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X 왕규식일년 농사를 되새김질하며

일년 농사를 되새김질하며


‘지리산 이음’ 덕에 지난 1년간 농사를  되새김질 했다. 위가 여러 개인 소는 낮에 뜯어 먹은 풀을 밤에 되새김질하여 다시 한번 먹는다. 되새김! 농사기록도 되새김이다. 다시 몸에 새기는 이 일이야 말로 농사가 온전히 내 몸에 들어오게 하는 일이다. 소가 되새김으로 온전히 풀을 소화하듯이. 


농사일로 지칠 때가 많고,  일에 밀려 마음이 바쁜 농부가 제대로 된 농사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되돌아보면 정성이 들어간 기록도 있지만, 잽싸게 쓰고 만 글들도 많다. 그 모든 것에 농사꾼의 일상이 들어있기는 하다.


귀향, 귀농하여 농사를 지은 지 7년. 이제 어렴풋이 농사가 가진 얼굴을 본듯하다. 그 형체를 뚜렷이 다 알기는 아직은 어렵다. 50이 넘어 내가 태어난 집으로 돌아와, 어릴 적 정말 하기 싫고 힘들었던 그 농사를 하고 있으니 내 인생도 얄궂다.  


농사를 짓는다는 것. 사람마다 다른 뜻으로 들리는 말이다. 힘든 고행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오만가지 일을 할 줄 알아야 하는 만능인으로 여기는 이도 있을 테다. 외롭게 도를 닦는 느낌도 있겠고, 돈을 벌지 못하는 빌어먹을 짓으로 치부하기도 할 것이다. 대체로 부정 연관어를 떠올린다. 그럼에도 생명을 가꾸는 것, 정직하게 땀을 흘려 먹고 사는 것, 정년이 없는 일, 마음 먹은 대로 사는 일이라는 긍정 단어들이 밑바탕에 깔려있기 마련이다. 나도 긍정 단어들이 단전에도 있고, 가슴에도 있었던 거라 50대 이후 인생을  농사짓기로 삼은 것이다. 


농사를 지으며 늘 생각하는 것이 있다. 실험하는 일이 있다, ‘농사로 최저임금 이상 벌어보기’다. 아버지가 짓던 농사를 잇다보니 소농에다가 다품종 소량생산이다. 일은 많고 수익은 낮다. 온갖 일을 다하지만 한 가지 농사를 깊게 들여다보기가 힘들다. 이 상태로는 최저임금 벌기가 쉽지 않다. 동네 이웃들도 거의 마찬가지다. 농사를 점점 늘려야 먹고 살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일에 부쳤다. 하루 12시간 이상씩 일을 해도 최저임금은 여전히 쉽지 않다. 자연스레 살 궁리를 하게 된다. 다품종을 버리고 한두 가지 농사로, 소규모에서 대규모로, 노동집약에서 기계화로, 일반농사에서 특산품 농사로 바뀌게 된다. 지난 7년의 과정이 그렇다. 선택과 집중이 일어나는 중이다.


일조량이 많고, 일교차 큰 지리산 자락이라는 특성 때문에 과수 농사가 자연스럽다. 하동 악양면은 대봉감 시배지이기도 하다. 나에게도 대봉감은 가장 중심이 되는 농사다. 그리고 하우스 농사를 재작년부터 시작했다. 토마토와 애호박을 전문으로 한다. 밭농사는 크게 줄이고 그 땅에 나무 묘목을 심고 관리한다. 결국 나의 농사를 대봉감, 하우스, 묘목농사로 구성한 것이다. 그 농사들마다 제법 규모를 키워서 하고 있다. 하우스 농사는 꾸준히 해야 하는 일이라 고정 일꾼 2명과 함께하고 있다. 


어찌보면 농사규모가 꽤 크다. 이제 ‘농사로 최저임금 벌기’는 가능해졌다. 그러나 최저임금으로는 ‘버티는’ 삶이다. 버티기를 넘어 계획하고, 되샘김질까지 할 수 있는 생활이어야 한다. 농사를 지어 ‘중위 소득’을 올릴 수 있는지 또 실험해 본다. 한 단계 더 나가본다. 앞으로 나가게하는 힘, 그 원동력 중 하나는 되새김질. 농사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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