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이음 활동 소식

자료[산청, 수해 그 이후] 지리산의 지원군들 - 구례에서 온 봉사자, 상글 이야기

2025-11-24


산청, 수해 그 이후 - 여는 말


통행이 통제된 도로가 여전히 많았다. 아직 상수도가 복구되지 않았다는 마을도 있었다. 가까운 산과 언덕 곳곳에 산사태로 흘러내린 붉은 흙이 조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긴 장화에 목장갑, 흙투성이 옷차림을 하고 땀에 젖어 있는 사람들을 길에서 만나는 것이 특별하지 않은 시기였다. 

폭우로 삶의 터전이 엉망이 된 이웃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경남 산청 의료복지 사회적 협동조합(이하 산청 의료사협)’과 함께 복구작업에 몰두하고 있던 시기에 단체 ‘그늘과 언덕’은 ‘지리산이음’으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지금 어떤 형태로든 기록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은 아마 2020년 구례 수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경험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산청 수해 복구를 응원하며 엿새동안 산청에 식사를 챙겨 준 하동 HAB(Happy All Beings)의 수진이 수해 복구 활동의 과정을 누군가 기록해야 할 것 같은데 산청 사람들은 그럴 여력도 정신도 없을 것 같아 자료를 모아 정리중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늘과 언덕’은 급히 ‘산청 의료사협’과 논의하여 수해와 그 복구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결정하고 기록활동가를 섭외했다. 다행히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하동과 함양에서 수진과 자야, 두 분의 기록활동가가 기꺼이 기록작업을 맡아 주셨다. ‘지리산이음’과 ‘산청 의료사협’이 지원하고 ‘그늘과 언덕’이 주관단체로 진행하는 산청의 수해와 그 회복과 복구의 기록은 그렇게 시작했다. 이 기록을 읽는 이들에게 당시 기준으로 ‘현재의 목소리’를 ‘사실적’으로 전달하여 재난을 제대로 이해하고, 우리가 당사자 또는 이웃으로서 해야 할 역할들을 새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지리산의 지원군들

구례에서 온 봉사자, 상글 이야기

 

글 / 정수진



하동으로 이사 온 지 4년째. 누가 심었는지 알 수 없는 ‘지리산 이웃’이라는 연대와 소속감이 어느새 내게 자라고 있었다. 올해 봄 산불이 났을 때와 여름 수해가 났을 때 마음이 조마조마했던 것은 불난리, 물난리가 났던 곳이 지리적, 심리적으로 유독 가까웠기 때문이 아닐까?

함께 식사를 하던 둘째 날, 낯선 분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햇살(강영경님)에게 물으니 구례에서 지원군이 왔단다. “완전 어벤져스들이야!”라고 소개된 분들은 흙투성이, 땀범벅인 채로 들어왔는데 얼굴은 밝게 빛났다. “우리는 하동에서 왔는데, 저분들은 구례에서 오셨데!”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지리산 사람들이 모이고 있어!”라고도 덧붙였다.

지리산 권역에 사는 사람들은 여러 자리에서 다양한 주제로 연대해왔다. 주제는 다양했을지라도 방향은 꽤 일관되었다. ‘생명과 평화, 연대’라는 것으로.

 

지리산 권역 이웃들의 목소리가 궁금했다. 식사하며 몇 번 눈인사를 나눈 구례의 상글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상글의 “더 많이, 열심히 봉사하신 분들이 많은데 제가 인터뷰를 하는 게 맞을까요...?”라고 주저하는 답변을 듣고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다. 여름의 끝자락, 하동의 우리집으로 상글을 초대해 이야기를 청했다.



e1e5e4b21f710.jpg

 수해복구 초기에 달려와 손을 보탠 상글(아랫줄 왼쪽에서 두 번째)과 구례의 이웃들



재난을 통해 연결되고, 회복하며 마음이 모인다.


수진  지난 인터뷰에서 한나와 햇살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뭘 어떻게 해아할까?’ 막막했는데 구례에서 윤주옥님이 지원군을 데려와주었다고요. 정말 고마웠다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어요. 그래서 구례의 분들을 만나보고 싶어 모시게 되었어요. 소개를 부탁드려요.


