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 문 | 경주에서 구례가는 길 | 추천의 글 | 디딤돌과 화살표 / 김탁환(소설가) 가슴으로 만나는 ‘두 번째 이야기’ 추천합니다 / 국제재난심리지원단 이지스 멤버 & 심리사회지원활동가 신정식 | 느긋한 쌀빵 안영삼님 인터뷰 | 느긋한 피해자, 절실한 목격자 | 오일장 상인연합회 김선정씨 인터뷰 | 누구나 그렇지는 않다 | 구례섬지아이쿱 조합원 이선경씨 인터뷰 | 그때, 그 언니한테 괜찮냐고 물어봤어야 했는데 | 구례수해시민대책위원회 김창승·정영이 공동대표 인터뷰 | 섬진강이 그어놓은 마음 속의 선 하나 | 영유아모임 최아리씨 인터뷰 | 우연히 발견된 그러나 늘 존재해온 문제들 | 지리산 네트워크 활동가 정태연씨 인터뷰 | 물길도 사람길도 막힘이 없도록 | 노래하는 옥수수 김주혜씨 인터뷰 | 확고한 시스템은 무력했고 납작했던 이웃들은 다채롭게 다가왔다 | 재난 구호 현장 코디네이터 이동환 이사 인터뷰 | 결국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 서문 | 경주에서 구례가는 길 ‘재난은 기시감이다.’ 책을 정리하는 원고를 써야하는데… ‘10.29 핼러윈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재난목격자가 되고 숨은 피해자가 되고 살아남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과거의 일과 오늘의 일이 다르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속도 없이 쓰고 담으며 굳이 과거를 들추는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구례 수해는 2년 전 과거의 사건이지만 6년 전 경주 지진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고, 어제의 ‘10.29 핼러윈 참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일을 생각하게 됩니다. 선진국은 ‘재난이 일어나지 않는 나라’가 아니라 ‘같은 재난이 반복되지 않는 나라’라고 합니다. 일어난 일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을 때 실체가 보이고 그 너머로 회복과 감재가 가능하겠지요. 이 글은 구례 수해의 이야기입니다. 물이 넘친 이야기나 땅이 잠긴 이야기가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9명의 인터뷰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모습의 수해를 만났고, 어떻게 다가갔으며 무엇으로 헤쳐나왔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인터뷰를 진행한 이유는 개개인의 경험이 기록으로 남을 때 그 과정을 통해 작으나마 상처를 회복하고 다시 닥칠 수 있는 다른 재난에 대응할 힘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재난으로 인한 트라우마와 어려움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이기에 이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우리 사회가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인식 개선을 위해 ‘재난 이후 회복 프로그램’의 사례를 수집하였으며, 이 인터뷰의 과정 자체가 우리의 목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2020년 8월 구례에서 진행했던 목욕 봉사나 식사 지원, 긴급한 살림 나누기 등의 구호 활동을 돌아보면 우리가 정말 외부인일 수밖에 없었다는 걸 다시 깨닫게 됩니다. 긴급함을 앞에 두다 결국은 사람을 보지 못하고 수해만 보고 돌아갔다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수해 1년 후, 재난 현장에서 타인을 돕는 리더의 역할로 협력했던 분들에게서 전해 들은 하소연 섞인 소회는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했으며 다시 우리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었습니다. 재난의 기억을 다시 한번 꺼내어 피해 액수나 숫자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로 남기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무서운 속도로 물이 들어오던 수해의 장면, 그 물에 뒤엉키고 젖어 포크레인 한 삽으로 떠져 트럭에 실려 가 버린 그 기억들을 찬찬히 응시하는 게 회복의 시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속에서 나의 기억과 타인의 기억이 얼마나 다른 모양이며 그 안에는 어떤 흔적이 남았는지, 혹은 보여지는 것처럼 그저 하나의 덩어리일 뿐인지. 지금쯤은 우리에게 다시 그날을 응시해 볼 눈과 마음이 생겼을 거라고 믿습니다. 재난의 목격자는 피해자이면서 이해당사자이자 재난 대응의 열쇠입니다. 재난은 항상 그 사람들만의 이야기로만 남아 잊혀지기 쉽습니다. 우리는 2016년 경주 지진을 겪고 삶을 보는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구례 사람들도 수해 당시에 비해 1년, 2년이 지난 후 자기 삶이 변화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지리산 자락, 섬진강 변 삶의 터전에 대한 이해의 폭이 달라졌겠지요. 그 변화의 이유와 과정이 이 인터뷰에 담겨 있습니다. 또한 누구에게도 하소연하지 못하고 있는 피해자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염려의 마음도 담겨 있습니다. 수해 이야기를 그만하자는 말속에 숨겨진 트라우마와 고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재난 이후에 생기는 물리적, 지리적 고립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고립이 더욱 사람을 위축되게 하고 트라우마에 빠지게 하는 걸 겪어 본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외부와 연결하고 그 안의 이슈들을 계속 나누며 외부에 지지자들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또한 밖에서 보는 시선으로 미처 알지 못했던 구례 수해 이야기를 발견하고 기록하는 것이 유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재난 현장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접할 때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를 것입니다. 울진 산불 현장이나 고성 산불 피해지역의 이재민들 역시 정신적인 트라우마나 패닉을 호소합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그 과정에서 스스로 치유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벌써 6년이 지난 경주 지진의 이야기를 매해 9월이면 떠올리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습니다. 잊고 있는 것이 아니라 꽁꽁 싸매어 넣어 두는 거지요. 섬진강 둑처럼 한꺼번에 터지지 않게 이 글을 통해 하나씩 흘려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재난의 현장을 가장 먼저 전달하는 기자의 시선처럼 화제성 위주의 기록물이 재난의 기록물이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또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피해자다움을 요구하기보다는 정말 당사자들의 시선과 기억이 기록으로 남아야 된다는 생각으로 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또 다양한 방법으로 어느 날 한 시에 갑자기 일어난 한 개의 사건이 아니라 수많은 경험의 기록이 공유되기를 바랍니다.
