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권 청년의 일과 삶 인터뷰 시리즈
남원 구도심에 자리한 책방 '알아가는 책가게'의 매니저 조아라가 지리산을 둘러싼 구례군, 남원시, 산청군, 하동군, 함양군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20-30대 청년 16인을 만났다. 청년들은 지역에 뿌리박고 자라난 토박이기도 하고, 도시에서 귀촌을 하여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도중이기도 하다. 게스트하우스를 꾸리며 예술을 하는 청년도 있는가 하면, 부모님과 함께 거주하며 특산물 농사를 짓는 청년도 있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지역에서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청년들과 나눈 일터와 일상, 고민과 기쁨의 이야기를 이곳에 풀어놓는다. |
지리산권 청년의 일과 삶 인터뷰 시리즈 #01
주소이 (30대 무아 게스트하우스 운영자 및 화가)
성애바 (별명, 30대 애니메이션 작가)
대도시를 떠나 소도시로 이주하면 어떤 생활이 펼쳐질까?
시계를 자주 보다가 안 봐도 되는 삶?
자전거로 시내 교통은 충분한 삶?
자연을 누리며 깨끗한 공기와 직접 내린 커피를 마시는 시간은 매일 누리겠지?
용기 내어 내려갔는데 계속 줄어드는 통장 잔액을 보며 생계 고민에 빠지면 어떡하지?
여기, 꿈은 꾸되 꿈대로 되지 않는 다양한 일상을 만들어가는 청년을 만나 이야기를 묻고 듣는 기획이 시작되었다.
지리산권 청년의 일과 삶 인터뷰 그 첫 번째로
전라북도의 제일 아랫자락이자 지리산의 윗자락 남원시에
자발적으로 오지 않았어도 즐거워 보이게(?) 사는 두 사람을 만났다.
- 조아라 : 자기소개 부탁한다.
- 주소이 : 내 이름은 주소이. 남원시 쌍교동에서 무아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살고 있다.
- 성애바 : 82년생 개띠. 남원시 동충동에 사는 성애바라고 한다.
소이 씨는 남원에 어쩌다 오게 되었나?
- 주소이 : 목포가 고향인데 중학교 때 서울로 이사한 후 쭉 대도시에 살았다. 그러다 언니가 남원시에서 일하며 살게 되어 몇 차례 놀러 왔었다. 동네 분위기가 예쁘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살게 될 줄은 몰랐다. 계기는 4년 전에 어머니가 노후를 보낼 장소를 알아보다가 남원에 게스트하우스를 차리고 싶다고 하여 날 불렀고 함께 자리를 알아봤다. 어머니의 부름으로 살게 된 셈이다.
어머니가 부른다고 내려오기 쉽지 않았을 텐데?
- 주소이 : 내가 해외여행도 자주 다니고 아일랜드에서 워킹홀리데이로 장기간 체류하면서 가족과 특히 어머니와 함께 한 시간이 적었다. 어머니가 사람 만나고, 밥해주는 걸 좋아해서 게스트하우스 운영에 맞을 것 같기도 했고, 그때 함께 할 인력이 집안에서 나밖에 없었다. 나도 남원은 여행 콘텐츠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고 싶진 않았지만(웃음) 타이밍이 맞았다고 생각한다.
남원의 어떤 콘텐츠가 있다고 생각하나?
- 주소이 : 우선은 광한루원이라는 아름다운 정원과 요천로, 향교, 만인의 총 등이 모여있다는 점과 역사적으로도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어머니와 게스트하우스 자리를 보느라 여기저기 골목 구석구석 걸어 다녔는데 마을들이 참 예쁘구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 시기가 4월이라서 더 예뻤던 것 같다.

(무아 게스트하우스 운영자 및 화가 주소이 님)
성애바 씨는 고향이 남원이라고 들었다. 돌아오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
- 성애바 : 남원에서 나고 자랐고 스무 살에 학교 때문에 떠났다가 서른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가족 사업을 도우러 남원에 잠시 왔다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버지 장례식날 서울 집주인으로부터 월세 인상 전화를 받고는 집을 빼고 내려와야겠다고 결정했다.
서울에 가고 싶었겠다.
- 성애바 : 친구 소개로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게 되어 서울에 반년 정도 있었는데 일이 끝나갈 때쯤 새언니가 임신했다며 연락이 왔다. 또다시 가족 사업을 도와야 하는 상황이 되어 남원에 내려왔다. 내 의지로 오게 된 상황이 아녀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래서 남원 구석구석 구도심 자락을 혼자 많이 걸어 다니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면서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기도 했다. 이전에 남원에 살 때나 서울에서 간간이 남원에 왔을 때는 몰랐던 좋은 공간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작업공간을 얻어서 그림을 그리며 전시도 준비하고 가족 일도 돕고 그러고 있다.
