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 스케치 #1
곡괭이와 해머를 든 찰진 근육질의 사내(!)가 바닥을 내리친다. 두려워 마시라. 좌식 공간이었던 홀의 절반을 평탄하게 만들기 위한 작업일 뿐이니. 쪼개진 시멘트 덩어리와 충전재를 싹쓸이 하는 야무진 언니들은 흩날리는 먼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소음과 먼지를 뚫고 미소를 띠는 그대들, 속칭 인테리어 팀이라는 그들의 정체가 당췌 궁금하다!
‘마지’ 스케치 #2
갖은 재료를 넣어 맛을 낸 간장양념에 지리산 흑돼지 삼겹살을 졸이고, 살짝 볶은 숙주나물과 양파, 반숙한 계란을 함께 얹은 차슈덮밥, 아직 2% 부족한 맛이지만 지리산 흑돼지의 진정한 맛을 선보일 그 날을 고대하며 메뉴개발팀은 포기를 모른다.(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말이라구!) 지리산 고사리의 고소 깔끔한 맛이 들깨와 어우러진 고사리 파스타는 인기 메뉴로 등극할 강렬한 예감에 휩,싸,인,다!
초등학생이었던 벼리, 중등대안학교에서 인연을 맺은 탁구, 봉자 그리고 라온, 아랫마을의 홈스쿨러 그니와 느꽁 남매, 고등학교 졸업 후 가족과 함께 산내로 들어온 이내, 대안대학인 인드라망 대학의 새내기였던 쏘야. 이들이 모여 밥집을 연다. 이름 하여 ‘살래청춘식당 [마지].’ 이 공간을 찾는 모든 이들을 환대하며 맞이한다는 뜻의 '맞이'와, 마을에 뿌리 내리기 위한 첫 번째 프로젝트라는 뜻이 담긴 '맏이(첫째)'를 소리 나는 대로 이름한 이들의 식당은 ‘밥을 매개로 서로의 안녕을 챙기며 이런 저런 작당을 도모코자 하는, 각자의 닉네임만큼이나 사연 많고 다양한 그들의, 프로젝트다.
두근설렘깜짝은근 프로젝트, 살래청춘식당 ‘마지’
인드라망 대학에서 에스페란토어를 청강하던 이내와 탁구는 생각했다.
‘나는 왜 친구가 없을까.’
인드라망 대학으로 향하는 그 고즈넉한 길을 걸으며 둘은 또 생각했다.
‘우리는 왜 외로울까.’
인간의 외로움이야 타고난 것이라지만, 시골에서 20대를 보내고 있는 그들에게 주어진 외로움은 상황과 조건의 탓이 컸다.
“저처럼 자의로 내려온 사람도 있고 부모님들의 의지에 의해 귀농귀촌 2세대가 된 친구들도 있어요. 도시의 삶에 피로감을 느껴서, 혹은 여기가 좋아서 살기는 하는데 제 또래 젊은이들이 다들 자꾸 떠나가더라고요. 뭘 배우러 가기도 하고, 직장을 구하러도 가고. 여기는 아무래도 기회가 부족하니까요.” 쉬고 싶어 산내 행을 택했던 쏘야였지만 산내에서의 삶에 장기적인 플랜을 세운 상태는 아니었다.
