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이전과는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변화의 계기는 갑자기 찾아왔지만 변화는 천천히, 지속적으로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의 터전인 지역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소통과 관계 방식, 이동과 교류방식도 바뀔 것이라고 합니다. 비대면사회가 가속화된다고 하지만 대면사회였던 지역은 어떻게 될까요? 지역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질문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일상, 일, 관계, 소통의 현장인 ‘로컬'의 미래는 어떻게 변할까요? 6회째를 맞이한 「지리산포럼2020」은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하여 한꺼번에 많은 인원이 모이는 대신, 참가 규모를 줄이고 개최 시간과 장소를 분산하여 10월 17일부터 24일까지 총 8일간 진행했으며, ‘로컬라이프’를 주제로 한 7개의 주제섹션과 지리산 5개 지역의 로컬섹션, 특별섹션이 운영되었습니다. 지리산포럼2020 더 알아보기 [바로가기] |
10/22 지리산 로컬섹션 @구례 지역 먹거리의 생산과 유통 / 주관 : 느긋한 쌀빵 (구례 지역생협준비모임) with 한생명 느티나무매장 x 느긋한 쌀빵 x 구례 서민수 농부님과 자연스레-자연농 농사를 짓는 사람과 농산물을 파는 사람, 그리고 맛있게 요리해 먹는 사람까지. 서로가 연결 된 동그란 순환공동체를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구례에서 쌀빵을 만들며 지역 생협을 준비하고 있는 느긋한 쌀빵과 유기농/친환경/자연농 농부가 모여 느티나무 매장의 지역생협 이야기를 듣고, 실질적인 고민을 함께 나눕니다. |
[들어가는 말]
정태연 :
지리산포럼은 여러 가지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의제들, 사람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의제들, 여러 진보적인 의제들에 관련된 사례발표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여성, 청소년인권, 기후위기, 생태, 환경 등에 대한 지역사례를 발표해 왔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으로 주로 하고, 지리산권 5개 시군에서 각 지역별로 섹션발표를 진행한다.
그 중 구례는 지역 생협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지금 구례는 지역 생협을 만드는 움직임들이 있다. 느긋한 쌀빵에서 생협매장을 준비하고 있고, 심문희 님은 오랫동안 언니네 텃밭에 관여해 왔다. 이화영 선생님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자급자족모임을 만들었고, 수수님과 블루, 동현은 수해 이후 거의 발걸음을 끊었다고는 하지만 자연농을 꿈꾸며 농사를 짓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느티나무생협에서 오신 버들 님 이야기를 필두로 언니네 텃밭 심문희 님, 느긋한 쌀빵의 차승아 님, 자연농 수수 님, 생산자 서민수 님 순으로 이야기를 듣고, 잠시 쉰 다음에 질의응답과 자유토론 시간을 이어가도록 하겠다.
[발제 : 한생명 느티나무 매장 / 버들 & 승현]
“시골에도 생협이 있었네!”
# 느티나무
- 2005년 산내 실상사 해탈교 건너 느티나무매장 운영 시작.
- 한생명이라는 단체에서 매장을 운영. 한생명은 인드라망 공동체에서 과거 20년 동안 귀농귀촌교육을 담당해왔던 공동체. 공동체에 속해 있던 사람들이 건강한 농산물을 길러내고, 그 농산물을 판매하기 위한 안전한 판로를 찾으면서, 그리고 지역의 농산물을 알리기 위해 처음 만들어짐.
- 매주 수요일 행복중심생협 광주물류에서 물건 배송. 행복중심생협과 직거래를 하고 있는 인드라망생협에 소속되어 있음. 회원제도 좀 다르다. 조합원제는 아니고 한생명이라는 단체에 후원해주시는 분들에 한해서 생협물품을 5% 할인.
- 직원은 버들, 승현이 정 매장지기로 근무. 한생명사무실 직원이 주 1회 근무하고, 해와라는 아르바이트생이 1명 있다. 승현, 버들은 각자 주4일 근무. 물건이 들어오는 수요일은 같이 일한다. 생협물품은 일요일에 주문 마감해서 수요일에 오는 시스템. 휴일은 없고 운영시간은 10시부터 6시30분까지.
#활동가
- 우리는 인드라망공동체의 활동가. 하려는 일이 지구에도 도움이 되고, 살림살이와 나와 교류하는 사람과 사람들의 일상이 맞닿아 있어서, 우리가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이 활동가.
- 매장에서 쓰레기 줄이는 문제를 고민. 이전에 매장에서 근무하셨던 활동가도 환경문제에 집중하고 장바구니를 사용하게 하거나 포장재를 덜 쓰는 일들을 했다.
- 2018년 쓰레기 대란 이후 만들어진 비닐도 없는 점빵이나 살래장 등이 연대하여 만든 모임과 교류하다가 이 모임원 분들이 버들과 승현이 쓰레기에 대한 탐방, 환경에 대한 탐방을 했으면 좋겠다, 교육을 들어보고 얘기를 들려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서울로 다양한 탐방을 다녀왔다.
예) 에코팩토리 안에서 열린 채우장-포장지 없이 알맹이만 판매하는 장터, 보틀팩토리-본인의 용기를 사용해서 보는 장 등. 남원시 쓰레기 매립장도 가서 보고 더 책임감을 느낌. 이런 움직임들이 주변사람들의 일상과 내 일상을 바꾸고 풍요롭게 할 수 있구나 느낌. 소분샵에도 방문. 그러나 매장에는 적용이 어렵다. 광주환경연과 연결, 분리배출교육하여 매장에 적용하려고 노력. 벌크로 채소 들이기, 소프넛홍보, 채시과 기후위기 주제 공유
#운영
- 올해 3월부터 매장에서 일하기 시작. 작년에는 생명평화대학이라는 인드라망공동체에서 청년들이 시골살이 적응을 도와주는 1년짜리 프로그램에 참여.
- 매장과 함께 하는 농부, 생산자들은 매장쌀빵, 유정란, 찻집, 꿀, 블루베리잼, 산청바나나, 버섯, 방울토마토, 아로마티카, 마요, 만두, 초코렛, 말차, 소프넛 등이 있다. 이외에도 40명 정도의 생산자가 있다.
- 농산물 선정기준은 유기농인증을 받은 것이나, 인증을 받지 않아도 농부님들이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텃밭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의 물건. 농산물은 면세이기 때문에 다른 물품보다 낮은 마진률을 적용한다. 남는 게 없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농산물거래의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함.
#노력
- 거래를 하면서 물류 등에서 몇몇 문제점이 있는데, 주 1회 주문이니까 제품 주문 하나를 빼먹으면 다음 주문까지는 그 물건을 팔 수 없다. - 물건이 수요일에 들어오고 목,금요일 정도 되면 물건이 팔려서 매장이 빈다. 살 물건이 없다. 사실 지리산에 물류 차를 한 대 보내는 데 정말 많은 공을 들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우리는 한계를 안고 갈 수밖에 없다.
- 하지만 매장으로서 기본은 해야 하지 않나? 아무리 좋은 가치로 운영을 하고 있다고는 해도 매장이 자생할 수 있게 수익이 나고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없으면 의미가 없다. 바꿔보고 싶었다. 그냥 동네매장으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 매장에 와서 제일 처음 했던 게 포스통계자료를 정리한 것. 주문의 근거자료.
- 매장 주고객인 마을분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매장소식을 꾸준히 올림.
- 주민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서 여기저기 업체를 콘택트.
- 소비자들이 오셔서 물건이 없어서 못사는 경우가 되게 속상한 일이어서 어느 정도 재고를 마련해뒀다. 전시하는 위치도 자꾸 바꾸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하니 젊은 친구들이 열심히 한다는 걸 많이들 좋게 봐준다.
#통계
- 한 분당 1만8천 원 정도의 구매를 하고, 하루에 5~60명 방문. 수요일 매출이 다른 요일에 비해 2배 이상 높다.
- 주문하는 품목은 600여 종. 가장 많이 판매되는 게 농산물이고 전체 매출의 53%, 기타 빵이나 간식, 생활재가 10% 정도 차지.
#소비자
- 도시소비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저희 매장을 생협으로 생각해 주시는 분이 많다. 저희를 공동체의 한 영역으로 보는 분들이 많은데, 냉정하게 저희 매장을 생협으로 봐주시는 건 되게 감사한 일이다.
