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권 청년의 일과 삶 인터뷰 시리즈
남원 구도심에 자리한 책방 '알아가는 책가게'의 매니저 조아라가 지리산을 둘러싼 구례군, 남원시, 산청군, 하동군, 함양군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20-30대 청년 16인을 만났다. 청년들은 지역에 뿌리박고 자라난 토박이기도 하고, 도시에서 귀촌을 하여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도중이기도 하다. 게스트하우스를 꾸리며 예술을 하는 청년도 있는가 하면, 부모님과 함께 거주하며 특산물 농사를 짓는 청년도 있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지역에서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청년들과 나눈 일터와 일상, 고민과 기쁨의 이야기를 이곳에 풀어놓는다. |
지리산권 청년의 일과 삶 인터뷰 시리즈 #06
서진희 [30대 전라북도 남원 *N잡러(여러 일을 하는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
어디에 살든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 이다.
하고 싶은 걸 찾기 위한 경험을 쌓는데 필요한 ‘이것’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이것’
무언가하고 싶게 하는 힘, 아무튼 ‘체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리산권 청년의 일과 삶 인터뷰 여섯 번째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손수 지은 집에 사는 기초체력 좋은 사람을 만났다.
조아라(이하 : 조) 자기소개 부탁한다.
서진희(이하 : 서) 남원에 서른두 살 때 와서 지금 서른여덟 살이 된 81년생 서진희라고 한다.
조 다양한 지역에서 살았나?
서 아버지가 군인이셔서 초등학교만 다섯 군데를 다녔다. 도 단위로 보면 제주도 빼고 다 살아본 것 같다. (웃음) 중고등학교는 목포에서 다녔고 대학교 때부터 서울에서 10년 정도, 제일 오래 산 곳이다.
조 서울 생활을 접고 싶었던 이유는?
서 서울 생활을 접고 싶다기보다는 직장생활이 힘들었던 것 같다. 규모가 있는 어떤 직장에서는 부속품 같은 느낌이 들어 그만뒀고, 또 작은 직장에서는 리더에게 엄청 실망해서 그만뒀다. 정말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되더라.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거라는 말마따나 나는 그런 조직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신랑은 매일 지옥철 타는 서울 생활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시골에서 살고 싶어 했다.
조 그러고 보니 결혼을 일찍 했다.
서 그렇다. 일터에서 만나 스물일곱 살 때 서울에서 결혼했다.
조 남원에는 어떻게 오게 됐나?
서 남원에 오기까지 과정이 길다. 신랑과 내가 서울살이를 힘들어할 때 어떤 공동체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이거다 싶었다. 그 후에 흙 건축아카데미 수업을 듣다가 건축 공방 무(이하 :무)라는 곳을 알게 됐다. 무는 건축 공동체를 지향하는 곳이었다. 먼저 목수가 되고 싶은 신랑이 시공팀에 들어갔고, 1년 후 나도 설계팀으로 들어가면서 같이 일하게 되었다. 주로 무에서 집을 짓는 지역이 시내권이 아닌 곳이 많기도 했고, 한번 공사가 들어가면 거의 1년 정도 걸려서 여기저기 시골 동네에 방을 얻어 지내면서 집을 지었다. 그렇게 시공팀, 설계팀이 함께 현장에서 일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커플인 우리 외에 동료들은 오랫동안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되니까 가족들과 같이 살 수 있는 터를 찾아보자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사람이 많으니 폐교 같은 곳을 알아보다가 함양에 가는 거로 정해졌다. 하지만 나는 시댁이 있는 경상도는 가고 싶지 않아서(웃음) 근처인 남원으로 왔다. 그렇게 남원 아영면에 집을 알아보러 온 첫날, 딱 맞는 집을 구했다.
조 신기하다.
서 나와 신랑은 기대하지 않았고 시골집이니 발품 팔고 고생해야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을에서 만난 친절하신 분 덕에 집을 바로 구했고, 일하느라 머물렀던 완주에서 이사를 왔다. 첫 아이가 돌 때였다. 그 후 함양으로 출퇴근했는데 공동체 일은 흐지부지되었다. 그래도 동료 가족 중 세 가구가 아영과 운봉으로 이사 왔고, 운봉읍에 정착한 동료가 땅을 알아봐 준 덕에 우리도 운봉에 땅도 사고 집을 짓게 되었다.
조 건축가는 언제부터 되고 싶었나?
