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이음 활동 소식

자료지리산권 청년의 일과 삶 인터뷰 시리즈 #14_이재영

2018-10-04

 

지리산권 청년의 일과 삶 인터뷰 시리즈


남원 구도심에 자리한 책방 '알아가는 책가게'의 매니저 조아라가 지리산을 둘러싼 구례군, 남원시, 산청군, 하동군, 함양군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20-30대 청년 16인을 만났다.

 

청년들은 지역에 뿌리박고 자라난 토박이기도 하고, 도시에서 귀촌을 하여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도중이기도 하다. 게스트하우스를 꾸리며 예술을 하는 청년도 있는가 하면, 부모님과 함께 거주하며 특산물 농사를 짓는 청년도 있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지역에서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청년들과 나눈 일터와 일상, 고민과 기쁨의 이야기를 이곳에 풀어놓는다.

 

 

지리산권 청년의 일과 삶 인터뷰 시리즈 #14

 

이재영 [30대 경상남도 산청군, 양계장 운영 & 농사교사 ] 

 

 

나는 

 

 

다양한 일상을 보내는 것도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냥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체력을 키우는 것도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는 것도 

꿈을 좇는 것도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혼자 사는 것도 

 

가족과 함께 사는 것도

시골이든 해외에 사는 것도 

그 누구의 결정이 아닌, 내가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나를 알아가는 게 중요할 테다. 

 

 

지리산권 청년의 일과 삶 인터뷰, 마지막으로  

 

경상남도 산청에서 장기적인 계획을 준비하는 사람을 만났다. 

 

 

조아라(이하 : 조) 자기소개 부탁한다.  

 

 

이재영(이하 : 이) 나는 이재영이라고 하고 서른세 살이다. 산청에 산 지 10년이 되어간다. 산청에 오게 된 계기는 간디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갔다 왔는데 간디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때 나는 전역하면 세계여행을 갔다 오고 재밌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간디학교 선생님이 해외에서 캠프를 진행할 일이 있다며 나보고 이 일을 하면서 세계여행 준비를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셨다. 나는 어떤 분야든 망설이지 않고 해보는 걸 좋아해서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금산 간디학교에서 일하다가 필리핀에서 간디학교 학생들 돌보는 일 하고 다시 금산으로 왔다가 산청 간디학교로 오게 됐다. 그때가 스물네 살이었다. 그리고 내가 산청으로 오기 전에 부모님 장사가 IMF로 힘들어져 산청으로 귀농해 닭을 키우셨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도 온 것 같기도 하다.

 고향은 어디인가? 

 김해다. 부모님은 김해에서 장사하셨고, 나는 중학교까지 다니다가 부모님의 권유로 고등학교를 간디학교로 지원했다. 그때 간디학교가 떠오르는 교육으로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처음 지원할 때는 산청 간디학교로 지원했는데 떨어졌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떨어진 학생의 부모들이 모여서 간디학교 설립자께 학교를 하나 더 만들어달라 건의를 해서 학교 건물을 여기저기서 빌려 시작하게 되었다. 이름도 간디자유학교라고 학생들이 지었다. 학교를 세네 번 이동하면서 맨 마지막 내가 졸업한 곳은 경북 군위의 폐교를 빌린 데였다. 내가 졸업하고 4기 때 지금의 금산 간디학교가 생겼다. 

 부모의 권유로 가긴 갔지만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게 싫었을 수 있었을 것 같다. 

 처음에는 가기 싫었다. 근데 입학하기 전 3박 4일 정도 예비학교 과정이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친구들과 재밌게 지내다가 과정이 끝날 때쯤 보니까 그동안 레크레이션 진행해주시고, 밥해주고 청소하며 학생을 뒷바라지해준 분들이 선생님이라는 걸 알고 감동을 받았다. 일반학교와 다른 선생님의 이미지에 굉장히 좋은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계속 다니기로 했고 입학 후에 선생님들과 친구들과 24시간 생활을 같이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복 받은 생각이 든다.  

