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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군자랑이 아니라 자부심이자 사명감이지 – 구례군 광의면 김종옥


🌱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 대한민국에서 ‘전업농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궁금한 귀농, 귀촌 희망자
  • 감농사 제대로 지어보고 싶은, 진정한 멘토가 필요한 농부


단감재배 전문가 김종옥 농부는 구례에서 30년째 감농사를 짓고 있는 단감마이스터다. 그가 키운 단감은 탑프루트top fruit 에 선정되었다. 만나기로 한 당촌마을 입구에 도착하니 옥수수 택배박스가 우리를 먼저 반긴다. ‘아, 귀농한 아들 부부의 초당옥수수가 지금 수확철이구나.’ 잠시 후, 동네 모내기에 다녀왔다며 발갛게 익은 얼굴로 나타난 김종옥 농부는 아무래도 모내기보다는 새참에 집중한 듯하다. 겸연쩍게 웃으며 “별로 할 얘기가 없는데…” 했지만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많았다.


* 농업 마이스터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지정하는 재배품목에 대한 전문기술과 지식, 경영능력을 갖추고 이를 다른 농업인 등에게 교육・컨설팅 할 수 있는 ‘농업분야 최고의 장인(匠人)’으로 김종옥 농부는 2019년 단감분야 마이스터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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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를 마치고 당촌마을에서 만난 김종옥 농부



단감마이스터 김종옥 농부 소개부터 부탁합니다.

제 소개를 하자면 여기서 태어나서 군대 가기 전에 잠깐 서울 생활한 것 빼고는 지금까지 시골에서 농사짓고, 지금은 우리 농업인들에게 필요한 기술교육에도 참여하고, 다른 농부들도 그렇겠지만 내가 만들고 싶은 농장이 될 때까지 열심히 농사짓고 있는 농부입니다.


단감 농사지은 지 30년 정도 되신 거죠? 지금은 세 개의 농장에서 감농사를 짓는다고 들었습니다.

단감농사는 91년부터 시작했으니까 30년 된 것 같아요. 저희가 농사짓는 감농장이 다른 농장보다 좀 특별해요. 보통 과수원은 산에 있는 걸로 많이들 알고 있는데 저희 농장은 들에 있어요. 경지정리가 잘된 규격화가 된 농장이라 땅값은 비싸지만 그만큼 작업이 수월해요. 경쟁력 있는 땅을 선택해서 농사를 짓고 있지만 농장 범위를 키워나가기는 애로사항이 많아요. 감을 키우는 면적이 4헥타르, 만 2천 평정도 돼요.


드디어 헥타르 단위로 농사짓는 분을 만났습니다. 감농사만 만 2천 평을 짓는 건가요.

네. 감이 만 2천 평 되고, 몇 년 전에 아들하고 며느리가 귀농해서 지금 옥수수는 한 3헥타르, 만 평정도 짓고 있어요.


사실 면적으로는 규모가 잘 가늠이 안 되는데요, 감나무 수로 따지면 어느 정도인가요?

정확하게는 아니지만 다섯 평에 감나무 한 주라고 보면 2천 주가 조금 넘겠네요.  


그럼 수확량이 꽤 될 것 같은데요, 수확된 감으로 말랭이도 하고 곶감도 만드나요?

지금은 거의 생과로 나가요. 만 2천 평이라고 해도 2천 주를 100% 수확할 수 있는 건 아니어서. 조성중인 것도 있고, 성목도 있고 묘목도 있고 그래요.


재배하는 단감 품종은요?

원래는 주요품종이 부유였으나 지금은 소비자가 요구하는 태추라는 품종으로 계속 바뀌고 있어요. 부유도 일부 있고, 대봉도 있고, 그 다음에 종옥감은 많이 심지는 못하고 유지는 하고 있는 상태예요.


종옥감은 품종보존권자라고 하시던데요, 특허권자인거죠? 어떻게 개발하게 된 건가요?

그거 게을러서 그래요. 허허허.


* '종옥감'은 김종옥 농부의 이름을 딴 단감 품종을 뜻한다. 



네? 게을러서요?

묘목을 심어놨는데 관리가 잘 안됐어요. 내가 심었던 묘목이 죽고 그 뿌리에서 새로 나오면서, 종자에서 나온 씨라고 해야 할까? 씨에서 나온 종자예요. 감종자는 우리가 생각하듯 감씨앗을 심으면 그냥 그대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씨앗에서 수백 가지의 다양한 품종이 나와요.


감씨 하나에서요?

단감 씨를 심었는데 떫은 감도 나오고, 생김새도 다양하게 나오는데 그 중에서 묘목에 크고 예쁜 감이 하나 생겼어요. 그것을 관심 있게 보고 관리해서 특허를 받은 것이고요.


개발이 아니라 열매를 잘 관리해서 새로운 품종이 나왔다고요?

네. 지금 우리가 심고 있는 단감들이 농민에 의해서 개발이 되었다 보면 돼요. 일본에서부터. 정확하지는 않지만 태추단감은 부유단감이 벼락을 맞고 갑자기 변이가 와서 품종이 바뀐 거라는 얘기도 있어요.


농업기술센터나 연구소에서 품종을 개발하는 것만 아니라 자연현상으로 품종이 변하거나 농부들의 관리로 새로운 품종이 생기기도 한다는 거네요?