상글  저는 상글이라고 해요. ‘싱글벙글 웃는 모양’이라는 뜻이 한글 이름이에요. 구례로 귀촌한지 4년차가 되었어요. 저는 농사를 지을 때 마음이 편안해져서 앞으로도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려해요. 마침 텃밭 선생님을 구한다는 친구의 제안으로 5년째 텃밭 수업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어요. 

 구례에 오기 전에는 남원 산내면에 살았는데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들의 모임’에서 지리산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제안 받고 ‘지리산 방랑단(이하 ’방랑단‘)’을 기획해 친구들과 함께 활동하기도 했어요. 당시 정령치쪽에 산악열차를 짓겠다고 할 때였는데 ‘방랑단’과 산청, 함양, 남원 일대를 길에서 먹고 자며 난개발로 인해 사라지는 숲에 대해 알리는 활동을 했어요. 그렇게 4-5개월을 보내서 지리산에 더 마음이 가고 이웃들과 연결된 마음도 드는 것 같아요. 그 때 산청 ‘원지’는 조금 더 오래 머물던 곳이기도 해요. 



9b8e06f97d81b.jpg

아이들과 함께 텃밭을 일구고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이웃과 연대하며 살아가는 상글.



수진 어떤 농사를 짓고 계세요?

 

상글 몇 해째 목화농사를 짓고 있어요. 처음 나눔 받은 씨앗이 적어 그걸 밑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올해는 50평정도 심어서 씨앗을 늘리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텃밭 수업 아이들과 목화를 주제로 이야기 나누고 싶기도 해요.

 

수진 비가 많이 오던 날 상황이 궁금해요. 상글님 계신 곳은 어땠나요?

 

상글 그 날 구례에도 비가 한창 많이 올 때였어요. 서와에게 연락해서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알려줘.’고 이야기했는데 ‘지금 상태에서는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하더라고요. 전화를 끊고 걱정만 하고 있었어요. 사태가 심각해 밖에 나가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들었거든요. 그 때 텃밭 수업이 방학이라 움직일 수는 있는 상황이었는데 마침 주옥님이 산청에 간다고 하시더라고요. 연락받고는 칫솔과 모자, 장화만 챙겨서 얼른 차에 올라탔어요.

처음 도착한 곳이 딸기 농장이었는데 상황을 보니 피해 규모가 너무나 커서 ‘그냥 여기 며칠 더 있어야겠다.’ 생각해 4박 5일을 있었어요. 주변에 열심히 알렸어요. ‘여기 손이 너무 필요한 것 같다. 한명이라도 더 오면 한명은 쉴 수 있다.’라고요. 하하하. ‘언제 오든 상관없고 일단 오셔야 한다.’라고 이야기했죠. 구례도 수해를 겪었고 그 때의 막막함, 답답함을 알고 계시니 마음 쓰는 분들이 많았어요. 저희에게 안부도 계속 묻고 상황이 어떤지 살피는 분들이 많았죠. 교통비, 봉사자 숙식비로 써달라고 돈을 보내주시기도 했어요. 그래서 저희는 그 돈을 ‘그늘과 언덕’에 후원 했고요. 구례에 ‘느긋한 쌀빵’이라는 가게가 있는데 그 곳 중심으로 300명 넘는 분들이 함께하는 단톡방이 있어요. 주옥님이 ‘우리도 수해 때 많은 도움을 얻었으니 산청을 도우면 좋겠다.’라고 소식을 올리셨어요. 그 때 좀 더 확실히 느꼈죠. 수해를 심하게 겪었던 곳이고 재난의 무서움, 피해 복구에 겪는 어려움을 잘 알고 계시니 마음이 더 모인다는 것을요. 안타깝게도 재난을 통해서 서로 더 연결되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쉬었다 하이소.

 

수진 오셔서는 어떤 일을 하셨어요?

