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이음 활동 소식

자료[남원/김양오인터뷰]공공의료의 최전선에서, 남원 의료원 노조 정상태 지부장

2020-07-02

※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의 지원사업을 통해 제작된 콘텐츠입니다.


 

김양오의 인터뷰 남원의 인물을 만나다


 

10년이 넘게 남원의 역사를 공부하고 알리는 일을 해온 김양오 활동가가 남원의 시민사회 활동가들을 만납니다. '역사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는 관용구처럼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을 이어오면서 남원의 오늘을 만들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남원의 현재와 미래를 비추어보려 합니다.

 

 

 

함께 행복한 세상을 위해 발로 뛰는 사람

남원 의료원 노조 정상태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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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 경상북도에서 시작한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한 상황에 다다랐을 때 남원 작은변화포럼 회원 가운데에서도 숨가쁘게 움직인 활동가가 있었다. 바로 남원의료원노조 정상태 지부장이다. 대구와 경상북도에서 발생한 코로나19 환자가 그 지역 의료기관에서 다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자, 정부는 다른 지역의 의료기관에 환자들을 보내 치료하도록 했다. 그 가운데 지리산권의 공공의료기관인 남원의료원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남원 시민들과 의료원 관계자들은 대구 환자들을 적극 받아들여 모두 완치시켜 돌려보냈다. 그 과정에서 봉쇄 되다시피 한 의료원와 남원 시민들을 연결한 창구가 바로 의료원 노조 정상태 지부장이었다. 

 

*

 

김양오 : 남원 의료원 노조 지부장이신데요, 어떻게 해서 의료원에서 노조 지부장으로 활동하게 되셨나요?

 

정상태 : 2007년 의료원에 입사했어요. 입사해서 2,3년 뒤부터 조합원 활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2012년도 별 성과없이 끝난 파업 이후 조합이 분열되면서 조합비도 안 걷히고 조합 활동이 많이 위축되었죠. 그렇게 어려운 상황일 때 전라북도 의료원 본부장을 하시던 분이 남원 지부장으로 내려와 조합을 재건하게 되었는데요, 그때 제가 사무장을 하겠다고 나섰죠. 당시 저는 육아휴직을 쓴 첫 남자직원이었습니다. 

 

김양오 : 아무도 그렇게 어려운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데 나선 이유가 뭔가요?

 

정상태 : 조합을 살리겠다고 나선 분을 도와주고 싶었어요. 저는 예전에 간부역할을 해 봐서 뭘 좀 아는데 그 분은 조합원 가입한 지 1,2년밖에 안 됐는데도 지부장을 하겠다고 하시니 도와주고 싶었죠.

 

김양오 : 지부장을 도와주겠다는 마음 말고도 이렇게 힘든 자리를 맡는다는 것은 남다른 어떤 마음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정상태 : 제 마음 바탕에는 소외된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늘 있는 것 같습니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임금 협상할 때 “사장님 행복하세요?” 하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행복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같이 좀 행복하면 안 되겠습니까?” 하면서 연봉 협상을 했죠. 결국 안 돼서 회사를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온 것인데 제 안에는 이렇게 사람들이 함께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청소년기에 친구따라 원불교에 다녔는데 그 영향도 좀 있는 것 같고 부모님들이 따뜻한 분이라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김양오 : 간부 활동하면서 가장 먼저 신경 쓴 것은 뭔가요?

 

정상태 : 간부하면서 제일 먼저 챙긴 부분은 조리실 조리사님들입니다. 가장 힘들게 일하면서 인정받지 못하고 소외된 분들이죠.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는데 누구는 계약직, 누구는 무기계약직, 누구는 정규직이더라고요. 제가 사무장하고 지부장 하는 동안에는 이것을 모두 똑같이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일을 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모두 정규직이죠. 정규직이 일고여덟 자리 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열 여섯 자리 모두 정규직입니다.