가족과 떨어져 청주의 환경단체에서 활동가 일을 하던 이내는 가족의 권유에 따라 산내에 조금 늦게 입성했다. 산내에서도 ‘나름’ 잘 지내고 있다고 느꼈지만 외로움은 금세 해소되지 않았다. 또래 친구가 필요했다. ‘산내엔 20대도 많다던데 다 어디에 있는 거지? 왜 만날 수가 없는 거지?’ 때문에 이내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자주 청주행 버스를 탔다. 산내에서 대안중고등과정학교를 졸업하고 지역에서 제빵 일을 하던 탁구도 불투명한 미래와, 변화가 더딘 지역의 삶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참이었다. 외로움이란 키워드로 의기투합한 이내와 탁구는 일단 사람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둘이 모여 ‘어느 마을에 누가 사는데 그 애도 외롭게 지낸다더라.’라는 정보가 입수 되면 전화를 걸어 접촉을 시도하고, 셋이 모여 또 다른 정보를 얻으면 또 연락을 취해 선을 댔다. 적극적이면서도 유연한 태도 덕분에 대망의 2014년 6월 29일, 이내, 탁구, 쏘야, 라온이 한자리에 모였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
일단 모인 그들은, 열심히 놀았다! 처음에는 현재 산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시골살이학교’의 청년버전, 즉 귀농귀촌을 꿈꾸는 청년들을 위한 일종의 도농교류캠프를 준비해볼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일’보다 ‘노는 것’이 먼저”라고. 각자의 집을 돌며 둘러 앉아 음식을 함께 만들고 만든 음식을 함께 나눴다. 아지트로 삼다시피 한 탁구의 집이 있었고 요리를 좋아하는 벼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왜 직접 만들어 먹었냐고? 놀 공간이 없었고, 술을 마실 공간이 마땅치 않았고, 우리의 입맛을 만족시킬 식당이 없었고, 무엇보다 돈이, 없었다!
“제 수중에 인도카레 파우더가 있었어요. 인도의 맛을 보겠다고 다들 달려들었죠. 근데 영 맛이 안 나는 거예요. 결국 탁구 집에 있던 오*기 삼분 카레를 투하해서 대충 맛을 맞춰 먹은 적도 있어요.” ‘작은 자유’의 맏언니인 쏘야는 멤버 중 자기가 제일 요리가 서투르다며 일상을 스스로 살아낼 줄 아는 동생들을 은근히 추켜세운다. 얼핏 보기엔 임기응변식 쿠킹 클라스 같지만 모임 전 SNS를 통해 요리의 주제를 의논하고 매번 담당 쉐프를 선정하기도 하는 용의주도한 모임이었다.
최소(!)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던 그들은 어느 새 마을에서 ‘살래청년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작은 자유’라는 지금의 모임 이름은 오지은의 같은 제목의 노래에서 따왔다. 노래 부르기를 즐기는 라온이, 모임의 친구들과 자주 부르던 노래였다. 노랫말처럼 ‘너와 함께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 있기를, ‘너의 미소를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계속 볼 수’ 있기를, ‘니가 계속 꿈을 꾸’기를, ‘우리 손 안의 작은 자유를 지켜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음식을 나눈 만큼 이야기도 많이 나눴어요. 함께 웃고 노래하고 참 즐거운 시간이었죠. 일단 만나면 좋았으니까요. 그런데 점점 ‘이것 이상 뭔가가 없을까’하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우리 중에는 일반학교를 다닌 친구도 있고, 대안학교를 졸업한 친구도 있고, 홈스쿨링을 한 친구도 있는데, 그렇게 다양했던 삶의 방식만큼이나 다양한 생각들을 실현시킬 수는 없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내 새로운 질문이 시작된 것이었다. ‘우리는 왜 외로울까’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해오던 그들은, 그래서 그 외로움을 조금씩 해소해 나가던 그들은 이제 ‘함께,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의 만남은 지속가능한 것일까’ 라는 또 다른 질문 앞에 섰다. 쏘야는 4개의 시민단체가 공동 기획한 ‘기본소득 시나리오 공모전’에 응모할 것을 제안했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미래의 어느 날. 한국 국민 모두에게 ‘기본소득’으로 일정액이 지급되기 시작한다면?‘이라는 질문에 가상의 시나리오로서 답하는 것이 공모전의 개요였다.
“시나리오를 준비하면서 점점 고민을 하게 됐어요. 생각해 보라고 뭔가를 자꾸 던져주는 기분이었거든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이 지역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곳에서의 삶은 지속가능한 것일까,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을 찾다보니 ‘작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뭔가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작은 자유’의 시나리오가 공모전에 선정되었다. ‘작은 자유’는 마을 카페에서 공모전의 결과를 공유하고, 주민들과 함께 기본소득이 개인과 마을 더 나아가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전망해 보는 ‘상상 잡담회’를 진행하였다. 기본소득에 대한 질문으로 부터 출발한 그들의 행보는 ‘될 만한 일 벌이기’를 좋아하는 동네 ‘삼촌’의 긍정적인 꼬임에 힘입어 시골살이의 지속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사회적 경제’ 들여다보기라는 새로운 과제를 부여받았고, ‘사회적 경제 생태계 탐방’, ‘시골살이를 꿈꾸는 청년들의 네트워크 파티’를 거쳐 지난 해 12월에는 사회적 경제 탐방의 내용을 공유하고 ‘작은 자유’ 반년의 역사(!)를 돌아보는 자리인 ‘그들과 우리의 안녕이야기’를 준비하기에 이르렀다. 그 과정을 통해 그들이 깨달은 것은 사회적 경제란 어렵고 따분한 경제학이 아니라 ‘너 그리고 나의 안녕을 챙기는 일, 바로 그것’이라는 점이었다.
