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 시골에서 농부로 살아보고 싶은 호기심 많은 예비농부
- 지금, 여기서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용기가 필요한 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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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에서 매실농사를 짓는 고지민 농부는 <지금, 여기 우진농원> 대표농부다. 우리는 매실농장이 아닌, 참나무 표고목이 지그재그로 세워진 표고버섯 농장에서 만났다. 농업인대학 수료증, 고객들에게 보낸 편지, 농사일지와 그동안의 기록들을 차곡차곡 쌓아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터뷰 내내 내리던 비는 잠시 멈췄다 거세지기를 반복했고, 고지민 농부는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금, 여기서.

하동군 금남면에서 만난 고지민 농부
농장 이름 우진농원 앞에 ‘지금, 여기’라는 수식어가 붙어요.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저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굉장히 소중하기 때문이에요. 처음 농사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많은, 큰 변화가 있었거든요.
농사라는 걸 결혼해서 처음 지었어요. 2007년쯤 드라마에서 매실 효능이 부각되면서 매실 붐이 일었거든요. 남편과 ‘우리도 매실 농사짓자’해서 좋은 매실나무들을 찾아 심고 가꾸다가 갑자기 2009년에 남편에게 교통사고가 났어요. 큰 아이가 여섯 살, 작은 아이가 네 살 되던 해였는데 모든 게 올 스톱 돼버렸어요. 사고 후에 2년 정도를 병원에서 생활했어요.
큰 아이 학교 보내려고 어쩔 수 없이 하동으로 다시 내려왔는데 매실나무가 엉망이기는 해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거예요. 4년 전에 저희가 정말로 큰 뜻을 품고 심었던 나무들이었거든요. 그때 ‘지금, 여기에서 다시 시작하자’가 그냥 제 마음이었어요. 우진은 큰 아이 이름이고요.
그때부터 고지민 농부가 혼자 매실농사를 짓기 시작한 거예요?
네. 결혼해서 처음에는 그냥 도와드리는 정도였어요. 밤나무 산이 있으니까 가을 되면 밤도 줍고. 시골은 대부분 농사를 조금씩 짓잖아요. 몸은 좀 힘들어도 저는 농사가 너무 재밌었어요.
매실 농사는 남편 따라서 다니기만 했지 주도적으로 해보지 않았어요. 그런데 남편이 사고가 나니까 제가 실질적 가장이 돼버린 거예요. 남편을 돌봐야 하니 종일 근무 직장을 구할 수는 없었어요. 다행히 병설유치원 계약직 일자리를 구했어요. 제가 유아교육을 전공했거든요. 오전에는 남편 챙기고 집안일하고, 오후 반나절 유치원에서 일하면서 매실 나오는 철 되면 주말에 수확해서 팔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4년을 생활했어요.
그런데 매실을 수확해서 3톤 정도를 농협에 갖다주는데 평균 단가로 kg당 천 원도 못 받았어요. 저희가 신품종을 심어서 크기는 괜찮은데 이걸 제대로 키워서 따지 못하고 한꺼번에 수확해버리니까 제값을 못 받는 거예요. 인건비 주고 나면 남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저도 반나절 유치원에서 일하고, 애들 키우면서 남편 간호하고, 농사를 짓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남편 재활도 제대로 안 되는 것 같아서 과감하게 유치원을 그만뒀어요. 그만두고 농사를 한번 지어봐야겠다고.
절실함과 절박함이 전업농이 된 계기군요.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농업기술센터나 여러 곳에서 하는 교육을 열심히 다녔어요. 교육을 받으면서 조금만 차별화해서 판매하면 매실 3톤을 팔아서 생기는 순수익이 백만 원에서 2백, 3백만 원까지도 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1년에 한 번씩 주위 사람들한테 매실 사달라고 얘기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우연히 교육에 다모아영농조합법인 대표님이 강사로 오신 거예요. 그냥 가서 “선생님, 저는 사업자 등록증도 없고, 판로도 없는데 매실 농사는 진짜 잘 지을 자신 있습니다. 대표님이 우리 매실 좀 팔아주시면 안 돼요?” 하고 여쭤봤어요. 그랬더니 “되죠!” 하시는 거예요. 그때 우리 매실도 판로가 생겼고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어요.
