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이음 활동 소식

자료어머니의 산 지리산, 그 생명의 결을 엮다 – 지리산 생명연대

2014-09-18

#1. 한 달에 한 번, 용유담 인근을 걷는다. 10여명 내외의 소박하고 조용한 모임이 어느 새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모임으로! 이름 하여 ‘용유담아, 친구하자’. ‘용유담아, 친구하자’는 해당 지역 주민들이 직접 용유담 둘레를 답사하는 프로그램이다. 국가명승으로 지정예고까지 되었다가 지리산댐 건설계획을 이유로 명승지정이 보류된 ‘지리산 용유담’의 생태ㆍ역사ㆍ문화적인 가치를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기회다.

 

#2. 새벽녘, 강가를 헤매는 사람들이 있다. 수달 한번 보겠다는 일념으로 ‘수달앓이’ 중인 생명연대 수달조사팀이다. 이들은 지난 2010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지리산 북부하천 일대에서, 수달과 그 서식환경을 조사해 왔으며 현재는 ‘자연놀이터 그래’ 팀과 그 결과를 데이터화하여 이를 지리산 보전을 위한 기본 자료로 삼으려는 야심찬 계획 중이다.

 

#3. 광화문 광장이 심상치 않다. 댐대책사전검토회의에 반대하는 기자회견 및 퍼포먼스를 위해 영양에서, 영덕에서, 평창에서, 청양에서 그리고 지리산 생명연대에서, 3억 5천 만 원을 쏟아 붓는다는 댐을 막기 위해 서울로 모였다. 영양에서 올라오신 어르신의 한마디가 가슴을 때린다. ‘문제는 댐이 아닙니다. 문제는 인간의 탐욕이고, 인간의 광기입니다.’

 


지리산댐 반대를 위해 서울로 올라간 지리산생명연대



지리산의 젖줄과 산자락을 씨줄과 날줄 삼아

 

지난 2000년 8월, 지리산 댐 백지화를 목표로 <지리산 댐 살리기 국민행동>이 창립되었다. 전국 190여 개의 시민·사회·종교·지역단체가 연합한 <국민행동>은 댐 건설 전면 백지화를 주장하였고 전 국민 서명운동과 지리산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에 힘입어 마침내 댐 건설 계획은 백지화되었다. 바로 일 년 전인 1999년 <지리산을 사랑하는 열린 연대>가 결성되었다. 지리산권 시민운동의 포문을 연 <열린 연대>가 <국민행동>과 통합하여 2002년에 출범한 새로운 단체가 <지리산 생명연대>이다.

 

창립 이래 햇수로 13년 째, 생명연대는 지리산 권역의 크고 작은 현안들에 대응해왔다. 2002년 7월에는 엄천강 기름유출사건에 발 빠르게 대처하였고 2003년부터 성삼재관통도로를 지리산에 되돌려줄 방법을 모색하는 성삼재 도로 걷기 대회를 개최하였으며 2004년에는 인월-산내간 4차선확포장 계획을 주민들과 함께 저지하였는가 하면, 완공 4개월 만에 무너져 내린 하동군 악양면과 청암면을 잇는 회남재 도로 확포장 공사를 저지하고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 계획에 반대하는 등, 선이 굵은 활동을 이어 왔다. 한편 지리산자락 엄천강을 지키는 어린이 하천보호 활동모임인 ‘엄천강 친구들’이 2004년 시작되었으며 같은 해 ‘지리산 생태문화 가이드 양성교육’을 실시하고 2006년에는 ‘지리산권 희망씨앗찾기’ 프로그램을 기획, 진행하는 등 주민 교육 및 자치 사업 또한 꾸준히 펼쳐온 바 있다.

 


지리산생명연대의 초창기, 실상사 옆 가건물을 사무실로 썼다.



