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이음 활동 소식

자료[남원/김양오인터뷰] 암벽등반을 하던 산악인에서 지리산 지킴이로, 지리산 생명연대 한승명 사무국장

2020-11-10

※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의 지원사업을 통해 제작된 콘텐츠입니다.


김양오의 인터뷰 남원의 인물을 만나다


 

10년이 넘게 남원의 역사를 공부하고 알리는 일을 해온 김양오 활동가가 남원의 시민사회 활동가들을 만납니다. '역사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는 관용구처럼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을 이어오면서 남원의 오늘을 만들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남원의 현재와 미래를 비추어보려 합니다.

 

 

 

암벽등반을 하던 산악인에서 지리산 지킴이로

 

지리산 생명연대 한승명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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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남원 시내 한복판, 남문 사거리에서 광한루원 가는 길에 특별한 사무실이 하나 문을 열었다. 옆의 다른 가게들과 달리 통유리에 환경에 관한 포스터만 턱턱 붙어 있는 작은 사무실. 위에는 ‘하루’라는 오래된 간판이 그대로 있고, 통유리 아래쪽에는 ‘기후위기 남원시민모임’이라는 정사각형 나무 간판이 놓여있다. 

 

올해 초 결성이 된 ‘기후위기남원시민모임’의 사무실이다. 제일교회의 배려로 교회 소유의 작은 가게를 빌려준 것이라고 한다. 그곳에서 시민모임의 핵심 활동가이며 ‘지리산 생명연대’ 사무국장인 한승명씨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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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지리산생명연대 회원들과 기후위기남원시민모임 사무실에서

 

 

 

# (토박이) 남원분이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요, 언제 어떤 계기로 내려오게 되셨나요?

 

대학 1학년 때부터 산악 동아리에 들어가 산에 다녔고 졸업한 뒤에는 산악인으로 살려고 산악 장비회사에 다녔습니다. 대학에서 의상디자인을 전공해서 유명 생활 한복 회사에 취직했지만 오로지 산에 다니기 위해 작은 등산 장비 회사로 옮겼죠. 등산복 디자이너가 된 거에요. 하지만 그 회사도 결국 등반을 위해 그만 두었죠. 

 

그러다가 결혼하고 아이들이 6살, 4살일 때 함양에 있는 녹색대학(온배움터)과 인연이 되어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내려오기 전에도 설악산과 지리산을 많이 다녔는데 설악은 사람이 살기에 너무 험하고 지리산이 편한 게 더 끌렸죠. 녹색대학에서 사무 보는 일을 하다가 지리산 둘레길을 만드는 것을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고 남원 산내로 오게 된 것입니다. 사무실 안에서 사무를 보는 녹색대학보다 산을 직접 다니는 둘레길 만들기가 훨씬 저한테는 잘 맞는 일이었죠.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한승명씨가 산악인이었다니. 겉으로는 그냥 동네 편안한 아낙처럼 생겼는데 히말라야 같은 곳을 오르내리는 산악인이었다니, 갑자기 산악인으로서의 삶이 궁금해졌다. 

 

 

 

사춘기가 고3때 왔어요. 그동안은 불량식품도 절대 안 사먹는 범생이었는데 사춘기가 와서 꽤 잘 하던 공부도 안 하고 방황을 했죠. 결국 집 근처 후기 대학에 들어갔는데 1학년 때  경치 좋은 데 관광 가서 노는 동아리인 줄 알고 산악 동아리에 들어갔어요. 처음 산에 따라 갔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신입생 훈련시키려고 북한산 인수봉을 데리고 간 거였죠. 첫날에는 구르기부터하고 배낭에 짱돌 잔뜩 넣어서 산에 올라가야 했죠. 신고식같은 것을 한 거에요. 너무 ‘빡세게’ 훈련을 시켜서 절벽 끝에 배낭 메고 죽는다고 누워 있는데 철거덕철거덕 소리가 나더라고요. 선배들이 암벽 등반 장비를 챙기는 소리였죠. 보니까 저기를 올라갔다 와야 밥을 먹는다는 거에요. 어떻게 올라갔다 왔는지 생각이 안나요. 저는 평소에 운동도 잘 안하던 사람이었어요. 

 

다음날 아침에 눈을 딱 떴는데 근육통 때문에 일어날 수가 없었어요. 1주일을 깁스한 사람처럼 ‘뻗쩡다리’로 다녔어요. 그런데 다음 주말이 되자 다시는 안 가리라던 산에 다시 가고 싶더라고요. 그 때 정신이 좀 든 것 같아요. 사춘기로 방황하던 내 정신을 확 깨우던 시기였죠. 

