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칠 이전의 순백의 예술, 그리고 생활 목기공방 ‘새벽네 공방’ 정상길 씨를 만나다 “‘뭐 하고 살래? 칼 한번 잡아봐라’ 라는 말로 시작했는데, 그 깎이는 느낌이 너무 좋아서 계속하게 되었다.” 
(사진 1 : 정상길 씨가 공방에서 발우를 깎고 있다.) 1)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백일리에 사는 정상길이다. 목공은 96년부터 시작했다. 2) 어떤 수공예를 하고,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93년에 제대하고 남원 시내에서 잠깐 다른 일 하다가 말아먹었다. IMF 직전이라 힘들어서 산내 집으로 들어왔다. 어른들이 ‘뭐 하고 살래?’ 하다가 ‘칼 한번 잡아봐라’ 라고 해서 칼 한번 잡아봤는데, 그 깎이는 느낌이 너무 좋아서 계속하게 되었다. 그 때가 26살. 25년 정도 했네. 
(사진 2 : 나무를 깎는 데에 쓰이는 도구들이 나열되어 있다.) 3) 작업공간, 또는 판매공간은 따로 있나요? 남의 집 생활하다가, 목기하고 나서 2002년도에 실상사 앞 공방을 샀다. 하천부지였는데, 처음 차린 공방이었다. 그 해에 루사가 와서 시작하자마자 통채로 다 떠내려갔다. 성질이 나서 남들 다 수해 복구하는 그 때 건물을 올려버렸다. 2005년도에 건교부 부지를 사서 내 건물이 되었다. 건교부에 살 때만 해도 80평에 2천만원 정도였는데, 먼저 계산한 것도 그런 가격이어서 5천 정도에 땅을 샀다. 거기서 쭉 하다가, 80평에 도로가에 위치하다보니 나무 내려놓기도 힘들어서 ‘좀 넓은 데로 가자’ 해서 옮겼다. 지금 있는 작업장은 2017년도 즈음 왔으니 3년 정도 되었다. 지금 작업장에서는 백골 (칠 없이 모양을 깎은 나무) 작업만 하고 있다. 공방이 넓어지니 마음적으로 여유가 생기고, 시청 직원도 다녀가면서 기계도 지원받고 하면서 동네 주민들 가르치며 노는 것도 진행하고 있다. 다들 알음알음 온다. 이 바닥에 있은지 20년이라서, 소개 받아서 오고 그런다. 블로그에는 대충 글만 쓰지, 잘 소개 안하는데 이제는 태그라도 좀 달아야겠다. 그거 검색해서 완제품 사는 사람도 있다. 스마트스토어 같은 거는 배워야지 하지. 하긴 해야 하는데…. 근데 목기도 만드는 기술보다는 사진 찍는 게 반인 세상이다. 그거 따라가려면 가랭이가 찢어질텐데, 스마트스토어 이런 거 맡겨서 해보면 좋겠다. 누가 해줄 놈 있으면 좋겠다. 딸내미들은 안 한다고 하고. (정상길 씨는 2020년 말에 마을 지인들의 도움으로 스마트스토어를 열었다. 바로가기) “전시하면 그래도 갈 때마다 빈손은 아니다. 하나 전시하고 하나 팔고, 명함 팔러 가는 개념으로 전시한다.” 
(사진 3 : 정상길 씨가 백골 상태의 발우를 보여주고 있다. 발우는 그릇 하나하나가 정확히 맞아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다.) 4) 수공예품을 어떤 방법으로 알리고 있나요? 밀라노에서도 전시도 했고. 백골 제작자랑 칠 제작자랑 이름 다 넣어주는 게 요즘 추세다. 그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백골이 전시되고 약간의 비용을 받기도 한다. 한일교류전도 6회째 해마다 하고 있다. 무형문화재 재단에서 발우전, 백골전, 소반전 이런 전시도 했다. 전시하면 그래도 갈 때마다 빈손은 아니다. 하나 전시하고 하나 팔고, 명함 팔러 가는 개념으로 전시한다. 5) 수공예 작업이 경제활동에서, 또는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되나요? 내가 백골 작업을 하면 처남이 칠하고, 이렇게 2명이 하고 있다. 가끔 동네 형이 도와주기도 했는데 몸이 안 좋은지 요즘은 잘 안 나온다. 월급이 한 400 정도 나간다. 월급, 전기요금하면 기본 월 450, 달마다 들어가는 돈을 생각하면 800에서 900만 원은 매출이 되어야 굴러간다. 하루에 25-30만원치는 팔아야 한 달이 돌아간다. 6) 수공예 작업물을 판매한다면 가격책정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나무 수종 따라 다 다르긴 한데, 한바닥에서 20년 일했으면 노가다판에서도 일당 15만 원 이상이니까, 내 인건비를 15만 원으로 책정해서 계산하기도 한다.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같이 일하는 사람 인건비 정도 나오면 그냥 작업하기도 하고. 완제품 아니고 반제품 제작해서 거래하기도 한다. 칠 없이 백골 가격 5만원에서 10만 원으로 올리는데 20년 걸렸다. 5합발우 기준으로 백골 10만 원, 칠한 건 동네 가격으로 20만 원, 바깥에는 25에서 30만 원 받는다. 느티나무 매장에 물건이 다 빠졌는데 안 넣었다. 정상적인 가격으로 다시 책정하려고 한다. 마진 20%까지 포함해서. “육체적으로 힘들다거나 이런 건 없고, 영업이 제일 어렵다.” 