그렇지요. 품종을 개발해서 나온 감도 있지만 지금 우리가 심고 있는 태추단감이나 상서단감 같은 품종은 일본 농민들이 개발해놓은 거죠. 종옥감도 그런 식으로 나온 거고요.


종옥감은 이 농장에서만 재배를 하나요?

다른 농가에서 일부 가져가서 심는 분들도 있는데 실제 우리나라 농가에서는 감나무가 늘어나는 추세는 아니에요. 왜냐면 다들 관심들이 별로 없어요. 감농사 규모가 자꾸 줄어들고 있어요. 제대로만 하면 제일 돈이 되는데 농민들은 제일 돈이 안 된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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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현장에서 바라본 ‘논뷰’



감농가에서는 주로 묘목을 사서 농사를 짓나요?

거의 사서 한다고 봐야죠. 그런데 우리는 올해 키워서 접을 붙이려고 씨를 심어놨어요.

사서 쓰면 첫째 묘목 값이 너무 비싸고, 둘째로 품질을 4~5년이 지나야 알 수 있는데 사서 심다보면 뭐라 그럴까 잡동사니가 좀 섞일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베어내기도 그렇고 애매한 문제들이 생겨요. ‘내가 직접 고른 종자를 접붙이는 것이 원칙이다.’ 해서 이런 얘기를 교육에서도 많이 하고 다녀요. 앞으로 감농사를 지으려면 씨를 심고 키워서 접을 붙이는 것이 더 빠르다고.


씨를 심고 키우고 자라는 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은데요,

계산상으로는 늦어요. 왜 그러냐면 묘목은 작년, 재작년에 씨를 뿌려가지고 1년 후에 접을 붙이고, 1년을 키워서 우리 농민들한테 판매가 된단 말이여, 그럼 2년이 걸렸잖아요, 그 2년생 묘목을 심으면 바로 3년차가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내가 하는 방식은 씨를 심으니까 1년차부터 시작되잖아요. 그럼 사는 것보다 2년이나 늦어버리는 거지요. 그런데 4년, 5년이 되면 내가 심었던 묘목이 훨씬 잘 큰단 말이요. 잘 큰다는 것이 어떤 의미냐면 저는 단감마이스터니까 나무마다 특징을 잘 알잖아요. 감나무는 이식을 아주 싫어하는 품종이라서 그 자리에서 그대로 큰 것이 시작은 늦지만 빨리 큰다는 것이죠.

2년 늦지만 4년 후에는 1년이 빠를 수가 있어요, 묘목 값 덜 들어가고, 확실한 종자를 내가 선택할 수 있고, 빨리 클 수도 있고.


그런데 왜 대부분 묘목을 사서 심나요?

우리 농가들은 기술적으로 아직 그게 쉽지는 않아요. 접붙이는 걸 두려워하는 데도 있고. 다른 농가는 2년생 묘목을 심는데 씨를 심는 걸 이해를 하겠어요?


다른 농장은 심자마자 감나무가 되는데 내 농장은 그렇지 않으면 초조해진다는 거군요.

그렇지요. 그렇지만 실제 씨를 심는 게 훨씬 나은 방식이죠. 감농사를 지을 거라면.


감농사를 제대로 지으려는 농부에게 이 방식을 권한다는 것이군요. 감농사는 어려운가요?

감농사가 손이 많이 가요. 겨울에는 가지치기도 해줘야 하고, 여름에는 열매도 솎아줘야 하고.

4월에 나무에 잎이 나오기 시작해서 태추단감은 10월에 수확하니 생육기간이 6개월, 잎 나고 180일이에요. 그런데 우리 농가들은 그 기간을 못 기다리고 150일이나 160일 경에 수확을 해요. 그렇게 했더니 문제가 맛이 떨어지고, 크기도 작아요.


그런데 왜 한 달이나 먼저 수확하나요?

이 감이란 것이 숙기가 될수록, 익을수록 자꾸 지저분해져요. 부유단감은 익을수록 색깔이 노랗게 되어야 하는데 지저분해지니까 공판장에 가서는 제 값을 못 받아요. 덜 익었을 때 팔다보니까 소비자들 입맛에도 안 맞아, 맛이 떨어져요. 한 달 동안 햇빛 받아서 더 익어야 하는 것인데 그걸 못하니까. 한 달을 못 크니까 크기도 작고.  


빨리 수확하면 맛이 없고 크기가 작다는 걸 알면서도 생김새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게 속상하네요. 

파랬을 때는 깔끔하니 좋아, 익었을 때는 과피가 지저분해지니까 소비자들이나 누구나 봤을 때 안 좋다는 거지. 저희는 직거래를 하니까 소비자들이 그런 말을 안 하는데 공판장에 내는 농민들은 중개인을 통해서 가니까 맛은 둘째 치고 우선에 눈에 들지를 않는 거지. 맛이 제대로 안나니 처음에는 인기가 좋았는데 공판장에서도 점점 인기가 없어지고.

우리같이 키운 감은 공판장에서도 인기가 좋고 가격을 높이 쳐주는데 그렇게 키우기가 쉽지가 않단 말이여.


단감마이스터의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감나무는 평균 수명이라고 해야 할까요? 언제까지 수확할 수 있나요?

