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터뷰는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의 작은조사 <지리산청년활력기금의 확장성을 위한 과제 연구>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지리산청년활력기금>은 ‘지리산 자락에 정착해서 살아가고 있는 선배 세대들이 지리산에서 살며 놀며 일하며 자립하고자 하는 청년들에게 최소 1년간 월 50만원의 활동비를 아무런 조건 없이 제공하는 실험적 프로젝트’이며, 현재 네 번째 청년이 기금을 받고 있습니다. 두번째 인터뷰는 지난 5월부터 1년동안 지리산청년활력기금을 받게 된 혜원의 이야기입니다. 인터뷰는 지난 9월 20일에 진행되었습니다.
- 요새 어떻게 지내시나요?
제가 남원장에 다녔거든요. 아는 이모가 진도에 사시는 분이고, 진도의 마을에서 할머니들이 다시마, 홍새우 말린것, 미역같은거 직접 하신거를 여러 장을 돌아다니면서 파시는 장돌뱅이시거든요. 여름까지는 그걸 같이 했었어요. 그 일을 업으로 삼아보려고 배울려고 했는데 그건 어려울것 같고, 이모 옆에서 알바 식으로 하기로 했고 다른 일을 구하기로 했어요. 지금은 실상사 공양간 알바 자리도 넣어보고, 구절초 축제 알바도 넣어보고, 지리산마을교육공동체(이하 ‘지마공’)에서 청년길잡이교사도 모집하길래 그거 하고 있고, 공부 모임을 여러개 하고 있습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면서 일같은 것도 변화하는 시기에요.
- 장돌뱅이 일을 업으로 삼기 어렵다고 생각한 이유는 뭐에요?
업으로 삼으려고 한 이유는, 취직자리를 구해서 상사한테 이상한 일로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되고, 노동자를 착취하는 기업의 물건을 사지 않으려고 하는데, 예를 들어 편의점에 들어가면 그런 물건들을 팔아야 하잖아요. 제가 진실되게 일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있었어요. 장은 일한만큼 받을 수 있고,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니깐 괜찮겠다 싶었는데 장사가 제 성정에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고 있어요.
- 장사가 어떤데요?
힘들어요. ‘난 왜 이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계속 생각하고 있는데요. 재미가 없다는게 가장 큰 이유였어요. 처음에는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했었는데 (접해보지 못했던 거니깐) 점점 루즈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새롭게 해볼까 싶기도 하고. 일이 힘든거는 그럴 수 있고, 힘든일을 마다하고 그러진 않는데, 재미가 없다는게.
- 혜원에게, 일을 할 때 느끼는 재미란?
조금이라도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그런거? (장돌뱅이 일을 할 때) 계속 거기에 끄달리게 되는 거에요. 새로운 걸 시작하려고 하거나 일을 벌이려고 해도.
- 새로운걸 시작하려고 하거나 일을 벌이려고 한 것은 어떤게 있나요?
공부모임을 하나씩 늘려가고 있었어요. 장날 겹치니 무리가 되고, 알바같은걸 해보려고 해도 장이 있으면 어렵고.
- 공부하는거 좋아해요?
공부하려고 산내에 왔었어요. 대학은 가기 싫고, 대학 공부는 하고 싶었어요. 혼자서 대학 밖에서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요. 모든건 다 서울에 있으니깐 서울에도 왔다갔다 해봤었는데 도시는 좀 아니더라고요. 지하철 타면 너무 무기력해지고, 아스팔트 밟는게 너무 싫었어요. 그러던 중에 산내에 놀러왔는데 (작은학교)시은샘이 모든 자원과 재원이 있으니깐 여기로 와봐라 해서 여기 왔었어요.
- 지리산청년활력기금도 시은샘이 소개해준거에요?
네, 한번 넣어봐라 그래서.
- 어떤 경로로 넣게 된거에요?
시은샘이 하무 전화번호를 알려주셔서, 전화를 했고요, 과정이 자세히 생각이 나지는 않아요. 알음알음 알아서, 있는지도 몰랐고, 50만원이라고 들었는데, 저는 처음에 5만원인지 알고 (키우고 있는)고양이를 굶기지 않을 수 있겠구나. 사료값은 마련할 수 있겠구나 싶었죠.
