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 부부가 함께 농사짓는 삶, 시골에서 농부로 살아보고 싶은 예비여성농부
- 친환경 배 농사와 과수원을 준비하는, 멘토가 필요한 예비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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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숙 농부는 남원에서 남편 강성철 농부와 함께 친환경으로 배농사를 짓는다. 새참을 준비하거나 농번기에 잠시 손을 보태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농사를 짓는 전업농부다.
배 과수원으로 향하는 좁은 길을 따라 농부가 사는 이층집 마당에 도착했다. 아침에 고추밭에서 일하고 들어와 잠시 쉬는 중이라는 상냥하고 다정한 28년차 시골살이 농부의 농사 이야기, 아니 사는 이야기에 스르르 빠져든다.

남원시 덕과면에서 만난 김윤숙 농부
반갑습니다. 부부가 함께 배농사를 짓는다고 들었어요. 꽤 오래 되셨다고요.
네, 결혼한 지는 28년 되었는데요, 그때가 남편이 농장을 만들고 배나무 심은 지 3년째 되던 해였어요. 그러니까 우리집이 배 농사지은 건 이제 30년 정도 되었네요.
강성철 농부는 어떻게 배 과수원을 시작했는지 궁금해요.
남편은 여기서 나고 자랐어요. 군대 제대하고 농사를 짓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작물이 중요하잖아요, 동네에 사는 친한 형님이 배 농사를 짓고 있었대요. 그 당시에는 배가 비싸고 값을 쳐주는 과일이어서 배 농사 한번 지어 보라고 해서 시작했다고 하더라고요.
김윤숙 농부는 남원이 고향인가요?
저도 고향은 남원인데 어릴 때 서울로 이사 갔어요. 서울에서 학교 졸업하고 직장을 다녔는데 20대 중반에 그냥 시골로 오고 싶었어요. 결혼해서 시골에서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왔어요.
시골에서 살고 싶어 농부와 결혼하고 농사도 짓게 된 거네요.
(웃으며) 네. 시골에서 농사짓는 남자를 만나 자연스럽게 농사를 짓게 됐어요. 어렸을 때 과수원집에 대한 로망이 있었거든요. 그냥 배 과수원 한다기에 사람도 좋아 보이고 해서 결혼했어요.
처음에는 그냥 아이들 키우고 시부모도 계시니까 농사에 크게 관여 안 하다가 15년 전 부터는 본격적으로 저도 같이 농사를 짓고 있어요. 그 전에는 일꾼들 새참을 해주거나 뒤에서 일을 도와주다가 배 솎아주고 싸주는 일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깊숙이 관여하고 있죠. 배 농사 처음부터 끝까지.
농사짓는 사람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모두 반대했죠. 우리 친구들은 밤새 ‘너 미쳤느냐’고 했어요. 제가 서울 생활이 너무 지치다 보니까 그때는 빨리 시골로 내려오고 싶었어요. 그런데 연고지도 없이 혼자 내려와서 뭘 어떻게 하겠어요. 여기가 고향이니까 친척들이 살고 계셨어요.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달라고 했더니 외숙모가 남편을 소개시켜주더라고요. 만났는데 좋더라고요. 사람이 착하고 말도 잘 통하고 잘 생겨서… 그래서 만난 지 한 달하고 이틀 만에 결혼했어요.(웃음)
아주 용감하고 빠른 결단력의 소유자시네요. 집이 참 예뻐요. 결혼했을 때부터 여기 살면서 농사지었나요?
아니에요. 과수원은 원래 여기 있었지만 본가는 율천 마을이에요. 본가에 살면서 왔다 갔다 했는데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여기다 집을 짓자고 해서 하우스에서 살다가 20년 전에 무리해서 집을 지었어요. 요즘 말로 영끌이라고 하죠?(웃음) 여기서 우리부부, 애들 넷하고 시부모님 모시고 시동생들도 같이 살았어요.
과수원 전체 규모는 얼마나 되나요?
규모는 만평 정도 돼요. 남편이 지난번에 세어보니 배나무가 800그루 정도 되는 것 같았어요. 하우스에 유기농 배가 있고요. 노지는 그동안 저농약으로 짓다가 올해부터 무농약으로 짓기 시작했어요. 원래는 여기가 완전 야산이었어요. 강성철 농부가 포크레인으로 직접 파서 계단 만들고 나무도 직접 심고해서 일군 거예요. 처음에는 큰 밭 하나였는데 저 밭도 사고, 그 옆 밭도 사고, 또 그 밑의 밭도 사고 진짜 하나씩, 조금씩 늘여 온 거예요. 5~6년 전에도 이 정도까지의 모습이 아니었어요.

김윤숙 농부의 과수원 전경
30년 농사짓는 동안 25년은 계속 농장을 만드는 일이 이어졌겠네요.
네. 계속 만들었어요. 투자를 계속 했던 거죠. 땅 사고 포크레인으로 땅 파고.
웃으며 너무 평온하게 얘기하시지만 엄청 힘드셨죠?
농사는 30년 지었지만 산을 땅으로 일구고, 나무 심고 수확을 한다 해도 배농사로 돈을 벌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을 것 같아요.
그렇죠. 나무를 심어놓고 3년 후에 수확을 한다고 하는데 그래봤자 수확량이 얼마 안 되었으니까 돈은 안됐죠. 어머님이 장에 가서 팔기도 하고 해서 조금씩 그 수입이 있었죠. 그리고 논농사를 지었었거든요, 3년 전에 강성철 농부가 대장암 수술을 했어요. 이제 논농사는 남한테 맡기고 일을 좀 줄여서 하고 있어요.
배는 주로 어떤 품종을 재배하세요?
배도 종류가 많은데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품종이 계속 달라져요. 우리만 해도 9개 품종 정도 돼요. 신고배가 가장 많고, 올배, 수확시기가 빠른 원황배, 모양이 특이한 황금배. 사람들이 큰 배를 좋아하는데 작아도 맛이 있는 추황배도 있고요. 원황배는 국산품종인데 배는 품종끼리 교배해서 이름을 붙여요. 신고와 화산이 교배하면 ‘신화’고, 풍수하고 만수가 교배하면 ‘만풍’이 돼요.
품종마다 수확시기도 다르겠네요.
네. 품종마다 시기가 다 달라요. 저희도 9월 초에 원황배를 따요. 원황은 저장성이 없기 때문에 추석 전에 빨리 따서 빨리 팔아야 해요. 조금 있으면 황금배, 만풍배, 신고배, 추황배, 만풍배 순서로 따요. 저장성은 신고배가 제일 좋아요. 늦게 나올수록 저장성이 높아지죠.
이렇게 많은 품종을 키우려면 묘목은 사서 심어야겠네요? 과수원에 배나무는 계속 더 심고 있나요?
네. 주로 묘목회사에서 사서 심어요. 작년까지는 새로 많이 심었어요. 기존에 있던 배나무를 베어내고 새로운 품종으로. 그런데 품종이 계속 바뀌니까 앞으로 새로운 나무를 더 심을 수도 있고 심지 않을 수도 있어요.
