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요즘 많이 바쁠텐데 숨은 쉬고 사느냐고. 아직 살아있는 걸 보면 숨은 쉬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감 깎기 시작할 무렵 일이 한번 꼬이고 나서부터는 그 여파가 계속 이어져 매일 실속 없이 부산한 느낌이다. 나름 평정심을 가지려고 ‘늦는다고 서두르다 일이 더 꼬일 수 있으니 더디 가더라도 차근차근 진행해 보자’ 하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토굴에서 수행 중이신 스님의 김장을 하러 가야하는데 스님이 혼자는 못 오게 하신다며 같이 가줄 수 있겠냐는 지인의 부탁으로 오랜만에 일상을 벗어나 산에 올랐다. 하동시장에서 미리 도착 시간을 계산해서 스님께 전화를 넣어둔 덕에 주차하는 곳에 스님이 먼저 나와 계셨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출발 준비. 스님은 지게에 언니가 꺼내는 이런저런 짐들을 차곡차곡 얹으시고, 체구도 작은 언니는 70리터 등산 배낭에 꾹꾹 눌러 담아 짐을 챙긴다. 그리고 나에게는 45리터 배낭 정도 되려나? 은화씨는 가벼운 걸로 좀 들어달라며 배낭을 꾸려준다.
스님 토굴까지 좀 걸어야 한다더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길이 더 험하다. 준비성 대단한 이 언니는 미리 만들어놓은 김장 양념이랑 스님이 한달 동안 드실 부식 등을 참 꼼꼼하게도 챙겨왔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 싶어 물으니 이렇게 다닌 지 15년쯤 되었단다.

자세히 보아야 겨우 눈에 들어오는 좁디 좁은 산길을 올라 스님 토굴에 도착하니 스님이 깎아 걸어놓으신 곶감들이 손님을 반긴다.' 와...이렇게도 감을 다는구나. ' 감을 깎는 농부 입장에서 바라봐도 스님의 곶감은 일단 시각적으로 멋졌다. 새들을 위해 깎으셨다는 알사탕 크기의 곶감도 인상적이었고. 곶감 맛까지 예술적이면 곶감 농부로서 스스로 많이 부끄러웠을텐데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원료감의 품종 문제도 있고, 말리는 장소 문제도 있고, 감이 적당히 마르면 건조를 중단하고 감을 내려야 하는데 이미 시기가 지나 명태를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생태였던 것이 코다리를 지나 북어가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산속에서 이만한 간식이 어디있을까.


김장 마치고 스님께 보이차 여러 잔을 얻어마신 뒤 하산 하는 길, 스님이 고생했다면 김치를 많이도 싸주셔서 한동안 잘 먹었다. 스님이 산 위에서도 배추를 잘 키우셨고 언니가 젓갈이나 오신채 없이도 양념을 잘 만들어서 더 맛이 있었나 보다. 그 사이 이집 저집에서 김장했다며 들고 온 김치가 냉장고에 쌓이고 있다. 올 겨울엔 할 일도 태산인데 김장 하지 말고 얻은 김치로 때워볼까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어림없는 일이다. 우리 가족이 먹어치우는 김치 양도 워낙 많은데다 입맛 까다로운 우리 아이들 때문에라도 김치를 담그기는 해야 한다. 그런데 급한 일들이 줄줄이 사탕이라 언제 담글지 날짜를 빼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김장이 조금 늦어지더라도 급한 일들 처리해놓고 해야지 싶었는데 마음의 준비할 틈도 없이 배추가 도착했다. 작년까지 같이 김장을 했던 친한 언니가 자기네 김장하면서 우리 배추까지 수배를 해와서는 몇 포기 할거냐고 사전에 묻지도 않더니 전날 40포기면 되나? 하더니 차에는 50포기를 싣고 와서 내려주고 간다. 올해 감이 많이 달리기는 했는데 알이 좀 작아서 말랭이용으로 분류하며 언니네도 깎으라고 열다섯 상자를 주었는데 배추 50포기로 돌아온 셈이다.