 

 

 

한승명씨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영화 ‘히말라야’가 생각났다. 엄홍길 대장이 히말라야에서 죽은 후배들의 시신을 찾기 위해 다시 올랐던 휴먼원정대 실화. 그 영화의 한 장면이 바로 1학년들 신고식이다. 한승명씨가 그런 산악인이었다니 뜻밖의 이야기에 인터뷰는 더욱 흥미진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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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지리산 천왕봉에서 (좌), 월출산 암벽등반 (우)

 

 

 

# 처음 암벽에서 밧줄을 탈 때 어땠나요?

 

설명이나 이해가 전혀 없이 그냥 막 부딪쳐서 그런지 좋기도 하면서 무섭기도 하더라고요. 힘든 속에 성취감이 더 온 것 같아요. 편하게 주어진 것은 그렇게 기쁘지 않을 텐데 힘들게 목표까지 가니까 혼란스러웠던 나를 잡아주었던 것 같아요. 그 이후에 산을 추구했던 사람들의 철학이라든지 여러 가지가 굉장히 저를 매료 시켰죠. 그래서 계속 산악 동아리를 했습니다. 

 

 

# 대학 때 산악부 활동 중 가장 기억 남는 산은? 

 

산에 매료되고 나서 거의 매주 북한산, 도봉산 암장들을 갔어요. 방학 때는 설악과 지리산을 갔으니 거의 산에 있었던 거죠. 옆에 친구들이 데모할 때도 저는 산으로 갔으니까요. 사회에 정이 없었고 사회에서 뭔가를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어요. 산에 가야 내가 치유되는 것 같았고 점점 산의 맛을 느낀 것 같아요.  

산은 질풍노도의 사춘기에서 저를 구해 준 생명의 은인이에요. 그리고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온 기조를 잡아주었고 삶을 관조하는 관점이 그 때 형성된 것 같아요. 존재에 대한, 자연과 인간에 대한 개념이 잡힌 것 같아요. 그 뒤 천천히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죠. 

 

 

 

한승명씨는 국내 여성 최초로 백두대간을 종주한 남난희, 5대륙 최고봉을 다 등정하고 14좌 등정을 달성한 오은선 대장과도 함께 산을 올랐던 완전 전문산악인이었다. 한승명씨도 조선시대 신경준이 쓴 ‘산경표’를 본 뒤, 물을 안 건너고 지리산부터 설악산까지 이어진 백두대간 종주를 했다고 하니 진짜 큰 산악인을 그동안 몰라 봤다. 

 

 

 

# 그동안 다녀본 산 중에 가장 높은 산은 어디인가요? 

 

주로 암벽 등반을 많이 했는데 일본 북알프스, 유럽 알프스 암벽 등반을 했죠. 하지만 저는 대학때부터 생명과 교감하는 산악 정신이 좋아서 굳이 높은 산을 추구하지 않았어요. 생명의 한계, 극한에 부딪쳐 성취하면서 저도 많이 성장을 했죠.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어요. 눈사태도 겪었고 바로 옆에 있던 동료가 죽는 것도 봐야 했죠. 심각하게 다치는 것도 많이 봤지만 계속했죠. 

 

 

# 그렇게 위험하고 고통스러운데 왜 계속 하는 거죠? 

 

사랑하는 가족이 죽어도 계속 사는 거랑 똑같아요. 보통 사람들은 편안하고 안락한 것을 추구하는데 산악인은 어려움을 극복해 내려고 하고 한계를 극복해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에요.

 

 

 

아, 우문현답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도 내 삶은 이어가듯이 함께 있던 동료가 죽어도 계속 산에 간다는 것은 등반이 삶이라는 뜻이다. 갑자기 너무 쉽고 편안한 길을 걸어온 내가 몹시 작고 가벼워 보였다. 한승명씨는 아이 낳은 이후로는 험한 암벽등반은 안하지만 여전히 산악인이라고 말했다. 후배들을 지원해 주고 가끔 동기들과 산에 가는 것도 그렇지만 여전히 산악인 정신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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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남원 산내면 청소년들과 안나푸르나 트래킹

 

 

 

# 지리산둘레길 만드는 것에 처음부터 참여하셨다고 했는데요, 그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지리산둘레길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게 되었나요? 

 

자본주의 논리때문에 생명이 경시되면서 많은 문제가 생기는 것을 보고 도법 스님이 중심이 되어서 대안을 제시해 보자며 만들기 시작한 거에요. 도법스님은 수행자로서 순례, 관조를 할 수 있는 순례길을 구상하고 계셨죠. 시작과 끝이 다르지 않은 동양철학을 구현해 내기 위해 원 형태의 둘레길을 구상하셨죠.