모든 과일이 그래요. 3년 되면 열매는 여나 3년부터 수확을 하면 성목되는 것이 늦어져요. 더 키워서 수확을 해야 해요. 감나무는 관리를 잘하면 대를 물려갈 수 있어요. 지금 30년이 넘게 과수원하고 있지만 보면 주변에 80년, 100년 된 나무도 많아요. 물론 감나무나 배나무나 사과나무나 나이가 들수록 품질은 떨어지지. 수확량도 떨어지고. 그건 사람하고 똑같아요. 똑같이 생각하면 돼요.


그런 감나무는 베어내고 다시 심나요? 

내 대에는 베어내는 것보다는 우리는 갱신이라고 하는데 늙은 가지를 쳐내고 새로운 가지로 바꾸는 거죠. 지금 새로운 가지로 갱신해나가면서 새나무로 바꿔가고 있어요. 이렇게 하면 우리 아들 대까지는 크게 신경을 안 써도 갈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해요. 싱싱하고 좋은 묘목으로.


이렇게 갱신해주면서 후계농인 아들이 대를 이어 농사지을 수 있게 해주시는 거네요.

원칙은 그런데 아들이 감나무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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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간식으로 대접받은 찐 옥수수 한 바구니



김상수 농부는 옥수수를 잘 키우잖아요. 판로 개척에도 바쁘고.
농장에서 생산되는 감은 어떻게 판매하나요? 자체적으로 온라인 쇼핑몰도 운영하시던데요. 

처음에는 공판장 거래를 100% 했죠. 판로가 없었으니까. 그러다 2001년부터 도로에 내놓고 팔았어요. 지금은 너무 많으니까 잘 안되지만 그 당시에는 노점에서 파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어요. 그때 노고단 가는 길이 나면서 차가 엄청 다녔어요.

무슨 소득이 생기냐면 좋은 감은 비싸니까 안사고 못생긴 걸 사간단 말이에요. 크기는 커도 공판장에 가면 돈 안 되는 것 말이죠. 많이도 안사요. 천 원어치, 2천 원어치 산에 가서 먹으려고 사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고객이 된 거예요. 특히 경상도가 단감 단지잖아요. 경상도 분들이 많이 왔어요. 먹어본 사람들이 먹는다고 그 양반들이 사가지고 가서 먹어보니까 입에 당기니까 주문을 해요. 한 사람이 맛을 보고 이 사람 저 사람한테 소문도 내주고. 진짜 입소문이야. 이거는.


말 그대로 입소문마케팅이네요. 도대체 얼마나 달고 맛있어서 그렇게 입소문이 났을까요?

자랑이 아니고 보통 감이 14.5브릭스면 평균적으로 맛있는 감이예요. 배는 11~12브릭스 정도인데 13브릭스까지 되는 농장들도 있고요. 그 정도면 배는 아주 단거에요. 그러니까 감하고 배하고 놓고 보면 배는 못 먹는 거여. 당도가 다르니까.

그런데 우리 감은 17~18브릭스가 나와요. 그것이 말이 안 되는 소리잖아. 설탕에 찍은 거나 다름없을 정도로 차이가 나요. 그러다 보니까 어떤 현상이 생기냐면 직거래가 조금씩 생기더니 어느 순간 직거래가 늘어나서 감이 모자라게 돼요. 감이 모자라니 어떤 전략이 되냐면 가격이 자꾸 올라가요. 가격이 비싸도 저희 단감맛을 알아주는 분들이 늘어나요.


그때부터 고급화 전략으로 가게 된 거군요.

소비자가 감이 크고 좋으니까 좋은 것만 달라고 해요. 저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그런 감을 자꾸 키워야 될 거 아니겠어요? 소비자가 원하는 과일을 만들어야 되겠다. 제가 단감마이스터가 된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고요.

좋은 감을 키우니까 소비자들이 자꾸 큰 놈을 찾아요. 그러면 나는 또 더 좋게 키우고 가격이 따라 올라가고 또 좋게 키우고. 자랑 같지만 대한민국에서 나만큼 과일을 크게 키우고 많이 생산하는 농장은 드물 겁니다. 맛은 이미 보장이 된 것이고. 저희 감 가격이 작년에 개당 7천 원까지 나왔어요.  


네? 감이 한개 7천 원이라는 건가요?

보통 좋은 감 한 개가 4천 원에서 비싸면 6천 원까지 해요. 개당 7천 원짜리는 제가 생산을 많이 못해요. 그런데 소비자들은 7천 원 정도 되는 감을 원해요. 그러면 나는 올해 개당 7천 원 받을 수 있는 감을 공략해야 되는 것이요.

농담이 아니고 4,5kg에 우리가 6만 원을 받아요. 보통은 12개~14개가 6만 원이라고요. 지금 많게는 9개까지 들어가는데 그게 6만 원이에요. 그런데 항상 감을 사먹는 사람은 무조건 좋은 감, 크고 맛있는 감을 원해요.

자기도 먹지만 선물하기 위해서 우리 감을 사요. 선물로 받아본 사람은 우리 감을 먹고 또 그 감을 주문해요. 그러면 나는 어찌해야 되겠어요? 그런 감을 만들기 위해서 내 나름대로 진짜 열심히 하는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나도 모르게 기술이 조금씩 더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고. 돈이 되는 걸 뻔히 보면서 가만있으면 뭐해, 감 품질을 키우다보니까 지금 나도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된 농업인이 된 거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 한 번 단감마이스터 김종옥 농부의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아직 한 번도 못 본 것 같아요. 그런 감을. 감은 선물하거나 받은 경험도 없고요.