서 내가 딸 셋 중에 첫째라 그런가, 아버지는 내심 나를 아들처럼 키우고 싶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같이 산도 타면서 기초체력을 키웠다. (웃음) 그리고 아버지는 내가 군인이 되길 바랐고, 나도 공군사관학교를 가고 싶었다. 근데 고등학교 때 반 친구가 쉬는 시간에 집을 그리고 있어서 뭐하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나중에 살 집을 그린다고, 내 집은 내가 지을 거라고 하더라. 그게 되게 멋있고 부러웠다. 하지만 그 친구는 간호학과에 갔다. (웃음)
아무튼 나도 건축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고3 때 사관학교 시험을 준비하다 최종에서 떨어졌고 다음 진로로 건축과를 썼다. 집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고 싶어 서울로 갔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못 해 본 거 하면서 신나게 놀았다. (웃음)

직접 설계하고 시공한 서진희 님(왼쪽)의 집
조 건축을 전공하고, 설계 일하며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집을 짓다가 드디어 자기 집까지 지었다. 많은 귀농귀촌인의 꿈일 텐데, 내 집을 지어서 사는 기분이 어떤가?
서 내 집 지으려고 건축과에 들어간 것이었으니 내 꿈을 이뤄서 좋고, 정착했다는 안정감이 정말 큰 것 같다. 그리고 이 집이 마을에서 떨어져 있어서 서로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어서도 좋고. 시내권에서 집을 지었으면 못 느꼈을 것 같기도 하다.
조 집 짓는 데 얼마나 걸렸나? 집 짓는 과정에서 힘든 점이 있었다면?
서 2017년 5월부터 지어서 12월 크리스마스 때 들어왔다. 직접 지은 것 치고 짧게 걸린 편이다. 함께 지을 마음 맞고, 손 맞는 사람 찾는 게 제일 힘들었다. 처음에 하기로 한 사람들이 엉망으로 해놔서 다시 하는 바람에 신랑이 많이 고생했다.
조 집 짓는 비용은 어떻게 구했나?
서 돈이 있는 상황에서 내려온 것도 아니었고 번 돈도 생활비로 써서 귀농귀촌인 지원사업으로 거의 다 빌렸다.
조 여기에 정착할 건가?
서 정착하려고 땅을 사고 집을 지었다. (웃음) 아무튼 서울은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남원에 오게 됐는데, 좋더라.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다.
조 건축설계도 하고, 본인 집도 짓고 육아 등 개인 일정으로 바쁜 와중에도 남원 구도심 아카이브 일도 하고, 청년 협동조합까지 만들면서 여러 가지 일을 벌였다. (웃음)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
서 그게 내 팔자인가보다. (웃음) 건축공방 무가 2014년에 없어지면서 공동체의 한계를 알게 되었다. 구심점 없는 공동체는 흩어지지만, 또 너무 구심점에 의지하면 그것 또한 공동체가 아닌 것 같더라. 콩깍지가 벗겨졌다고 해야 할까, 뭔가 내가 생각하는 거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공부를 더 하고 싶어 2014년에 대학원을 갔다. 전공이 도시건축이라 도시를 기반으로 건축 프로젝트를 했는데 1학년 때 서울을 기반으로 하다가 내가 남원에 있는데 서울을 계속 오는 것도 힘들고, 왜 서울만 봐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들어 지역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남원 구도심 조사를 하고 다녔는데 흥미로운 것들이 많았다. ‘여기서 이런 걸 해보면 재밌겠는데’라는 생각들을 혼자 하다가 졸업 후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었다. 혼자 하기엔 한계가 있으니 남원에 활동하는 사람을 소개해달라 수소문을 하면서 영상 감독을 소개받았다. 그분한테 무작정 가서 나는 건축하는 사람인데 ‘구도심을 돌아다녀 보니 남원이 재밌더라’ ‘이런 거 하고 싶다’ ‘같이 해볼 수 있나?’ 하는 얘기를 나눈 며칠 뒤에 연락이 왔다. 자기들도 이런 거 생각하고 있는데 같이 해보자고 했다. 돈이 되는 건 전혀 아니었다. 그냥 각자 시간 될 때 만나 조사를 했다. 2016년에 두 세 곳 정도 조사하고 만들어 보면서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그게 시청 공무원에게 어떻게 연결이 돼서 사업 하나를 또 하게 되고 생협에 계신 분과도 연결돼서 워크숍도 하면서 일이 많아졌다. 2016년에 돈은 안 됐던 일들이 2017년에 돈이 되는 일로 연결되더라. (웃음) 그게 너무 신기했다.
조 불과 작년이다.
서 그렇다. 내가 2012년에 오긴 했지만 남원에서 활동한 지는 얼마 안 된다.