배 농사는 농한기가 없나요? 한해 농사는 몇 월부터 시작하나요?
농한기가 따로 없어요. 겨울에는 전지하고, 배 수확이 끝나면 바로 전지한다고 생각하면 돼요. 한 달 동안 전지하고 나면 새로 난 가지 중에 남겨 둔 가지 하나를 눕혀서 끈으로 묶어줘야 해요. 그래야 배가 열렸을 때 우리가 딸 수 있거든요. 일이 많아요.
4월에 꽃이 피고, 지고 나면 바로 열매가 맺으니까 5월부터는 또 솎아야 해요. 요새는 냉해가 있어서 꽃을 솎지 않아요. 꽃에 열매가 맺을지 안 맺을지 모르니까 열매 맺은 걸 보고 솎아줘야 해요.

솎아내기를 끝내고 열매에 봉지를 씌운 배 나무 가지의 모습
원래는 꽃을 솎는데 기후 변화 때문에 열매를 솎는 걸로 농사 방식이 변하게 된 거네요.
네, 가지 맨 끄트머리는 배가 안 달리기 때문에 원래는 꽃을 솎아야 해요. 그런데 혹시라도 배가 안 열리게 되면 끝에라도 있어야 해서 그렇게 못하는 거죠. 배 솎아내기가 끝나면 6월 말부터 7월까지 배를 싸주죠.
벌레나 새가 먹을까봐 싸주는 건가요?
그렇죠. 벌레도 못 먹게 하고 배는 노래야 되니까 색깔 때문에 씌우는 것도 있고요. 안 그러면 배 색깔이 빨개요. 안 예뻐요, 색깔이. 그러면 사람들이 싫어하죠. 배가 노랗고 예뻐야 하니까 봉지를 씌우는 거죠.
하우스 배는 계속 유기농으로 지어왔고, 올해부터는 노지에서 키우는 배도 무농약으로 짓는다고 했는데요, 친환경 배 농사를 지으려면 특별히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엄청 신경 쓰이죠. 당연히 친환경 제재를 써야 하고 특별히 더 신경 쓰는 건 풀 관리예요. 풀이 있어야 천적이 생기니까. 벌레를 풀로 유인하는 거죠. ‘제발 풀에 붙어 있어라. 배에 가지 말고’ 그러려고 풀을 키우는 거죠.
다른 배 농장 가보면 아주 깨끗할 거예요. 그런데 우리 과수원 보면 배가 클 때 배나무랑 풀이랑 같이 자라요. 그래서 좀 지저분해 보여요.(웃음) 지금은 배 딸 때가 되어서 조금 깎긴 했어요. 또 땅에 유기물도 충분히 줘야 하니까 풀을 키워야 해요.
친환경 농사지으면 주변에서 농가들도 농약을 치면 안 되잖아요. 그것도 되게 신경 쓰이죠?
농약 그거 절대 안 돼요. 그래서 우리 근처 논 주인들도 제초제를 못 써요. 다 깎아야 해요. 좀 미안하죠. 그래도 부탁을 드려야죠. 다 이웃사촌들이니까 이해를 해 주시죠.
이렇게 키운 친환경 배는 어디로 출하하나요?
옛날에는 덕과면과 사매면 합해서 배 농사를 짓는 사람이 40명이 넘었어요. 그래서 작목반을 만들어서 남원우리고운배라는 브랜드로 출하를 했는데 지금은 배 농가가 다섯밖에 안 남았어요. 지금 우리 배는 생산품 모두 아이쿱생협에 내고 있어요. 친환경이니까 가능해요. 괴산아이쿱 물류센터로 보내면 거기서 작업하고 포장해서 전국으로 가요. 그런데 우리는 농사를 좀 못 짓는 편이예요. 과일이 작고 못생겼죠.(웃음)
요새는 친환경도 예쁘고 크고 맛있어야 소비자들이 좋아하는데, 우리는 작게 지으니까 생협으로 나가는 것보다 버려지는 게 많죠. 그냥 버려지는 것도 많아요. 못 생긴 건 안 가져가요.
생협이면 못생긴 배도 받아줄 것 같은데 그건 아니군요.
100% 전업농으로 힘들게 친환경 배농사 지어서 버려지는 배가 많으면 속상할 것 같아요.
속상하지만 어쩔 수 없죠. 시골에서 살면 돈이 많이 안 들어요. 그리고 이번에 애들이 셋 다 취직을 했어요. 배 농사는 잘 못 지어도 자식농사는 잘 지었어요.(웃음) 그래도 농사지어서 아이들도 키우고 땅도 사고 그랬죠. 농사도 4~5년 전부터는 좀 기반이 잡혔어요. 수확량도, 매출도 조금씩 오르고 있고요, 작년에는 냉해 때문에 수확량이 거의 없어서 저조했지만 그 동안은 매출이 1억 넘게 나와서 그냥 먹고 사는데 괜찮아요.

남원시 덕과면에서 만난 김윤숙 농부
작년에는 냉해 피해를 크게 입었다고 들었어요.
네. 작년에는 수확량이 재작년의 30%밖에 안 되었어요. 그냥 막 이상해도 달려 있는 건 무조건 땄기 때문에 상품성 있는 것도 별로 없었어요. 그러니까 작년에는 거의 수입이 없었죠. 올해는 농업기술센터에서 열풍방상팬을 설치해줬어요. 기름을 떼서 열풍이 나오게 하는 건데 와, 희한하게 올해도 냉해가 있었는데 그 팬 있는 쪽은 배가 기본은 열렸어요. 없는 쪽은 작년이랑 똑같이 안 열리고요. 냉해는 이제 해마다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거기에 대비해야 할 것 같아요.
작년에 갑자기 냉해가 있었던 건가요?
아뇨, 냉해는 그동안에도 조금씩 있었어요. 그래도 꽃이 핀대로 배가 되니까 20개 중에 19개를 솎아낸다고 해도 상품성 있는 배 1개를 만들 수가 있었어요. 냉해가 있어도 배가 2~3개 살아 있어요. 그러니 그 중에 예쁜 배를 고를 수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수확량은 그렇게 차이가 없었어요. 그런데 작년은 아예 아무것도 열리지가 않은 거죠. 그렇게 돼버렸더라고요.
전에는 적당한 냉해는 오히려 편하다고 했어요. 안 솎아도 되니까. 그런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우와, 냉해가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작년에 생각했죠.
30년 동안 농사를 지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기후변화가 확 느껴지셨겠네요.
많이 느끼죠. ‘와, 기후가 이렇게 무섭다’ 얘기해요. 작년에는 정말 완전히 폭탄 맞은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모든 시기가 빨라지고 있어요. 꽃피는 시기가 빨라지니 배도 빨리 열리고, 수확 시기도 앞당겨지고요.
품종을 바꾸는 것도 기후 변화와 관계가 있나요?