우리 구례에서 농사짓는 사람들도 안 믿으려고 하는데, 실제로 작년에도 여기서 며칠이면 감이 바닥이 났어요. 지금도 감 언제 나오는지 물어보는 사람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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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단감부분 농업마이스터 지정, 김종옥의 감'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쓰인 벽에서 단감마이스터의 자부심이 묻어난다.



좋은 감을 위해서 계속 공부하고 키우는 게 어려운 과정이기도 하잖아요. 힘들진 않으세요?

제가 어디 가서 이런 얘기를 많이 해요. ‘우리 농민은 일을 작게 하는 편이다.’

지금은 좀 더 하는데 10년 전만 해도 농부들이 일 년에 보통 60일정도 밖에 일을 안 했어요. 통계가 있어요. 제가 그래서 농민들한테 직장 다니는 사람처럼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그 시간에라도 농장에서 제대로 일하면 당신들 농장은 광이 난다고 말해요. 실제 그렇게 일 안해요. 옆에서 봤을 때는 저 양반이 새벽부터 일어나서 일하고 비가 와도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따지고 보면 그렇게 일을 많이 안 해요.


감농사만 그런 건가요? 아니면 일반적으로 농사가 그런 건가요?

감농사는 그래도 일을 많이 해요. 예전에는 과수가 돈도 되고, 제일 고급농이었는데 지금은 제일 힘든 편이에요. 그 때는 인부들 인건비는 싸고 과일 값이 비쌌어요. 그런데 지금은 따지고 보면 과일 값이 싸. 품질에 비해서. 옛날에는 모내기를 일일이 손으로 했지만 지금은 기계화 되었지. 그런데 과수는 기계화가 될 수가 없어요. 전부 인력으로 하다보니까 과일 값은 오르지 않고 인건비는 많이 상승하고 인부들 구하기도 힘들어요. 지금은 그런 게 제일 힘들죠.


단감마이스터 김종옥은 농사가 어렵긴 하지만 농부들이 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군요.

나는 일을 많이 하지만 일부 감농사 짓는 사람들 보면 좀 방치라고 할까요? 약 좀 치고, 전지하고, 수확하는 식이예요. 아, 풀 좀 베주고.

그러다보니 항시 우리들하고 차이가 나버리는 거지. 우리는 안 좋은 거, 잘못된 거 보면 가서 보는 족족 솎아내고 햇빛이 잘 못 들어가면 어떻게 해서라도 햇빛을 들도록 유인하고 그러다보니 일거리를 계속 만들잖아요. 

우리 집사람이 맨날 나한테 하는 말이 딴 사람들은 가만히 놔둬도 잘 먹고 잘 사는데 맨날 일 벌린다고 하는데 감나무 농사짓는 사람들한테 저는 이렇게 말해요. ‘배하고 사과 농사짓는 사람들은 다 대학생들이다. 기술적이고 경험적으로 짓는다.’

감농사는 전업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요. 옛날부터 자투리땅이 있으면 심어 놓고 별로 일을 안 해요. 쉽게 키우는 농사지요. 그래서 감농사 짓는 농부들은 유치원생부터 대학원생까지 다양하게 있는데 여기서 조금만 더 노력하면 대번에 대학생으로 간다고. 대학생들끼리 경쟁을 하려면 힘든데, 감은 내가 조금만 하면 유치원생이 대학교까지 바로 갈 수 있는데 왜 안하느냐 말이에요.


그러고 보니 감나무는 시골집 마당에 흔히 볼 수 있고, 가꾸거나 키운다는 느낌보다는 열리면 따 먹는 과일이었네요.

사과, 배는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안 돼요. 그런데 감은 심어놓으면 열려요. 따먹든 말든 감은 열려요. 감은 울타리과 과일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표현하기를 ‘개미군단이 없어져야 한다.’해요.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그냥 심어놓은 감나무는 품질이 안 좋잖아요. 그런데 시골에서 자식들이 서울에 있으면 그걸 따서 보내요. 먹어보면 감이 맛이 없잖아요? 한번 맛없으면 사람들은 감을 안 찾아. 그런 개미군단이 없어지면 감 값이 조금 더 올라가지 않을까 싶어요. (웃음)


기술교육에서 이런 얘기 하시면 농부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마음을 쉽게 안 열어요. 농민은 자존심이 강해요. 남한테 기술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살짜기 옆에서 그냥 보고 가요. 지금 감농사 짓는 사람들이 거의 20년, 30년 지은 사람들인데 자기들 고집으로 지금까지 키워온 것인데 옆에서 누가 얘기한다고 그 사람들이 듣겠어요? 그리고 또 잊어버려. 금방 듣고 그렇게 해야겠다고 하다가도 농장에 가서 다른 일하다 보면 생각처럼 실천이 잘 안 돼요. 기술센터나 기술원에서 교육시켜서 농사 잘 될 것 같으면 다 내 수준으로 만들어 버렸지.

배나 사과는 농민들이 열심히 하지 않으면 살아남지를 못하니 적극적으로 공부를 하니까 전부 다 대학생들 수준으로 가는 건데 감은 아직까지는 그렇게 안 되는 것 같아요.


