나리 액젓을 사발 채 들이켜고, 각목을 맨손으로 두 동강내는 차력단은 단연 놀이단의 분위기 메이커다. 차력단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어머님 끼리 귀엣말을 속삭이신다. “저, 저 분 한의원 원장님 맞지?” 맞다. 복면과 분장으로 신분을 감추려는 그들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을주민이자 동네초등학교 선생님인, 혹은 마을 주민이자 동네 한의원 원장님인 그들의 실체를, 모르는 사람 빼놓고는 다, 안다.
저, 저 차력사, 한의원 원장님 아녀?
( 가장 큰 웃음을 자아냈던 산내 차력단의 공연 모습 )
농한기인 겨울, 약장사가 마을로 들어왔다. 그들은 시답지 않은 노래 한 두 곡과 재담으로 어르신들을 쥐락펴락했다. 윤달이 낀 그 해에는 10만원도 안하는 중국산 싸구려 수의를 100만원이 웃도는 가격으로 팔았다. 묘하게 경쟁심을 자극하던 그들의 상술에 열 분을 웃도는 어르신들이 가짜 수의를 샀다.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산내 청년 서넛이 현장을 시찰했다. 현장 확인 후 그들이 던진 첫마디는 이랬다. ‘우리가 해도 것보다는 잘 하겄네.’
“막연한 자신감 같은 게 있었어요. 동갑내기 동기들이랑은 같은 시대를 살아왔다는, 이 친구도 이 시대를 솔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왔으리라는 신뢰가 있었고요. 연배가 있는 형님들은 한 마을에 살면서 이런 저런 모습을 뵈어 왔기 때문에 내가 뭘 하자고 하면 진지하게 받아주실 거라는, 응원해 주시리라는 믿음이 있었죠. 그런 믿음 때문에 자신감을 갖고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산내놀이단 단장을 맡은 윤여정씨의 이야기다. 윤씨는 산내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행사에서 빠짐없이 쇠를 잡는다. 대보름날에도 운동회 날에도 하다못해 개업식이며 집들이까지 그에게 지신밟기며 대동놀이를 청하는 주민이 한 둘이 아니다.
‘놀이단을 시작하자는 놈도 미친놈이고 그걸 따라 한 놈도 미친놈이었다’는 총 무대감독 충식씨의 말처럼 이들은 지난겨울 미친 마음을 모아 한 마음으로 엮어냈다. 떠오르는 신예 차력사 만억씨는 ‘왜 이렇게 재밌었는지 모르겠다’ 며 아직도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돌아보니 어르신들을 위한 공연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놀이판이었다는 것이 만억씨가 놀이단을 통해 얻은 선물이다. 몸판이었던 춘향전에서 방자 역을 맡아 일약 ‘산내 대세’로 떠오른 성철씨는 다음과 같은 소감을 밝힌다.
“어르신들을 위한 공연이었지만 제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겨울이었어요. 처음부터 판을 추진하고 계획한 사람들의 노력과 열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배우로서도 행복했지만 마을 주민으로서도 정말 행복했습니다. 자원봉사자를 비롯하여 대동의 장을 만들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싶어요.”
( 산내놀이마당은 어르신들 뿐만 아니라 참여한 사람들의 가슴도 뜨겁게 했다. )
올해로 도시를 떠나 산내에 둥지를 튼 지 13년이 되었다. 소규모 농사를 중심으로 어렵지 않게 묶였던 10여 년 전의 귀농공동체는 분화와 변화를 거듭하는 중이다. 10여 년의 시간동안 마을이 겪었던 그 변화만큼 내 마음 또한 들썩였더랬다. 도시로의 회귀를 고민했던 것은 물론이고 다른 지역으로 또 한 번의 귀농을 꿈꾸기도 했다. 꼭 어울려 살아야 맛이 아니라며 시골살이의 삐딱선을 강조하기도 했다. 좋은 일이라는 판단에서 참여한 놀이판이었지만 내 일이라는 확신은 서지 않았다. 그러나 놀이판의 대미를 장식한 대동놀이 한 마당에서, 그 흐드러지는 춤사위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마을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일은,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얼룩진 갑갑한 일이 아니라고. 마을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일은 생생함과 따뜻함을 체감할 수 있는 신나고 가슴 벅찬 일이라고.
