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이음 활동 소식

자료[산청, 수해 그 이후] 산청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 산청 주민 김창수님 인터뷰

2025-12-15


산청, 수해 그 이후 - 여는 말


통행이 통제된 도로가 여전히 많았다. 아직 상수도가 복구되지 않았다는 마을도 있었다. 가까운 산과 언덕 곳곳에 산사태로 흘러내린 붉은 흙이 조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긴 장화에 목장갑, 흙투성이 옷차림을 하고 땀에 젖어 있는 사람들을 길에서 만나는 것이 특별하지 않은 시기였다. 

폭우로 삶의 터전이 엉망이 된 이웃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경남 산청 의료복지 사회적 협동조합(이하 산청 의료사협)’과 함께 복구작업에 몰두하고 있던 시기에 단체 ‘그늘과 언덕’은 ‘지리산이음’으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지금 어떤 형태로든 기록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은 아마 2020년 구례 수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경험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산청 수해 복구를 응원하며 엿새동안 산청에 식사를 챙겨 준 하동 HAB(Happy All Beings)의 수진이 수해 복구 활동의 과정을 누군가 기록해야 할 것 같은데 산청 사람들은 그럴 여력도 정신도 없을 것 같아 자료를 모아 정리중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늘과 언덕’은 급히 ‘산청 의료사협’과 논의하여 수해와 그 복구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결정하고 기록활동가를 섭외했다. 다행히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하동과 함양에서 수진과 자야, 두 분의 기록활동가가 기꺼이 기록작업을 맡아 주셨다. ‘지리산이음’과 ‘산청 의료사협’이 지원하고 ‘그늘과 언덕’이 주관단체로 진행하는 산청의 수해와 그 회복과 복구의 기록은 그렇게 시작했다. 이 기록을 읽는 이들에게 당시 기준으로 ‘현재의 목소리’를 ‘사실적’으로 전달하여 재난을 제대로 이해하고, 우리가 당사자 또는 이웃으로서 해야 할 역할들을 새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산청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산청 주민 김창수님 인터뷰

 

글 / 정수진



 지난 산청 수해 복구에 전국에서 온 봉사자들의 도움이 있었던 한편, 여러 날 묵묵히 봉사 현장을 지킨 산청 주민들도 있었다. 수마가 할퀴고 간 처참한 현장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 본인의 밭은 이미 토사에 모두 휩쓸려 복구할 것이 없어서, 본인의 하우스만 멀쩡한 게 미안해서, 본인의 하우스도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았기에 그리고 같은 지역 이웃이 도움이 필요하다는 소식에 달려왔다는 산청 주민들. ‘산청의료사협’과 산청 주민모임 ‘그늘과언덕’이 자원봉사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봉사자의 24%는 산청의 주민이었다.


 그들은 누구보다 주인 된 마음으로 지역을 위해 봉사하는 한편, 타지에서 온 봉사자들을 진심으로 환대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만나 이야기를 청한 봉사자는 산청 주민 김창수님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와중에 시간을 내어 봉사 현장을 지켰던 김창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떠오른 단어는 ‘애향심’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 또는 현재 거주하는 지역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10월의 끝자락, 산청에서 김창수님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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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끝자락, 산청에서 만난 김창수님




수진  어느 봉사자가 창수님을 봉사 현장의 ‘작업반장’이었다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정말 열심히 봉사하셨다며 꼭 만나 보라고요. 그래서 인터뷰를 요청하게 되었어요. 간단히 소개 부탁드려도 될까요?


창수  저는 산청에 이사 온지 십년이 되었습니다. 이전에 산청에서 직장생활을 하기도 했고 지리산을 좋아해서 늘 ‘살아보고 싶은 동네’였죠. 좋은 계기로 산청에 살게 되었습니다. 


