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으로 활동하다 가장 아끼는 음식을 아낌없이 나누는 사람, 남원인의 밥상 김혜정 이사장 
황톳물에 잠긴 노암동 우리 마을 주택가 남원에 폭우가 쏟아졌고 우리 동네가 황톳물에 잠겼다. 70평생 살았던 노인들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다. 물은 하루 만에 빠졌으나 수마가 할퀴고 간 자리는 처참하기만 했다. 하천변에 줄지어 늘어서 있는 주택들 대부분이 피해를 입어 살림살이를 죄다 못쓰게 됐고 당장 밥을 해 먹을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 새벽 3시 30분에 갑자기 안방까지 밀려든 황톳물은 아무것도 챙길 시간을 주지 않았다. 16층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는 처참한 우리 동네의 모습에 우리도 뭔가를 해야겠다 싶은 마음에 마을모임의 핵심 인물인 김혜정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수재민들이 얼마나 기운이 없을 거야? 기운 내시라고 연잎밥 만들어 드리면 어떨까?” “연잎밥이요? 그거 좋아요. 먹기도 간단하고 찰밥이라 든든하겠어요.” 어치피 올 한 해 우리 마을 모임의 중점 사업이 어려운 이웃들과 반찬을 나누는 ‘반찬나눈데이’라 그 사업비로 하면 되니 사람들만 모여주면 되는 것이었다. 당장 마을모임 카톡방에 글을 올렸고 금세 여러 사람들의 찬성과 함께 하겠다는 의지가 모아졌다. 해오라기 바윗골 마을모임 회원들과 김혜정 언니가 이사장으로 있는 남원인의 밥상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 연잎밥 100개를 싸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새싹인삼이 한 뿌리씩 들어간 두툼한 연잎밥을 푹푹 잘 쪄서 수해 지역을 찾아가 마을 분들과 동장님께 드렸다. 경로당에 모여 계신 할머니들게 연잎밥을 전해드리며 “할머니, 연잎밥 드셔보신 적 있으세요?” 하니 “아니~, 텔레비전으로나 봤지 못 먹어봤어~.” 하시며 웃는다. 평생 겪어 보지 못한 물난리에 가슴을 쓸어내리던 할머니들에게 연잎밥이 작은 위로가 되는 순간이다. 
물난리를 겪고 있는 이웃들에게는 도시락을, 수해복구를 도우러 온 국군 장병들을 위해서는 샌드위치를, 대구에서 온 코로나19 환자들과 의료진을 위해서는 김밥을 준비했다. 이것으로 끝인가 했다. 하지만 김혜정 이사장은 이렇게 쉽게 일을 끝내고 말 사람이 아니다. 수재민들의 아픔이 온 몸으로 전해져 가만 있을 수가 없다며 다음날은 도시락을 50개 싸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옥수수와 단호박을 쪄서 간식으로 보냈고 그 다음 주는 월화수목금 5일동안 도시락 60개를 매일 쌌다. 그 비용은 나와 김혜정 이사장이 밴드와 페이스북에 호소해 모은 성금으로 충당했다. 며칠 만에 200만원 가량이 모였다. 사람들은 성금도 잘 낸다. 지난 3월 대구의 코로나 환자들이 남원의료원에 입원하는 사태가 벌어졌을 때도 그랬다. 고생하는 의료진들을 위해 김밥을 싸 주자고 제안한 것이 김혜정 이사장이었고 식재료값 20만원만을 모으고자 글을 올린 게 나였다. 그랬는데 그 때도 단 며칠만에 100만원이 넘게 모아져 김밥 두 번 싸고 다른 간식도 여러번 보내야 했다.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곳은 남원 구도심, 상가가 거의 죽어있는 길가에 쭈그려 앉아 있듯 서있는 ‘김밥보감’이라는 가게다. ‘김밥보감’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으나 김밥은 더이상 싸지 않는 이 아홉평짜리 작은 공간에서 기적같은 일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있는 사람, 김혜정 이사장. 10년 동안 멀리서 또는 아주 가까이서 지켜 봐온 친한 언니지만 그 속에 과연 무엇이 있길래 이렇게까지 남을 위해 음식으로 헌신하는지 알고 싶어 이번 인터뷰 대상자로 삼았다. 다짜고짜 물었다. “도대체 왜 자꾸 음식을 해서 사람들한테 주는 건가요?” * 김혜정 : 밥은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기초적인 행위니까요. 그리고 내가 할 줄 아는 게 그거밖에 없으니까 붙잡고 있는 거에요. 생명을 해하지 않는 건강하고 좋은 음식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김양오 : 언제부터 음식하는 것을 좋아하고 또 잘하게 되었나요? 김혜정 : 태어날 때부터 음식점집 딸이었어요. 항상 밥하고 음식하는 환경에서 자라서 자연히 삶의 일부가 된 것 같아요. 김양오 : 형제들이 많으신 것 같은데 음식을 업으로 하시는 분이 또 있나요? 혹시 타고난 것이 아닐까요? 김혜정 : 다들 음식을 잘 하긴 하는데 전적으로 하는 사람은 저밖에 없어요. 저는 어려서부터 소꿉놀이를 가장 좋아했어요. 소꿉놀이를 같이 할 수 있는 친구들하고만 친했고 그게 그렇게 재밌었어요. 거의 매일 소꿉놀이를 하지 않았나 싶어요. 