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권 청년의 일과 삶 인터뷰 시리즈
남원 구도심에 자리한 책방 '알아가는 책가게'의 매니저 조아라가 지리산을 둘러싼 구례군, 남원시, 산청군, 하동군, 함양군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20-30대 청년 16인을 만났다. 청년들은 지역에 뿌리박고 자라난 토박이기도 하고, 도시에서 귀촌을 하여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도중이기도 하다. 게스트하우스를 꾸리며 예술을 하는 청년도 있는가 하면, 부모님과 함께 거주하며 특산물 농사를 짓는 청년도 있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지역에서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청년들과 나눈 일터와 일상, 고민과 기쁨의 이야기를 이곳에 풀어놓는다. |
지리산권 청년의 일과 삶 인터뷰 시리즈 #10
하수용 [30대 남원시 산내면, 농부 겸 농사교사]
적게 벌고 잘 살고 싶다는 말을 주위에서 자주 듣는 요즘이다.
나 역시 그렇게 살고 싶다.
이를 위해 필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일주일에 4일 정도 하고 싶거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읽고 싶은 책이 가득한 공공도서관
-배차 시간 걱정 안 하고 탈 수 있는 대중교통
-마을에 무엇이 필요한지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무원
-배울 거리와 즐길 거리가 많은 커뮤니티와 공방
-좋은 먹거리를 지을 수 있는 텃밭
-서로서로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공동육아 모임
-어려울 때 십시일반 도와줄 수 있는 이웃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는 카페와 밥집들
대략 떠오르는 것만 보아도 돈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망, 공공의 영역이 촘촘히 연결되어야 하는 것들이다. 하나만 갖춰서는 지속 가능할 수 없는 삶의 형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게 벌고 잘 살고 싶다.
지리산권 청년의 일과 삶 인터뷰 열 번째
귀농귀촌인의 커뮤니티가 활발한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서 사는 농부를 만났다.
조아라(이하:조) 자기소개 부탁한다.
하수용(이하:하) 하수용이라고 하고 나이는 서른 한살이다. 아내, 딸 둘과 함께 산내에서 살고 있다. 2017년 초에 저의 부모님도 산내로 내려오셨다. 사는 마을은 다르지만 가까이에 살고 있다. 대안학교인 작은학교의 농사교사로 일하고 있다. 어머니도 작은학교 내 인형공방에서 일하신다. 농사 교사로 있지만 그냥 농사짓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집 짓기에도 관심이 많아서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시설관리 일도 하고 있다. 산내에 온 지는 만 4년 되었다.
조 결혼도 여기서 했나?
하 아니다. 변산에서 전통혼례 방식으로 했다.
조 변산에 살다가 다시 산내로 온 계기가 있다면?
하 고향은 서울인데 고등학교는 거창에서 기숙사 학교에 다녔다. 친구들은 일반 대학을 갔는데 나는 공부를 못해서 알바와 여행을 전전하다가 서울 신촌에 있는 풀뿌리
학교라는 대안대학에 갔다. 그곳에서 대안적인 삶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농사를 지어야겠다 싶어서 25살에 변산으로 갔고 2년 반 정도 살다가 독립을 해서 농사를 지을까 하는 고민을 하던 때 작은학교에서 농사교사로 들어오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막상 독립하려고 알아보는데 아내와 어린 딸에게 고생을 많이 시킬 것 같더라. 그래서 비빌 언덕이 있는 곳으로 가자 해서 월급 받는 작은학교로 왔다. 그리고 이런 말 잘 안 하고 싶지만 물어볼 것 같아서... (웃음) 나는 작은학교 1기 졸업생이다.
조 작은학교 졸업생이라고 밝히고 싶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하 일종의 부담감인 것 같다. 특별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작은학교에 대한 애정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가볍게 자기소개 할 때라도 잘 안 꺼내는 편이다.
조 작은학교에 처음 올 때는 부모님과 함께 왔나?
하 아니다. 부모님이 추천은 해주셨지만 혼자 왔다.
조 부모님 없이 혼자? 싫지 않았나?
하 좋았다. 작은학교에서 행복하게 살았다. 정서가 잘 맞았던 것 같다. 좋은 기억이 많아서 부모님과 떨어져 있는 게 많이 힘들지 않았다.
조 부모님이 대안학교 쪽으로 장려를 하신 것 같다.
하 그런 편이다. 저의 결정을 존중해주셨다. 사회에 나와 돈 벌고 살기 힘들다고 하셨다. (웃음)
조 변산에서의 생활은 어땠나?
하 변산 공동체라는 곳에 있었는데 지금도 감사함을 많이 느낀다. 거기에서 일을 다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농사일을 규모 있게 하는 법을 배웠다. 그곳이 아니었다면 아마 여기서 작은 텃밭만 가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시골살이와 농사짓는 기본적인 몸을 만든 곳이 변산이었다. 함께 일하고 함께 먹는 생활이 재밌었다.
조 내가 남원에 오기 전에 지인들로부터 남원시 산내면은 귀농귀촌인이 많고 커뮤니티가 활발하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남원시민들도 많이 아시는 것 같고. 살아보니 어떤가?
하 살기 좋다.