#빵아재
빵아재는 느티나무에 입점해있는 형태. 처음에 대안학교인 작은학교의 빵동아리로 시작했다가 사업체로 독립한 경우. 11%마진, 15%마진률 임대료는 받지 않고 있다. 대신 학생들의 교육이 있을 때 맡아주시는 협업관계. 느티나무가 빵집인지 알고 오시는 분들도 많다. 인지도도 높아서 빵 사러오셨다가 매장에서 장도 보시고, 장 보러 오셔서 빵도 사시는, 한마디로 상생관계다. 빵아재 매출이 총이익의 10%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제 느티나무와 빵아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고민과 발전
재활용 빵끈을 사용하고, 불편하게 사과 한 개씩 사라고 하고, 장바구니 쓰자고 하고 비닐도 없다고 하는데도 동참해주시는 분들이 많다. 감사한 마음이다. 저희가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소비자분들이 응해주셔야 가능한 일이고, 그래서 소통을 계속하고 여러분들이 갈증을 느끼는 게 무엇인지 저희는 더 고민한다. 더 발전적인 일들을 만들어내는 게 저희가 해야 하는 일 같다.
[발제 : 언니네 텃밭 / 심문희]
#소소한 시작
- 2004년, 남북농민대회에서 소소한 시작. 토종씨앗에 대한 중요성 대두, 여성농민회에서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을 농민들이 자기 권리를 지키는 운동의 하나로 적극적으로 펼쳐보자고 했다. 지역의 토종씨앗 실태를 조사하고 여성농민 한 사람이 토종씨앗 한 품목만큼은 지켜나가자는 운동을 하게 되었다.
#고민
그런데 심으라고는 하면서 대안을 내주지는 않았다. 그러다보니 왜 토종씨앗이 사라지게 됐나를 고민하게 됐다. 토종종자가 생산성이 떨어지고 소비자들이 찾지 않는다는 이유로 때깔 좋고 수확량이 많은 개량된 품종을 심게 되면서 토종씨앗이 사라지게 됐다는 사실이 있었다. 우리가 토종씨앗을 심으라고 하면서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결국 확산되지 못하는 한계에 맞닥뜨릴 것이라는 고민을 하게 됐다. 어떻게 토종씨앗으로 심는 농작물을 알아주는 소비자를 만들고 유통을 할 수 있을까?
# 실천
- 서울환경운동연합과 함께 한 ‘만 원의 행복’, 만 원을 먼저 주면, 농민들이 심어서 생산물을 다시 보내주는 방식. 5년을 계속 했지만 결국 확산은 안됐다. 농민들이 자신의 농사는 따로 지으면서 한 줌의 토종씨앗을 심는 정도. 이때 굉장히 많은 논쟁이 있었다.
- 사회적 경제를 디딤돌 삼아서 해보려 했지만, 운동조직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경우 많은 실패 사례가 있다. 쉽지 않았다. 1년 동안 우리텃밭.
- 얼굴 있는 생산자와 마음을 알아주는 소비자가 만나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고민들을 했었지만, 빠르게 진행되지는 않고 일련의 논의들이 2008~9년에 있었다. 그리고 2009년에 언니네 텃밭 시작.
#반성과 논의
- 여성농민회의 정치세력화 과정에서 ‘우리가 운동은 정말 열심히 하지만 농업에 있어서는 이것이 제대로 된 농업이다, 라고 하기에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부분이 있지 않나?’ 그러면서 투쟁과 농업이 함께 갈 수 있는 방법들,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퍼지기 시작. 대안의 농업들, 친환경적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것, 그리고 토종씨앗으로 농사를 짓는 것, 그것들을 제대로 팔아보자, 제대로 인정하는 사람을 만나보자는 인식들.
#현실
- 현실은 애써 1억을 팔아도 3백만 원밖에 안 남는 것. 이런 시스템 속에서는 활동가들이 재생산되지 못하고, 희생을 강요할 수밖에. 해결방법은 사회적 경제라고 생각. 그런데 지금도 자립의 형태는 가지지 못하고 있다. 정부지원을 계속 받으니까. 자체 상품이 없으면 못 버틴다.
#매출
- 언니네 텃밭이 정말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래도 지금 국민적 공감대가 많아져서 안정화된 편이다. 벌써 10년이 됐다. 코로나였지만 3, 4월에 월매출이 1억이 넘었다. 그 정도로 지금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다.
#심문희
- 5년 동안 전여농 중앙에서 정책위원장과 사무총장을 했고, 그 시기에 우리텃밭과 언니네텃밭을 만들었다. 그리고 바로 내려와서 토종단장을 하면서 지역의 토종씨앗지키기운동을 했다. 그 이후 농업에 매진을 해보겠다 하면서 생산적 공동체도 만들었지만 잘 안 됐다.
- 다른 지역의 사례, 상주봉강공동체 같은 경우는 카톨릭농민회의 분회 형식으로 이미 존재, 이미 유기적 농사를 짓고 있었다. 횡성 등은 마을 단위로 했다. 마을에 농민운동의 역량이 있던 지역은 잘 된다. 그런데 구례는 드문 드문 있다. 이런 경우는 만나는 것부터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까지 나아가기가 생각보다 힘들었다.
- 10년 전부터 무경운으로 하고 있다. 콩벌레나 두더지 같은 자연이 회복되면서 땅이 거칠고 딱딱하지 않다. 이제 쉽게 호미로 된다. 비닐도 5년은 쓴다. 96년도부터 하우스 시작, 그때 당시 같이 해주던 60대 할머니들이 이제 80이 넘는다.
이제 할머니들이 없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노동력을 대신 한다. 그런데 외국인들도 농촌은 싫어한다. 도시를 좋아해. 결국 이제는 가족농으로 할 수밖에 없다. 나의 노동을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이제는 손이 안 가는 작물을 찾게 된다. 30년 농사지어도 땅 한 평이 없다. 애초에 땅이 없이 시작했던 농민들은 땅 한 평 가질 수 없는 구조에서 농사짓는 일의 버거움.
#가치와 성과
-언니네 텃밭은 가치가 하향평준화하는 것을 제어하기 위해 산하에서 독립시키지 않고 전체적인 운동의 내용들을 숙지하지 않으면 기본적인 장터생산자로서도 참여할 수 없게, 언니네 텃밭 회원이 되고 일정 정도의 교육을 거치고, 일 년에 몇 가지 행사에 참여해야 하는 조건들을 달았다.
- 운동조직이 후계 인력들을 들이는 게 힘든 일인데, 그나마 전여농은 언니네 텃밭이 있어서 젊은 친구들이 많이 들어온다. 귀농하는 이들도 많다.
- 여기 계신 분들이 의기투합한다면 구례에서도 공동체가 만들어지지 않겠나.
[발제 : 자연스레-자연농 / 블루, 수수, 동현]
#블루의 이야기
- 2019년 11월에 자연농이라는 다큐 상영, 동현 님이 다큐를 보고 감동을 받아 자연농 스터디 제안함. 블루, 동현, 은영, 수수가 모여서 ‘짚풀 한오라기 혁명’을 읽고 스터디 시작. 동현 친구가 동네의 노는 돌밭을 무료로 빌려주면서 농사 시작. 자연농의 방식으로 호미 하나로 돌 고르는 작업을 함.
-재미있게 농사를 지어보고 싶어서 작은변화지원센터의 작은변화의 시나리오 지원사업을 받아서, 생태화장실 만들기, 변현란 선생님의 토종볍씨강좌도 하고, 토종볍씨로 자연농의 형태로 모내기를 2주 동안 했다. 토종볍씨소독, 침조, 발아까지 했다. 관행농이 아니고. 콩도 심었는데, 수해가 났다. 다섯 종 정도 심었는데 아직 수확은 안 했고 11월 초에 할 예정이다.
#수수의 이야기
- 농사는 짓고 싶지 않았다. FTA 때 친구 부모님이 농약 먹고 돌아가신 경험, 그리고 할머니도 펜대 굴리면서 살아라, 라고 했다. 그래서 농사를 절대 짓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2005년에 같이 여성운동하던 친구들 중에 유목과 정착사회라는 모임을 만들었던 친구들이 본인들이 살고 싶은 자유로운 삶을 살면서 자급자족을 꿈꾸었다. 그 친구들이 지금은 언니네 텃밭 멤버이기도 하고 지역에서 농민회, 생협도 하고 있는데, 당시 친구들이 생태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그 친구들이 사는 모습이 도전적이고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언젠가 내 할 일을 마치고 나면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 어떤 일이 일어나는 데는 때가 있는 것 같다. 2015년 정도에 청년세대의 귀농귀촌 등 여러 가지 움직임을 보면서 아, 이젠 옛날과 같은 방식으로 농사를 짓지는 않겠구나, 어쩌면 다른 삶을 살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래도 내가 사는 동네에서 자연농은 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마침 기후위기 관련 스터디를 하고 있었고, 두 분의 뜻이 좋았다. 어쨌든 지역에서 농사를 짓고 탄소를 땅에 붙잡아두려는, 대안적인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들 옆에 있으면 나도 힘을 얻을 것 같아서 자연농을 하게 됐다.