진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지만 장난감으로 어릴 때부터 요리를 한 것이죠. 밥이나 요리하는 것을 그렇게 재밌어 하고 좋아했던 걸 보면 타고난 것도 같아요. 김양오 : 본인이 직접 만든 음식으로 다른 사람을 만족시킨 첫 경험은 언제 하셨을까요? 김혜정 : 고등학교 때 어머니 지도를 받으며 처음 열무김치를 담갔는데 사람들이 맛있다고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을 보고 보람을 느꼈던 게 생각나요. 12년 전에 몇 년 간 비영리 민간단체에서 꽤 오랫동안 공양주 역할을 했어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팔 걷어부치고 구정물에 손을 담그게 되더라고요. 저절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죠. 그냥 그것이 내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걸 보니 타고 난 것 같아요. 그 때 사람들에게 댓가 없이 밥해서 나눠주고 봉사하는 것을 통해 내공이 단단해졌다고 생각해요. 내가 김혜정 이사장을 인터뷰 대상자로 모시려고 했던 게 바로 이런 까닭이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음식이 필요한 곳에 나타나 팔 걷어부치고 음식을 척척 해내는 활동가. 4년 전 우리 마을모임을 처음 조직할 때 사람들을 엮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그 때 김혜정 이사장이 큰 역할을 해 주셨다. 김밥을 사다 먹고 피자를 시켜 먹으며 모임을 했다면 이렇게 끈끈하지 않았을 사람들. 김혜정 이사장의 요리 철학을 들으며 함께 음식을 해 먹었더니 모임이 밀가루반죽 부풀듯이 커져갔다. 
요리로 사람을 움직이고 조직하는 김혜정님 김양오 : 궁금한 분들이 많아서 그러는데요, 젊었을 때 무슨 일을 하셨나요? 김혜정 : 20대 때 서울의 큰 방송국에서 비드라마 교양 오락 프로의 대본을 쓰는 구성작가 일을 했어요. 드라마 작가로 활동하고 싶었는데 그런 자리를 얻지 못했고 방송 언저리에서 구성 작가 직을 몇 년 해 봤죠. 그런데 그게 무척 소모적인 일이라는 생각, 방송국의 일개 부속품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그만 두고 젊은 날의 방황기를 보냈죠. 나중에 시민단체와 인연이 되어 비로소 방황을 잠재우고 밥하고 요리하고 음식해서 나누는 삶의 궤도에서 한결같이 죽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죠. 김양오 : 그렇지만 댓가를 제대로 받지도 않으시면서 이 일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계속 하시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김혜정 : 더디고 게으르고 저조할지언정 중단하지 않고 가고 있는 길, 거창하게 들릴 지 모르지만 구도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밥하면서 깨달음을 얻고 있는 것이죠. 수행하는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고 성장하는 방편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저는 밥을 하면서 수행하는 것이랍니다. 3년전인가? 학교 급식 노동자들에 대해 어떤 국회의원이 폄하하는 발언을 한 적이 있어요. 동네 밥하는 아줌마들이라고요. 저는 그 말이 곱씹어지면서 밥을 해주는 일이 목숨을 이어주는 일이며 얼마나 숭고한 일인데 그렇게 말하는가? 뭘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때 밥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밥에 대한 깨달음이 온 것 같아요. 밥을 해 주는 것은 생명을 이어주는 일이구나 하는 것을 온 몸으로 깨쳤던 순간이 있었고 그 때 전율을 느꼈죠. 한 끼니 한 끼니가 점점이 이어져 하나의 생명선이 되는 것이라 한끼 한끼 밥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 김혜정 이사장은 밥에도 영성이 있다고 믿는다. 밥의 영성을 체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갓 지은 밥을 한 그릇 떠 놓고 밥에서 나오는 냄새와 김으로 표현되는 밥의 에너지를 느끼며 그 앞에 벅찬 감정으로 거룩하게 서 있는 김혜정 이사장을 떠올리니 밀레의 그림 만종이 생각난다. 그것이 진정한 기도이며 명상이 아닐까? 김혜정 : 특별한 재료에서 그런 느낌을 더 받곤 합니다. 20년 된 된장이 그런데요, 그 된장을 만드신 분들이 민주화 운동하다가 석방되신 분들인데 판로가 없어서 묵혀 두었던 된장이었어요. 만든 분들의 에너지가 담겨있어서 그런지 된장죽을 끓여 완성되었을 때 찌르르르 벅찬 감동을 느꼈어요. 그리고 신선한 채소들을 다룰 때 교감이 되죠. 물에 씻어 놓은 채소들한테서 풍겨나오는 알록달록한 빛과 에너지를 보면서 환희를 느낍니다. 