민관이 협력해서 만들기 시작해서 5개년 사업으로 2007년에 시작되었는데 저는 그 때부터 2년동안 함께 했어요. 5개년 사업이었는데 2년 째에 4대강 사업 때문에 조직이 와해되었어요. 민과 관이 협력해서 아주 잘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명박 정부의 4대강과 배치되면서 5개 시군이 다 갈라졌죠. 나중에 새로운 조직이 만들어져서 다시 구성되었지만 처음의 의도와는 좀 다르게 진행되었죠. 그래서 저는 처음 2년동안만 함께 하고 나중에는 다시 안 들어갔어요.

 

 

 

한승명씨는 그동안 ‘살래국수’집 사장님으로 더 유명했다. 나는 올해 초 기후위기 시민모임을 같이 하면서 한승명씨가 살래국수집 사장님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왜 유명한지는 모르지만 산내사람은 물론 어지간한 남원 사람들도 다 아는 그 살래국수. ‘산내국수’도 아니고 남원 토박이들이 쓰는 말 ‘살래’를 붙여 ‘살래국수’집 말이다. 

 

 

 

먹고 살기 위해 국수집을 시작했어요. 지리산 둘레길 사업을 하다가 나와서 이 일 저 일 전전하다가 김치도 못 담그고 요리에 대한 기본이 아무 것도 안 되는 사람이었는데 그냥 해보자고 저질렀죠. 다른 음식은 못 해도 국수 정도는 될 것 같았죠. 그런데 국수 삶는 일도 보통일이 아니더라고요. 초반에 헤매고 있을 때 뜻밖의 인연으로 수십 년 된 요리사가 와서 필요한 도구부터 레시피, 그밖에 모든 것을 다 알려주고 가셨어요. 그 분도 산을 좋아하는 분이셨죠. 그 분 덕분에 시작을 잘 하게 되었고 제 식대로 가게를 꾸려나가서 8년 정도 운영했죠. 

 

‘살래국수’가 유명한 건 가게가 동네 사랑방 역할을 했기 때문일 거에요. 애들 사랑방, 주민들 사랑방이 되었죠. 그 때 동네 분들과 많이 가까워지고 아이를 함께 키우다시피했죠. 수원, 서울, 함양, 산내로 떠돌던 인생이 드디어 산내에서 뿌리를 내리게 된 거죠. 아이들이 커가는 대로 어린이집 활동, 산내초등학교 학부모회 활동, 동네 다양한 모임도 하면서 마을 살이가 매우 풍부해졌어요. 아이들 덕분에 제 삶과 생활을 보게 된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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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살래국수'에서 열린 산내 청소년 요리교실

 

 

 

# 그렇게 유명하고 잘 나가던 국수가게를 어느 날 갑자기 접은 한승명씨, 그리고 얼마 뒤 지리산 생명연대 활동가로서 세상에 다시 나왔다. 그리고 지금 왕성하게 지리산 권역 5개 시군을 돌아다니며 활동을 하고 있다. 

 

아이들도 어느 정도 커서 자유로워지고 나이가 더 먹기 전에 세상에서 역할을 좀 하다가 죽어야 하지않을까? 이대로 늙어서 죽으면 편안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나이들수록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가 쉽지가 않으니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하자고 접은 거에요. 그 때 지리산 생명연대에서 활동가를 뽑는다는 소식을 들었죠. 잘하는 건 없지만 지리산 지킴이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해보겠다고 나섰어요.

 

지리산 생명연대는 지리산에 댐과 케이블카를 놓겠다는 정부에 맞서 오랫동안 반대운동을 해 온 단체에요. 국립공원 1호라는 상징성이 있는 지리산인데 이렇게 무너지면 안 되거든요. 댐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계속 얘기됐다가 수구러들었다를 반복했는데 작년에 결국 완전 백지화를 이끌어 냈어요. 이렇게 댐은 저지가 됐는데 케이블카, 도로, 산악열차가 계속 거론되고 있는 게 안타까워요. 아직도 개발 논리가 팽배하죠. 생명연대는 지리산권역 5개 시군에서 지리산을 지키고자 하는 분들이 연대할 수 있게 도와주는 구심점으로서 매우 필요한 단체에요. 

