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 아직까지 아영포도를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분
- 시골에서 재미있고 슬기롭게 사는 방법을 배우고 싶은 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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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우 농부는 남원시 아영면에서 포도농사를 짓는다. 흙건축을 전공하고 건축공동체에서 일과 삶을 일구어 온 건축가이기도 하다. 지금은 포도농사와 건축 일을 함께 하고 있다.
8살, 11살 두 아이의 아빠이자 그림 같은 포도밭을 꿈꾸는 6년차 농부의 포도농장에 들어서자 농장이름의 주인공인 윤석우 농부의 아내가 그린 작품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말 그대로 ‘그림이 있는 포도밭’이다.
남원시 아영면으로 찾아가 만난 윤석우 농부
농장 이름이 참 예뻐요.
그림이 있고 누구든 뜰에서 놀 수 있는, 그림 같은 포도밭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농장이름을 ‘그림있는 포도밭 애리뜰’이라고 지었습니다.
인터뷰 요청을 받았을 때 많이 당황하셨다고요.
네. 저는 아영뿐 아니라 지리산권 다른 지역에도 관심이 많아서 지리산이음도 알고 논밭생활백과도 본적이 있어요. 그런데 인터뷰하자고 연락을 주셔서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포도농사만 5년 동안 지었고 작은 텃밭도 있지만 거의 방치농 수준이기 때문에 ‘내가 과연 농부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랄까요.
괜한 걱정을 하셨네요(웃음). 포도농사와 생태건축을 하신다고 들었어요. 아영에는 어떻게 자리 잡게 되었나요?
대학교 졸업할 때쯤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하지 못했어요. ‘난 뭐 하면서 살지’라는 생각을 하다가 마지막 학기에 휴학하고 산에서 생태건축하는 곳을 찾아 1년 정도를 보냈어요. 그러면서 흙과 나무를 이용한 건축을 하게 됐어요.
아영으로 오게 된 건 건축하는 팀들이 겨울철 같이 머물 곳을 찾다가 산청 백전면에 있는 온배움터와 인연이 닿았어요. 그러면서 같이 일하는 팀원 가족이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어요.
저도 목포에 신혼집이 있었지만 집을 비워할 시기가 되어서 ‘시골에서 같이 살자’ 아내를 설득을 했죠. 아내도 시골에 오고 싶어 했지만 아내 계획보다는 좀 빨리 오게 된 거죠. 전혀 연고 없는 아영으로 오게 된 거예요.
집은 아영이지만 건축을 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녔고 365일 중 300일 정도를 건축공동체에서 함께 살았어요. 아내와 3살 아이도 공동체 현장에서 같이 살기도 했고요. 그 당시 아이도 순천 현장에서 어린이집에 다녔어요. 그만큼 가족이 같이 지내고 싶은 마음은 컸던 거죠. 그러다가 이제 더 이상 어디로 다니지 말고 가족들과 한 곳에 머물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엔 지역에 안착하려고 일할 곳을 알아보기도 했는데, 제 성격과 맞는 곳을 찾기 어렵더군요. 지금까지 돈을 벌기 위해 회사를 다닌 적도 없었고, 돈을 벌기 위해 어딘가에 얽매여서 일한다는 게 사실 저에게는 맞지 않거든요(웃음).
생태건축가가 포도농사를 짓게 된 계기가 더욱 궁금해지는데요.
5년 전만해도 농사를 짓는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 했어요. 건축만 계속 해왔고 더 중요한 건 ‘내가 감히 농사를?’ 하는 게 있었어요. 농사는 뭐랄까요, 관행농법은 접근 자체가 약간 부담스러웠고, 친환경 농법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죠. 다가가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포도농사를 시작한 가장 큰 계기는 아버지의 은퇴였어요. 건축 일을 하시던 아버지가 은퇴하시면 아영으로 모시려고 계획하고 있었거든요. ‘아버지의 소일거리’로 생각한 게 포도농사였어요. 이곳 흥부골 아영포도는 가격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 있고 품질도 자리를 잡았죠. 브랜드도 많이 알려져 있고요. 지역에 살면서 관계를 많이 맺다 보니까 바로 시작할 수 있었던 게 포도였어요.
포장지를 씌운 포도, '한송이 더 먹고 싶은 흥부골 아영포도'라고 쓰여져 있다. (이하 사진제공 윤석우)
흥부골 아영포도가 맛있기로 유명하죠. 흥부골 포도는 작목밭 이름인가요? 지역공통 브랜드인가요?
제가 알기로 흥부골 아영포도는 아영면에서 생산되는 포도라면 누구든지 쓸 수 있도록 지역에서 만들어 낸 브랜드예요. 작년부터 아영, 인월, 운봉, 산내에서 수확하는 포도까지 통합해서 ‘흥부골 포도’로 브랜드명이 바뀌었어요. 물론 아영에서는 아영포도가 좀 더 낫다고 얘기를 합니다만(웃음), 인월, 산내, 운봉 지역도 고도도 비슷하고 맛과 품질도 비슷해요.
아영포도가 유명해진 지는 20년 정도 됐을 거예요. 그동안 전국 어디에도 뒤처지지 않게 품질을 월등히 높여놓은 거죠. 전에는 다른 곳으로 선진지 견학을 다녔는데 이제는 오히려 다른 지역에서 아영으로 견학을 오죠. 제가 느끼기에 아영포도 품질의 비결은 농가들이 같이 공부하고 교류를 많이 해서 인 것 같아요. 방범대 활동을 3년 정도 한 적이 있었는데 포도 농사철에는 포도 이야기만 하더라고요. 가격부터 병충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항상 정보를 공유하는 거죠.
지역에서 포도농사 정보를 교류하거나 같이 공부하는 모임이 있나요?
아영에는 작목밭이 10개 정도 있어요. 그 모임별로 서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정보를 교류하죠. 저는 7명이 모여서 포도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같이 공부하고 교류하고 있어요.
폴리페놀 포도는 같이 공부하는 스터디그룹에서 같이 만든 건가요?
네. 포도 스터디 그룹에서 미생물을 넣고 배양해서 폴리페놀 성분이 있는 영양제를 만들어 같이 사용하고 있어요. 포도농사 초보자인 저는 운 좋게 좋은 사람들을 만난 거죠.
특별한 친환경 영양제를 구해서 미생물을 첨가해 배양해서 사용하고 있어요. 폴리페놀 성분이 많이 들어간 영양제를 꾸준하게 주고 길러 폴리페놀 수치를 측정해보니 실제로 훨씬 많은 폴리페놀 성분이 나온 거예요. 그래서 폴리페놀 포도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포도는 다양한 이유로 맛이 좌우가 돼요. 기후, 물 관리, 영양제, 광합성까지 저는 포도에게 맛있게 자라라고 계속 말을 걸어요(웃음). 농가마다 영양제 성분에 대한 노하우들은 있죠. 영양제를 직접 만들어서 준다는 게 사실 쉬운 건 아니거든요. 일반적인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동을 들여야 돼요. 정성을 들여야 하는 거라 거기서 좀 차이가 있죠.
포도를 흐르는 물에 헹구고 있다.
포도 농사 규모도 궁금해요.
6년 째 임대로 농사짓는 비가림 노지 1,100평 포도밭과 4년 전 귀농창업자금 지원을 받아 마련한 한골 연동 포도밭이 1,100평 있습니다. 총 2,200평 포도농사를 짓고 있지요.
포도농사는 계획했던 대로 아버지와 함께 짓나요?
네. 아버지랑 거의 같이 해요. 올해 아버지 연세가 일흔넷이신데 포도밭 일의 70% 정도를 아버지가 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 주로 말과 행정적인......(웃음)
4월에 지리산권을 다니면서 사과꽃, 배꽃, 복숭아꽃을 많이 봤어요.