조 본인이 속한 공동체가 없어진 경험이 있었는데 청년 협동조합을 만들기가 부담스럽지 않았나?
서 남원 시내를 다니면서 느꼈던 게 청년이 잘 안 보이더라. 여긴 청년들이 없는 건가 궁금했는데 청년모임을 하자고 하더라. 청년 모임을 2016년 5월에 처음 열었는데 은근히 모였다. 한달에 한번씩 모이니 알음알음 데리고 오기도 하면서 모임을 이어가다가 그해 12월에 크리스마스 겸해서 혼술파티를 열었다. SNS로만 홍보했는데 많은 사람이 왔다 간 걸 보고 남원에도 이런 걸 원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걸 느꼈다.
그리고 청년 모임에 모이는 사람 중 절반은 남원 사람들이고 절반은 남원이 아닌 타지에서 온 사람들인데 남원 사람들은 아는 시선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이야기, 연고 없이 온 사람들은 남원에 적응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주로 나눴던 것 같다.
놀 거리도 만들고, 일거리도 만들어 함께 해보면서 모임 자체가 조직화할 필요는 없지만 이런 모임이 많아질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어줄 만한 조직이 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지역 금융기업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곳에서 가진 건물 2, 3층이 비어있는데 공유 오피스로 만들고 싶다고 나에게 사업계획을 제안해보면 어떻겠냐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메이커스페이스와 카페가 함께 있는 청년 공유공간으로 제안했는데 좋다며 운영도 해보지 않겠냐고 해서 그 계기로 조합을 만들어 공간을 리모델링하고 운영을 하게 됐다. 청년 모임에서 만난 다섯 명이 조합을 만든 거라 모임과 연결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조 판을 크게 벌린 것 같은데 (웃음)
서 청년 모임은 모임대로 꾸준히 가는 거라 조합을 만들었다고 해서 다 가입하라고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청년 입장에서 조합에 가입하는 걸 원하지 않을 수 있고 유연한 게 좋은 것 같다. 청년이 즐길 문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조합이 되고 싶다.
조 청년 정책 이야기를 해보자. 최소 2인 이상 가족이 내려오면 받는 주거, 행정적 지원은 다소 있는 데 반해 청년이 혼자 내려와 받을 수 있는 지원은 딱히 없어 보인다. 농사일을 한다면 월급형태의 지원은 있더라. 지원의 방향이 다양하지 않다.
서 그런 것 같다. 그냥 청년이 혼자 귀농귀촌을 하고 싶다고 해도, 주거 부분이 너무 열악하다. 그리고 생활문화인프라 등 너무 많은 것들이 부족하다. 주거만 있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일자리만 있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청년의 입장에서는 옛날 방식만 있으니까 답답하고, 반대로 새로운 방식을 소비할 사람이 없으니까 딱히 바꾸지 않을 테고. 이러니 인터넷으로 사고, 전주나 서울로 가서 사게 되는 것들이 있다. 정말 복합적으로 생활문화인프라가 필요한 것 같다.
조 행정에서 할 거라 기대하는 것은 아마도…
서 몇 번 어필해보긴 했지만 뭐랄까… 그냥 그 부족함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해보자 싶어 조합을 만든 것도 있다. (웃음)
조 청년이 시골이나 작은 도시에 가고 싶어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서 워라밸인 것 같다. 나는 서울이 싫어서 떠난 게 아니었다. 도시도 잘 맞는 스타일이다. 누릴 수 있는 문화 인프라도 많고 재밌는 전시도 많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하느라 치이는 부분이 많다. 시간도 모자라고. 그래서 워라밸을 위해 지역살이를 권하고 싶다. 나는 청년이 지역에 와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지역 일을 하고 있으면 지원해 주는 정도만 하고 싶은데 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내가 하게 된 케이스다.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청년이 별로 없기 때문에 여러 일이 자꾸 나한테 들어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 본업인 설계 사무실도 마찬가지다. 사무실 대부분이 서울에 있기 때문에 건축가가 문턱을 낮추려면 지역으로 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조 그러나 정작 요즘 본인은 너무 바쁘다.
서 (웃음) 모순이 자꾸 생긴다. 워라밸을 위해 내려오긴 했는데 할 일이 너무 많다. 그래도 마음의 여유는 있는 것 같다.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면 시골길을 많이 걷고 싶다.