“큰 기대 안했는데, 전문배우들보다 잘 해. 정말 재미지게 봤어.” 중황 마을 이장님이 수고했다며 어깨를 두드리신다. “나는 암 것도 준비 안했는데 재미난 거 보여주고 먹을 것도 주고 이런 선물까지 챙겨주니 미안해서 어째. 고마워.”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 마련한 기념품을 품에 안은 어머님이 덥석 손을 잡으며 울먹이신다. 어머님, 보러와 주신 것만으로도 저희가 감사해요.
( 추진위와 산내놀이단 뿐만 아니라 많은 스텝과 자원봉사자들의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
어머님, 아버님을 모실 수 있어서 감사해요
2014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4차례에 걸쳐 진행된 산내 겨울 놀이 한마당은 이웃 주민의 언급처럼 ‘산내의 진화’임에 분명하다. 약장사의 호객 행위로부터 어르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혹은 효도라는 대의명분을 실현하기 위해 내딛은 첫 발이었으나 수많은 발자국들이 어울려 다져지고 넓혀진 그 마당에서 발자국의 주인들이 실감한 것은 내가 할 수 있다는, 나도 마을의 구성원이라는 자신감과 충만함이었다. 단순히 형수님이고, 언니였던 혹은 그저 동네 이웃이고 어느 마을의 누구였던 그들은 시간과 마음을 함께 나눈 유쾌한 공범자가 되었다. 길을 가다 마주치면 으레 나누던 인사는 그를 내가 품을 수 있으리라는, 내가 너를 믿고 의지하겠다는 다짐이자 약속이 되었다.
“내년 공연이요? 해야죠. 심청전도 좋고 흥부전도 좋고 변강쇠전도 좋지요. 아마 누군진 몰라도 벌써부터 다음 공연 대본 쓰고 있는 사람도 있을 걸요.(웃음)그럼 대본 공모부터 해야겠는데요.” 여정씨의 농담은 농담이 아닌 것으로 판명될 가능성이 크다. 산내는, 산내 놀이단은 지금도 여전히 진화 중이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내년에도 올해처럼 젊은 이도령에게 안길 호사를 누리려면 불철주야 연기 연습에 매진해야 될 모양이다. 놀이단아. 내가 간다. 뺑덕어멈이든 옹녀든 젊은 오빠와의 러브라인은 내게 맡겨 주렴.
다음은 산내놀이단 단장인 윤여정씨와의 일문일답입니다.
- 산내 공식 광대 윤여정씨, 무대에 서면 아무 생각이 없어지십니까?
그냥 딴 생각이 안나요. 그게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건가? (웃음) 판의 질에 상관없이 재미를 느끼고 충족감을 느끼는 게 제 장점인 것 같아요. 놀이단 일은…, 6년 전에 산내에 들어왔는데 마을에서 살아가면서 만들어진 관계 덕분에 편안하게 시작할 수 있었어요.
- 같이 하는 사람, 이게 무척 중요하시겠군요.
술 많이 마시면 돼요. (웃음) 열린 무대인 ‘판’은 사실 주고받는 일이 생명이거든요. 그래서 삶과 놀이가 같이 갈 수 있는 ‘마을’에서 제대로 값어치를 하는 것 같아요.. 씨름판이 그렇고 싸움판이 그래요. 보는 사람과 그 행위를 하는 사람이 구체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 옆에서 지켜보니까, 무척 인내심 있는 연출자시더군요. 아무래도 자기 그림이 생기면 마음이 급해지기 쉬운데.
물론 본능적으로 판이 그려지죠. 하지만 그 판을 배우들 스스로 찾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재미있습니다. 어렸을 때 아버님이 요령잡이셨어요. 얼핏 들으면 다 같은 소리지만 아버님은 죽은 이들의 삶의 궤적을 그리듯 매번 다른 소리를 하셨죠. 함께 어울려 무슨 일을 하든 그런 것 같아요. 사람이 사람답게 준비할 수 있고, 어울릴 수 있고, 풀 수 있는, 그래서 나도 즐겁고, 다른 사람도 못 해 봤던 걸 시도할 수 있으니 즐거운, 그런 과정이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 놀이단에 참가했던 사람들 모두가, 아니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아주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죠…(1). 마지막 공연까지 계속 진행을 해야 하나 고민도 되셨을 것 같은데….