"희망씨앗찾기의 경우는 참 아쉬워요. 지리산권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실무자나 회원들을 대상으로 스스로 지역의 비전을 찾아내고, 각자 속한 시군으로 돌아가 지리산의 희망을 가꿔나가는 것이 희망씨앗찾기의 목적이었거든요. 실제로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알게 된 몇몇 분은 진흙 속의 진주를 찾아낸 듯 한 느낌이었어요. 이런 프로그램이 지속되어야 각 지역이 자체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텐데 여러 가지 현안들에 밀려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했던 점이 아쉽습니다."

 


현재 지리산 생명연대 사무처장이자 부임이후 처음으로 안식년을 챙기고 있는 최화연 처장의 이야기다. 현안과 주민 사업 혹은 문화 사업을 병행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고 더불어 생명연대의 정체성 논란도 적지 않았다. 환경단체인지, 주민사업단체인지, 환경운동에 주력할 것인지 지리산권 네트워킹에 힘쓸 것인지 생명연대에 대한 기대는 지리산 자락만큼이나 넓고도 깊었다.

 

"생명연대는 지역을 대표하는 단체가 아니라 지리산권 전체를 아우르는 단체잖아요. 특정한 지역에 거점을 두고 있는 단체들은 그 지역의 일에 집중하면 되지만 생명연대는 지리산 권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이슈들을 두루 살펴야 했어요. 지리산은 너무 넓었고요. 2005년 만 해도 지역별 활동가가 많지 않았죠.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요. 그래서 각 지역 별로현안에 대응하고 사안과 상황에 따라 연대해야할 필요가 있어요."

 

최 처장의 이러한 지적이 실현된 예가 2005년 발족된 지리산권시민사회단체협의회이다. 당시 문화관광부에서는 지리산권 광역관광개발사업계획을 발표하였고 지리산 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분별한 개발 사업을 저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협의회가 조직되었다. 지리산권 지역 연대의 필요성은 최근에도 제기된 바 있고 그 결과물로 지리산 포럼이 창립되기도 하였다. 지리산 포럼은 그동안 지리산운동의 성과를 살피고 부족한 점을 반성함으로써 지리산을 하나의 삶터로 가꿔가기 위한 합의의 과정으로 제안된 광장정치마당이다.

 

"각 단체의 비전과 정체성에 관한 문제는 비단 생명연대만의 고민은 아닌 것 같아요. 지리산 권에서 대안 찾기에 대한 고민은 계속 가져가되, 이제는 각 지역에 다양한 단체들이 있으니까 연대의 폭을 더 넓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공감대가 중요하겠죠. 같이 가져가야 할 고민의 주제와 중심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거기에 불이 붙어야 할 것 같아요."

 


다양한 지역 단체들을 수용하며 아우르는 지리산권 연대의 필요성

 



생명연대는 2007년 한 차례 큰 변화를 겪었다. 부설기관인 ‘사단법인 숲길’이 창립되어 지리산길(지리산트레일)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지금의 지리산 둘레길 사업이 시작된 곳은 다름 아닌 지리산 생명연대였다. 하동 벚꽃길 확포장 싸움이 일단락 된 후 지리산 살리기 도보 순례, 낙동강 살리기 도보 순례 등 지리산권의 환경과 문화를 지키기 위해 걷는 단체들과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에 도법스님을 비롯하여 각 계의 의견이 모여 자기성찰을 할 수 있는 순례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이를 문화관광부에 제안하자 현장 단체로 생명연대가 지정되었던 것이다.


“실무적으로 사람을 파견한 건 생명연대였어요. 이 일을 위해 사무처장을 숲길로 보내기까지 했죠. 출발은 생명연대 부설, ‘사단법인 숲길’이었는데 정관 명시는 다르게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생명연대와 숲길이 합쳐져서 활동하다가 또 중간에 다시 나눠지는 과정을 거쳤죠. 이 과정에서 에너지 소모가 무척 심했어요.” 현재 사단법인 숲길은 하동으로 자리를 옮겨 독립 기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상태다.