 

 

 

생명연대는 단순히 환경운동을 하는 단체가 아니다. 이름 그대로 생명을 살리는 일이 목표다. 생명보다는 돈을 중시하는 자본주의의 사회 속에서 생명 중심으로 관점을 돌리자는 곳. 생명연대의 목표는 생명질서가 공평하게 구현되는 사회다. 기후위기 상황에서도 누구는 편안하게 살지만 누구는 정말 열악한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어 공평하지 않다. 그래서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부분도 연결되어 있고 인권 운동까지도 활동분야를 넓혀가려고 한다고 한승명씨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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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지구를 살리는 산내 자전거 유랑단

 

 

 

# 지리산 생명연대는 올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첫번째로 생태모니터링을 하고 있어요. ‘수달 아빠’라는 운영위원 중심으로 산과 하천에 깃들어 살고 있는 생명들을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있는 것이죠. 수달과 어류 수목을 모니터링하고 있는데요, 지리산과 운봉 람천에서 희귀식물, 보호종 모니터링을 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는 서로 소식을 공유하고 알리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여론 조성, 정책 견제 감시하는 일도 하죠. 

 

구체적으로 움직이는 활동으로는 자전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중심의 문화를 보행자, 생명 중심으로 바꿔보자는 차원에서 하는 것이죠. 우리나라는 자전거나 보행자를 위한 공간이 매우 부족해요. 자동차를 위한 찻길은 넓고 주차장은 매우 많지만 자전거나 사람들이 쉴 공원 같은 공간은 매우 부족하죠. 그래서 우리가 자전거를 많이 이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런 공간이 많이 생길 거니까요. 지금은 어린이들과 한달에 한번 자전거를 타면서 자전거가 왜 좋은지 알리고 있습니다. 산내에서 자전거 작업장을 하는 분을 중심으로 하고 있고요, 자전거 유랑단이라고 꾸려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남원 시내에서는 기후위기 시민모임과 춘향테마파크에 전깃줄로 꽁꽁 묶여있는 나무들을 구하기 위해 몇 달동안 시위를 했고 시민들과 함께 숲 모니터링을 진행했습니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현안 대응보다는 지역이 연대해서 생명 중심으로 시민들의 의식을 전환하는 운동에 초점을 모으고 연대 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하동 알프스 프로젝트가 심각해져서 지금은 그 문제에 적극 대응하고 있죠. 하동 알프스 프로젝트는 하동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죠. 하동이 그렇게 무너지면 다른 지역의 지리산도 쉽게 개발될 수 있으니까요. 연대해서 함께 막아내야 한다고 봅니다. 

 

 

 

얼마전 하동군이 산악열차를 추진하고 있는 지리산 형제봉에 반달곰이 살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는 뉴스에 지리산권이 시끄러웠다. 하동군에게는 다된 밥에 재를 뿌리는 뉴스였고 지리산 개발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반가운 뉴스였다. 어쩌면 반달곰들이 형제봉을 살릴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반달곰들이 뉴스에 등장하게 된 것은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모임’의 꾸준한 반달곰 모니터링 덕분이었다. 지리산 생명연대의 생태모니터링도 언젠가 지리산을 살리는 데 요긴하게 쓰이지 않을까?

 

 

 

마을동갑내기들과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장(만인만북문화제)에서.jpg

사진 : 마을동갑내기들과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장(만인만북문화제)에서

 

 

 

# 한승명씨 개인으로서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환경계의 욕쟁이 할머니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할머니처럼 욕하면서도 살려주는 일을 하고 싶어요. 고쳐주고 키워내고 꾸며주고 살려주는 일을 하는 게 여자잖아요. 

 

 

 

욕은 하나도 못하게 생긴 사람이 욕쟁이 할머니가 되고 싶다니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지리산을 살리는 진정한 ‘살림꾼’은 분명히 될 것이라는 믿음이 갔다. 한승명씨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니 지리산에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당연한 귀결인 것만 같다. 그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한승명씨도 자기 삶이 ‘자기 생각대로’가 아니라 그냥 ‘흘러온 것’같다는 얘기를 한다. 신의 섭리로 이어진 끈따라 수원에서 서울, 서울에서 함양, 함양에서 산내, 산내에서 지금은 지리산 전체로 흘러가는 인생.

 

 

 

# 마지막으로 한승명씨에게 요구했다. 

도시에 있는 친구들에게 '남원으로 내려오면 좋은 것 세가지'만 뽑아달라고.

 

1. 자연과 가까이 있기 때문에 오감을 교감할 수 있다. 삶이 굉장히 재밌고 생기있어진다.

2. 삶을 전환하고 싶거나 한계를 느낀 분들에게 남원이 적합하다. 문명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시도하기에 적당한 곳이다. 수운 최제우 선생이 동학사상을 괜히 남원에서 완성한 게 아니다. 뭔가 정신적인 기반을 가지고 새 출발할 수 있는 곳이 남원이다

3. 좋은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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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2020 독도의 날,지리산 천왕봉에서 남원시민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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