공연지속여부가 중요하진 않았던 것 같고요. 어렵사리 모인 좋은 기운들이 흩어지겠구나 싶어서 그게 염려되긴 했어요. 같이 준비한 사람들에 대한 걱정이 앞섰죠. 공연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모였던 자리에선 공연을 할지 말지 결정하는 일도 중요했지만 사람들끼리 서로 격려하고 서로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저 자신한테도 그런 과정이 필요했고요. [(1)놀이단 추진위원 중의 한 사람이자, 마을 청년들의 큰 형님 역할을 해 오신 귀농 1세대 임재경씨가 놀이단 세 번째 공연이 있던 날, 사고로 운명을 달리하셨습니다. 공연이 있던 날 아침, 어르신들 미끄러지지 말라고 체육관 앞 입구를 말끔히 청소하시던, 굿패와 함께 멋들어지게 나팔을 불며 판굿을 벌이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 그 날 모여서 나눈 얘기들이 제 마음에도 많이 남아 있어요. 저는 공연을 계속하자는 쪽이었는데 저 역시 뭔가 풀어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네요.
마지막 공연 때 한 쪽 구석에서 놀이판을 지켜보시는 형수님 모습을 뵀어요. ‘끝나면 잘 안아드려야겠다’ 생각했죠. 힘들고 가슴 아팠던 순간이었지만 혼자 숨죽여 울진 않았어요. 울고 싶을 때 울고, 위로 받고 싶은 만큼 위로받으면서 마을사람들과 함께 그 시간을 지나온 것 같아요.
- 놀이판을 마무리한 소감이 궁금하네요.
대단한 기운이 모아진 것 같아요. 마지막 대동놀이 때 다들 그러셨겠지만 정말 뭉클하더라고요. 그건 아마도 사람에 대한 믿음을 확인한 기쁨 때문이었을 거예요. 과정이 즐거우니까 결과도 재밌고 자기의 능력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갖게 되잖아요. 스스로 해내고 싶은 마음들이 생긴 것 같아서 그게 제일 큰 성과라는 생각이 들어요.
- 내년에는 오디션도 하실랍니까?
하게 되면 해야죠. 한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배우팀 따로, 차력팀 따로, 가수팀도 따로 그렇게 부문별 오디션을 치러야 할지도 모르겠는 걸요.(웃음)
About The Author
똥폼 (세상똥폼 여든까지! 가끔은 예술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여 행복하다. 백살까지 건강하게 책보며 살고 싶은 철들긴 글러먹은 욕.심.쟁.이)
<지리산 이음>에서 함양, 남원, 하동, 산청, 구례 등 지리산권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들, 지리산권의 사람들이 지역을 기반으로 벌이고 있는 새롭고 재미있는 실험들을 찾아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리산권의 여러 커뮤니티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연결되어 관계를 맺어가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자, 이제 준비하세요! 어머님, 아버님들 입장하십니다!” 무대 뒤 배우들의 움직임이 부산스럽다. 조명팀도 음향팀도 마지막 큐사인을 체크하느라 분주하다. 비록 탁구대를 옆으로 세워 급조한 배우 대기실이지만, 불안한 걸음걸이로 사다리를 기어 올라가야 하는 부실한 조명실이지만 첫 관객을 맞이하기 위한 배우와 스텝의 눈빛은 전문 공연단 못지않다. 공연장인 산내초등학교 체육관 입구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손수 어머님, 아버님의 신발에 실내용 덧신을 신겨드린다. 놀이판 구경하면서 주전부리하시라고 떡과 음료를 챙겨드리는 일도 잊지 않는다. 차량 운행 자원봉사자들이 골짝 골짝의 어르신들을 체육관까지 모셔오면 산내 대표 광대이자 놀이단 단장인 여정씨와 월매, 각설이 등 일인 다역을 맡은 오순이가 판을 뜬다.
“어머님, 아버님 안녕하세요! 어제 밤새 눈이 많이 내려서 어머님, 아버님들 놀이판 구경 못 오시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다행히 날이 갰네요. 이렇게 보러와 주셔서 정말 감사하구요. 자식 같은, 손주 같은 마을 사람들이 함께 준비한 공연이니까 웃고 싶을 때 크게 웃으시고 박수치고 싶을 때 맘껏 박수치면서 재미나게 구경하세요.”