포도도 꽃을 볼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아직 조용하네요. 포도는 언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지 궁금해요.
이곳 고랭지 포도는 4월에 순이 나오고 5월 중순에 꽃이 펴요. 포도꽃이 자가수정되면 6월부터 포도알이 보이기 시작하죠. 수확은 8월20일 전후로 시작합니다. 하우스에서 온도 가두기를 해서 기르는 포도는 7월20일 쯤부터 수확 합니다.
여기서 잠깐! 윤석우 농부가 들려주는 포도 성장기 🍇
- 포도나무는 3~4월경 수액이 흐르기 시작하며 새싹이 나옵니다.
- 포도가지 하나에 한 두 송이의 포도를 달고 꽃 필 준비를 합니다.
- 포도꽃은 자가수정 되며, 꽃이 진 후 열흘 후쯤 되면 포도 알이 보이기 시작해요.
- 포도알이 어느정도 크면 품질을 좋게 하기 위해 포도 알솎기를 해줍니다.
- 따뜻한 7월이 되면 포도송이에 색이 하나씩 들어오기 시작해요.
- 그리고 색이 들어온지 40여일이 지나 포도알이 진한 자줏빛으로 변하면 수확합니다.
가지치기를 한 상태인 늦겨울~초봄의 포도나무
포도는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르게 자라는데요? 신기할 정도로.
포도가 엄청 손이 많이 가는 작물이라고 들었어요.
네. 포도는 노동력이 아주 많이 들어가요. 곁순이나 넝쿨손을 딸 때는 가족들이 같이 해요. 곁순이 끊임없이 나오거든요. 저희 가족은 아이들까지 나서서 도와줍니다.
거기다 6월에 포도꽃이 포도알로 바뀌면 알을 솎아줘야 해요. 포도는 처음에 300개 정도의 알을 달아요. 그런데 우리가 ‘포도송이 좋다’고 얘기하는 건 70~80개 정도 포도알이 달린 송이예요. 자연적으로 떨어지는 것도 있지만 인위적으로 모양을 잡아서 많은 것은 수 십 개의 포도알을 솎아줘야 하는 거죠. 그게 ‘포도 알 솎기’입니다. 가장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고 아주 중요한 작업입니다.
6월부터 출하되기 전까지는 곁순 따내고 포도 알 솎는 게 가장 큰 농작업이겠네요.
그렇죠. 우리가 보기 좋다고 하는 포도의 모양은 농부들이 일일이 만든 거예요.
포도알 솎는데 기술이 많이 필요하거든요. 아영포도가 품질이 좋다는 건 모양을 만드는데도 정성을 많이 쏟기 때문이에요. 다른 지역 포도에 비해 아영포도가 알이 크다고 얘기하는데 농부들이 정성을 들여서 만드는 거예요. 포도알의 개수를 줄여서 크게 잘 자라게 하고, 모양을 잡기 위해서 위에서부터 빼내는 알을 계산하면서 알 솎기를 하는 거죠.
‘손이 엄청 많이 들어간다’는 말이 확실히 이해가 됩니다.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네요.
알 솎기는 숙련이 돼야 할 수 있어요. 일일이 손으로 하는 사람도 있는데 정말 숙련된 사람은 가위로도 해요. 한 알 한 알 잘라내야 해서 가위로 하는 건 손이 정말 빠르고 정확해야 하거든요. 원하는 곳을 정확하게 잘라야 하잖아요. 알 솎기는 포도송이 맨 위 지경부터 9, 9, 5, 5, 3, 3, 3, 2, 2, 2, 2 이런 식으로 지경에 달린 포도알의 개수를 줄여서 송이 모양을 만드는 거예요.
포도꽃이 포도알로 바뀌면 개수를 계산해 알을 솎아줘야 한다.
알이 커지는 중인 푸른 포도들
포도 한 송이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군요. 이런 과정을 전혀 모르고 포도를 사고 먹었어요.
저는 회의나 지인들 모임을 포도농장에서 하기도 해요. 포도농사 첫 해에는 아이들도 체험하러 오기도 했어요. 종종 회의나 모임이 있을 때 오신 분들이 잠깐 알 솎기나 어깨송이 자르기, 곁순 따는 걸 도와주곤 했는데 ‘나는 도저히 못 하겠다’고 하는 분들이 많아요. 포도는 계속 서서 작업해야 하고, 가슴보다 더 높은 곳에 있다 보니 하루 종일 손을 든 상태에서 계속 따는 거예요. 더 중요한 건 빨리빨리 진도가 나가면 좋겠지만 가지 하나하나마다 손 갈 게 너무 많아 천천히 가죠. 오전 내내 일해도 아주 조금밖에 못 하는 거죠.
땅도 반듯한 평지가 아니기 때문에 발 앞쪽이 계속 들려 있어요. 처음에는 종아리가 아프고 점점 허벅지로 해서 허리까지 고통이 올라옵니다.
첫 해에 아버지가 은퇴 준비를 하시면서 같이 농사지었거든요. 그 때 ‘우리는 밭 하나 이상은 못하겠다. 더 늘릴 수는 없겠다.’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마을에서 포도농사 짓는 분들이 왜 피곤해 하는지 제가 농사를 지어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아영포도가 그냥 아영포도가 아니구나. 정성이 정말 많이 들어갔기 때문에 이렇게 흥부골 포도가 유명해진 거구나’라는 걸 많이 느껴요.
‘아영포도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농부의 정성과 고통으로 만들어진다’ 군요. 알 솎기는 한번만 해주면 되나요?
포도알을 솎으면 남아있는 알들이 점점 커지거든요. 그런데 너무 커지면 알들이 속에 숨기 때문에 꽉 배겨요. 말씀드린 것처럼 크고 좋은 송이를 기준으로 70~80알 정도만 남겨놔야 되는데 그 이상 있으면 속에 배긴 알들이 나중에 터져버리는 거죠. 열과라고 하는데 속에 있는 포도알이 터지면 발견을 못하기 때문에 안에서 상하거나 썩어서 날파리가 생겨요. 그러면 주변이 다 같이 오염되면서 송이 자체가 품질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아영사람들은 알 솎는 기간에는 어딜 가지 못해요. 하루하루가 소중하기 때문이죠.
흥부골 아영포도 포장지를 쓰고 익어가고 있는 포도들
아영은 포도재배에 적합한 지역이기도 하죠?
그럼요. 아영포도가 맛있는 이유 중에 하나가 지리적인 조건입니다. 해발 400미터 이상 되는 고랭지여서 낮과 밤의 온도 차가 커서 그 영향으로 깊은 맛을 내게 돼요. 그리고 이 지역의 토양과 지하수가 포도에 알맞게 좋은 조건이라고 하더라고요. 지리적인 특성상 기후가 잘 맞고 오랫동안 농부들이 많은 노력을 한 결과죠. 그래서 어쩌면 저는 그냥 숟가락만 얹은 거예요.
정성껏 키우는 포도는 언제 수확하나요? 생산량도 궁금합니다.
하우스 가온 시설한 곳들 중 가장 빠른 곳은 7월 20일 정도면 수확을 시작합니다. 일반 비가림 노지 포도는 8월 20일 쯤부터 출하하죠. 저는 3kg 상자 기준으로 6,000 상자 정도 생산하는데 해마다 달라요.
해마다 달라지는 이유가 기후변화 때문인가요?
