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이음 활동 소식

자료[남원/김양오인터뷰]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오작교, 달빛소리방송 김영기 회장

2020-07-27

※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의 지원사업을 통해 제작된 콘텐츠입니다.


 

김양오의 인터뷰 남원의 인물을 만나다


 

10년이 넘게 남원의 역사를 공부하고 알리는 일을 해온 김양오 활동가가 남원의 시민사회 활동가들을 만납니다. '역사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는 관용구처럼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을 이어오면서 남원의 오늘을 만들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남원의 현재와 미래를 비추어보려 합니다.

 

 

 

 

다양한 매체로 남원의 모든 것을 전하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오작교같은 활동가

 

- 남원 문화예술계의 무선안테나, 달빛소리방송 김영기 회장

“지리산이 큰 산이듯 남원시는 스케일이 좀 컸으면 좋겠습니다”

 

팟케스트 피디겸 엔지니어로 활동하는 모습.jpg

(팟캐스트 피디겸 엔지니어로 활동하는 모습)

 

 

 요천 다리 위에서 페추니아꽃들이 굵은 비를 맞고 있었다. “아프겠다.” 순간 그를 바라보았다. 운전을 하면서도 곁으로 지나치는 꽃들이 비에 맞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저 표정. 

 

  세상 모든 생물과 무생물에게까지도 마음을 투사해 함축된 언어로 존재를 표현해 내는 신비로운 인류, 시인! 김영기님은 그런 시인이다. 그런데 그 살뜰한 마음을 시에만 가둬두지 않았다. 남원 구석구석을 누비며 남원의 과거와 현재를 찾아 내 7년동안이나 전북 블로그와 남원시 블로그에 기사를 올렸고 지금은 라디오 방송(팟캐스트 달빛소리)에 담아 소리로 전하고 있다. 

 

  김영기님이 7년동안 블로그에 올린 남원 관련 기사는 100건이 넘는다. 그것은 성실함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수치다. 성실함은 기본이고 고향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이 함께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블로그에 담은 남원의 역사와 문화 예술,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양이 많을 뿐 아니라 글의 깊이도 남다르다. 이미 나와 있는 자료를 수집해 짜깁기하는 수준이 아니라 역사의 시공간이 글 속에서 다시 살아나게 한다. 그리고 글을 잘 안 읽는 사람들도 그의 사진을 보면 글을 읽게 된다. 사진 작가 협회 정회원으로서 개인 사진전도 할만큼 수준 있는 사진가라 그런지 그가 찍는 사진 속에는 남다른 뭔가가 담겨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얼마 전 남원시 공식 블로그 기자를 내려놓아 더 이상 그의 기사를 보기는 힘들게 됐고 대신 라디오 방송으로 그를 만날 수 있다. 현재 남원 팟캐스트 달빛소리방송의 피디겸 대표인 김영기님과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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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뛰고 감성으로 쓰는 남원 대표 블로거 김영기님.jpg

(발로 뛰고 감성으로 쓰는 남원 대표 블로거 김영기님)

 

 

 “전라북도 블로그 기자와 남원시 블로그 기자를 오래 하셨는데, 라디오에 마음을 빼앗긴 이유가 무엇인가요?”

 

 홍보 블로그 기사는 대체로 자기만의 시각과 틀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톡톡 튀는 새로운 사람에게 바통을 이어 또 다른 변화와 발전을 꾀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전라북도 블로그는 공공부문 전국 블로그 경진대회에서 매년 대상을 받을 만큼 전국 최고 수준이고, 남원시 블로그는 제가 참여하여 남원시 관광과와 함께 처음 만들었을 때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지금은 홍보전산과로 주관부서가 바뀌어 안정된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발자국이 많지 않은 새로운 방식의 길에 마음이 흔들린 거죠.