 

상글 여섯 명이 함께 갔어요. 바로 농가로 가서 일을 시작했는데 첫 번째 농가의 농부님이 밝게 저희를 맞이해주셨던 기억이 나요. 건물 하나는 기울어져있고 안은 흙더미로 쌓여있고 모종도 죽어서 쓰러져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농장 어머니는 자꾸 “쉬었다 하이소. 쉬었다 하이소.” 방금 시작했는데 “쉬었다 하이소.” 아버지도 계속 “이거 하나 먹고 하이소.” 해주셨어요. 그 분들은 저희로 인해서 힘을 얻으시고 저희는 도와드릴 수 있어서 힘을 얻었어요. 농민들이 힘을 내서 웃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끼기도 하고 더 열심히 하게 되는 원동력이었어요. 이렇게 처참히 무너진 상황 안에서 우리가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희망적이었죠.

날씨는 진짜 더웠어요. 가장 더운 시기여서 힘들었던 때였죠. 저희도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다보니 더 애잔하고 빨리 가서 도와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기후 재난이라는 게 글로만 읽어 가시화 되지 않았는데 ‘실제로 일어나는구나.’ 생각했어요. 올해 봄 구례에 마른하늘에 우박이 떨어졌거든요. 저희 마을에만 우박이 떨어졌어요. 그 때 가지 모종을 심고 외출하고 돌아왔는데 모종이 칼로 벤 것처럼 찢어져 있어서 너무 무서웠어요. ‘누가 내 밭에 와서 이렇게 해코지를 한 거지?’라고 생각했는데 마을 어르신이 “우박이 내렸어.”라고 하시더라고요. 마을에 있는 감나무도 잎이 다 찢어졌어요. ‘마른하늘에 어떻게 우박이 내렸을까?’ 했는데 웬걸, 가지 이파리 찢어진 건 문제도 아니었어요. 여름에 비가 너무 많이, 오랫동안 내려서 조마조마했어요.



dfadb3e1e7a51.jpg

무더운 여름, 하우스 안에서 봉사하는 봉사자들의 옷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수진 저도 산청에 산사태가 나고 침수되는 것을 보면서 ‘다음엔 우리 일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여기저기 폭우가 내렸잖아요.

 

상글 맞아요. 농사를 지으니까 더 체감하게 되요. 만약 제가 도시 아파트에 살았다면 비가 많이 온다는 걸 교통체증 같은 것으로 체감했을 텐데 농사를 짓는 순간 먹거리와 일상이 연결이 되잖아요. 날씨 변화에 굉장히 민감하게 대응해야하고 기후의 변화가 더 무섭게 느껴지기도 해요.

 

 

환대하는 커뮤니티, 그늘과 언덕

 

수진 산청에서 4박 5일을 머물렀는데 어디서 지냈어요?

 

상글 민형권님 댁에서 3일을 자고 이틀은 푸른네 이웃집에서 지냈어요.

 

수진 아! 우정네 집이요? 하하하. 재밌네요. 여행간 친구 가족의 빈 집에 누구는 잠시 들러 샤워하고 누구는 자기도 하고요. 산청 친구들이 자주 만나서 놀잖아요. ‘왜 저렇게 자주 만나서 놀지?’ 했는데 지금을 위해 다져온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상글 산청은 놀러갈 때 마다 ‘이런 공동체를 꿈꿨지.’, ‘이런 곳에서 살아야 나에게도 미래가 있을 거야.’라는 본체를 보여준 커뮤니티였어요. 재난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며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이 여실히 보여 진다고 생각했어요.

 

수진 놀기만 한 게 아니었어요. 하하하. 상황은 아주 처참했는데 사람들의 관계가 빛이 났죠.

 

상글 반짝거렸어요. 식사를 준비해주신 것도 큰 힘이 되었을 것 같아요.

 

수진 봉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비슷한 것 같아요. 자기가 봉사한 건 대단한 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저 사람은 어떻게 와서 이렇게 봉사할까?.’라고 감탄하잖아요. 생각해보면 전혀 일면식이 없는 사람의 농장에 가서 일하고, 주인이 ‘쉬었다 하세요.’라고 할 만큼 열심히 일하잖아요. 왜 사람들은 저렇게 자기 일처럼 일했던 걸까요?

 

상글 내 일 같은 마음이 있었을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 겪는 딱한 일이 아니라 나에게도 충분히 있을 법한 일, 같은 모양이 아니더라도 나에게도 일어 날 수 있는 일이니 지나칠 수 없어 어떤 도움이라도 되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을 것 같고요.