( 시작하기 전 신나는 트로트로 어르신들의 마음을 풀어주는 산내의 가수들 )
산내 대표 ‘카수’ 두례언니가 멋들어지게 달타령을 한 곡조 뽑고, 오늘만큼은 앞치마 대신 빤짝이 미니스커트를 걸친 치킨 집 명효가 황진이를 목청 돋아 부르니 객석도 덩달아 흥청댄다. 원천마을 두부공장 준모오빠의 가슴에 단 빨간 꽃만큼이나 어머님들의 애정공세는 뜨겁기만 하다.
“아이고, 춘향아. 니가 그렇게 칼 쓰고 앉았는 꼴을 보니 내 기가 맥혀서 대사를 다 잊어뿌렸다. 니가 먼저 혀 봐라.” 몸판인 춘향전의 막이 올랐다. 어제 밤늦게까지 민박 손님 치닥거리를 했다며 피곤해하던 오순이가 기어코 대사를 놓쳤다. 그러나 당황스러운 건 상대역을 맡은 나뿐인 듯. 조명을 잡은 현택씨도, 음향키를 조절하던 나무아저씨도, 공연이 시작되기 전만 해도 긴장된 모습을 감추지 못하던 놀이단 추진위원장 상용씨도 박장대소를 하며 즐거워한다. 변학도의 생일 축하연에는 밸리 댄스 팀, 부부 살사 팀, 청소년 마술사 등 산내의 특급 소모임이 대거 출연했다. 흡사 동아리 한마당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다. 까나리 액젓을 사발 채 들이켜고, 각목을 맨손으로 두 동강내는 차력단은 단연 놀이단의 분위기 메이커다. 차력단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어머님 끼리 귀엣말을 속삭이신다. “저, 저 분 한의원 원장님 맞지?” 맞다. 복면과 분장으로 신분을 감추려는 그들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을주민이자 동네초등학교 선생님인, 혹은 마을 주민이자 동네 한의원 원장님인 그들의 실체를, 모르는 사람 빼놓고는 다, 안다.
저, 저 차력사, 한의원 원장님 아녀?
( 가장 큰 웃음을 자아냈던 산내 차력단의 공연 모습 )
농한기인 겨울, 약장사가 마을로 들어왔다. 그들은 시답지 않은 노래 한 두 곡과 재담으로 어르신들을 쥐락펴락했다. 윤달이 낀 그 해에는 10만원도 안하는 중국산 싸구려 수의를 100만원이 웃도는 가격으로 팔았다. 묘하게 경쟁심을 자극하던 그들의 상술에 열 분을 웃도는 어르신들이 가짜 수의를 샀다.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산내 청년 서넛이 현장을 시찰했다. 현장 확인 후 그들이 던진 첫마디는 이랬다. ‘우리가 해도 것보다는 잘 하겄네.’
“막연한 자신감 같은 게 있었어요. 동갑내기 동기들이랑은 같은 시대를 살아왔다는, 이 친구도 이 시대를 솔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왔으리라는 신뢰가 있었고요. 연배가 있는 형님들은 한 마을에 살면서 이런 저런 모습을 뵈어 왔기 때문에 내가 뭘 하자고 하면 진지하게 받아주실 거라는, 응원해 주시리라는 믿음이 있었죠. 그런 믿음 때문에 자신감을 갖고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산내놀이단 단장을 맡은 윤여정씨의 이야기다. 윤씨는 산내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행사에서 빠짐없이 쇠를 잡는다. 대보름날에도 운동회 날에도 하다못해 개업식이며 집들이까지 그에게 지신밟기며 대동놀이를 청하는 주민이 한 둘이 아니다.
‘놀이단을 시작하자는 놈도 미친놈이고 그걸 따라 한 놈도 미친놈이었다’는 총 무대감독 충식씨의 말처럼 이들은 지난겨울 미친 마음을 모아 한 마음으로 엮어냈다. 떠오르는 신예 차력사 만억씨는 ‘왜 이렇게 재밌었는지 모르겠다’ 며 아직도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돌아보니 어르신들을 위한 공연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놀이판이었다는 것이 만억씨가 놀이단을 통해 얻은 선물이다. 몸판이었던 춘향전에서 방자 역을 맡아 일약 ‘산내 대세’로 떠오른 성철씨는 다음과 같은 소감을 밝힌다.