#동현의 이야기
- 백두대간 생태교육원에서 기후위기 관련 연속강좌가 있었다. 그때 생태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도시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그 이후 자연스레 생각이 바뀌고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러던 중에 다큐멘터리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 내가 기후위기 관련해서 어떤 실천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었는데. 시골에서 살면서 시골스럽게 살자, 그래서 농사를 짓게 되었는데 이것은 일반적인 농사는 아닌 것 같다. 또 벼농사는 많이 했지만 밭농사나 다양한 작물은 처음이다.
- 농사는 아무나 짓는 게 아니더라. 농사를 지으면서 깨달은 것은 나 자신의 변화에 있다. 기후위기의 실천방식을 고민했는데 농사를 지으면서 그 생각이 확고해지고 다른 행동으로 이어졌다. 사소한 잡풀도 의미가 있고 역할이 있구나,를 알았다. 잡초도 역할이 있다. 지난 번 태풍이 왔을 때 잡초 덕에 벼가 넘어지지 않았다. 나도 자식이 있기 때문에 다음 세대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나 싶다. 농사는 계속 지어야겠다 다짐한다.
[이야기 : 서민수, 수박 농사를 짓는 생산자]
- 문척에서 감농사를 주로 짓고, 작은 하우스에서 수박농사도 짓는다. 문척면의 농가 주소득원이 수박이다. 농사 짓겠다는 생각도 없었는데, 땅이 있어서 처음 농사를 짓게 됐다.
- 광주생협에 참여한 경험. 처음에는 소비자의 입장, 그런데 광주생협이 제대로 굴러가지 못했다. 그러다가 한살림을 알게 되고 생산자로 참여하게 되면서 교육을 받았다. 김일순 선생님의 철학적 삶이나 한살림을 하려는 사람들의 생태적인 삶이나 세상에 대한, 농사에 대한 가치, 무이당 선생님의 생태적 철학 등이 좋아서 같이 하게 됐다.
- 농사란 무엇인가? 농사가 단순히 작물만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을 키우는 것도 농사다. 세상을 죽이는 것도 농사다. 아이를 기르고 돼지를 키우고 애완동물을 키우고 작물을 키우는 모든 것이 농사에 있다. 내가 지은 농산물이 세상에 어떻게 퍼져야 하는가도 생각해야 한다. 사람들은 잘 생기고 큰 것만 원한다. 하지만 어떤 것을 기르고 내보낼 것인가는 농부가 결정한다. 세상도 마찬가지다. 세상을 통치하겠다는 사람들도 농사꾼의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게 답이라고 생각한다. 15년 농사로 터득한 결론.
- 키우는 것만이 아니라 잘 죽이는 것도 농사다. 세상도 마찬가지다. 안 될 것은 죽여야 제대로 될 것이 산다. 그런 차원으로 농사를 생각하면 농사가 세상이다, 정치고 사회이고 우주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것이 개개인적으로는 안 된다. 나 혼자 친환경농법으로 한다고 난리법석을 해도 옆에서 친 약이 비산되면 안 되는 것이다.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
- 작은 움직임이 세상을 움직인다. 느긋한 쌀빵이 느티나무와 협력하는 것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걸 기대하고 제가 할 수 있는 미력이나마 보태려고 한다.
- 나는 특수한 사람들만 취하는 농사는 하고 싶지 않다. 될 수 있으면 내 생산물들이 다수가,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라에서 파는 것들이 모두 친환경이어야 한다. 누구나 슈퍼나 장터에서 믿을 만한 농산물을 살 수 있어야 한다. 구조적인 틀이 바뀌어야 한다. 작은 노력이 퍼지고 퍼져서 큰 구조를 바꿔낼 때 다음 세대가 이어가도 탈이 없다. 돈을 중심가치로 사는 세상은 공멸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지혜롭기 때문에 공멸을 막을 것이다. 그것은 농사꾼이 해낼 것이다. 여러분이 해낼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이야기 : 느긋한 쌀빵 / 차승아]
- 선생님들 얘기를 듣다 보니 작은 고민들을 깊이 하니 부끄럽다. 나는 구례 9년차다. 무경운으로 멀칭도 없이 한 5년 농사도 지었다. 지금은 농사를 포기했다. 태평농법이 아니라 방치농법이 되더라.
- 윤주옥 님이 몇 년 전부터 쌀빵 이야기를 계속했다. 쌀빵 먹어 보니 좋았고 여성들이 모여서 경제적인 자립을 해보자고 시작했다. 시골에 와서 귀농귀촌자들이 돈 벌기가 쉽기 않았다. 시간적 여유가 많은 내가 주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고민은 '이게 과연 지속가능할까'이다.
- 농사 지을 때 못생긴 감을 수확했는데 혼자 먹기엔 많고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로컬푸드매장을 준비하려고 한다. 생협 물류도 들이려고 한다.
- 느티나무는 지역생산물 재고처리를 어떻게 하는지도 궁금하다. 이런 얘기들을 이 자리를 빌어 해보고 싶었다.
[질의응답]
심문희 :
내가 자연곳간을 운영하면서 반찬공장을 야심차게 시작했다가 같이 할 사람을 못 만나서 지금까지 조마조마했다. 63세 언니들을 만나서 같이 해보자 의기투합했는데 개업일을 2일 앞두고 물난리가 났다. 우리도 로컬매장을 내려고 했다. 그 언니들은 역귀농한 케이스다. 부모님을 보살피기 위해 왔는데 먹고살 일이 필요하다. 게장도 만들어보고 부각도 만들어봤다. 매장을 하려고 하면 자기가 가진 상품이 있어서 그걸 팔면서 해야 운영이 된다.
차승아 :
쌀빵도 재료비가 비싸다. 오늘도 세 명이 아침 7시 나와서 5시까지 있었는데, 인건비가 나올 수 없는 매출이 나왔다. 그러면 사업비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허혜인선생님이 꾸러미사업 이야기를 했는데 이것 역시도 지속가능하지 않다.
허혜인 :
그게 가장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농사를 지어보니 손이 많이 안 가는 작물, 구례에 없는 작물을 생각하게 되더라. 그 다음에 크기가 작은 거,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거, 젊은 사람 나이 든 사람 기호와 상관없이 먹을 수 있는 거를 찾자. 그러다 보니 과수를 하게 되더라. 블루베리, 체리, 미니애플, 피칸. 그러다보니 또 판로를 고민하게 된다.
시골에 와서 살다 보니, 도시에서 지인이 부탁하는 농산물을 무보수로 보내게 되더라. 그러다 보니 고민을 하게 된다. 나도 농사를 짓고 있고 도시에서는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걸 연결해 볼까? 마침 내가 여농에 들어가게 됐고 그러면서 청년여농네트워크에 들어갔다. 언니네텃밭이나 공간공동체에도 들어가게 됐는데, 왜 구례에서는 이런 게 활성화되지 않나 생각이 든다. 활성화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여기는 여행지인데 사람들이 지나가네, 머무르게 하려면 어떻게 하지? 그럼 각 지역마다 여행과 먹거리와 거점이 될 수 있는 공간들을 연결해서 뭔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농가입장에서는 난 친환경으로 생산하고 있는데, 인증 없이 어떻게 이걸 판매할 수 있을까? 그럼 조합형태로 해야 하나? 생협에 대한 고민도 하고 심문희 선생님은 먼저 지리산공동체를 운영하고 계시니, 그럼 이걸 다시 도움을 받아보면 어떨까? 이런저런 고민이 있다.