* '살짝'의 전남 방언으로 김종옥 농부 표현 그대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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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옥 농부가 단감 농사로 받은 상부터 손주가 학교에서 받아온 상까지, 온 가족의 자랑스러운 기록이 벽 하나에 빼곡히 걸려있다.



단감마이스터 김종옥 농부는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건가요?

제가 1982년도에 요즘말로 귀농을 해서 농사를 지었는데 트랙터로 수도작 농사를 많이 지었어요. 그때만 해도 우리 집사람이 트랙터로 벼 수확하는 걸 사람들이 이해를 못했어요. 여자가 자동차 운전하는 자체를 이해를 못했어요. 90년대 초까지도 그랬어요. 차도 없던 시절인데 우리가 87년인가 89년인가 화물차 중고를 한 대 샀는데 광의면에 한 대밖에 없어. 화물차가. 그런데 그 차를 여자가 운전하고 다니니까 구경거리가 됐어요.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모내기를 이앙기로 하고 트랙터로 로터리치고 하는 걸 도저히 이 지역에서 이해를 못해요. 여자가 그렇게 한다는 건 더더욱. 그 때는 교통수단이 오토바이였는데 어디 가서 술을 한잔하면 서로 이야기를 해. 저 사람이 김종옥이다 하고 다들 수군대고 쳐다봐요. 찾아와서 아는 체도 하고. 김종옥이라는 사람이 농사를 열심히 짓는다는데 이름은 들어봤는데 얼굴은 모르니께 와서 아는 체를 해요. 그런 일도 있었어요.

그런 과정에서 지금은 고인이 된, 나보다 12살이 많은 분이었는데 그 양반이 배농장을 하는데 나를 예뻐했어요. 자기가 농사짓는 것을 기계로 좀 도와달라 해서 갔더니 “종옥아, 너 그러지 말고 과수원을 해라. 천 평이나 2천 평만 해봐라.” 하는 거예요.

그때는 배나무 하나가 벼농사 서마지기 만큼 나올 때였거든요. 지금은 그만큼 배 값을 안쳐주지만 그때만 해도 과일이 생산해 놓으면 비싸게 팔릴 때니까. 항상 나를 만날 때마다 ‘과수원을 만들어라.’ 해요.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과수원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그런데 왜 배농사를 안 짓고 감농사를 지었어요?

그것도 사연이 있어요. 돈은 없고 힘든데 배나무를 심으려고 땅을 조성하고 있을 때였는데, 아버님이 어디서 들었는지 읍에서 군청에 다니던 분이 퇴직하고 감농사를 짓는데 그 때 돈으로 5천만 원을 번다는 거예요. 감 값이 엄청 비싸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가 빚을 내서 감 묘목장사한테 계약금을 줘 버렸어요. 그 때만 해도 돈이 없어서 힘들었어요. 이리도 못하고 저리도 못하고 감나무를 심을 수밖에 없었어요. 나무를 심어는 놓고 제대로 못 짓다가 실제 감농사는 97년부터 적극적으로 짓기 시작했죠.


아, 그래서 시작한지는 30년이지만 제대로 짓기 시작한 게 25년이 된 거군요.
25년 농사에, 단감마이스터가 되기까지 농사일지나 종옥감 개발노트라든가 기록물이 꽤 될 것 같은데요?

원칙은 일지를 매일 써야 하지만 매일 쓰려면 얼마나 힘들어요. 잘 안되더라고요. 방제라든가 특별했던 것, 올해 우리가 아들하고 파종을 하면서 올해는 늦었으니 내년에는 언제쯤 해야겠다, 내년에는 어떻게 하자 이런 것들을 기록하지요.

중요한 건 거의 집사람이 많이 쓰지요. 휴대폰에. 그래서 작년에 이맘때 우리가 뭘 했고 이런 걸 찾아보죠. 나보고 왜 안 쓰냐고 해서 당신이 잘 쓰는데 나까지 뭐 하러 쓰냐고 하지요. (웃음)


아들부부가 귀농해서 함께 농사를 짓고 있는데요, 어떠세요?

안 좋아요. 싫어. 못 내려오게 하려고 애를 많이 썼어요. ‘네가 내려오면 내가 평생 일을 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사이라도 가까이 살다보면 싸움이 날 수 밖에 없다. 구례 사는 사람하고 서울 사는 사람하고 싸울 일은 없다. 그런데 우리가 같은 집에 살면 아무리 부자지간이라도 트러블이 생길 것이고 싸울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오지마라.’했어요.

그랬는데 이유가 있었어요. 우리 손자가 몸이 약해서 서울에서 학교를 보내는 것보다 시골에 있는 학교에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내려오게 되었어요. 손자 때문이라는데 어떻게 말려요. 아들하고 며느리가 잘하기는 참 잘하는데 내가 뭔가 보이지 않는 눈치가 보여요.

요즘에 드는 생각이 우리 부부가 열심히 일은 많이 해요. 그런데 돈은 아들이 버는 것 같아. 그래서 일하는 인부들은 돈을 제대로 주면서 왜 나는 주지를 않느냐, 앞으로 최저임금이라도 꼬박꼬박 챙겨줬으면 좋겠다고 하고 있어요. 나는 최저임금만 받으면 여유롭게 살 것 같아.