저는 두 개 농장밖에 안 해서 비교하기는 그렇지만 2021년과 2020년을 비교하면 재작년에는 절반만 잘 되고 절반이 잘 안 됐어요. 순이 없을 때는 겨울잠을 자고 있으니까 냉해 피해가 덜한데 순이 올라올 때 냉해가 올 때가 있어요. 그럼 영향을 받는 거죠. 재작년에는 3월이 따뜻했다가 갑자기 추위가 온 적이 있어요. 그게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이상기후인거죠. 포도도 날씨가 따뜻하니까 일찍 잠에서 깨서 순이 빨리 올라온 거예요. 그리고 포도꽃도 일찍 피었죠. 그런데 갑자기 추위가 왔어요. 포도는 영상 18도 이상이 되어야 수정이 잘 되는데 온도가 10도 이하로 뚝 떨어지니까 이 지역 포도들이 수정이 잘 안되었어요. 손 쓸 방법이 별로 없었어요.
시설재배 농가는 작년 겨울에 난방비가 만만치 않았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농협에서도 지원은 해주는데 리터당 500원 정도였던 면세유가 지금은 1,200원이 넘어요. 두 배 이상 오른 거죠. 가온시설로 기르는 포도 농가들은 온풍기 틀기도 무섭죠. 농사를 크게 하는 사람들은 하루에 50만원~ 100만원 그냥 나가는 거거든요.
‘기후위기가 정말 심각하구나’ 농사지으면서 느껴요. 전에는 잘 몰랐어요. 포도 하나의 작물만으로도 올해 어떤 기후변화가 있는지를 이렇게 실감하게 돼요.
50년 후 한반도 과일재배지도가 확 바뀐다는 예측보고서를 본 적 있는데요, 포도도 이런 추세라면 산지가 바뀌게 될까요?
결국에는 포도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낮은 평야지대에는 점점 포도농사를 짓기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기후변화로 포도를 재배하기 위한 환경이 안 되는 것이죠. 점점 포도도 강원도처럼 좀 더 높은 지대로 올라가게 될 거예요.
기후위기는 한사람만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잖아요.
혼자만은 안 되죠. 그래도 혼자 조금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보자는 생각으로 조금씩 조금씩 실천하고 있어요. 작은 노력이 모여 작은 변화를 이끌어내야만 희망이 있다고 봐요.
하우스에서 미소짓고 있는 윤석우 농부
윤석우 농부의 흥부골 아영포도는 어떻게 판매하나요?
저는 직거래를 많이 해요. 지역에서는 조금 유별나다고 할까요.
농사짓기 2년 전에 지인에게 아영포도 맛을 보여줬는데 너무 맛있다고 감동하신 거예요. 부산에 있는 중학교 선생님인데 어느 날 “포도 좀 싣고 와라, 한 트럭”하고 연락이 왔어요. 주변 학교까지 ‘세상에 이런 포도가 있다’고 소문을 내서 주문을 받았대요. 저희 동네 이장님 포도를 싣고 배송을 갔어요. 포도 한 상자 판매가격에 천 원씩 더 붙여서요(웃음). 150상자니까 기름값 5만 원, 인건비 10만 원 정도로 해서. 그런데 또 난리가 난 거죠. 너무 맛있어서. 그다음 해에도 또 갔어요. 3년 차 때 농사를 안 짓는다고 했던 제가 포도농사를 지으면서 그분들이 자연스럽게 제 고객이 된 거예요. 그렇게 직거래로 조금씩 루트가 생겼어요. 지금은 작년 기준으로 전체 수확량의 50%를 넘겼어요.
저는 경제적인 것에 약간 둔하다 보니 포도를 파는 게 조금은 불편했어요. 포도에 값을 어떻게 먹여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형성되는 포도 가격은 해마다 다르고 출하되는 시기마다 달라지니까요.
저는 포도 가격을 해마다 고정 가격으로 정합니다. 작년에는 최상등급 3kg를 2만 5천 원으로 정했어요. 8월 5일 정도부터 판매를 시작하는데 이 시기는 공판장 시세가 3만 5천 원 정도예요. 제가 만 원 정도 낮은 가격으로 판매를 하면 주변에서 그렇게 판매하면 어떻게 하냐고 얘기를 하죠. 하지만 포도 가격이 비싸거나 싸거나 고정 가격으로 판매하기에 결국 같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다들 알고 이해해주세요.
많은 농부들이 직거래를 하고 싶지만 고객들과 소통을 아주 힘들어해요. 의외로 큰 감정노동이잖아요. 특히나 한창 수확과 출하로 바쁜 시기에는 더욱 어렵고요.
거의 대부분 그래요. 포도는 포도알이 잘 터져서 택배가 어렵거든요. 그래서 직거래를 거의 안 해요. 아무리 친한 지인이라도 받았는데 포도가 터져있으면 재주문하기 어렵잖아요. 배송이 어렵지만 저는 오히려 직거래를 계속 넓혀가고 있어요. ‘잘 전해지도록 될 때까지 해야 한다. 터졌으면 다시 보내주는 게 당연하다’ 그런 마음이랄까요. 보내고 나면 포도 잘 갔는지 항상 문자를 보내요. 정말로 전해졌는지 확인하면서 좀 더 마음으로 다가가는 거죠.
저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저는 직거래가 쉬워요. 내가 정성 들여서 키운 포도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신선하게 잘 전달되고 그분들이 맛있게 먹으면 서로 좋은 거잖아요. 내가 정성들이는 일에 자부심이 생기는 거죠. 저절로. 안정적인 판매도 중요하지만 항상 찾는 분들이 또 찾아 주시니까 그게 좋아요. 결과적으로 수익도 안정적으로 가게 되더라고요. 인근 산내면과 함양군에서도 점점 단골이 늘어나고 있어요. 직거래가 많이 늘어난 이유도 한 사람이 먹어보고 맛있다고 주변에 소개해서 고객이 두 사람으로 늘어났기 때문이에요. 제대로 그리고 진심으로 농사지어 포도의 품질을 좋게 하고 안전하게 전달만 할 수 있다면 흥부골 아영포도는 전국 어디에 내놔도 인정받을 수 있으니까 계속 노력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인지 직거래는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포도농사 지으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저는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상태에서 포도 농사를 시작했어요. 그래서 첫해에는 아는 농장 두세 군데를 들르기 위해 아침 일찍 해만 뜨면 밖으로 나섰죠. 지금은 익숙하기 때문에 포도 상태를 보면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만 처음에는 전혀 모르잖아요. 그래서 아침마다 다른 포도밭에 가는 거예요. 그리고 제 농장에 갔다가 저녁에는 또 다른 농장에 들렀어요. 그때는 밤 12시까지 공부도 엄청 열심히 했어요.
무엇보다 포도를 첫해부터 안정적으로 할 수 있었던 건 지역에서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쌓여있어서 가능했던 거 같아요. 관계가 잘 형성되어 있으면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잖아요. 도움도 받을 수 있고. 그래서 어렵지 않았던 거죠. 지금도 아영으로 젊은 사람들이 포도 농사를 지으러 많이 들어오고 있는데, 농사정보를 교류하는 분위기가 잘 형성되어 있고 쉽게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포도시설 짓는 것도 배우고 묘목 심는 것부터 수확하는 것까지 큰 어려움 없이 시작을 할 수 있는 거죠.
'그림있는 포도밭 애리뜰'이라는 이름처럼 농장의 벽면에는 그림이 걸려 있다.
생태건축을 하다가 갑자기 포도 농사를 짓는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돌아보면 저는 하고 싶은 것, 즐길 수 있는 걸 찾아서 살아왔어요. 예전부터 주변 사람들은 제 이런 모습을 지켜봤기 때문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어머님만 땡볕에서 농사짓는다고 걱정을 많이 하셨죠. 한여름에는 포도 잎이 무성하게 자라서 그늘 아래서 농사짓는다는 걸 아시고 크게 걱정은 안 하시는 것 같아요.