저는 요리도 예술활동이라고 봅니다. 혼자 남아서 늦은 시간까지 재료를 다듬을 때 엄청 몰입도가 높은데 그 재료들이 내 손을 거쳐서 뭔가로 만들어져 완성됐을 때 정말 기쁘고 뿌듯하죠. 그 요리를 사람들에게 나눠줬을 때는 더 감동이죠. 요리사는 영성가이고 예술가입니다. 몇 년 전 김혜정 이사장이 사는 운봉 바래봉 아래 그 분의 집에 몇 번 놀러간 적이 있다. 여럿이 간 적도 있고 혼자 간 적도 있는데 그 때마다 밥을 차려 주셨다. 혼자 갔을 때도 자연재료로 만든 음식 한상, 여럿이 갔을 때도 한 상 푸짐하게 차려 주셨다. 특히 노란 호박꽃을 통째로 부친 호박꽃전은 잊을 수가 없다. 갈 때마다 색다른 음식들이 반겨주는 그 분의 부엌은 단순히 요리의 공간이 아니라 수행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이윤보다는 생명을 살리는 음식을 만드는, 남원인의 밥상 김혜정 이사장 김양오 : 사람들과 요리를 같이 하는 프로그램을 많이 만드시고 계시는데, 왜 그런 것을 하는 거죠? 혼자하면 더 쉽게 빨리 하시고 마음대로 하실 수도 있는데 말이죠. 김혜정 : 요리를 하든 안하든 그 곳에 함께 있는 사람들은 기대감이 있는 것같습니다. 다들 요리 활동을 좋아하고 같이 만들어서 같이 먹으니 이것이 공동체가 아닐까요?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다들 진실해 집니다. 밥 앞에서는 거짓이 없습니다. 진실된 순간에 마음을 열고 교감을 한다면 2차 효과가 파생될 수 있고 또다른 어떤 일을 궁리하고 공동체가 발전해 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올 4월 코로나 19 사태가 확산되면서 소규모 생산, 판매자들의 판로가 막히는 게 안타까워 나는 남원 아나바다 밴드 운영자에게 직거래 밴드 장터로 확대해 운영하자고 제안했다. 그 제안이 받아들여져 직거래밴드장터가 만들어졌고 순식간에 가입자가 수백명이 되었다. 많은 시민들이 재활용 물품들이나 생산품을 올려 매우 활발하게 직거래가 이루어졌고 춘향제 때 팔려고 얼려 두었던 옥수수를 못팔아 발을 동동거리던 생산자는 그 많은 옥수수를 다 팔기도 했다. 그리고 ‘남원인의 밥상’ 협동조합은 다양한 반찬과 음식을 만들어 밴드에 올려 팔기 시작했고 밴드에서 가장 인기있는 생산자가 되었다. 
가장 아끼는 음식이기 때문에 아낌없이 나누고 싶습니다. 김혜정 : 우리가 공급하는 반찬은 일반 반찬가게에서 접하는 반찬과는 좀 다르죠. 재료부터가 다릅니다. 이윤을 남기기 보다는 좋은 음식을 공급하자는 뜻으로 만든 협동조합이라 공설시장과 로컬푸드 매장에서 지역 생산물을 사서 쓰고 있습니다. 가공식품이나 양념은 주로 생협 물품을 사용하죠. 최대한 좋은 재료로 정성껏 만들어서 드리고 싶은 마음에서입니다. 그러니 이윤이 많이 남을 리가 없죠. 한번은 20년된 된장으로 약된장을 만들어 밴드에 올렸는데 그것을 사 먹고 입맛이 돌아와 아픈 것도 나았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할머니가 해 주시던 된장 그 맛이었다며 감사해 하셨죠. 그런 얘기를 들으면 정말 보람을 느낍니다. 김양오 : 음식을 통해 남원 시민들을 많이 만나셨는데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김혜정 : 하루에 열 명이나 스무명 쯤 찾아오셔서 음식을 가져가시는데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 분들이 오히려 더 감사해 하는 걸 봅니다. 우리 가게가 도시재생 구역이라 가게 앞 길이 1년 내내 공사중입니다. 그래서 드나들기 힘들고 주차하기도 힘든 환경인데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기꺼이 고마워하며 음식을 가져가십니다. 우리 음식에 대한 기대와 믿음, 만족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공간이 너무 불편한 현실 때문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시민들의 기대가 유지될 수 있도록 좋은 공간이 확보되면 좋겠습니다. 9평 남짓한 작은 가게. 주방은 원룸 자취방에나 있을 법한 작은 부엌이다. 그 부엌에서 60명분의 도시락과 130줄의 김밥, 250개의 샌드위치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넓고 편한 요리시설이 갖춰진 주방이라면 반나절이면 할 일이 이곳에서는 이틀 꼬박 걸려서 탄생된다. 그 시간은 모두 김혜정 이사장의 희생으로 채워지고 있다. 그래서 김혜정 이사장의 꿈은 대여섯 명이 함께 요리할 수 있는 아일랜드 식탁이 몇 개 있는 홀과 두 사람이 너끈히 들어가서 일할 수 있을 만큼 넓은 주방이 있는 공유부엌이다. 그런 공간만 있다면 도깨비 뿔처럼 머릿 속에서 솟아나는 수많은 요리들을 시민들과 함께 하며 한도 끝도 없이 나눌 사람이다. 수해 복구에 왕방울같은 땀을 뚝뚝 흘리는 아들 같은 국군 장병들을 위해 샌드위치 250개를 싸겠다고 마음 먹는 일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넓고 쾌적한 공유 부엌만 있다면 그보다 훨씬 더한 일도 해낼 분이다. 
