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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소식

자료지리산권 청년의 일과 삶 인터뷰 시리즈 #03_최지한

2018-05-04

 

지리산권 청년의 일과 삶 인터뷰 시리즈


남원 구도심에 자리한 책방 '알아가는 책가게'의 매니저 조아라가 지리산을 둘러싼 구례군, 남원시, 산청군, 하동군, 함양군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20-30대 청년 16인을 만났다.

 

청년들은 지역에 뿌리박고 자라난 토박이기도 하고, 도시에서 귀촌을 하여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도중이기도 하다. 게스트하우스를 꾸리며 예술을 하는 청년도 있는가 하면, 부모님과 함께 거주하며 특산물 농사를 짓는 청년도 있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지역에서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청년들과 나눈 일터와 일상, 고민과 기쁨의 이야기를 이곳에 풀어놓는다.

 

 

지리산권 청년의 일과 삶 인터뷰 시리즈 #03
 
최지한 (30대 하동군 악양면 자발적(!) 백수)
 
 
시골에 가면 과연 ‘일자리'가 있을까? 
 
이 질문은 시골살이에 관심 있는 많은 청년이 품고 있는 고민일 것이다. 
그리고 예상되는 답으로 없을 것이라 지레 결론짓기도 한다.   
 
하지만, 진짜 없을까? 
 
일의 결이 다를 뿐, 일은 어디에나 있지 않을까? 
 
이번 인터뷰를 읽고 나면 ‘일자리가 있을까?’ 가 아닌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로 고민이 바뀌지 않을까 감히 예상해본다.
 
지리산권 청년의 일과 삶 인터뷰 세 번째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에 귀촌해 11년간 다양한 일을 하며 사는 자칭 운 좋은 사람을 만났다. 
 
 
 - 조아라 : 인터뷰의 공식 첫 질문은 자기소개를 부탁하는 것이다. 
 - 최지한 : 이름은 최지한이고, 하동군 악양면에 살고 있다. 나이는 38세이고, 공식적으로는 무직이고 비공식적으로 죽세공예가라고 한다. (웃음)
 
어쩌다가 이곳에 오게 되었나? 
 - 최지한 : 2007년에 처음 왔다. 광양에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어디로 갈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인이 여기서 살아보면 어떻겠냐는 말에 그러겠다고 했다. 이전에도 몇 번 왔다 갔다 했었다. 그때 대봉감을 누가 줘서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홍시도. 그래서 여길 오면 맛있는 감을 먹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게 결정적 이유였다. 
 
감이라… 
 - 최지한 : 이 동네 대봉감을 먹으면 너무 맛있어서 살고 싶을 정도다. 가을에 놀러 오시라. (웃음)
 
태어난 곳은 어딘가? 
 - 최지한 : 강원도 고성. 중학교 때 경기도 군포로 가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수산대학으로 진학하면서 남쪽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여기서 살 집은 어떻게 구했나? 
 - 최지한 : 구해지더라. 동네 분들이 알아봐 주셨다. 이 집도 두 개 중에 골라서 왔다.  
 
그냥 알아봐 주진 않을 것 같은데... 
 - 최지한 : 재수가 좋다. (웃음) 
 
마을 분들과 어떻게 맺어졌나?
 - 최지한 : 인사 잘하면 된다. 인사 잘하면 어느 날 좋은 사람이 되어 있다. 할머니가 무거운 거 들고 가면 들어다 주고, 비 올 때 우산 씌워주고. 인간의 도리만 하면 좋아하신다.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고 내 할머니한테 하는 것처럼 하면 된다.  
 
할머니한테 잘할 걸… 
 - 최지한 : 다들 그런 후회를 한다. 
 