조 그런데 땅값이 많이 비싸졌다고 들었다.
하 땅값의 거품만 빼면 좋은 동네다.
조 산내가 귀농귀촌 지역으로 유명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하 일단 여기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다양한 것 같다. 약육강식, 경쟁보다는 대안적인 삶, 더불어 사는 삶을 추구하는 분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는 공통분모에 대해 동의를 하는 분들이 오면서 각자의 삶의 방식을 다양하게 만들어가기 때문인 것 같다.
조 자연스럽게 그 마을 분위기에 맞는 사람이 올 것 같다.
하 그렇다. 지인들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안적인 시도가 많이 있고 모임도 많고, 끊임없이 공부하는 사람도 많으니 그런 분위기 속에서 덩달아 공부도 하게 되고.
조 공부모임에 참여하나?
하 나는 여력이 안 되어 모임에 안 나간다. 하지만 선생님 중에 연극, 논어, 중용 공부 모임에 나가는 분도 있다. 예전에 합창 모임에 간 적 있었지만 육아 끝날 때까지는 모임 활동은 접어두기로 했다.
조 자녀가 몇 살인가?
하 여섯 살, 두 살이다. 자녀 계획이 두 명 더 있다. 넷까지 낳고 싶다.
조 육아가 끝나지 않겠다. (웃음)
하 아니다. 끝은 있을 것이다. (웃음) 아무튼 공부 모임이 삶에서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조 계속 자극을 받으니까.
하 그렇다. 자극도 받고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해 알아갈 수도 있다.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 같다. 그리고 산내는 시골이라 열대야가 없어서 좋다. 앞으로 기후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조 일과는 어떻게 흐르나?
하 계절마다 다르다. 요즘은 여름방학이라 보통 새벽 5시 반쯤 일어나서 10시까지 농사일하고 쉬다가 해 떨어질 때부터 다시 일한다. 학기 중에는 화, 수, 목, 금요일에 일정이 있다. 주로 아이들과 농사를 짓는다.
조 올해는 몇 기이고 학생은 총 몇 명 있나?
하 27명 정도, 올해로 18기다.
조 졸업생이 선생님으로 돌아온 셈이다. 수용 씨 같은 케이스가 또 있나?
하 강사로는 있는데 상주하는 교사로는 내가 처음이다.
조 쉬는 날이 적을 것 같긴 한데, 쉬는 날에 뭐하나?
하 나는 아무것도 안 하는 걸 못한다. 재밌고 자극적인 것을 찾는 성향이다. 영화 보고 게임 동영상도 보고. 그래서 티비, 컴퓨터 같은 것을 내 주변에 안 놓는다. 이 스마트폰도 안 들고 다니고 싶다. 아이가 어려서 그런지 쉬는 날은.... 딱히 없다. (웃음) 그래도 낮잠 항상 자고 쉬고 있다.

(실상사 작은학교의 농사교사, 하수용 님)
조 개인적인 선입견이라 물어보기 조심스럽지만, 귀농귀촌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어 있는 곳, 시골에 청년이 보이는 곳을 보면 대안학교 출신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 같다. 대안학교를 다니거나, 졸업한 청년들이 활동하니까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는 것인지, 있는 커뮤니티에 그분들이 들어가서 활성화가 되는지 궁금하더라.
하 전자인 경우도 후자인 경우도 있고 복합적인 것 같다.
조 내 주변에도 대안학교 출신인 친구들이 있는데 그들을 보면 대안적인 삶, 새로운 삶을 향한 실행력이 커 보이고 나 역시 그들로부터 자극을 받기도 한다. 본인이 생각하기엔 어떤가?
하 비슷한 질문을 오래 전에 받았던 것 같은데… 대안학교 출신이라서 개척정신이 크다거나 그런 것 같진 않다. 내가 고등학교는 인문계를 갔는데 그 속에서 추진력, 개척정신 있는 친구들도 많았다. 그래서 그런 건 잘 모르겠다. 다만, 시골에서 살거나 시골에 있는 대안학교 같은 경우 농사나 마을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하고 이런 삶의 철학을 중요시하는 학교 같은 경우에는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안학교가 한국 교육에도 그렇고 사회적으로도 큰 역할을 한 것 같긴 하다. 그런데 요즘 대안학교가 힘든 추세다.
조 더 커진 게 아니고?
하 왜냐하면 공교육에서 대안학교 프로그램을 흡수해가기도 하고, 학생 숫자도 줄고 대안학교도 많아지니까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대안학교 실패했다고 얘기하는 분들도 계시고 또 시대 뒤로 사라질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형태의 모습으로 계속 대안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 대안 교육기관의 존재는 그 마을의 지속가능성을 키우는 것 같다.
하 대안학교가 내게 정서적으로 끼친 영향이 되게 큰 것 같다. 그래서 시골로 오기도 했고. 또 대안학교에 자녀를 보낸 부모님들을 보면 대안적인 삶을 살고 계신 분이 많다. 그분들의 네트워크와 지인들도 비빌 언덕이 되어 주시는 등 대안학교 출신이 시골에 자리 잡는 유리한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대안학교 친구들이 더 특별하고 뛰어난 건 아닌 것 같다. (웃음) 다 비슷한 것 같다. 그리고 대안학교를 나와도 시골로 오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내가 특이하다고 인정하는 꼴이 되지만. (웃음)
조 바쁘게 살고 싶지 않아 시골로 왔지만 오히려 시골 생활이 더 바쁠 수도 있을 텐데, 그 안에서 여유를 어떻게 만드나? 육아만으로도 하루가 금방 갈 것 같다.