(사진 4 : 작업실 한 켠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발우 그릇들) 7) 작업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어려운 건 없는데, 젊을 때 말아먹은 것도 영업 쪽이었는데…. 지금도 만들고, 칠하고, 그건 하는데 영업이 어렵다. 육체적으로 힘들다거나 이런 건 없고 영업이 제일 어렵다. 8) 앞으로의 계획이 있나요? 작업실 옆 공간에 전시장을 하나 차릴 생각이다. 장기적으로는 옻칠 교육까지 해서 자기 손으로 만들어서 옻칠까지 해보는 프로그램으로 진행해 보고 싶다. 옻칠을 해야 생활목기로 쓰는 게 가능하다. 조사/인터뷰 | 조회은 사진 | 임현택 편집 | 누리 인터뷰 일자 2020.07.23 |
※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의 지원사업을 통해 제작된 콘텐츠입니다.
우리동네 수공예작업자들로부터 <듣는 자리>
[우리동네 수공예작업자들로부터]는 2020년 상반기 작은조사 지원사업으로 지원한 조회은 님의 '우리동네 수공예작업자들로부터 <듣는 자리>' 사업을 통해 진행된 인터뷰입니다. 남원시 산내면에서 직조 공방을 운영하며 수공예 작업자로 살고 있는 조회은 님은 주변의 다른 작업자들은 어떻게 삶을 꾸리고 있는지, 작업이 경제활동에 보탬이 되는지 호기심이 생겨서 이 인터뷰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떤 수공예작업자들이 조사자의 '우리동네'인 남원시 산내면에 살고 있는지 알아보고, 작업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2020 상반기 일반공모지원사업 (작은조사 부문) 선정 대상입니다.
옻칠 이전의 순백의 예술, 그리고 생활
목기공방 ‘새벽네 공방’ 정상길 씨를 만나다
“‘뭐 하고 살래? 칼 한번 잡아봐라’ 라는 말로 시작했는데, 그 깎이는 느낌이 너무 좋아서 계속하게 되었다.”
(사진 1 : 정상길 씨가 공방에서 발우를 깎고 있다.)
1)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백일리에 사는 정상길이다. 목공은 96년부터 시작했다.
2) 어떤 수공예를 하고,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93년에 제대하고 남원 시내에서 잠깐 다른 일 하다가 말아먹었다. IMF 직전이라 힘들어서 산내 집으로 들어왔다. 어른들이 ‘뭐 하고 살래?’ 하다가 ‘칼 한번 잡아봐라’ 라고 해서 칼 한번 잡아봤는데, 그 깎이는 느낌이 너무 좋아서 계속하게 되었다. 그 때가 26살. 25년 정도 했네.
(사진 2 : 나무를 깎는 데에 쓰이는 도구들이 나열되어 있다.)
3) 작업공간, 또는 판매공간은 따로 있나요?
남의 집 생활하다가, 목기하고 나서 2002년도에 실상사 앞 공방을 샀다. 하천부지였는데, 처음 차린 공방이었다. 그 해에 루사가 와서 시작하자마자 통채로 다 떠내려갔다. 성질이 나서 남들 다 수해 복구하는 그 때 건물을 올려버렸다. 2005년도에 건교부 부지를 사서 내 건물이 되었다. 건교부에 살 때만 해도 80평에 2천만원 정도였는데, 먼저 계산한 것도 그런 가격이어서 5천 정도에 땅을 샀다. 거기서 쭉 하다가, 80평에 도로가에 위치하다보니 나무 내려놓기도 힘들어서 ‘좀 넓은 데로 가자’ 해서 옮겼다.