심문희 :
요새 연습삼아 김치를 팔고 있다. 실은 나는 허리 굽은 할머니처럼 농사를 지어서 후계세대가 다시는 생기지 않는 구조를 만들지 않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3천 평이지만 5백 평만 정말 건강하게 해서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고민을 하다 보니, 가공에 대한 고민도 한다. 혼자서는 할 수 없다. 다행히 3명의 언니들이 같이 하게 됐다. 언니들도 농사를 지어보고 싶지만 어머니들처럼 짓는 농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 뭘까?
그래서 총각무를 팔지 않고 있다. 다 김치를 만들어볼 생각이다. 로컬마켓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팔아보겠다고 올려뒀다. 언니네 텃밭에도. 양정마을에도 소들이 죽어버려서 노는 언니들이 있다. 손맛은 좋은데. 그래서 그 언니들도 같이 해보려고 한다. 여름에는 깻잎을 담갔다. 고구마김치도 담갔다. 혼자 하려면 못하는 일이다. 인건비 안 나오는 일이다. 할머니들이 텔레비전 보면서 하니까 할 수 있다. 빌어먹을 농사, 빌어먹을 김치다. 그래도 이 가치를 알아주는 소비자를 찾아내야 한다. 계속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연습이 필요하다. 얼마만큼의 물량을 만들어낼 수 있고 얼마만큼의 물량이 팔리는지 알 수 있는 연습. 그래서 천 평을 오백 평으로 줄이는 방법을 찾을 거다. 일주일 내내 호미만 들지 않고 하루는 칼도 들어볼 수 있게. 변화가 필요하다.
차승아 :
이런 물건들이 느긋한 쌀빵에 위치할 생협매장에도 들어올 수 있으면 좋겠다. 다양하게.
심문희 :
1키로씩 나누지 않고 그냥 통으로 가져갈 테니까 한 번 담아가 보라. 이것도 연습이다. 덜어서 가져가는.
차승아 :
저희도 매장을 비닐 없는 매장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이동현 :
인터넷 거래가 가능한가?
심문희 :
지금은 안 된다. 반찬공장은 보조를 받아서 품목보고를 다했다. 언니네 텃밭은 품목보고 안 한 것도 판다. 그런데 누군가가 걸면 문제가 된다. 우리는 그런다. 한 번 걸어라. 그러면 싸우겠다. 소규모가공으로 만든 음식, 집에서 엄마들이 만든 음식 먹고 배탈 안 난다. 이게 다 소규모가공이다. 내년부터는 HACCP를 받지 않으면 김치 못 판다고 한다. 농민들이 싸워야 한다. 소규모가공을 합법화시키는. 지역 인증도 가능하다.
차승아 :
용방 오이시험장에서는 안 되나요?
심문희 :
된다. 김치는 안 되고, 농축액, 분말, 환, 쨈 등이 된다. 농업기술센터에서 일 년에 두 차례 가공교육을 한다. 잘 보고 있어야 한다. 1차, 2차 교육을 받아서 협동조합에 가입하고 보건증을 제출해야 한다. 내가 직접 가공해야 한다. 일정 수수료를 주고.
박은주 :
이건 결국 대기업들의 농간 아닌가. HACCP 인증이 아니면 팔 수 없게 하는 것. 자기들 시장이 좁아지니까 소규모가공을 제한하는 거다. 실제로 학생들이 교육을 받거나 하는 체험도 올해 법적으로 금지됐다. 비누만들기 체험 같은 거. 그래서 이런 부분을 부각시키고 터뜨리고 싸워야 한다는 건 정말 중요하다.
허혜인 :
대기업들이 농사를 짓는 것까지 이제는 너무 많이 관여한다.
박은주 :
이마트, 홈플러스 등도 자체 농장을 가지고 있다.
허혜인 :
농민들의 설 자리가 대기업에 의해 점점더 줄어든다.
심문희 :
토종씨앗이 사라지는 이유다. 개량종은 수확량도 많고 때깔도 좋다. 농사도 결국은 먹고 사는 문제다. 조금이라도 돈이 되는 쪽으로 움직인다. 기술센터에서 보급종 종자를 나눠준다고 하면 사실 나도 흔들린다. 저게 더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똑같이 힘들어서 수확량이 더 나온다고 하면 좋지 않겠냐. 그래서 토종조례 만든 지역은 차액만큼을 지원해준다. 직불금 비슷하게. 전남도 지원하는 곳이 있다.
정태연 :
농사짓는 분들 얘기를 들으면 자꾸 미래가 어둡게 느껴진다.
박은주 :
토요일에 다살림장에 와서 이것저것 몇 개 사가면 굉장히 행복하고 좋다. 이런 것들이 점점 참여자들이 늘어나고, 여기서 그런 역할을 해준다면 조금씩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차승아 :
다살림장이 지속가능하려면 좀더 많이 알리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박은주 :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치는 것처럼 정말 오고 싶은데 너무 바빠서 못 온다. 그럴 때 소통방 등을 통해 현장에 오지 않아도 구입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줬으면 좋겠다.
정태연 :
아나님의 고민은?
아나 :
사람들 얘기 들으면서 위안도 되고 암담해지기도 한다.
서민수 :
암담해할 필요는 없다. 농촌이 붕괴되고 소멸될 거라고 얘기하지만 저는 도시가 먼저 소멸될 거라고 생각한다. 산업화시대에는 도시화가 필요했을 거다. 그런데 지금은 갈수록 도시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도시가 붕괴되고 해산되는 상황이 먼저일 거다. 농촌은 그래도 안 가르치고 우리만 먹고 살려면 먹고 산다.
심문희 :
근데 20대 여성이 없다. 그래서 소멸지역이라고 얘기한다. 실은 제가 20대 딸이 세 명 있다. 우리 애들이 농촌에서 사는 게 꿈이었다. 그런데 애들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죽어도 농촌에 안 살겠다 한다. 내 스스로 내가 뭐 했을까 싶다. 나는 애들을 여성농민으로 키우는 게 꿈이었는데. 그래서 더 열심히 다양한 시도들을 한다.
서민수 :
농촌뿐 아니라 도시도 0.9% 출산율이라고 한다. 과연 도시에 희망이 있을까, 하면 없다.
심문희 :
다 없다. 어디에도 없다.
서민수 :
그래도 시골에는 먹을 것이 있다.
심문희 :
성평등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입이 닳도록. 난 그렇게 봉건적이고 꽉 막힌 곳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고. 혼자 사는 여성, 도시에서는 익명성이 보장되니까 아무렇지 않지만, 농촌에서는 여자 혼자 사는 것, 여자 혼자 농사를 짓는 것을 여전히 이상하게 본다. 자라면서 그런 걸 보니까 아이들이 더 싫어한다.
서민수 :
여기 있는 여성분들은 그럼 다...
심문희 :
여기 있는 사람들은 특별종자들이다.
블루 :
공감이 된다. 제가 그렇다. 혼자이고 농사를 짓고. 도시에서는 익명성이 보장되는데 여기서는... 제가 딸이 있다고 해도 같은 마음일 거다.
김용일 :
고등학교 때부터 서울로 갔다. 구례 출신이라고 하니 사람들이 부러워했다. 이제 보니 구례가 정말 좋다. 이제 곧 50인데, 이 좋은 환경에서 어머님 모시고 산다. 아이들이 작은 학교에 다니면서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다들 읍내로 보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가 어려서 선생님이 냇가에 데리고 가서 물고기 잡고 했던 삶의 방식이 올바른 방식이라 생각한다. 농사를 지으니 자연에서 나는 먹거리가 가장 좋은 먹거리다. 이제 4년차인데 힘들긴 하다. 그래도 내가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한다는 확신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다. 이제 시작하는 단계다.
정태연 :
오늘은 서로 브레인스토밍 정도 했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지역에서 기존 생협들의 문제도 있고 한계도 있다. 구례가 어떻게 하면 틈새시장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심문희 님 의견으로 마무리하겠다.
심문희 :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아직도 진행중이다.
정태연 :
이런 주제로 앞으로도 다양한 논의들을 만들어갔으면 한다. 오늘 만남을 기회로 서로 지혜를 모아 보면 좋은 방법들이 우리 앞에 나타나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으면서 박수로 마무리하겠다.
[나가는 말]
생산자로 살아가는 어려움, 건강한 먹거리를 향한 요구,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려는 움직임, 미래세대를 위한 도전이 한 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서없이 진행되는 논의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모두가 하나의 접점을 향해 있음을 느낀다. 그 접점을 향해 각자의 자리에서 움직이다 보면 한 곳에 모여지리라 여긴다.