기후재난의 시대, 인간답게 사는 것. ‘기후의 위기’라고 쓰고 ‘인류의 위기’라고 읽습니다. 인류세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우리가 만든 기후 위기를 감당해야 합니다. 재난은 예상 밖의 규모로 예상치 못한 순간에 우리의 생명과 터전에 위협을 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중 어떤 분은 재난 시 공공 시스템의 붕괴를 지적하며 사람만이 답이고 공동체를 회복하고 잘 연결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셨고, 또 다른 분은 공동체와 사람만을 믿을 수는 없으며 시스템을 촘촘하고 완벽하게 잘 만들어야 된다고도 하셨습니다. 두 이야기 중 무엇이 정답일까요? 우리는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서 있으며 이 문제가 가리키는 목적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기후재난의 시대,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는 질문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그 답을 풀어 가는 과정은 계속될 것입니다. 또한, 이 작은 동네 구례에서 수해라는 재난을 겪으며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챙겼던 마음들이 그 답의 시작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2년 10월 마지막날, 현관앞비상배낭 윤정임, 정미정, 정꽃님 |
※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의 지원사업을 통해 제작된 콘텐츠입니다.
구례 수해이야기 "속도 없이 쓰담쓰담"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의 2022 작은변화활동가지원사업으로 지원한 프로젝트 활동가 현관앞비상배낭 팀의 <구례 홍수 그 후 2년, 재난 회복 프로젝트 ‘치유와 회복을 위한 기록하기’> 프로젝트를 통해 제작한 콘텐츠입니다.
현관앞비상배낭은 2016년 경주 지진을 경험한 후 일상 속 재난 대응의 중요성과 회복과정의 필요성에 대해 절감하게 되어, 지진대응 매뉴얼북을 제작하고 관련된 기록물을 출판했습니다. 재난의 경험을 말하고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 트라우마의 상당 부분을 극복하고 지역의 재난 대응 주체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2022년에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2020년의 구례 수해로 큰 피해를 입은 오일장 상인들과 주민을 대상으로 인터뷰와 기록을 통해 치유와 회복의 계기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 서문 | 경주에서 구례가는 길
‘재난은 기시감이다.’
책을 정리하는 원고를 써야하는데… ‘10.29 핼러윈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재난목격자가 되고 숨은 피해자가 되고 살아남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과거의 일과 오늘의 일이 다르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속도 없이 쓰고 담으며 굳이 과거를 들추는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구례 수해는 2년 전 과거의 사건이지만 6년 전 경주 지진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고, 어제의 ‘10.29 핼러윈 참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일을 생각하게 됩니다. 선진국은 ‘재난이 일어나지 않는 나라’가 아니라 ‘같은 재난이 반복되지 않는 나라’라고 합니다. 일어난 일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을 때 실체가 보이고 그 너머로 회복과 감재가 가능하겠지요.
이 글은 구례 수해의 이야기입니다.