사업자 등록증이 없어도 농지원부와 임대차 계약서만 있으면 영농조합법인에 우진농원 직거래로 제품을 올릴 수 있고, 통신판매는 영농조합법인이 대신 해 주는 거죠. 수수료를 공제하고 판매대금을 받는 구조인데, 수수료를 내고도 두 배 이상 가격을 받게 되니까 제가 전정이나 농사짓는 게 미숙해서 수확량이 줄어도 수입은 더 괜찮았어요.
그럼 지금도 매실과 버섯은 이 쇼핑몰 한 군데서만 판매하나요?
아니오. 지금은 직거래도 하고 농산물밴드에 올려서 판매도 해요. 농산물밴드는 농사를 짓고 있는 검증된 농부들만 농산물을 팔 수 있어요. 밴드 운영자가 저희 농장에 오셔서 매실을 보고 좋다 해서 3년 째 판매하고 있어요. 제가 10만원을 팔든, 천만 원을 팔든 정해진 수수료를 입금하면 한 달 동안 제 생산품을 올리고 팔 수 있어요.
버섯도 아직 규모가 작긴 한데 새로 인연을 맺은 온라인 사이트에서 판매하고 있어요. 우진농원을 전부터 알던 분들께는 제가 직거래로 팔기도 하고요.
판매망은 구했지만 혼자 농사짓는 게 가능한가요? 어떻게 하셨어요?
농사의 반은 제초작업인데 제가 그걸 낫으로 다 할 수 없었어요. 넓지는 않지만 밭이 세 군데로 나눠져 있었거든요. 다른 분께 부탁을 하게 되면 제가 원하는 날에 할 수도 없고 경제적인 것도 부담이 됐어요. 풀은 한번 베고 나도 또 자라잖아요.
저는 예초기를 굉장히 무서워했어요. 2017년에 처음 제가 예초기로 풀을 벴어요. 우리 땅은 논이어서 내가 한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처음에는 겁도 나고 한번 돌리고 나면 젓가락도 못 들었어요. 위험하다고 걱정하면서도 수확은 해야겠고, 낫으로는 도저히 못 베겠고 방법이 없었어요. 제가 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니까. 그때부터 풀은 제가 다 벴죠.
제일 좋은 건 제가 원하는 시기, 원하는 시간에 풀을 벨 수 있다는 거였어요. 인건비도 줄이고요. 저는 매실 수확하기 전에 풀 베고, 따면서도 한 번 더 벴어요. 도와주는 사람이 저희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풀이 너무 자라면 아이들이 다니기 힘드니까요. 그렇게 농사짓고 판매도 하고 굉장히 힘들었지만 10년을 잘 버텼는데 2019년 말에 남편과 헤어졌어요. 제 삶터도 이곳으로 바뀌게 되었어요. 10년 동안 지키려고 했던 것들을 모두 두고 나온다는 게 정말 쉽지 않았어요. 마을 이장 임기도 마치지 못하고 나왔지만 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인터뷰를 진행한 고지민 농부의 참나무 표고버섯 하우스
또 다시 ‘지금, 여기서’ 시작하게 된 거네요. 10년 동안 가꿔 온 삶의 터전을 옮겨 농사를 시작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네. 힘들었죠. 지금은 매실, 참나무 표고버섯, 그리고 감 농사를 지어요.
감사하게도 그동안 농사지으면서 알게 된 분들이 제 사정을 듣고 땅을 임대해 주셔서 다시 매실 농사를 짓기 시작했어요. 참나무 표고버섯은 먼저 시작한 친구의 표고버섯 하우스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알게 됐어요. 마침 폐목 시기가 된 참나무가 있어서 제가 한번 지어보고 싶다고 해서 지금은 7동 중 2동을 친구와 같이 키우고 있어요. 창고도 같이 쓰고 농사도 서로 도와가면서.