하 여유 있진 않다. 성급한 결론이긴 하지만 원래 삶은 바쁜가보다 이렇게 정리를 했다. (웃음)
조 본인이 알고 있는 산내 커뮤니티를 알려달라.
하 있을 만 한 모임은 다 있다. 스포츠부터 탁구, 축구, 농구, 배드민턴, 검도 그다음에 요가, 국선도, 몸살림, 태극권 등이 있다. 공부 모임도 많고. 북, 창, 판소리, 서가, 서예, 연극 등 예술 모임도 많다. 그리고 페미니즘 동아리도 여러 개 있고.
조 그 모임에서 가르치는 사람은 누군가?
하 다 마을 사람들이다.
조 대단하다.
하 대단한 분이 많다. 사실 여기뿐만 아니라 어딜 가도 네트워크가 있으면 그럴 것 같다. 자기가 생각하는 혹은 자기한테 맞는 의미 있는 일을 많이 하시는 것 같다. 그러면서 돈도 버시고 능력이 좋으신 것 같다. 시골에 살면 그래야 하나 싶기도 하고 (웃음)
조 한편으로 벽이 생길 수도 있겠다. 그곳은 대단한 사람들이 가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으니까.
하 평범하게 사는 분들도 많다. 기본적으로 소박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야 적게 벌어도 살 수 있는 것 같다. 나도 남들이 생각하기에 넉넉지 않은 월급이지만 생활비가 도시와 비교하면 3분의 1도 안 드는 것 같다. 이 점은 작은학교 영향이 크다. 그래서 내 삶의 질이 엄청 높다고 생각한다.
조 시골에서 먹고 사는 것, 도시에서 먹고 사는 것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짜인 일정에 정해진 월급을 받으며 생활하는 삶과 자신이 만든 일정에 움직이며 고정적이지 않은 수입으로 생활하는 삶과 같은 차이랄까. 수용 씨가 보기에는 어떤가?
하 개인적으로 내 삶의 목적이 돈이 아니라서 정말 좋다. 나의 활동과 노동이 돈의 가치로 책정되지 않아서 너무 좋은 것 같다. 돈의 가치로 매겨지면 자존심 상할 것 같다. 하지만 돈을 좇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시골에도 돈을 많이 벌고 싶어하는 분들이 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시골과 도시가 비슷할 수 있다. 나는 여기서 하고 싶은 거 하고, 알고 싶은 거 배우고 또 시행착오 하면서 내 시간을 능동적으로, 주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서 좋다.
처음 시골 왔을 때가 생각난다. 해가 길어지면 농사일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4월에는 하루에 8시간 했는데 6월에는 11시간 동안 밭에서 일했다. 주말에 안 쉬고. 비 오면 쉬는 줄 알았는데 실내 작업으로 못 쉬고. 그런 것들이 내가 손해 보고 착취당하는 것 같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2~3년 살다 보니 원래 농사는 이런 생활 방식이구나 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배웠고 행복한 삶의 큰 조건을 알게 되었다. 나의 가치가 어떤 것에 규정되지 않는 게 좋은 것 같다. 근데 질문이 뭐였나? (웃음)
조 도시에서 먹고 사는 것과 시골에서 먹고 사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 아내랑 도시에서 얼마를 벌면 이 정도로 좋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는지 얘기한 적이 있다. 월 삼백만 원은 벌어야 하나, 아니다. 더 벌어야 할 것 같다 하는 이야기를 했었다. 일단, 내가 일하고 있는 학교에서 주거를 보장해준다. 고로 집 걱정 안 하고, 학교에 있는 자동차도 공유자산처럼 선생님들과 같이 쓴다. 불편함 없이 사용할 수 있다. 그다음에 자급자족을 지향하는 농사를 짓고 있으니 먹거리에 드는 돈이 줄어든다. 그리고 따로 사교육을 하지 않기 때문에 교육비도 전혀 들지 않는다. 예전에 내가 몸이 아파서 입원한 적이 있는데 학부모, 교사, 이웃 등 공동체에서 십시일반으로 병원비를 도와주셨다. 큰 도움이 되었고 든든함을 느꼈다. 이런 지점들이 내가 돈을 많이 벌지 않고도 살 수 있게 한다. 이를테면 복지 공동체 같다.
조 본인이 농사지으며 살 수 있는 기술을 터득하기까지는 여러 공동체의 도움을 받았고 본인도 그 도움을 공동체에 다시 주고 있는, 좋은 순환을 만들어가는 것 같다.
하 실수하고 시행착오할 수 있어서 좋다. 사실 혼자 하면 시행착오에 대한 부담 그리고 재정적인 부담을 홀로 안아야 하는데 단체나 공동체 안에서 같이 하면 부담이 분산되고 버틸 힘이 생기는 것 같다. 실수하고 경험하면서 실력과 기술이 쌓일 동안 버텨주는 게 필요하다.