포도는 4월에서 9월까지 집중적으로 농사를 짓고 나머지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좋습니다. 그래서 그 외 시기엔 하고 싶은 건축을 할 수도 있고요.
아버지께 같이 포도농사를 짓자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응은 어떠셨어요.
아버지의 소일거리로 처음 시작했기 때문에 괜찮다는 분위기였어요. 포도농사는 깨끗한 농장에서 가족농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 거죠. 일정 기간 일손이 많이 들어가 힘들게 보여도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아영포도가 안정화가 돼 있기 때문에 큰 염려는 안하셨어요. 어머니가 ‘너무 무리하지 마라, 너무 늘리지 마라’고 당부는 하셨죠. 그런데 두 해 농사를 지어보니 경험이 쌓여 할 만 하더군요. 그래서 지금은 포도밭 두 개로 늘려서 짓고 있어요.
포도농사는 언제까지 지을 계획인가요?
저는 포도농사가 즐겁고 제 성격과 너무 잘 맞는다는 걸 알고 시작한 거거든요.
변화되는 모습들이 계속 보이는 것도 너무 좋고,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많은 시간들을 혼자 오롯이 보낼 수 있는 것도 너무 좋아요. 조용히 음악도 들을 수도 있고 혼자 노래도 부를 수 있어서 조금씩이라도 계속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제 VIP 고객들이 강제로 농사짓게 할 것 같아요(웃음).
당연히 건축도 계속할 계획입니다. 올해는 부모님 집을 지을 거고요, 몇 년 후에는 그림 작업실, 제가 원하는 건축공방을 만들려고 해요.
그리고 50대에는 새로운 재미있는 걸 찾아보려고 상상하고 있습니다.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트리하우스도 만들고 작은 도서관 설립에 참여도 했었는데 아영에는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너무 갈 곳이 없는 거예요. 50대에는 아영에 아이들, 어른들이 갈 수 있는 쉼터를 만드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작은 숲 안에 갤러리, 아이들 놀이터, 공방, 북카페가 있는.
농사 규모를 더 늘릴 계획은 없나요?
대부분 농부들은 젊을 때 더 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많은 일을 하고 있어요. 그 부분이 이해는 되지만 많이 안타까워요. 농사를 많이 짓더라도 재미가 있으면 좋지만 현실은 가족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잖아요. 문화생활도 줄어들게 되고요. 농번기 때 대부분의 부모들이 아침에 나가서 어두워질 때 들어와요. 이제는 농사기술이 좋아져서 365일 일한다고도 말하더군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저 또한 규모를 좀 늘려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저 스스로의 모순에 합리적인 이유를 갖다 붙이면서요. 가끔 ‘농사 잘 짓는다’는 것이 무얼까 생각해보곤 합니다.
포도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유심히 들여다보는 윤석우 농부의 모습
혼자서 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포도 농사가 좋다는 말이 인상적인데요, 또 어떤 순간이 즐거운가요?
우리 포도를 먹은 사람들이 맛에 놀라 감동하고, 포도 농사 덕분에 전국의 사람들과 인연을 맺는다는 것에 큰 행복을 느껴요. 포도에 손도 대지 않았던 아이들이 포도를 먹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듣거나 93세 어르신이 우리 포도를 먹으면 맛도 좋고 기운도 난다고 해마다 찾아주실 때 흐뭇하죠.
저는 포도를 주문한 분들과 문자를 주고받거나 통화를 많이 하는 편인데 소비자와 생산자 관계 이상으로 관계가 넓혀지며 소통하는 것, 제가 흐뭇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그 가운데 있어요.
제가 정성을 다해 포도를 키워 전하고, 받는 분들이 진심을 느끼며 따스함이 서로 전해질 때 즐겁지요.
에어백 포장도 정성을 잘 전하기 위한 고민의 결과물이겠네요. 처음 봤을 때 ‘우와 이런 신박한 방법이?’하고 놀랐어요. 신선도에는 문제없나요?
신선도에 큰 문제는 없어요. 소비자도 받았을 때 안 터져 있으니까 만족스러워 해요. 선물 받은 느낌이라며 좋아하더군요. 에어백은 제가 우연히 발견해서 여러 차례 실험을 해보고 적용한 건데 반응이 꽤 좋았어요. 하지만 코로나 상황에 전국 택배 물량이 많아지면서 에어백 포장도 한계가 있더군요. 그래서 스티로폼 포장으로 바꿀까 고민하고 있어요. 환경을 생각해서 스티로폼 사용을 안 하려고 했는데, 안정적인 배송을 위해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같아요. 스티로폼이 재활용품으로 잘 분리되어 재사용 될 수 있도록 안내문을 어떻게 작성할까 고민입니다.
아영으로 포도 농사지으려고 오는 젊은 층이 꽤 있다고 했는데요, 혹시 귀농, 귀촌을 염두에 두고 있는 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 있나요?
아영은 아직까지는 대부분 연고가 있어서 들어와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관계가 형성이 되어 있고 그 기반으로 농사에 대한 준비들을 하나하나 해가더라고요. 앞으로는 저처럼 연고 없이 아영을 찾는 분들도 많아질 것 같아요.
그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일단 ‘아영은 정말 살기 좋은 곳이다.’
아영은 여름에도 시원하고 안정화된 특작물이 있어서 자립을 잘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교육, 문화에 신경을 쓰는 분들도 많아지고 있어서 점점 살기 좋은 곳이 되고 있어요. 지리산도 있지만 가야고분 문화유적지, 산내 실상사, 운봉 허브밸리, 함양 상림공원 등 쉬면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들이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지리산 IC가 바로 옆에 있어서 교통도 편하고요. 안정적으로 농사도 짓고 즐기면서 시골 생활을 할 수 있는 블루오션이 있는 곳이라 생각합니다.
시골에서 농사도 짓지만 즐기며 사는 것에 관심이 많으시죠?
살기 좋은 농촌이 되어야 하잖아요. 살기 좋은 농촌은 꿈이 있는 농촌인거죠. 그래서 정책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교육, 문화, 의료 복지 분야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 가지 더 얘기하고 싶은 건 다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으면 좋겠어요. 다문화 가정은 계속 늘어나는데 관심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요. 같이 어울리고 어우러져야 하는데 그런 부분들은 목소리가 점점 더 작아지고 있는 게 현실이죠. 모두 함께 즐기고 어울릴 수 있는 소통의 장이 자주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농사 측면에서는 자기 노하우를 공유하는 모임이 지역 곳곳에 생기고, 즐겁고 슬기롭게 농사지으며 안정적인 귀농, 귀촌생활에 대해서도 함께 공유하는 자리가 많아지면 좋겠어요. 논밭생활포럼이었나요? 논밭생활백과에 인터뷰한 농부들이 모여서 1년 동안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는 영상을 봤는데 그런 분위기의 장이 자주 열려도 좋겠죠. 살기 좋은 시골로 한 걸음 더 나아가려고 고민하는 분들에게 작은 보탬이 되지 않을까요?
뭔가 독특하고 실험정신 강한, 성실하고 유별난 분위기의 윤석우 농부는 아영포도 백과사전과 슬기로운 아영생활을 자연스럽게 넘나들며 이야기를 풀어냈다. 아영포도의 매력을 알기에 더더욱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농부의 아영포도 자부심이 더해지니 아직 꽃도 피지 않은 포도를 그 자리에서 주문할 뻔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중단되었던 포도축제가 다시 열릴 거라고 한다. 머지않아 지도를 들고 아영포도마켓 투어를 하는 여행자들이 발길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포도밭사나이’ 윤석우 농부가 친절한 안내자라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갑고 좋겠다. 그의 마음은 이미 그림 있는 포도밭 애리뜰을 활짝 열어둘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글 이경원
기획, 기록, 연결로 변화를 만드는 일과 사람을 돕는다. 2014년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궁금해서 찾았던 지리산시골살이학교 덕분에 지리산이음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때는 몰랐다. 7년이 지난 2021년 구례 남원 산청 하동 함양을 다니며 ‘농사를 업으로 하는 농부’들의 이야기를 글로 전하게 될 줄은.