감은 임대 받아서 대봉감과 고종시를 짓고 있어요. 고종시라고 곶감 만드는 작은 감인데요. 저는 곶감 덕장이 없어서 말랭이로 만들어서 판매하고 있어요. 매실은 청매실 2,500평, 익으면 빨개지는 남고매실(홍매실)이 800평 정도 되는데, 작년에는 봄에 냉해 입고, 비도 자주 와서 벌레도 많이 생기고 병이 많아서 수확량이 반으로 줄어버렸어요. 매실 농사지으면서 가장 수확이 안 좋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거기다 제가 매실농사에 100% 정성을 쏟지 못했고, 처음부터 제가 농사를 지은 게 아니라 다른 분이 짓던 농사를 이어받아서 하다보니까 적응하는데 어려웠던 것도 있었고요.
처음에 밭에 가서 봤을 때는 매실 상태가 괜찮았는데 수확시기가 되니까 더 안 좋아졌더라고요. 다행히 하동농협에서 식품에 들어가는 매실용으로 받아줬어요. 우리는 망에 담은 거라고 망매실이라고 부르는데 kg당 900원에서 1,000원 정도까지 가격을 받았어요. 제가 가지고 가면 사람들이 이런 건 생과로 팔아도 되는데 망매실로 파냐고 했어요. 보통 20kg 짜리 망에 21kg를 채우는데 농가마다 매실상태는 다양해요. 농부들의 생각이 다 다르니까요(웃음)
저는 먹거리는 정말로 정직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처음부터 조금만 흠집이 있으면 생과로는 안 팔아요. 그래서 밭에 버리는 매실도 굉장히 많았어요.
애써 키운 매실인데 좀 안타깝네요.
그렇긴 한데 그걸로 또 새로운 인연이 생겼어요. 예전에 제가 운영했던 블로그를 보고 진주에서 온새미로 농업으로 꽈리고추를 키우는 분이 전화가 왔어요. 천적으로 약을 치는데 버려지는 매실을 사고 싶다고. 매실 상태를 아셔야 하니까 사진을 찍어서 보내드렸어요. 그런데 물컹해진 것도 전혀 상관이 없대요.
처음에는 6콘티(콘티:20kg용 과일상자를 세는 단위), 7콘티 정도를 kg당 500원 드렸어요. 앞으로 상처가 나서 망매실에 넣을까 말까 고민되는 건 이 분께 드리면 되겠다 생각하면서 그 분께 제가 제안을 했어요. 양은 원하는 만큼 드릴 수 있으니 가격을 kg당 500원은 좀 그렇고 1,000원으로 정하자고. 그리고 10콘티 주문하시면 한 콘티를 그냥 더 드리겠다고. 그렇게 해서 그 분과 3년째 인연을 이어가고 있어요. 올해도 20콘티를 구입하셨어요. 가끔 저는 좋은 매실 집에서 드시라고 보내드리고, 그 분도 오실 때 쌀농사 지으신 걸 갖다 주세요. 이렇게 인연이 이어지는 게 너무 감사하죠.
매실은 생과, 가공용 망매실, 약재용 출하 비율이 어느 정도 되나요?
아무래도 생과로 나가는 게 제일 많죠. 80% 정도예요.
참나무 표고버섯농사도 궁금해요.
제가 참나무 표고버섯에 대한 갈망이 있어서 시작한 건 아니에요. 처음 시작하신 분은 바른 먹거리에 대한 신념으로 선택하셨대요. 저는 그 분들 가는 길에 운 좋게 얻어 타게 된 거죠. 버섯은 한 동에 1,500본이니까 총 3,000본 정도 돼요.
버섯의 원리가 폐목에 종균을 넣어서 그 나무가 썩어서 올라오는 거거든요. 참나무 표고목에 구멍을 뚫고 나면 종균 넣고 눕혀요. 어느 정도 배양이 되면 베개목으로 세우고 또 지그재그로 쌓아요. 물 작업하고 10일이 지나면 움이 트는데 다시 세워주는 과정을 거쳐야 해요. 표고버섯은 종균이 있다고 해서 전부 다 한꺼번에 올라오지는 않아요. 그리고 한 번 올라왔던 데는 버섯이 안 올라와요. 그리고 버섯을 따다보면 꽁지가 야무지게 안 따질 때가 있거든요. 그럼 비가 오거나 습해지면 파놓은 홈에 곰팡이가 생겨버려요. 종균도 균이긴 하지만 곰팡이는 버섯에 안 좋으니까 일일이 파내줘야 해요. 너무 많다보니까 다 파내지는 못해요.(웃음) 이렇게 해서 봄, 가을, 겨울로 표고버섯은 수확할 수 있어요.
