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이음 활동 소식

자료지리산권 청년의 일과 삶 인터뷰 시리즈 #12_이초영

2018-09-18

 

지리산권 청년의 일과 삶 인터뷰 시리즈


남원 구도심에 자리한 책방 '알아가는 책가게'의 매니저 조아라가 지리산을 둘러싼 구례군, 남원시, 산청군, 하동군, 함양군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20-30대 청년 16인을 만났다.

 

청년들은 지역에 뿌리박고 자라난 토박이기도 하고, 도시에서 귀촌을 하여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도중이기도 하다. 게스트하우스를 꾸리며 예술을 하는 청년도 있는가 하면, 부모님과 함께 거주하며 특산물 농사를 짓는 청년도 있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지역에서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청년들과 나눈 일터와 일상, 고민과 기쁨의 이야기를 이곳에 풀어놓는다.

 


 

지리산권 청년의 일과 삶 인터뷰 시리즈 #12

 

이초영 [20대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공부 중] 

 

 

 

이번 인터뷰를 진행한 후

 

 

청년 시골살이 영화 ‘리틀 포레스트(일본판)’ 중 한 장면이 떠올랐다. 

 

각각 다른 이유로 시골 고향, 코모리로 돌아온 주인공 이치코와 소꼽친구 유타가 마을 주민 일을 도와주면서 나누는 대화였다.  

 

 

이치고 :   유타 넌 왜 코모리로 돌아왔어? 

 

  여기 탈출하고 싶어서 학교도 열심히 다녔잖아. 

 

유타 :     물론 그럴 생각이었어. 그래서 거기서 취직도 한 거고. 

 

근데 코모리랑 거긴 말 자체가 달라. 사투리 같은 게 아니라…  

 

자신의 몸으로 뭐든 직접 해보고 그 과정에서 느끼고 생각한 것.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그런 거잖아. 나는 자기 말에 책임을 지는 사람을 존경하고     믿어. 

 

거기 사람들은 아무것도 한 게 없으면서 뭐든 아는 체하고 

 

남의 생각을 자기 것인 양 굴면서 잘난 척만 해. 

그런 사람들의 멍청한 말이 질리더라. 

 

난 말이야. 

 

죽겠다고 불평하면서 정작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런 인생을 보내고 싶진 않았어. 

 

 

지리산권 청년의 일과 삶 인터뷰 열두 번째 

 

 

 

경상남도 하동군 아름다운 마을, 화개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 

 

 

조아라(이하:조) 자기소개 부탁한다. 

 

이초영(이하:이) 나는 화개를 사랑해서 화개에 사는 이초영이라고 한다. 나이는 스물일곱이다. 

 준비한 소개말 같다. (웃음) 

 아니다. (웃음) 정말 아름다운 동네라고 생각하고 이 동네를 사랑하기에 살고 있다.

 화개에서 나고 자랐나? 여기로 오게 된 계기는?

 1992년에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생후 5개월에 부모님과 여기로 왔다. 나는 이곳이 고향이라 생각한다. 

 부모님의 연고가 이쪽인가?  

 아니다. 아버지가 차를 만드는 걸 좋아하셔서 내려왔다. 아버지가 나를 낳은 것만 보고 여기 와서 준비하셨다고 하더라. 처음에 내려올 때는 외양간 고쳐서 살았을 정도로 아무것도 없었다. 

 다른 지역에서 산 경험은 있나?  

 수원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대학도 경기도 내에서 다녔다. 

 수원으로 간 이유가 있나? 

 여기서 고등학교를 간다면 하동고등학교 아니면 진주로 가는데 그때 사촌 형이 진주에서 살아도 하숙을 해야 하니 할머니가 계신 수원이 낫지 않겠냐는 말에 속아서 갔다. (웃음) 

 속았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때 보냈던 시간이 내가 이 동네를 사랑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도시가 낯설었다. 사람도 많고, 뭔가 이해관계를 따지면서 사람을 대한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화개 꽃피는 시절 생각도 많이 나면서 ‘아, 내가 이 동네를 사랑하는구나'라는 걸 느꼈다. 내가 사람이 많은 곳을 안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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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의 녹차 농부, 이초영 님)

 

 

 

 다시 화개로 왔을 때는 언제인가? 

 2015년쯤인 것 같다. 경기도에서 살 때도 집이 여기니까 방학 때는 항상 와서 여러 알바도 하면서 지냈다. 