품종을 바꾸는 건 기후변화보다 소비자들 기호변화가 커요. 크고 맛있는 배를 원하시니까. 소비자들이 식감이 좋은 배로 취향이 바뀌는 것 같아요.
배농사 짓는 농가가 줄었다고 했는데요, 그분들은 이제 농사를 안 짓는 건가요?
다른 종류로 바꿨어요. 복숭아로 많이 바꾸시더라고요. 복숭아가 일단 농사 기간이 짧아요. 여름에 빨리 따서 빨리 팔아버리니까 돈이 빨리 나오잖아요. 농사도 8~9월이면 끝나더라고요. 또 복숭아가 농사짓기가 좀 편한가 봐요. 무엇보다 돈이 일단 된대요. 아무래도 수입이 잘 되냐 못 되냐. 일이 덜 힘드냐, 더 힘드냐가 중요하죠.
거기다 배는 무겁잖아요. 그러니까 조금 더 가볍게, 일하기 수월한 걸로 바꾸는 것 같아요. 우리는 아직 젊으니까, 배 박스 드는 게 아직까지는 괜찮더라고요.(웃음)
여러 명이 같이 배 농사를 지으면 상의할 사람도 있고 재미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때는 재미있었어요, 진짜로. 돈벌이가 잘 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같이 모여서 작업하는 게. 지금은 다섯 농가 밖에 없으니까 그런 재미는 없죠.
요즘은 농사짓다가 어려움이 있거나 정보가 필요할 때 어떻게 하세요?
인터넷? 유튜브? 하하하.
그렇죠. 이웃보다 인터넷이 더 가깝고 정확할 때가 있죠.
혹시 구독하는 채널이 있나요? 어떤 키워드를 가장 많이 검색하세요?
따로 구독하는 건 없어요. 요즘은 고추를 제일 많이 검색해요.
배는 그래도 벌써 30년이나 농사지었기 때문에 강성철 농부는 강의도 하러 다녀요. 그리고 아이쿱생협 생산자 중에 천안에서 친환경 농사, 유기농 배로 한국에서 1등하는 농부가 저희 멘토여서 그 분께 도움을 많이 받아요. “형님 오늘 비가 오는데 뭘 해야 됩니까?” 바로 전화해서 물어보죠.
요즘 지자체나 농업기술센터는 특작물 위주로 정보나 지원을 많이 해준다고 들었어요.
우리도 기술센터 도움을 받지만 아무래도 인기 작물이나 새로운 작물을 많이 지원해줘야 하니까 우리는 좀 많이 배제되어 있죠. 우리가 알아서 살아남아야 돼요.
과수원 규모가 이 정도면 김윤숙, 강성철 농부 두 분으론 감당이 안 될 것 같아요.
못하죠. 일꾼들이 항상 있었어요. 동네에. 바쁠 때는 7~10명이 같이 일해요. 일 년에 300~400명 정도가 우리 과수원에서 일했더라고요. 올해는 처음으로 솎아주기 할 때 이주노동자들과 같이 일해 봤어요. 너무 돈을 많이 달라고 해서 그냥 포기했어요. ‘그냥 내가 하루 한 번 더 하지 뭐’ 이렇게 마음먹고 했어요.
‘그냥 내가 하루 한번 더하지’가 말이 쉽지요. 혹시 ‘내가 왜 농사를 짓겠다고 했을까’ 후회한 적 없나요?
아뇨. 절대 후회 안 해요. 전 너무 좋아요.
과수원 농사기록은 누가 담당하나요?
농사일지는 강성철 농부 담당이에요. 친환경 인증을 위해서는 일지를 써야 하니까 꾸준히 계속 쓰고 있어요. 저는 결혼해서부터 생활 일기를 많이 썼죠. (웃음)

‘스물 아홉의 신세대 주부’ 김윤숙 씨를 다룬 기사
지리산이음에서 농부들의 농사일지나 농사기록을 공유해서 서로 의견을 주고받고, 농부들이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작업을 해보려고 해요.
아 그래요? 공유는 할 수 있겠지만 어차피 우리는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에 관심 있는 분들은 별로 없을 것 같은데요, 요즘 친환경 농사를 잘 안 지어요. 돈이 안 되기 때문에. 귀농, 귀촌하시는 분들이 처음에 친환경 농사를 짓고 싶어 하다가 3년 정도 해보고 잘 안되면 그냥 관행농으로 넘어가는 걸 봤어요.
친환경이 힘들어요. 버텨야 하니까. 제 주변에도 생협에 딸기 납품하는 작목반 말고는 친환경농사 짓는 분들 없어요.
농사지으면서 제일 뿌듯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그냥 지금까지 잘 버텨온 것이 뿌듯한 거죠. 똑같은 거 계속 하고 있고, 그리고 서로 후퇴하지는 않았으니까요. 힘들기는 했지만 조금씩이라도 발전이 있었고 이 나이 먹도록 지금 이만큼이라도 살 수 있게 된 것이 보람이에요.
친환경 농사짓는 농가에게 특별한 지원이 있나요?
저는 사실 그런 건 잘 몰라요. 강성철 농부가 그런 건 알아서 챙기고 있어요. 생협에서도 생산자를 위해서 지원도 해주고, 시나 면, 농협에서도 지원을 해줘요. 그래서 할 수 있어요. 작년에 냉해 피해 입었을 때 생협에서 약제를 지원해줘서 요긴했어요. 시골에 살면 나라도 든든하고, 면사무소도 든든하고 농협도 든든해요. 많이 지원을 해주니까요.
여성농업인으로 활동을 따로 하시나요? 여성농민회라든가.
여성농업인으로 활동을 따로 하진 않고요, 마을에서 부녀회장하고, 생활개선회 총무도 하고, 농악 활동으로 장구도 치고요. 생협 생산자 이사이기도 한데, 여기 딸기, 배농가들 교류에 아주 큰 역할을 하는 건 아니고요. (웃음) 제가 누가 부탁하면 거절을 잘 못해요. 오늘 인터뷰도 그렇고요.
농사만 짓는 게 아니라 마을 일을 많이 하시네요. 마을 부녀회장이면 엄청 일이 많을 것 같아요.
부녀회장은 마을 회관에서 밥해먹으면 가서 뒤치다꺼리도 하고. 농협에서 뭘 팔아야 한다고 하면 마을 분들한테 연락해서 ‘필요하시느냐’고 물어보고 팔기도 하고요. 막 드러나지는 않아도 저는 그런 게 좋아요.
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을 하는 게 전문이시네요.
농촌에서 여성농부들이 굉장히 많은 일을 하는데 이게 해도 티 안 나는 일이 많은 것 같아요. 집에서 농사짓고 마을에서 부녀회장으로 어르신들, 마을살림 챙기는 게 사실 엄청난 노동인데… ‘그냥’ 한다고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지만 들어보면 되게 많은 일을 하시거든요.
그래요? 그냥 하는 거죠. 뭐. 출근하듯이 그냥 하는 거예요.