어제 그저께는 스무 시간을 일했더라고요. 택배가 밀리니까 집사람은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박스 접기부터 시작해서 저녁 9시에 일이 끝났으니까. 다른 거 다 빼고 하루에 5시간만 잡더라도 내가 최저임금 15만 원짜리는 된다. 그런데 우리 내외가 30만원을 달라고 하면 아들은 남는 게 없겠지 뭐. 근래 들어 갑자기 든 생각이 쟤들은 내 노동력을 바탕으로 그 돈을 벌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허허허.


보통 귀농하면 아들이 아버지 눈치를 본다고 하던데 아닌가 봐요?

내가 돈을 쓸라면 은근히 눈치가 보여요. 어영부영 주도권이 넘어가버렸어.(웃음)


다음에 기회 되면 두 분을 모시고 같이 얘기를 들어봐야겠습니다.
감농사 30년이면 강산이 세 번 변한 건데요, 그동안 기후위기 타격이 있기도 하고, 나름대로의 대비책도 생겼을 것 같아요. 

기후위기에 대비해서 우리가 해볼 수 있는 건 없어요. 앞으로도 대비가 쉽지 않아요.

4월 20일이 되면 서리가 안 오는 것이 정상인데 작년에는 4월 20일에 서리가 와 버렸어요. 올해도 남원 이런 데는 감나무가 많이 죽었어요. 얼어서. 우리도 일부 냉해피해를 받기는 받았어요. 작년에 우리 일부 농가들이 냉해 때문에 사과고 배고 수확량이 급격히 떨어졌어요.

2010년인가 11년인가 서리 때문에 우리도 일 년 농사를 완전히 버린 적이 있어요. 수확기에 서리가 내려서 감이 얼어버렸어요. 그때 권산이란 분이 내 손사진을 찍어서 ‘김종옥의 손을 팝니다’ 해가지고 인터넷에 올려서 감을 팔아준 적도 있어요.

작년에는 또 비가 억수같이 와서 일부 감농사 짓는 사람들은 망했어요. 투자한 만큼 못 건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내 평생에 최고로 잘 된 해였어요. 나뿐만 아니라 자기 농사 잘 지은 사람들은 자기 평생 최고의 해였다 해요. 50년 동안 농사지은 지인도 이런 농사는 내 평생 처음이다 했어요. 나머지 90% 이상은 완전히 망했죠.


농사가 잘된 10% 농장들의 비결이 궁금합니다.

저희 땅은 다섯 평에 감나무 한주를 심기 위해 평당 만 원 이상을 투자했어요. 땅에 퇴비를 어느 정도 했냐면 다른 사람들 100포대 정도 넣을 때 우리는 차로 100대는 넣었을 거예요. 그 퇴비를 땅에 있는 흙하고 섞어서 해놓으니 그 뒤로는 알아서 잘 되는 거예요. 우리가 지금 숨을 쉬고 있잖아요. 사람이 숨 쉬는데 산소가 21% 필요하다는데 나무뿌리도 땅 속에서 숨을 쉴 수 있도록 21% 산소가 들어갈 공간을 만들어줘야 된단 말이야. 누가 그렇게 할 것이냐는 거예요. 농업도 투자를 해야 해요.

우리 농민들은 감나무만 보면 묘목 하나가 얼마냐 그걸 따져요. 비싸다 싸다 따지지 말고 묘목은 최고 좋은 놈을 심는 것이 원칙입니다. 묘목 값이 만원이면 그거 비싸다 하지 말고 거기다 4배, 5배를 곱해서 기반 조성을 해가지고 농사를 지어야 돈이 됩니다.


성실도 해야 하고 투자도 해야 하고, 김종옥 농부의 농장은 이런 노력과 투자로 만들어진 거군요.

지금 농민들은 감나무 전지를 어떻게 하는지만 배우려고 하는데 실제는 땅이 기본이 되어야 해요. 농사는 기본 틀이 잡힌 상태에서 해야 해요. 관리는 그 다음 두 번째고.


품종도 기후변화에 따라 달라질 것 같은데요.

봄에 서리 맞으면 일단 농사를 포기해버리면 되는데 가을에 서리가 와버리면 그 때는 정말 참 문제가 되어서…, 지금 조생종으로 바꾸려고 하고 있어요. 태추단감이 다른 감보다 15~20일 정도 빨라요. 태추종자 다음에 상서조생으로 바꿔야 해요. 부유는 만생종이라 11월 15일까지 가야 수확이 마무리 되는데 그때까지 가면 좋은데 그 안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그런데 상서조생은 11월 5일이 되면 수확이 마무리될 수 있어요. 추워지는 날씨에는 3~4일도 엄청난 차이가 나요. 그래서 조생종으로 거의 바꿔가고 있어요.


농사는 과학이군요. 수확이 대충 9월 말 10월 말 이런 게 아니라 날짜까지 구체적이네요.
구례도 귀농, 귀촌 한 분들이 꽤 있다고 들었습니다. 농촌지역에 귀농인구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귀농하신 분들, 열심히 사는 분들 많아요. 반대로 도시에서 적응 못하고 온 사람들도 있고 또 일부는 여유가 있어서 좋은 데서 살기 위해서 오는 분들도 있고요. 열심히 살기 위해서 오는 사람들은 달라요. 그 분들 보면 지역주민들하고 잘 지내려고 하는 것이 보여요. 그렇지 않은 분들, 피난 온 분들은 주민들하고 잘 안 어울리고 좀 시건방져요. 우리 시골 사람들을 무시하는 게 안 보이는 것 같지만 다 보인단 말이여.