 

김양오 : 의사도 아니고 간호사도 아니고 행정직도 아닌 조리사들을 가장 먼저 생각한 게 정말 훌륭하십니다.

 

정상태 : 훌륭한 건 아니고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건데 그동안 안 그랬던 거죠.

 


*

 

 

김양오 : 올 해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남원의료원이 큰 활약을 했습니다. 그 때 저도 시민들의 정성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지부장님이 활동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는데요, 그 때 어땠는지 얘기 좀 해 주세요. 

 

정상태 : 정부에서 남원의료원에 입원 중인 환자들을 모두 빼고 대구 환자들을 받으라고 해서 바로 준비했습니다. 가장 힘든 것은 남원 시민들이었죠. 남원의 2차 의료기관이 의료원인데 환자들을 보살피지 못하게 됐으니 시민들이 많이 아프면 전주까지 가야 했잖아요. 당연히 시민들이 가장 힘드셨죠. 당시 대구에서 1차 51명, 나중에 해외 유입자 포함 4명이 더 오셨습니다. 

 

김양오 : 당연히 시민들이 가장 큰 불편을 겪었지만 의료원 관계자들도 어려웠던 점이 많았을 것 같아요. 

 

정상태 : 가장 어려웠던 것은 의료진들이 밖으로 못 나간다는 것었습니다. 혹시 내가 우리 가족한테 코로나를 옮기지 않을까? 내가 남원 최초의 감염자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의료진들이 거의 밖에 나가지 않았죠. 그런데 밖으로 못나가게 하는 여론과 민원 전화 때문에 더 힘들었습니다. 본래 중앙대책본부에서는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은 환자와 접촉한 사람으로 보지 않았어요. 그래서 다른 의료기관의 의료진들은 출퇴근을 다 했습니다. 그런데 남원은 언론에 의료진들은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밝혀 버려서 어쩌다 한번 집에 갔다 온 사람들이 이웃들에게 들켜 민원의 대상이 되었죠. 그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상처를 입고 힘들어 했습니다. 

 

두 번째는 음압병동이 없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병실뿐만 아니라 병동 전체가 다른 곳보다 압력이 낮은 음압병동이어야 하는데 그게 안 돼서 불안했죠. 환자와 의료진이 같은 층을 사용했기 때문에 감염 우려가 있었습니다. 동편은 환자 서편은 의료진 이런 식으로 같은 층에서 보냈거든요. 

 

보통 외부에서는 의료진들만 고생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사실은 방역팀이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간호사는 방호복을 입고 길게는 2시간 정도 일을 하면 되는데, 방역팀은 전체 병실을 다 돌아다니면서 환자가 만지는 물건이나 장소를 소독약으로 다 닦아야 했어요. 방호복을 입고 네다섯 시간동안 화장실을 포함해 병실 전체를 꼼꼼히 닦고 나면 땀에 흠뻑 젖습니다. 

 

김양오 : 그렇군요. 방역일은 누가 하신 건가요? 

 

정상태 : 병원 직원들이 했습니다. 병원이 폐쇄됐기 때문에 일반 환자를 못 받으니 병원 직원들이 방역을 하게 된 것이죠. 여자 직원들도 똑같이 했습니다.

 

가장 두려웠던 것은 남원 의료원 의사 중에 감염내과 전문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감염내과 전문의 없이 감염병동을 운영한 것이죠. 그래서 두려움이 좀 컸습니다. 감염내과 전문의가 있어서 컨트롤 타워가 되고 불안을 해소해 줘야 하는 데 그걸 못한 거죠. 중앙에서는 한 번 와서 시설이 이 정도면 됐네 하고 갔습니다다. 그게 다였죠. 나머지는 남원의료원에서 모두 알아서 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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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오 : 대구에 코로나가 극심할 때 전국의 의료진들이 대구로 대구로 달려갔는데요 남원에서도 가셨다고 들었습니다. 몇 분이나 가셨나요?