전통시장에서 남원의 맛을 기록하는 김혜정님 김양오 : ‘여뀌울’ 편집장을 하시면서 남원 음식을 기록하는 활동도 하셨는데 남원 음식에는 어떤 특징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김혜정 : 특별한 특징이 없는 게 특징이라고 할까요? 진한 개미가 느껴지는 남도 음식도 아니고 싱겁고 단백한 중부지방 음식도 아니고 자극적이지도 않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경계에 있는 맛입니다. 그래서 이렇게도 될 수 있고 저렇게도 될 수 있는 음식이라고 할 수 있죠. 이것이 남원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제가 남원에 발 붙인 지 10년이 넘었는데요, 남원 사람들도 음식처럼 순하고 담백하고 여유가 있는 것 같아요. 좀 심심하고 무맛같은 동네입니다. 그것이 매력이고 질리지 않죠. 김양오 : 지금 남원에는 어떤 활동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김혜정 : 짭조름한 밑반찬 같은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제 같이 밥이나 먹자’ 라는 말을 흔하게 합니다. 영어로 ‘소셜다이닝’이라고 하는데 한 달에 한번이든 두 달에 한 번이든 정기적으로 ‘밥먹는 날’을 만들어서 파벌 가리지 말고 다 같이 밥을 먹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밥을 같이 먹으면 격이 없어지고 갈등도 해소되고 그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밥으로 대동단결. 김양오 : 활동가들이 활동은 열심히 하는데 사실 음식을 제대로 만들어 먹거나 먹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음식을 먹어야 건강하게 오래 활동할 수 있을까? 김혜정 : 활동가들의 몸은 개인의 몸이 아니라 사회의 몸입니다. 자기 몸을 그 누구보다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내가 먹은 것이 바로 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가 소중하면 먹는 것을 그렇게 아무렇게나 먹으면 안 됩니다. 지금 먹을 거리 환경은 풍성하지만 건강하지 않은 음식이 너무 널려 있습니다. 고기는 피할 수 없는 유혹인데 지나치게 먹지 말아야 합니다. 옛날에 먹던 정도로만 먹어야 하죠. 고기를 자주 먹으면 몸이 자꾸 산성화되고 노화와 온갖 병의 근원이 됩니다. 온갖 사회문제가 집약된 것이 육식인데 이걸 단절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저도 많이 먹지는 않지만 과감하게 끊지 못하는 괴리에 놓여있습니다. 김양오 : 뭔가 남다른 꿈이 있어 보이십니다. 앞으로 계획이나 꿈이 있으신가요? 김혜정 : 저한테는 남다른 꿈이 있습니다. 지금은 동네 밥하는 아줌마지만 이담에 크면 꼭 ‘동네 밥하는 할머니’가 될 겁니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지구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꿈 깨야 합니다. 정부가 언제까지 우리를 보호해 줄 수 있을까요? 가장 쉽게 할 수 있고 중요한 게 밥입니다. 면역력을 밥으로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백신보다 밥이 더 중요합니다. 백신만 기다리지 말고 당장 오늘 저녁부터 우리 밥상을 꼼꼼히 들여다 보고 생각해 가면서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가정이 살고 우리나라가 삽니다. * 그리고 김혜정 이사장은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食一碗萬事知 식일완만사지” 이 말은 동학의 2대 지도자 해월 최시형의 법서에 나오는 말인데 밥 한 그릇에 모든 이치가 다 들어있다는 말이다. 쌀 한톨에 우주의 무게가 담겨 있다는 말처럼 밥 한 그릇의 이치를 깨달으면 세상 만사 이치를 다 깨닫는다는 이말은 먹는 것이 얼마나 중한 것인지 무겁게 알려주는 말이다. 칼을 들고 밥주걱을 들고 국자를 들어 사람들이 먹을 것을 만들어 내는 공양주 김혜정 이사장. 그 분의 활동은 바로 ‘밥을 하는 것’이다. |
※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의 지원사업을 통해 제작된 콘텐츠입니다.