 그 20년 사이에 부모님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셨나? 

 어느 정도는. 아버지가 만든 차로 국제차품평회에서 1등도 하셨다. 하지만 지금은 아버지가 안 계셔서 어머니가 하시는데 발효차는 내가 만든다. 

 차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셨나? 

 언젠가 어머니랑 차를 만들면서 한 얘기가 있는데, 내가 스물일곱 살이지만 차 만든 경력은 17년이 된다는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왜냐하면 내가 차 바구니를 들 수 있을 때부터 부모님 일을 계속 도와 드렸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4월이면 초등학교가 방학이었다. 집마다 차를 만들어야 하니까 일을 도우라는 일종의 효도방학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거로 알고 있다.  

 그런 방학이 있는 줄 몰랐다. 

 그때는 학교에도 차 밭이 있어서 전교생이 아침에 오면 1, 2교시까지 나가서 찻잎을 따고 초코파이를 받았었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부터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빼고 차를 만들었다. 대학도 여기 살고 싶어서 일부러 농수산대를 갔었다.  

 차는 언제 만드나?

 4월 중순에서 6월 초까지. 

 일 년 중에 그때가 제일 바쁘겠다. 

 우리 집 경우는 복합농업을 해서 송이를 채취하는 가을이 되면 다시 바빠진다. 여기 살면 차뿐만 아니라 버섯이나 과실류 재배 등 이것저것 해야 한다. 겨울에는 고로쇠 채취하고. 

 쉬는 날이 많지 않겠다. 

 직장 다니면 출근하듯이 매일 농사짓는 게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 언제든 내가 원할 때 시간을 뺄 수 있는 좋은 점도 있고. 

 시골에 살면 관계망이 좁아서 스트레스받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나는 그 부분에서는 스트레스 안 받는다. 어차피 인간관계가 얽혀있으면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여기 있던 원어민 선생님이 캐나다 시골에서 산 사람인데 그분이 캐나다 시골도 똑같다고 하더라. 

 쉬거나 놀 때는 뭐하나? 

 요새는 낚시하러 다닌다. 다시 책도 읽고 친구들과 게임도 하고 술도 마시고, 열심히 놀고 있다. 한번 화개 나가면 전국일주를 하는 것 같다. 부산, 대구, 강원도, 서울 등을 갔다 온다. 농수산대를 나오니까 웬만한 지역에 친구들이 있다. 학교 다닐 때 한 학년에 300명 정도로 적어서 누가 어디 사는지 다 알았다. 그 지역에 가서 연락해 놀기도 하고.

 몇 달 전에 초영씨를 섭외할 때는 직장을 다니고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라고 들었다.

 그사이에 결심을 한 게 있어서 워킹홀리데이를 나가려고 준비하고 있다. 

 어디로?

 일단 캐나다로 가고 싶다. 섭외 연락이 왔을 때만 해도 동네 근처에 있는 리조트에 다녔었다. 

 얼마나 일했나? 어떻게 일하게 되었나? 

 3년 정도. 졸업 후 리조트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알바를 다녔었다. 그때 팀장님이 같이 일해보자며 계속 권하시길래 3년만 해보겠다 하고 들어갔다가 진짜 3년 일하고 나왔다. 

 어떤 일을 했나? 

 3교대로 시설 관리 일을 했다. 24시간 하고 이틀 쉬는 근무형태였다. 그러다보니까 24시간 꼬박 일하고 나오면 다음날이 사라졌다.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체력도 많이 떨어졌지기도 하고 일하면서 내가 누구 밑에서 일하는 게  안 맞구나 라는 걸 알았다. 

 그 근무형태로 3년을 버티다니 대단하다. 

 처음에 팀장님께 3년은 다니겠다고 한 것도 있었지만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는 생활에 안주한 것 같다. 그러다 올해 5월에 번뜩 이렇게 있다가 월급 안 받고 못 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만두었다. 그리고 친구들과 술 먹다가 가고 싶었던 워킹홀리데이가 생각나서 준비하고 있다. 

 충동적이다. 

 그렇진 않다. 스물한 살 때 외국에 살아보고 싶어서 워킹홀리데이로 캐나다에 몇번 넣어봤는데 떨어졌었다. 그 생각이 한편에 있다 보니 떠오른 것 같다. 