진행 | 정태연
기록 및 정리 | 차승아
코로나19로 이전과는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변화의 계기는 갑자기 찾아왔지만 변화는 천천히, 지속적으로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의 터전인 지역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소통과 관계 방식, 이동과 교류방식도 바뀔 것이라고 합니다. 비대면사회가 가속화된다고 하지만 대면사회였던 지역은 어떻게 될까요? 지역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질문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일상, 일, 관계, 소통의 현장인 ‘로컬'의 미래는 어떻게 변할까요?
6회째를 맞이한 「지리산포럼2020」은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하여 한꺼번에 많은 인원이 모이는 대신, 참가 규모를 줄이고 개최 시간과 장소를 분산하여 10월 17일부터 24일까지 총 8일간 진행했으며, ‘로컬라이프’를 주제로 한 7개의 주제섹션과 지리산 5개 지역의 로컬섹션, 특별섹션이 운영되었습니다.
지리산포럼2020 더 알아보기 [바로가기]
10/22 지리산 로컬섹션 @구례
지역 먹거리의 생산과 유통 / 주관 : 느긋한 쌀빵 (구례 지역생협준비모임)
with 한생명 느티나무매장 x 느긋한 쌀빵 x 구례 서민수 농부님과 자연스레-자연농
농사를 짓는 사람과 농산물을 파는 사람, 그리고 맛있게 요리해 먹는 사람까지. 서로가 연결 된 동그란 순환공동체를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구례에서 쌀빵을 만들며 지역 생협을 준비하고 있는 느긋한 쌀빵과 유기농/친환경/자연농 농부가 모여 느티나무 매장의 지역생협 이야기를 듣고, 실질적인 고민을 함께 나눕니다.
[들어가는 말]
정태연 :
지리산포럼은 여러 가지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의제들, 사람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의제들, 여러 진보적인 의제들에 관련된 사례발표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여성, 청소년인권, 기후위기, 생태, 환경 등에 대한 지역사례를 발표해 왔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으로 주로 하고, 지리산권 5개 시군에서 각 지역별로 섹션발표를 진행한다.
그 중 구례는 지역 생협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지금 구례는 지역 생협을 만드는 움직임들이 있다. 느긋한 쌀빵에서 생협매장을 준비하고 있고, 심문희 님은 오랫동안 언니네 텃밭에 관여해 왔다. 이화영 선생님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자급자족모임을 만들었고, 수수님과 블루, 동현은 수해 이후 거의 발걸음을 끊었다고는 하지만 자연농을 꿈꾸며 농사를 짓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느티나무생협에서 오신 버들 님 이야기를 필두로 언니네 텃밭 심문희 님, 느긋한 쌀빵의 차승아 님, 자연농 수수 님, 생산자 서민수 님 순으로 이야기를 듣고, 잠시 쉰 다음에 질의응답과 자유토론 시간을 이어가도록 하겠다.
[발제 : 한생명 느티나무 매장 / 버들 & 승현]
“시골에도 생협이 있었네!”
# 느티나무
- 2005년 산내 실상사 해탈교 건너 느티나무매장 운영 시작.
- 한생명이라는 단체에서 매장을 운영. 한생명은 인드라망 공동체에서 과거 20년 동안 귀농귀촌교육을 담당해왔던 공동체. 공동체에 속해 있던 사람들이 건강한 농산물을 길러내고, 그 농산물을 판매하기 위한 안전한 판로를 찾으면서, 그리고 지역의 농산물을 알리기 위해 처음 만들어짐.
- 매주 수요일 행복중심생협 광주물류에서 물건 배송. 행복중심생협과 직거래를 하고 있는 인드라망생협에 소속되어 있음. 회원제도 좀 다르다. 조합원제는 아니고 한생명이라는 단체에 후원해주시는 분들에 한해서 생협물품을 5% 할인.
- 직원은 버들, 승현이 정 매장지기로 근무. 한생명사무실 직원이 주 1회 근무하고, 해와라는 아르바이트생이 1명 있다. 승현, 버들은 각자 주4일 근무. 물건이 들어오는 수요일은 같이 일한다. 생협물품은 일요일에 주문 마감해서 수요일에 오는 시스템. 휴일은 없고 운영시간은 10시부터 6시30분까지.
#활동가
- 우리는 인드라망공동체의 활동가. 하려는 일이 지구에도 도움이 되고, 살림살이와 나와 교류하는 사람과 사람들의 일상이 맞닿아 있어서, 우리가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이 활동가.
- 매장에서 쓰레기 줄이는 문제를 고민. 이전에 매장에서 근무하셨던 활동가도 환경문제에 집중하고 장바구니를 사용하게 하거나 포장재를 덜 쓰는 일들을 했다.
- 2018년 쓰레기 대란 이후 만들어진 비닐도 없는 점빵이나 살래장 등이 연대하여 만든 모임과 교류하다가 이 모임원 분들이 버들과 승현이 쓰레기에 대한 탐방, 환경에 대한 탐방을 했으면 좋겠다, 교육을 들어보고 얘기를 들려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서울로 다양한 탐방을 다녀왔다.
예) 에코팩토리 안에서 열린 채우장-포장지 없이 알맹이만 판매하는 장터, 보틀팩토리-본인의 용기를 사용해서 보는 장 등. 남원시 쓰레기 매립장도 가서 보고 더 책임감을 느낌. 이런 움직임들이 주변사람들의 일상과 내 일상을 바꾸고 풍요롭게 할 수 있구나 느낌. 소분샵에도 방문. 그러나 매장에는 적용이 어렵다. 광주환경연과 연결, 분리배출교육하여 매장에 적용하려고 노력. 벌크로 채소 들이기, 소프넛홍보, 채시과 기후위기 주제 공유
#운영
- 올해 3월부터 매장에서 일하기 시작. 작년에는 생명평화대학이라는 인드라망공동체에서 청년들이 시골살이 적응을 도와주는 1년짜리 프로그램에 참여.
- 매장과 함께 하는 농부, 생산자들은 매장쌀빵, 유정란, 찻집, 꿀, 블루베리잼, 산청바나나, 버섯, 방울토마토, 아로마티카, 마요, 만두, 초코렛, 말차, 소프넛 등이 있다. 이외에도 40명 정도의 생산자가 있다.
- 농산물 선정기준은 유기농인증을 받은 것이나, 인증을 받지 않아도 농부님들이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텃밭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의 물건. 농산물은 면세이기 때문에 다른 물품보다 낮은 마진률을 적용한다. 남는 게 없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농산물거래의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함.
#노력
- 거래를 하면서 물류 등에서 몇몇 문제점이 있는데, 주 1회 주문이니까 제품 주문 하나를 빼먹으면 다음 주문까지는 그 물건을 팔 수 없다. - 물건이 수요일에 들어오고 목,금요일 정도 되면 물건이 팔려서 매장이 빈다. 살 물건이 없다. 사실 지리산에 물류 차를 한 대 보내는 데 정말 많은 공을 들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우리는 한계를 안고 갈 수밖에 없다.
- 하지만 매장으로서 기본은 해야 하지 않나? 아무리 좋은 가치로 운영을 하고 있다고는 해도 매장이 자생할 수 있게 수익이 나고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없으면 의미가 없다. 바꿔보고 싶었다. 그냥 동네매장으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 매장에 와서 제일 처음 했던 게 포스통계자료를 정리한 것. 주문의 근거자료.
- 매장 주고객인 마을분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매장소식을 꾸준히 올림.
- 주민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서 여기저기 업체를 콘택트.
- 소비자들이 오셔서 물건이 없어서 못사는 경우가 되게 속상한 일이어서 어느 정도 재고를 마련해뒀다. 전시하는 위치도 자꾸 바꾸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하니 젊은 친구들이 열심히 한다는 걸 많이들 좋게 봐준다.
#통계
- 한 분당 1만8천 원 정도의 구매를 하고, 하루에 5~60명 방문. 수요일 매출이 다른 요일에 비해 2배 이상 높다.
- 주문하는 품목은 600여 종. 가장 많이 판매되는 게 농산물이고 전체 매출의 53%, 기타 빵이나 간식, 생활재가 10% 정도 차지.
#소비자
- 도시소비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저희 매장을 생협으로 생각해 주시는 분이 많다. 저희를 공동체의 한 영역으로 보는 분들이 많은데, 냉정하게 저희 매장을 생협으로 봐주시는 건 되게 감사한 일이다.