김양오의 인터뷰 남원의 인물을 만나다
10년이 넘게 남원의 역사를 공부하고 알리는 일을 해온 김양오 활동가가 남원의 시민사회 활동가들을 만납니다. '역사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는 관용구처럼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을 이어오면서 남원의 오늘을 만들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남원의 현재와 미래를 비추어보려 합니다.
음식으로 활동하다
가장 아끼는 음식을 아낌없이 나누는 사람,
남원인의 밥상 김혜정 이사장
황톳물에 잠긴 노암동 우리 마을 주택가
남원에 폭우가 쏟아졌고 우리 동네가 황톳물에 잠겼다. 70평생 살았던 노인들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다. 물은 하루 만에 빠졌으나 수마가 할퀴고 간 자리는 처참하기만 했다. 하천변에 줄지어 늘어서 있는 주택들 대부분이 피해를 입어 살림살이를 죄다 못쓰게 됐고 당장 밥을 해 먹을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 새벽 3시 30분에 갑자기 안방까지 밀려든 황톳물은 아무것도 챙길 시간을 주지 않았다.
16층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는 처참한 우리 동네의 모습에 우리도 뭔가를 해야겠다 싶은 마음에 마을모임의 핵심 인물인 김혜정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수재민들이 얼마나 기운이 없을 거야? 기운 내시라고 연잎밥 만들어 드리면 어떨까?”
“연잎밥이요? 그거 좋아요. 먹기도 간단하고 찰밥이라 든든하겠어요.”
어치피 올 한 해 우리 마을 모임의 중점 사업이 어려운 이웃들과 반찬을 나누는 ‘반찬나눈데이’라 그 사업비로 하면 되니 사람들만 모여주면 되는 것이었다. 당장 마을모임 카톡방에 글을 올렸고 금세 여러 사람들의 찬성과 함께 하겠다는 의지가 모아졌다.
해오라기 바윗골 마을모임 회원들과 김혜정 언니가 이사장으로 있는 남원인의 밥상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 연잎밥 100개를 싸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새싹인삼이 한 뿌리씩 들어간 두툼한 연잎밥을 푹푹 잘 쪄서 수해 지역을 찾아가 마을 분들과 동장님께 드렸다. 경로당에 모여 계신 할머니들게 연잎밥을 전해드리며 “할머니, 연잎밥 드셔보신 적 있으세요?” 하니 “아니~, 텔레비전으로나 봤지 못 먹어봤어~.” 하시며 웃는다. 평생 겪어 보지 못한 물난리에 가슴을 쓸어내리던 할머니들에게 연잎밥이 작은 위로가 되는 순간이다.
물난리를 겪고 있는 이웃들에게는 도시락을, 수해복구를 도우러 온 국군 장병들을 위해서는 샌드위치를, 대구에서 온 코로나19 환자들과 의료진을 위해서는 김밥을 준비했다.
이것으로 끝인가 했다. 하지만 김혜정 이사장은 이렇게 쉽게 일을 끝내고 말 사람이 아니다. 수재민들의 아픔이 온 몸으로 전해져 가만 있을 수가 없다며 다음날은 도시락을 50개 싸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옥수수와 단호박을 쪄서 간식으로 보냈고 그 다음 주는 월화수목금 5일동안 도시락 60개를 매일 쌌다. 그 비용은 나와 김혜정 이사장이 밴드와 페이스북에 호소해 모은 성금으로 충당했다. 며칠 만에 200만원 가량이 모였다. 사람들은 성금도 잘 낸다. 지난 3월 대구의 코로나 환자들이 남원의료원에 입원하는 사태가 벌어졌을 때도 그랬다. 고생하는 의료진들을 위해 김밥을 싸 주자고 제안한 것이 김혜정 이사장이었고 식재료값 20만원만을 모으고자 글을 올린 게 나였다. 그랬는데 그 때도 단 며칠만에 100만원이 넘게 모아져 김밥 두 번 싸고 다른 간식도 여러번 보내야 했다.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곳은 남원 구도심, 상가가 거의 죽어있는 길가에 쭈그려 앉아 있듯 서있는 ‘김밥보감’이라는 가게다. ‘김밥보감’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으나 김밥은 더이상 싸지 않는 이 아홉평짜리 작은 공간에서 기적같은 일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있는 사람, 김혜정 이사장.
10년 동안 멀리서 또는 아주 가까이서 지켜 봐온 친한 언니지만 그 속에 과연 무엇이 있길래 이렇게까지 남을 위해 음식으로 헌신하는지 알고 싶어 이번 인터뷰 대상자로 삼았다. 다짜고짜 물었다.
“도대체 왜 자꾸 음식을 해서 사람들한테 주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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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 : 밥은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기초적인 행위니까요. 그리고 내가 할 줄 아는 게 그거밖에 없으니까 붙잡고 있는 거에요. 생명을 해하지 않는 건강하고 좋은 음식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김양오 : 언제부터 음식하는 것을 좋아하고 또 잘하게 되었나요?