 캐나다는 왜 가고 싶은가?  

 1년에 4천 명밖에 안 뽑는다는 점에 끌렸다. (웃음) 그리고 대학을 편입해서 차문화경영학과 공부도 하고 있다. 또 자격증에 대한 결핍이 있어서 순천에 가서 용접도 배우고, 지금 인터뷰하는 여기 카페 형님한테서 커피도 배우고 있다. 지금은 뭘 해도 재밌고 즐거워서 이것저것 배우고 있다. 

 요즘 일과는 어떻게 되나?

 대학은 방학이라 안 가고 주중에는 용접 배우러 순천에 가고, 주말에는 아는 형님이 일거리 주면 알바 삼아 일하고, 집 보수할 일이 있으면 하면서 지내고 있다. 

 가족과 같이 사나? 

 어머니랑 산다. 여동생이 방학이라 내려 와있다. 

 여동생도 화개를 좋아하나?

 아니다. 여동생도 그렇고 대체로 여기를 나가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다. 

 교류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고등학교 친구가 평생 친구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나는 중학교 친구들과 노는 것 같다. 거의 형제처럼 지내고 있다.  

 친구들은 어떤 일 하나?

 한 명은 나와 같이 농사짓고, 또 하나는 부모님이 운영하는 고깃집에서 일하고, 그냥 직장 다니는 친구 있고….

 하는 일이 다양하다. 

 생각보다 시골에 일이 진짜 많다. 나는 동네를 잘 알고 있다는 이점이 있긴 하지만 최근에 귀촌한 형님을 알고 있는데 그분이 나보다 더 많은 일을 하는 것 같다. 여기 와서 활동을 열심히 하신다. 태어날 때부터 여기 사는 사람도 활동을 안 하면 일이 있는지 모를 수 있다. 할 일을 찾는 건 본인 하기 나름인 것 같다. 

 친구 외에 다른 커뮤니티도 있나? 

 마을에 청년회가 두 종류가 있는데, 동네 청년회가 있고 화개면 단위 청년회가 있다. 나는 화개면 단위 청년회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봄에 벚꽃 축제나 정월대보름 때 달집태우기 등 행사가 있으면 쓰레기 줍거나 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부를 때마다 즐거운 마음으로 나가고 있다. 재밌다. 

 마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렇다. 우리 동네에 해를 끼치는 요소를 발견하면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 속도를 줄이라고 있는 방지턱이 자동차를 망가트릴 정도로 높게 만들거나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말이 있다. 그 마을의 방지턱을 보면 민심을 안다고. (웃음) 아무튼 그런 방지턱을 발견해서 고쳐질 때까지 민원을 넣은 적도 있고 최근에는 버스 배차 시간이 어이없이 겹치는 경우가 있어서 민원을 넣고 있다. 안 그래도 하루에 몇 대 없는데 배차 시간을 합리적으로 수정해줬으면 좋겠다. 

 방지턱에 그런 의미가 있는 줄 몰랐다. (웃음) 동네를 잘 살펴보면서 활동하는 게 많은 것 같다. 해보고 싶은 게 생기면 바로 하는 스타일인가? 

 그렇지 않다. 내가 살면서 고치고 싶은 게 나의 소심함이다. 식당을 가더라도 뭘 더 달라는 말도 잘 못 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이라 항상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다. ‘나는 더 당당해야 해, 더 결단력 있어야 해’ 라는 생각을 한다. 하고 싶은 걸 하려는 과정 안에서 고민을 많이 한다. 민원을 넣고, 일을 그만두고, 하고 싶은 걸 하는 것들이 내가 바뀌고 싶어서 그렇게 하는 것 같다.   

 그런 변화를 본인 스스로 느끼고 있나? 

 그렇다.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변하기 위해서 본인한테 뭐가 필요했던 걸까? 

 음… 나는 계속 반대로 생각했다. 마음속에서 ‘아니야, 하지 마’ 라고 하면 반대로 ‘할 거야’ 하면서 반대로 생각하는 연습을 했다. 그러다 보니까 하게 되고 발전한 것 같다. 예를 들어 청소년이 담배를 피우면 말리는 사람이 있고 안 말리는 사람이 있을 텐데 마음속에서 ‘말리지 마, 맞을지도 몰라’라고 하지만 이미 몸은 가서 얘기를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얼마나 떨릴까. 

