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이음 활동 소식

자료지리산권 청년의 일과 삶 인터뷰 시리즈 #05_이종혁

2018-06-07

 

지리산권 청년의 일과 삶 인터뷰 시리즈


남원 구도심에 자리한 책방 '알아가는 책가게'의 매니저 조아라가 지리산을 둘러싼 구례군, 남원시, 산청군, 하동군, 함양군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20-30대 청년 16인을 만났다.

 

청년들은 지역에 뿌리박고 자라난 토박이기도 하고, 도시에서 귀촌을 하여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도중이기도 하다. 게스트하우스를 꾸리며 예술을 하는 청년도 있는가 하면, 부모님과 함께 거주하며 특산물 농사를 짓는 청년도 있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지역에서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청년들과 나눈 일터와 일상, 고민과 기쁨의 이야기를 이곳에 풀어놓는다.

 

 

지리산권 청년의 일과 삶 인터뷰 시리즈 #05

 

이종혁 [30대 경상남도 산청군, 딸기 농부] 

 

 

이 글을 읽는 당신, 

 

 

‘청년이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다’ 

 

 

라는 문장을 읽고 떠오르는 생각이 다음 보기 중 (비슷하게라도) 있다면? 

 

 

①돈도 안 되는 힘든 농사일을 왜 지을까? 

②정말 대단하다, 우리나라 농업의 희망!  

③왜 도시로 안 가고… 도시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④공부를 안 했나?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서 ‘청년이 시골에서 농사짓는 일’만큼 여러 편견과 인식으로 바라보는 일도 없을 것이다.  

 

 

어떤 일을 바라보는 관점은 그 일을 전혀 몰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바라본다. 자기 안에 쌓인 정보값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일이나 장단점은 있을 터, 농사일도 ‘그냥’ 수많은 일 중에 하나로 누구나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일로 받아들여 지는 때가 올까? 

 

 

지리산권 청년의 일과 삶 인터뷰 다섯 번째 

 

 

경상남도 산청군 신안면에서 부모님과 함께 딸기 농사를 짓는 사람을 만났다.   

 

 

 

조아라(이하 : 조) 첫 질문은 자기소개 부탁한다. 

 

 

이종혁(이하 : 이) 이종혁이라고 한다. 올해 서른세 살이고 작년 8월 16일부터 산청군 신안면에서 부모님과 같이 딸기 농사를 하고 있다. 그리고 지역에서 농민회 활동을 하고 있고, 청년들의 커뮤니티 활성화에 관심이 많다. 이 정도로 자기소개하면 될까? 더해야하나?

 

 더 해달라. (웃음)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농사일을 많이 도와 농사는 짓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스물다섯 살에 농사를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농업 관련 대학에 갔다. 그때부터 내 생각을 한 것 같다. 그때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될까 하는 고민을 하면서 나 스스로 생각이 정립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전에는 짜인 틀에 맞추는 것이, 예를 들면 초등학교 졸업하면 중학교 가고 또 고등학교, 대학교 가고 취업하고 돈 벌며 사는 게 평범하게 사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안에서는 내가 잘하는 게 뭔지, 잘 할 수 있는 게 뭔지 몰랐다.

 

 산청에서 나고 자랐나? 

 

 그렇다. 고등학교 때부터 농사일 안하려고 진주로 나갔다. (웃음) 

 

 부모님이 많이 시키긴 했나 보다. 

 많이 했다. 왜냐하면 부모님이 힘들게 일하는 게 눈에 들어오니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진주 친척집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농번기에는 주말마다 도와야 했고, 농업 관련 대학을 가기 전에 일반 대학교도 아무 생각 없이 갔었고. 

 

 전공이 뭐였나? 

 전자 관련 학과였다. 빨리 졸업하고 취직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대학에서 배우는 게 어디에 쓰이는지 잘 모르겠더라. 공부하는 게 나와 안 맞아서 1학기만 다니고 군대를 다녀와서 복학하지 않고 자퇴를 했다. 쭉 짜인 틀을 벗어난 첫 결심이었던 것 같다. 

 

 휴학할 수도 있었는데.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다. (웃음) 

 

 그때가 스물세 살? 