조 정착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귀농으로 먼저 내려온 사람들이나, 원주민들이 귀농귀촌한 청년에게 거는 기대가 있는 것 같다. 청년이 터를 잘 만들어 정착하길 바라는 기대 같은 거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기대가 조금 부담스럽게 다가오더라. 내려오고 싶어서 내려왔지만 정착하고 싶다는 의미는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 나는 청년들이기 때문에 소속감보다는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 이런 상황이 생긴다. 정착을 위해 지원을 했는데 청년이 그 지원을 받고 떠나면 ‘지원해줄 필요 없네’ 하는 소리가 나오더라. 물론 세금이 걸린 문제고, 지원금만 받으려 하는 사람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복잡해지더라.
서 청년의 특징을 파악하지 않은 정책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청년은 어디에 묶여 있을 수 있는 세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살아보고 제주도도 가보고 해외도 살아보다가 그래도 내 고향이 나랑 맞구나 하면 고향에 와서 사는 거고, 서울 사람도 여기저기 다녀봤는데 제주도가 좋구나 하면 제주도에 사는 거 아닐까. 우리 조합이 정착하기 위해 지원을 한다고 했지만 한달살기 같은 프로그램으로 살고 싶은 지역을 겪을 수 있는 지원을 하고 싶다. 여기 살아야 해 하는 것보다 지역의 매력을 계속 쌓아가는 게 필요한 것 같다. 흠…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웃음)
조 들고 날고가 편하면 좋겠는데 시골에 가면 보는 눈이 많은 것 같다.
서 그렇다. 청년이니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청년들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지원을 하면 그 가운데 계속 사는 청년도 생길 텐데. 모 팟캐스트에서 '정착 시대에 맞는 복지에서 유목 시대에 맞는 복지로 바꿔야 한다'라는 말을 들었다. 어디서든 살 수 있는 공공 주거와 어디서나 받을 수 있는 복지가 이뤄져야 한다는 이야기였는데 그 말이 맞는 거 같다. 정착의 의미를 과거처럼 붙박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보다 유목의 시대에 맞춘 개념으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청년이 꼭 한번 유목 생활을 하고 싶은 남원 같은 슬로건이 갑자기 떠오른다. (웃음)

조 육아, 결혼생활, 청년 협동조합 활동, 건축 설계 등 하는 일이 많다. 에너지를 어떻게 분배하나?
서 (웃음) 잘 못 한다. 뭔가 펑크내는 곳이 있다. 남편의 도움이 크다.
조 에너지를 퍼센트로 나눌 순 없지만 가장 우선순위에 둔 일이 있는가?
서 제일 즐거워하고 제일 돈벌이가 되는 일 그게 1순위이고, 두 번째부터는 순위가 비등비등해지고 있다. 건축 설계 일이 50% 조합 일은 30% 나머지 20%는 가정과 개인적인 일을 하길 원하는데 나머지 20%가 다른 일로 가버릴 때가 많다. (웃음)
조 에너지가 어마어마하다.
서 또 말하지만 내가 기초체력이 좋다. 그런데 대학원 다닐 때 첫 아이를 데리고 다녔었는데 체력이 뚝뚝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공강 시간에 운동하면서 버텼다. 요즘도 다시 체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 운동을 시작했다. 열심히 하려면 정말 체력이 중요한 것 같다.
조 정착한다고 했지만, 혹시 살아보고 싶은 다른 지역이 있다면?
서 해외. 우리나라의 웬만한 곳은 다 살아본 것 같다. 사실 어딜 가나 생활은 비슷하다는 걸 안다. 대학교 때 선교하러 해외에 가면 한 달 가까이 살았었는데 일주일 지나면서부터 다 똑같은 것 같다. 자기의 삶터로 살아가는 거니까 다를 게 없더라. 하지만 다른 시스템 안에서 살기를 해보려면 다른 나라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내가 이걸 실현할 것 같지 않아서 큰딸을 꼬시고 있다. ‘너는 해외에서 살아봐’라고 하면서. (웃음)
조 여기서 향후 계획이나 꿈이 있다면?
서 사전에 이 질문을 받고 한참 생각했다. 건축사 자격증도 따야 하고, 집 주변에 땅이 넓어 숲 놀이터도 만들고 싶고,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곳으로 어떻게 만들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꼰대가 되지 않고 잘 늙었으면 좋겠다. 이게 꿈이다. (웃음)
조 멋있다. 조합 대표가 되면서 자기 안의 꼰대 주의보가 울린 건가? (웃음)
서 잘 늙어가는 게 꿈이다. 정착하고 싶은 청년들, 지역에서 뭔가 하고 싶은 사람들과 느슨한 연대를 만들어서 재밌게 살 수 있게 매개체 역할을 하고 싶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끝)
지리산권 청년의 일과 삶 인터뷰 시리즈
남원 구도심에 자리한 책방 '알아가는 책가게'의 매니저 조아라가 지리산을 둘러싼 구례군, 남원시, 산청군, 하동군, 함양군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20-30대 청년 16인을 만났다.