- 청년기금을 받는데도 알바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뭐에요?
기금이 언젠가는 끝나니깐, 자립을 해서 일을 할 수 있는걸 찾다가, 장꾼 이모의 소개를 받고 장 일을 배웠던 거죠. (활력기금과 관련해서는)사업에 대한 안내나 배경에 대해서 안내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산내 어른들이 돈을 모아서 준다’라고. 금액도 명시가 되어 있으면 좋겠고. 저는 어디서 건너 들었거든요.
이거 받으니깐 너무너무 자유로웠어요. 가고 싶은데 다 가고, 공부모임 하면 책 필요하잖아요. 사고싶은 책 살 수 있는게 가장 좋았어요. 저는 그림을 가장 그리고 싶었는데, 종이를 사서 쌓아놨는데 잘 못했어요. 그림이란건 시간이 나면 해야지 하는거라서, 시간이 안 나잖아요. 다른건 모두 시간을 만들어서 하는데.
- 그림을 잘 그린다고 들었던거 같은데
그림 잘 그리고 싶어요. 그림 공부를 더 하고 싶었죠. 그림 그리는 사람들 사이에 ‘6개월동안 하루에 24장 넘게 그리는 걸 하면 장인이 된다’는 말이 있어요. 그러면 한두달만 해볼까 했는데 한두달이 비질 않더라고요. 다른 일과 병행해서 해야 하는데, 그림이라는 것도 노동이잖아요. 그래서 잘 안되더라고요. 언젠가는 먹고 자는 시간 빼고는 그림만 그리고 싶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그림은 언제든 할 수 있어’ 이렇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열일을 제쳐두고 그림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그림이 아닌가, 안 좋아하나, 다른걸 찾아볼까 했는데 결국 그림으로 가기도 하고, 그림이 저를 구원해준 것도 많고. 그냥 속도가 다르다고 생각하려고요. 계속 공부를 하려고 하는 이유는, 살아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거든요. 그럴려면 제 생각이 들어있어야 해서, 생각만들기를 하고 있어요. 잘 그린다는 것이 뭔지 모르겠지만, 손 기술은 하면 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어요.
- 활력기금이 도움이 되요?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되죠. 일단, 생활이 되고요. 조금 일을 하고도, 돈이 있으니깐 일만 하는 삶이 아니라 다른걸 시작할 수 있더라고요. 하고싶은 공부에 집중할 수 있다거나, 사고싶은 책을 마음껏 살 수 있다거나. 그림을 그리는 종이도 살 수 있고, 물감도 살 수 있고. 그리고 저는 평생 돈이 없어와서 누가 놀러오거나 제가 놀러가면 그쪽에서 뭔가를 해주는 편이였어요. 저는 뭔가를 사들고 가는것도 못했거든요. (근데 기금을 받고 나니깐) 산내에 손님이 놀러오면 제가 대접을 할 수가 있더라고요. 병문안 갈 때도 빵을 조금 더 많이 사갈 수 있고.
- 한달에 50만원이라는 금액은 어떤거 같아요?
산내에만 있는다면 생활하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어요. 가끔 함양이나 진주까지 친구 만나러 놀러갔다 올 수 있는 느낌. 서울에 다녀온다면 좀 달라진다고 생각하고. 저는 일단 장에 알바처럼 다니면서 조금의 돈을 받았거든요. 그러니깐 그걸로도 생활이 가능하고, 기금으로 사고싶은걸 살 수 있었어요 (책이나 미술용품) 삶을 영위할 정도의 돈이라면 그거보다 조금 더 낮아도 산내라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일을 아예 안하고 싶으면 아무것도 안 사고 토닥(마을카페)같은데 마음껏 다닐 수 있을 정도의 돈이라 생각해요. 한 70만원 정도로 조금 더 많으면 아예 돈을 안 벌고도 살 수 있을것 같아요. 지금 저는 주거비가 안 들어요. 올해까지는 작은학교 생활관(웃고가)에서 지내고 있고, 기숙사를 관리하는 명목으로 돈을 안내고 있어요. 저는 사실 검소하게 안 사는 편이라서. 있으면 다 써요. 돈이 원래 없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못 먹고 살고 싶지는 않았어요.