지역에서 우리의 삶은 지속될 수 있을까, ‘작은 자유’는 지속될 수 있을까
반년이라는 시간동안 질풍처럼 달려왔던 그들은 질주를 멈추고 생각했다. ‘이제 잠시 쉬자’고. ‘잠시 떨어져 있자’고. 그리고 다시 ‘만나자’고. 바야흐로 겨울 방학이었다. 꼴랑 보름을 넘기지 못하고 재회한 그들이었지만(!) 그들이 선택한 것은 스스로의 욕구에 집중하는 일이었다. 이름 하여 자체워크숍 ‘친해지기 바래’! 작은 자유 멤버 중 살짝 사이가 소원한 두 명씩 짝을 지어 전주 시내를 돌아다니는 일일 코스와 사회적 경제 탐방 시 인연을 맺은 완주의 게스트하우스에서 2박을 하는 코스였다. 휴지기 이후 서로를 다독이는 ‘작은 자유’만의 영리하고 지혜로운 선택이었다.
“2015년에 대한 계획을 세우려고 마련한 자리였는데 2014년을 평가하느라 바빴어요. 2014년이 다른 사람의 제안을 따르고 ‘아, 그거 좋겠다. 한 번 해볼까?’ 로 시작했던 시간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우리 스스로 계획하고, 우리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놓으며 실천해 보자고 마음을 다졌죠.”
하지만 막상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시도해야 할지 쉽게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다는 자발성과 그것을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그 양 날개가 좀처럼 수평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긴 겨울만큼이나 긴 혼돈의 시간이었다. 늘 회원의 집을 전전하며 이루어지던 모임이었으니 공간에 대한 욕심이 피어올랐으나 막상 그 공간에서 ‘뭐 할 건데?’라는 질문에는 속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더 필요해지면, 더 간절해지면 지속가능해지면 공간은 저절로 따라오리라는 어른들의 조언에 일단 몸과 마음을 실어보았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봄과 함께 마을의 오래된 밥집이 터를 임대하겠다는 소식도 더불어 전해져 왔다.
“‘모임 친구들이 요리를 즐기니 밥집을 해 보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을 처음 들었을 땐 사실, 이게 뭔가 싶었어요. 밥집이라는 거, 식당이라는 걸 제 인생과 결부시켜서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근데 당시 개인적인 이유로 산내를 떠나고 싶어 했던, 음식 만들기를 즐기는 벼리가 그 제안에 정말 기뻐했던 기억이 나요.” 스스로를 ‘작은 자유’의 촉매제라 여기는 쏘야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동남아시아를 여행 중이던 이내는 사정이 좀 달랐다. 외국에서 밥집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고 멀리 떨어져 있던 그에게 산내에서 돌아가는 상황은 실제보다 더 빠르게 느껴졌다. 부담이 없지 않았고 저 것이 과연 나의 일일까라는 의문 때문에 관계 맺음도 더뎠다. 그러나 이내는 생각했다. 산내에 살며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최대치가 어쩌면 이 프로젝트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 안에서 구체적인 무엇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내가, 우리가 발 딛고 설 수 있는 첫 번째 프로젝트
친목도모를 위해 모였던 그들이 이제는 ‘일’을 한다. 공간에 대한 욕구가 있었고 시골에서 청년의 삶이 지속가능할지 의심스러웠으며 20대에 걸 맞는 경제적 활동이 절실했던 그들이 마침내 내적 욕구와 외적 에너지가 부합되는 타이밍에 도래하였다. 음식을 나누듯 마음을 나눈 그 시간 덕분에 이제 그들은 ‘일’을 중심에 두고 만나는 모험을 감행하고자 한다.