청년들은 지역에 뿌리박고 자라난 토박이기도 하고, 도시에서 귀촌을 하여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도중이기도 하다. 게스트하우스를 꾸리며 예술을 하는 청년도 있는가 하면, 부모님과 함께 거주하며 특산물 농사를 짓는 청년도 있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지역에서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청년들과 나눈 일터와 일상, 고민과 기쁨의 이야기를 이곳에 풀어놓는다.
지리산권 청년의 일과 삶 인터뷰 시리즈 #06
서진희 [30대 전라북도 남원 *N잡러(여러 일을 하는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
어디에 살든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 이다.
하고 싶은 걸 찾기 위한 경험을 쌓는데 필요한 ‘이것’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이것’
무언가하고 싶게 하는 힘, 아무튼 ‘체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리산권 청년의 일과 삶 인터뷰 여섯 번째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손수 지은 집에 사는 기초체력 좋은 사람을 만났다.
조아라(이하 : 조) 자기소개 부탁한다.
서진희(이하 : 서) 남원에 서른두 살 때 와서 지금 서른여덟 살이 된 81년생 서진희라고 한다.
조 다양한 지역에서 살았나?
서 아버지가 군인이셔서 초등학교만 다섯 군데를 다녔다. 도 단위로 보면 제주도 빼고 다 살아본 것 같다. (웃음) 중고등학교는 목포에서 다녔고 대학교 때부터 서울에서 10년 정도, 제일 오래 산 곳이다.
조 서울 생활을 접고 싶었던 이유는?
서 서울 생활을 접고 싶다기보다는 직장생활이 힘들었던 것 같다. 규모가 있는 어떤 직장에서는 부속품 같은 느낌이 들어 그만뒀고, 또 작은 직장에서는 리더에게 엄청 실망해서 그만뒀다. 정말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되더라.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거라는 말마따나 나는 그런 조직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신랑은 매일 지옥철 타는 서울 생활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시골에서 살고 싶어 했다.
조 그러고 보니 결혼을 일찍 했다.
서 그렇다. 일터에서 만나 스물일곱 살 때 서울에서 결혼했다.
조 남원에는 어떻게 오게 됐나?
서 남원에 오기까지 과정이 길다. 신랑과 내가 서울살이를 힘들어할 때 어떤 공동체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이거다 싶었다. 그 후에 흙 건축아카데미 수업을 듣다가 건축 공방 무(이하 :무)라는 곳을 알게 됐다. 무는 건축 공동체를 지향하는 곳이었다. 먼저 목수가 되고 싶은 신랑이 시공팀에 들어갔고, 1년 후 나도 설계팀으로 들어가면서 같이 일하게 되었다. 주로 무에서 집을 짓는 지역이 시내권이 아닌 곳이 많기도 했고, 한번 공사가 들어가면 거의 1년 정도 걸려서 여기저기 시골 동네에 방을 얻어 지내면서 집을 지었다. 그렇게 시공팀, 설계팀이 함께 현장에서 일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커플인 우리 외에 동료들은 오랫동안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되니까 가족들과 같이 살 수 있는 터를 찾아보자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사람이 많으니 폐교 같은 곳을 알아보다가 함양에 가는 거로 정해졌다. 하지만 나는 시댁이 있는 경상도는 가고 싶지 않아서(웃음) 근처인 남원으로 왔다. 그렇게 남원 아영면에 집을 알아보러 온 첫날, 딱 맞는 집을 구했다.
조 신기하다.
서 나와 신랑은 기대하지 않았고 시골집이니 발품 팔고 고생해야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을에서 만난 친절하신 분 덕에 집을 바로 구했고, 일하느라 머물렀던 완주에서 이사를 왔다. 첫 아이가 돌 때였다. 그 후 함양으로 출퇴근했는데 공동체 일은 흐지부지되었다. 그래도 동료 가족 중 세 가구가 아영과 운봉으로 이사 왔고, 운봉읍에 정착한 동료가 땅을 알아봐 준 덕에 우리도 운봉에 땅도 사고 집을 짓게 되었다.
조 건축가는 언제부터 되고 싶었나?