#빵아재
빵아재는 느티나무에 입점해있는 형태. 처음에 대안학교인 작은학교의 빵동아리로 시작했다가 사업체로 독립한 경우. 11%마진, 15%마진률 임대료는 받지 않고 있다. 대신 학생들의 교육이 있을 때 맡아주시는 협업관계. 느티나무가 빵집인지 알고 오시는 분들도 많다. 인지도도 높아서 빵 사러오셨다가 매장에서 장도 보시고, 장 보러 오셔서 빵도 사시는, 한마디로 상생관계다. 빵아재 매출이 총이익의 10%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제 느티나무와 빵아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고민과 발전
재활용 빵끈을 사용하고, 불편하게 사과 한 개씩 사라고 하고, 장바구니 쓰자고 하고 비닐도 없다고 하는데도 동참해주시는 분들이 많다. 감사한 마음이다. 저희가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소비자분들이 응해주셔야 가능한 일이고, 그래서 소통을 계속하고 여러분들이 갈증을 느끼는 게 무엇인지 저희는 더 고민한다. 더 발전적인 일들을 만들어내는 게 저희가 해야 하는 일 같다.
[발제 : 언니네 텃밭 / 심문희]
#소소한 시작
- 2004년, 남북농민대회에서 소소한 시작. 토종씨앗에 대한 중요성 대두, 여성농민회에서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을 농민들이 자기 권리를 지키는 운동의 하나로 적극적으로 펼쳐보자고 했다. 지역의 토종씨앗 실태를 조사하고 여성농민 한 사람이 토종씨앗 한 품목만큼은 지켜나가자는 운동을 하게 되었다.
#고민
그런데 심으라고는 하면서 대안을 내주지는 않았다. 그러다보니 왜 토종씨앗이 사라지게 됐나를 고민하게 됐다. 토종종자가 생산성이 떨어지고 소비자들이 찾지 않는다는 이유로 때깔 좋고 수확량이 많은 개량된 품종을 심게 되면서 토종씨앗이 사라지게 됐다는 사실이 있었다. 우리가 토종씨앗을 심으라고 하면서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결국 확산되지 못하는 한계에 맞닥뜨릴 것이라는 고민을 하게 됐다. 어떻게 토종씨앗으로 심는 농작물을 알아주는 소비자를 만들고 유통을 할 수 있을까?
# 실천
- 서울환경운동연합과 함께 한 ‘만 원의 행복’, 만 원을 먼저 주면, 농민들이 심어서 생산물을 다시 보내주는 방식. 5년을 계속 했지만 결국 확산은 안됐다. 농민들이 자신의 농사는 따로 지으면서 한 줌의 토종씨앗을 심는 정도. 이때 굉장히 많은 논쟁이 있었다.
- 사회적 경제를 디딤돌 삼아서 해보려 했지만, 운동조직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경우 많은 실패 사례가 있다. 쉽지 않았다. 1년 동안 우리텃밭.
- 얼굴 있는 생산자와 마음을 알아주는 소비자가 만나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고민들을 했었지만, 빠르게 진행되지는 않고 일련의 논의들이 2008~9년에 있었다. 그리고 2009년에 언니네 텃밭 시작.
#반성과 논의
- 여성농민회의 정치세력화 과정에서 ‘우리가 운동은 정말 열심히 하지만 농업에 있어서는 이것이 제대로 된 농업이다, 라고 하기에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부분이 있지 않나?’ 그러면서 투쟁과 농업이 함께 갈 수 있는 방법들,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퍼지기 시작. 대안의 농업들, 친환경적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것, 그리고 토종씨앗으로 농사를 짓는 것, 그것들을 제대로 팔아보자, 제대로 인정하는 사람을 만나보자는 인식들.
#현실
- 현실은 애써 1억을 팔아도 3백만 원밖에 안 남는 것. 이런 시스템 속에서는 활동가들이 재생산되지 못하고, 희생을 강요할 수밖에. 해결방법은 사회적 경제라고 생각. 그런데 지금도 자립의 형태는 가지지 못하고 있다. 정부지원을 계속 받으니까. 자체 상품이 없으면 못 버틴다.
#매출
- 언니네 텃밭이 정말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래도 지금 국민적 공감대가 많아져서 안정화된 편이다. 벌써 10년이 됐다. 코로나였지만 3, 4월에 월매출이 1억이 넘었다. 그 정도로 지금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다.
#심문희
- 5년 동안 전여농 중앙에서 정책위원장과 사무총장을 했고, 그 시기에 우리텃밭과 언니네텃밭을 만들었다. 그리고 바로 내려와서 토종단장을 하면서 지역의 토종씨앗지키기운동을 했다. 그 이후 농업에 매진을 해보겠다 하면서 생산적 공동체도 만들었지만 잘 안 됐다.
- 다른 지역의 사례, 상주봉강공동체 같은 경우는 카톨릭농민회의 분회 형식으로 이미 존재, 이미 유기적 농사를 짓고 있었다. 횡성 등은 마을 단위로 했다. 마을에 농민운동의 역량이 있던 지역은 잘 된다. 그런데 구례는 드문 드문 있다. 이런 경우는 만나는 것부터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까지 나아가기가 생각보다 힘들었다.
- 10년 전부터 무경운으로 하고 있다. 콩벌레나 두더지 같은 자연이 회복되면서 땅이 거칠고 딱딱하지 않다. 이제 쉽게 호미로 된다. 비닐도 5년은 쓴다. 96년도부터 하우스 시작, 그때 당시 같이 해주던 60대 할머니들이 이제 80이 넘는다.
이제 할머니들이 없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노동력을 대신 한다. 그런데 외국인들도 농촌은 싫어한다. 도시를 좋아해. 결국 이제는 가족농으로 할 수밖에 없다. 나의 노동을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이제는 손이 안 가는 작물을 찾게 된다. 30년 농사지어도 땅 한 평이 없다. 애초에 땅이 없이 시작했던 농민들은 땅 한 평 가질 수 없는 구조에서 농사짓는 일의 버거움.
#가치와 성과
-언니네 텃밭은 가치가 하향평준화하는 것을 제어하기 위해 산하에서 독립시키지 않고 전체적인 운동의 내용들을 숙지하지 않으면 기본적인 장터생산자로서도 참여할 수 없게, 언니네 텃밭 회원이 되고 일정 정도의 교육을 거치고, 일 년에 몇 가지 행사에 참여해야 하는 조건들을 달았다.
- 운동조직이 후계 인력들을 들이는 게 힘든 일인데, 그나마 전여농은 언니네 텃밭이 있어서 젊은 친구들이 많이 들어온다. 귀농하는 이들도 많다.
- 여기 계신 분들이 의기투합한다면 구례에서도 공동체가 만들어지지 않겠나.
[발제 : 자연스레-자연농 / 블루, 수수, 동현]
#블루의 이야기
- 2019년 11월에 자연농이라는 다큐 상영, 동현 님이 다큐를 보고 감동을 받아 자연농 스터디 제안함. 블루, 동현, 은영, 수수가 모여서 ‘짚풀 한오라기 혁명’을 읽고 스터디 시작. 동현 친구가 동네의 노는 돌밭을 무료로 빌려주면서 농사 시작. 자연농의 방식으로 호미 하나로 돌 고르는 작업을 함.
-재미있게 농사를 지어보고 싶어서 작은변화지원센터의 작은변화의 시나리오 지원사업을 받아서, 생태화장실 만들기, 변현란 선생님의 토종볍씨강좌도 하고, 토종볍씨로 자연농의 형태로 모내기를 2주 동안 했다. 토종볍씨소독, 침조, 발아까지 했다. 관행농이 아니고. 콩도 심었는데, 수해가 났다. 다섯 종 정도 심었는데 아직 수확은 안 했고 11월 초에 할 예정이다.