조 수용 씨가 생각하기에 청년이 시골로 내려오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하 잘 모르겠지만 생각해보면 도시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닐까. 돈 많이 받으면 안 힘들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자기의 정체성, 능력을 돈 같은 것으로 평가받아야 하고 공기도 안 좋고 월세도 너무 비싸니까 힘든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시골로 오는 청년은 드문 것 같다. 많이 오면 좋겠는데...
조 내려오고 싶다고 해서 바로 내려올 수는 없을 것이다. 일자리, 주거, 비빌 언덕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니까 말이다.
하 분명히 시간이 걸린다. 자기 의지도 중요한 것 같고. 지금 변산에서 알게 된 친구 하나가 자원봉사로 여기 와 있다. 두 달 정도 작은학교 공양간에서 밥 짓는 일하면서 학교에서 마련한 숙소에서 묵고 있다. 이렇게 마음먹고 시골로 내려와 생활하려는 청년들을 작은학교든 다른 조직에서 지원해주면 좋겠다. 내가 예전에 독립하려고 알아봤던 시골로 잠시 갔을 때 50, 60대 남자분들이 나를 마을의 노동력과 돈으로 보는 눈길이 느껴져서 싫었다. 아무튼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기를 버텨내는 힘도 필요하고. 시골살이라고 여유롭게 편할 거 같지만 녹록지 않다. 사는 곳으로 치면 아파트가 제일 편하다. (웃음)
조 시골에 살고자 하는 청년에게 필요한 지원은 무엇일까?
하 비빌 언덕 없으면 들어오기 힘들 것 같다. 먼저 자리 잡고 있는 단체들이 청년을 지원해주면 좋겠다. 작은학교도 그 역할을 많이 했으면 좋겠고. 산내에서는 청년활동을 지원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생명평화대학도 있고 마을 내에서 지원해주는 모임도 있고 청년 활력기금도 있었다.
조 여기가 나와 맞는다라고 생각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겠다.
하 그리고 같이 도와가며 사는 맛을 느껴야 한다. 그 맛을 느끼지 못하면 도시로 돌아가게 되더라. 산내에서 살려고 했던 청년들이 있었는데 지금 많이 나갔다. 일자리, 살자리가 만만치 않으니까.
조 여기저기 살아보고 싶을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올 수도 있을 것이고. 왔다 갔다 하면서 알게 되는 것도 있을 테니까. 수용 씨는 산내에서 계속 살 계획인가?
하 힘들 때도, 어려운 일들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만족하고 있어서 계속 살 생각이다. 아이들 키우기도 좋고.
조 힘들고 어려운 일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다.
하 농사일도 많이 힘들다. 오늘 아침에도 밭 매러 갔는데 돼지가 산마늘 밭을 다 뒤집어 놓았더라. 그거 키우려고 밭을 세 번이나 맸었다. 고라니도 와서 다 뜯어먹고. 야생동물부터 시작해서 기후가 안 맞을 때는 원인도 모를 병이 와서 싹 망할 때도 있고 추위, 가뭄도 자주 오고. 또 농사 특성상 일이 몰린다. 그럴 때는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다. 하지만 7, 8년 농사 짓는 경험을 하고 있으니 ‘이거 다 지나간다.’ 하는 생각을 한다. (웃음)
조 자기한테 거는 주문 같은 말이다.
하 이 또한 지나간다. (웃음)
조 앞으로 꿈,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하 하고 싶은 일은 계속 농사짓고 집짓는 일 하고 싶다. 농사는 할 때마다 새로운 것 같아 농사 실력도 키우고 싶다. 성격 유형 분석하는 애니어그램을 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7번이 나왔다. 즐거움을 추구하고 낙천주의, 모험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하더라. 이 7번이 갖는 유혹이 이상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행복한 공동체를 항상 꿈꾸는 것 같다. 어떤 목사님이 한 말이 있는데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같이 사는 것이다. 그보다 더 어려운 건 오래 같이 사는 것이다’라는 말을 하셨다. (웃음) 이 말에 크게 공감하면서도 행복한 공동체를 꾸리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제 또래가 많이 있으면 좋겠다. 육아하는 제 또래가 너무 없다.
조 수용 씨 이야기를 들어보니 산내는 아이 키우기 좋은 곳 같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 시골, 도시 차이라기 보다 생각 차이인 것 같다. 아이 건강을 위해 천 기저귀 쓰고 모유 수유 하는 것들은 도시에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처가가 서울이라 가끔 가면 아이들이 밖에서 뛰어노는 게 불안하더라. 자동차가 많아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면 조마조마하고 눈을 뗄 수가 없다. 여기서는 놀아도 크게 위험하지 않고 자연물이 많아서 좋다. 환경 자체가 안전한 것 같다. 누군가는 뱀, 진드기 같은 것 때문에 시골이 위험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웃음) 그리고 공동체 속에서 사니까 좋다. 봐주는 사람이 많으니까 육아에 대한 부담을 덜어준다. 한번 안아주고 한번 봐 주는 게 정말 큰 도움이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육아를 편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 아이 있는 젊은이들이여, 산내로 오라. 같이 육아하자. (웃음)
(끝)
지리산권 청년의 일과 삶 인터뷰 시리즈
남원 구도심에 자리한 책방 '알아가는 책가게'의 매니저 조아라가 지리산을 둘러싼 구례군, 남원시, 산청군, 하동군, 함양군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20-30대 청년 16인을 만났다.