서 내가 딸 셋 중에 첫째라 그런가, 아버지는 내심 나를 아들처럼 키우고 싶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같이 산도 타면서 기초체력을 키웠다. (웃음) 그리고 아버지는 내가 군인이 되길 바랐고, 나도 공군사관학교를 가고 싶었다. 근데 고등학교 때 반 친구가 쉬는 시간에 집을 그리고 있어서 뭐하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나중에 살 집을 그린다고, 내 집은 내가 지을 거라고 하더라. 그게 되게 멋있고 부러웠다. 하지만 그 친구는 간호학과에 갔다. (웃음)
아무튼 나도 건축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고3 때 사관학교 시험을 준비하다 최종에서 떨어졌고 다음 진로로 건축과를 썼다. 집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고 싶어 서울로 갔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못 해 본 거 하면서 신나게 놀았다. (웃음)
직접 설계하고 시공한 서진희 님(왼쪽)의 집
조 건축을 전공하고, 설계 일하며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집을 짓다가 드디어 자기 집까지 지었다. 많은 귀농귀촌인의 꿈일 텐데, 내 집을 지어서 사는 기분이 어떤가?
서 내 집 지으려고 건축과에 들어간 것이었으니 내 꿈을 이뤄서 좋고, 정착했다는 안정감이 정말 큰 것 같다. 그리고 이 집이 마을에서 떨어져 있어서 서로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어서도 좋고. 시내권에서 집을 지었으면 못 느꼈을 것 같기도 하다.
조 집 짓는 데 얼마나 걸렸나? 집 짓는 과정에서 힘든 점이 있었다면?
서 2017년 5월부터 지어서 12월 크리스마스 때 들어왔다. 직접 지은 것 치고 짧게 걸린 편이다. 함께 지을 마음 맞고, 손 맞는 사람 찾는 게 제일 힘들었다. 처음에 하기로 한 사람들이 엉망으로 해놔서 다시 하는 바람에 신랑이 많이 고생했다.
조 집 짓는 비용은 어떻게 구했나?
서 돈이 있는 상황에서 내려온 것도 아니었고 번 돈도 생활비로 써서 귀농귀촌인 지원사업으로 거의 다 빌렸다.
조 여기에 정착할 건가?
서 정착하려고 땅을 사고 집을 지었다. (웃음) 아무튼 서울은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남원에 오게 됐는데, 좋더라.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다.
조 건축설계도 하고, 본인 집도 짓고 육아 등 개인 일정으로 바쁜 와중에도 남원 구도심 아카이브 일도 하고, 청년 협동조합까지 만들면서 여러 가지 일을 벌였다. (웃음)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
서 그게 내 팔자인가보다. (웃음) 건축공방 무가 2014년에 없어지면서 공동체의 한계를 알게 되었다. 구심점 없는 공동체는 흩어지지만, 또 너무 구심점에 의지하면 그것 또한 공동체가 아닌 것 같더라. 콩깍지가 벗겨졌다고 해야 할까, 뭔가 내가 생각하는 거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공부를 더 하고 싶어 2014년에 대학원을 갔다. 전공이 도시건축이라 도시를 기반으로 건축 프로젝트를 했는데 1학년 때 서울을 기반으로 하다가 내가 남원에 있는데 서울을 계속 오는 것도 힘들고, 왜 서울만 봐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들어 지역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남원 구도심 조사를 하고 다녔는데 흥미로운 것들이 많았다. ‘여기서 이런 걸 해보면 재밌겠는데’라는 생각들을 혼자 하다가 졸업 후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었다. 혼자 하기엔 한계가 있으니 남원에 활동하는 사람을 소개해달라 수소문을 하면서 영상 감독을 소개받았다. 그분한테 무작정 가서 나는 건축하는 사람인데 ‘구도심을 돌아다녀 보니 남원이 재밌더라’ ‘이런 거 하고 싶다’ ‘같이 해볼 수 있나?’ 하는 얘기를 나눈 며칠 뒤에 연락이 왔다. 자기들도 이런 거 생각하고 있는데 같이 해보자고 했다. 돈이 되는 건 전혀 아니었다. 그냥 각자 시간 될 때 만나 조사를 했다. 2016년에 두 세 곳 정도 조사하고 만들어 보면서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그게 시청 공무원에게 어떻게 연결이 돼서 사업 하나를 또 하게 되고 생협에 계신 분과도 연결돼서 워크숍도 하면서 일이 많아졌다. 2016년에 돈은 안 됐던 일들이 2017년에 돈이 되는 일로 연결되더라. (웃음) 그게 너무 신기했다.
조 불과 작년이다.
서 그렇다. 내가 2012년에 오긴 했지만 남원에서 활동한 지는 얼마 안 된다.