김윤숙 농부가 배 과수원을 배경으로 미소를 지으며 서 있다.
한 해 농사에서 제일 바쁜 시기는 언제인가요?
배 솎고 쌀 때가 제일 바쁘죠. 그때는 진짜 시간이 촉박해요. 해내야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까. 5월, 6월은 그냥 하루 종일 배 솎는 것만 해요. 새벽에 눈 뜨자마자 나가서 깜깜해질 때까지 계속 일하는 거죠. 다 솎아질 때까지. 여름에는 거의 하루 14시간 정도 일해요.
그럼 그나마 한가한 시기는요?
요즘이죠. 과수원은 지금은 수확 앞두고 농장 둘러보는 정도예요. 까치가 너무 많아서 한 바퀴씩 돌아봐야 해요. 그물을 치는 과수원도 있지만 그러면 새가 안 들어가야 하는데 작은 구멍만 있어도 들어가니까 그걸 다 관리하느니 차라리 ‘드세요, 그냥 드세요, 드실 만큼 드세요’해요.
요새는 고추 따러 다녀요. 남의 집 일도 좀 도와주고요. 오늘, 내일은 아는 언니들 집 고추 따주기로 했어요. 고추는 그냥 한나절 따는 거니까.
얘기를 나눠보니 그동안 농촌에서, 농부로서 삶의 고단함도 있었지만 참 행복해하는 것 같아요.
누군가 ‘나 농촌에서 살고 싶어’하면 귀농, 귀촌 추천하시겠어요?
네. 전 좋아요. 시골은 서울보다 나아요. 서울은 진짜 각박하잖아요. 뭐 하러 서울에 살아요.
시골에서 하루 일당을 시급으로 따지면 서울보다 작겠죠. 그래도 서울이라고 맨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여기서 고추 반나절만 따도 4만 원 이상은 받아요. 일이 힘들기는 해도 하루 생활할 수 있는 돈은 벌수가 있잖아요. 일거리가 많으니까 자기가 조금만 부지런하면 도시보다 벌이도 좋고, 생활하는데 돈도 많이 안 들어가니까 도시보다는 더 평화롭게 살 수 있어요. 전 환영이에요. 같이 도와주기도 하고 일도 배우고 그러면 서로 좋죠.
그렇다고 시골이 무조건 후하지는 않아요. 사람 사는 건 시골이나 도시나 똑같아요. ‘시골에 오면 모든 사람들이 할머니처럼 잘해줄 줄 알았다’는 얘기 저도 들었어요. 그건 선입관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시골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 커요. 그냥 똑같아요. 사람 사는 건.

과수원 내부에 서서 본 풍경
농부로서, 또 여성 농부로서 바라는 점이 있다면 얘기해주세요.
농부 입장에서는 누가 인력을 좀 지원해줬으면 좋겠어요. 일할 사람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지금 인건비가 하루에 7~8만원이에요. 인건비가 1년에 만 원씩 오르고 있어요. 일손이 부족하지만 인건비를 달라는 대로 다 줄 순 없어요. 어느 정도 기준선은 있어야죠.
어디서 인건비를 2~30%라도 지원해준다든지 하면 너무 좋죠. 예를 들어 일당을 10만원 달라고 해요. 그러면 농가에서 7만 원을 내고 정부나 지원기관에서 3만원을 지원해주면 큰 도움이 되죠. 그런데 지금은 농가에서 10만원을 줘도 실제 일꾼들이 10만원을 받는 게 아니라 인력사무소에 내는 수수료가 많다고 들었어요.
여성 농부 입장에선… 저만해도 농사를 짓지만 농업정책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얘기하잖아요. 대부분이 남편이 알아서 잘 하겠지 생각해요. 시에서도 정책이나 새로운 사업이 있으면 여성농부들에게도 정책을 소개하거나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간담회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면 좋겠어요. 어차피 남편이 알아서 한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여성농부들도 뭔가 알면 좀 낫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혹시 배 말고 다른 농작물을 키워볼 계획도 있나요?
지금 농장 한쪽에 체리를 120주 심어놨어요. 친환경으로 체리를 한번 해보려고요. 심은 지 3년 정도 되었는데 아직 수확은 안 하고 있어요.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왜 체리를?
제가 체리를 좋아해요.(웃음) 배가 10월, 11월부터 돈이 나오니까 배 농가는 여름에 수입이 없어요. 체리는 6월부터 돈이 되니까요. 배는 솎고 싸고 따는게 너무 힘들고 과일이 무겁잖아요. 그래서 여름에 나오는 과일 중에 속지도 않고 싸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은 것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체리를 한번 해보자 했어요. 요즘은 소비자들이 크기도 작고 씻어서 바로 먹을 수 있는 과일을 많이 찾고요.
자녀가 넷인데요, 혹시 농사를 물려줄 생각이 있는지 궁금해요. 농사를 짓겠다는 자녀가 있나요?
네. 저희는 물려줄 생각이 있어요. 그래도 직장생활은 일단 해보라고 해요. 아직은 우리가 젊으니 농사를 짓는 데까지 짓고 우리가 70대가 되고 너희도 20~30년 직장생활하고 퇴직할 정도 되면 와서 지으라고 해요.
아들이 쌍둥이예요. 둘이 같이 합심해서 농사지으며 여기서 살라고 해요. 전에는 우리가 돈벌이로 농사를 지었는데 지금은 ‘이런 것도 만들어 놔야 우리 아이들이 좀 편할까, 이렇게 해야 좋겠지’ 그런 생각도 많이 해요. 그래서 과수원 일구는 재미도 있어요.
오늘 인터뷰 어땠나요?
제가 이런 인터뷰가 처음이라…. 남편이 하는 것만 옆에서 봤지 내가 이런 걸 한다는 것 생각을 못했어요.
덕분에 김윤숙 농부의 28년 시골살이 농부 이야기 정말 잘 들었어요.
저는 시골이 너무 좋아요. 지금도 너무 좋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예요.
그냥은 그냥이 아니었다. 김윤숙 농부와 얘기를 나누며 ‘그냥’이라는 단어에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걸 실감했다. ‘그냥’의 뚜껑을 하나씩 열 때마다 여성으로, 농부로,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딸로, 부녀회장으로, 주민으로 살아온 시간들이 살아났다.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지만 힘듦은 없었던 게 아니라 그냥으로 덮고 잊고 사라진 것이리라. 배 농사는 잘 못 지어도 10년 전에 들어둔 적금과 잘 자란 자식들 덕분에 마음에 쏙 들게 리모델링했다는 이층집과 지금도 시골에서 농사짓는 이 삶이 너무 행복하다는 김윤숙 농부 미소가 우리도 그냥 좋다.
글 이경원
기획, 기록, 연결로 변화를 만드는 일과 사람을 돕는다. 2014년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궁금해서 찾았던 지리산시골살이학교 덕분에 지리산이음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때는 몰랐다. 7년이 지난 2021년 구례 남원 산청 하동 함양을 다니며 ‘농사를 업으로 하는 농부’들의 이야기를 글로 전하게 될 줄은.