청년들은 지역에 뿌리박고 자라난 토박이기도 하고, 도시에서 귀촌을 하여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도중이기도 하다. 게스트하우스를 꾸리며 예술을 하는 청년도 있는가 하면, 부모님과 함께 거주하며 특산물 농사를 짓는 청년도 있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지역에서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청년들과 나눈 일터와 일상, 고민과 기쁨의 이야기를 이곳에 풀어놓는다.
지리산권 청년의 일과 삶 인터뷰 시리즈 #10
하수용 [30대 남원시 산내면, 농부 겸 농사교사]
적게 벌고 잘 살고 싶다는 말을 주위에서 자주 듣는 요즘이다.
나 역시 그렇게 살고 싶다.
이를 위해 필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일주일에 4일 정도 하고 싶거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읽고 싶은 책이 가득한 공공도서관
-배차 시간 걱정 안 하고 탈 수 있는 대중교통
-마을에 무엇이 필요한지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무원
-배울 거리와 즐길 거리가 많은 커뮤니티와 공방
-좋은 먹거리를 지을 수 있는 텃밭
-서로서로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공동육아 모임
-어려울 때 십시일반 도와줄 수 있는 이웃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는 카페와 밥집들
대략 떠오르는 것만 보아도 돈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망, 공공의 영역이 촘촘히 연결되어야 하는 것들이다. 하나만 갖춰서는 지속 가능할 수 없는 삶의 형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게 벌고 잘 살고 싶다.
지리산권 청년의 일과 삶 인터뷰 열 번째
귀농귀촌인의 커뮤니티가 활발한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서 사는 농부를 만났다.
조아라(이하:조) 자기소개 부탁한다.
하수용(이하:하) 하수용이라고 하고 나이는 서른 한살이다. 아내, 딸 둘과 함께 산내에서 살고 있다. 2017년 초에 저의 부모님도 산내로 내려오셨다. 사는 마을은 다르지만 가까이에 살고 있다. 대안학교인 작은학교의 농사교사로 일하고 있다. 어머니도 작은학교 내 인형공방에서 일하신다. 농사 교사로 있지만 그냥 농사짓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집 짓기에도 관심이 많아서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시설관리 일도 하고 있다. 산내에 온 지는 만 4년 되었다.
조 결혼도 여기서 했나?
하 아니다. 변산에서 전통혼례 방식으로 했다.
조 변산에 살다가 다시 산내로 온 계기가 있다면?
하 고향은 서울인데 고등학교는 거창에서 기숙사 학교에 다녔다. 친구들은 일반 대학을 갔는데 나는 공부를 못해서 알바와 여행을 전전하다가 서울 신촌에 있는 풀뿌리
학교라는 대안대학에 갔다. 그곳에서 대안적인 삶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농사를 지어야겠다 싶어서 25살에 변산으로 갔고 2년 반 정도 살다가 독립을 해서 농사를 지을까 하는 고민을 하던 때 작은학교에서 농사교사로 들어오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막상 독립하려고 알아보는데 아내와 어린 딸에게 고생을 많이 시킬 것 같더라. 그래서 비빌 언덕이 있는 곳으로 가자 해서 월급 받는 작은학교로 왔다. 그리고 이런 말 잘 안 하고 싶지만 물어볼 것 같아서... (웃음) 나는 작은학교 1기 졸업생이다.
조 작은학교 졸업생이라고 밝히고 싶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하 일종의 부담감인 것 같다. 특별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작은학교에 대한 애정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가볍게 자기소개 할 때라도 잘 안 꺼내는 편이다.
조 작은학교에 처음 올 때는 부모님과 함께 왔나?
하 아니다. 부모님이 추천은 해주셨지만 혼자 왔다.
조 부모님 없이 혼자? 싫지 않았나?
하 좋았다. 작은학교에서 행복하게 살았다. 정서가 잘 맞았던 것 같다. 좋은 기억이 많아서 부모님과 떨어져 있는 게 많이 힘들지 않았다.
조 부모님이 대안학교 쪽으로 장려를 하신 것 같다.
하 그런 편이다. 저의 결정을 존중해주셨다. 사회에 나와 돈 벌고 살기 힘들다고 하셨다. (웃음)
조 변산에서의 생활은 어땠나?
하 변산 공동체라는 곳에 있었는데 지금도 감사함을 많이 느낀다. 거기에서 일을 다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농사일을 규모 있게 하는 법을 배웠다. 그곳이 아니었다면 아마 여기서 작은 텃밭만 가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시골살이와 농사짓는 기본적인 몸을 만든 곳이 변산이었다. 함께 일하고 함께 먹는 생활이 재밌었다.
조 내가 남원에 오기 전에 지인들로부터 남원시 산내면은 귀농귀촌인이 많고 커뮤니티가 활발하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남원시민들도 많이 아시는 것 같고. 살아보니 어떤가?
하 살기 좋다.
