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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X 이은화지리산에 대한 나의 집착


12월 하고도 중반을 넘겼다. 3년이라는 예상치 못한 긴 시간 동안 공적인 모임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탓인지 다시 확진자가 늘어나는 추세 속에서도 송년회 모임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23년 새해가 오기 전에 우리도 22년 한 해를 어떻게 살았는지 대충이라도 총정리를 해봐야 할 텐데 내 몸 가운데서도 특히나 부실한 팔꿈치랑 손목 인대가 한꺼번에 말썽을 부려 얼른 털어버렸어야 하는 일들을 아직도 끌어안고 있다. 마음은 급한데 몸은 말을 듣지 않고... 살살 어르고 달래가며 일을 해보려니 얼마나 더딘지 아직 총정리나 마무리, 이런 단어를 입에 올릴 상황이 아니다. 살살 움직여보다 어? 괜찮은 듯? 싶어 움직임을 조금 크게 하면 어느 순간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깜짝 놀라 다시 뒷걸음질 치고 만다. ‘아으...정말...’ 의욕은 넘치는데 타고난 기계가 불량인 것이 늘 아쉽다.


아기 때부터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며 자라왔기 때문에 우리 부모님은 이 아이가 자라서 제대로 사람 구실이나 할까 싶으셨단다. 그런데 21년 전 이맘 때쯤 결혼 승낙을 받으러 온 예비 사위에게 결혼을 승낙하며 하신다는 말씀이 “이제 반품 안되니까 고장 나면 버리든지 고쳐 쓰든지 알아서 하게” 였다. 늘 걱정이었던 딸에게 임자가 나타났다 싶으니까 너무나 노골적으로 손을 털어버리셨다. ‘헐~, 예전에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나름 건강하고 멀쩡한 딸래미를 버리든지 고쳐 쓰든지 라니. 결혼 승낙을 시원하게 해주시는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너무들 하시는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왠지 독박 쓰는 듯한 느낌의 사위는 어쩌라는 것인지’ 남편도 화들짝 놀라서 ”네? 버리다니요. 알아서 잘 고쳐쓰겠습니다.“ 하여 거래는 끝이 났다.

 

일주일 있으면 산청에 들어온 지 만 9년이 된다. 산청에 들어온 후 나는 습관처럼 매일 천왕봉을 바라보며 그날그날의 천왕봉 모습을 살핀다. 함양에 가더라도 천왕봉이 보이는지 어떤지를 더듬게 되고, 남원에 가더라도 인월, 운봉 지나면서 천왕봉이 어디쯤인지 살피게 된다. 하동에 갔을 때도 천왕봉이 어디쯤인지 더듬어 찾아봤는데 보일 리가 없었다. 일기예보의 날씨와 상관없이 오늘의 날씨는 덕산에서 천왕봉이 또렷이 보이는지 아닌지, 천왕봉에 눈이 쌓였는지 아닌지, 구름 이불을 두툼하게 덮었는지 아닌지 정도로 대충 정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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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에 집착하게 된 첫 번째 계기가 뭐였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마도 감을 깎으면서 그랬던 게 아닐까 싶다. 천왕봉을 넘어 덕산으로 내려오는 서풍이 건조하고 차가워야 곶감이 제대로 되기 때문인데 제대로 된 곶감막도 없고, 건조기도 없던 시절엔 의지할 데라고는 천왕봉을 넘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전부였으니까. 바람이 불어도 천왕봉이 말끔하면 바람이 그렇게 차갑지 않은데 천왕봉에 눈이 쌓여있으면 덕산에 내려오는 바람이 어찌나 매서운지 요즘은 천왕봉을 등지고 앉아있는 우리 집 마당에서 느껴지는 바람 온도로 천왕봉에 눈이 쌓였는지 어떤지가 가늠이 될 정도니 나도 산청사람 다되었구나 싶다.

 

거절하지 못한 송년회 자리가 있어서 오랜만에 강제휴식 삼아 남편과 진주 나들이를 했다. 산청은 진주 생활권이라 ‘나들이’라는 단어를 붙이기가 쑥스럽기도 하지만 시댁 방문도 아니고 시장이나 영화관도 아닌 익숙하지 않은 곳을 가게 되니 얼마 안되는 거리인데도 우리에게는 여행길 같은 나들이였다.


송년회 모임이 진양호 근방이라 근처에서 1박을 하고 아침도 꼼꼼히 챙겨먹고 진양호 조망을 위해 근처 전망대에 올랐다. 진양호 주변 도로를 따라 오며 가며 나름 진양호 풍경을 자주 보았다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거의 수평적 조망만 했을 뿐이었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부감법으로 진양호 전체를 조망하게 되니 진주 사람들이 진양호에 대해 가지는 애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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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하동 적량에서 태어나 북천에서 자랐다. 고등학교를 진주에서 나온 탓에 산청에 살아도 가까이에 동창이 있으니 가끔 부러울 때가 있다. 무슨 일이었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짤막하게 고등학교 교가를 불러준 적이 있었는데 지리산 어쩌구 천왕봉이 어쩌구 하는 것이었다. 아니, 진주에서 지리산, 천왕봉이 웬말인가. 친정집 갈 때마다 남원은 춘향이가 먹여 살리고, 산청은 지리산이 먹여 살리는구나 하는 느낌이었는데 진주까지 지리산 팔이를 하는가? 싶었던 것이다.  


하다하다 남의 학교 교가까지 간섭을 하다니. 쯧쯔.


 진양호 조망을 하겠다고 전망대에 올라서 바라보니 진양호와 함께 저 멀리 파노라마 사진처럼 펼쳐진 지리산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어? 저 눈 쌓인 산이 천왕봉인가? 산 모양이 다른데. 아하 웅석봉이구나! 그럼 천왕봉은?  천왕봉이 있어야 할 자리는 구름에 가려져 산의 윤곽도 찾아보기 어렵다. 내가 덕산에서 천왕봉 어쩌구 할 때에 이곳에서는 노고단, 반야봉, 삼신봉, 제석봉, 천왕봉, 중봉, 그리고 웅석봉까지 병풍처럼 지리산 여러 봉우리들을 쫘악 펼쳐놓고 지리산을 논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경상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 산청군, 함양군, 남원시, 구례군, 하동군, 이렇게 넓게 펼쳐진, 그리고 해발 고도 1,915m나 되는 높은 지리산을 그냥 먼당 바라보듯 했던 나를 반성하며 지리산에 대한 나의 이기적인 집착을 조금 털어내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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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간 해야할 일

  • 감 깎기
  • 감말랭이랑 생강발효액 발송하기

 




글쓴 사람 도란들 이은화

<도란들-산아래연꽃의 흙살림터>라는 농장 이름이자 브랜드를 만들어 남편 산아래 농부와 함께 관행농법을 지양하며 조금 더디 가더라도 흙을 살리고 흙을 기반으로한 살림살이를 계속 이어 나가고자 고군분투 중인 초보 농사꾼 연꽃농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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