사진/진행 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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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우 농부는 남원시 아영면에서 포도농사를 짓는다. 흙건축을 전공하고 건축공동체에서 일과 삶을 일구어 온 건축가이기도 하다. 지금은 포도농사와 건축 일을 함께 하고 있다.
8살, 11살 두 아이의 아빠이자 그림 같은 포도밭을 꿈꾸는 6년차 농부의 포도농장에 들어서자 농장이름의 주인공인 윤석우 농부의 아내가 그린 작품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말 그대로 ‘그림이 있는 포도밭’이다.
남원시 아영면으로 찾아가 만난 윤석우 농부
농장 이름이 참 예뻐요.
그림이 있고 누구든 뜰에서 놀 수 있는, 그림 같은 포도밭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농장이름을 ‘그림있는 포도밭 애리뜰’이라고 지었습니다.
인터뷰 요청을 받았을 때 많이 당황하셨다고요.
네. 저는 아영뿐 아니라 지리산권 다른 지역에도 관심이 많아서 지리산이음도 알고 논밭생활백과도 본적이 있어요. 그런데 인터뷰하자고 연락을 주셔서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포도농사만 5년 동안 지었고 작은 텃밭도 있지만 거의 방치농 수준이기 때문에 ‘내가 과연 농부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랄까요.
괜한 걱정을 하셨네요(웃음). 포도농사와 생태건축을 하신다고 들었어요. 아영에는 어떻게 자리 잡게 되었나요?
대학교 졸업할 때쯤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하지 못했어요. ‘난 뭐 하면서 살지’라는 생각을 하다가 마지막 학기에 휴학하고 산에서 생태건축하는 곳을 찾아 1년 정도를 보냈어요. 그러면서 흙과 나무를 이용한 건축을 하게 됐어요.
아영으로 오게 된 건 건축하는 팀들이 겨울철 같이 머물 곳을 찾다가 산청 백전면에 있는 온배움터와 인연이 닿았어요. 그러면서 같이 일하는 팀원 가족이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어요.
저도 목포에 신혼집이 있었지만 집을 비워할 시기가 되어서 ‘시골에서 같이 살자’ 아내를 설득을 했죠. 아내도 시골에 오고 싶어 했지만 아내 계획보다는 좀 빨리 오게 된 거죠. 전혀 연고 없는 아영으로 오게 된 거예요.
집은 아영이지만 건축을 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녔고 365일 중 300일 정도를 건축공동체에서 함께 살았어요. 아내와 3살 아이도 공동체 현장에서 같이 살기도 했고요. 그 당시 아이도 순천 현장에서 어린이집에 다녔어요. 그만큼 가족이 같이 지내고 싶은 마음은 컸던 거죠. 그러다가 이제 더 이상 어디로 다니지 말고 가족들과 한 곳에 머물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엔 지역에 안착하려고 일할 곳을 알아보기도 했는데, 제 성격과 맞는 곳을 찾기 어렵더군요. 지금까지 돈을 벌기 위해 회사를 다닌 적도 없었고, 돈을 벌기 위해 어딘가에 얽매여서 일한다는 게 사실 저에게는 맞지 않거든요(웃음).
생태건축가가 포도농사를 짓게 된 계기가 더욱 궁금해지는데요.
5년 전만해도 농사를 짓는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 했어요. 건축만 계속 해왔고 더 중요한 건 ‘내가 감히 농사를?’ 하는 게 있었어요. 농사는 뭐랄까요, 관행농법은 접근 자체가 약간 부담스러웠고, 친환경 농법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죠. 다가가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포도농사를 시작한 가장 큰 계기는 아버지의 은퇴였어요. 건축 일을 하시던 아버지가 은퇴하시면 아영으로 모시려고 계획하고 있었거든요. ‘아버지의 소일거리’로 생각한 게 포도농사였어요. 이곳 흥부골 아영포도는 가격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 있고 품질도 자리를 잡았죠. 브랜드도 많이 알려져 있고요. 지역에 살면서 관계를 많이 맺다 보니까 바로 시작할 수 있었던 게 포도였어요.
포장지를 씌운 포도, '한송이 더 먹고 싶은 흥부골 아영포도'라고 쓰여져 있다. (이하 사진제공 윤석우)
흥부골 아영포도가 맛있기로 유명하죠. 흥부골 포도는 작목밭 이름인가요? 지역공통 브랜드인가요?
제가 알기로 흥부골 아영포도는 아영면에서 생산되는 포도라면 누구든지 쓸 수 있도록 지역에서 만들어 낸 브랜드예요. 작년부터 아영, 인월, 운봉, 산내에서 수확하는 포도까지 통합해서 ‘흥부골 포도’로 브랜드명이 바뀌었어요. 물론 아영에서는 아영포도가 좀 더 낫다고 얘기를 합니다만(웃음), 인월, 산내, 운봉 지역도 고도도 비슷하고 맛과 품질도 비슷해요.
아영포도가 유명해진 지는 20년 정도 됐을 거예요. 그동안 전국 어디에도 뒤처지지 않게 품질을 월등히 높여놓은 거죠. 전에는 다른 곳으로 선진지 견학을 다녔는데 이제는 오히려 다른 지역에서 아영으로 견학을 오죠. 제가 느끼기에 아영포도 품질의 비결은 농가들이 같이 공부하고 교류를 많이 해서 인 것 같아요. 방범대 활동을 3년 정도 한 적이 있었는데 포도 농사철에는 포도 이야기만 하더라고요. 가격부터 병충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항상 정보를 공유하는 거죠.
지역에서 포도농사 정보를 교류하거나 같이 공부하는 모임이 있나요?
아영에는 작목밭이 10개 정도 있어요. 그 모임별로 서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정보를 교류하죠. 저는 7명이 모여서 포도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같이 공부하고 교류하고 있어요.
폴리페놀 포도는 같이 공부하는 스터디그룹에서 같이 만든 건가요?
네. 포도 스터디 그룹에서 미생물을 넣고 배양해서 폴리페놀 성분이 있는 영양제를 만들어 같이 사용하고 있어요. 포도농사 초보자인 저는 운 좋게 좋은 사람들을 만난 거죠.
특별한 친환경 영양제를 구해서 미생물을 첨가해 배양해서 사용하고 있어요. 폴리페놀 성분이 많이 들어간 영양제를 꾸준하게 주고 길러 폴리페놀 수치를 측정해보니 실제로 훨씬 많은 폴리페놀 성분이 나온 거예요. 그래서 폴리페놀 포도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포도는 다양한 이유로 맛이 좌우가 돼요. 기후, 물 관리, 영양제, 광합성까지 저는 포도에게 맛있게 자라라고 계속 말을 걸어요(웃음). 농가마다 영양제 성분에 대한 노하우들은 있죠. 영양제를 직접 만들어서 준다는 게 사실 쉬운 건 아니거든요. 일반적인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동을 들여야 돼요. 정성을 들여야 하는 거라 거기서 좀 차이가 있죠.
포도를 흐르는 물에 헹구고 있다.
포도 농사 규모도 궁금해요.
6년 째 임대로 농사짓는 비가림 노지 1,100평 포도밭과 4년 전 귀농창업자금 지원을 받아 마련한 한골 연동 포도밭이 1,100평 있습니다. 총 2,200평 포도농사를 짓고 있지요.