#수수의 이야기
- 농사는 짓고 싶지 않았다. FTA 때 친구 부모님이 농약 먹고 돌아가신 경험, 그리고 할머니도 펜대 굴리면서 살아라, 라고 했다. 그래서 농사를 절대 짓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2005년에 같이 여성운동하던 친구들 중에 유목과 정착사회라는 모임을 만들었던 친구들이 본인들이 살고 싶은 자유로운 삶을 살면서 자급자족을 꿈꾸었다. 그 친구들이 지금은 언니네 텃밭 멤버이기도 하고 지역에서 농민회, 생협도 하고 있는데, 당시 친구들이 생태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그 친구들이 사는 모습이 도전적이고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언젠가 내 할 일을 마치고 나면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 어떤 일이 일어나는 데는 때가 있는 것 같다. 2015년 정도에 청년세대의 귀농귀촌 등 여러 가지 움직임을 보면서 아, 이젠 옛날과 같은 방식으로 농사를 짓지는 않겠구나, 어쩌면 다른 삶을 살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래도 내가 사는 동네에서 자연농은 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마침 기후위기 관련 스터디를 하고 있었고, 두 분의 뜻이 좋았다. 어쨌든 지역에서 농사를 짓고 탄소를 땅에 붙잡아두려는, 대안적인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들 옆에 있으면 나도 힘을 얻을 것 같아서 자연농을 하게 됐다.
#동현의 이야기
- 백두대간 생태교육원에서 기후위기 관련 연속강좌가 있었다. 그때 생태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도시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그 이후 자연스레 생각이 바뀌고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러던 중에 다큐멘터리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 내가 기후위기 관련해서 어떤 실천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었는데. 시골에서 살면서 시골스럽게 살자, 그래서 농사를 짓게 되었는데 이것은 일반적인 농사는 아닌 것 같다. 또 벼농사는 많이 했지만 밭농사나 다양한 작물은 처음이다.
- 농사는 아무나 짓는 게 아니더라. 농사를 지으면서 깨달은 것은 나 자신의 변화에 있다. 기후위기의 실천방식을 고민했는데 농사를 지으면서 그 생각이 확고해지고 다른 행동으로 이어졌다. 사소한 잡풀도 의미가 있고 역할이 있구나,를 알았다. 잡초도 역할이 있다. 지난 번 태풍이 왔을 때 잡초 덕에 벼가 넘어지지 않았다. 나도 자식이 있기 때문에 다음 세대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나 싶다. 농사는 계속 지어야겠다 다짐한다.
[이야기 : 서민수, 수박 농사를 짓는 생산자]
- 문척에서 감농사를 주로 짓고, 작은 하우스에서 수박농사도 짓는다. 문척면의 농가 주소득원이 수박이다. 농사 짓겠다는 생각도 없었는데, 땅이 있어서 처음 농사를 짓게 됐다.
- 광주생협에 참여한 경험. 처음에는 소비자의 입장, 그런데 광주생협이 제대로 굴러가지 못했다. 그러다가 한살림을 알게 되고 생산자로 참여하게 되면서 교육을 받았다. 김일순 선생님의 철학적 삶이나 한살림을 하려는 사람들의 생태적인 삶이나 세상에 대한, 농사에 대한 가치, 무이당 선생님의 생태적 철학 등이 좋아서 같이 하게 됐다.
- 농사란 무엇인가? 농사가 단순히 작물만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을 키우는 것도 농사다. 세상을 죽이는 것도 농사다. 아이를 기르고 돼지를 키우고 애완동물을 키우고 작물을 키우는 모든 것이 농사에 있다. 내가 지은 농산물이 세상에 어떻게 퍼져야 하는가도 생각해야 한다. 사람들은 잘 생기고 큰 것만 원한다. 하지만 어떤 것을 기르고 내보낼 것인가는 농부가 결정한다. 세상도 마찬가지다. 세상을 통치하겠다는 사람들도 농사꾼의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게 답이라고 생각한다. 15년 농사로 터득한 결론.
- 키우는 것만이 아니라 잘 죽이는 것도 농사다. 세상도 마찬가지다. 안 될 것은 죽여야 제대로 될 것이 산다. 그런 차원으로 농사를 생각하면 농사가 세상이다, 정치고 사회이고 우주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것이 개개인적으로는 안 된다. 나 혼자 친환경농법으로 한다고 난리법석을 해도 옆에서 친 약이 비산되면 안 되는 것이다.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
- 작은 움직임이 세상을 움직인다. 느긋한 쌀빵이 느티나무와 협력하는 것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걸 기대하고 제가 할 수 있는 미력이나마 보태려고 한다.
- 나는 특수한 사람들만 취하는 농사는 하고 싶지 않다. 될 수 있으면 내 생산물들이 다수가,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라에서 파는 것들이 모두 친환경이어야 한다. 누구나 슈퍼나 장터에서 믿을 만한 농산물을 살 수 있어야 한다. 구조적인 틀이 바뀌어야 한다. 작은 노력이 퍼지고 퍼져서 큰 구조를 바꿔낼 때 다음 세대가 이어가도 탈이 없다. 돈을 중심가치로 사는 세상은 공멸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지혜롭기 때문에 공멸을 막을 것이다. 그것은 농사꾼이 해낼 것이다. 여러분이 해낼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이야기 : 느긋한 쌀빵 / 차승아]
- 선생님들 얘기를 듣다 보니 작은 고민들을 깊이 하니 부끄럽다. 나는 구례 9년차다. 무경운으로 멀칭도 없이 한 5년 농사도 지었다. 지금은 농사를 포기했다. 태평농법이 아니라 방치농법이 되더라.
- 윤주옥 님이 몇 년 전부터 쌀빵 이야기를 계속했다. 쌀빵 먹어 보니 좋았고 여성들이 모여서 경제적인 자립을 해보자고 시작했다. 시골에 와서 귀농귀촌자들이 돈 벌기가 쉽기 않았다. 시간적 여유가 많은 내가 주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고민은 '이게 과연 지속가능할까'이다.
- 농사 지을 때 못생긴 감을 수확했는데 혼자 먹기엔 많고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로컬푸드매장을 준비하려고 한다. 생협 물류도 들이려고 한다.
- 느티나무는 지역생산물 재고처리를 어떻게 하는지도 궁금하다. 이런 얘기들을 이 자리를 빌어 해보고 싶었다.
[질의응답]
심문희 :
내가 자연곳간을 운영하면서 반찬공장을 야심차게 시작했다가 같이 할 사람을 못 만나서 지금까지 조마조마했다. 63세 언니들을 만나서 같이 해보자 의기투합했는데 개업일을 2일 앞두고 물난리가 났다. 우리도 로컬매장을 내려고 했다. 그 언니들은 역귀농한 케이스다. 부모님을 보살피기 위해 왔는데 먹고살 일이 필요하다. 게장도 만들어보고 부각도 만들어봤다. 매장을 하려고 하면 자기가 가진 상품이 있어서 그걸 팔면서 해야 운영이 된다.
차승아 :
쌀빵도 재료비가 비싸다. 오늘도 세 명이 아침 7시 나와서 5시까지 있었는데, 인건비가 나올 수 없는 매출이 나왔다. 그러면 사업비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허혜인선생님이 꾸러미사업 이야기를 했는데 이것 역시도 지속가능하지 않다.
허혜인 :
그게 가장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농사를 지어보니 손이 많이 안 가는 작물, 구례에 없는 작물을 생각하게 되더라. 그 다음에 크기가 작은 거,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거, 젊은 사람 나이 든 사람 기호와 상관없이 먹을 수 있는 거를 찾자. 그러다 보니 과수를 하게 되더라. 블루베리, 체리, 미니애플, 피칸. 그러다보니 또 판로를 고민하게 된다.
시골에 와서 살다 보니, 도시에서 지인이 부탁하는 농산물을 무보수로 보내게 되더라. 그러다 보니 고민을 하게 된다. 나도 농사를 짓고 있고 도시에서는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걸 연결해 볼까? 마침 내가 여농에 들어가게 됐고 그러면서 청년여농네트워크에 들어갔다. 언니네텃밭이나 공간공동체에도 들어가게 됐는데, 왜 구례에서는 이런 게 활성화되지 않나 생각이 든다. 활성화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여기는 여행지인데 사람들이 지나가네, 머무르게 하려면 어떻게 하지? 그럼 각 지역마다 여행과 먹거리와 거점이 될 수 있는 공간들을 연결해서 뭔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농가입장에서는 난 친환경으로 생산하고 있는데, 인증 없이 어떻게 이걸 판매할 수 있을까? 그럼 조합형태로 해야 하나? 생협에 대한 고민도 하고 심문희 선생님은 먼저 지리산공동체를 운영하고 계시니, 그럼 이걸 다시 도움을 받아보면 어떨까? 이런저런 고민이 있다.