- 1년이라는 시간은 어떤 것 같아요?
당연히 공짜로 돈을 받는 입장에서 더 받으면 좋겠죠. 그래도 1년 정도면 굉장히 값진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 같아요. 내년까지 산내에서 지낼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1년동안 이렇게 큰 돈을 받는거는 듣도보도 못한 일이라서. 제약이나 지침이 전혀 없이 청년이라는 이유로 주는게 굉장한 것 같아요.
- 돈을 처음에 받았을 때 느낌은 어땠어요?
그때가 통장에 이리저리 모은 돈 20만원이 있던 때였어요. (기금이 들어와서)갑자기 70만원이 찍혀있는 걸 보고, 삶의 단위가 달라지는 느낌이었어요. 통장 인생에 가장 큰 돈이었거든요. 제일 먼저 종이를 샀죠. 500장을 주문했는데, 올해 이걸 다 그려야지 했는데 아직 100장도 못 그렸어요. 돈이 없어서 하지 못한다는 거는 굉장한 무기력감을 주는데, 종이를 사는 쾌감이 좋았어요.
- 실상사 공양간에 지원한 이유는? 요리 좋아해요?
요리는, 삶에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할 수 있는 일은 무조건 해보고 있거든요. 장도 좋아서 시작한건 아니고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거든요. 남을 착취하지 않고 나도 착취당하지 않는 일은 일단 최대한 경험해보려고 해요.
- 기금 선발과정을 개선한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청년기금 본 거는 밖에서 한생명 사이트 게시판에서 봤어요.거기 말고는 밖에서 접근할 수 있는게 없더라고요. 지금까지 알음알음 하고 이런거는 일부러 그런건가요?
-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들어봤어요? 기금 받기 전에도 알고 있었어요?
제 주위 사람들(학교 사람들, 친구들)이 다 알고 있었어요. 학교에서도 배우거든요. 학교 다닐 때 기본소득에 관한 글을 읽었던게 기억이 나요. 선생님이 프린트로 나눠주셨던것 같기도 하고. 저는 접할 때 거기에 대한 지식도 없고 생각도 없는 상태라서 ‘필요하지’ 그 정도였어요. 근데 상상만 해도 즐겁거든요. 일을 안 할수는 없는데, 사회에서 요구하는 일들이 자신을 소모시켜야 되고 그런게 많아서. 이동권도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생존권도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돈이라는건 지금 사회에서 생존의 문제이니깐. 태국에는 아침 출근 버스가 있는데 오전에 버스는 공짜더라고요. 이동권을 보장해주는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방 살다 보니깐 사회 활동을 하다 보면 돈이 없어서 못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럴 때마다 서러웠거든요. (기금을 받기 전인)4월 전에는 그게 되게 큰 문제였어요.
- 받는 사람이 잘 받을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5만원에서 50만원으로 껑충 뛰니깐, ‘잘 살아야 할텐데’, ‘잘 써야 할텐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남의 노동력으로 생산된 돈일텐데. 그래서 되게 고민이 되었는데. 제가 환원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는, 일단 공부모임을 빠지지 않고 열심히 하는 거였어요. 그리고 지역에서 청년들을 좋아하시더라고요. 청년이 필요한 일은 좀 하려고 노력했던것 같아요 (지리산마을교육공동체에서 청년교사가 필요하다고 하거나) 지역에서 제가 필요한 일이 있으면 하려고 노력했었죠. 실패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전달만 된다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잘 알지는 않기 때문에 저를)믿고 줬다기 보다는,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패를 해도 그만큼 나아갔다고 생각하고. 실패하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이 마을에 있으면서 든든한 뒷배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도 해결해주고 돈도 주고 공부도 시켜주고 선생님도 많고.
- 청년들이 시골 지역에 진입하기 위해서 뭐가 필요할까요?