포도농사는 계획했던 대로 아버지와 함께 짓나요?
네. 아버지랑 거의 같이 해요. 올해 아버지 연세가 일흔넷이신데 포도밭 일의 70% 정도를 아버지가 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 주로 말과 행정적인......(웃음)
4월에 지리산권을 다니면서 사과꽃, 배꽃, 복숭아꽃을 많이 봤어요.
포도도 꽃을 볼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아직 조용하네요. 포도는 언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지 궁금해요.
이곳 고랭지 포도는 4월에 순이 나오고 5월 중순에 꽃이 펴요. 포도꽃이 자가수정되면 6월부터 포도알이 보이기 시작하죠. 수확은 8월20일 전후로 시작합니다. 하우스에서 온도 가두기를 해서 기르는 포도는 7월20일 쯤부터 수확 합니다.
여기서 잠깐! 윤석우 농부가 들려주는 포도 성장기 🍇
가지치기를 한 상태인 늦겨울~초봄의 포도나무
포도는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르게 자라는데요? 신기할 정도로.
포도가 엄청 손이 많이 가는 작물이라고 들었어요.
네. 포도는 노동력이 아주 많이 들어가요. 곁순이나 넝쿨손을 딸 때는 가족들이 같이 해요. 곁순이 끊임없이 나오거든요. 저희 가족은 아이들까지 나서서 도와줍니다.
거기다 6월에 포도꽃이 포도알로 바뀌면 알을 솎아줘야 해요. 포도는 처음에 300개 정도의 알을 달아요. 그런데 우리가 ‘포도송이 좋다’고 얘기하는 건 70~80개 정도 포도알이 달린 송이예요. 자연적으로 떨어지는 것도 있지만 인위적으로 모양을 잡아서 많은 것은 수 십 개의 포도알을 솎아줘야 하는 거죠. 그게 ‘포도 알 솎기’입니다. 가장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고 아주 중요한 작업입니다.
6월부터 출하되기 전까지는 곁순 따내고 포도 알 솎는 게 가장 큰 농작업이겠네요.
그렇죠. 우리가 보기 좋다고 하는 포도의 모양은 농부들이 일일이 만든 거예요.
포도알 솎는데 기술이 많이 필요하거든요. 아영포도가 품질이 좋다는 건 모양을 만드는데도 정성을 많이 쏟기 때문이에요. 다른 지역 포도에 비해 아영포도가 알이 크다고 얘기하는데 농부들이 정성을 들여서 만드는 거예요. 포도알의 개수를 줄여서 크게 잘 자라게 하고, 모양을 잡기 위해서 위에서부터 빼내는 알을 계산하면서 알 솎기를 하는 거죠.
‘손이 엄청 많이 들어간다’는 말이 확실히 이해가 됩니다.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네요.
알 솎기는 숙련이 돼야 할 수 있어요. 일일이 손으로 하는 사람도 있는데 정말 숙련된 사람은 가위로도 해요. 한 알 한 알 잘라내야 해서 가위로 하는 건 손이 정말 빠르고 정확해야 하거든요. 원하는 곳을 정확하게 잘라야 하잖아요. 알 솎기는 포도송이 맨 위 지경부터 9, 9, 5, 5, 3, 3, 3, 2, 2, 2, 2 이런 식으로 지경에 달린 포도알의 개수를 줄여서 송이 모양을 만드는 거예요.
포도꽃이 포도알로 바뀌면 개수를 계산해 알을 솎아줘야 한다.
알이 커지는 중인 푸른 포도들
포도 한 송이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군요. 이런 과정을 전혀 모르고 포도를 사고 먹었어요.
저는 회의나 지인들 모임을 포도농장에서 하기도 해요. 포도농사 첫 해에는 아이들도 체험하러 오기도 했어요. 종종 회의나 모임이 있을 때 오신 분들이 잠깐 알 솎기나 어깨송이 자르기, 곁순 따는 걸 도와주곤 했는데 ‘나는 도저히 못 하겠다’고 하는 분들이 많아요. 포도는 계속 서서 작업해야 하고, 가슴보다 더 높은 곳에 있다 보니 하루 종일 손을 든 상태에서 계속 따는 거예요. 더 중요한 건 빨리빨리 진도가 나가면 좋겠지만 가지 하나하나마다 손 갈 게 너무 많아 천천히 가죠. 오전 내내 일해도 아주 조금밖에 못 하는 거죠.
땅도 반듯한 평지가 아니기 때문에 발 앞쪽이 계속 들려 있어요. 처음에는 종아리가 아프고 점점 허벅지로 해서 허리까지 고통이 올라옵니다.
첫 해에 아버지가 은퇴 준비를 하시면서 같이 농사지었거든요. 그 때 ‘우리는 밭 하나 이상은 못하겠다. 더 늘릴 수는 없겠다.’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마을에서 포도농사 짓는 분들이 왜 피곤해 하는지 제가 농사를 지어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아영포도가 그냥 아영포도가 아니구나. 정성이 정말 많이 들어갔기 때문에 이렇게 흥부골 포도가 유명해진 거구나’라는 걸 많이 느껴요.
‘아영포도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농부의 정성과 고통으로 만들어진다’ 군요. 알 솎기는 한번만 해주면 되나요?
포도알을 솎으면 남아있는 알들이 점점 커지거든요. 그런데 너무 커지면 알들이 속에 숨기 때문에 꽉 배겨요. 말씀드린 것처럼 크고 좋은 송이를 기준으로 70~80알 정도만 남겨놔야 되는데 그 이상 있으면 속에 배긴 알들이 나중에 터져버리는 거죠. 열과라고 하는데 속에 있는 포도알이 터지면 발견을 못하기 때문에 안에서 상하거나 썩어서 날파리가 생겨요. 그러면 주변이 다 같이 오염되면서 송이 자체가 품질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아영사람들은 알 솎는 기간에는 어딜 가지 못해요. 하루하루가 소중하기 때문이죠.
흥부골 아영포도 포장지를 쓰고 익어가고 있는 포도들
아영은 포도재배에 적합한 지역이기도 하죠?
그럼요. 아영포도가 맛있는 이유 중에 하나가 지리적인 조건입니다. 해발 400미터 이상 되는 고랭지여서 낮과 밤의 온도 차가 커서 그 영향으로 깊은 맛을 내게 돼요. 그리고 이 지역의 토양과 지하수가 포도에 알맞게 좋은 조건이라고 하더라고요. 지리적인 특성상 기후가 잘 맞고 오랫동안 농부들이 많은 노력을 한 결과죠. 그래서 어쩌면 저는 그냥 숟가락만 얹은 거예요.
정성껏 키우는 포도는 언제 수확하나요? 생산량도 궁금합니다.
하우스 가온 시설한 곳들 중 가장 빠른 곳은 7월 20일 정도면 수확을 시작합니다. 일반 비가림 노지 포도는 8월 20일 쯤부터 출하하죠. 저는 3kg 상자 기준으로 6,000 상자 정도 생산하는데 해마다 달라요.
해마다 달라지는 이유가 기후변화 때문인가요?
저는 두 개 농장밖에 안 해서 비교하기는 그렇지만 2021년과 2020년을 비교하면 재작년에는 절반만 잘 되고 절반이 잘 안 됐어요. 순이 없을 때는 겨울잠을 자고 있으니까 냉해 피해가 덜한데 순이 올라올 때 냉해가 올 때가 있어요. 그럼 영향을 받는 거죠. 재작년에는 3월이 따뜻했다가 갑자기 추위가 온 적이 있어요. 그게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이상기후인거죠. 포도도 날씨가 따뜻하니까 일찍 잠에서 깨서 순이 빨리 올라온 거예요. 그리고 포도꽃도 일찍 피었죠. 그런데 갑자기 추위가 왔어요. 포도는 영상 18도 이상이 되어야 수정이 잘 되는데 온도가 10도 이하로 뚝 떨어지니까 이 지역 포도들이 수정이 잘 안되었어요. 손 쓸 방법이 별로 없었어요.