준비할 틈도 없이 도착한 배추들. 밖에 두자니 밤사이 기온이 내려가면 배추가 얼겠고 안에다 놓자니 작업실 사용하는데 걸리적거리고. 하는 수 없이 김장을 해버려야겠다는 생각에 일하는 사이사이 김장 준비를 한다. 언니 집에서 온 배추가 53포기, 우리 밭에서 수확해 온 크고 작은 배추가 30여 포기, 최소 80포기는 되나 보다. 배추 포기가 작을 때 80포기 김장을 하기는 했지만 이번처럼 포기가 큰 배추로 이렇게 많이 해보기는 처음이지 않을까?


먼저 김장을 마치신 아버지가 김장하고 남은 재료들 주시겠다고 함양 밭에서 보자고 하셔서 감 깎을 때 나오는 감 껍질도 버릴 겸 함양으로 달려갔다. 김장할 때 깜빡하고 넣지 않아 우리 주려고 얼려두셨다는 생새우도 있고 상추도 있고 대파도 있고 김장할 때 살짝 절여서 양념에 버무리기만 하면 된다며 열무도 챙겨오셨다. 그것도 아주 많~이. 우리 김장한다는데 아버지가 흥분하셔서는 대파는 있니? 당근은 있니? 상추도 좀 가져갈게. 마늘 찧어서 얼려놓은 게 많은데 마늘도 한 덩어리 가져갈까? 얼려놓은 거 있다고 말씀드려도 이놈 먼저 쓰고 그놈은 두고두고 쓰면 된다며 기어코 챙겨오신다.
남편 산아래가 감나무에 감 껍질 펼치는 사이, 개울가 여기저기에 하나씩 자라고 있던 붉은 갓을 사냥하러 돌아다녔다. 작년에 씨가 날아와 몇 포기 자라던 것을 수확하지 않고 놔뒀더니 다시 대를 이어 개체 수를 늘렸던 것이다. 올해는 김장용으로 수확을 했으니 내년 봄엔 남는 씨앗들 헛일 삼아 다시 뿌려놔야겠다.




함양 다녀온 후 남편이랑 둘이서 배추 씻어서 건지고 윗쪽에서 덜 절여진 배추는 다시 소금 쳐서 소금물에 담그고 하다보니 시간이 늦어졌다. 전기선을 끌어와 수돗가에 등까지 켜놓고 재료들을 씻는데 아버지한테서 온 컨테이너 상자는 무슨 화수분도 아니고 끝도없이 열무가 쏟아져 나온다.


와...김장 배추 80포기가 적어서 열무까지 보태주시나 싶기도 하고. 한 끼 식사로 밥 세 숟가락도 많다고 펄펄 뛰시는 분이 많이 드시지도 못하면서 매번 열무는 왜 이리도 많이 심으시는지. 친정 엄마가 암 투병 할 때 엄마의 병수발을 들어주셨던 아버지는 텃밭에 이것 저것 심어서 엄마의 먹거리를 장만하셨었다. 환자를 위해 부드러운 열무 시래기를 만들기 위해 하던 일이 아내를 하늘로 보내고 나서도 습관처럼 무 씨앗을 뿌리시는 것이다. 여름철 무한 공급되는 아버지의 열무 덕에 올해도 물김치를 6번이나 담갔는데 언제 또 씨를 뿌리신건지 겨울이 되어도 또 열무랑 씨름을 하게 생겼다. 땅을 놀리는 법이 없이 어디 빈틈이라도 있을라치면 뭔가를 또 심으시는데, 심기도 잘 심으시고 키우기도 잘 키우시니 할 말이 없다. 자식 챙겨준다고 마음 설레며 뽑고 일일이 다듬고 하셨을터인데 김장이 힘들어도 '나 죽었소~ '하고 열무김치도 열심히 담가 맛있게 먹는 것이 아버지에 대한 효도이리라. 그래도 아버지! 내년에는 씨앗 좀 쬐꽤만 뿌립시다요.