주민들 눈에는 다 보이는군요.

뭐라고 말은 못하지 자기 사는 방식인데. 인사만 잘해도 마을에 어른들도 다 좋아할 것인데 그걸 안 해. 안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지금도 도시에는 귀농, 귀촌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제2의 인생으로 농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 주시렵니까?

저는 옛날부터 직장 다니는 사람들한테 많이는 필요 없고 노후에 천 평이든 2천 평이든 과수원을 만들어 놓으면 소일거리도 되고 소득이 된다고 말해요.

우리 같은 전업농 소득이 평당 10만 원이라고 치면 천 평이면 1억이 되는데, 삼분의 일 소득만 올리더라도 직장에서 일 못하고 떨어져 나온 사람이 그 정도 번다면 얼마나 좋겠소. 그런 마음으로 귀농하신 분들도 농지 구하기는 힘들죠. 그래서 기껏해야 하우스에 달려들고 남이 과수원 하다가 망한 땅에 지으니 엄청 어렵잖아요. 그래서 작은 땅에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것은 감농사다, 감농사를 지어라 해요.


기승전감이네요.

귀농, 귀촌하시는 분들도 고급 농사를 지으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 남들보다 더 맛있고 더 예쁘고 더 크게 만들어낼 수 있는 농사 말이에요.

혼자서는 맘대로 안 되니까 농사 잘 짓는 사람들이랑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이고요. 우리 농민들한테 자존심이 있다 했잖아요? 농업기술이라고 하는 것은 직접 가르쳐줄 것이 없어. 우연히 같이 있다 보면 감농사 짓는 사람들은 감이야기가 8~90%란 말이에요. 어려운 게 있으면 그 이야기 중에 해결책이 자연스럽게 나온단 말이에요. 그러니 농사 잘 짓는 사람들하고 사이좋게 잘 어울리란 말이지. 귀농 귀촌하신 분들 시골에 농부들 얼굴도 시커멓고 뭘 알까 싶지만은 농사에는 전문가들이거든요. 농민들은 배우겠다고 하면 뭘 요구하지 않아요. 그냥 술 한 잔 같이 하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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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로 만난 김종옥 농부



농업에 대한 관심이 많이 없다고 하지만 정부나 지자체에서 농업인과 농촌을 위한 정책들을 내 놓고 있어요.  

농민들한테 관심이 없죠. 정부에서는.

올해만 해도 양파는 넘치고 마늘은 모자라고 그렇단 말이에요, 그러면 분명 정부에서는 마늘은 수입을 할 것이고 양파는 껌 값도 안 되는 금액으로 일부를 수매할 것이란 말이에요. 농부들이 한쪽에서 망했으면 내년에 잘 지으면 뭔가 삶이 바뀔 거라는 희망이라는 게 있어야 하는데 못되었을 때는 수입을 해서 들여오고 잘 되었을 때는 정부가 방치를 해 버리는 식이라 희망이 없어요.

정부에서 우리 농민들한테 몇 조를 쓴다고 하는데 실제로 우리 농민들이 생산을 하는데 쓰는 게 아니고 제가 보기에는 거의 다 기반조성 하는데, 예를 들자면 농토를 관리하는 데로 다 가버리는 것 같아요. 직접적으로 생산자한테 안가요. 지자체에 돈이 없어서 그렇겠지만 구례는 유득히 생산자들한테 지원하는 게 궁색해. 군수하고 면담할 때도 얘기해요. ‘우리 구례가 농촌도시인데 공사 조금만 덜하고 그 돈 농민들한테 돌리면 우리 농민들한테도 생활의 변화가 올 것인데 도로 조금만 늦게 되면 어떻습니까.’ 하지만 그게 제가 말한다고 되겠어요.


* 부사 '유독히', '유독'의 전남 방언으로 김종옥 농부 표현 그대로 싣는다. 



요즘 얘기가 나오는 농민소득을 의미하는 건가요?

농민들한테 꼭 돈을 주라는 소리는 아니에요. 필요한 만큼 줄 수도 있고 받을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농민들이 재미있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구조가 되면 좋겠다는 거예요.

지금 보면 시골에서 농사지으시는 분들이 부부가 농사를 지으면 5천만 원 농업소득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단 말이에요. 나하고 집사람하고 둘이 열심히 농사 지어봤자 농가소득이 5천만 원이 안 된다는 거예요. 정부에서 뭘 해야 될 것이냐면, 농산물 값을 안 올려줄 것 같으면 시골 농부들한테 지원을 해서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게 판로라도 만들어줘야 하는 것인데 잘 지으면 방치하고 못 지으면 수입해버리니까… 정부에서는 우리 농민들 안 죽을 만큼만 관리를 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 감농사는 계속 지으시겠죠?

옛날에는 ‘나는 60살이 넘으면 절대 농사일을 안 할 것이다’ 했어요.

지금 보면 우리 스스로가 아직은 젊었다. 아직은 젊어요. 내가 지금 64살인데 과연 내가 일할 수 있는 나이는 언제까지인가 생각해보면 잘해야 75세까지일 것 같은데… 일을 늦게까지 할 수 있다면 건강하다는 것이니 ‘건강만 하다면 농사는 지어야겠다.’하지요.


