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하동 적량에서 태어났고, 북천에서 중학교까지 다녔고, 그 당시 서부 경남권의 학생들이 그랬듯이 고등학교를 다니기 위해서 진주에 나갔다. 5남매 가운데 둘째 아들이지만 형, 누나, 여동생, 남동생까지 고루 있어 북적북적한 시댁의 분위기가 부럽기도 했다. 가족들이 모두 진주로 나오면서 북천의 땅은 마음의 안식처이자 곳곳에 추억이 어린 놀이터 같은 존재로 남았었는데 몇 년 전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형제들이 가끔 모여서 풀을 베고 나무를 정리하고 하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티를 내는 건지 금방 덤불 숲이 되기 일쑤여서 늘 마음이 쓰였다. 설상가상 주변에서 땅을 사들인 사람들이 집터를 만들면서 흙을 파내다 보니 비탈면의 경계는 산사태가 나듯이 흙이 무너져 절벽이 되어버린 곳도 있다. 가난한 시절, 다랭이 논과 산비탈 밭을 일구느라 가족 모두에게 추억이 많은 곳인데 집들이 들어설 때마다 땅 모양이 이상해져 시어머니는 아쉬움으로 병이 나실 지경이다.
이번엔 경계 측량을 하면서 누군가 남편이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상으로 받아온 감나무를 베어버린 모양이다. 남의 땅에 심어진 나무를 사전에 아무런 조율도 없이 함부로 베어버리다니. 시어머니는 남편의 이름이 붙은 나무를 건드렸다는 것 때문에 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르시는데 담판이라도 지어줄 거라 믿었던 아들은 덤덤한 표정만 짓고 있으니 울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라 어쩔 줄 모르신다. 어머니! 함부로 남의 땅 나무를 벤 것은 그 사람들이 잘못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나무 자람새도 시원찮았던 나무인데 이걸 트집 잡아 싸움을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괜히 감정만 상해서 더 큰 분란만 일으키지. 자식 나무를 베었다는 시어머니의 아쉬운 마음을 모르지 않기에 남편과 나는 빨간색 경계 말뚝을 따라 비닐 끈을 잇고 빨간색 스프레이로 나무에 큼직하게 표시를 해서 이 땅은 주인이 관리하고 있음을 티 나게 해놓고서 남편은 예초기를 돌려 풀이 우거져 어수선한 곳들을 말끔히 정돈했다. 가난한 시절 그 땅을 일구며 자식들을 키워내셨을 어머니를 위해.


작업 마치고 작업도구들을 차에 싣더니 다시 자루를 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남편. 고목이 된 가죽나무 아래에서 어린 가죽나무 묘목들을 뽑아서 담고, 두릅나무도 어린 묘목들로 골라서 담고, 참옻나무 묘목도 뽑아서 담았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뿌리가 마르지 않도록 서둘러 마당 한 켠에 임시로 묻어 놓고 물을 주었다.

그날부터 지리산에 3일간 봄비 답지않게 비가 제법 쏟아졌다. 가뭄으로 돌덩이만 굴러다니던 계곡에도 맑은 연초록빛의 물이 기운차게 흘러내리니 하릴없이 계곡만 바라봐도 좋겠다 싶었으나 남편은 밭고랑에 물이 고이지 않게 도구를 쳐서 물길을 내주는 작업에 마음이 바빴고, 나는 근처 감자밭에서 비닐을 찢어주었다.


비닐을 그냥 놔두자니 비닐 안에서 감자싹이 익어버리겠고, 비닐을 찢어서 노출시키자니 비온 뒤 기온이 떨어져 감자싹이 얼겠고, 참 어렵다. 일단 삶아지는 것 보다는 낫겠지 싶어 열심히 찢어주었다.


땅이 질퍽거려 밭 작업은 하지 못하겠다 싶어서 자질구레한 일들을 하기로 하였다. 남편이 가죽이랑 두릅이랑 참옻나무 묘목을 심고 있는 사이에 감나무 싶이 냉해를 입었는지 살피고 있는데 남편이 나에게 와보라고 부른다.

무슨 일인가 하여 달려가보니 2년 전쯤 친정 엄마 병중일 때 친정집에서 캐다 심은 오가피나무가 연초록빛으로 잘 살아있다며 보여주는 것이다. “이거 장모님 살아계실 때 파다 심은 거지?”