 

생명연대는 문화 관련 사업에도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2006년에 시작된 지리산문화제이다. 지리산문화제는 지리산권 시민사회단체협의회가 주최하고 생명연대가 사무국 역할을 맡아 진행한 문화행사로 구례 사포마을 골프장 반대 투쟁이 그 단초를 제공하였다. 골프장 반대 싸움이 계속되자 ‘싸움 대신 어울림의 자리는 없을까’ 하는 역발상이 가능했고 그 바람은 희망적인 연대의 자리를 기획하는 것으로 실현되었다. 소비적인 축제를 지양하고 새로운 축제문화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도 곁들여졌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무래도 1회 행사예요. 사포마을 주민들이 마음을 내주셨거든요. 추수를 끝낸 논에 마을 목수 분들이 직접 무대를 꾸미고 짚단을 의자 삼아 앉았죠. 벼 베고 남은 밑동에 아이들이 걸려 넘어질까 봐 어르신들이 예초기로 일일이 벼 밑동을 잘라내시기도 했어요."

 


구례에서 개최된 제1회 지리산문화제



최화연 사무처장은 제1회 지리산문화제를 계기로 축제든 사업이든 그 일이 벌어지는 현장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유대관계 혹은 결합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했다고 한다. 또한 앞으로 지리산 문화제를 계기로 지리산 권에서 다양한 형태의 마을 문화제가 벌어졌으면 하는 바람도 내비쳤다.

 

"우리도 이렇게 잘 놀 수 있다는 거 보여줬으니까 곳곳에서 이런 문화제가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성과라면 지역민이든 귀농인이든 그 지역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결합하여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던 점과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획득이라고 할까요. 판을 벌여주는 역할이었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2014년 지리산댐 문제가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지리산생명연대의 출범 이유였던 지리산댐은 생명연대가 출범한 이후 12년간 이미 대여섯 차례에 걸쳐 현안으로 다루어졌던 사안이다. 홍준표 경남도시자는 홍수조절용이라는 국토부의 입장과는 달리 식수용 댐을 만들겠다며 또 다른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홍 지사는 댐 건설 자체의 효용성에 대한 사전검토 없이 단순한 주민투표에 의해 댐 건설 여부를 결정짓겠다고 나섰다.

 

"수자원공사 입장에서는 숨이 붙어 있는 한 밀어붙일 거예요. 그게 수공의 존재이유니까요. 국토부가 전면에 나서기는 여론 때문에 껄끄러울 거고 수공이 지저분한 일들 처리하는 동안 국토부는 뒷짐 지고 주민의견 수렴하는 척 하면서 시간 끌겠죠. 사실 댐 문제는 집중적으로 대응할 필요도 있지만 길게 봐야 하는 일인데 지금은 사안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네요."

 


지리산댐 반대운동은 아직도 진행형

 

용유담까지 걸으면서 지리산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지리산댐 반대를 목표로 깃발을 들었던 지리산생명연대는 12년이 지난 지금도 그 깃발을 내려놓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광화문 광장에 지리산 댐을 반대하는 함성이 울려 퍼지도록, 용유담이 물 밑으로 사라지지 않고 나의 친구가 될 수 있도록, 수달이 흐르는 물을 따라 유유히 헤엄칠 수 있도록 하는 일은 지리산생명연대 만의 일은 아니다. 이제 어머니의 산 지리산, 그 생명의 결을 엮어내는 것은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About The Author

똥폼 (세상똥폼 여든까지! 가끔은 예술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여 행복하다. 백살까지 건강하게 책보며 살고 싶은 철들긴 글러먹은 욕.심.쟁.이)

 



<지리산 이음>에서 함양, 남원, 하동, 산청, 구례 등 지리산권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들, 지리산권의 사람들이 지역을 기반으로 벌이고 있는 새롭고 재미있는 실험들을 찾아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리산권의 여러 커뮤니티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연결되어 관계를 맺어가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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