집을 나오니깐 당장 먼저 문제가 되는게 주거였어요. 나같이 시골에 살고싶은 청년들이 와서 같이 공부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기획서도 쓰고 학교에 내고 그랬는데. 살다 보니깐 안되더라고요. 생활을 하다 보니깐 마음이 잘 안 나고. 인력과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는데 힘이 잘 안나더라고요. 처음부터 의기투합해서 했으면 됐을지도 모르지만, 저 혼자 들어간거잖아요. 내가 살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내 모습을 보고 들어올 수도 있겠다 싶어서 살다보니 지금까지 왔어요. 지금은 작은학교에서 봉사하고 있는 선생님도 계시고, 작은학교 학부모님 중에 산내에 오고 싶어하는 분이 계셔서 웃고가에서 지내다 가실 것 같아요. 청년에 한정되기 보다는 작은학교와 인연되는 분들(학교에 필요한 일들로)이 쓰는 방향으로. 내년엔 작은학교 학생들이 지금보다 많아지면 웃고가까지 내려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 청년활력기금을 제안/출연한 사람들에게 하고싶은 말은?
살려주셔서 감사드리고요. 구명줄이었어요. 덕분에 먹고 살았어요. 돈이라는게, 나를 위해서 쓰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이렇게 남을 위해 내놓는 것이)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살았던 사회는, 대학을 안나오면 국민 취급을 안해주기 때문에 한국에서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받으면서 살려면 대학까지 나와야 하는 거죠. 엄마도 대학을 안 보내려고 작은학교를 보내셨었는데 “너는 여자고, 돈도 없고, 아빠도 없고, 대학까지 안 나오면 어떻게 살거냐”이렇게 얘기하셨어요. 여기 오니깐 공동체의 일원으로 있을 수 있으니깐 그런게 문제가 안 되더라고요. 왜 모든건 서울에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고. 저는 한자나 고고학에 관심이 있었는데 공부를 하고 싶어서 서울에 하루 2-3시간 강의를 들으러 왔다갔다 했었어요. 그런데 좀 이상했어요. 공부모임을 주도하거나 어떤 일을 하려고 하면 대학원 이상의 지식이 있어야 했고. 미술을 한다고 하니깐 서울예대 나온 사람 이야기, 지방예대 나온 사람 이야기, 대학 나온 사람 이야기 밖에 안 하는거에요. 아직 젊으니깐 자기를 쌓아보라면서 하는 예가 다 대학이었어요.
- 다음에 청년활력기금을 받게 되는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
남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말고 하고싶은거 했으면 좋겠고요. (어쨌든 어른들이 좋아서 주는거 같으니깐) 필요한 일을 하는 거니깐 너무 부담가지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 지리산청년활력기금은 ooo이다?
(굉장히 재치가 있어야 될 거 같은데) 생필품이다. 생활에 필수적이었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있어야 한다!
- 혹시 못한 말이 있다면?
아까 장이 왜 재미가 없다고 생각 했는지 질문했잖아요. 사실 겁이 났어요. 알바 형식으로 장 하는 이모가 자리를 펴주면 앉아서 팔고 했었는데. 그걸로 먹고 살 생각을 해보니깐, 자립을 해야 되잖아요. 무서운 거에요. 원가 계산도 해야 하고, 할머니들하고 소통도 해야 하고. 자리 문제도 있어요. 집 앞 담장이라서 그 집 주인하고도 문제가 있고. 여름과 겨울은 장이 안되서 마을회관으로 차를 끌고 가서 물건을 날라서 할머니들한테 팔고. 그런걸 저 혼자서 할 생각을 하니깐 굉장히 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아직은 무리겠다 생각을 했고, 도전을 해보려고 하고 해보고 싶었는데 너무 겁이 났어요. 엄두가 안 났어요. 할 수 있을거라고 마음을 먹었는데 막상 닥치니깐 미루게 되고 그랬어요. (기금 덕분에)새로운 일 해보려고 시도를 해본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혜원이 디자인한 마을 장터 <살래장> 포스터
이 인터뷰는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의 작은조사 <지리산청년활력기금의 확장성을 위한 과제 연구>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지리산청년활력기금>은 ‘지리산 자락에 정착해서 살아가고 있는 선배 세대들이 지리산에서 살며 놀며 일하며 자립하고자 하는 청년들에게 최소 1년간 월 50만원의 활동비를 아무런 조건 없이 제공하는 실험적 프로젝트’이며, 현재 네 번째 청년이 기금을 받고 있습니다. 두번째 인터뷰는 지난 5월부터 1년동안 지리산청년활력기금을 받게 된 혜원의 이야기입니다. 인터뷰는 지난 9월 20일에 진행되었습니다.