어르신들과 이야기하는 건 어떤가? 그래도 부딪히는 부분이 있을 텐데…  
 - 최지한 : 전에는 이야기가 안 통할 때도 있고, 짜증이 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마을 책 만드는 일을 할 때 여기 사는 모든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감동을 많이 받았다. 텃세를 부렸던 분조차도 너무 이해가 가더라. 여기가 그냥 다 산이었는데 자기 손 하나만 가지고 산을 깎고 평지를 조금씩 만들면서 다져온 땅이라고 한다. 그 당시 아이들도 학교 갔다 오면 밭에 가서 자갈을 고르면 여자들이 세숫대야에 담아 머리에 이고 저 산에 갖다 주면 남자들은 시멘트를 비벼서 길을 깔고 수로를 만들었다. 
 아랫집에 사는 할머니가 말씀하시길, 그때 새벽 세시에 일어나 거름 하나 지고 어둠 속에서 지팡이로 짚어가면서 산을 넘어 논에 가서 거름 해놓고 지팡이 짚고 다시 집에 와서 쌀은 없으니 보리를 콩콩 으깨서 밥하고 밭에 가서 일하다가 밤에는 베 짜고 그러셨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분들 생각에 외지인들이 와서 땅 사서 내 것이오 하는 것을 보면 뭔가 내 소중한 걸 뺏기는 기분이 들겠구나 싶더라. 이 마을이 만들어지기까지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뭐랄까 그냥 그분들의 말은 인정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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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이 있다면?  
 - 최지한 : 대바구니를 만들어 팔고 있다. 지금 주문이 30개 정도 밀려 있다.
 
죽세공예는 언제 배웠나? 
 - 최지한 : 대바구니를 보니 만들고 싶어 여기 오자마자 배웠다. 담양에 가서 선생님 일을 도우며 배웠다.  
 
죽세공예로 생계를 꾸리긴 힘들 것 같다. 
 - 최지한 : 아직 멀었다. 주로 건설과 농업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었다. 물건으로 받기도 하고. 계산해보니까 연봉 3천 정도 되겠더라. 이러다 떼부자 되겠는데 하는 생각도 했었고. (웃음)  
 
돈 버는 일을 알려달라. 
 - 최지한 : 2월이 지나면 밭에 거름을 내러 다녔고 그걸 하고 나면 전지를 해야 한다. 그리고 집 짓는 일도 나가고, 녹차도 따고, 고사리도 끊고. 
 
다 마을에서 하는 일인가? 
 - 최지한 : 악양에서 하는 일이다. 고사리 끊고 나면 녹차 볶으러 공장에 가고, 중간에 모판도 만들러 간다. 그리고 못자리하러 가고. 못자리 끝나면 매실 따고 간간이 집 짓는 일 나갔다가, 모내기 보조하러 가면 여름이 지나간다. 일 손 부족한 곳에 수시로 갔다. 나무도 자르고, 시멘트 만드는 일도 하고. 그러다 가을 되면 밤 줍고 추수하고, 짚도 묶으러 다녔다. 감 따고 곶감을 깍으면 1년이 간다.  
 
죽세공예 할 틈이 없겠다. 
 - 최지한 : 열심히 안 했다. (웃음) 동네일 바쁘니까 주변 사람들 일을 먼저 하다 보니까 뒷전으로 밀렸는데 작년부터 내 일을 해야겠다 싶었다. 마을 할머니가 한 말 중에 뜬 모의 운명이란 말이 있다. 모내기했는데 모가 제대로 안 박히면 나중에 뜬다. 그렇게 둥둥 뜨다가 말라 죽으니 결국, 모가 됐건 사람이 됐건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된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작년에 운이 좋게도 일하다가 그때 크게 다쳐 석 달 정도 일을 못 나갔다. 일을 줄이고 바구니를 해야겠다 싶으니까 알아서 다쳐줘서 쉬었다. 요즘은 정말 바쁠 때 아니면 대나무 일을 한다. 산에 다니는 걸 좋아해서 봄나물 뜯어 팔기도 하고.
 