특별히 이루고 싶은 꿈이 있나요?

하고자 하는 마음은 많지요. 안 따라주지요. 힘이. 나이가 들어가니까 일하기 싫어져. 힘들어요. 지쳐요. 옛날에는 어떻게 일을 했냐 싶어요.



그 순간, 80년대 후반 트럭과 트랙터로 광의면을 휩쓸었던 김종옥 농부의 아내, 서순덕 농부가 등장했다.
“당신, 새롭게 시작하는 거 있잖아”라는 말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가요?

감은 같은 품종인데 개간을 다시 하는 거예요. 땅을 다시 엎고 새 품종으로.

‘내가 단감마이스터로 무엇을 해야겠나?’ 해서 올해부터 ‘대한민국에도 이런 과수원이 있구나!’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과수원을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감나무 가지 배치가 100그루든 200그루든 똑같이 펼쳐지고 똑같은 방향으로 가도록 하는 것인데 감농사 짓는 사람들이 견학을 와서 보면 도움이 될 수 있는 농장을 만들려고 해요.


그렇게 되면 수확량이 많아지나요? 아, 일조량과 관계가 있겠네요.

수확하고도 관계가 있고 품질하고도 관계가 있고 앞으로 관리하는 데도 좋을 것이라고 봐요. 제일로 중요한 것이 일조량이고 통풍하고도 관계가 있지요.


몇 년이나 걸릴까요?

완성시키고 죽을랑가는 모르겠는데 시작했으니까 5, 6년 정도면 과수원 형태는 나올 것이요.


그날이 오면 신문에서 다시 뵐 수 있겠네요.

전국에서 감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그 농장은 한번 가봐야겠다.’하는 정도로 만들려고 하고 있어요.


역시! 단감마이스터로 자부심과 사명감까지 느껴집니다.

저는 과수를 하니까 감을 가지고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데 전에 한라봉 농사를 짓는 사람이 우리 농장에 왔어요. 우리 감 하나에 7천 원 한다 했더니 한라봉보다 더 비싸게 받느냐고 해요. 그래서 “이 양반아, 한라봉 하나에 당신 얼마나 받느냐, 잘 받아야 하나에 2~3천 원밖에 더 받느냐, 한라봉 지금 소비자들이 찾느냐 천혜향 찾지.” 그랬어요.

농사짓는 사람들도 감을 별거 아닌 걸로 친단 말이에요. 근데 한라봉과 비교를 해? 천혜향이 감하고 비교가 될 것 같으냐 말이지요.(웃음)


진짜 마지막 질문입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가장 흐뭇했던 순간은 언제입니까?

없는 돈으로 과수원을 일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왜냐면 기다려야 하잖아요.

과수는 10년이 되어야 성목이 돼요. 땅에서 투자를 해야 하는 과정이 쉽지 않단 말이지. 옛날에는 과수원 하는 사람을 존경했어요. 끈질기게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다 해서. 처음에 시작할 때 땅도 없고 빚만 있는데 과수원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 집사람하고 고생을 많이 했고요.

보람이라는 것은 일 년에 다섯, 여섯 사람한테는 꼭 듣는 말이 있어요. “당신 덕분에 좋은 선물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감하고 귤은 선물이 아니라고 해요. 자기가 사먹기는 해도 선물용 고급 과일로 안치죠. 그런데 우리 감을 선물을 받아보신 분들이 선물한 사람한테 고맙다고 한다는 거죠. 고맙기로 치면 우리가 더 고맙지.



자랑이 아니라지만 마음껏 뽐내도 좋을 자랑이었고, 그 자랑에는 농부의 자존심, 자부심, 사명감이 단감처럼 달달하고 단단하게 잘 익어있다. 성실하지 않은 사람을 못 견뎌할 것 같은 농부는 인터뷰 내내 감농사는 조금만 노력하면 더 잘 키우고 더 잘 팔 수 있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사람들에게 이 말을 꼭 알려달라고 당부하듯.  


김종옥 농부의 농사이야기처럼 우리에게도 우여곡절, 고군분투의 시간이었다. 갑자기 레미콘이 굉음을 내며 지나가다 잠잠하다 싶으면 택배를 싣고 갈 트럭이 들어왔다가 나가고, 어디선가 트럭이 장비를 싣고 와 우당탕탕 내린다. 마지막에는 빗방울까지 떨어졌다.


뭔가 아쉽다. 아무리 귀 기울여도 김종옥 농부의 이야기를 완벽히 들을 수 없었다는 것, 그리고 특유의 말투를 글로 제대로 전할 수 없다는 것도. 머지않아 30년차 베테랑 김종옥 농부와 3년차 새내기 김상수 농부를 같이 모시고 이야기를 들어볼 날을 기대하며 아쉬움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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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경원

기획, 기록, 연결로 변화를 만드는 일과 사람을 돕는다. 2014년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궁금해서 찾았던 지리산시골살이학교 덕분에 지리산이음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때는 몰랐다. 7년이 지난 2021년 구례 남원 산청 하동 함양을 다니며 ‘농사를 업으로 하는 농부’들의 이야기를 글로 전하게 될 줄은.


사진/진행 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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