 재영씨 인생의 첫 전환점이 된 것 같다.  

 그런 것 같다. 학창시절 시골에 산 경험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의미 있는 경험이다. 혹은 절대 다시는 시골에 안 올 거라는 계기도 만들어 줄 수 있겠지만. (웃음) 나는 학창시절에 행복했다. 

 

 

산청에서 유정란 농장을 운영 중인 이재영 님

 

 


 그럼 간디학교 졸업하고 금산과 필리핀에서 일하고, 다시 금산 왔다가 산청으로 내려왔는데 쭉 간디학교에서 일을 한 건가? 

 그렇다. 스물세 살에 금산 간디학교에서 만난 와이프와 산청에서 스물다섯에 결혼을 했다. 시골에 사는 게 좋았다. 

 결혼이 이른 편인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 얘기를 하니까 그럼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했다. (웃음) 개념이 없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혼수 뜻도 모르고 거의 준비 없이 산청중학교 강당에서 가진 돈 삼백만 원으로 결혼했다.  

 나름 스몰웨딩이었다. (웃음)  

 그런 말도 없었을 때였으니까. 나도 와이프도 그냥 없는 대로 했다. 결혼하고 철이 들기도 하고 아이 셋을 키우다 보니 여러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왜 시골에 젊은 사람들이 없을까, 시골에서 아이 키우며 살기 어렵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녀들이 몇 살인가? 

 첫째가 7살, 둘째는 쌍둥이고 4살이다. 

 부모님 댁과 떨어져 사나 보다. 

 차로 10분 거리다. 결혼하기 전에는 부모님과 잠시 같이 살았고 결혼하고 나서 전셋집을 구해 살고 있다. 전셋집 구한 얘기만 해도 한 시간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시골에서 집구하기가 힘들었다. 시골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생태적으로 살고 싶은데 왜 사람들이 쓰레기를 많이 배출할 수밖에 없는지 이해하면서 사는 요즘이다. 그래서 서른 살 되니까 내 땅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들었다. 시골에서 자기 것이 없으니 뭔가 제대로 할 마음이 안 든다고 해야 할까, 내가 만드는 걸 매우 좋아하는데 분리수거장을 만들더라도 지금 내 집이 아니니까 그런 마음이 크게 안 든다.  

 

 일과는 어떻게 되나?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낸다. 와이프는 그 전에 출근하고. 그럼 나는 농장와서 일하고 일주일에 네 번 간디학교에 농사 수업하러 간다. 그리고 아이들 하교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가고 집에 돌아온다. 

 양계 일에 관심이 생긴 계기는 무엇인가?  

 간디학교 사감 일을 했는데 낮에 비는 시간이 있어서 농사를 지어보자 싶었다. 왜냐하면 친구들이 건강한 먹거리를 많이 이야기하길래 나도 관심이 생기더라. 그래서 근처에 아는 형님이 논이 있으니 농사지어보면 어떻겠냐고 해서 나는 또 망설임 없이 해보자 싶어 3년 동안 지었다. 500평 정도라 작물을 팔 정도는 아니었다. 농사를 경제적인 수단으로 만들어보고 싶어 간디학교 일을 전임교사에서 시간제 강사로 바꿨다. 산청은 딸기를 많이 하니 딸기도 해보는 등 농사 경험을 쌓다가 부모님이 하시는 유정란 일에 관심이 생기더라. 다른 농사를 할 때 돈뿐만이 아니라 땅이나 농기계 등 기반이 너무 없으니까 시작부터 힘에 부치는 것 같았다. 나는 소농으로 살고 싶은데 이렇게 시작하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 그래서 아버지 일을 찬찬히 보게 되었다. 그리고 안과 밖에서 하는 일이 반반씩 이루어지는 것도 마음이 들었다. 자연환경도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양계 규모가 어느 정도인가? 