 

정상태 : 간호사 두 분만 자원해서 갔다 왔습니다. 많이 갈 수있는 상황은 아니었죠. 한 분은 2주, 한 분은 한 달동안 갔다 왔습니다. 한 달 있었던 문수진 간호사는 대구 의료원에서 본래 예정됐던 2주간 근무 뒤에 2주간 추가 근무를 신청한 거죠. 중증이었던 할머니 환자가 나아지는 것을 보고 싶어서 추가 근무를 신청했다고 하더라고요. 할머니 환자 옆에서 손녀처럼 살갑게 지내다가 많이 좋아지신 것을 보고 남원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간호사로서 소명의식이 분명히 있는 간호사고 노동조합 조합원입니다. 그런 분을 우리 조합의 인재로 키우는 게 제 꿈입니다.

 

김양오 : 대구에서 코로나 환자들이 남원에 오실 때 남원 시민사회는 기다렸다는 듯이 환영하는 현수막을 걸고 후원을 해서 언론에도 많이 나왔습니다. 그 때 정확히 어느 정도 후원을 했고 환자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정상태 : 의료원 앞에 걸린 현수막이 수십장이었죠. 더 많은 단체에서 현수막을 걸려다가 환경 문제를 생각해서 자제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기까지 했죠. 그 뒤 의료진과 환자들에게 응원 물품이 이어졌는데요, 시민들이 직접 싼 김밥부터 천연염색한 손수건까지 150여가지 물품을 지원받았습니다. 시민 사회와 의료원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후원 물품을 전해주는 역할을 제가 도왔는데요, 현장에서 시민들을 직접 만나니 정말 감동스러웠습니다. 치료가 다 끝나고 떠나시는 환자분들이 편지를 남기고 가셨어요. 

 

환자들이 한두 분 남았을 때 대구로 이제 가셔야 한다고 했더니 안 가려고 하셨어요. 대구에서 격리생활 했을 때는 너무 힘들었는데 남원에서는 의료진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단체가 현수막도 잔뜩 걸어 환영해 주고 잘 대해 주셔서 떠나기 싫어했죠. 할 수 없이 떠나실 때는 꼭 광한루에 놀러오겠다고 말씀하시고 떠나셨습니다. 시민들이 하트 포스트 잇에 “광한루로 꼭 놀러오세요.”하고 쓴 것을 기억하신 거죠. 나중에 그 분들이 광한루로 놀러 오시면 경상도 전라도 화합의 한마당이 되겠죠.

 

김양오 : 그랬군요. 그런 얘기를 들으니 동참했던 한 사람으로서 정말 보람을 느낍니다. 사실 하트 포스트잇에 쓴 광한루로 놀러 오시라는 말은 제가 생각해 낸 문구였거든요. 그 분들이 진짜로 광한루에 오시면 제가 꼭 해설을 해 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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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시민들은 직접 만든 김밥과 간식거리, 현수막 등으로 환자들을 반겼다.

 

대구 환자들이 돌아가면서 남긴 편지 중 일부분을 소개합니다.

 

 

“따뜻한 선생님들의 배려는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저희들의 쾌유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후원해주시고 파이팅해 주신 기관과 단체와 개인과 익명의 분들에게 항상 좋은 일 있기를 기원하며 축복합니다.”

 

“이제까지 남원은 대구에서 먼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기회에 저희 마음에 가까운 이웃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동안 받은 친절과 배려, 고마움을 잊지 않겠습니다.”

 

“의사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들께서 감염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친절하게 보살펴 주시고 정성껏 치료해 주신 덕택에 예전의 건강한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남원 시민 여러분께서 보내주신 넘치는 인정과 뜨거운 사랑 덕분에 완치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전라도로 가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가지 않으려고 생각했지만... 월드컵 경기장부터 애쓰시는 분들을 보고 우리나라 정말 대단하다 생각하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남원 병원에 도착한 후에는 더더욱 감동 받았습니다. 1인실 쓸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시고 지리산 전경, 친절하신 간호사님, 의사님들, 진료는 물론이고 청소까지 도맡아 해 주셨고 언제든 필요물품 챙겨주시고 의료체크는 물론이고 다들 너무 애쓰셨습니다. 또한 전라도민들의 따뜻한 후원.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이제 대구로 돌아가 남은 인생 이웃을 생각하며 어려운 사람들 도우며 열심히 살겠습니다.”