그럼 본인이 필요한 돈은 어떻게 마련하고 있나?
- 성애바 : 방과후교사 일로 번 돈, 그림을 판 돈은 다 써가고 있고 엄마 피를 빨아먹고 있다. (웃음)
- 주소이 : 나도 게스트하우스 운영으로는 인건비가 안 나온다. 성애의 권유로 방과후교사 일을 했다. 학교 세 군데 정도 다녔는데 엄마 선물도 사드리고 하면서 흥청망청 썼다. (웃음)
둘은 가족의 호출로 남원에 살게 되었고, 가족과 함께하는 일정이 많다. 가족과 함께 사는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을 알려달라.
- 주소이 : 솔직히 정신적으로 안정감을 느낀다. 부모와 자매가 같이 있으니 돈이 없어도 불안하지 않고 지지받는 느낌이 드니까. 그리고 단점은 너무 많다. (웃음) 일단 간섭이 많다. 예를 들어 오늘 내 계획은 4시간 동안 스튜디오에서 그림을 그리는 건데 가족이 내가 필요한 상황에 호출하여 심부름을 시키면 해야 한다. 그리고 외지인이라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 것도 불편하고.
- 성애바 : 엄마랑은 친구같이 지내지만, 오빠는 같이 살아도 서로 뭐 하는지 잘 모른다.
그런 면에서 서울 같은 대도시는 익명성 덕에 편한 게 있다.
- 박성애 : 희한한 게 그래서 굉장히 외로웠다.
그나저나 둘은 어떻게 알게 되었나?
- 주소이 : 순창에서 지인이 카페를 운영하는데 그분의 지인의 지인이 성애바였다. 게스트하우스 오픈 직전에 그 지인이 놀러 오면서 성애바를 만났다. 남원에서 또래를 만날 줄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동갑에다가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놀랐다. 여기니까 이런 사람(?)을 만나지, 대도시에 가면 있을까 싶다. (웃음) 그렇게 만났다.
- 성애바 : 이 게스트하우스 자리를 탐내던 사람이 많았다. 나도 산책하면서 봤었고. 한번은 지인이 남원에 집을 알아보고 싶다고 해서 이 집을 같이 보기도 했었다. 그 후에 여기가 게스트하우스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일랜드 남자와 한국 여자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가 될 거라고 했다. 누군지 궁금했는데 지인의 지인이 소이를 알더라. 그래서 오픈 전에 지인과 놀러 오게 되었고, 이전 모습과 달라진 공간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 집이 주인을 제대로 찾은 것 같았다.
이렇게 지인을 통해서 서로 알게 되었는데, 혹시 남원에서 만난 청년 커뮤니티가 있거나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나?
- 주소이 : 일로 엮어진 적은 단발적으로 있는데 정기적인 모임이나 그룹에 참여하진 않았다. 나는 내성적인 성향이 있어서 서울에 살 때도 그런 모임을 참여하고 싶어도 못했다. 여기서도 딱히 나한테 함께 하자 권유하는 사람이 많지 않고 나도 마음이 가거나 그러진 않고.
- 성애바 : 나는 남원에 돌아왔을 때 사람들과 전혀 연결하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잘할 자신이 없어서 나를 숨기고 싶었다. 한번은 제빵 수업을 듣고 싶어서 문화센터 같은 곳에 갔다가 같은 테이블에 앉은 아줌마가 나를 캐는 질문을 계속해서 다음에 그 수업을 안 간 적도 있었다.
- 주소이 : 남원에 있는 청년, 각자가 가지고 있는 성향이 있어서 뭔가 만들어서 확 끌고 가는 게
아니라 스며들 듯이 들어왔다가 스며들 듯이 빠지는 느낌이... (웃음)
여기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가?
- 주소이 : 말로 어떻게 설명하지?
- 성애바 : 운명! (웃음)
- 주소이 : 나는 유머코드가 맞아야 해. (웃음)
서울의 하루와 남원의 하루를 비교할 때 달라진 점이 있다면?
- 주소이 : 시간이 흐름이 완전히 달라졌다. 서울에선 하는 일은 없어도 시간에 쫓기듯 살았다. (웃음) 친구 만나러 갈 때도 지하철 시간에 맞춰서 나가고 가는 경로부터 집에 몇 시 정도 도착하겠다는 계획을 머릿속에서 계산하고 살았다. 나가기만 하면 시간에 갇히고 항상 거기에서 잰걸음 하며 다녔던 기억이 너무 많다. 좋은 환경에서 자라왔지만, 서울은 내 공간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남원에서는 시간을 잘 안 본다.