 

 

 “그동안 블로그에 정말 많은 남원의 이야기를 쓰셨어요. 덕분에 저도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요, 그 중에 많이 안 알려진 것으로 이것만큼은 남원 사람들이 꼭 알아줬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남원은 선사시대 암각화에서부터 삼한시대, 기문가야, 삼국시대, 지리산 빨치산의 역사까지 모든 시대의 다양한 역사와 유물이 공존하고 있어서 그야말로 소도시 전체가 박물관입니다. 보여줄게 너무나 많은데 우선 당장 눈에 보이는 압도적인 규모의 볼거리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유물 유적에 살아있는 위대한 이야기를 들려줘서 감동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흩어져 있는 보석을 각각의 관련 코스로 (예를 들면 천 년의 표정, 석인상을 따라가는 남원여행) 꿰어서 목걸이를 만드는 작업이 바로 괜찮은 블로그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남원사람들이 꼭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역시 조선시대 4대 여류작가 김삼의당을 꼽겠습니다. 여자는 글을 배우면 안 되는 조선시대에 혼자 독학으로 글을 배우고, 같은 날 한동네에서 태어난 하립과 혼인해 대등한 문우로서 운명적인 사랑을 했던 여인입니다. 사대부나 기생이 아닌 평범한 여자로서 거의 유일한 여류작가인데, 김삼의당의 생가라도 빨리 복원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의 도시, 문화도시에 가장 걸맞는 분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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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문화팟캐스트 '달빛 소리 방송' 녹음 현장)

 

 

“달빛 소리 방송은 어떤 방송인가요? 시작한 계기, 구성원들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는 라디오를 듣고 성장했던 세대입니다. 라디오에서 정보를 얻고, 라디오 앞에서 밤을 밝히며 젖은 감성으로 상상력과 꿈을 키웠었죠. 그러다 보니 라디오에 대한 향수가 많습니다. 

 

  본래 라디오 방송의 탄생은 아마추어 무선통신 HAM을 하던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캐럴을 함께 들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즉, 이웃과 좋은 음악, 좋은 시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라디오 방송이 탄생한 거죠. 사실 제가 젊은 시절에 HAM에 푹 빠졌던 적이 있었는데, 1998년 지리산에 폭우가 쏟아져서 100여명이 사망 또는 실종한 피해가 발생했어요. 당시에는 지리산에서 휴대폰이 전혀 터지지 않았고, 경찰이나 소방의 현장 통신 시스템이 열악해서 저희들이 한 달간 현장에서 재난통신지원을 해줬습니다. 그때부터 아마추어 무선 통신사들은 지리산 권역으로 뭉쳐서 지리산에서 각종 사고가 발생하면 함께 통신지원 및 봉사활동을 했었죠.

 

 또 통폐합으로 문을 닫게 되는 영월방송국의 이야기를 다뤘던 ‘라디오 스타’ 영화를 보고 새로운 지역 라디오 방송의 가능성과 방향이라는 거창한 명분이 아니라 그냥 라디오의 향수에 몸살을 앓았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봄에 남원 문화도시 추진위원회 주관 팟캐스트 양성 교육이 있어서 수료한 뒤 교육 동기생들과 뜻을 합쳐 함께 달빛소리를 만들었습니다. 진행자에 김은자 남원시 공무원과, 시정소식과 의정소식을 전해주는 양해석 시의원, 문화계 소식을 전해주는 서옥자 시낭송가, 라이브 공연무대를 선사하는 박현광 가수, 마을이야기를 구수하게 들려주는 나숙희 활동가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방송에 어떤 이야기를 담아 오셨나요?”

 

 ‘남원 시민이 만들고 남원 시민이 함께 듣는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잘하는 방송보다는 서툴더라도 다양하게 참여하여 함께 즐기는 방향을 설정했고요, 남원의 문화와 역사를 밋밋하게 전달하기 보다는 목소리 극으로 만들어서 재밌고 유익하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재가 서울로 몰리던 시절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출향 문화 예술인들과 전화 인터뷰를 통해서 다시 고향과 연결시키는 플랫폼이 되었고요, 그들의 유년시절 아련한 고향의 추억을 들어보며 그들의 성장에 고향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문화도시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조언도 들어보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마을 이야기를 통해서는 우리가 사는 지역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둣돌을 놓고, 알면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각종 유익한 정보도 시민들에게 제공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팟캐스트를 잘 안 듣는 편인데 시민들이 많이 듣나요? 조회 수가 어느 정도이고 반응은 어떤가요?”