심문희 :
요새 연습삼아 김치를 팔고 있다. 실은 나는 허리 굽은 할머니처럼 농사를 지어서 후계세대가 다시는 생기지 않는 구조를 만들지 않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3천 평이지만 5백 평만 정말 건강하게 해서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고민을 하다 보니, 가공에 대한 고민도 한다. 혼자서는 할 수 없다. 다행히 3명의 언니들이 같이 하게 됐다. 언니들도 농사를 지어보고 싶지만 어머니들처럼 짓는 농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 뭘까?
그래서 총각무를 팔지 않고 있다. 다 김치를 만들어볼 생각이다. 로컬마켓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팔아보겠다고 올려뒀다. 언니네 텃밭에도. 양정마을에도 소들이 죽어버려서 노는 언니들이 있다. 손맛은 좋은데. 그래서 그 언니들도 같이 해보려고 한다. 여름에는 깻잎을 담갔다. 고구마김치도 담갔다. 혼자 하려면 못하는 일이다. 인건비 안 나오는 일이다. 할머니들이 텔레비전 보면서 하니까 할 수 있다. 빌어먹을 농사, 빌어먹을 김치다. 그래도 이 가치를 알아주는 소비자를 찾아내야 한다. 계속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연습이 필요하다. 얼마만큼의 물량을 만들어낼 수 있고 얼마만큼의 물량이 팔리는지 알 수 있는 연습. 그래서 천 평을 오백 평으로 줄이는 방법을 찾을 거다. 일주일 내내 호미만 들지 않고 하루는 칼도 들어볼 수 있게. 변화가 필요하다.
차승아 :
이런 물건들이 느긋한 쌀빵에 위치할 생협매장에도 들어올 수 있으면 좋겠다. 다양하게.
심문희 :
1키로씩 나누지 않고 그냥 통으로 가져갈 테니까 한 번 담아가 보라. 이것도 연습이다. 덜어서 가져가는.
차승아 :
저희도 매장을 비닐 없는 매장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이동현 :
인터넷 거래가 가능한가?
심문희 :
지금은 안 된다. 반찬공장은 보조를 받아서 품목보고를 다했다. 언니네 텃밭은 품목보고 안 한 것도 판다. 그런데 누군가가 걸면 문제가 된다. 우리는 그런다. 한 번 걸어라. 그러면 싸우겠다. 소규모가공으로 만든 음식, 집에서 엄마들이 만든 음식 먹고 배탈 안 난다. 이게 다 소규모가공이다. 내년부터는 HACCP를 받지 않으면 김치 못 판다고 한다. 농민들이 싸워야 한다. 소규모가공을 합법화시키는. 지역 인증도 가능하다.
차승아 :
용방 오이시험장에서는 안 되나요?
심문희 :
된다. 김치는 안 되고, 농축액, 분말, 환, 쨈 등이 된다. 농업기술센터에서 일 년에 두 차례 가공교육을 한다. 잘 보고 있어야 한다. 1차, 2차 교육을 받아서 협동조합에 가입하고 보건증을 제출해야 한다. 내가 직접 가공해야 한다. 일정 수수료를 주고.
박은주 :
이건 결국 대기업들의 농간 아닌가. HACCP 인증이 아니면 팔 수 없게 하는 것. 자기들 시장이 좁아지니까 소규모가공을 제한하는 거다. 실제로 학생들이 교육을 받거나 하는 체험도 올해 법적으로 금지됐다. 비누만들기 체험 같은 거. 그래서 이런 부분을 부각시키고 터뜨리고 싸워야 한다는 건 정말 중요하다.
허혜인 :
대기업들이 농사를 짓는 것까지 이제는 너무 많이 관여한다.
박은주 :
이마트, 홈플러스 등도 자체 농장을 가지고 있다.
허혜인 :
농민들의 설 자리가 대기업에 의해 점점더 줄어든다.
심문희 :
토종씨앗이 사라지는 이유다. 개량종은 수확량도 많고 때깔도 좋다. 농사도 결국은 먹고 사는 문제다. 조금이라도 돈이 되는 쪽으로 움직인다. 기술센터에서 보급종 종자를 나눠준다고 하면 사실 나도 흔들린다. 저게 더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똑같이 힘들어서 수확량이 더 나온다고 하면 좋지 않겠냐. 그래서 토종조례 만든 지역은 차액만큼을 지원해준다. 직불금 비슷하게. 전남도 지원하는 곳이 있다.
정태연 :
농사짓는 분들 얘기를 들으면 자꾸 미래가 어둡게 느껴진다.
박은주 :
토요일에 다살림장에 와서 이것저것 몇 개 사가면 굉장히 행복하고 좋다. 이런 것들이 점점 참여자들이 늘어나고, 여기서 그런 역할을 해준다면 조금씩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차승아 :
다살림장이 지속가능하려면 좀더 많이 알리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박은주 :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치는 것처럼 정말 오고 싶은데 너무 바빠서 못 온다. 그럴 때 소통방 등을 통해 현장에 오지 않아도 구입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줬으면 좋겠다.
정태연 :
아나님의 고민은?
아나 :
사람들 얘기 들으면서 위안도 되고 암담해지기도 한다.
서민수 :
암담해할 필요는 없다. 농촌이 붕괴되고 소멸될 거라고 얘기하지만 저는 도시가 먼저 소멸될 거라고 생각한다. 산업화시대에는 도시화가 필요했을 거다. 그런데 지금은 갈수록 도시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도시가 붕괴되고 해산되는 상황이 먼저일 거다. 농촌은 그래도 안 가르치고 우리만 먹고 살려면 먹고 산다.
심문희 :
근데 20대 여성이 없다. 그래서 소멸지역이라고 얘기한다. 실은 제가 20대 딸이 세 명 있다. 우리 애들이 농촌에서 사는 게 꿈이었다. 그런데 애들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죽어도 농촌에 안 살겠다 한다. 내 스스로 내가 뭐 했을까 싶다. 나는 애들을 여성농민으로 키우는 게 꿈이었는데. 그래서 더 열심히 다양한 시도들을 한다.
서민수 :
농촌뿐 아니라 도시도 0.9% 출산율이라고 한다. 과연 도시에 희망이 있을까, 하면 없다.
심문희 :
다 없다. 어디에도 없다.
서민수 :
그래도 시골에는 먹을 것이 있다.
심문희 :
성평등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입이 닳도록. 난 그렇게 봉건적이고 꽉 막힌 곳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고. 혼자 사는 여성, 도시에서는 익명성이 보장되니까 아무렇지 않지만, 농촌에서는 여자 혼자 사는 것, 여자 혼자 농사를 짓는 것을 여전히 이상하게 본다. 자라면서 그런 걸 보니까 아이들이 더 싫어한다.
서민수 :
여기 있는 여성분들은 그럼 다...
심문희 :
여기 있는 사람들은 특별종자들이다.
블루 :
공감이 된다. 제가 그렇다. 혼자이고 농사를 짓고. 도시에서는 익명성이 보장되는데 여기서는... 제가 딸이 있다고 해도 같은 마음일 거다.
김용일 :
고등학교 때부터 서울로 갔다. 구례 출신이라고 하니 사람들이 부러워했다. 이제 보니 구례가 정말 좋다. 이제 곧 50인데, 이 좋은 환경에서 어머님 모시고 산다. 아이들이 작은 학교에 다니면서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다들 읍내로 보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가 어려서 선생님이 냇가에 데리고 가서 물고기 잡고 했던 삶의 방식이 올바른 방식이라 생각한다. 농사를 지으니 자연에서 나는 먹거리가 가장 좋은 먹거리다. 이제 4년차인데 힘들긴 하다. 그래도 내가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한다는 확신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다. 이제 시작하는 단계다.
정태연 :
오늘은 서로 브레인스토밍 정도 했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지역에서 기존 생협들의 문제도 있고 한계도 있다. 구례가 어떻게 하면 틈새시장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심문희 님 의견으로 마무리하겠다.
심문희 :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아직도 진행중이다.
정태연 :
이런 주제로 앞으로도 다양한 논의들을 만들어갔으면 한다. 오늘 만남을 기회로 서로 지혜를 모아 보면 좋은 방법들이 우리 앞에 나타나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으면서 박수로 마무리하겠다.
[나가는 말]
생산자로 살아가는 어려움, 건강한 먹거리를 향한 요구,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려는 움직임, 미래세대를 위한 도전이 한 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서없이 진행되는 논의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모두가 하나의 접점을 향해 있음을 느낀다. 그 접점을 향해 각자의 자리에서 움직이다 보면 한 곳에 모여지리라 여긴다.
진행 | 정태연
기록 및 정리 | 차승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