 정말 떨린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게 느껴지곤 하지만 나는 이런 그 쿵쾅대는 모습이 싫어, 나는 이렇게 할 거야 하는 마음으로 계속 하는 것 같다. 옛날에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인 것 같았는데 지금은 조금 더 일체 되는 그런 느낌이다. 

  초영 씨가 원하는 자신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계속 긴장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선택이 올 때 나는 어떤 결과가 나오든 절대 후회하지 말자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후회가 왜 안되겠나, 후회하고 있지만 잘한 거야 라는 생각을 계속하는 것 같다. 

 화개에 사는 좋은 점과 단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좋은 점은 일단 아름다운 동네라는 게 제일 좋다. 꽃 필 때, 꽃 떨어질 때, 새잎이 돋을 때, 낙엽이 질 때, 겨울 모든 때가 아름답다. 단점은 그 아름다움 때문에 사람들이 몰리는 게 안 좋은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하동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화개 사람이라고 하는 것 같다. 

 나는 어디 가서 하동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웃음) 화개 사람이라고 한다. 문득 돌아보니 그렇게 말하고 있더라. 이 동네를 사랑해서 그렇게 말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이곳에 귀농귀촌하는 사람이 많겠다. 

 하동이 귀농귀촌의 메카라고 들어본 적이 있다. 이 동네도 귀농은 잘 모르겠지만 귀촌하는 사람이 많다.   

 귀촌한 청년들도 많나? 

 귀촌한 청년은 이 동네가 고향인 경우일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이곳에 청년이 살아가기 위한 지원 제도가 있나? 

 청년 창업농 지원이 있는데 실효성 있는 지원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 돈 주는 지원보다 다른 방법이 필요한 것 같다. 커뮤니티를 지원해주면 좋겠다. 예를 들면 인터넷 낚시 카페에 들어가서 정보를 교환하듯이 스스럼없이 물어보고 답해줄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이 동네에서만 있으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 있는데 그렇게 되지 않게 정보를 공유하고 어울릴 수 있는, 지역마다 같은 농작물을 대량으로 짓지 않게 하거나, 문화나, 놀 거리도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으면 좋겠다. 

 청년이 시골에서 도시로 나가는 건 당연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청년들이 시골에서 도시로 나가고 싶어 하는 이유가 뭘까? 

 젊은 사람이 많은 동네에서 살고 싶어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래서 그 친구는 서울로 갔다. 아마도 도시의 편리함 때문 아닐까? 요즘 드는 생각인데, 예전에는 도시가 재미없는 동네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가끔 서울 가서 역사가 깊은 동네를 보면서 이곳도 재밌는 동네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살고 싶진 않다. 

 그렇다면 청년들이 도시에서 시골로 오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미디어의 영향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 지친 게 아닐까 싶다.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어야 하고, 얽힌 이해관계 속에서 생활하기 힘든 게 아닐까. 물론 여기도 이해관계가 얽혀있지만… 도시를 떠난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어느 책에서 서울을 떠나 살아보니 서울이 제일 좋았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글을 보면서 큰 의미보다는 그냥 딴 곳을 보고 싶은 마음에 시골로 오는 게 아닐까 싶더라.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워킹홀리데이로 해외에 가서 열심히 돈 벌고 세계일주를 해보고 싶다. 그리고 맥락 없긴 하지만 나는 차 만드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웃음) 내가 만든 차로 인정받고 싶다. 나중에 나를 아는 사람들이 이초영하면 멋있는 사람이야 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할지 모르겠지만 항상 열린 결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겠다 보다는 어떤 사람이 되겠다 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롤모델이 있다면? 

 

 롤모델을 생각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만났던 사람들이 말 한 한마디, 한마디가 나한테 담기는 것 같다. 세 명이 길을 가면 그중에 하나는 나의 스승이 될만한 사람이 있다는 ‘삼인행 필유아사’라는 말이 있는데 멋진 사람을 봐도, 못된 사람을 봐도 그 속에서 배우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 관계 맺는 걸 좋아하고 말하는 거 좋아하는 것 같다. (웃음)  

 

 화개에 오고 싶은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여기서 심심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할 일을 찾고 하다 보면 시간이 부족한 느낌이다. 화개는 귀농보다 귀촌을 하는 게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로망을 살짝 버리고 현실 속 관계에 어려워 말고 섞이면 좋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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