 

 인터넷 팟빵에 업로드 시키는데요, 실제 팟빵에서 찾아 듣는 사람은 많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대신 페이스북이나 밴드, 단톡방 등을 통해서 많이 홍보하고 있는데, 1년 이상 꾸준히 하다 보니 이젠 고정 애청자들이 제법 많이 생겼습니다. 며칠 전에는 남원뉴스 신문에서 2면을 전부 달빛소리방송 소개로 채워주셨고요. 공개방송을 해달라고 요청해오는 단체들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라디오 방송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저희 집 거실에 꾸며놓은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는 경우 특별한 일이 없는데, 역시 야외에서 하는 공개방송은 변수가 많아서 오히려 재미있습니다. 하얀 벚꽃이 흩날리는 날,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인 <혼불> 소설의 무대 옛 서도역에서 혼불 이야기와 음악공연까지 곁들였던 공개방송은 정말 낭만적이었고, 나름대로 품격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찔했던 기억은 목소리 극에 효과음을 넣기 위해 인터넷에서 목탁소리를 다운 받은 순간, 웜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어 녹음용 노트북을 포맷해야 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다행히 편집 전에 외장하드에 따로 보관한 원본이 있어서 겨우 방송을 내보낼 수는 있었습니다. 

 

 

*

 

 

 이렇게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김영기님의 직업은 따로 있다. 수백 명의 승객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시는 고속열차 KTX 승무원이다. 젊었을 때 대전교도소에서 교도관으로 일한 경험을 비롯해 여러 가지 직업과 수많은 자격증을 보유한 그는 열차에서 일하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철도 시가 많아서 기차 시인으로 유명하지만, 그런 그도 이제 시간의 힘에 밀려 2년 뒤 정년퇴임을 앞두고 현재 임금피크제로 근무하고 있다.

 

 

 “직업상 기차를 너무 많이 타시니까 지겨우실 만한데 여전히 기차를 좋아하시나요?”

 

 기차는 질곡 많았던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꿰고 있는 하나의 궤나 축같은 느낌이 듭니다. 우리 민족의 애잔한 서정과 애환이 기적소리에는 녹아 있고요. 마치 차창마다 각각의 시대 모습이 비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사춘기 시절 정거장에만 가면 마음이 들떴고, 열차를 타면 세상 밖으로 은하철도처럼 날아가는 듯한 기분에 빠졌지요. 그러다가 성장하면서 점차 열차의 육중한 모습에서 힘과 매력을 느꼈고, 레일 마디를 건너뛰는 소음마저도 아름다운 소나타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레일은 첼로의 현으로 보이고, 역은 손가락으로 짚어주는 코드로, 열차는 첼로의 활로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열차와 지독한 사랑에 빠졌습니다.

 

 고속열차 시대에도 여전히 열차를 사랑하고, 그런 열차에서 일하는 게 너무나 행복합니다. 지금도 열차가 지나가는 것만 봐도 좋습니다.

 

 

 “기차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철도에도 서비스 마인드가 도입이 되던 시절에 각 칸마다 객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인사를 했는데, 할머니 한분이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니 “내가 쭉 지켜본게롱 들어옴선 나감선 꼬박꼬박 인사하는 저런 승무원은 첨 봤어요. 여러분 박수!”하고 소리를 지르니까 다들 일어나서 함성과 함께 박수를 쳐주던 기억이 가장 많이 납니다. 지금도 객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실 것만 같아서 가슴이 설레고 미소가 절로 지어집니다.

 

 열차 안은 세상의 축소판입니다. 사람 사는 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다 일어나니까요. 그래서 승무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기차 안에서 유명한 분들도 많이 만났던데 특별한 일화가 있으면 한 가지만 소개해 주세요.”

 

 명사들을 자주 만나죠. 언젠가는 고속열차에서 카메라를 든 방송팀이 촬영 준비를 하고 있더군요. 사전에 통보를 못 받은 터라 승인 문서를 보여주시라고 했더니, 다큐를 찍는데 예정에 없는 열차 이동장면을 찍게 돼서 사전 신청을 못했다는 겁니다. 주인공을 봤더니 전유성 개그맨이었습니다. 객실의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최소한의 앵글로 빨리 촬영하도록 도와줬죠. 지리산권역 특히 남원으로 오신 분이니까요. 그러나 저러나 이런 내용은 회사에서 알면 안 되는데요. (웃음)

 

 

*

 

 

문락당. 기차 안에서 승객과 승무원으로 만나 지금은 절친이 된 서울의 사업가 이강국씨가 지어준 김영기님 집의 당호다. 문학과 음악을 즐기는 집이라는 뜻인데 실제로 그의 집에는 문화예술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팟캐스트 녹음도 문락당에서 하고 작은음악회도 열렸다. 문락당은 김영기님이 꼭 복원하고 싶다던 조선시대 여류시인 김삼의당과 하립 부부가 살았던 유천마을에 있다.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문락당이 김삼의당 부부가 살던 유천 마을에 있다는 게 우연만은 아닌 듯하다. 