사진 임현택
진행 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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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숙 농부는 남원에서 남편 강성철 농부와 함께 친환경으로 배농사를 짓는다. 새참을 준비하거나 농번기에 잠시 손을 보태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농사를 짓는 전업농부다.
배 과수원으로 향하는 좁은 길을 따라 농부가 사는 이층집 마당에 도착했다. 아침에 고추밭에서 일하고 들어와 잠시 쉬는 중이라는 상냥하고 다정한 28년차 시골살이 농부의 농사 이야기, 아니 사는 이야기에 스르르 빠져든다.
남원시 덕과면에서 만난 김윤숙 농부
반갑습니다. 부부가 함께 배농사를 짓는다고 들었어요. 꽤 오래 되셨다고요.
네, 결혼한 지는 28년 되었는데요, 그때가 남편이 농장을 만들고 배나무 심은 지 3년째 되던 해였어요. 그러니까 우리집이 배 농사지은 건 이제 30년 정도 되었네요.
강성철 농부는 어떻게 배 과수원을 시작했는지 궁금해요.
남편은 여기서 나고 자랐어요. 군대 제대하고 농사를 짓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작물이 중요하잖아요, 동네에 사는 친한 형님이 배 농사를 짓고 있었대요. 그 당시에는 배가 비싸고 값을 쳐주는 과일이어서 배 농사 한번 지어 보라고 해서 시작했다고 하더라고요.
김윤숙 농부는 남원이 고향인가요?
저도 고향은 남원인데 어릴 때 서울로 이사 갔어요. 서울에서 학교 졸업하고 직장을 다녔는데 20대 중반에 그냥 시골로 오고 싶었어요. 결혼해서 시골에서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왔어요.
시골에서 살고 싶어 농부와 결혼하고 농사도 짓게 된 거네요.
(웃으며) 네. 시골에서 농사짓는 남자를 만나 자연스럽게 농사를 짓게 됐어요. 어렸을 때 과수원집에 대한 로망이 있었거든요. 그냥 배 과수원 한다기에 사람도 좋아 보이고 해서 결혼했어요.
처음에는 그냥 아이들 키우고 시부모도 계시니까 농사에 크게 관여 안 하다가 15년 전 부터는 본격적으로 저도 같이 농사를 짓고 있어요. 그 전에는 일꾼들 새참을 해주거나 뒤에서 일을 도와주다가 배 솎아주고 싸주는 일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깊숙이 관여하고 있죠. 배 농사 처음부터 끝까지.
농사짓는 사람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모두 반대했죠. 우리 친구들은 밤새 ‘너 미쳤느냐’고 했어요. 제가 서울 생활이 너무 지치다 보니까 그때는 빨리 시골로 내려오고 싶었어요. 그런데 연고지도 없이 혼자 내려와서 뭘 어떻게 하겠어요. 여기가 고향이니까 친척들이 살고 계셨어요.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달라고 했더니 외숙모가 남편을 소개시켜주더라고요. 만났는데 좋더라고요. 사람이 착하고 말도 잘 통하고 잘 생겨서… 그래서 만난 지 한 달하고 이틀 만에 결혼했어요.(웃음)
아주 용감하고 빠른 결단력의 소유자시네요. 집이 참 예뻐요. 결혼했을 때부터 여기 살면서 농사지었나요?
아니에요. 과수원은 원래 여기 있었지만 본가는 율천 마을이에요. 본가에 살면서 왔다 갔다 했는데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여기다 집을 짓자고 해서 하우스에서 살다가 20년 전에 무리해서 집을 지었어요. 요즘 말로 영끌이라고 하죠?(웃음) 여기서 우리부부, 애들 넷하고 시부모님 모시고 시동생들도 같이 살았어요.
과수원 전체 규모는 얼마나 되나요?
규모는 만평 정도 돼요. 남편이 지난번에 세어보니 배나무가 800그루 정도 되는 것 같았어요. 하우스에 유기농 배가 있고요. 노지는 그동안 저농약으로 짓다가 올해부터 무농약으로 짓기 시작했어요. 원래는 여기가 완전 야산이었어요. 강성철 농부가 포크레인으로 직접 파서 계단 만들고 나무도 직접 심고해서 일군 거예요. 처음에는 큰 밭 하나였는데 저 밭도 사고, 그 옆 밭도 사고, 또 그 밑의 밭도 사고 진짜 하나씩, 조금씩 늘여 온 거예요. 5~6년 전에도 이 정도까지의 모습이 아니었어요.
김윤숙 농부의 과수원 전경
30년 농사짓는 동안 25년은 계속 농장을 만드는 일이 이어졌겠네요.
네. 계속 만들었어요. 투자를 계속 했던 거죠. 땅 사고 포크레인으로 땅 파고.
웃으며 너무 평온하게 얘기하시지만 엄청 힘드셨죠?
농사는 30년 지었지만 산을 땅으로 일구고, 나무 심고 수확을 한다 해도 배농사로 돈을 벌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을 것 같아요.
그렇죠. 나무를 심어놓고 3년 후에 수확을 한다고 하는데 그래봤자 수확량이 얼마 안 되었으니까 돈은 안됐죠. 어머님이 장에 가서 팔기도 하고 해서 조금씩 그 수입이 있었죠. 그리고 논농사를 지었었거든요, 3년 전에 강성철 농부가 대장암 수술을 했어요. 이제 논농사는 남한테 맡기고 일을 좀 줄여서 하고 있어요.
배는 주로 어떤 품종을 재배하세요?
배도 종류가 많은데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품종이 계속 달라져요. 우리만 해도 9개 품종 정도 돼요. 신고배가 가장 많고, 올배, 수확시기가 빠른 원황배, 모양이 특이한 황금배. 사람들이 큰 배를 좋아하는데 작아도 맛이 있는 추황배도 있고요. 원황배는 국산품종인데 배는 품종끼리 교배해서 이름을 붙여요. 신고와 화산이 교배하면 ‘신화’고, 풍수하고 만수가 교배하면 ‘만풍’이 돼요.
품종마다 수확시기도 다르겠네요.
네. 품종마다 시기가 다 달라요. 저희도 9월 초에 원황배를 따요. 원황은 저장성이 없기 때문에 추석 전에 빨리 따서 빨리 팔아야 해요. 조금 있으면 황금배, 만풍배, 신고배, 추황배, 만풍배 순서로 따요. 저장성은 신고배가 제일 좋아요. 늦게 나올수록 저장성이 높아지죠.
이렇게 많은 품종을 키우려면 묘목은 사서 심어야겠네요? 과수원에 배나무는 계속 더 심고 있나요?
네. 주로 묘목회사에서 사서 심어요. 작년까지는 새로 많이 심었어요. 기존에 있던 배나무를 베어내고 새로운 품종으로. 그런데 품종이 계속 바뀌니까 앞으로 새로운 나무를 더 심을 수도 있고 심지 않을 수도 있어요.