- 요새 어떻게 지내시나요?
제가 남원장에 다녔거든요. 아는 이모가 진도에 사시는 분이고, 진도의 마을에서 할머니들이 다시마, 홍새우 말린것, 미역같은거 직접 하신거를 여러 장을 돌아다니면서 파시는 장돌뱅이시거든요. 여름까지는 그걸 같이 했었어요. 그 일을 업으로 삼아보려고 배울려고 했는데 그건 어려울것 같고, 이모 옆에서 알바 식으로 하기로 했고 다른 일을 구하기로 했어요. 지금은 실상사 공양간 알바 자리도 넣어보고, 구절초 축제 알바도 넣어보고, 지리산마을교육공동체(이하 ‘지마공’)에서 청년길잡이교사도 모집하길래 그거 하고 있고, 공부 모임을 여러개 하고 있습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면서 일같은 것도 변화하는 시기에요.
- 장돌뱅이 일을 업으로 삼기 어렵다고 생각한 이유는 뭐에요?
업으로 삼으려고 한 이유는, 취직자리를 구해서 상사한테 이상한 일로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되고, 노동자를 착취하는 기업의 물건을 사지 않으려고 하는데, 예를 들어 편의점에 들어가면 그런 물건들을 팔아야 하잖아요. 제가 진실되게 일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있었어요. 장은 일한만큼 받을 수 있고,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니깐 괜찮겠다 싶었는데 장사가 제 성정에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고 있어요.
- 장사가 어떤데요?
힘들어요. ‘난 왜 이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계속 생각하고 있는데요. 재미가 없다는게 가장 큰 이유였어요. 처음에는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했었는데 (접해보지 못했던 거니깐) 점점 루즈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새롭게 해볼까 싶기도 하고. 일이 힘든거는 그럴 수 있고, 힘든일을 마다하고 그러진 않는데, 재미가 없다는게.
- 혜원에게, 일을 할 때 느끼는 재미란?
조금이라도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그런거? (장돌뱅이 일을 할 때) 계속 거기에 끄달리게 되는 거에요. 새로운 걸 시작하려고 하거나 일을 벌이려고 해도.
- 새로운걸 시작하려고 하거나 일을 벌이려고 한 것은 어떤게 있나요?
공부모임을 하나씩 늘려가고 있었어요. 장날 겹치니 무리가 되고, 알바같은걸 해보려고 해도 장이 있으면 어렵고.
- 공부하는거 좋아해요?
공부하려고 산내에 왔었어요. 대학은 가기 싫고, 대학 공부는 하고 싶었어요. 혼자서 대학 밖에서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요. 모든건 다 서울에 있으니깐 서울에도 왔다갔다 해봤었는데 도시는 좀 아니더라고요. 지하철 타면 너무 무기력해지고, 아스팔트 밟는게 너무 싫었어요. 그러던 중에 산내에 놀러왔는데 (작은학교)시은샘이 모든 자원과 재원이 있으니깐 여기로 와봐라 해서 여기 왔었어요.
- 지리산청년활력기금도 시은샘이 소개해준거에요?
네, 한번 넣어봐라 그래서.
- 어떤 경로로 넣게 된거에요?
시은샘이 하무 전화번호를 알려주셔서, 전화를 했고요, 과정이 자세히 생각이 나지는 않아요. 알음알음 알아서, 있는지도 몰랐고, 50만원이라고 들었는데, 저는 처음에 5만원인지 알고 (키우고 있는)고양이를 굶기지 않을 수 있겠구나. 사료값은 마련할 수 있겠구나 싶었죠.