 그쯤 된다. 자퇴하고 나서 전기나 건축 일 등 여러 가지 일을 해봤지만, 부모님 농사일을 많이 돕다 보니까 농사에 관심이 생겼던 찰나에 신문광고에서 농업 관련 대학에서 신입생을 모집한다는 글을 봤다. 우연히 아버지도 똑같은 공고를 내게 가보라며 추천해주기도 했다. 농장에서 실습하는 과정도 있고, 학비도 무료니까 집에 부담도 안 될 것 같았다. 떨어지면 어쩔 수 없지 라는 생각으로 지원했는데 합격이 되어 다니게 됐다. 

 

 그렇게 하기 싫었던 농사를 왜 다시 하고 싶어졌나?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다만 어릴 때 농사일을 하기 싫었던 이유는 그때 학교 다녀오면 재미있는 티비 프로그램을 해서 그거 보려고 할 때 일하러 가자고 했던 그런 게 싫었다. 농사일 자체가 싫진 않았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까 어렸을 때부터 6시내고향 같은 프로그램을 재밌게 자주 봤다. 그리고 한번은 그런 생각도 했다. 스무 살 넘어 마을을 보니까 10년 뒤엔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질 것 같더라. 그래서 내가 다 지어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일동 웃음)

 

 

(산청의 딸기농부 이종혁 님)

 

 

 

 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농민단체에서 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이라는 곳에서 4년 정도 일했다. 

 

 어떻게 알고 들어갔나? 

 농민회에서 하는 연구용역 사업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농민들을 인터뷰하러 가는데 지역마다 사투리도 다르고, 농사용어도 달라서 정리하는 일을 했다. 스무 곳 지역에서 만난 농민이 짓는 농사 매출, 생산비 등을 정리했는데 열 아홉 군데가 적자였다. 그 결과를 보니까 ‘왜 이렇지?’ 하는 고민을 했다. 나는 부모님이 농민이고 농촌에 살아서 누구보다 농민들의 삶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잘 모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뭐가 문제일까?’ 이런 고민을 하던 차에 농민회에서 일할 사람이 없다고 같이 일해보자고 해서 고민 많이 하다가 들어가게 되었다. 

 

 선뜻 하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나는 졸업하고 바로 농사지으러 내려가고 싶었다. 처음에는 내가 거절을 못 해서

그런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고,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곳에서의 일은 어땠나?  

 

이  ‘나는 농민이다’라고 생각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고 평가한다. 개인일정을 포함한 모든 일정에서 제일 우선순위는 항상 농민회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전농호위무사’라는 별칭도 있었다. 좀 더 농업과 농민, 농촌을 사랑하게 되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넓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 스스로 발전하지 않는 모습이 힘들었던 것 같다.

 

 농사를 안 지어도 농민이라는 생각을 하는가?  

 그렇다. 나에게 농민회는 직장이 아니었다. 농민회의 일은 곧 나의 삶과 연결되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다른 지역에 갈 수 있었을 텐데 산청으로 다시 온 이유는?  

 농촌에 정착하는 데 여러 가지 어려움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지역은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산청은 나의 집이고 가장 편안한 곳이다. 어떻게 보면 모험을 피해 좀 더 쉬운 길을 선택한 것으로도 볼 수 있겠다.

 

 부모님의 반응은? 

 농사짓는 것은 반대하지 않지만, 농민회 활동엔 조금 우려를 하신다.

 

 내려와서 농사일은 금방 손에 잡히던가? 딸기 농사의 1년 스케줄은 어떻게 되나? 

 

 원래 농사일은 많이 했으니까 금방 손에 익었다. 작년 딸기밭을 막 준비할 때 왔으니까 그때부터 딸기 심고 10월 말부터 따기 시작해서 포장하고 서울 경매장으로 보내는 일을 5월까지 한다. 

 

 농한기는 언제인가?  

 딸기 농사는 농한기가 없어 절망적이었다. (웃음) 7개월 정도 똑같은 패턴이다. 딸기를 담는 데만 하루의 3분의 2 이상 들어간다. 바깥에 나가는 것도 아니고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가만히 앉아서 담는다. 

 

 엄청난 반복작업이다. 

 시간도 금방 간다. 밖이 어떻게 변했는지 느껴볼 새 없이 시간에 쫓겨 빨리 담아야 하니까.

 

 수입은 어떤가? 