< 해야할 일 >
감 깎기
김장하기
감말랭이랑 생강발효액 발송하기
글쓴 사람. 도란들 이은화
<도란들-산아래연꽃의 흙살림터>라는 농장 이름이자 브랜드를 만들어 남편 산아래 농부와 함께 관행농법을 지양하며 조금 더디 가더라도 흙을 살리고 흙을 기반으로한 살림살이를 계속 이어 나가고자 고군분투 중인 초보 농사꾼 연꽃농부입니다.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요즘 많이 바쁠텐데 숨은 쉬고 사느냐고. 아직 살아있는 걸 보면 숨은 쉬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감 깎기 시작할 무렵 일이 한번 꼬이고 나서부터는 그 여파가 계속 이어져 매일 실속 없이 부산한 느낌이다. 나름 평정심을 가지려고 ‘늦는다고 서두르다 일이 더 꼬일 수 있으니 더디 가더라도 차근차근 진행해 보자’ 하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토굴에서 수행 중이신 스님의 김장을 하러 가야하는데 스님이 혼자는 못 오게 하신다며 같이 가줄 수 있겠냐는 지인의 부탁으로 오랜만에 일상을 벗어나 산에 올랐다. 하동시장에서 미리 도착 시간을 계산해서 스님께 전화를 넣어둔 덕에 주차하는 곳에 스님이 먼저 나와 계셨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출발 준비. 스님은 지게에 언니가 꺼내는 이런저런 짐들을 차곡차곡 얹으시고, 체구도 작은 언니는 70리터 등산 배낭에 꾹꾹 눌러 담아 짐을 챙긴다. 그리고 나에게는 45리터 배낭 정도 되려나? 은화씨는 가벼운 걸로 좀 들어달라며 배낭을 꾸려준다.
스님 토굴까지 좀 걸어야 한다더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길이 더 험하다. 준비성 대단한 이 언니는 미리 만들어놓은 김장 양념이랑 스님이 한달 동안 드실 부식 등을 참 꼼꼼하게도 챙겨왔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 싶어 물으니 이렇게 다닌 지 15년쯤 되었단다.
자세히 보아야 겨우 눈에 들어오는 좁디 좁은 산길을 올라 스님 토굴에 도착하니 스님이 깎아 걸어놓으신 곶감들이 손님을 반긴다.' 와...이렇게도 감을 다는구나. ' 감을 깎는 농부 입장에서 바라봐도 스님의 곶감은 일단 시각적으로 멋졌다. 새들을 위해 깎으셨다는 알사탕 크기의 곶감도 인상적이었고. 곶감 맛까지 예술적이면 곶감 농부로서 스스로 많이 부끄러웠을텐데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원료감의 품종 문제도 있고, 말리는 장소 문제도 있고, 감이 적당히 마르면 건조를 중단하고 감을 내려야 하는데 이미 시기가 지나 명태를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생태였던 것이 코다리를 지나 북어가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산속에서 이만한 간식이 어디있을까.
김장 마치고 스님께 보이차 여러 잔을 얻어마신 뒤 하산 하는 길, 스님이 고생했다면 김치를 많이도 싸주셔서 한동안 잘 먹었다. 스님이 산 위에서도 배추를 잘 키우셨고 언니가 젓갈이나 오신채 없이도 양념을 잘 만들어서 더 맛이 있었나 보다. 그 사이 이집 저집에서 김장했다며 들고 온 김치가 냉장고에 쌓이고 있다. 올 겨울엔 할 일도 태산인데 김장 하지 말고 얻은 김치로 때워볼까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어림없는 일이다. 우리 가족이 먹어치우는 김치 양도 워낙 많은데다 입맛 까다로운 우리 아이들 때문에라도 김치를 담그기는 해야 한다. 그런데 급한 일들이 줄줄이 사탕이라 언제 담글지 날짜를 빼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김장이 조금 늦어지더라도 급한 일들 처리해놓고 해야지 싶었는데 마음의 준비할 틈도 없이 배추가 도착했다. 작년까지 같이 김장을 했던 친한 언니가 자기네 김장하면서 우리 배추까지 수배를 해와서는 몇 포기 할거냐고 사전에 묻지도 않더니 전날 40포기면 되나? 하더니 차에는 50포기를 싣고 와서 내려주고 간다. 올해 감이 많이 달리기는 했는데 알이 좀 작아서 말랭이용으로 분류하며 언니네도 깎으라고 열다섯 상자를 주었는데 배추 50포기로 돌아온 셈이다.