산청 커뮤니티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도 영향이 컸을 것 같아요. 수해나 재해 소식을 대중매체에서 봐도 선뜻 가기가 어렵잖아요. 봉사자를 맞이하는 커뮤니티가 품고 있는 분위기가 ‘아 나도 가서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을 충분히 준 것 같아요.

 

수진 맞아요. 환대해주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상글 행정에서 조율하는 일이 아니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여 피해 농가들과 직접 연결되어 소통하고 움직이는 방식이 마음을 얻기도 했을 것 같아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였을 때의 시너지가 엄청 크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긍정적인 사례가 될 것 같아요. 재난 때문이었다는 것이 여전히 안타깝지만 그래도 상황이 큰 힘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해요. 

그리고 보통 이런 현장에 가면 물, 음식 모두 일회용품을 소비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산청 현장은 그런 게 덜해서 마음이 편했어요. 남다른 이유에서 텀블러와 컵을 챙겨 새참을 배달해주고 저녁 식사를 하고 남은 것을 도시락에 싸주면 아침에 데워 먹은 것도 참 귀했어요. 아니었다면 컵라면에 김밥 먹었을 텐데 말이에요.

 

 

절망 속에서 희망을 꿰어가는 일

 

수진 이번 수해 때 다녀가신 누적 봉사자가 500명이 넘었다고 해요. 봉사를 하게 된 개개인의 배경도 있을 테고 봉사를 하고 난 후 각자만의 크고 작은 변화도 있을 것 같아요.

상글은 봉사하고 나서 달라진 것이 있으세요? 삶이나 생각에서요.

 

상글 저는 이제 30대 후반이거든요. 아이를 낳거나 가족을 만드는 일에 대해서 종종 생각하는데 올해 기후변화가 심각하다는 것을 체감하면서 ‘아이에게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라고 하는 거야?’하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그런데 산청 친구들이 처참하고 막막한 상황 안에서도 뭔가를 함께 빚어가는 것 같은, 알을 꿰어서 만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희망을 발견하기도 했어요. 사람들이 연결되는 힘을 보면서 두렵더라도 나 혼자만 아이를 키워가는 세상은 아닐 것 같다는, 이 어려운 시대를 어떤 방향으로든 극복해 나갈 이웃과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되는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아이가 생긴다면 그 아이가 조금 더 좋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게끔 ‘기후 변화에 무너지지 않고 더 열심히 연대하고 노력하는 사람으로 성장해야겠다.’하는 희망을 봤던 것 같아요. 산청에 가기 전에는 막막하고 두려운 감정이 지배적이었는데 처참한 상황 속에서 실낱같이 반짝이는 윤슬 같은 것을 만났어요.

 

수진 저도 지금의 자본주의의 폐해나 기후변화로 사회는 점점 더 불행해질 확률이 높다고 생각해요. 그건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뭘까?’, ‘의도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까?’ 생각해보면 결국 이렇게 서로 보살피고 돌보는 관계를 계속해서 만드는 것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봉사하며 살펴 본 마음

 

수진 봉사하며 힘든 순간은 없었어요?

 

상글 이번에 어려웠던 것 중 하나는 봉사하며 일어나는 마음을 보는 일이었어요. 봉사갔던 곳 중 왠지 부유해 보이는 곳이 있었거든요. 거기서 봉사를 하는데 ‘도움이 더 필요한 곳에 가서 봉사해야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재난 피해라는 것이 뭔지, 어떤 피해를 입어야 ‘진짜 피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다스리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각각의 경우를 보면 모두 속상하고 안타깝지만 커다란 시각으로 봤을 때 ‘상황이 어려운 쪽을 먼저 도와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되더라고요. 그렇지만 단순하게 판단할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우리는 어쨌든 한 면만 볼 수밖에 없으니까요.

복구 작업을 하는 동안 나의 ‘동기’도 계속 생각하게 되었어요. ‘내가 여기 왜 와있을까? 무엇을 하기 위해?’ 돕고자 한다면 필요한 일을 하면 되는데 마음에서 여러 생각들이 올라오는 자신을 보면서 ‘나는 이 일을 왜 하고 있나’, ‘어떤 마음으로 하고 있나’ 봤던 것 같아요. 제가 어떤 것을 저울질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이 많이 들었어요. 남의 입장이 되지 못했는데 함부로 생각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같이 갔던 주옥님이 “네. 하겠습니다.”하시며 묵묵히 요청받은 일을 하시는데 그 마음이 되게 멋져보였어요. 어떤 일에도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요.