 

“입소할 때 입구에 프랭카드 내용들이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습니다. (대구 경북 힘내세요 외) 퇴원할 때 바쁘신 와중에도 인도 양측에 환송인사를 나오신 것을 보고 눈시울이 아련하였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김양오 : 그런데 코로나 환자를 잘 치료해 돌려보낸 의료원이 오히려 지금 더 힘들어졌다는 뉴스를 봤는데요, 남원도 그런가요?

 

정상태 : 지방의료원은 항상 공공부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24시간 분만을 담당하지만 출산률이 낮아 흑자를 낼 수가 없죠. 또 응급의료센터가 필요하고 공공의료 사업부, 호스피스 병동도 운영해야 합니다. 그런 부분에서는 이윤을 남길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적자죠. 거기다 이번 코로나 사태 때 정부의 명령으로 환자를 다 빼고 대구경북 환자를 받았는데 이거에 대한 지원을 국가가 100프로 책임져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손실보상금이라고 내려 온 돈이 턱없이 부족했죠. 건강보험공단에서 빌려주는 돈은 나중에 갚아야 하는 빚입니다. 두 가지 합쳐도 다음 달부터는 급여를 다 줄 수 있는 액수가 안 됩니다. 그래서 전라북도에서 50억을 빌려왔습니다. 이렇게 지원이 제대로 안돼서 계속 빚만 쌓여가니 머리가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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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오 : 남원에서는 오랫동안 공공의료 대학을 유치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공의료대학이 왜 꼭 남원에 있어야 하나요? 서울에서도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은데요. 

 

정상태 : 다른 곳은 준비가 안 돼 있습니다. 의과대학의 인원수 배분 문제가 있어서 서울은 힘듭니다. 남원은 폐교된 서남대 의대 정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리산권에 배정된 인원입니다. 서울에서 하게 되면 처음부터 인원수 확보부터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지금 바로 시작해도 의사가 배출되는데 7-8년이 걸리는데 다른 곳에서 하면 너무 늦습니다. 최대한 빨리 해야 합니다. 다른 곳에서 한다면 의사협회에서 더 반대할 겁니다.

 

김양오 : 지부장을 3년동안 하시면서 정말 여러 가지 일을 하셨는데요, 그 중에 이것만큼은 참 잘 했다 하는 게 뭘까요? 

 

정상태 : 5년동안 동결됐던 임금을 5년동안 따라잡았습니다. 1년에 두단계씩 올리면서 따라 잡은 거죠. 다른 지역은 계속 올라갔는데 남원만 동결됐던 것입니다. 만약 임금을 이렇게 잡아놓지 않은 상태에서 코로나가 발생했다면 매우 힘들었을 겁니다. 또 현재 우리 병원에는 계약직이 없습니다. 일시적인 사업에 대한 부분만 비정규직이 있고 필수 인력은 모두 정규직 8급으로 들어옵니다. 이렇게 큰 틀을 마련한 것이 보람입니다.

 

김양오 : 마지막으로 지부장님이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정상태 : 제가 바라는 것은 의료원이 지리산권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병원이 되는 겁니다. 따뜻하고 실력있는 의료진과 직원들, 의료원하면 미소를 띨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파서 오는 분들에게 더 따뜻해야 합니다.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 그런 것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시민 사회단체가 의료원에 대해 어떤 얘기를 하는 지 정말 들어보고 싶어요. “남원의료원에 바란다” 같은 제목을 걸고 원탁 토론 같은 것을 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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