“[마지]가 우리 여정의 종착점이라 생각하진 않아요. 이것을 매개로 더 많은 가능성이 열리겠죠. 산내에서 발을 딛고 설 수 있는 첫 번째 프로젝트니까요. 하지만 이번만큼은 한 발 뒤로 물러서기 보다는 열과 성을 다해 한 걸음 내딛는 계기로 삼고 싶어요.”
마지 스케치 #3
살래청춘식당 마지가 만들어질 공간 근처, 풀이 주인이었던 자그마한 텃밭을 정리한다. 일명 ‘마지콩알텃밭’이다. 풀도 매고, 돌도 고르고, 지나가는 마을 분들께 인사하며 안부도 전하고. 이 텃밭에서 자랄 소채류가 ‘마지’의 식자재가 되는 그 날을 꿈꾸며. 함께 땀 흘리는 재미를 조금씩 알아가는 어느 봄 날.
마지 스케치 #4
"나 또한 떠날 생각을 계속 했었다. ‘여긴 너무 할 게 없고 힘들어’ 하며. 하지만 살래청춘식당 [마지]를 준비하면서 우리 중 누군가가 바로 이곳에 자리 잡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꽉 잡아주는 느낌이 든다. 여기서 일하며 살아가는데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이제는, 든다." -3월의 어느 날 커뮤니티 밥집을 위한 회의록에서.
현재 살래청춘식당 마지 오픈을 위한 소셜펀딩이 진행중이다.
https://www.tumblbug.com/projectmajy
About The Author
똥폼 (세상똥폼 여든까지! 가끔은 예술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여 행복하다. 백살까지 건강하게 책보며 살고 싶은 철들긴 글러먹은 욕.심.쟁.이)
<지리산 이음>에서 함양, 남원, 하동, 산청, 구례 등 지리산권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들, 지리산권의 사람들이 지역을 기반으로 벌이고 있는 새롭고 재미있는 실험들을 찾아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리산권의 여러 커뮤니티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연결되어 관계를 맺어가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마지’ 스케치 #1
곡괭이와 해머를 든 찰진 근육질의 사내(!)가 바닥을 내리친다. 두려워 마시라. 좌식 공간이었던 홀의 절반을 평탄하게 만들기 위한 작업일 뿐이니. 쪼개진 시멘트 덩어리와 충전재를 싹쓸이 하는 야무진 언니들은 흩날리는 먼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소음과 먼지를 뚫고 미소를 띠는 그대들, 속칭 인테리어 팀이라는 그들의 정체가 당췌 궁금하다!
‘마지’ 스케치 #2
갖은 재료를 넣어 맛을 낸 간장양념에 지리산 흑돼지 삼겹살을 졸이고, 살짝 볶은 숙주나물과 양파, 반숙한 계란을 함께 얹은 차슈덮밥, 아직 2% 부족한 맛이지만 지리산 흑돼지의 진정한 맛을 선보일 그 날을 고대하며 메뉴개발팀은 포기를 모른다.(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말이라구!) 지리산 고사리의 고소 깔끔한 맛이 들깨와 어우러진 고사리 파스타는 인기 메뉴로 등극할 강렬한 예감에 휩,싸,인,다!
초등학생이었던 벼리, 중등대안학교에서 인연을 맺은 탁구, 봉자 그리고 라온, 아랫마을의 홈스쿨러 그니와 느꽁 남매, 고등학교 졸업 후 가족과 함께 산내로 들어온 이내, 대안대학인 인드라망 대학의 새내기였던 쏘야. 이들이 모여 밥집을 연다. 이름 하여 ‘살래청춘식당 [마지].’ 이 공간을 찾는 모든 이들을 환대하며 맞이한다는 뜻의 '맞이'와, 마을에 뿌리 내리기 위한 첫 번째 프로젝트라는 뜻이 담긴 '맏이(첫째)'를 소리 나는 대로 이름한 이들의 식당은 ‘밥을 매개로 서로의 안녕을 챙기며 이런 저런 작당을 도모코자 하는, 각자의 닉네임만큼이나 사연 많고 다양한 그들의, 프로젝트다.