김혜정 : 태어날 때부터 음식점집 딸이었어요. 항상 밥하고 음식하는 환경에서 자라서 자연히 삶의 일부가 된 것 같아요.
김양오 : 형제들이 많으신 것 같은데 음식을 업으로 하시는 분이 또 있나요? 혹시 타고난 것이 아닐까요?
김혜정 : 다들 음식을 잘 하긴 하는데 전적으로 하는 사람은 저밖에 없어요. 저는 어려서부터 소꿉놀이를 가장 좋아했어요. 소꿉놀이를 같이 할 수 있는 친구들하고만 친했고 그게 그렇게 재밌었어요. 거의 매일 소꿉놀이를 하지 않았나 싶어요. 진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지만 장난감으로 어릴 때부터 요리를 한 것이죠. 밥이나 요리하는 것을 그렇게 재밌어 하고 좋아했던 걸 보면 타고난 것도 같아요.
김양오 : 본인이 직접 만든 음식으로 다른 사람을 만족시킨 첫 경험은 언제 하셨을까요?
김혜정 : 고등학교 때 어머니 지도를 받으며 처음 열무김치를 담갔는데 사람들이 맛있다고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을 보고 보람을 느꼈던 게 생각나요.
12년 전에 몇 년 간 비영리 민간단체에서 꽤 오랫동안 공양주 역할을 했어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팔 걷어부치고 구정물에 손을 담그게 되더라고요. 저절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죠. 그냥 그것이 내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걸 보니 타고 난 것 같아요. 그 때 사람들에게 댓가 없이 밥해서 나눠주고 봉사하는 것을 통해 내공이 단단해졌다고 생각해요.
내가 김혜정 이사장을 인터뷰 대상자로 모시려고 했던 게 바로 이런 까닭이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음식이 필요한 곳에 나타나 팔 걷어부치고 음식을 척척 해내는 활동가. 4년 전 우리 마을모임을 처음 조직할 때 사람들을 엮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그 때 김혜정 이사장이 큰 역할을 해 주셨다. 김밥을 사다 먹고 피자를 시켜 먹으며 모임을 했다면 이렇게 끈끈하지 않았을 사람들. 김혜정 이사장의 요리 철학을 들으며 함께 음식을 해 먹었더니 모임이 밀가루반죽 부풀듯이 커져갔다.
요리로 사람을 움직이고 조직하는 김혜정님
김양오 : 궁금한 분들이 많아서 그러는데요, 젊었을 때 무슨 일을 하셨나요?
김혜정 : 20대 때 서울의 큰 방송국에서 비드라마 교양 오락 프로의 대본을 쓰는 구성작가 일을 했어요. 드라마 작가로 활동하고 싶었는데 그런 자리를 얻지 못했고 방송 언저리에서 구성 작가 직을 몇 년 해 봤죠. 그런데 그게 무척 소모적인 일이라는 생각, 방송국의 일개 부속품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그만 두고 젊은 날의 방황기를 보냈죠. 나중에 시민단체와 인연이 되어 비로소 방황을 잠재우고 밥하고 요리하고 음식해서 나누는 삶의 궤도에서 한결같이 죽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죠.
김양오 : 그렇지만 댓가를 제대로 받지도 않으시면서 이 일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계속 하시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김혜정 : 더디고 게으르고 저조할지언정 중단하지 않고 가고 있는 길, 거창하게 들릴 지 모르지만 구도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밥하면서 깨달음을 얻고 있는 것이죠. 수행하는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고 성장하는 방편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저는 밥을 하면서 수행하는 것이랍니다.
3년전인가? 학교 급식 노동자들에 대해 어떤 국회의원이 폄하하는 발언을 한 적이 있어요. 동네 밥하는 아줌마들이라고요. 저는 그 말이 곱씹어지면서 밥을 해주는 일이 목숨을 이어주는 일이며 얼마나 숭고한 일인데 그렇게 말하는가? 뭘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때 밥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밥에 대한 깨달음이 온 것 같아요. 밥을 해 주는 것은 생명을 이어주는 일이구나 하는 것을 온 몸으로 깨쳤던 순간이 있었고 그 때 전율을 느꼈죠. 한 끼니 한 끼니가 점점이 이어져 하나의 생명선이 되는 것이라 한끼 한끼 밥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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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 이사장은 밥에도 영성이 있다고 믿는다. 밥의 영성을 체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갓 지은 밥을 한 그릇 떠 놓고 밥에서 나오는 냄새와 김으로 표현되는 밥의 에너지를 느끼며 그 앞에 벅찬 감정으로 거룩하게 서 있는 김혜정 이사장을 떠올리니 밀레의 그림 만종이 생각난다. 그것이 진정한 기도이며 명상이 아닐까?
김혜정 : 특별한 재료에서 그런 느낌을 더 받곤 합니다. 20년 된 된장이 그런데요, 그 된장을 만드신 분들이 민주화 운동하다가 석방되신 분들인데 판로가 없어서 묵혀 두었던 된장이었어요. 만든 분들의 에너지가 담겨있어서 그런지 된장죽을 끓여 완성되었을 때 찌르르르 벅찬 감동을 느꼈어요.