- 청년기금을 받는데도 알바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뭐에요?
기금이 언젠가는 끝나니깐, 자립을 해서 일을 할 수 있는걸 찾다가, 장꾼 이모의 소개를 받고 장 일을 배웠던 거죠. (활력기금과 관련해서는)사업에 대한 안내나 배경에 대해서 안내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산내 어른들이 돈을 모아서 준다’라고. 금액도 명시가 되어 있으면 좋겠고. 저는 어디서 건너 들었거든요.
이거 받으니깐 너무너무 자유로웠어요. 가고 싶은데 다 가고, 공부모임 하면 책 필요하잖아요. 사고싶은 책 살 수 있는게 가장 좋았어요. 저는 그림을 가장 그리고 싶었는데, 종이를 사서 쌓아놨는데 잘 못했어요. 그림이란건 시간이 나면 해야지 하는거라서, 시간이 안 나잖아요. 다른건 모두 시간을 만들어서 하는데.
- 그림을 잘 그린다고 들었던거 같은데
그림 잘 그리고 싶어요. 그림 공부를 더 하고 싶었죠. 그림 그리는 사람들 사이에 ‘6개월동안 하루에 24장 넘게 그리는 걸 하면 장인이 된다’는 말이 있어요. 그러면 한두달만 해볼까 했는데 한두달이 비질 않더라고요. 다른 일과 병행해서 해야 하는데, 그림이라는 것도 노동이잖아요. 그래서 잘 안되더라고요. 언젠가는 먹고 자는 시간 빼고는 그림만 그리고 싶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그림은 언제든 할 수 있어’ 이렇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열일을 제쳐두고 그림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그림이 아닌가, 안 좋아하나, 다른걸 찾아볼까 했는데 결국 그림으로 가기도 하고, 그림이 저를 구원해준 것도 많고. 그냥 속도가 다르다고 생각하려고요. 계속 공부를 하려고 하는 이유는, 살아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거든요. 그럴려면 제 생각이 들어있어야 해서, 생각만들기를 하고 있어요. 잘 그린다는 것이 뭔지 모르겠지만, 손 기술은 하면 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어요.
- 활력기금이 도움이 되요?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되죠. 일단, 생활이 되고요. 조금 일을 하고도, 돈이 있으니깐 일만 하는 삶이 아니라 다른걸 시작할 수 있더라고요. 하고싶은 공부에 집중할 수 있다거나, 사고싶은 책을 마음껏 살 수 있다거나. 그림을 그리는 종이도 살 수 있고, 물감도 살 수 있고. 그리고 저는 평생 돈이 없어와서 누가 놀러오거나 제가 놀러가면 그쪽에서 뭔가를 해주는 편이였어요. 저는 뭔가를 사들고 가는것도 못했거든요. (근데 기금을 받고 나니깐) 산내에 손님이 놀러오면 제가 대접을 할 수가 있더라고요. 병문안 갈 때도 빵을 조금 더 많이 사갈 수 있고.
- 한달에 50만원이라는 금액은 어떤거 같아요?
산내에만 있는다면 생활하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어요. 가끔 함양이나 진주까지 친구 만나러 놀러갔다 올 수 있는 느낌. 서울에 다녀온다면 좀 달라진다고 생각하고. 저는 일단 장에 알바처럼 다니면서 조금의 돈을 받았거든요. 그러니깐 그걸로도 생활이 가능하고, 기금으로 사고싶은걸 살 수 있었어요 (책이나 미술용품) 삶을 영위할 정도의 돈이라면 그거보다 조금 더 낮아도 산내라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일을 아예 안하고 싶으면 아무것도 안 사고 토닥(마을카페)같은데 마음껏 다닐 수 있을 정도의 돈이라 생각해요. 한 70만원 정도로 조금 더 많으면 아예 돈을 안 벌고도 살 수 있을것 같아요. 지금 저는 주거비가 안 들어요. 올해까지는 작은학교 생활관(웃고가)에서 지내고 있고, 기숙사를 관리하는 명목으로 돈을 안내고 있어요. 저는 사실 검소하게 안 사는 편이라서. 있으면 다 써요. 돈이 원래 없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못 먹고 살고 싶지는 않았어요.