두근설렘깜짝은근 프로젝트, 살래청춘식당 ‘마지’
인드라망 대학에서 에스페란토어를 청강하던 이내와 탁구는 생각했다.
‘나는 왜 친구가 없을까.’
인드라망 대학으로 향하는 그 고즈넉한 길을 걸으며 둘은 또 생각했다.
‘우리는 왜 외로울까.’
인간의 외로움이야 타고난 것이라지만, 시골에서 20대를 보내고 있는 그들에게 주어진 외로움은 상황과 조건의 탓이 컸다.
“저처럼 자의로 내려온 사람도 있고 부모님들의 의지에 의해 귀농귀촌 2세대가 된 친구들도 있어요. 도시의 삶에 피로감을 느껴서, 혹은 여기가 좋아서 살기는 하는데 제 또래 젊은이들이 다들 자꾸 떠나가더라고요. 뭘 배우러 가기도 하고, 직장을 구하러도 가고. 여기는 아무래도 기회가 부족하니까요.” 쉬고 싶어 산내 행을 택했던 쏘야였지만 산내에서의 삶에 장기적인 플랜을 세운 상태는 아니었다.
가족과 떨어져 청주의 환경단체에서 활동가 일을 하던 이내는 가족의 권유에 따라 산내에 조금 늦게 입성했다. 산내에서도 ‘나름’ 잘 지내고 있다고 느꼈지만 외로움은 금세 해소되지 않았다. 또래 친구가 필요했다. ‘산내엔 20대도 많다던데 다 어디에 있는 거지? 왜 만날 수가 없는 거지?’ 때문에 이내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자주 청주행 버스를 탔다. 산내에서 대안중고등과정학교를 졸업하고 지역에서 제빵 일을 하던 탁구도 불투명한 미래와, 변화가 더딘 지역의 삶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참이었다. 외로움이란 키워드로 의기투합한 이내와 탁구는 일단 사람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둘이 모여 ‘어느 마을에 누가 사는데 그 애도 외롭게 지낸다더라.’라는 정보가 입수 되면 전화를 걸어 접촉을 시도하고, 셋이 모여 또 다른 정보를 얻으면 또 연락을 취해 선을 댔다. 적극적이면서도 유연한 태도 덕분에 대망의 2014년 6월 29일, 이내, 탁구, 쏘야, 라온이 한자리에 모였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
일단 모인 그들은, 열심히 놀았다! 처음에는 현재 산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시골살이학교’의 청년버전, 즉 귀농귀촌을 꿈꾸는 청년들을 위한 일종의 도농교류캠프를 준비해볼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일’보다 ‘노는 것’이 먼저”라고. 각자의 집을 돌며 둘러 앉아 음식을 함께 만들고 만든 음식을 함께 나눴다. 아지트로 삼다시피 한 탁구의 집이 있었고 요리를 좋아하는 벼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왜 직접 만들어 먹었냐고? 놀 공간이 없었고, 술을 마실 공간이 마땅치 않았고, 우리의 입맛을 만족시킬 식당이 없었고, 무엇보다 돈이, 없었다!
“제 수중에 인도카레 파우더가 있었어요. 인도의 맛을 보겠다고 다들 달려들었죠. 근데 영 맛이 안 나는 거예요. 결국 탁구 집에 있던 오*기 삼분 카레를 투하해서 대충 맛을 맞춰 먹은 적도 있어요.” ‘작은 자유’의 맏언니인 쏘야는 멤버 중 자기가 제일 요리가 서투르다며 일상을 스스로 살아낼 줄 아는 동생들을 은근히 추켜세운다. 얼핏 보기엔 임기응변식 쿠킹 클라스 같지만 모임 전 SNS를 통해 요리의 주제를 의논하고 매번 담당 쉐프를 선정하기도 하는 용의주도한 모임이었다.