배 농사는 농한기가 없나요? 한해 농사는 몇 월부터 시작하나요?
농한기가 따로 없어요. 겨울에는 전지하고, 배 수확이 끝나면 바로 전지한다고 생각하면 돼요. 한 달 동안 전지하고 나면 새로 난 가지 중에 남겨 둔 가지 하나를 눕혀서 끈으로 묶어줘야 해요. 그래야 배가 열렸을 때 우리가 딸 수 있거든요. 일이 많아요.
4월에 꽃이 피고, 지고 나면 바로 열매가 맺으니까 5월부터는 또 솎아야 해요. 요새는 냉해가 있어서 꽃을 솎지 않아요. 꽃에 열매가 맺을지 안 맺을지 모르니까 열매 맺은 걸 보고 솎아줘야 해요.
솎아내기를 끝내고 열매에 봉지를 씌운 배 나무 가지의 모습
원래는 꽃을 솎는데 기후 변화 때문에 열매를 솎는 걸로 농사 방식이 변하게 된 거네요.
네, 가지 맨 끄트머리는 배가 안 달리기 때문에 원래는 꽃을 솎아야 해요. 그런데 혹시라도 배가 안 열리게 되면 끝에라도 있어야 해서 그렇게 못하는 거죠. 배 솎아내기가 끝나면 6월 말부터 7월까지 배를 싸주죠.
벌레나 새가 먹을까봐 싸주는 건가요?
그렇죠. 벌레도 못 먹게 하고 배는 노래야 되니까 색깔 때문에 씌우는 것도 있고요. 안 그러면 배 색깔이 빨개요. 안 예뻐요, 색깔이. 그러면 사람들이 싫어하죠. 배가 노랗고 예뻐야 하니까 봉지를 씌우는 거죠.
하우스 배는 계속 유기농으로 지어왔고, 올해부터는 노지에서 키우는 배도 무농약으로 짓는다고 했는데요, 친환경 배 농사를 지으려면 특별히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엄청 신경 쓰이죠. 당연히 친환경 제재를 써야 하고 특별히 더 신경 쓰는 건 풀 관리예요. 풀이 있어야 천적이 생기니까. 벌레를 풀로 유인하는 거죠. ‘제발 풀에 붙어 있어라. 배에 가지 말고’ 그러려고 풀을 키우는 거죠.
다른 배 농장 가보면 아주 깨끗할 거예요. 그런데 우리 과수원 보면 배가 클 때 배나무랑 풀이랑 같이 자라요. 그래서 좀 지저분해 보여요.(웃음) 지금은 배 딸 때가 되어서 조금 깎긴 했어요. 또 땅에 유기물도 충분히 줘야 하니까 풀을 키워야 해요.
친환경 농사지으면 주변에서 농가들도 농약을 치면 안 되잖아요. 그것도 되게 신경 쓰이죠?
농약 그거 절대 안 돼요. 그래서 우리 근처 논 주인들도 제초제를 못 써요. 다 깎아야 해요. 좀 미안하죠. 그래도 부탁을 드려야죠. 다 이웃사촌들이니까 이해를 해 주시죠.
이렇게 키운 친환경 배는 어디로 출하하나요?
옛날에는 덕과면과 사매면 합해서 배 농사를 짓는 사람이 40명이 넘었어요. 그래서 작목반을 만들어서 남원우리고운배라는 브랜드로 출하를 했는데 지금은 배 농가가 다섯밖에 안 남았어요. 지금 우리 배는 생산품 모두 아이쿱생협에 내고 있어요. 친환경이니까 가능해요. 괴산아이쿱 물류센터로 보내면 거기서 작업하고 포장해서 전국으로 가요. 그런데 우리는 농사를 좀 못 짓는 편이예요. 과일이 작고 못생겼죠.(웃음)
요새는 친환경도 예쁘고 크고 맛있어야 소비자들이 좋아하는데, 우리는 작게 지으니까 생협으로 나가는 것보다 버려지는 게 많죠. 그냥 버려지는 것도 많아요. 못 생긴 건 안 가져가요.
생협이면 못생긴 배도 받아줄 것 같은데 그건 아니군요.
100% 전업농으로 힘들게 친환경 배농사 지어서 버려지는 배가 많으면 속상할 것 같아요.
속상하지만 어쩔 수 없죠. 시골에서 살면 돈이 많이 안 들어요. 그리고 이번에 애들이 셋 다 취직을 했어요. 배 농사는 잘 못 지어도 자식농사는 잘 지었어요.(웃음) 그래도 농사지어서 아이들도 키우고 땅도 사고 그랬죠. 농사도 4~5년 전부터는 좀 기반이 잡혔어요. 수확량도, 매출도 조금씩 오르고 있고요, 작년에는 냉해 때문에 수확량이 거의 없어서 저조했지만 그 동안은 매출이 1억 넘게 나와서 그냥 먹고 사는데 괜찮아요.
남원시 덕과면에서 만난 김윤숙 농부
작년에는 냉해 피해를 크게 입었다고 들었어요.
네. 작년에는 수확량이 재작년의 30%밖에 안 되었어요. 그냥 막 이상해도 달려 있는 건 무조건 땄기 때문에 상품성 있는 것도 별로 없었어요. 그러니까 작년에는 거의 수입이 없었죠. 올해는 농업기술센터에서 열풍방상팬을 설치해줬어요. 기름을 떼서 열풍이 나오게 하는 건데 와, 희한하게 올해도 냉해가 있었는데 그 팬 있는 쪽은 배가 기본은 열렸어요. 없는 쪽은 작년이랑 똑같이 안 열리고요. 냉해는 이제 해마다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거기에 대비해야 할 것 같아요.
작년에 갑자기 냉해가 있었던 건가요?
아뇨, 냉해는 그동안에도 조금씩 있었어요. 그래도 꽃이 핀대로 배가 되니까 20개 중에 19개를 솎아낸다고 해도 상품성 있는 배 1개를 만들 수가 있었어요. 냉해가 있어도 배가 2~3개 살아 있어요. 그러니 그 중에 예쁜 배를 고를 수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수확량은 그렇게 차이가 없었어요. 그런데 작년은 아예 아무것도 열리지가 않은 거죠. 그렇게 돼버렸더라고요.
전에는 적당한 냉해는 오히려 편하다고 했어요. 안 솎아도 되니까. 그런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우와, 냉해가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작년에 생각했죠.
30년 동안 농사를 지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기후변화가 확 느껴지셨겠네요.
많이 느끼죠. ‘와, 기후가 이렇게 무섭다’ 얘기해요. 작년에는 정말 완전히 폭탄 맞은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모든 시기가 빨라지고 있어요. 꽃피는 시기가 빨라지니 배도 빨리 열리고, 수확 시기도 앞당겨지고요.
품종을 바꾸는 것도 기후 변화와 관계가 있나요?
품종을 바꾸는 건 기후변화보다 소비자들 기호변화가 커요. 크고 맛있는 배를 원하시니까. 소비자들이 식감이 좋은 배로 취향이 바뀌는 것 같아요.