“어르신들을 위한 공연이었지만 제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겨울이었어요. 처음부터 판을 추진하고 계획한 사람들의 노력과 열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배우로서도 행복했지만 마을 주민으로서도 정말 행복했습니다. 자원봉사자를 비롯하여 대동의 장을 만들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싶어요.”
( 산내놀이마당은 어르신들 뿐만 아니라 참여한 사람들의 가슴도 뜨겁게 했다. )
올해로 도시를 떠나 산내에 둥지를 튼 지 13년이 되었다. 소규모 농사를 중심으로 어렵지 않게 묶였던 10여 년 전의 귀농공동체는 분화와 변화를 거듭하는 중이다. 10여 년의 시간동안 마을이 겪었던 그 변화만큼 내 마음 또한 들썩였더랬다. 도시로의 회귀를 고민했던 것은 물론이고 다른 지역으로 또 한 번의 귀농을 꿈꾸기도 했다. 꼭 어울려 살아야 맛이 아니라며 시골살이의 삐딱선을 강조하기도 했다. 좋은 일이라는 판단에서 참여한 놀이판이었지만 내 일이라는 확신은 서지 않았다. 그러나 놀이판의 대미를 장식한 대동놀이 한 마당에서, 그 흐드러지는 춤사위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마을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일은,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얼룩진 갑갑한 일이 아니라고. 마을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일은 생생함과 따뜻함을 체감할 수 있는 신나고 가슴 벅찬 일이라고.
“큰 기대 안했는데, 전문배우들보다 잘 해. 정말 재미지게 봤어.” 중황 마을 이장님이 수고했다며 어깨를 두드리신다. “나는 암 것도 준비 안했는데 재미난 거 보여주고 먹을 것도 주고 이런 선물까지 챙겨주니 미안해서 어째. 고마워.”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 마련한 기념품을 품에 안은 어머님이 덥석 손을 잡으며 울먹이신다. 어머님, 보러와 주신 것만으로도 저희가 감사해요.
( 추진위와 산내놀이단 뿐만 아니라 많은 스텝과 자원봉사자들의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
어머님, 아버님을 모실 수 있어서 감사해요
2014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4차례에 걸쳐 진행된 산내 겨울 놀이 한마당은 이웃 주민의 언급처럼 ‘산내의 진화’임에 분명하다. 약장사의 호객 행위로부터 어르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혹은 효도라는 대의명분을 실현하기 위해 내딛은 첫 발이었으나 수많은 발자국들이 어울려 다져지고 넓혀진 그 마당에서 발자국의 주인들이 실감한 것은 내가 할 수 있다는, 나도 마을의 구성원이라는 자신감과 충만함이었다. 단순히 형수님이고, 언니였던 혹은 그저 동네 이웃이고 어느 마을의 누구였던 그들은 시간과 마음을 함께 나눈 유쾌한 공범자가 되었다. 길을 가다 마주치면 으레 나누던 인사는 그를 내가 품을 수 있으리라는, 내가 너를 믿고 의지하겠다는 다짐이자 약속이 되었다.
“내년 공연이요? 해야죠. 심청전도 좋고 흥부전도 좋고 변강쇠전도 좋지요. 아마 누군진 몰라도 벌써부터 다음 공연 대본 쓰고 있는 사람도 있을 걸요.(웃음)그럼 대본 공모부터 해야겠는데요.” 여정씨의 농담은 농담이 아닌 것으로 판명될 가능성이 크다. 산내는, 산내 놀이단은 지금도 여전히 진화 중이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내년에도 올해처럼 젊은 이도령에게 안길 호사를 누리려면 불철주야 연기 연습에 매진해야 될 모양이다. 놀이단아. 내가 간다. 뺑덕어멈이든 옹녀든 젊은 오빠와의 러브라인은 내게 맡겨 주렴.
다음은 산내놀이단 단장인 윤여정씨와의 일문일답입니다.
- 산내 공식 광대 윤여정씨, 무대에 서면 아무 생각이 없어지십니까?
그냥 딴 생각이 안나요. 그게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건가? (웃음) 판의 질에 상관없이 재미를 느끼고 충족감을 느끼는 게 제 장점인 것 같아요. 놀이단 일은…, 6년 전에 산내에 들어왔는데 마을에서 살아가면서 만들어진 관계 덕분에 편안하게 시작할 수 있었어요.