최소(!)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던 그들은 어느 새 마을에서 ‘살래청년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작은 자유’라는 지금의 모임 이름은 오지은의 같은 제목의 노래에서 따왔다. 노래 부르기를 즐기는 라온이, 모임의 친구들과 자주 부르던 노래였다. 노랫말처럼 ‘너와 함께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 있기를, ‘너의 미소를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계속 볼 수’ 있기를, ‘니가 계속 꿈을 꾸’기를, ‘우리 손 안의 작은 자유를 지켜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음식을 나눈 만큼 이야기도 많이 나눴어요. 함께 웃고 노래하고 참 즐거운 시간이었죠. 일단 만나면 좋았으니까요. 그런데 점점 ‘이것 이상 뭔가가 없을까’하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우리 중에는 일반학교를 다닌 친구도 있고, 대안학교를 졸업한 친구도 있고, 홈스쿨링을 한 친구도 있는데, 그렇게 다양했던 삶의 방식만큼이나 다양한 생각들을 실현시킬 수는 없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내 새로운 질문이 시작된 것이었다. ‘우리는 왜 외로울까’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해오던 그들은, 그래서 그 외로움을 조금씩 해소해 나가던 그들은 이제 ‘함께,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의 만남은 지속가능한 것일까’ 라는 또 다른 질문 앞에 섰다. 쏘야는 4개의 시민단체가 공동 기획한 ‘기본소득 시나리오 공모전’에 응모할 것을 제안했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미래의 어느 날. 한국 국민 모두에게 ‘기본소득’으로 일정액이 지급되기 시작한다면?‘이라는 질문에 가상의 시나리오로서 답하는 것이 공모전의 개요였다.
“시나리오를 준비하면서 점점 고민을 하게 됐어요. 생각해 보라고 뭔가를 자꾸 던져주는 기분이었거든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이 지역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곳에서의 삶은 지속가능한 것일까,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을 찾다보니 ‘작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뭔가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작은 자유’의 시나리오가 공모전에 선정되었다. ‘작은 자유’는 마을 카페에서 공모전의 결과를 공유하고, 주민들과 함께 기본소득이 개인과 마을 더 나아가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전망해 보는 ‘상상 잡담회’를 진행하였다. 기본소득에 대한 질문으로 부터 출발한 그들의 행보는 ‘될 만한 일 벌이기’를 좋아하는 동네 ‘삼촌’의 긍정적인 꼬임에 힘입어 시골살이의 지속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사회적 경제’ 들여다보기라는 새로운 과제를 부여받았고, ‘사회적 경제 생태계 탐방’, ‘시골살이를 꿈꾸는 청년들의 네트워크 파티’를 거쳐 지난 해 12월에는 사회적 경제 탐방의 내용을 공유하고 ‘작은 자유’ 반년의 역사(!)를 돌아보는 자리인 ‘그들과 우리의 안녕이야기’를 준비하기에 이르렀다. 그 과정을 통해 그들이 깨달은 것은 사회적 경제란 어렵고 따분한 경제학이 아니라 ‘너 그리고 나의 안녕을 챙기는 일, 바로 그것’이라는 점이었다.
지역에서 우리의 삶은 지속될 수 있을까, ‘작은 자유’는 지속될 수 있을까
반년이라는 시간동안 질풍처럼 달려왔던 그들은 질주를 멈추고 생각했다. ‘이제 잠시 쉬자’고. ‘잠시 떨어져 있자’고. 그리고 다시 ‘만나자’고. 바야흐로 겨울 방학이었다. 꼴랑 보름을 넘기지 못하고 재회한 그들이었지만(!) 그들이 선택한 것은 스스로의 욕구에 집중하는 일이었다. 이름 하여 자체워크숍 ‘친해지기 바래’! 작은 자유 멤버 중 살짝 사이가 소원한 두 명씩 짝을 지어 전주 시내를 돌아다니는 일일 코스와 사회적 경제 탐방 시 인연을 맺은 완주의 게스트하우스에서 2박을 하는 코스였다. 휴지기 이후 서로를 다독이는 ‘작은 자유’만의 영리하고 지혜로운 선택이었다.
“2015년에 대한 계획을 세우려고 마련한 자리였는데 2014년을 평가하느라 바빴어요. 2014년이 다른 사람의 제안을 따르고 ‘아, 그거 좋겠다. 한 번 해볼까?’ 로 시작했던 시간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우리 스스로 계획하고, 우리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놓으며 실천해 보자고 마음을 다졌죠.”