- 1년이라는 시간은 어떤 것 같아요?
당연히 공짜로 돈을 받는 입장에서 더 받으면 좋겠죠. 그래도 1년 정도면 굉장히 값진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 같아요. 내년까지 산내에서 지낼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1년동안 이렇게 큰 돈을 받는거는 듣도보도 못한 일이라서. 제약이나 지침이 전혀 없이 청년이라는 이유로 주는게 굉장한 것 같아요.
- 돈을 처음에 받았을 때 느낌은 어땠어요?
그때가 통장에 이리저리 모은 돈 20만원이 있던 때였어요. (기금이 들어와서)갑자기 70만원이 찍혀있는 걸 보고, 삶의 단위가 달라지는 느낌이었어요. 통장 인생에 가장 큰 돈이었거든요. 제일 먼저 종이를 샀죠. 500장을 주문했는데, 올해 이걸 다 그려야지 했는데 아직 100장도 못 그렸어요. 돈이 없어서 하지 못한다는 거는 굉장한 무기력감을 주는데, 종이를 사는 쾌감이 좋았어요.
- 실상사 공양간에 지원한 이유는? 요리 좋아해요?
요리는, 삶에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할 수 있는 일은 무조건 해보고 있거든요. 장도 좋아서 시작한건 아니고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거든요. 남을 착취하지 않고 나도 착취당하지 않는 일은 일단 최대한 경험해보려고 해요.
- 기금 선발과정을 개선한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청년기금 본 거는 밖에서 한생명 사이트 게시판에서 봤어요.거기 말고는 밖에서 접근할 수 있는게 없더라고요. 지금까지 알음알음 하고 이런거는 일부러 그런건가요?
-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들어봤어요? 기금 받기 전에도 알고 있었어요?
제 주위 사람들(학교 사람들, 친구들)이 다 알고 있었어요. 학교에서도 배우거든요. 학교 다닐 때 기본소득에 관한 글을 읽었던게 기억이 나요. 선생님이 프린트로 나눠주셨던것 같기도 하고. 저는 접할 때 거기에 대한 지식도 없고 생각도 없는 상태라서 ‘필요하지’ 그 정도였어요. 근데 상상만 해도 즐겁거든요. 일을 안 할수는 없는데, 사회에서 요구하는 일들이 자신을 소모시켜야 되고 그런게 많아서. 이동권도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생존권도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돈이라는건 지금 사회에서 생존의 문제이니깐. 태국에는 아침 출근 버스가 있는데 오전에 버스는 공짜더라고요. 이동권을 보장해주는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방 살다 보니깐 사회 활동을 하다 보면 돈이 없어서 못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럴 때마다 서러웠거든요. (기금을 받기 전인)4월 전에는 그게 되게 큰 문제였어요.
- 받는 사람이 잘 받을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5만원에서 50만원으로 껑충 뛰니깐, ‘잘 살아야 할텐데’, ‘잘 써야 할텐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남의 노동력으로 생산된 돈일텐데. 그래서 되게 고민이 되었는데. 제가 환원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는, 일단 공부모임을 빠지지 않고 열심히 하는 거였어요. 그리고 지역에서 청년들을 좋아하시더라고요. 청년이 필요한 일은 좀 하려고 노력했던것 같아요 (지리산마을교육공동체에서 청년교사가 필요하다고 하거나) 지역에서 제가 필요한 일이 있으면 하려고 노력했었죠. 실패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전달만 된다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잘 알지는 않기 때문에 저를)믿고 줬다기 보다는,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패를 해도 그만큼 나아갔다고 생각하고. 실패하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이 마을에 있으면서 든든한 뒷배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도 해결해주고 돈도 주고 공부도 시켜주고 선생님도 많고.