수진  비가 많이 왔던 날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창수  그 당시 출근을 하는 날이었어요. (김창수님의 직장은 진주다.) 비가 많이 오니 일찍 출근하려고 나섰는데 산청읍 쪽 도로가 통제되어 산청IC로 돌아갔어요. IC 입구는 통제되어있지 않아서 ‘고속도로는 괜찮구나.’ 생각했는데 얼마 달리지 않아 막혀있더라고요. 산사태가 나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었어요. 전기가 끊겨서 직장에 전화를 할 수도 없고 고속도로는 완전히 막혀서 식사를 하려는 사람들, 화장실을 가려는 사람들이 피난 행렬처럼 산청 휴게소까지 이어졌어요. 겨우 단성IC를 지나니 전화가 되더라고요. 오후 두시 반에 집을 나섰는데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는 밤 아홉시 반이었습니다. 


수진  고속도로에 산사태가 났다는 기사를 봤었는데 현장에 계셨던 거군요. 이야기를 들으니 마치 재난영화의 한 장면 같네요. 이후 봉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창수  ‘의료사협’의 조합원이기도 하고 ‘목화장터(주민들이 만든 산청의 지역장터)’ 밴드 회원이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수해복구 관련한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이 운영되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어요. 제가 평일, 주말 상관없이 교대근무를 하는 직장이다 보니 봉사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아침에 퇴근 하는 날은 오후 봉사를 하고, 오후에 출근하는 날은 오전 봉사에 참여 했죠. 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시던 분들에 비하면 제가 한 일은 하찮죠.


수진  봉사가신 곳은 어디였나요?


창수  제가 봉사를 갔던 곳은 곤충농장, 문을 닫은 펜션, 딸기 농장 등 여러 곳이었어요. 저희가 간 농장은 주로 물이 한번 들었다가 빠진 곳이었어요. 잘 하면 올 해 농사를 시작할 수 있는 곳에서 집중적으로 했습니다. 그런 곳은 아무래도 시간과의 싸움이니까요. 빠르게 복구 작업을 하면 올 해 농사를 지을 수 있으니 농민들은 마음이 더 급하셨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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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날씨였지만 즐겁게 봉사한 김창수님과 봉사자들.



수진  봉사하면서는 어떠셨어요? 출근해서 일 하고 쉬는 날에 또 이렇게 몸을 써서 봉사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창수  무더운 날씨였죠. 하우스 안이 너무 덥고 습도도 높았어요. 일찍 시작해도 해만 뜨면 무더위가 시작되었으니까요. 그래도 봉사는 단기간이었고 아주 더워도 몇 시간만 일하면 되니 괜찮았습니다. 과거에 공장에서 교대근무도 해보고 첫 직장생활 할 때는 거의 쉬는 날 없이 일했거든요. 그런 것들이 경험이 된 것 같아요. 봉사하면서 힘들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어요. 무엇보다 진행 팀에서 너무 잘 준비해주셨어요. 제가 알기로는 열사병이나 큰 부상자 없이 봉사를 마무리했다고 알고 있어요. 

 인상적이었던 건 피해 농민들이 봉사 신청을 하면서도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 반신반의 했다고 해요. 그런데 봉사자들이 일하는 것을 보고 놀라셨다고 하더라고요. 새벽 일찍 시작했고 네 시간만 일하니 다들 일심해서 몸을 사리지 않고 열심히 했잖아요. ‘오늘 하루 봉사하러 왔으니까 좀 더 많이, 좀 더 열심히 하자’는 마음을 먹고 하니까 표가 나더라고요. 어느 농민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제 팔십 명이 와서 하루 종일 하고 간 것 보다 이십 명이 와서 네 시간 일 한 게 훨씬 양이 많다”고요.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수진  전국에서 정말 다양한 분들이 오셨죠. 산청 수해를 도와주러 오신 다양한 봉사자들을 만나면서는 어떠셨어요? 산청과 인연이 없는데 온 분들도 많으셨죠.