하지만 막상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시도해야 할지 쉽게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다는 자발성과 그것을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그 양 날개가 좀처럼 수평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긴 겨울만큼이나 긴 혼돈의 시간이었다. 늘 회원의 집을 전전하며 이루어지던 모임이었으니 공간에 대한 욕심이 피어올랐으나 막상 그 공간에서 ‘뭐 할 건데?’라는 질문에는 속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더 필요해지면, 더 간절해지면 지속가능해지면 공간은 저절로 따라오리라는 어른들의 조언에 일단 몸과 마음을 실어보았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봄과 함께 마을의 오래된 밥집이 터를 임대하겠다는 소식도 더불어 전해져 왔다.
“‘모임 친구들이 요리를 즐기니 밥집을 해 보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을 처음 들었을 땐 사실, 이게 뭔가 싶었어요. 밥집이라는 거, 식당이라는 걸 제 인생과 결부시켜서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근데 당시 개인적인 이유로 산내를 떠나고 싶어 했던, 음식 만들기를 즐기는 벼리가 그 제안에 정말 기뻐했던 기억이 나요.” 스스로를 ‘작은 자유’의 촉매제라 여기는 쏘야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동남아시아를 여행 중이던 이내는 사정이 좀 달랐다. 외국에서 밥집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고 멀리 떨어져 있던 그에게 산내에서 돌아가는 상황은 실제보다 더 빠르게 느껴졌다. 부담이 없지 않았고 저 것이 과연 나의 일일까라는 의문 때문에 관계 맺음도 더뎠다. 그러나 이내는 생각했다. 산내에 살며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최대치가 어쩌면 이 프로젝트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 안에서 구체적인 무엇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내가, 우리가 발 딛고 설 수 있는 첫 번째 프로젝트
친목도모를 위해 모였던 그들이 이제는 ‘일’을 한다. 공간에 대한 욕구가 있었고 시골에서 청년의 삶이 지속가능할지 의심스러웠으며 20대에 걸 맞는 경제적 활동이 절실했던 그들이 마침내 내적 욕구와 외적 에너지가 부합되는 타이밍에 도래하였다. 음식을 나누듯 마음을 나눈 그 시간 덕분에 이제 그들은 ‘일’을 중심에 두고 만나는 모험을 감행하고자 한다.
“[마지]가 우리 여정의 종착점이라 생각하진 않아요. 이것을 매개로 더 많은 가능성이 열리겠죠. 산내에서 발을 딛고 설 수 있는 첫 번째 프로젝트니까요. 하지만 이번만큼은 한 발 뒤로 물러서기 보다는 열과 성을 다해 한 걸음 내딛는 계기로 삼고 싶어요.”
마지 스케치 #3
살래청춘식당 마지가 만들어질 공간 근처, 풀이 주인이었던 자그마한 텃밭을 정리한다. 일명 ‘마지콩알텃밭’이다. 풀도 매고, 돌도 고르고, 지나가는 마을 분들께 인사하며 안부도 전하고. 이 텃밭에서 자랄 소채류가 ‘마지’의 식자재가 되는 그 날을 꿈꾸며. 함께 땀 흘리는 재미를 조금씩 알아가는 어느 봄 날.
마지 스케치 #4
"나 또한 떠날 생각을 계속 했었다. ‘여긴 너무 할 게 없고 힘들어’ 하며. 하지만 살래청춘식당 [마지]를 준비하면서 우리 중 누군가가 바로 이곳에 자리 잡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꽉 잡아주는 느낌이 든다. 여기서 일하며 살아가는데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이제는, 든다." -3월의 어느 날 커뮤니티 밥집을 위한 회의록에서.
현재 살래청춘식당 마지 오픈을 위한 소셜펀딩이 진행중이다.
https://www.tumblbug.com/projectmajy
About The Author
똥폼 (세상똥폼 여든까지! 가끔은 예술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여 행복하다. 백살까지 건강하게 책보며 살고 싶은 철들긴 글러먹은 욕.심.쟁.이)
<지리산 이음>에서 함양, 남원, 하동, 산청, 구례 등 지리산권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들, 지리산권의 사람들이 지역을 기반으로 벌이고 있는 새롭고 재미있는 실험들을 찾아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리산권의 여러 커뮤니티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연결되어 관계를 맺어가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