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이음 활동 소식

사업[지리산포럼2021] 11/20 관계X전환 #3 - 세상을 안전하게 만드는 노동자와 시민의 길 (김신범)

2021-12-24

 

 

올해 지리산포럼에서는 막다른 길에 선 위기의 시대를 넘어 전환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코로나19와 기후위기라는 전지구적 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 위기를 넘어 다음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전환은 무엇일까요? 인류의 생존방식, 우리 사회의 운영 규범과 원칙, 개인의 삶까지. 모든 분야에서 전환을 요구받고 있는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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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 관계X전환 #3

세상을 안전하게 만드는 노동자와 시민의 길 - 김신범(노동환경건강연구소)

 

가습기살균제 참사, 메탄올 실명, 직업성 환경성 암, 산재사망 속에 숨어있는 차별과 배제를 살펴보면서, 무엇이 사회를 안전하게 만드는 방법인지 함께 살펴봅니다.

  

 

ⓒ 지리산이음

 

 

코로나19와 가습기 살균제, 둘의 공통점과 차이는 무엇일까요? 

 

 

코로나19에 우리나라가 잘 대응한 편입니다. ‘웬일이지?’ 그런 마음이 들 정도로. 국민들에게 상황을 알리고 협조를 구한다는 게 얼마나 용기 있는 일인지 여러분들 잘 아실 겁니다. 정부가 준비도 안 되어 있고 할 줄도 모르니까 국민한테 다 떠넘긴다고 비난을 받을 수 있거든요. 코로나19는 이렇게 대응을 잘 하고 있는데 가습기 살균제 문제는 왜 그렇게 대응하는 거지? 무슨 차이가 있지? 라는 생각을 한번 해 보죠.

 

우리가 바라는 나라, 국가, 정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는 좋은 길잡이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청소가 왜 생겨났을까요? 수질관리는 왜 하게 되었을까요? 예방접종을 왜 하는 걸까요?

전염병은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인류 사회에서 수많은 질병을 겪으면서 사회가 극도의 위기 상태에 이르기도 하고 때로는 가볍게 넘어가기도 합니다. 페스트를 경험한 유럽 사회에서는 전염병에 대한 거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이 문제를 바라보면서 대책을 수립하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아주 많은 노하우들이 축적됩니다. 

 

반면에 인류의 역사에서 화학물질 문제는 최근에 형성된 이슈 중 하나입니다. 안전과 건강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사고로부터 배운다’는 말을 굉장히 자주 하는데요, 인류는 사고가 나기 전에 미리 예측한 적이 없습니다. 화학물질은 오래 전부터 존재했지만 과거에는 화학물질 사고가 사회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화학물질이 이렇게 위험해라고 깨달은 지 100년도 안 되는 역사에서 국가의 노하우가 얼마나 축적됐을까요.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화학물질 문제는 기후 위기나 핵 문제처럼 새롭게 등장한 문제로서 볼 필요가 있었던 거죠.

 

전염병 관리와 화학물질 관리에는 국가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국가시스템의 상황과 수준에 대한 객관적 진단이 필요합니다. 정작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가습기 살균제 참사 이후 어떤 교훈을 얻었고 어떤 행정 체계를 만들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 지리산이음

 

 

 

다부처 관리는 정말 문제일까?

 

 

언론이 항상 화학물질 문제를 비판할 때 ‘컨트롤 타워가 없다’고 합니다. 당연히 정부 조직은 여러 개로 나눠져 직접 관련된 문제에 적극 행정을 펼치도록 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렇게 쪼개져 있기만 하면 안 되겠죠. 이게 발암물질인지 아닌지는 모든 부처가 동일한 기준을 가져야 되지 않습니까? 2004년 쯤 이런 시도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합니다. 

 

정부가 능력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건 정부가 거짓 정책을 만들게 하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농약 성분 검출로 계란이 문제가 되었을 때 하루에 몇십 개 먹어도 괜찮다고 하고, 생리대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되었을 때도 불과 며칠 만에 아무 문제없는 것처럼 발표했잖아요. 이게 정부의 보편적인 대응방법입니다. 정부는 새로운 문제가 닥쳤을 때 대응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워워’ 하고 진정시키는 게 매뉴얼입니다. 

 

화학물질 참사를 국가마다 겪고 있는데 먼 나라의 특별한 일인 것처럼 우리는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제품에 의해서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최악의 피해를 당하는 참사를 경험한 거죠. 우리나라가 경제 상황은 높아졌지만 화학물질 참사에 대한 감수성은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가습기 살균제 문제는 필연적으로 올 수밖에 없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제가 이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읽은 연구자의 논문을 보면 결론은 ‘우리가 세상을 바꾼 건 없다’입니다. 국민들이 이런 참사를 보면서 극도의 불신 상태에 빠져들고, 권력을 쥔 세력이 국민들의 불신이 자신의 위치를 흔들어 놓을 거라는 두려움을 가지면서 그때서야 제대로 된 법률을 제정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전문가인 우리는 이 불신의 뿌리가 더 깊게 자리잡게 하는 데 기여했을지는 몰라도, 세상이 좋아지는 데 기여하지 않았다는 거죠.

 

 

 

 

도대체 왜 노동자들이 이렇게 위험하게 일을 해야 하지? 

 

 

 

ⓒ 김신범

 

 

 

제 질문은 이렇게 흘러왔던 것 같습니다. 노동자들은 말도 안 되게 위험하게 일을 하거든요. 발암물질이 가득한 공장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일하는 노동자들, 공장이 들어서고 주민들이 발암물질에 노출되지만 우리나라 산업 발전에 기여한다고 박수 치고 있어요. 이건 단순히 공장과 주민과의 관계일 뿐만 아니라 수많은 가치들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고 그 가치들이 특정 사람들의 가치를 무시했을 때 권리가 침해되면서 문제는 시작됩니다. 

 

9가지의 질문을 바탕으로 전문가의 조언을 얻어 환경부 2021 화학안전정책포럼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공론장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이 공론장에서 함께 찾아낸 의미는 이해당사자들의, 이해당사자들에 의한 화학안전 의제 도출을 위한 공론의 장, 정부 화학안전 정책결정 참여의 장, 이해당사자 훈련과 역량강화의 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게 가장 큰 성과인 것 같아요.

 

 

ⓒ 지리산이음

 

 

새로운 고민 : 문제를 누가 정의할 것인가?

 

 

최근에는 2021년 화학사고지역대비체계 전국네트워크 연구회를 운영합니다. 우리나라는 사고가 났을 때 대피 명령을 발동시키는 권한이 의무가 법에 명시되어 있어요. 그동안은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소방대가 대피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없는 거죠. 그러니 상황판단 교육도 받아 본 적이 없어요. 지금 저희 연구회를 통해서 소방청에서는 현장 지휘관에게 사고 지휘관으로서의 훈련을 어떻게 할 것인가, 화물차 안전원에서는 교육과정을 어떻게 신설해서 지휘관 인증을 할 것인가, 지자체에서는 그렇게 훈련받은 사람들을 어느 지역 소방대에 배치할 것인가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찾아내고 우리가 바라는 방향으로 끌고 나가는 건 우리의 힘으로 가능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국가와 독립적 존재로서 시민사회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멋진 곳을 가고 있으면 국가는 우리를 보면서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경쟁력을 갖춘 우리의 가치를 만들자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발제 | 김신범
기록 및 정리 | 이경원
사진 | 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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