창수  많이 만나 뵙지는 못했지만 기억에 남는 분들이 있어요. 울산에서 취업준비생이 혼자 오기도 했고요. 처갓집이 산청이라서 여름휴가 겸 이곳으로 봉사하러 오셨다는 서울 분들도 계셨어요. 여러 가족이 함께 와서 오전에는 땀 흘리며 봉사하고, 오후에는 휴가를 즐기러 계곡으로 가셨어요. 그분들 보면서 참 좋았습니다. 뜻 깊은 휴가를 보낸다고 생각했어요. 산청에 연고는 없지만 오셔서 봉사한 분도 많이 계셨고요. 그런 분들을 보며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책임감도 많이 느꼈습니다. 봉사 시작하기 전에 소개를 하잖아요. 서울, 부산, 경기도, 전라도에서 왔다고 소개를 하는데 정작 산청에서 온 봉사자가 별로 없는 거예요. 늘 오던 산청 분들만 계시고요. ‘저렇게 멀리서도 오시는데…….’싶어 사실 부끄럽기도 했어요. ‘나라도 있어야겠다.’는 책임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다른 지역에서 오신 분들이 ‘외지인밖에 없네?’라고 실망하지 않았으면 했어요. 산청 지역의 한 사람으로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더라고요.

 일을 끝내고 하는 마음 나누기도 참 좋았어요. 사람 마음은 다 다르니까요. 일하는 것도 즐거웠지만 나누기를 통해서 여러 가지 다양한 면을 보는 시간도 아주 좋았어요.



가치관을 변화시킨 봉사


수진  지역을 아끼는 마음, 그리고 책임감이 봉사를 지속하게 만든 거군요. 봉사를 하기 전과 후의 달라진 점이 있으신가요?


창수  ‘국내에서 재해가 나면 꼭 한번은 가겠다.’는 생각이요. 저도 이런 재난 현장에서 봉사한 것은 처음이나 마찬가지였어요. 태안반도 기름 유출사고나 강원도에 산불이 나도 뉴스로 보며 ‘안타깝다’는 생각만 했지 손을 보탤 생각을 한 적이 없었어요. 이번에는 ‘우리 지역의 일이니까 당연히 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멀리서 오신 봉사자들을 만나게 되면서 산청이 아니라 다른 어디라도 ‘도움이 필요하다면 적어도 한 번은 가서 도와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어느 농민분이 “봉사는 나중에 바쁜 거 다 끝내고 여유 생기면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봉사자들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조그만 일이라도 당장 시작해야겠다.”라고 말씀하셨거든요. 이게 우리의 보람이라면 보람이죠. ‘봉사의 영향력은 이런 거구나. 이런 게 참 큰 변화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피해 농민들을 위로하고 일손을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사람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바뀌는 것도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어느 날엔 초등학교 3학년쯤 된 어린 아이가 오기도 했어요. 너무 반갑더라고요. 처음에는 그 친구가 계속 휴대폰만 보고 있었어요. 아이들은 새벽에 부모님을 따라 봉사하러 나설 때 이해를 잘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얼마나 하기 싫겠어요. 그런데 끝날 때쯤 보니 그 아이가 뭔가를 나르며 돕고 있더라고요. 누구도 일하라고 말하지 않았는데 본인 스스로 행동하는 거예요. 가르치고 말로 설명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의 행동을 보고 아이 스스로 변화하는 모습에 뭉클했습니다. 잠깐이라도 땀 흘려 일하면서 각자의 나이에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느끼게 되겠죠. 변화는 남이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 날 봉사한 수고로움이 모두 사라지는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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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봉사 온 어린이



봉사는 스스로를 위한 일


수진  봉사자를 만날 때 마다 늘 여쭤보는 질문인데요, 사람들은 왜 봉사를 할까요? 


창수  봉사라는 게 흔히 ‘남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봉사하면서 ‘상대를 위해서 하는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어요.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돕는 게 아니라 어떤 일이든 그냥 ‘필요한 일’을 하는 게 봉사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하고 나면 스스로가 좋아요. 해 보면 내가 즐겁고 뿌듯하죠. 시간을 뜻 깊게 보낸 것 같고 필요한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느끼는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특별한 기술이 있거나 남보다 잘하는 게 있어야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움직일 수 있는 팔다리만 있으면 얼마든지 남을 도울 수 있죠. 뭘 잘하는 게 있어야만 필요한 사람, 숨만 쉬고 있으면 필요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들을 하잖아요. 그런데 봉사를 통해서 얼마든지 우리가 남을 위할 수 있고, 그 일이 곧 나를 위하는 길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매일 하라면 못하겠지만요, 하하하.