그리고 신선한 채소들을 다룰 때 교감이 되죠. 물에 씻어 놓은 채소들한테서 풍겨나오는 알록달록한 빛과 에너지를 보면서 환희를 느낍니다. 저는 요리도 예술활동이라고 봅니다. 혼자 남아서 늦은 시간까지 재료를 다듬을 때 엄청 몰입도가 높은데 그 재료들이 내 손을 거쳐서 뭔가로 만들어져 완성됐을 때 정말 기쁘고 뿌듯하죠. 그 요리를 사람들에게 나눠줬을 때는 더 감동이죠. 요리사는 영성가이고 예술가입니다.
몇 년 전 김혜정 이사장이 사는 운봉 바래봉 아래 그 분의 집에 몇 번 놀러간 적이 있다. 여럿이 간 적도 있고 혼자 간 적도 있는데 그 때마다 밥을 차려 주셨다. 혼자 갔을 때도 자연재료로 만든 음식 한상, 여럿이 갔을 때도 한 상 푸짐하게 차려 주셨다. 특히 노란 호박꽃을 통째로 부친 호박꽃전은 잊을 수가 없다. 갈 때마다 색다른 음식들이 반겨주는 그 분의 부엌은 단순히 요리의 공간이 아니라 수행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이윤보다는 생명을 살리는 음식을 만드는, 남원인의 밥상 김혜정 이사장
김양오 : 사람들과 요리를 같이 하는 프로그램을 많이 만드시고 계시는데, 왜 그런 것을 하는 거죠? 혼자하면 더 쉽게 빨리 하시고 마음대로 하실 수도 있는데 말이죠.
김혜정 : 요리를 하든 안하든 그 곳에 함께 있는 사람들은 기대감이 있는 것같습니다. 다들 요리 활동을 좋아하고 같이 만들어서 같이 먹으니 이것이 공동체가 아닐까요?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다들 진실해 집니다. 밥 앞에서는 거짓이 없습니다. 진실된 순간에 마음을 열고 교감을 한다면 2차 효과가 파생될 수 있고 또다른 어떤 일을 궁리하고 공동체가 발전해 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올 4월 코로나 19 사태가 확산되면서 소규모 생산, 판매자들의 판로가 막히는 게 안타까워 나는 남원 아나바다 밴드 운영자에게 직거래 밴드 장터로 확대해 운영하자고 제안했다. 그 제안이 받아들여져 직거래밴드장터가 만들어졌고 순식간에 가입자가 수백명이 되었다. 많은 시민들이 재활용 물품들이나 생산품을 올려 매우 활발하게 직거래가 이루어졌고 춘향제 때 팔려고 얼려 두었던 옥수수를 못팔아 발을 동동거리던 생산자는 그 많은 옥수수를 다 팔기도 했다. 그리고 ‘남원인의 밥상’ 협동조합은 다양한 반찬과 음식을 만들어 밴드에 올려 팔기 시작했고 밴드에서 가장 인기있는 생산자가 되었다.
가장 아끼는 음식이기 때문에
아낌없이 나누고 싶습니다.
김혜정 : 우리가 공급하는 반찬은 일반 반찬가게에서 접하는 반찬과는 좀 다르죠. 재료부터가 다릅니다. 이윤을 남기기 보다는 좋은 음식을 공급하자는 뜻으로 만든 협동조합이라 공설시장과 로컬푸드 매장에서 지역 생산물을 사서 쓰고 있습니다. 가공식품이나 양념은 주로 생협 물품을 사용하죠. 최대한 좋은 재료로 정성껏 만들어서 드리고 싶은 마음에서입니다. 그러니 이윤이 많이 남을 리가 없죠. 한번은 20년된 된장으로 약된장을 만들어 밴드에 올렸는데 그것을 사 먹고 입맛이 돌아와 아픈 것도 나았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할머니가 해 주시던 된장 그 맛이었다며 감사해 하셨죠. 그런 얘기를 들으면 정말 보람을 느낍니다.
김양오 : 음식을 통해 남원 시민들을 많이 만나셨는데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김혜정 : 하루에 열 명이나 스무명 쯤 찾아오셔서 음식을 가져가시는데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 분들이 오히려 더 감사해 하는 걸 봅니다. 우리 가게가 도시재생 구역이라 가게 앞 길이 1년 내내 공사중입니다. 그래서 드나들기 힘들고 주차하기도 힘든 환경인데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기꺼이 고마워하며 음식을 가져가십니다. 우리 음식에 대한 기대와 믿음, 만족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공간이 너무 불편한 현실 때문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시민들의 기대가 유지될 수 있도록 좋은 공간이 확보되면 좋겠습니다.