 저희 부모님은 천마리, 나는 3백 마리 총 1300마리를 아버지 농장에서 같이 키우고 있다. 올 초에 내 땅을 샀다. 거기서 농장을 하려고 허가받으러 다녔다. 희한하게 우리나라는 축산업이 혐오 시설로 되어 있더라. 어쨌든 허가 받는 작업을 하고 그제 드디어 허가가 났다. 

 축하드린다. 

 너무 좋다. (웃음) 올겨울부터 공사에 들어갈 계획이다. 그리고 부모님 농장 창고를 4개월 전부터 내가 직접 지었다. 시골에서는 자기 손으로 하지 않으면 돈이 많이 든다. 도시도 그렇지만... 그래도 도시는 자기가 살 아파트를 직접 짓고 싶다는 생각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시골은 자기가 살 집이나 창고를 지으려고 시도하고 배우면 지을 수 있는 것 같다. 

 창고 짓는 일은 어디서 배웠나? 

 공구 다루는 거나 목공을 좋아하고 20살 때 막노동 현장에서 10개월 정도 일도 했었다. 주변에 집 짓고 있는 형님들이나 조선소에서 일했던 분한테 용접이나 콘크리트 채우는 일을 돕기도 하고. 그리고 요즘은 유튜브가 나의 스승이다. 진짜 유튜브에 다 나온다. (웃음) 

 

 닭 키우기부터 유통까지 직접 다 하는 건가?

 

 그렇다. 거의 100% 개인한테 택배를 보내고 있다. 홍보를 대대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드셔본 분들의 입소문으로 팔리는 것 같다. 아무래도 케이지 양계장에서 나온 달걀보다는 나을 테니까. 저희 닭은 풀도 먹고 흙 목욕도 할 수 있는 환경이라서 지난 달걀 파동 났을 때도 닭들이 무사했다. 그렇다고 해서 대단한 시설은 아니다. 그리고 천마리라는 숫자는 상징성이 있다. 나도 앞으로 천마리 이상 넘지 않은 선에서 내 농장을 가꿀 건데 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천마리 이상 되면 직거래로 판매하기 힘들다. 닭이 알을 낳게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닭이 불편하지 않게 잘 키우면 된다. 비 오면 비 가려주고 여름에 너무 더울 때는 햇빛 조금 차단하고, 환기하면 된다. 자기만의 노하우를 만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천마리를 감당할 정도가 되면 소득도 한 식구는 먹고살 정도가 된다.

 

 곧 재영 씨의 농장이 생기긴 하겠지만 지금까지 가족 사업처럼 하고 있고, 부모님과 생활권도 겹치는데 사이는 어떤가?   

 

 나는 부모님이 친구 같고 편하다. 부자간 껄끄럽게 지내는 분들도 있는데 나는 싸울 때도 있지만 대화를 자주 나눈다. 

 나는 자식이 크면 부모님과는 떨어져 지내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우리나라 농업이 노하우가 쌓이고 대대손손 이어가려면 부모 자식 관계가 훨씬 친해지고 좋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님도 잘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자식이 ‘나도 부모님처럼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해야 농업도 발전할 것 같다. 안 그러면 부모님과 안 맞아서라도 일을 못 한다. 그런 사례를 많이 봤다. 나는 젊은 사람들이 부모님이 하는 농업을 물려받았으면 좋겠다.

 옛날에 농업에 종사하는 부모님들이 자식은 본인과 같은 고생을 하지 않게 바라는 마음으로 도시로 나가 교육받고 출세하길 바랐던 것 같다. 농업도 좋은 일이고, 발전시킬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자식에게 알려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든다. 

 힘든 노동이라도 재밌게 하면 다르게 보인다. 땀을 많이 흘려도 샤워하고 밥 먹고 편하게 쉬면서 부모와 자식 간 이야기할 수 있는데 그런 것이 안 되다 보니까 자식들이 나는 부모님처럼 안 살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산청에 온 지 10년 되었는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몇십 년을 산 느낌이다. 이곳에 산 총평을 해본다면? 