조 그런데 땅값이 많이 비싸졌다고 들었다.
하 땅값의 거품만 빼면 좋은 동네다.
조 산내가 귀농귀촌 지역으로 유명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하 일단 여기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다양한 것 같다. 약육강식, 경쟁보다는 대안적인 삶, 더불어 사는 삶을 추구하는 분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는 공통분모에 대해 동의를 하는 분들이 오면서 각자의 삶의 방식을 다양하게 만들어가기 때문인 것 같다.
조 자연스럽게 그 마을 분위기에 맞는 사람이 올 것 같다.
하 그렇다. 지인들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안적인 시도가 많이 있고 모임도 많고, 끊임없이 공부하는 사람도 많으니 그런 분위기 속에서 덩달아 공부도 하게 되고.
조 공부모임에 참여하나?
하 나는 여력이 안 되어 모임에 안 나간다. 하지만 선생님 중에 연극, 논어, 중용 공부 모임에 나가는 분도 있다. 예전에 합창 모임에 간 적 있었지만 육아 끝날 때까지는 모임 활동은 접어두기로 했다.
조 자녀가 몇 살인가?
하 여섯 살, 두 살이다. 자녀 계획이 두 명 더 있다. 넷까지 낳고 싶다.
조 육아가 끝나지 않겠다. (웃음)
하 아니다. 끝은 있을 것이다. (웃음) 아무튼 공부 모임이 삶에서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조 계속 자극을 받으니까.
하 그렇다. 자극도 받고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해 알아갈 수도 있다.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 같다. 그리고 산내는 시골이라 열대야가 없어서 좋다. 앞으로 기후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조 일과는 어떻게 흐르나?
하 계절마다 다르다. 요즘은 여름방학이라 보통 새벽 5시 반쯤 일어나서 10시까지 농사일하고 쉬다가 해 떨어질 때부터 다시 일한다. 학기 중에는 화, 수, 목, 금요일에 일정이 있다. 주로 아이들과 농사를 짓는다.
조 올해는 몇 기이고 학생은 총 몇 명 있나?
하 27명 정도, 올해로 18기다.
조 졸업생이 선생님으로 돌아온 셈이다. 수용 씨 같은 케이스가 또 있나?
하 강사로는 있는데 상주하는 교사로는 내가 처음이다.
조 쉬는 날이 적을 것 같긴 한데, 쉬는 날에 뭐하나?
하 나는 아무것도 안 하는 걸 못한다. 재밌고 자극적인 것을 찾는 성향이다. 영화 보고 게임 동영상도 보고. 그래서 티비, 컴퓨터 같은 것을 내 주변에 안 놓는다. 이 스마트폰도 안 들고 다니고 싶다. 아이가 어려서 그런지 쉬는 날은.... 딱히 없다. (웃음) 그래도 낮잠 항상 자고 쉬고 있다.
(실상사 작은학교의 농사교사, 하수용 님)
조 개인적인 선입견이라 물어보기 조심스럽지만, 귀농귀촌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어 있는 곳, 시골에 청년이 보이는 곳을 보면 대안학교 출신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 같다. 대안학교를 다니거나, 졸업한 청년들이 활동하니까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는 것인지, 있는 커뮤니티에 그분들이 들어가서 활성화가 되는지 궁금하더라.
하 전자인 경우도 후자인 경우도 있고 복합적인 것 같다.
조 내 주변에도 대안학교 출신인 친구들이 있는데 그들을 보면 대안적인 삶, 새로운 삶을 향한 실행력이 커 보이고 나 역시 그들로부터 자극을 받기도 한다. 본인이 생각하기엔 어떤가?
하 비슷한 질문을 오래 전에 받았던 것 같은데… 대안학교 출신이라서 개척정신이 크다거나 그런 것 같진 않다. 내가 고등학교는 인문계를 갔는데 그 속에서 추진력, 개척정신 있는 친구들도 많았다. 그래서 그런 건 잘 모르겠다. 다만, 시골에서 살거나 시골에 있는 대안학교 같은 경우 농사나 마을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하고 이런 삶의 철학을 중요시하는 학교 같은 경우에는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안학교가 한국 교육에도 그렇고 사회적으로도 큰 역할을 한 것 같긴 하다. 그런데 요즘 대안학교가 힘든 추세다.
조 더 커진 게 아니고?
하 왜냐하면 공교육에서 대안학교 프로그램을 흡수해가기도 하고, 학생 숫자도 줄고 대안학교도 많아지니까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대안학교 실패했다고 얘기하는 분들도 계시고 또 시대 뒤로 사라질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형태의 모습으로 계속 대안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 대안 교육기관의 존재는 그 마을의 지속가능성을 키우는 것 같다.
하 대안학교가 내게 정서적으로 끼친 영향이 되게 큰 것 같다. 그래서 시골로 오기도 했고. 또 대안학교에 자녀를 보낸 부모님들을 보면 대안적인 삶을 살고 계신 분이 많다. 그분들의 네트워크와 지인들도 비빌 언덕이 되어 주시는 등 대안학교 출신이 시골에 자리 잡는 유리한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대안학교 친구들이 더 특별하고 뛰어난 건 아닌 것 같다. (웃음) 다 비슷한 것 같다. 그리고 대안학교를 나와도 시골로 오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내가 특이하다고 인정하는 꼴이 되지만. (웃음)
조 바쁘게 살고 싶지 않아 시골로 왔지만 오히려 시골 생활이 더 바쁠 수도 있을 텐데, 그 안에서 여유를 어떻게 만드나? 육아만으로도 하루가 금방 갈 것 같다.