조 본인이 속한 공동체가 없어진 경험이 있었는데 청년 협동조합을 만들기가 부담스럽지 않았나?
서 남원 시내를 다니면서 느꼈던 게 청년이 잘 안 보이더라. 여긴 청년들이 없는 건가 궁금했는데 청년모임을 하자고 하더라. 청년 모임을 2016년 5월에 처음 열었는데 은근히 모였다. 한달에 한번씩 모이니 알음알음 데리고 오기도 하면서 모임을 이어가다가 그해 12월에 크리스마스 겸해서 혼술파티를 열었다. SNS로만 홍보했는데 많은 사람이 왔다 간 걸 보고 남원에도 이런 걸 원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걸 느꼈다.
그리고 청년 모임에 모이는 사람 중 절반은 남원 사람들이고 절반은 남원이 아닌 타지에서 온 사람들인데 남원 사람들은 아는 시선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이야기, 연고 없이 온 사람들은 남원에 적응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주로 나눴던 것 같다.
놀 거리도 만들고, 일거리도 만들어 함께 해보면서 모임 자체가 조직화할 필요는 없지만 이런 모임이 많아질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어줄 만한 조직이 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지역 금융기업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곳에서 가진 건물 2, 3층이 비어있는데 공유 오피스로 만들고 싶다고 나에게 사업계획을 제안해보면 어떻겠냐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메이커스페이스와 카페가 함께 있는 청년 공유공간으로 제안했는데 좋다며 운영도 해보지 않겠냐고 해서 그 계기로 조합을 만들어 공간을 리모델링하고 운영을 하게 됐다. 청년 모임에서 만난 다섯 명이 조합을 만든 거라 모임과 연결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조 판을 크게 벌린 것 같은데 (웃음)
서 청년 모임은 모임대로 꾸준히 가는 거라 조합을 만들었다고 해서 다 가입하라고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청년 입장에서 조합에 가입하는 걸 원하지 않을 수 있고 유연한 게 좋은 것 같다. 청년이 즐길 문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조합이 되고 싶다.
조 청년 정책 이야기를 해보자. 최소 2인 이상 가족이 내려오면 받는 주거, 행정적 지원은 다소 있는 데 반해 청년이 혼자 내려와 받을 수 있는 지원은 딱히 없어 보인다. 농사일을 한다면 월급형태의 지원은 있더라. 지원의 방향이 다양하지 않다.
서 그런 것 같다. 그냥 청년이 혼자 귀농귀촌을 하고 싶다고 해도, 주거 부분이 너무 열악하다. 그리고 생활문화인프라 등 너무 많은 것들이 부족하다. 주거만 있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일자리만 있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청년의 입장에서는 옛날 방식만 있으니까 답답하고, 반대로 새로운 방식을 소비할 사람이 없으니까 딱히 바꾸지 않을 테고. 이러니 인터넷으로 사고, 전주나 서울로 가서 사게 되는 것들이 있다. 정말 복합적으로 생활문화인프라가 필요한 것 같다.
조 행정에서 할 거라 기대하는 것은 아마도…
서 몇 번 어필해보긴 했지만 뭐랄까… 그냥 그 부족함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해보자 싶어 조합을 만든 것도 있다. (웃음)
조 청년이 시골이나 작은 도시에 가고 싶어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서 워라밸인 것 같다. 나는 서울이 싫어서 떠난 게 아니었다. 도시도 잘 맞는 스타일이다. 누릴 수 있는 문화 인프라도 많고 재밌는 전시도 많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하느라 치이는 부분이 많다. 시간도 모자라고. 그래서 워라밸을 위해 지역살이를 권하고 싶다. 나는 청년이 지역에 와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지역 일을 하고 있으면 지원해 주는 정도만 하고 싶은데 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내가 하게 된 케이스다.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청년이 별로 없기 때문에 여러 일이 자꾸 나한테 들어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 본업인 설계 사무실도 마찬가지다. 사무실 대부분이 서울에 있기 때문에 건축가가 문턱을 낮추려면 지역으로 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조 그러나 정작 요즘 본인은 너무 바쁘다.
서 (웃음) 모순이 자꾸 생긴다. 워라밸을 위해 내려오긴 했는데 할 일이 너무 많다. 그래도 마음의 여유는 있는 것 같다.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면 시골길을 많이 걷고 싶다.