어디에, 어떻게 파나?
 - 최지한 : 어떻게 팔리더라. 그냥 어떻게 하면 되더라. (웃음) 
 
숲길 해설사 일도 했다고 들었다.
 - 최지한 : 4개월 정도. 작년부터 국립공원연구원의 아는 박사님이 주기적으로 아고산* 생태계 모니터링을 하는데 보조로 같이하고 있다. 이 일을 하게 된 계기는,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누군가 전화를 할 텐데 이야기해 보고 하고 싶으면 하라고 하더라. 그 후에 통화했고 해보고 싶었다. 산에 짐 지고 가서 걸으며 경치 보면서 돈 버는 일이다. 물론 엄청 걸어야 하지만. (웃음) 
 
*아고산대(亞高山帶)
<지리> 온대의 산악을 기준으로 하여 이루어진 식물의 수직 분포대. 해발 1,500~2,500미터의 지대로 고산대와 저산대의 사이에 있으며, 저온 건조하여 침엽수가 많다.
 
작은 도서관 관장님이기도 하다고?
 - 최지한 : 지역 아이들이 갈 데가 없다 보니 편하게 쉬고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자 해서 지역 주민들이 2009년에 작은 도서관을 읍내에 만들었다. 나도 수요일마다 사서를 했는데 어쩌다가 운영위원으로 참여했다. 그중에 관장을 뽑아야 하는데 아무도 안 한다고 해서 내가 하겠다고 했다. 명목상 대표지 딱히 하는 일은 없다. 
 
일이 많아 스케줄 관리가 힘들겠다. 
 - 최지한 : 내가 오지랖이 넓다.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도 자기 역량 안에서 해야 하는 것 같다. 안 그러면 나처럼 입술이 바짝 말라 까진다. 
 
그래도 다양한 일을 해보니까 새로운 일을 시도해볼 수 있게 되거나, 역량이 커질 수 있을 것 같다.
 - 최지한 : 그렇지 않다. 사람마다 정해진 용량이 있는데, 그 용량이 잘 돌아간다고 해서 성능이 좋은 게 아닌데 착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분에 넘치는 일을 하다가 입술이 마르는 게 아닐까? 옛말 틀린 게 없더라. 분수를 알고 자기 그릇대로 살아야 하는데… 
 
본인의 그릇은 어느 정도인가? 
 - 최지한 : 나는 여기 악양에서 이렇게 살면 될 것 같다. 동네에서 할머니 짐을 가끔 들어드리고 대나무 바구니 만들고, 동네일 있으면 같이 하는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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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 시간에 찾아 간 인터뷰어를 위해 마당의 텃밭에서 막 따온 채소로 소박하지만 푸짐한 상을 차려주셨다.)
 
 
 
이 마을에는 지한씨 또래가 있나? 
 - 최지한 : 내 친구가 작년 9월에 내가 사는 집의 아랫집으로 들어왔다. 오늘 마을 사무장으로 처음 출근했다. 차 마시며 이야기하고 컴퓨터로 영화도 같이 보고 그러고 논다. 
 
시골에 청년들이 와줬으면 하나?  
 - 최지한 : 오면 좋겠다. 막말도 같이하고. 어르신들과는 그렇게는 못 하니까. 
 
청년의 시골살이를 지원하는 정책이 있는데 혹시 알고 있는 지원정책이 있나? 그런 지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 최지한 : 지원에 관심이 없다. 그리고 받을 이유가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흠… 도움이 되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을 것 같다. 도시로 간다고 도시에서 지원해주나? 아무튼 논리가 이상한데 이해가 안 된다. 왜 지원해주는지…
 
청년이 시골이나 작은 도시에 가서 살고 싶어도 ‘뭐 먹고 살지?’ 와 같은 일자리에 대해 불안함이 있다. 
 - 최지한 : 누구에게나 기회는 찾아오지 않을까? 살다 보면 일자리가 생기는데 그게 참 안타깝다. 시골에서는 인력난이 가장 큰 문제니까 청년이 오면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다.  
 