하 여유 있진 않다. 성급한 결론이긴 하지만 원래 삶은 바쁜가보다 이렇게 정리를 했다. (웃음)
조 본인이 알고 있는 산내 커뮤니티를 알려달라.
하 있을 만 한 모임은 다 있다. 스포츠부터 탁구, 축구, 농구, 배드민턴, 검도 그다음에 요가, 국선도, 몸살림, 태극권 등이 있다. 공부 모임도 많고. 북, 창, 판소리, 서가, 서예, 연극 등 예술 모임도 많다. 그리고 페미니즘 동아리도 여러 개 있고.
조 그 모임에서 가르치는 사람은 누군가?
하 다 마을 사람들이다.
조 대단하다.
하 대단한 분이 많다. 사실 여기뿐만 아니라 어딜 가도 네트워크가 있으면 그럴 것 같다. 자기가 생각하는 혹은 자기한테 맞는 의미 있는 일을 많이 하시는 것 같다. 그러면서 돈도 버시고 능력이 좋으신 것 같다. 시골에 살면 그래야 하나 싶기도 하고 (웃음)
조 한편으로 벽이 생길 수도 있겠다. 그곳은 대단한 사람들이 가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으니까.
하 평범하게 사는 분들도 많다. 기본적으로 소박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야 적게 벌어도 살 수 있는 것 같다. 나도 남들이 생각하기에 넉넉지 않은 월급이지만 생활비가 도시와 비교하면 3분의 1도 안 드는 것 같다. 이 점은 작은학교 영향이 크다. 그래서 내 삶의 질이 엄청 높다고 생각한다.
조 시골에서 먹고 사는 것, 도시에서 먹고 사는 것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짜인 일정에 정해진 월급을 받으며 생활하는 삶과 자신이 만든 일정에 움직이며 고정적이지 않은 수입으로 생활하는 삶과 같은 차이랄까. 수용 씨가 보기에는 어떤가?
하 개인적으로 내 삶의 목적이 돈이 아니라서 정말 좋다. 나의 활동과 노동이 돈의 가치로 책정되지 않아서 너무 좋은 것 같다. 돈의 가치로 매겨지면 자존심 상할 것 같다. 하지만 돈을 좇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시골에도 돈을 많이 벌고 싶어하는 분들이 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시골과 도시가 비슷할 수 있다. 나는 여기서 하고 싶은 거 하고, 알고 싶은 거 배우고 또 시행착오 하면서 내 시간을 능동적으로, 주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서 좋다.
처음 시골 왔을 때가 생각난다. 해가 길어지면 농사일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4월에는 하루에 8시간 했는데 6월에는 11시간 동안 밭에서 일했다. 주말에 안 쉬고. 비 오면 쉬는 줄 알았는데 실내 작업으로 못 쉬고. 그런 것들이 내가 손해 보고 착취당하는 것 같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2~3년 살다 보니 원래 농사는 이런 생활 방식이구나 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배웠고 행복한 삶의 큰 조건을 알게 되었다. 나의 가치가 어떤 것에 규정되지 않는 게 좋은 것 같다. 근데 질문이 뭐였나? (웃음)
조 도시에서 먹고 사는 것과 시골에서 먹고 사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 아내랑 도시에서 얼마를 벌면 이 정도로 좋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는지 얘기한 적이 있다. 월 삼백만 원은 벌어야 하나, 아니다. 더 벌어야 할 것 같다 하는 이야기를 했었다. 일단, 내가 일하고 있는 학교에서 주거를 보장해준다. 고로 집 걱정 안 하고, 학교에 있는 자동차도 공유자산처럼 선생님들과 같이 쓴다. 불편함 없이 사용할 수 있다. 그다음에 자급자족을 지향하는 농사를 짓고 있으니 먹거리에 드는 돈이 줄어든다. 그리고 따로 사교육을 하지 않기 때문에 교육비도 전혀 들지 않는다. 예전에 내가 몸이 아파서 입원한 적이 있는데 학부모, 교사, 이웃 등 공동체에서 십시일반으로 병원비를 도와주셨다. 큰 도움이 되었고 든든함을 느꼈다. 이런 지점들이 내가 돈을 많이 벌지 않고도 살 수 있게 한다. 이를테면 복지 공동체 같다.
조 본인이 농사지으며 살 수 있는 기술을 터득하기까지는 여러 공동체의 도움을 받았고 본인도 그 도움을 공동체에 다시 주고 있는, 좋은 순환을 만들어가는 것 같다.
하 실수하고 시행착오할 수 있어서 좋다. 사실 혼자 하면 시행착오에 대한 부담 그리고 재정적인 부담을 홀로 안아야 하는데 단체나 공동체 안에서 같이 하면 부담이 분산되고 버틸 힘이 생기는 것 같다. 실수하고 경험하면서 실력과 기술이 쌓일 동안 버텨주는 게 필요하다.