 아버지가 관리한다. 내가 필요한 것을 사는 정도는 벌어놓은 거로 쓰고 있다. 돈이 많다는 게 아니라,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거지라는 생각이 있어서 아직 경제적인 문제에 대해서 크게 고민을 안 하고 있다.  

 

 언제 독립하고 싶은가? 

 된다면 바로 하고 싶다. (웃음) 왜냐하면 부모님과 같이 사니까 주체적인 생활이 안 되는 것 같다. 어머니가 집안일을 다 해주시니까. 이 이야기를 지인한테 했더니 집에서도 안되는데 독립해서도 되겠냐는 말을 들었다. (웃음) 집에서부터 해야 한다고 하더라. 

 

 그 말도 일리가 있다. 

 딸기 농사를 하다 보니 내 시간을 많이 못 가진다. 요즘은(4월) 딸기가 많이 안 나와서 이렇게 인터뷰도 하러 나올 수 있지만 많을 때는 못 나온다. 경제적인 부담을 해결할 수 있다면 독립하고 싶다. 

 

 마을 분들이랑은 어떻게 지내나? 

 

 내가 내려온 이유는 농촌에서 필요한 일을 하려고 하는 게 더 컸었다. 어르신이 많고 농민이 많으니 그분들이 필요한 일을 하고 싶어서 처음에는 조급한 마음으로 농번기 일손이 필요하면 나를 불러 달라고 종이에 쓰고 사람 많이 오는 농약방에 붙여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내 일이 많아지니까 다른 일을 못 하게 되더라. 그래도 시간이 날 때마다 제 주변에 있는 또래 친구들 농사일이나 길 가다 비닐을 씌우는 일 등을 돕고 있다. 

노지 작물을 하는 사람은 서로 품앗이를 하거나, 들판에서 일하고 있으면 오다가다 얘기도 할 수 있을 텐데 하우스 작물은 들어가 버리면 다른 사람과 얘기를 할 수 없게 되니까 마을 소식도 잘 모른다. 저뿐만 아니라 부모님도 잘 모르시니 뭔가 해결할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 

 

 또래 친구들과 놀고 싶겠다.  

 

 그렇다. 

 

 독서 모임이 있다고 들었다. 

 시골 친구들은 모두 산청을 떠났다. 그런데 찾아보니 주변에 나와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이 꽤 있었다. 나는 쑥스러움도 많고 낯가림도 심해 얘기도 잘 못 하는데 필요하니까 스스로 나서게 되더라. 독서 모임은 내가 많이 의지하는 친구와 올해 계획을 얘기하다가 독서 모임을 한 번 만들어보자 해서 홍보물을 붙이고 다녔다. 그랬더니 두 명이 신청해서 올해 1월부터 1~2주 간격으로 만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 모임 이름은 「있다」 이다.

 

 농사일에 독서 모임까지 바쁘겠다. 독서 모임은 해본 적 있나? 

 

 안 해봤다. 나는 농촌에서 자라서 농촌 생활이 크게 힘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힘들더라도 그 정도는 감수하고 이겨낼 마음가짐을 한 줄 알았는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게 가장 힘들더라. 그래서 내게 독서 모임은 기댈 수 있는 무언가가 된 것 같다. 책을 매개로 한 시골 청년들의 수다방인 것이다. 4명이 모이면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

 

 

 청년이 시골에 오길 바라나? 

 

 그렇다. 시골을 떠나는 사람이 많아서 어떻게든 잡고 싶다. 주변 친구한테 내려오라고 얘기하기도 하고.  

 

 도시에서 사는 게 정답인 것 같은 사회 분위기도 있다. 

 젊은 사람이 농촌에 있다면 문제가 있다거나 (웃음) 못 배운 사람으로 생각하는 인식이 사회에 깔려있는 것 같다. 
 

 반면에 시골에서 농사로 돈을 잘 버는 청년은 미디어에 노출되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시골에서도 돈 많이 벌 수 있다는 식으로 홍보성 기사로 보이기도 하고. 