준비할 틈도 없이 도착한 배추들. 밖에 두자니 밤사이 기온이 내려가면 배추가 얼겠고 안에다 놓자니 작업실 사용하는데 걸리적거리고. 하는 수 없이 김장을 해버려야겠다는 생각에 일하는 사이사이 김장 준비를 한다. 언니 집에서 온 배추가 53포기, 우리 밭에서 수확해 온 크고 작은 배추가 30여 포기, 최소 80포기는 되나 보다. 배추 포기가 작을 때 80포기 김장을 하기는 했지만 이번처럼 포기가 큰 배추로 이렇게 많이 해보기는 처음이지 않을까?
먼저 김장을 마치신 아버지가 김장하고 남은 재료들 주시겠다고 함양 밭에서 보자고 하셔서 감 깎을 때 나오는 감 껍질도 버릴 겸 함양으로 달려갔다. 김장할 때 깜빡하고 넣지 않아 우리 주려고 얼려두셨다는 생새우도 있고 상추도 있고 대파도 있고 김장할 때 살짝 절여서 양념에 버무리기만 하면 된다며 열무도 챙겨오셨다. 그것도 아주 많~이. 우리 김장한다는데 아버지가 흥분하셔서는 대파는 있니? 당근은 있니? 상추도 좀 가져갈게. 마늘 찧어서 얼려놓은 게 많은데 마늘도 한 덩어리 가져갈까? 얼려놓은 거 있다고 말씀드려도 이놈 먼저 쓰고 그놈은 두고두고 쓰면 된다며 기어코 챙겨오신다.
남편 산아래가 감나무에 감 껍질 펼치는 사이, 개울가 여기저기에 하나씩 자라고 있던 붉은 갓을 사냥하러 돌아다녔다. 작년에 씨가 날아와 몇 포기 자라던 것을 수확하지 않고 놔뒀더니 다시 대를 이어 개체 수를 늘렸던 것이다. 올해는 김장용으로 수확을 했으니 내년 봄엔 남는 씨앗들 헛일 삼아 다시 뿌려놔야겠다.
함양 다녀온 후 남편이랑 둘이서 배추 씻어서 건지고 윗쪽에서 덜 절여진 배추는 다시 소금 쳐서 소금물에 담그고 하다보니 시간이 늦어졌다. 전기선을 끌어와 수돗가에 등까지 켜놓고 재료들을 씻는데 아버지한테서 온 컨테이너 상자는 무슨 화수분도 아니고 끝도없이 열무가 쏟아져 나온다.
와...김장 배추 80포기가 적어서 열무까지 보태주시나 싶기도 하고. 한 끼 식사로 밥 세 숟가락도 많다고 펄펄 뛰시는 분이 많이 드시지도 못하면서 매번 열무는 왜 이리도 많이 심으시는지. 친정 엄마가 암 투병 할 때 엄마의 병수발을 들어주셨던 아버지는 텃밭에 이것 저것 심어서 엄마의 먹거리를 장만하셨었다. 환자를 위해 부드러운 열무 시래기를 만들기 위해 하던 일이 아내를 하늘로 보내고 나서도 습관처럼 무 씨앗을 뿌리시는 것이다. 여름철 무한 공급되는 아버지의 열무 덕에 올해도 물김치를 6번이나 담갔는데 언제 또 씨를 뿌리신건지 겨울이 되어도 또 열무랑 씨름을 하게 생겼다. 땅을 놀리는 법이 없이 어디 빈틈이라도 있을라치면 뭔가를 또 심으시는데, 심기도 잘 심으시고 키우기도 잘 키우시니 할 말이 없다. 자식 챙겨준다고 마음 설레며 뽑고 일일이 다듬고 하셨을터인데 김장이 힘들어도 '나 죽었소~ '하고 열무김치도 열심히 담가 맛있게 먹는 것이 아버지에 대한 효도이리라. 그래도 아버지! 내년에는 씨앗 좀 쬐꽤만 뿌립시다요.
< 해야할 일 >
감 깎기
김장하기
감말랭이랑 생강발효액 발송하기
글쓴 사람. 도란들 이은화
<도란들-산아래연꽃의 흙살림터>라는 농장 이름이자 브랜드를 만들어 남편 산아래 농부와 함께 관행농법을 지양하며 조금 더디 가더라도 흙을 살리고 흙을 기반으로한 살림살이를 계속 이어 나가고자 고군분투 중인 초보 농사꾼 연꽃농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