배농사 짓는 농가가 줄었다고 했는데요, 그분들은 이제 농사를 안 짓는 건가요?
다른 종류로 바꿨어요. 복숭아로 많이 바꾸시더라고요. 복숭아가 일단 농사 기간이 짧아요. 여름에 빨리 따서 빨리 팔아버리니까 돈이 빨리 나오잖아요. 농사도 8~9월이면 끝나더라고요. 또 복숭아가 농사짓기가 좀 편한가 봐요. 무엇보다 돈이 일단 된대요. 아무래도 수입이 잘 되냐 못 되냐. 일이 덜 힘드냐, 더 힘드냐가 중요하죠.
거기다 배는 무겁잖아요. 그러니까 조금 더 가볍게, 일하기 수월한 걸로 바꾸는 것 같아요. 우리는 아직 젊으니까, 배 박스 드는 게 아직까지는 괜찮더라고요.(웃음)
여러 명이 같이 배 농사를 지으면 상의할 사람도 있고 재미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때는 재미있었어요, 진짜로. 돈벌이가 잘 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같이 모여서 작업하는 게. 지금은 다섯 농가 밖에 없으니까 그런 재미는 없죠.
요즘은 농사짓다가 어려움이 있거나 정보가 필요할 때 어떻게 하세요?
인터넷? 유튜브? 하하하.
그렇죠. 이웃보다 인터넷이 더 가깝고 정확할 때가 있죠.
혹시 구독하는 채널이 있나요? 어떤 키워드를 가장 많이 검색하세요?
따로 구독하는 건 없어요. 요즘은 고추를 제일 많이 검색해요.
배는 그래도 벌써 30년이나 농사지었기 때문에 강성철 농부는 강의도 하러 다녀요. 그리고 아이쿱생협 생산자 중에 천안에서 친환경 농사, 유기농 배로 한국에서 1등하는 농부가 저희 멘토여서 그 분께 도움을 많이 받아요. “형님 오늘 비가 오는데 뭘 해야 됩니까?” 바로 전화해서 물어보죠.
요즘 지자체나 농업기술센터는 특작물 위주로 정보나 지원을 많이 해준다고 들었어요.
우리도 기술센터 도움을 받지만 아무래도 인기 작물이나 새로운 작물을 많이 지원해줘야 하니까 우리는 좀 많이 배제되어 있죠. 우리가 알아서 살아남아야 돼요.
과수원 규모가 이 정도면 김윤숙, 강성철 농부 두 분으론 감당이 안 될 것 같아요.
못하죠. 일꾼들이 항상 있었어요. 동네에. 바쁠 때는 7~10명이 같이 일해요. 일 년에 300~400명 정도가 우리 과수원에서 일했더라고요. 올해는 처음으로 솎아주기 할 때 이주노동자들과 같이 일해 봤어요. 너무 돈을 많이 달라고 해서 그냥 포기했어요. ‘그냥 내가 하루 한 번 더 하지 뭐’ 이렇게 마음먹고 했어요.
‘그냥 내가 하루 한번 더하지’가 말이 쉽지요. 혹시 ‘내가 왜 농사를 짓겠다고 했을까’ 후회한 적 없나요?
아뇨. 절대 후회 안 해요. 전 너무 좋아요.
과수원 농사기록은 누가 담당하나요?
농사일지는 강성철 농부 담당이에요. 친환경 인증을 위해서는 일지를 써야 하니까 꾸준히 계속 쓰고 있어요. 저는 결혼해서부터 생활 일기를 많이 썼죠. (웃음)
‘스물 아홉의 신세대 주부’ 김윤숙 씨를 다룬 기사
지리산이음에서 농부들의 농사일지나 농사기록을 공유해서 서로 의견을 주고받고, 농부들이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작업을 해보려고 해요.
아 그래요? 공유는 할 수 있겠지만 어차피 우리는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에 관심 있는 분들은 별로 없을 것 같은데요, 요즘 친환경 농사를 잘 안 지어요. 돈이 안 되기 때문에. 귀농, 귀촌하시는 분들이 처음에 친환경 농사를 짓고 싶어 하다가 3년 정도 해보고 잘 안되면 그냥 관행농으로 넘어가는 걸 봤어요.
친환경이 힘들어요. 버텨야 하니까. 제 주변에도 생협에 딸기 납품하는 작목반 말고는 친환경농사 짓는 분들 없어요.
농사지으면서 제일 뿌듯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그냥 지금까지 잘 버텨온 것이 뿌듯한 거죠. 똑같은 거 계속 하고 있고, 그리고 서로 후퇴하지는 않았으니까요. 힘들기는 했지만 조금씩이라도 발전이 있었고 이 나이 먹도록 지금 이만큼이라도 살 수 있게 된 것이 보람이에요.
친환경 농사짓는 농가에게 특별한 지원이 있나요?
저는 사실 그런 건 잘 몰라요. 강성철 농부가 그런 건 알아서 챙기고 있어요. 생협에서도 생산자를 위해서 지원도 해주고, 시나 면, 농협에서도 지원을 해줘요. 그래서 할 수 있어요. 작년에 냉해 피해 입었을 때 생협에서 약제를 지원해줘서 요긴했어요. 시골에 살면 나라도 든든하고, 면사무소도 든든하고 농협도 든든해요. 많이 지원을 해주니까요.
여성농업인으로 활동을 따로 하시나요? 여성농민회라든가.
여성농업인으로 활동을 따로 하진 않고요, 마을에서 부녀회장하고, 생활개선회 총무도 하고, 농악 활동으로 장구도 치고요. 생협 생산자 이사이기도 한데, 여기 딸기, 배농가들 교류에 아주 큰 역할을 하는 건 아니고요. (웃음) 제가 누가 부탁하면 거절을 잘 못해요. 오늘 인터뷰도 그렇고요.
농사만 짓는 게 아니라 마을 일을 많이 하시네요. 마을 부녀회장이면 엄청 일이 많을 것 같아요.
부녀회장은 마을 회관에서 밥해먹으면 가서 뒤치다꺼리도 하고. 농협에서 뭘 팔아야 한다고 하면 마을 분들한테 연락해서 ‘필요하시느냐’고 물어보고 팔기도 하고요. 막 드러나지는 않아도 저는 그런 게 좋아요.
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을 하는 게 전문이시네요.
농촌에서 여성농부들이 굉장히 많은 일을 하는데 이게 해도 티 안 나는 일이 많은 것 같아요. 집에서 농사짓고 마을에서 부녀회장으로 어르신들, 마을살림 챙기는 게 사실 엄청난 노동인데… ‘그냥’ 한다고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지만 들어보면 되게 많은 일을 하시거든요.
그래요? 그냥 하는 거죠. 뭐. 출근하듯이 그냥 하는 거예요.
김윤숙 농부가 배 과수원을 배경으로 미소를 지으며 서 있다.