54b940845dba7.jpg

침수된 농가의 살림살이를 세척하고 정리하는 봉사자들.



수진 정말 중요한 지점인 것 같아요. 도움이 필요한 곳에 가서 그냥 도우면 되는데 현장을 서로 비교하며 분별하는 내 마음을 살펴보는 것이요.

저는 이번 수해를 겪으며 나온 쓰레기를 보는 것이 힘들기도 했어요. 하동에서 산청에 갈 때 옥종을 지나서 가거든요. 거기도 피해농가가 있으니 쓰레기 더미들이 정말 엄청나게 쌓여 있어요. ‘이걸 어떻게 치우지?’ 싶더라고요. 손으로는 도저히 치울 수 없는 부피와 무게의 것들이 있었어요. 냉장고도 처박혀 있고 하우스 골조, 자동차까지. ‘이렇게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는 걸까? 이 시스템이 맞는 걸까?’ 생각했어요.


상글 맞아요. 봉사가 끝나고 떠나기 전날 하우스 피해가 가장 큰 마을에 다시 들러서 보고 갔어요. 그 모습이 너무 처참해서 믿겨지지 않았어요. ‘하우스’라는 농업 시스템이 위험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저 잔재를 어떻게 치우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잖아요. ‘이걸 지구 어디에 갖다 버리는 거지? 어디로 가서 어떻게 방치되는 걸까?’ 재해로 나온 폐기물에 비하면 생활 폐기물은 오히려 너무 작아 보여요. 재해라는 것이 일어날 때마다 지구가 훨씬 더 빨리 오염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수진 그런데 이런 재해를 겪으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가는 방식이나 농사 시스템을 더 견고하게 만들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상글 강둑도 더 높이 쌓고요. 구례가 그랬어요. 수해를 입고 갑자기 모든 강둑을 다 파헤치기 시작하더라고요. 주변에 수풀로 덮인 아름답던 습지가 있었는데 전부 깎고 강둑으로 만들었어요. 시멘트로 발라서 포장해버렸죠. 수업하던 아이들에게 수해에 대해 물어보면 너무나 당연하게 “강둑을 더 높여야 해요.”라고 대답을 하는 거예요. ‘강둑을 더 높이는 것이 과연 진짜 답일까?’ 의문이 들었어요. 우리가 일상에서 삶의 공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가꿀 것인지도 중요한 것 같아요. 재난이 더 많아질 시대 앞에서 이런 것을 더 고민하고 준비하는 태도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상글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인터뷰’라는 작업의 매력에 푹 빠졌다. 낯선 사이에 귀한 이야기를 얻어 들을 수 있는 꽤 그럴듯한 핑계랄까? 처참한 재난의 상황에서 윤슬처럼 반짝이는 희망을 발견했다는 상글의 이야기가 마음에 오랜 여운을 남겼다. 봉사를 하며 일었던 여러 마음에 대해 살폈다는 이야기 역시 참 귀했다.

 

앞서 수해를 겪고 회복의 과정 역시 겪었던 구례 사람들이 이번 산청 수해 복구에 제 일처럼 손을 보탰다. 가장 먼저 달려와 오랜 나날 함께하며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상글의 이야기처럼 많은 봉사자들이 어려운 나날을 함께 극복하며 위로받았고, 더 나은 세상이 되도록 연대할 용기와 희망을 얻었으리라 생각된다.






글쓴이_ 정수진 

하동으로 이주한 지 4년이 되었습니다. 겨울이 오면 남편과 함께 인도와 네팔에서 NGO 활동가로 살아가고, 꽃피는 봄이 오면 하동으로 돌아와 민박집을 엽니다. 텃밭을 가꾸고 이웃 농부들의 농산물이 잘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요리하고 나누어 먹습니다.


※ 이 인터뷰는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브라이언임팩트', '지리산이음'의 지원과 '그늘과언덕' 주관으로 진행되었습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