조 정착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귀농으로 먼저 내려온 사람들이나, 원주민들이 귀농귀촌한 청년에게 거는 기대가 있는 것 같다. 청년이 터를 잘 만들어 정착하길 바라는 기대 같은 거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기대가 조금 부담스럽게 다가오더라. 내려오고 싶어서 내려왔지만 정착하고 싶다는 의미는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 나는 청년들이기 때문에 소속감보다는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 이런 상황이 생긴다. 정착을 위해 지원을 했는데 청년이 그 지원을 받고 떠나면 ‘지원해줄 필요 없네’ 하는 소리가 나오더라. 물론 세금이 걸린 문제고, 지원금만 받으려 하는 사람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복잡해지더라.
서 청년의 특징을 파악하지 않은 정책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청년은 어디에 묶여 있을 수 있는 세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살아보고 제주도도 가보고 해외도 살아보다가 그래도 내 고향이 나랑 맞구나 하면 고향에 와서 사는 거고, 서울 사람도 여기저기 다녀봤는데 제주도가 좋구나 하면 제주도에 사는 거 아닐까. 우리 조합이 정착하기 위해 지원을 한다고 했지만 한달살기 같은 프로그램으로 살고 싶은 지역을 겪을 수 있는 지원을 하고 싶다. 여기 살아야 해 하는 것보다 지역의 매력을 계속 쌓아가는 게 필요한 것 같다. 흠…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웃음)
조 들고 날고가 편하면 좋겠는데 시골에 가면 보는 눈이 많은 것 같다.
서 그렇다. 청년이니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청년들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지원을 하면 그 가운데 계속 사는 청년도 생길 텐데. 모 팟캐스트에서 '정착 시대에 맞는 복지에서 유목 시대에 맞는 복지로 바꿔야 한다'라는 말을 들었다. 어디서든 살 수 있는 공공 주거와 어디서나 받을 수 있는 복지가 이뤄져야 한다는 이야기였는데 그 말이 맞는 거 같다. 정착의 의미를 과거처럼 붙박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보다 유목의 시대에 맞춘 개념으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청년이 꼭 한번 유목 생활을 하고 싶은 남원 같은 슬로건이 갑자기 떠오른다. (웃음)
조 육아, 결혼생활, 청년 협동조합 활동, 건축 설계 등 하는 일이 많다. 에너지를 어떻게 분배하나?
서 (웃음) 잘 못 한다. 뭔가 펑크내는 곳이 있다. 남편의 도움이 크다.
조 에너지를 퍼센트로 나눌 순 없지만 가장 우선순위에 둔 일이 있는가?
서 제일 즐거워하고 제일 돈벌이가 되는 일 그게 1순위이고, 두 번째부터는 순위가 비등비등해지고 있다. 건축 설계 일이 50% 조합 일은 30% 나머지 20%는 가정과 개인적인 일을 하길 원하는데 나머지 20%가 다른 일로 가버릴 때가 많다. (웃음)
조 에너지가 어마어마하다.
서 또 말하지만 내가 기초체력이 좋다. 그런데 대학원 다닐 때 첫 아이를 데리고 다녔었는데 체력이 뚝뚝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공강 시간에 운동하면서 버텼다. 요즘도 다시 체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 운동을 시작했다. 열심히 하려면 정말 체력이 중요한 것 같다.
조 정착한다고 했지만, 혹시 살아보고 싶은 다른 지역이 있다면?
서 해외. 우리나라의 웬만한 곳은 다 살아본 것 같다. 사실 어딜 가나 생활은 비슷하다는 걸 안다. 대학교 때 선교하러 해외에 가면 한 달 가까이 살았었는데 일주일 지나면서부터 다 똑같은 것 같다. 자기의 삶터로 살아가는 거니까 다를 게 없더라. 하지만 다른 시스템 안에서 살기를 해보려면 다른 나라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내가 이걸 실현할 것 같지 않아서 큰딸을 꼬시고 있다. ‘너는 해외에서 살아봐’라고 하면서. (웃음)
조 여기서 향후 계획이나 꿈이 있다면?
서 사전에 이 질문을 받고 한참 생각했다. 건축사 자격증도 따야 하고, 집 주변에 땅이 넓어 숲 놀이터도 만들고 싶고,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곳으로 어떻게 만들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꼰대가 되지 않고 잘 늙었으면 좋겠다. 이게 꿈이다. (웃음)
조 멋있다. 조합 대표가 되면서 자기 안의 꼰대 주의보가 울린 건가? (웃음)
서 잘 늙어가는 게 꿈이다. 정착하고 싶은 청년들, 지역에서 뭔가 하고 싶은 사람들과 느슨한 연대를 만들어서 재밌게 살 수 있게 매개체 역할을 하고 싶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