시설재배 농가는 작년 겨울에 난방비가 만만치 않았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농협에서도 지원은 해주는데 리터당 500원 정도였던 면세유가 지금은 1,200원이 넘어요. 두 배 이상 오른 거죠. 가온시설로 기르는 포도 농가들은 온풍기 틀기도 무섭죠. 농사를 크게 하는 사람들은 하루에 50만원~ 100만원 그냥 나가는 거거든요.
‘기후위기가 정말 심각하구나’ 농사지으면서 느껴요. 전에는 잘 몰랐어요. 포도 하나의 작물만으로도 올해 어떤 기후변화가 있는지를 이렇게 실감하게 돼요.
50년 후 한반도 과일재배지도가 확 바뀐다는 예측보고서를 본 적 있는데요, 포도도 이런 추세라면 산지가 바뀌게 될까요?
결국에는 포도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낮은 평야지대에는 점점 포도농사를 짓기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기후변화로 포도를 재배하기 위한 환경이 안 되는 것이죠. 점점 포도도 강원도처럼 좀 더 높은 지대로 올라가게 될 거예요.
기후위기는 한사람만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잖아요.
혼자만은 안 되죠. 그래도 혼자 조금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보자는 생각으로 조금씩 조금씩 실천하고 있어요. 작은 노력이 모여 작은 변화를 이끌어내야만 희망이 있다고 봐요.
하우스에서 미소짓고 있는 윤석우 농부
윤석우 농부의 흥부골 아영포도는 어떻게 판매하나요?
저는 직거래를 많이 해요. 지역에서는 조금 유별나다고 할까요.
농사짓기 2년 전에 지인에게 아영포도 맛을 보여줬는데 너무 맛있다고 감동하신 거예요. 부산에 있는 중학교 선생님인데 어느 날 “포도 좀 싣고 와라, 한 트럭”하고 연락이 왔어요. 주변 학교까지 ‘세상에 이런 포도가 있다’고 소문을 내서 주문을 받았대요. 저희 동네 이장님 포도를 싣고 배송을 갔어요. 포도 한 상자 판매가격에 천 원씩 더 붙여서요(웃음). 150상자니까 기름값 5만 원, 인건비 10만 원 정도로 해서. 그런데 또 난리가 난 거죠. 너무 맛있어서. 그다음 해에도 또 갔어요. 3년 차 때 농사를 안 짓는다고 했던 제가 포도농사를 지으면서 그분들이 자연스럽게 제 고객이 된 거예요. 그렇게 직거래로 조금씩 루트가 생겼어요. 지금은 작년 기준으로 전체 수확량의 50%를 넘겼어요.
저는 경제적인 것에 약간 둔하다 보니 포도를 파는 게 조금은 불편했어요. 포도에 값을 어떻게 먹여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형성되는 포도 가격은 해마다 다르고 출하되는 시기마다 달라지니까요.
저는 포도 가격을 해마다 고정 가격으로 정합니다. 작년에는 최상등급 3kg를 2만 5천 원으로 정했어요. 8월 5일 정도부터 판매를 시작하는데 이 시기는 공판장 시세가 3만 5천 원 정도예요. 제가 만 원 정도 낮은 가격으로 판매를 하면 주변에서 그렇게 판매하면 어떻게 하냐고 얘기를 하죠. 하지만 포도 가격이 비싸거나 싸거나 고정 가격으로 판매하기에 결국 같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다들 알고 이해해주세요.
많은 농부들이 직거래를 하고 싶지만 고객들과 소통을 아주 힘들어해요. 의외로 큰 감정노동이잖아요. 특히나 한창 수확과 출하로 바쁜 시기에는 더욱 어렵고요.
거의 대부분 그래요. 포도는 포도알이 잘 터져서 택배가 어렵거든요. 그래서 직거래를 거의 안 해요. 아무리 친한 지인이라도 받았는데 포도가 터져있으면 재주문하기 어렵잖아요. 배송이 어렵지만 저는 오히려 직거래를 계속 넓혀가고 있어요. ‘잘 전해지도록 될 때까지 해야 한다. 터졌으면 다시 보내주는 게 당연하다’ 그런 마음이랄까요. 보내고 나면 포도 잘 갔는지 항상 문자를 보내요. 정말로 전해졌는지 확인하면서 좀 더 마음으로 다가가는 거죠.
저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저는 직거래가 쉬워요. 내가 정성 들여서 키운 포도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신선하게 잘 전달되고 그분들이 맛있게 먹으면 서로 좋은 거잖아요. 내가 정성들이는 일에 자부심이 생기는 거죠. 저절로. 안정적인 판매도 중요하지만 항상 찾는 분들이 또 찾아 주시니까 그게 좋아요. 결과적으로 수익도 안정적으로 가게 되더라고요. 인근 산내면과 함양군에서도 점점 단골이 늘어나고 있어요. 직거래가 많이 늘어난 이유도 한 사람이 먹어보고 맛있다고 주변에 소개해서 고객이 두 사람으로 늘어났기 때문이에요. 제대로 그리고 진심으로 농사지어 포도의 품질을 좋게 하고 안전하게 전달만 할 수 있다면 흥부골 아영포도는 전국 어디에 내놔도 인정받을 수 있으니까 계속 노력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인지 직거래는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포도농사 지으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저는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상태에서 포도 농사를 시작했어요. 그래서 첫해에는 아는 농장 두세 군데를 들르기 위해 아침 일찍 해만 뜨면 밖으로 나섰죠. 지금은 익숙하기 때문에 포도 상태를 보면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만 처음에는 전혀 모르잖아요. 그래서 아침마다 다른 포도밭에 가는 거예요. 그리고 제 농장에 갔다가 저녁에는 또 다른 농장에 들렀어요. 그때는 밤 12시까지 공부도 엄청 열심히 했어요.
무엇보다 포도를 첫해부터 안정적으로 할 수 있었던 건 지역에서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쌓여있어서 가능했던 거 같아요. 관계가 잘 형성되어 있으면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잖아요. 도움도 받을 수 있고. 그래서 어렵지 않았던 거죠. 지금도 아영으로 젊은 사람들이 포도 농사를 지으러 많이 들어오고 있는데, 농사정보를 교류하는 분위기가 잘 형성되어 있고 쉽게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포도시설 짓는 것도 배우고 묘목 심는 것부터 수확하는 것까지 큰 어려움 없이 시작을 할 수 있는 거죠.
'그림있는 포도밭 애리뜰'이라는 이름처럼 농장의 벽면에는 그림이 걸려 있다.
생태건축을 하다가 갑자기 포도 농사를 짓는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돌아보면 저는 하고 싶은 것, 즐길 수 있는 걸 찾아서 살아왔어요. 예전부터 주변 사람들은 제 이런 모습을 지켜봤기 때문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어머님만 땡볕에서 농사짓는다고 걱정을 많이 하셨죠. 한여름에는 포도 잎이 무성하게 자라서 그늘 아래서 농사짓는다는 걸 아시고 크게 걱정은 안 하시는 것 같아요.
포도는 4월에서 9월까지 집중적으로 농사를 짓고 나머지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좋습니다. 그래서 그 외 시기엔 하고 싶은 건축을 할 수도 있고요.
아버지께 같이 포도농사를 짓자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응은 어떠셨어요.