 

 

 시골에 혼자 살면 어떻게 살아도 괜찮은데 가족을 꾸리고 사니까 여러 생각을 하면서 살게 된다. 딸기 농사지으면 돈 번다는 말 듣고 딸기 농사짓기 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돈 버는 것도 중요하고 동시에 잘 쓰는 것도 고민하게 되고. 시골에 오면 자연스럽게 씀씀이가 도시와 달라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도시로 나가고 싶진 않았나?  

 그런 생각은 안 해본 것 같다. 도시는 나에게 놀이터 정도. 내가 길 없는 산골에 사는 게 아니고 교통편도 좋으니까 영화 보러 극장이 있는 진주까지 가는 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인터넷도 잘 터지고. 그리고 나는 시골살이에 관심이 많다. 어떻게 아기자기하게 재밌게 잘 살 수 있을까를 항상 생각하며 뭔가 하나 만드는 것도 유심히 보게 된다.  

 

 쉬는 날은 있나? 

 

 있지만 혼자 있는 시간은 없다. 아이를 키우면서 드는 생각이 ‘아, 언제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주로 쉬는 시간에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같이 놀고 주말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목화 장터에 나가 달걀도 팔면서 같이 논다. 

 주변에 또래는 있나? 육아하는 또래는? 

 없다. 육아를 하는 또래는 더 없다. 근처 간디학교 선생님들이 있지만 학교 일로 바쁘니까.  

 모임에 나가고 싶어도 육아로 갈 수가 없을 테니 또래를 만날 접점이 없겠다. 마을에서 교류하는 분들은 누구인가? 

 그러니까 교류를 못 한다. 처음 왔을 때는 마을 주민들한테 먼저 다가가기도 하고 관계를 만들려고 에너지를 쏟았는데 지금은 자연스럽게 지낸다. 농민회 활동도 하고 목화 장터 나가면 사람들 만나면서 지낸다.  

 청년이 농사일하고 싶어도 모르는 지역에 발 디디기가 힘들 것 같다. 청년 농업인으로 지원받은 게 있나? 

 없다. 내가 하는 규모라면 도움을 안 받는 게 마음 편할 것 같다. 만약 딸기를 예로 들면 억 단위까지 시설비를 투자할 각오가 필요하다. 하우스 시설만 해도 너무 비싸니까. 하지만 부모님과 내가 하는 양계 농장의 시설은 큰돈 안 들여도 충분히 지을 수 있다. 

 그래도 준비 기간에는 수익이 없으니 부담이 클 것 같은데… 

 그렇긴 하지만 아무리 청년이라도 돈 한 푼 없이 할 수 있는 사업은 없다고 생각한다. 농사일하고 싶다면 어느 정도 돈을 들일 마음의 준비는 필요할 것 같다. 

 재영 씨 가족의 경제적인 수입은 어떻게 되나? 

 와이프의 대안학교 교사 월급이 많진 않지만 시골에서는 괜찮은 벌이다. 나도 강사로 다달이 받는 돈이 있고, 올 초부터 닭을 키우면서 닭들한테 월급을 받는 개념으로 일하고 있고. (웃음) 한 때는 하우스나 공사현장에서 일당 받으면서 일을 다니기도 했다.  

 일당을 받는 일은 알음알음  소개를 받는 건가? 

 그렇다. 하우스 짓는 분들을 보면 젊은 사람이 없다. 근데 젊은 사람이라고 해도 다 일꾼으로 반기진 않는다. 왜냐하면 일할 줄 알아야 하니까. 집 짓는 공사현장에서 일할 때 현장감독 하는 아저씨들이 소개해주기도 하고. 요즘엔 내 땅이 생기고 할 일이 있다 보니까 현장 일은 안 가고 장기적인 계획을 짜고 있다.  