보통 몇 시에 일어나는가?
- 주소이 : 9시 반에서 10시쯤. 조식 예약 있으면 7시 일어나 준비하고 다시 자기도 한다. 남원은 시에스타가 있는 것 같다. (웃음) 브레이크 타임 있는 식당도 있고. 여기서는 내가 낮잠을 잔다. 서울은 내가 바쁘게 돌아다니지 않으면 죄책감 드는 그런 게 있었다. 그게 너무 싫더라고. 서울에서 좋은 기억은 많지 않은데 여긴 너무 좋다.
- 성애바 : 난 서울과 남원의 하루가 다르지 않다. 서울에서 학교 주변에 30년 넘은 주공아파트 단지를 나무 보며 산책하고 그랬다. 하지만 서울에서 아쉬웠던 건 자전거를 못 타는 거. 남원은 자전거 타기 너무 좋다. 그리고 남원은 사람과 사람 거리가 넓다. 서울은 사람 간격이 좁아서 간만에 서울 가면 사람 구경하기 좋다. 그리고 서울에서 좋은 점은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는 확률이 높은데 여기는 전주나 광주로 찾아가도 볼까 말까 하는 게 매우 아쉽다. 처음 남원 왔을 때 극장을 만들고 싶었어.
- 주소이 : 맞아. 소규모 극장 얘기하고 그랬지.
지역에 살아보고자 하는 청년을 위한 지원이 여기저기 많은데 어떤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 주소이 : 남원은 관광 인프라가 있다. 관광코스를 개발해서 셔틀버스 운영, 관광해설사 등과 같은 일자리를 많이 늘리면 좋겠다. 큰돈을 버는 일자리가 아닌 청년들이 오가며 일할 수 있는 인프라가 필요하다. 청년들은 여러 지역을 보고 싶어 하는데 3년 단위로 쪼개서 주는 정착금 지원은 좀 아닌 것 같다.
- 성애바 : 완주군이 지원프로그램이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작년에 완주군에 빈집 한 달 살기 지원 프로그램에 지원했다가 떨어졌었다. 작가가 그 집에서 하고 싶은 것을 결과로 내면서 살아보는 프로그램인데 한 달은 좀 짧은 느낌이 들지만 좋은 것 같다. 몇 년 전에 남원에도 공설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를 정부 지원을 받아 각지에서 온 청년들이 와서 진행한 걸 알고 있는데 프로젝트 기간이 끝나니 대부분 떠난 거로 알고 있다. 시장 상인들은 그런 프로그램에 관심 없고 시설물은 엄청 좋은 걸 해놓고... 지금 그때로부터 4년이 지났는데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그런데도 행정적 지원은 계속 그런 방향이다.
- 성애바 : 필요하지만 이대로라면 허무하게…
- 주소이 : 깨진 독에 물 붓기지.

(주소이 님의 작업실 겸 전시공간 무아 스튜디오)
시골살이를 풍요롭고 낭만적으로 비추는 미디어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 성애바 : 엄마와 함께 삼시세끼를 보는데 엄마가 그러더라. ‘저 사람들은 밥 먹으면서 돈 버네’ 하고 (웃음)
- 주소이 : 우리 가족도 그런 얘기 한다. 부럽다고. (웃음) 난 그런 미디어를 볼 때 좋은 마음 반, 냉소적인 마음 반을 갖고 본다. 좋은 마음은 실제로 풍족한 마음이 든다. 왜냐하면, 자전거를 타고 요천로만 가도 너무 좋아. 햇빛을 느끼면 그 자체로 너무 좋거든. 냉소적인 마음은 여기서도 살아야지, 계속 요천로만 달릴 거야? 하는 생각이 든다. (웃음) 근데 미디어에서는 현실적으로 문제가 되는 건 안 보여주지.
- 성애바 : 어느 때부터 카메라 앞에 있는 모든 피사체는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서울 성북동에 살던 지인이 리틀포레스트 느낌의 집을 정말 발품 팔아서 전세 2천에 구했었다. 집에 초대해줘서 여러 사람과 갔는데 같이 간 사람들이 너무 예쁘다며 여기저기 둘러보는데 난 이해할 수 없었다. 지인은 찬바람 들어오는 그 집에서 힘들게 사는데 잠시 머문 사람들이 너무 낭만적으로 얘기하는 게 내가 추운 집에서 살아봐서 그런가? 굉장히 불편했던 것 같아. 나도 티비를 보는 입장에서 재밌게 볼 때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안다.
기회가 되면 다시 서울 혹은 다른 지역으로 가고 싶나?