임대해서 경작하는 다른 땅에는 하지 않는 일이지만 내 땅을 마련하고 나서 남편과 나는 내 땅, 함양 농장에 매년 끊임없이 무언가를 심고 있다. 남편의 고향에서 파다 심고, 내 친정집에서 또 열심히 파다 심고, 나무도 심고, 꽃도 심었다. 시댁과 친정의 추억을 공유하는 곳이며, 온갖 실험을 할 수 있는 곳이고 작물을 배양해서 늘리며 우리의 꿈을 키우는 곳이기에 그 비싼 대출이자를 감내하면서도 우리가 기꺼이 우리 땅을 가지려고 하는 이유인 듯 싶다.
3년 전에 심은 잔대가 올해는 제법 풍성해져서 나물용 잔대순을 채취하였는데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나들이 삼아 잔대순과 미나리를 캐러 농장에 오신다고 한다. 농장 나들이가 얼마 전 북천땅 감나무 잘린 일로 화병 나신 시어머니에게 작은 위로와 즐거움을 안겨드릴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남편은 하동 적량에서 태어났고, 북천에서 중학교까지 다녔고, 그 당시 서부 경남권의 학생들이 그랬듯이 고등학교를 다니기 위해서 진주에 나갔다. 5남매 가운데 둘째 아들이지만 형, 누나, 여동생, 남동생까지 고루 있어 북적북적한 시댁의 분위기가 부럽기도 했다. 가족들이 모두 진주로 나오면서 북천의 땅은 마음의 안식처이자 곳곳에 추억이 어린 놀이터 같은 존재로 남았었는데 몇 년 전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형제들이 가끔 모여서 풀을 베고 나무를 정리하고 하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티를 내는 건지 금방 덤불 숲이 되기 일쑤여서 늘 마음이 쓰였다. 설상가상 주변에서 땅을 사들인 사람들이 집터를 만들면서 흙을 파내다 보니 비탈면의 경계는 산사태가 나듯이 흙이 무너져 절벽이 되어버린 곳도 있다. 가난한 시절, 다랭이 논과 산비탈 밭을 일구느라 가족 모두에게 추억이 많은 곳인데 집들이 들어설 때마다 땅 모양이 이상해져 시어머니는 아쉬움으로 병이 나실 지경이다.
이번엔 경계 측량을 하면서 누군가 남편이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상으로 받아온 감나무를 베어버린 모양이다. 남의 땅에 심어진 나무를 사전에 아무런 조율도 없이 함부로 베어버리다니. 시어머니는 남편의 이름이 붙은 나무를 건드렸다는 것 때문에 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르시는데 담판이라도 지어줄 거라 믿었던 아들은 덤덤한 표정만 짓고 있으니 울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라 어쩔 줄 모르신다. 어머니! 함부로 남의 땅 나무를 벤 것은 그 사람들이 잘못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나무 자람새도 시원찮았던 나무인데 이걸 트집 잡아 싸움을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괜히 감정만 상해서 더 큰 분란만 일으키지. 자식 나무를 베었다는 시어머니의 아쉬운 마음을 모르지 않기에 남편과 나는 빨간색 경계 말뚝을 따라 비닐 끈을 잇고 빨간색 스프레이로 나무에 큼직하게 표시를 해서 이 땅은 주인이 관리하고 있음을 티 나게 해놓고서 남편은 예초기를 돌려 풀이 우거져 어수선한 곳들을 말끔히 정돈했다. 가난한 시절 그 땅을 일구며 자식들을 키워내셨을 어머니를 위해.
작업 마치고 작업도구들을 차에 싣더니 다시 자루를 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남편. 고목이 된 가죽나무 아래에서 어린 가죽나무 묘목들을 뽑아서 담고, 두릅나무도 어린 묘목들로 골라서 담고, 참옻나무 묘목도 뽑아서 담았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뿌리가 마르지 않도록 서둘러 마당 한 켠에 임시로 묻어 놓고 물을 주었다.
그날부터 지리산에 3일간 봄비 답지않게 비가 제법 쏟아졌다. 가뭄으로 돌덩이만 굴러다니던 계곡에도 맑은 연초록빛의 물이 기운차게 흘러내리니 하릴없이 계곡만 바라봐도 좋겠다 싶었으나 남편은 밭고랑에 물이 고이지 않게 도구를 쳐서 물길을 내주는 작업에 마음이 바빴고, 나는 근처 감자밭에서 비닐을 찢어주었다.
비닐을 그냥 놔두자니 비닐 안에서 감자싹이 익어버리겠고, 비닐을 찢어서 노출시키자니 비온 뒤 기온이 떨어져 감자싹이 얼겠고, 참 어렵다. 일단 삶아지는 것 보다는 낫겠지 싶어 열심히 찢어주었다.
땅이 질퍽거려 밭 작업은 하지 못하겠다 싶어서 자질구레한 일들을 하기로 하였다. 남편이 가죽이랑 두릅이랑 참옻나무 묘목을 심고 있는 사이에 감나무 싶이 냉해를 입었는지 살피고 있는데 남편이 나에게 와보라고 부른다.
무슨 일인가 하여 달려가보니 2년 전쯤 친정 엄마 병중일 때 친정집에서 캐다 심은 오가피나무가 연초록빛으로 잘 살아있다며 보여주는 것이다. “이거 장모님 살아계실 때 파다 심은 거지?”
임대해서 경작하는 다른 땅에는 하지 않는 일이지만 내 땅을 마련하고 나서 남편과 나는 내 땅, 함양 농장에 매년 끊임없이 무언가를 심고 있다. 남편의 고향에서 파다 심고, 내 친정집에서 또 열심히 파다 심고, 나무도 심고, 꽃도 심었다. 시댁과 친정의 추억을 공유하는 곳이며, 온갖 실험을 할 수 있는 곳이고 작물을 배양해서 늘리며 우리의 꿈을 키우는 곳이기에 그 비싼 대출이자를 감내하면서도 우리가 기꺼이 우리 땅을 가지려고 하는 이유인 듯 싶다.
3년 전에 심은 잔대가 올해는 제법 풍성해져서 나물용 잔대순을 채취하였는데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나들이 삼아 잔대순과 미나리를 캐러 농장에 오신다고 한다. 농장 나들이가 얼마 전 북천땅 감나무 잘린 일로 화병 나신 시어머니에게 작은 위로와 즐거움을 안겨드릴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