 그 계획, 궁금하다.  

 내 땅에 먼저 축사와 창고를 짓고 싶다. 아버지네 양계 하우스와 면적은 비슷할지라도 높이를 더 높게, 더 튼튼하게 짓고 싶다. 지금까지 아버지 일과 주변 아저씨 일을 배우면서 모델을 만들었다. 올겨울부터 직접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그리고 내 집도 짓고 싶다. 집 짓는 돈은 농협에서 낮은 이자로 20년 분할 상환할 수 있는 대출을 받았다. 누구나 대출받을 수는 없고, 시골에 살고 있으며 나이 제한이 있는 거로 알고 있다. 시골 사는 청년들한테 좋을 것 같다. 

 시골에 사는 청년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뭘까? 

 흠… 유연한 마음일 것 같다. 마음먹는다고 바로 생기지 않고, 나도 그 마음을 배우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지역마다 소통하는 방법이 다르니까 경험해보면서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고 아는 시기가 오는 것 같다. 일도 여러 가지 해보면 좋겠다. 그리고 청년한테 시골에서 무조건 농업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한다는 얘기는 안 하고 싶다. 시골에도 선생님, 컴퓨터 고치는 사람, 장사하는 사람도 필요한 거니까.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하고 궁리하면 좋을 것 같다. 그러려면 시골살이 경험이 필요하고.  

 

 앞으로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나는 내 땅을 사서 너무 좋다. 그래서 정말 잘 가꾸고 싶다. 그래서 내가 만든 농장에 내 또래 아이 가진 부모들이 놀러 오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시골에서 의외로 아이 데리고 갈만한 데가 없다. 자연이 놀이터지 라는 소리를 들었고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 그게 안 되더라. 그러니까 바깥에 잘 안 나가게 된다. 그래서 아이와 부모가 놀 수 있는 농장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그렇다고 체험관 식은 아니고. (웃음) 편안하게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곳이 되도록 꾸미고 싶다. 당장 내가 필요한 곳이기도 하다. 

 

 진짜 마지막 질문이다. 재영 씨의 바람이 있다면? 

 

 요즘 나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예를 들어 유튜브로 말하자면 구독자 100만 명 정도가 되는 영향력을 가지고 싶다. 우리가 진짜 봐야 될 정보는 정작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소농이 많아야 농업이 발전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소농을 힘들게 하는 부조리한 법안들을 알려서 고치는 데 도움이 되고 싶고, 조만간 남극의 빙하가 다 녹고, 기후변화가 더 심각해진다는데 그런 상황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하고 싶다. 그리고 내 자식들이 농사에 관심이 생기게 하려면 일단 내 삶이 멋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재밌게 행복하게 사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다. 젊은 사람이 이렇게 아이 키우며 잘 살 수 있다는 거를 보여주면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래서 유튜브 채널도 만들고 영상편집 공부하고 있다. 

 농장 만드는 과정부터 올리면 재밌겠다. 

 아직 올린 영상은 없지만 꼭 하기 위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다닌다. (웃음) 물건을 재밌게 광고하는 영상들이 많은데 나는 만약 구독자 덕분에 돈 벌게 되면 남극에 대신 다녀와서 기후변화 실태를 보여주고 농사나 집 짓는 방법도 알려주고 싶다. 내가 가진 영향력을 좋은 방향으로 쓰고 싶다. 

 백만 구독 유튜버가 되길 응원하겠다. 

 

(끝) 

 

 

2018년도 지리산권 청년의 일과 삶 인터뷰 시리즈는 이재영 님을 끝으로 마칩니다. 

관심 가지고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본 인터뷰 시리즈의 후속작업으로 2018 지리산권 청년 기본현황조사 보고서에 지리산권의 청년들과 관계된 정보들의 문헌조사와 청년 커뮤니티 대상의 인터뷰 등을 담았으니,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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