한 해 농사에서 제일 바쁜 시기는 언제인가요?
배 솎고 쌀 때가 제일 바쁘죠. 그때는 진짜 시간이 촉박해요. 해내야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까. 5월, 6월은 그냥 하루 종일 배 솎는 것만 해요. 새벽에 눈 뜨자마자 나가서 깜깜해질 때까지 계속 일하는 거죠. 다 솎아질 때까지. 여름에는 거의 하루 14시간 정도 일해요.
그럼 그나마 한가한 시기는요?
요즘이죠. 과수원은 지금은 수확 앞두고 농장 둘러보는 정도예요. 까치가 너무 많아서 한 바퀴씩 돌아봐야 해요. 그물을 치는 과수원도 있지만 그러면 새가 안 들어가야 하는데 작은 구멍만 있어도 들어가니까 그걸 다 관리하느니 차라리 ‘드세요, 그냥 드세요, 드실 만큼 드세요’해요.
요새는 고추 따러 다녀요. 남의 집 일도 좀 도와주고요. 오늘, 내일은 아는 언니들 집 고추 따주기로 했어요. 고추는 그냥 한나절 따는 거니까.
얘기를 나눠보니 그동안 농촌에서, 농부로서 삶의 고단함도 있었지만 참 행복해하는 것 같아요.
누군가 ‘나 농촌에서 살고 싶어’하면 귀농, 귀촌 추천하시겠어요?
네. 전 좋아요. 시골은 서울보다 나아요. 서울은 진짜 각박하잖아요. 뭐 하러 서울에 살아요.
시골에서 하루 일당을 시급으로 따지면 서울보다 작겠죠. 그래도 서울이라고 맨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여기서 고추 반나절만 따도 4만 원 이상은 받아요. 일이 힘들기는 해도 하루 생활할 수 있는 돈은 벌수가 있잖아요. 일거리가 많으니까 자기가 조금만 부지런하면 도시보다 벌이도 좋고, 생활하는데 돈도 많이 안 들어가니까 도시보다는 더 평화롭게 살 수 있어요. 전 환영이에요. 같이 도와주기도 하고 일도 배우고 그러면 서로 좋죠.
그렇다고 시골이 무조건 후하지는 않아요. 사람 사는 건 시골이나 도시나 똑같아요. ‘시골에 오면 모든 사람들이 할머니처럼 잘해줄 줄 알았다’는 얘기 저도 들었어요. 그건 선입관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시골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 커요. 그냥 똑같아요. 사람 사는 건.
과수원 내부에 서서 본 풍경
농부로서, 또 여성 농부로서 바라는 점이 있다면 얘기해주세요.
농부 입장에서는 누가 인력을 좀 지원해줬으면 좋겠어요. 일할 사람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지금 인건비가 하루에 7~8만원이에요. 인건비가 1년에 만 원씩 오르고 있어요. 일손이 부족하지만 인건비를 달라는 대로 다 줄 순 없어요. 어느 정도 기준선은 있어야죠.
어디서 인건비를 2~30%라도 지원해준다든지 하면 너무 좋죠. 예를 들어 일당을 10만원 달라고 해요. 그러면 농가에서 7만 원을 내고 정부나 지원기관에서 3만원을 지원해주면 큰 도움이 되죠. 그런데 지금은 농가에서 10만원을 줘도 실제 일꾼들이 10만원을 받는 게 아니라 인력사무소에 내는 수수료가 많다고 들었어요.
여성 농부 입장에선… 저만해도 농사를 짓지만 농업정책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얘기하잖아요. 대부분이 남편이 알아서 잘 하겠지 생각해요. 시에서도 정책이나 새로운 사업이 있으면 여성농부들에게도 정책을 소개하거나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간담회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면 좋겠어요. 어차피 남편이 알아서 한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여성농부들도 뭔가 알면 좀 낫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혹시 배 말고 다른 농작물을 키워볼 계획도 있나요?
지금 농장 한쪽에 체리를 120주 심어놨어요. 친환경으로 체리를 한번 해보려고요. 심은 지 3년 정도 되었는데 아직 수확은 안 하고 있어요.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왜 체리를?
제가 체리를 좋아해요.(웃음) 배가 10월, 11월부터 돈이 나오니까 배 농가는 여름에 수입이 없어요. 체리는 6월부터 돈이 되니까요. 배는 솎고 싸고 따는게 너무 힘들고 과일이 무겁잖아요. 그래서 여름에 나오는 과일 중에 속지도 않고 싸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은 것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체리를 한번 해보자 했어요. 요즘은 소비자들이 크기도 작고 씻어서 바로 먹을 수 있는 과일을 많이 찾고요.
자녀가 넷인데요, 혹시 농사를 물려줄 생각이 있는지 궁금해요. 농사를 짓겠다는 자녀가 있나요?
네. 저희는 물려줄 생각이 있어요. 그래도 직장생활은 일단 해보라고 해요. 아직은 우리가 젊으니 농사를 짓는 데까지 짓고 우리가 70대가 되고 너희도 20~30년 직장생활하고 퇴직할 정도 되면 와서 지으라고 해요.
아들이 쌍둥이예요. 둘이 같이 합심해서 농사지으며 여기서 살라고 해요. 전에는 우리가 돈벌이로 농사를 지었는데 지금은 ‘이런 것도 만들어 놔야 우리 아이들이 좀 편할까, 이렇게 해야 좋겠지’ 그런 생각도 많이 해요. 그래서 과수원 일구는 재미도 있어요.
오늘 인터뷰 어땠나요?
제가 이런 인터뷰가 처음이라…. 남편이 하는 것만 옆에서 봤지 내가 이런 걸 한다는 것 생각을 못했어요.
덕분에 김윤숙 농부의 28년 시골살이 농부 이야기 정말 잘 들었어요.
저는 시골이 너무 좋아요. 지금도 너무 좋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예요.
그냥은 그냥이 아니었다. 김윤숙 농부와 얘기를 나누며 ‘그냥’이라는 단어에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걸 실감했다. ‘그냥’의 뚜껑을 하나씩 열 때마다 여성으로, 농부로,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딸로, 부녀회장으로, 주민으로 살아온 시간들이 살아났다.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지만 힘듦은 없었던 게 아니라 그냥으로 덮고 잊고 사라진 것이리라. 배 농사는 잘 못 지어도 10년 전에 들어둔 적금과 잘 자란 자식들 덕분에 마음에 쏙 들게 리모델링했다는 이층집과 지금도 시골에서 농사짓는 이 삶이 너무 행복하다는 김윤숙 농부 미소가 우리도 그냥 좋다.
글 이경원
기획, 기록, 연결로 변화를 만드는 일과 사람을 돕는다. 2014년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궁금해서 찾았던 지리산시골살이학교 덕분에 지리산이음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때는 몰랐다. 7년이 지난 2021년 구례 남원 산청 하동 함양을 다니며 ‘농사를 업으로 하는 농부’들의 이야기를 글로 전하게 될 줄은.
사진 임현택
진행 이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