지금 있는 작업장은 2017년도 즈음 왔으니 3년 정도 되었다. 지금 작업장에서는 백골 (칠 없이 모양을 깎은 나무) 작업만 하고 있다. 공방이 넓어지니 마음적으로 여유가 생기고, 시청 직원도 다녀가면서 기계도 지원받고 하면서 동네 주민들 가르치며 노는 것도 진행하고 있다.
다들 알음알음 온다. 이 바닥에 있은지 20년이라서, 소개 받아서 오고 그런다. 블로그에는 대충 글만 쓰지, 잘 소개 안하는데 이제는 태그라도 좀 달아야겠다. 그거 검색해서 완제품 사는 사람도 있다.
스마트스토어 같은 거는 배워야지 하지. 하긴 해야 하는데…. 근데 목기도 만드는 기술보다는 사진 찍는 게 반인 세상이다. 그거 따라가려면 가랭이가 찢어질텐데, 스마트스토어 이런 거 맡겨서 해보면 좋겠다. 누가 해줄 놈 있으면 좋겠다. 딸내미들은 안 한다고 하고. (정상길 씨는 2020년 말에 마을 지인들의 도움으로 스마트스토어를 열었다. 바로가기)
“전시하면 그래도 갈 때마다 빈손은 아니다.
하나 전시하고 하나 팔고, 명함 팔러 가는 개념으로 전시한다.”
(사진 3 : 정상길 씨가 백골 상태의 발우를 보여주고 있다. 발우는 그릇 하나하나가 정확히 맞아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다.)
4) 수공예품을 어떤 방법으로 알리고 있나요?
밀라노에서도 전시도 했고. 백골 제작자랑 칠 제작자랑 이름 다 넣어주는 게 요즘 추세다. 그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백골이 전시되고 약간의 비용을 받기도 한다.
한일교류전도 6회째 해마다 하고 있다. 무형문화재 재단에서 발우전, 백골전, 소반전 이런 전시도 했다. 전시하면 그래도 갈 때마다 빈손은 아니다. 하나 전시하고 하나 팔고, 명함 팔러 가는 개념으로 전시한다.
5) 수공예 작업이 경제활동에서, 또는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되나요?
내가 백골 작업을 하면 처남이 칠하고, 이렇게 2명이 하고 있다. 가끔 동네 형이 도와주기도 했는데 몸이 안 좋은지 요즘은 잘 안 나온다. 월급이 한 400 정도 나간다. 월급, 전기요금하면 기본 월 450, 달마다 들어가는 돈을 생각하면 800에서 900만 원은 매출이 되어야 굴러간다. 하루에 25-30만원치는 팔아야 한 달이 돌아간다.
6) 수공예 작업물을 판매한다면 가격책정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나무 수종 따라 다 다르긴 한데, 한바닥에서 20년 일했으면 노가다판에서도 일당 15만 원 이상이니까, 내 인건비를 15만 원으로 책정해서 계산하기도 한다.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같이 일하는 사람 인건비 정도 나오면 그냥 작업하기도 하고. 완제품 아니고 반제품 제작해서 거래하기도 한다. 칠 없이 백골 가격 5만원에서 10만 원으로 올리는데 20년 걸렸다. 5합발우 기준으로 백골 10만 원, 칠한 건 동네 가격으로 20만 원, 바깥에는 25에서 30만 원 받는다. 느티나무 매장에 물건이 다 빠졌는데 안 넣었다. 정상적인 가격으로 다시 책정하려고 한다. 마진 20%까지 포함해서.
“육체적으로 힘들다거나 이런 건 없고, 영업이 제일 어렵다.”
(사진 4 : 작업실 한 켠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발우 그릇들)
7) 작업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어려운 건 없는데, 젊을 때 말아먹은 것도 영업 쪽이었는데…. 지금도 만들고, 칠하고, 그건 하는데 영업이 어렵다. 육체적으로 힘들다거나 이런 건 없고 영업이 제일 어렵다.
8) 앞으로의 계획이 있나요?
작업실 옆 공간에 전시장을 하나 차릴 생각이다. 장기적으로는 옻칠 교육까지 해서 자기 손으로 만들어서 옻칠까지 해보는 프로그램으로 진행해 보고 싶다. 옻칠을 해야 생활목기로 쓰는 게 가능하다.
조사/인터뷰 | 조회은
사진 | 임현택
편집 | 누리
인터뷰 일자 2020.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