- 성애바 : 서울 친구들이 서울에 왜 안 오냐, 서울에 와야 뭘 하지라고 나한테 말할 때가 있는데… 남원에 내려올 때도 자신 없었지만 올라가는 것도 자신 없다. 서울에 가서 뭐가 된다는 것도 시골에 가서 낭만을 추구하는 꿈 같은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아예 간다면 서울이 아닌 다른 도시를 가보고 싶다. 강원도 태백이라던가…
태백에는 왜?
- 성애바 : 미디어의 영향인데 (웃음) 태백에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있다더라.
- 주소이 : 난 서울은 여행으로만 가고 싶다. 다른 지역으로 갈 수도 있고 해외에 나갈 수도 있고.
잘 모르겠다.
소도시나 시골로 내려오고 싶은 청년들이나 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성애바 : 간은 보는 게 좋은 것 같다.
- 주소이 : 나도. 여행하듯이 간을 보며 다닐 수 있거든. 관광지만 가게 되는 그 틀을 깨고 아무 데도 없는 곳으로 놀러 간다고 생각하고 가면 사람들 사는 분위기가 보일 테고 그렇게 다니면 나와 성향이 맞는 지역이 분명히 나타난다고 봐. 미리 겁먹지 말고 사람들이 잡아먹는 게 아니니까.
앞으로 계획이나, 기대, 바람, 목표가 있다면?
- 주소이 : 나는 딱히 큰 꿈은 없다. 계획이라… 건강했으면 좋겠다(웃음) 그림을 좀 더 열심히 그리고 싶고 기회가 되면 전시를 열고 싶다.
- 성애바 : 좋은 사람 만나서 산책하고 싶다. 작업공간을 빌린 값을 내가 잘 치러내는 것. 전시 일정이 있는데 잘 마무리를 짓고 싶다. 그러면 다음에 뭘 할지 알게 될 거고…
(끝)
인터뷰어 : 조아라 (30대, 연고 없는 남원에 내려와 동네서점을 운영하며 연고를 만들고 있다)
지리산권 청년의 일과 삶 인터뷰 시리즈
남원 구도심에 자리한 책방 '알아가는 책가게'의 매니저 조아라가 지리산을 둘러싼 구례군, 남원시, 산청군, 하동군, 함양군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20-30대 청년 16인을 만났다.
청년들은 지역에 뿌리박고 자라난 토박이기도 하고, 도시에서 귀촌을 하여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도중이기도 하다. 게스트하우스를 꾸리며 예술을 하는 청년도 있는가 하면, 부모님과 함께 거주하며 특산물 농사를 짓는 청년도 있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지역에서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청년들과 나눈 일터와 일상, 고민과 기쁨의 이야기를 이곳에 풀어놓는다.
- 조아라 : 자기소개 부탁한다.
- 주소이 : 내 이름은 주소이. 남원시 쌍교동에서 무아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살고 있다.
- 성애바 : 82년생 개띠. 남원시 동충동에 사는 성애바라고 한다.
소이 씨는 남원에 어쩌다 오게 되었나?
- 주소이 : 목포가 고향인데 중학교 때 서울로 이사한 후 쭉 대도시에 살았다. 그러다 언니가 남원시에서 일하며 살게 되어 몇 차례 놀러 왔었다. 동네 분위기가 예쁘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살게 될 줄은 몰랐다. 계기는 4년 전에 어머니가 노후를 보낼 장소를 알아보다가 남원에 게스트하우스를 차리고 싶다고 하여 날 불렀고 함께 자리를 알아봤다. 어머니의 부름으로 살게 된 셈이다.
어머니가 부른다고 내려오기 쉽지 않았을 텐데?
- 주소이 : 내가 해외여행도 자주 다니고 아일랜드에서 워킹홀리데이로 장기간 체류하면서 가족과 특히 어머니와 함께 한 시간이 적었다. 어머니가 사람 만나고, 밥해주는 걸 좋아해서 게스트하우스 운영에 맞을 것 같기도 했고, 그때 함께 할 인력이 집안에서 나밖에 없었다. 나도 남원은 여행 콘텐츠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고 싶진 않았지만(웃음) 타이밍이 맞았다고 생각한다.
(무아 게스트하우스 운영자 및 화가 주소이 님)
- 성애바 : 나는 남원에 돌아왔을 때 사람들과 전혀 연결하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잘할 자신이 없어서 나를 숨기고 싶었다. 한번은 제빵 수업을 듣고 싶어서 문화센터 같은 곳에 갔다가 같은 테이블에 앉은 아줌마가 나를 캐는 질문을 계속해서 다음에 그 수업을 안 간 적도 있었다.
(주소이 님의 작업실 겸 전시공간 무아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