일자리 고민 다음으로 문화생활의 갈증이 있다. 나도 남원에 내려와 아쉬운 게 내가 보고 싶은 영화는 극장에서 보기 힘들더라. 
 - 최지한 : 문화생활이라… 사람마다 문화생활의 기준이 달라 내가 섣불리 얘기할 수 없는 것 같다. 꼰대가 하는 말 중에 ‘그림이 뭐가 필요 있나, (앞에 펼쳐진 자연경관을 보고) 이게 다 그림인데’ 라고 하시는 분도 있는데… (일동 웃음) 하지만 청년들은 그 풍경 ㅜㅜ 이 그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자연을 느끼고, 자연의 소리를 듣는 건 좋은데 그것만으로 문화생활의 욕구를 채울 순 없는 것 같다. 
 
시골살이를 낭만적으로 그리는 미디어를 보고 시골이나 작은 도시에 내려오려고 하는 청년들이 있는데 그런 미디어를 본 적 있나? 시골살이를 자칭 누린다고 하는 입장에서 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 최지한 : 안 봐서 모르겠지만 그런 마음이 있다. 내가 여기서 가스를 쓰는데 그 가스가 여기까지 오려면 도시 사람들의 노고가 필요하다. 그런 분들 덕에 내가 편하게 시골에서 살고 있는데 내가 그런 삶에 대해 무슨 평가를 할 수 있을까 싶다. 도시에서의 삶, 시골에서의 삶 두 개로 나눌 수 없는 것 같다. 사회는 수많은 사람의 거미줄처럼 얽힌 관계로 유지되니까. 요즘은 더 복잡해진 것 같고. 도시와 시골 나누는 게 어떻게 보면 둘 다 무시하는 생각이 아닐까. 그저 남한테 폐 안 끼치고 살기만 해도 아름답고 훌륭한 삶이라 생각한다. 거기다 자기 분수를 지키고 살면 그야말로 판타스틱한 삶일 것이다.  
 
시골에 살고자 하는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최지한 : 일단 내려와서 그냥 살면 되지 않을까? 시골에 일자리가 더 많다. 눈을 조금만 낮추면 (웃음) 워킹홀리데이로 호주까지 가서 토마토 따지 말고 여기서 따보면 어떨까? 
 
가끔은 도시에 가고 싶지 않나? 
 - 최지한 : 전혀 없다. 도시가 싫다는 게 아니라 그냥 가고 싶다는 마음이 없다. 도서관 가면 새 책 읽을 수 있고, 영화 보고 싶으면 친구와 컴퓨터로 보고, 인터넷 쓰고 싶으면 마을회관으로 가서 와이파이 쓰고. 
 
이 마을을 집으로 사용하는 것 같다. 
 - 최지한 : 다 내 거다. 산도 내 거고. 산에 나물이 엄청 많은데 아무도 안 뜯으니까 다 내 거고. (웃음)
 
앞으로 꿈,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
 - 최지한 : 우리가 북한을 자유롭게 갈 수 있는 날이 어서 와서 개마고원에 가서 텐트 치고 쏟아지는 별을 바라보면서 하루 자고 싶다.
 
여기도 쏟아질 것 같은데... 
 - 최지한 : 개마고원에서 봐야 한다. 백두산 자락 북포태산(함경북도 무산군 삼장면과 함경남도 혜산군 대진면에 걸쳐 있는 산) 밑에 가서 텐트 치고 하루 자는 게 유일한 소원이다.
 
여기에서 꿈은? 
 - 최지한 : 사실 꿈은 없다. 그때그때 고민을 해결하면서 이렇게 하루하루 살고 있다. 요즘 최대 고민은 구들방을 고치고 싶은데 황토가 필요하다. 이 황토를 어떻게 구하면 좋을지 누군가  해결해주면 좋겠다. 어느 동네 산을 깎아 만든 황토를 사고 싶지 않고, 이 마을 주변 산에서 황토를 구해서 해볼까 해도 똑같은 짓을 하는 것 같아서 2년째 고민만 하고 있다.   
 그리고 목표도 있다. 마루를 완공해야 한다. 옛날 정자 보면 안에 구들방 하나 있는데 그런 구조로 만들고 싶다. 손님들 오면 차도 마시고, 친구들이 여름 휴가 때 놀러 오면 마당 한켠에 텐트 치고 잤는데 여기 마루에서 모기장치고 잘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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