9평 남짓한 작은 가게. 주방은 원룸 자취방에나 있을 법한 작은 부엌이다. 그 부엌에서 60명분의 도시락과 130줄의 김밥, 250개의 샌드위치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넓고 편한 요리시설이 갖춰진 주방이라면 반나절이면 할 일이 이곳에서는 이틀 꼬박 걸려서 탄생된다. 그 시간은 모두 김혜정 이사장의 희생으로 채워지고 있다.
그래서 김혜정 이사장의 꿈은 대여섯 명이 함께 요리할 수 있는 아일랜드 식탁이 몇 개 있는 홀과 두 사람이 너끈히 들어가서 일할 수 있을 만큼 넓은 주방이 있는 공유부엌이다. 그런 공간만 있다면 도깨비 뿔처럼 머릿 속에서 솟아나는 수많은 요리들을 시민들과 함께 하며 한도 끝도 없이 나눌 사람이다. 수해 복구에 왕방울같은 땀을 뚝뚝 흘리는 아들 같은 국군 장병들을 위해 샌드위치 250개를 싸겠다고 마음 먹는 일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넓고 쾌적한 공유 부엌만 있다면 그보다 훨씬 더한 일도 해낼 분이다.
전통시장에서 남원의 맛을 기록하는 김혜정님
김양오 : ‘여뀌울’ 편집장을 하시면서 남원 음식을 기록하는 활동도 하셨는데 남원 음식에는 어떤 특징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김혜정 : 특별한 특징이 없는 게 특징이라고 할까요? 진한 개미가 느껴지는 남도 음식도 아니고 싱겁고 단백한 중부지방 음식도 아니고 자극적이지도 않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경계에 있는 맛입니다. 그래서 이렇게도 될 수 있고 저렇게도 될 수 있는 음식이라고 할 수 있죠. 이것이 남원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제가 남원에 발 붙인 지 10년이 넘었는데요, 남원 사람들도 음식처럼 순하고 담백하고 여유가 있는 것 같아요. 좀 심심하고 무맛같은 동네입니다. 그것이 매력이고 질리지 않죠.
김양오 : 지금 남원에는 어떤 활동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김혜정 : 짭조름한 밑반찬 같은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제 같이 밥이나 먹자’ 라는 말을 흔하게 합니다. 영어로 ‘소셜다이닝’이라고 하는데 한 달에 한번이든 두 달에 한 번이든 정기적으로 ‘밥먹는 날’을 만들어서 파벌 가리지 말고 다 같이 밥을 먹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밥을 같이 먹으면 격이 없어지고 갈등도 해소되고 그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밥으로 대동단결.
김양오 : 활동가들이 활동은 열심히 하는데 사실 음식을 제대로 만들어 먹거나 먹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음식을 먹어야 건강하게 오래 활동할 수 있을까?
김혜정 : 활동가들의 몸은 개인의 몸이 아니라 사회의 몸입니다. 자기 몸을 그 누구보다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내가 먹은 것이 바로 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가 소중하면 먹는 것을 그렇게 아무렇게나 먹으면 안 됩니다. 지금 먹을 거리 환경은 풍성하지만 건강하지 않은 음식이 너무 널려 있습니다. 고기는 피할 수 없는 유혹인데 지나치게 먹지 말아야 합니다. 옛날에 먹던 정도로만 먹어야 하죠. 고기를 자주 먹으면 몸이 자꾸 산성화되고 노화와 온갖 병의 근원이 됩니다. 온갖 사회문제가 집약된 것이 육식인데 이걸 단절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저도 많이 먹지는 않지만 과감하게 끊지 못하는 괴리에 놓여있습니다.
김양오 : 뭔가 남다른 꿈이 있어 보이십니다. 앞으로 계획이나 꿈이 있으신가요?
김혜정 : 저한테는 남다른 꿈이 있습니다. 지금은 동네 밥하는 아줌마지만 이담에 크면 꼭 ‘동네 밥하는 할머니’가 될 겁니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지구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꿈 깨야 합니다. 정부가 언제까지 우리를 보호해 줄 수 있을까요? 가장 쉽게 할 수 있고 중요한 게 밥입니다. 면역력을 밥으로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백신보다 밥이 더 중요합니다. 백신만 기다리지 말고 당장 오늘 저녁부터 우리 밥상을 꼼꼼히 들여다 보고 생각해 가면서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가정이 살고 우리나라가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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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김혜정 이사장은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食一碗萬事知 식일완만사지”
이 말은 동학의 2대 지도자 해월 최시형의 법서에 나오는 말인데 밥 한 그릇에 모든 이치가 다 들어있다는 말이다. 쌀 한톨에 우주의 무게가 담겨 있다는 말처럼 밥 한 그릇의 이치를 깨달으면 세상 만사 이치를 다 깨닫는다는 이말은 먹는 것이 얼마나 중한 것인지 무겁게 알려주는 말이다.
칼을 들고 밥주걱을 들고 국자를 들어 사람들이 먹을 것을 만들어 내는 공양주 김혜정 이사장.
그 분의 활동은 바로 ‘밥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