 

 오랫동안 남원시민 사회에서 사람들이 서로 상승효과를 낼 수 있도록 이어주고 세심한 곳까지 살피며 많은 일을 성사시켜 온 사람, 김영기님. 시립김병종 미술관에서도 시낭송인들 사이에서도 문인협회에서도 사진협회에서도 그밖에 여러 곳에서 그는 늘 윤활유같은 존재다. 

 

 

김영기님이 추진한 서도역 음악회 모습.jpg

(김영기님이 추진한 서도역 음악회 모습)

 

 

 

“작년 서도역에서 열린 음악회도 김영기 회장님이 추진한 것으로 아는데요, 그밖에 추진하신 다른 행사들이 있나요?”

 

 작년과 올 봄 벚꽃이 활짝 피어가는 서도역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었습니다. 사매 지역이 고향인 서울의 사업가 이강국씨가 도움을 줘서 작년과 올해 음악회를 열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지금 순창의 베르자르당 갤러리 카페에서는 남원의 대표 화가 이경섭선생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베르자르당은 순창의 명소가 된 곳인데 예술을 사랑하는 조계칠 사장님과 뜻이 맞아 남원의 시낭송인들과 지리산 노래패가 공연을 했었고 이번엔 이경섭 화가의 개인전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다리만 놓은 것이죠. 2년 전 시립김병종 미술관에서 전라북도 문인들 80여명이 모여 시낭송회를 하기도 했고 그밖에 여러 가지 자잘한 행사를 추진해 왔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원 토박이 활동가로서 남원시와 시민사회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지리산이 큰 산이듯 남원시는 스케일이 좀 더 컸으면 좋겠습니다. 아기자기한 꾸미기나 나무 조형물은 매년 반복해서 같은 예산이 들어가야 하고 감동스럽지도 않습니다. 문화 관광도시면서도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랜드 마크가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청년들을 위한 배려와 지원이 부족하고 동학의 성지 은적암이나, 김삼의당 생가 복원 같이 문화와 예술에는 늘 소극적인 게 안타깝습니다. 

 

 시민사회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더 많이 대변해주고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아주 잘하고 있지만 연대의 폭을 더욱 넓혔으면 좋겠습니다. 시대가 변해서 지금은 조직의 규모보다는 각 조직 간의 유기적이고 탄력적인 연대가 더 큰 힘을 발휘하니까요. 

 

 마지막으로 어떤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력을 키우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김영기님과 인터뷰를 하면서 든 생각은 정말 남원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는 분이라는 것이다. 특히 문화예술 분야에 대해서는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있고 남원뿐 아니라 순창을 비롯해 인근 지역과 연계해서 발전시킬 방안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미 남원의 문화예술인들과 순창, 임실의 인물들이 김영기님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교류를 하고 있다.   

 

접시꽃 당신으로 유명한 도종환 시인이 문화체육부 장관이 됐을 때 다들 놀라워했던 기억 난다. 남원시도 남원에 그런 인물이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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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 김영기님이 추진한 시립미술관 시낭송회 모습 / 오른쪽 : 김영기님 집에서 한 작은 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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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기

 

남원역 / 김영기

 

그대 내게 올 때는 KTX 타고 와라

한눈팔지 말고 뒤돌아보지도 말고

휘파람 불며 날아와

조명도 없는 승강장 역명판에 파르르 꽂혀라


가슴 뛰는 전설 하나 황급히 등불 밝혀

조랑말 타고 나갈 것이니

거기서부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광한루로 가보자


세상에 

함께 있는 시간만큼 빠른 것이 어딨더냐

 

은하수 건널 수 있게 열차가 오작교로 있으니

그대 내게 올 땐

수천 마리 까치의 날갯짓 소리로 와라

견우직녀의 요란한 발걸음 소리로 와라

바람을 거슬러 힘차게 꼬리치는

산천 열차의 파란 지느러미로 그렇게 와라 

 

 

- <겨울연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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