 내가 졸업한 학교에서 ‘우리 학교 졸업생 어디 언론에 나왔다’, ‘연 매출 10억을 버는 졸업생 누구누구’ 등으로 홍보를 하는 걸 보고 댓글을 단 적이 있다. 농업이 왜 중요한지, 농촌에 젊은 사람이 필요한 이유를 잘 구성해서 홍보해달라는 글을 썼었다. 반영은 안 됐지만… 모든 성공의 기준이 돈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 

 

 청년을 위한 귀농귀촌 지원 정책이 청년을 시골로 오게 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지원정책에 관심이 많다. 왜냐하면 나 역시 부모님이 다져놓은 기반이 있어서 조금 안정적으로 농사를 짓는데도 불구하고 필요한 게 많다. 살 집이나 농사지을 땅을 어떻게 알아봐야 할 지 모르는 친구들은 더 난감할 것 같다. 내가 알기로는 귀농귀촌 지원이 있는데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건 아직 없는 것 같다. 지원이 있어도 현실과 동떨어진 스마트팜, 6차산업, 유리온실 등 실적을 위한 사업지원이 주된 것 같고. 

친구랑 우리한테 필요한 게 뭘까 에 대한 얘기를 했었는데 ‘청년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하는 게 있었고 그다음에 살 집이었다. 오히려 도시보다 시골이 집 구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도시는 돈이 있으면 구할 수 있지만, 농촌은 돈이 있더라도 괜찮은 집을 구하기 어렵다. 전세, 월셋집도 많지 않고, 당장 집을 지을 수도 없으니까 말이다. 폐교를 개조해서 청년이 살 수 있게 하면 좋겠다. 그리고 산청에 놀 수 있는 데가 많지 않다.  

 

 그럼 대게 진주로 놀러 가겠다. 

 작년에 전국에 농사와 관련된 일을 하는 청년 100명 정도 모여서 ‘청년이 농촌에 살 때 제일 필요한 게 뭘까’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두 가지로 의견이 모였다. 하나는 나도 예상했었던 ‘농산물 가격이 안정됐으면 좋겠다’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청년 간 네트워크’ 였다. 이걸 듣고 나는 절감을 했었다. 한 지역에 오래 산 어른들은 주변에 얘기할 수 사람이 있지만 막 시골에 온 청년은 그렇지 않기에 함께 얘기할 수 있는 청년이 필요한 것이다.

 

 산청 외에 살고 싶은 곳이 있다면? 

 

 마을 사람들과 촘촘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깡촌 같은 시골로 가고 싶다. 

 

 그런 곳이면 마을 사람이 거의 없지 않을까? (웃음)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방송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자신만의 철학과 여러 적정 기술을 가진 사람이 나오더라. 

 그렇게까지는 아니다. (웃음) 아무튼 사람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다. 

 

 본인의 시골살이에 대해 총평을 한다면? 

 

 순응하고 있다는 표현을 쓰고 싶다. 영화 리틀포레스트처럼 살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 틀을 깨고 내가 추구하는 바대로 살려면 용기가 필요한데 나는 아직 그만한 용기가 없어서 지금을 받아들이면서 어떻게 내 욕구를 채울 것인가 생각하고 있다. 농촌에 사는 데 필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도시에 살거나, 시골에 살거나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는데 그럼에도 시골에 있고 싶어 하는 이유는? 

 꽉 막혀있지 않고 산이 있고 트여있는 주변 환경이 좋다. 농사일에 바빠도 이런 환경 속에서 걷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으니까. 

 

 앞으로 하고 싶은 꿈, 계획이 있다면? 

 

 누구든지 희망을 가지고 농촌에서 생활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 농민도 웃으며 살 수 있고, 청년들도 농촌에서 재미나게 살 수 있는. 이 두 질문에서 내 역할을 찾고 싶다.

 

 마지막 질문이다. 농사하고 싶은데 망설이는 청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뭐라고 해야 될까…. 문을 두드렸으면 좋겠다. 물론 현실은 어렵지만, 본인이 농촌에서 살고 싶고 농사를 짓고 싶다면 관련 단체나 기관에 찾아가 도움을 구할 수도 있고 농촌에 사는 청년들을 만나 봤으면 한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

 

 질문은 다 했지만,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젊은 사람들이 농촌으로 오면 좋겠다. 물론 쉽지 않은 결정일 것이다. 주변 친구들을 보면 자신의 인생과 돈을 교환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는데 안타깝다.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행복을 찾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좋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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