- 같이 하는 사람, 이게 무척 중요하시겠군요.
술 많이 마시면 돼요. (웃음) 열린 무대인 ‘판’은 사실 주고받는 일이 생명이거든요. 그래서 삶과 놀이가 같이 갈 수 있는 ‘마을’에서 제대로 값어치를 하는 것 같아요.. 씨름판이 그렇고 싸움판이 그래요. 보는 사람과 그 행위를 하는 사람이 구체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 옆에서 지켜보니까, 무척 인내심 있는 연출자시더군요. 아무래도 자기 그림이 생기면 마음이 급해지기 쉬운데.
물론 본능적으로 판이 그려지죠. 하지만 그 판을 배우들 스스로 찾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재미있습니다. 어렸을 때 아버님이 요령잡이셨어요. 얼핏 들으면 다 같은 소리지만 아버님은 죽은 이들의 삶의 궤적을 그리듯 매번 다른 소리를 하셨죠. 함께 어울려 무슨 일을 하든 그런 것 같아요. 사람이 사람답게 준비할 수 있고, 어울릴 수 있고, 풀 수 있는, 그래서 나도 즐겁고, 다른 사람도 못 해 봤던 걸 시도할 수 있으니 즐거운, 그런 과정이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 놀이단에 참가했던 사람들 모두가, 아니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아주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죠…(1). 마지막 공연까지 계속 진행을 해야 하나 고민도 되셨을 것 같은데….
공연지속여부가 중요하진 않았던 것 같고요. 어렵사리 모인 좋은 기운들이 흩어지겠구나 싶어서 그게 염려되긴 했어요. 같이 준비한 사람들에 대한 걱정이 앞섰죠. 공연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모였던 자리에선 공연을 할지 말지 결정하는 일도 중요했지만 사람들끼리 서로 격려하고 서로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저 자신한테도 그런 과정이 필요했고요. [(1)놀이단 추진위원 중의 한 사람이자, 마을 청년들의 큰 형님 역할을 해 오신 귀농 1세대 임재경씨가 놀이단 세 번째 공연이 있던 날, 사고로 운명을 달리하셨습니다. 공연이 있던 날 아침, 어르신들 미끄러지지 말라고 체육관 앞 입구를 말끔히 청소하시던, 굿패와 함께 멋들어지게 나팔을 불며 판굿을 벌이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 그 날 모여서 나눈 얘기들이 제 마음에도 많이 남아 있어요. 저는 공연을 계속하자는 쪽이었는데 저 역시 뭔가 풀어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네요.
마지막 공연 때 한 쪽 구석에서 놀이판을 지켜보시는 형수님 모습을 뵀어요. ‘끝나면 잘 안아드려야겠다’ 생각했죠. 힘들고 가슴 아팠던 순간이었지만 혼자 숨죽여 울진 않았어요. 울고 싶을 때 울고, 위로 받고 싶은 만큼 위로받으면서 마을사람들과 함께 그 시간을 지나온 것 같아요.
- 놀이판을 마무리한 소감이 궁금하네요.
대단한 기운이 모아진 것 같아요. 마지막 대동놀이 때 다들 그러셨겠지만 정말 뭉클하더라고요. 그건 아마도 사람에 대한 믿음을 확인한 기쁨 때문이었을 거예요. 과정이 즐거우니까 결과도 재밌고 자기의 능력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갖게 되잖아요. 스스로 해내고 싶은 마음들이 생긴 것 같아서 그게 제일 큰 성과라는 생각이 들어요.
- 내년에는 오디션도 하실랍니까?
하게 되면 해야죠. 한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배우팀 따로, 차력팀 따로, 가수팀도 따로 그렇게 부문별 오디션을 치러야 할지도 모르겠는 걸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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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폼 (세상똥폼 여든까지! 가끔은 예술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여 행복하다. 백살까지 건강하게 책보며 살고 싶은 철들긴 글러먹은 욕.심.쟁.이)
<지리산 이음>에서 함양, 남원, 하동, 산청, 구례 등 지리산권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들, 지리산권의 사람들이 지역을 기반으로 벌이고 있는 새롭고 재미있는 실험들을 찾아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리산권의 여러 커뮤니티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연결되어 관계를 맺어가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