조 수용 씨가 생각하기에 청년이 시골로 내려오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하 잘 모르겠지만 생각해보면 도시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닐까. 돈 많이 받으면 안 힘들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자기의 정체성, 능력을 돈 같은 것으로 평가받아야 하고 공기도 안 좋고 월세도 너무 비싸니까 힘든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시골로 오는 청년은 드문 것 같다. 많이 오면 좋겠는데...
조 내려오고 싶다고 해서 바로 내려올 수는 없을 것이다. 일자리, 주거, 비빌 언덕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니까 말이다.
하 분명히 시간이 걸린다. 자기 의지도 중요한 것 같고. 지금 변산에서 알게 된 친구 하나가 자원봉사로 여기 와 있다. 두 달 정도 작은학교 공양간에서 밥 짓는 일하면서 학교에서 마련한 숙소에서 묵고 있다. 이렇게 마음먹고 시골로 내려와 생활하려는 청년들을 작은학교든 다른 조직에서 지원해주면 좋겠다. 내가 예전에 독립하려고 알아봤던 시골로 잠시 갔을 때 50, 60대 남자분들이 나를 마을의 노동력과 돈으로 보는 눈길이 느껴져서 싫었다. 아무튼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기를 버텨내는 힘도 필요하고. 시골살이라고 여유롭게 편할 거 같지만 녹록지 않다. 사는 곳으로 치면 아파트가 제일 편하다. (웃음)
조 시골에 살고자 하는 청년에게 필요한 지원은 무엇일까?
하 비빌 언덕 없으면 들어오기 힘들 것 같다. 먼저 자리 잡고 있는 단체들이 청년을 지원해주면 좋겠다. 작은학교도 그 역할을 많이 했으면 좋겠고. 산내에서는 청년활동을 지원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생명평화대학도 있고 마을 내에서 지원해주는 모임도 있고 청년 활력기금도 있었다.
조 여기가 나와 맞는다라고 생각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겠다.
하 그리고 같이 도와가며 사는 맛을 느껴야 한다. 그 맛을 느끼지 못하면 도시로 돌아가게 되더라. 산내에서 살려고 했던 청년들이 있었는데 지금 많이 나갔다. 일자리, 살자리가 만만치 않으니까.
조 여기저기 살아보고 싶을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올 수도 있을 것이고. 왔다 갔다 하면서 알게 되는 것도 있을 테니까. 수용 씨는 산내에서 계속 살 계획인가?
하 힘들 때도, 어려운 일들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만족하고 있어서 계속 살 생각이다. 아이들 키우기도 좋고.
조 힘들고 어려운 일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다.
하 농사일도 많이 힘들다. 오늘 아침에도 밭 매러 갔는데 돼지가 산마늘 밭을 다 뒤집어 놓았더라. 그거 키우려고 밭을 세 번이나 맸었다. 고라니도 와서 다 뜯어먹고. 야생동물부터 시작해서 기후가 안 맞을 때는 원인도 모를 병이 와서 싹 망할 때도 있고 추위, 가뭄도 자주 오고. 또 농사 특성상 일이 몰린다. 그럴 때는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다. 하지만 7, 8년 농사 짓는 경험을 하고 있으니 ‘이거 다 지나간다.’ 하는 생각을 한다. (웃음)
조 자기한테 거는 주문 같은 말이다.
하 이 또한 지나간다. (웃음)
조 앞으로 꿈,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하 하고 싶은 일은 계속 농사짓고 집짓는 일 하고 싶다. 농사는 할 때마다 새로운 것 같아 농사 실력도 키우고 싶다. 성격 유형 분석하는 애니어그램을 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7번이 나왔다. 즐거움을 추구하고 낙천주의, 모험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하더라. 이 7번이 갖는 유혹이 이상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행복한 공동체를 항상 꿈꾸는 것 같다. 어떤 목사님이 한 말이 있는데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같이 사는 것이다. 그보다 더 어려운 건 오래 같이 사는 것이다’라는 말을 하셨다. (웃음) 이 말에 크게 공감하면서도 행복한 공동체를 꾸리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제 또래가 많이 있으면 좋겠다. 육아하는 제 또래가 너무 없다.
조 수용 씨 이야기를 들어보니 산내는 아이 키우기 좋은 곳 같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 시골, 도시 차이라기 보다 생각 차이인 것 같다. 아이 건강을 위해 천 기저귀 쓰고 모유 수유 하는 것들은 도시에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처가가 서울이라 가끔 가면 아이들이 밖에서 뛰어노는 게 불안하더라. 자동차가 많아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면 조마조마하고 눈을 뗄 수가 없다. 여기서는 놀아도 크게 위험하지 않고 자연물이 많아서 좋다. 환경 자체가 안전한 것 같다. 누군가는 뱀, 진드기 같은 것 때문에 시골이 위험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웃음) 그리고 공동체 속에서 사니까 좋다. 봐주는 사람이 많으니까 육아에 대한 부담을 덜어준다. 한번 안아주고 한번 봐 주는 게 정말 큰 도움이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육아를 편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 아이 있는 젊은이들이여, 산내로 오라. 같이 육아하자. (웃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