물이 넘친 이야기나 땅이 잠긴 이야기가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9명의 인터뷰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모습의 수해를 만났고, 어떻게 다가갔으며 무엇으로 헤쳐나왔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인터뷰를 진행한 이유는 개개인의 경험이 기록으로 남을 때 그 과정을 통해 작으나마 상처를 회복하고 다시 닥칠 수 있는 다른 재난에 대응할 힘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재난으로 인한 트라우마와 어려움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이기에 이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우리 사회가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인식 개선을 위해 ‘재난 이후 회복 프로그램’의 사례를 수집하였으며, 이 인터뷰의 과정 자체가 우리의 목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2020년 8월 구례에서 진행했던 목욕 봉사나 식사 지원, 긴급한 살림 나누기 등의 구호 활동을 돌아보면 우리가 정말 외부인일 수밖에 없었다는 걸 다시 깨닫게 됩니다. 긴급함을 앞에 두다 결국은 사람을 보지 못하고 수해만 보고 돌아갔다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수해 1년 후, 재난 현장에서 타인을 돕는 리더의 역할로 협력했던 분들에게서 전해 들은 하소연 섞인 소회는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했으며 다시 우리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었습니다.
재난의 기억을 다시 한번 꺼내어 피해 액수나 숫자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로 남기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무서운 속도로 물이 들어오던 수해의 장면, 그 물에 뒤엉키고 젖어 포크레인 한 삽으로 떠져 트럭에 실려 가 버린 그 기억들을 찬찬히 응시하는 게 회복의 시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속에서 나의 기억과 타인의 기억이 얼마나 다른 모양이며 그 안에는 어떤 흔적이 남았는지, 혹은 보여지는 것처럼 그저 하나의 덩어리일 뿐인지. 지금쯤은 우리에게 다시 그날을 응시해 볼 눈과 마음이 생겼을 거라고 믿습니다.
재난의 목격자는 피해자이면서 이해당사자이자 재난 대응의 열쇠입니다.
재난은 항상 그 사람들만의 이야기로만 남아 잊혀지기 쉽습니다.
우리는 2016년 경주 지진을 겪고 삶을 보는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구례 사람들도 수해 당시에 비해 1년, 2년이 지난 후 자기 삶이 변화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지리산 자락, 섬진강 변 삶의 터전에 대한 이해의 폭이 달라졌겠지요. 그 변화의 이유와 과정이 이 인터뷰에 담겨 있습니다. 또한 누구에게도 하소연하지 못하고 있는 피해자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염려의 마음도 담겨 있습니다. 수해 이야기를 그만하자는 말속에 숨겨진 트라우마와 고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재난 이후에 생기는 물리적, 지리적 고립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고립이 더욱 사람을 위축되게 하고 트라우마에 빠지게 하는 걸 겪어 본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외부와 연결하고 그 안의 이슈들을 계속 나누며 외부에 지지자들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또한 밖에서 보는 시선으로 미처 알지 못했던 구례 수해 이야기를 발견하고 기록하는 것이 유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재난 현장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접할 때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를 것입니다. 울진 산불 현장이나 고성 산불 피해지역의 이재민들 역시 정신적인 트라우마나 패닉을 호소합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그 과정에서 스스로 치유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벌써 6년이 지난 경주 지진의 이야기를 매해 9월이면 떠올리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습니다. 잊고 있는 것이 아니라 꽁꽁 싸매어 넣어 두는 거지요. 섬진강 둑처럼 한꺼번에 터지지 않게 이 글을 통해 하나씩 흘려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재난의 현장을 가장 먼저 전달하는 기자의 시선처럼 화제성 위주의 기록물이 재난의 기록물이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또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피해자다움을 요구하기보다는 정말 당사자들의 시선과 기억이 기록으로 남아야 된다는 생각으로 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또 다양한 방법으로 어느 날 한 시에 갑자기 일어난 한 개의 사건이 아니라 수많은 경험의 기록이 공유되기를 바랍니다.
기후재난의 시대, 인간답게 사는 것.
‘기후의 위기’라고 쓰고 ‘인류의 위기’라고 읽습니다.
인류세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우리가 만든 기후 위기를 감당해야 합니다. 재난은 예상 밖의 규모로 예상치 못한 순간에 우리의 생명과 터전에 위협을 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중 어떤 분은 재난 시 공공 시스템의 붕괴를 지적하며 사람만이 답이고 공동체를 회복하고 잘 연결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셨고, 또 다른 분은 공동체와 사람만을 믿을 수는 없으며 시스템을 촘촘하고 완벽하게 잘 만들어야 된다고도 하셨습니다. 두 이야기 중 무엇이 정답일까요?
우리는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서 있으며 이 문제가 가리키는 목적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기후재난의 시대,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는 질문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그 답을 풀어 가는 과정은 계속될 것입니다. 또한, 이 작은 동네 구례에서 수해라는 재난을 겪으며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챙겼던 마음들이 그 답의 시작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2년 10월 마지막날,
현관앞비상배낭 윤정임, 정미정, 정꽃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