수진  ‘봉사를 하면서 상대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내가 참 좋더라.’ 하는 말씀이 인상적이에요. 중요한 ‘삶의 지혜’ 같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느끼게 된 배경이 있을까요?


창수  공부를 한다고 이야기하긴 부끄럽지만 마음공부에 관심이 많아요. 절이나 교회를 다니는 건 아니지만 현인, 지혜를 증득한 분의 강의나 책을 통해 저도 따라 배우고 있는 중이예요. ‘남을 위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하는 거다.’라는 먼저 공부하신 분들의 지혜로운 말씀을 이번에 봉사 하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는 기회가 되기도 했어요. 해보면 내가 기분이 좋다는 것을 직접 느끼게 되었죠.


수진  평소에 마음공부를 하면서 의문으로 가져오셨던 것, 글이나 생각으로 알고 있던 것들을 봉사 하며 체득하는 시간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창수  네. ‘남을 위하는 게 나를 위한 거다. 봉사는 나를 즐겁게 만든다.’ 이런 글은 아주 많잖아요. 그런 걸 온 몸으로 느끼는 시간이었어요. 알고 있는 것과 내가 행하는 것은 별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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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모인 봉사자들과 김창수님



서로 도우며 사는 게 사람의 본성


수진 재난이 여러 이유로 발생하고 아마 앞으로 더 자주 대규모의 재난이 발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럴 때 이웃의 역할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창수  시골에서 이웃이라……. 어렵죠. 우선은 이런 재난 상황에 정부가 제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게 우선되고 나서 이웃의 역할이 있겠죠. 시골에는 이웃끼리 원수인 경우도 많아요. 그래도 재난이 일어나면 다들 발 벗고 나서더라고요. 어려움에 처하면 서로 도울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의 본성인 것 같아요.

 이웃의 역할이라기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게 어렵고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모일 수 있는 공간, 기회가 많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재난 상황에서의 이웃의 특별한 역할 같은 건 없는 것 같아요. 인간은 모두 선한 영향력을 다 행사하니까 서로 돕는 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합니다.





 ‘재난상황에서 이웃의 특별한 역할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는 무덤덤한 김창수님의 이야기 속에는 산청이라는 지역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에 대한 애정과 지역 공동체원으로서의 책임감이 곳곳에 묻어있었다. 같은 동네에 살아도 ‘서로 만나’지 않으면 이웃이 되기 어려운 것도 같다. 김창수님의 이야기처럼 서로가 만나 존재를 알아갈 ‘공간’과 ‘기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청에 있는 ‘남다른 이유’와 ‘목화장터’처럼. 공간과 기회를 만들고 꾸려가는 무수한 이웃들 덕분에 올 여름 산청에 많은 봉사자들의 손길이 끊이지 않았던 것 아닐까.



 봉사자들이 떠나며 아래와 같은 소감을 남겼다. 


  •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보람과 뿌듯함으로 가득 찼어요.
  • 오늘 하루 잘 살았습니다.
  • 봉사를 한 것보다 받은 게 더 많습니다.
  • 봉사를 하며 ‘좋은 마음’, ‘새로운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 남에게 이로운 일을 하는 게 곧 나를 위한 길임을
  •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기억에 남을 시간을 보냈습니다.
  •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기뻤습니다.
  • 봉사하고 나니 가슴 뿌듯!







글쓴이_ 정수진 

하동으로 이주한 지 4년이 되었습니다. 겨울이 오면 남편과 함께 인도와 네팔에서 NGO 활동가로 살아가고, 꽃피는 봄이 오면 하동으로 돌아와 민박집을 엽니다. 텃밭을 가꾸고 이웃 농부들의 농산물이 잘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요리하고 나누어 먹습니다.


※ 이 인터뷰는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브라이언임팩트', '지리산이음'의 지원과 '그늘과언덕' 주관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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