- 청년들이 시골 지역에 진입하기 위해서 뭐가 필요할까요?
집을 나오니깐 당장 먼저 문제가 되는게 주거였어요. 나같이 시골에 살고싶은 청년들이 와서 같이 공부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기획서도 쓰고 학교에 내고 그랬는데. 살다 보니깐 안되더라고요. 생활을 하다 보니깐 마음이 잘 안 나고. 인력과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는데 힘이 잘 안나더라고요. 처음부터 의기투합해서 했으면 됐을지도 모르지만, 저 혼자 들어간거잖아요. 내가 살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내 모습을 보고 들어올 수도 있겠다 싶어서 살다보니 지금까지 왔어요. 지금은 작은학교에서 봉사하고 있는 선생님도 계시고, 작은학교 학부모님 중에 산내에 오고 싶어하는 분이 계셔서 웃고가에서 지내다 가실 것 같아요. 청년에 한정되기 보다는 작은학교와 인연되는 분들(학교에 필요한 일들로)이 쓰는 방향으로. 내년엔 작은학교 학생들이 지금보다 많아지면 웃고가까지 내려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 청년활력기금을 제안/출연한 사람들에게 하고싶은 말은?
살려주셔서 감사드리고요. 구명줄이었어요. 덕분에 먹고 살았어요. 돈이라는게, 나를 위해서 쓰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이렇게 남을 위해 내놓는 것이)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살았던 사회는, 대학을 안나오면 국민 취급을 안해주기 때문에 한국에서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받으면서 살려면 대학까지 나와야 하는 거죠. 엄마도 대학을 안 보내려고 작은학교를 보내셨었는데 “너는 여자고, 돈도 없고, 아빠도 없고, 대학까지 안 나오면 어떻게 살거냐”이렇게 얘기하셨어요. 여기 오니깐 공동체의 일원으로 있을 수 있으니깐 그런게 문제가 안 되더라고요. 왜 모든건 서울에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고. 저는 한자나 고고학에 관심이 있었는데 공부를 하고 싶어서 서울에 하루 2-3시간 강의를 들으러 왔다갔다 했었어요. 그런데 좀 이상했어요. 공부모임을 주도하거나 어떤 일을 하려고 하면 대학원 이상의 지식이 있어야 했고. 미술을 한다고 하니깐 서울예대 나온 사람 이야기, 지방예대 나온 사람 이야기, 대학 나온 사람 이야기 밖에 안 하는거에요. 아직 젊으니깐 자기를 쌓아보라면서 하는 예가 다 대학이었어요.
- 다음에 청년활력기금을 받게 되는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
남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말고 하고싶은거 했으면 좋겠고요. (어쨌든 어른들이 좋아서 주는거 같으니깐) 필요한 일을 하는 거니깐 너무 부담가지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 지리산청년활력기금은 ooo이다?
(굉장히 재치가 있어야 될 거 같은데) 생필품이다. 생활에 필수적이었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있어야 한다!
- 혹시 못한 말이 있다면?
아까 장이 왜 재미가 없다고 생각 했는지 질문했잖아요. 사실 겁이 났어요. 알바 형식으로 장 하는 이모가 자리를 펴주면 앉아서 팔고 했었는데. 그걸로 먹고 살 생각을 해보니깐, 자립을 해야 되잖아요. 무서운 거에요. 원가 계산도 해야 하고, 할머니들하고 소통도 해야 하고. 자리 문제도 있어요. 집 앞 담장이라서 그 집 주인하고도 문제가 있고. 여름과 겨울은 장이 안되서 마을회관으로 차를 끌고 가서 물건을 날라서 할머니들한테 팔고. 그런걸 저 혼자서 할 생각을 하니깐 굉장히 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아직은 무리겠다 생각을 했고, 도전을 해보려고 하고 해보고 싶었는데 너무 겁이 났어요. 엄두가 안 났어요. 할 수 있을거라고 마음을 먹었는데 막상 닥치니깐 미루게 되고 그랬어요. (기금 덕분에)새로운 일 해보려고 시도를 해본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혜원이 디자인한 마을 장터 <살래장>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