아버지의 소일거리로 처음 시작했기 때문에 괜찮다는 분위기였어요. 포도농사는 깨끗한 농장에서 가족농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 거죠. 일정 기간 일손이 많이 들어가 힘들게 보여도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아영포도가 안정화가 돼 있기 때문에 큰 염려는 안하셨어요. 어머니가 ‘너무 무리하지 마라, 너무 늘리지 마라’고 당부는 하셨죠. 그런데 두 해 농사를 지어보니 경험이 쌓여 할 만 하더군요. 그래서 지금은 포도밭 두 개로 늘려서 짓고 있어요.
포도농사는 언제까지 지을 계획인가요?
저는 포도농사가 즐겁고 제 성격과 너무 잘 맞는다는 걸 알고 시작한 거거든요.
변화되는 모습들이 계속 보이는 것도 너무 좋고,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많은 시간들을 혼자 오롯이 보낼 수 있는 것도 너무 좋아요. 조용히 음악도 들을 수도 있고 혼자 노래도 부를 수 있어서 조금씩이라도 계속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제 VIP 고객들이 강제로 농사짓게 할 것 같아요(웃음).
당연히 건축도 계속할 계획입니다. 올해는 부모님 집을 지을 거고요, 몇 년 후에는 그림 작업실, 제가 원하는 건축공방을 만들려고 해요.
그리고 50대에는 새로운 재미있는 걸 찾아보려고 상상하고 있습니다.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트리하우스도 만들고 작은 도서관 설립에 참여도 했었는데 아영에는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너무 갈 곳이 없는 거예요. 50대에는 아영에 아이들, 어른들이 갈 수 있는 쉼터를 만드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작은 숲 안에 갤러리, 아이들 놀이터, 공방, 북카페가 있는.
농사 규모를 더 늘릴 계획은 없나요?
대부분 농부들은 젊을 때 더 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많은 일을 하고 있어요. 그 부분이 이해는 되지만 많이 안타까워요. 농사를 많이 짓더라도 재미가 있으면 좋지만 현실은 가족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잖아요. 문화생활도 줄어들게 되고요. 농번기 때 대부분의 부모들이 아침에 나가서 어두워질 때 들어와요. 이제는 농사기술이 좋아져서 365일 일한다고도 말하더군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저 또한 규모를 좀 늘려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저 스스로의 모순에 합리적인 이유를 갖다 붙이면서요. 가끔 ‘농사 잘 짓는다’는 것이 무얼까 생각해보곤 합니다.
포도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유심히 들여다보는 윤석우 농부의 모습
혼자서 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포도 농사가 좋다는 말이 인상적인데요, 또 어떤 순간이 즐거운가요?
우리 포도를 먹은 사람들이 맛에 놀라 감동하고, 포도 농사 덕분에 전국의 사람들과 인연을 맺는다는 것에 큰 행복을 느껴요. 포도에 손도 대지 않았던 아이들이 포도를 먹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듣거나 93세 어르신이 우리 포도를 먹으면 맛도 좋고 기운도 난다고 해마다 찾아주실 때 흐뭇하죠.
저는 포도를 주문한 분들과 문자를 주고받거나 통화를 많이 하는 편인데 소비자와 생산자 관계 이상으로 관계가 넓혀지며 소통하는 것, 제가 흐뭇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그 가운데 있어요.
제가 정성을 다해 포도를 키워 전하고, 받는 분들이 진심을 느끼며 따스함이 서로 전해질 때 즐겁지요.
에어백 포장도 정성을 잘 전하기 위한 고민의 결과물이겠네요. 처음 봤을 때 ‘우와 이런 신박한 방법이?’하고 놀랐어요. 신선도에는 문제없나요?
신선도에 큰 문제는 없어요. 소비자도 받았을 때 안 터져 있으니까 만족스러워 해요. 선물 받은 느낌이라며 좋아하더군요. 에어백은 제가 우연히 발견해서 여러 차례 실험을 해보고 적용한 건데 반응이 꽤 좋았어요. 하지만 코로나 상황에 전국 택배 물량이 많아지면서 에어백 포장도 한계가 있더군요. 그래서 스티로폼 포장으로 바꿀까 고민하고 있어요. 환경을 생각해서 스티로폼 사용을 안 하려고 했는데, 안정적인 배송을 위해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같아요. 스티로폼이 재활용품으로 잘 분리되어 재사용 될 수 있도록 안내문을 어떻게 작성할까 고민입니다.
아영으로 포도 농사지으려고 오는 젊은 층이 꽤 있다고 했는데요, 혹시 귀농, 귀촌을 염두에 두고 있는 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 있나요?
아영은 아직까지는 대부분 연고가 있어서 들어와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관계가 형성이 되어 있고 그 기반으로 농사에 대한 준비들을 하나하나 해가더라고요. 앞으로는 저처럼 연고 없이 아영을 찾는 분들도 많아질 것 같아요.
그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일단 ‘아영은 정말 살기 좋은 곳이다.’
아영은 여름에도 시원하고 안정화된 특작물이 있어서 자립을 잘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교육, 문화에 신경을 쓰는 분들도 많아지고 있어서 점점 살기 좋은 곳이 되고 있어요. 지리산도 있지만 가야고분 문화유적지, 산내 실상사, 운봉 허브밸리, 함양 상림공원 등 쉬면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들이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지리산 IC가 바로 옆에 있어서 교통도 편하고요. 안정적으로 농사도 짓고 즐기면서 시골 생활을 할 수 있는 블루오션이 있는 곳이라 생각합니다.
시골에서 농사도 짓지만 즐기며 사는 것에 관심이 많으시죠?
살기 좋은 농촌이 되어야 하잖아요. 살기 좋은 농촌은 꿈이 있는 농촌인거죠. 그래서 정책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교육, 문화, 의료 복지 분야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 가지 더 얘기하고 싶은 건 다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으면 좋겠어요. 다문화 가정은 계속 늘어나는데 관심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요. 같이 어울리고 어우러져야 하는데 그런 부분들은 목소리가 점점 더 작아지고 있는 게 현실이죠. 모두 함께 즐기고 어울릴 수 있는 소통의 장이 자주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농사 측면에서는 자기 노하우를 공유하는 모임이 지역 곳곳에 생기고, 즐겁고 슬기롭게 농사지으며 안정적인 귀농, 귀촌생활에 대해서도 함께 공유하는 자리가 많아지면 좋겠어요. 논밭생활포럼이었나요? 논밭생활백과에 인터뷰한 농부들이 모여서 1년 동안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는 영상을 봤는데 그런 분위기의 장이 자주 열려도 좋겠죠. 살기 좋은 시골로 한 걸음 더 나아가려고 고민하는 분들에게 작은 보탬이 되지 않을까요?
뭔가 독특하고 실험정신 강한, 성실하고 유별난 분위기의 윤석우 농부는 아영포도 백과사전과 슬기로운 아영생활을 자연스럽게 넘나들며 이야기를 풀어냈다. 아영포도의 매력을 알기에 더더욱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농부의 아영포도 자부심이 더해지니 아직 꽃도 피지 않은 포도를 그 자리에서 주문할 뻔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중단되었던 포도축제가 다시 열릴 거라고 한다. 머지않아 지도를 들고 아영포도마켓 투어를 하는 여행자들이 발길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포도밭사나이’ 윤석우 농부가 친절한 안내자라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갑고 좋겠다. 그의 마음은 이미 그림 있는 포도밭 애리뜰을 활짝 열어둘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글 이경원
기획, 기록, 연결로 변화를 만드는 일과 사람을 돕는다. 2014년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궁금해서 찾았던 지리산시골살이학교 덕분에 지리산이음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때는 몰랐다. 7년이 지난 2021년 구례 남원 산청 하동 함양을 다니며 ‘농사를 업으로 하는 농부’들의 이야기를 글로 전하게 될 줄은.
사진/진행 이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