표고버섯은 여름 빼고는 계속 수확을 할 수 있군요. 그런데 여름엔 매실 수확해야 하니까 고지민 농부는 1년 내내 쉬지 않고 농사짓는 거네요.
매실은 5월 말부터 해서 6월 망종 이후에 수확하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는데 7월 10일 전후로 끝나요. 올해처럼 추석이 빠를 때는 생표고를 내면 좋은데 기온이 올라가면 버섯 품질이 떨어져요. 그래서 올해는 수확을 안 할 거예요. 그렇다 보니까 7월부터 8월에 생산품이 없어서 추석 명절을 쇠야 하는데 좀 어려움이 있네요.
표고는 봄, 가을, 겨울 세 계절 동안 생산한다고 해도 계속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봄이 3월부터 5월까지라고 하면 3개월 동안 수확하는 게 아니라 한 번 수확하고 나면 좀 쉬어야 해요. 그래서 봄에 한 번, 가을에 한 번 생산한다고 보면 돼요. 대신 겨울은 좀 길죠. 버섯은 기온이 낮을수록 잘 자라고 품질이 좋아요. 색깔은 봄 버섯이 제일 좋고요.
화고성이라고 하는데 버섯 보면 등이 갈라져서 하얀 빛이 나잖아요. 이게 해하고 날씨가 다 받쳐줘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백화고는 하늘이 주는 거래요. 백화고가 올라와도 비가 오면 색깔이 싹 변해버려요. 습도에 굉장히 민감하거든요. 그래서 보관도 잘해야 돼요. 저도 처음에는 수확해서 바로 출하를 못하니까 보관했다가 한꺼번에 하겠다고 저장창고에 넣었어요. 그랬더니 색깔이 변해버린 거예요. 그 다음부터는 조금 빛을 띠는 건 건조시켜서 판매해요.

하우스에 줄 지어 늘어선 표고목들의 모습
버섯은 참나무 홈에 종균을 넣고 나서 수확하기까지 얼마나 걸리나요?
1년 6개월이요. 한번 참나무에 종균을 넣으면 3년 정도 수확을 할 수 있어요. 나무는 굵을수록 더 좋다고 해요. 수명도 길고 수확도 3년 보다 더 길게 할 수 있는 확률이 커진다고.
작년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물이 하우스 앞까지 꽉 찼어요. 보트를 타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저희 표고목은 올해 겨울까지 수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안 될 것 같아요. 다른데서 지금 이쪽으로 옮겨온 것들은 괜찮은데 물에 잠겼던 나무들은 가을에 올라오는 것까지만 수확하고 겨울에는 나무보일러 떼는 곳에 나눔을 해야 될 것 같아요.
참나무 표고버섯을 키우는 표고목은 수명이 3년 정도 되는 거군요. 그럼 종균은 어떻게 만드나요? 직접 키우시는 건가요?
아니요. 종균은 김제에 있는 종균 연구소에서 받아와서 참나무에 넣어줘요.
전북 임실은 참나무 표고버섯을 많이 재배해서 지원도 잘 되는 편인데 하동은 그렇진 않아요. 먼저 시작한 친구는 임실에 1년 동안 다니면서 일하면서 배웠대요. 배운다고 해도 정말로 중요한 노하우는 농장에서 안 가르쳐 줘요. 배우는 입장에서는 알고 있는 걸 가르쳐주면 서로 잘 살 것 같은데 아직까지는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지역에서 정보 얻기도 힘들군요. 하동에서 표고농사를 짓는데 임실까지 가야 한다니…
네. 어려워요. 하동은 참나무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농가 지원도 굉장히 약하고요.
요즘은 종균을 참나무 원목배지에 안하고 아예 종균 작업을 해서 파는 배지버섯이 있어요. 보통 배지를 중국에서 수입을 많이 하니까 순수한 국산이 될 수는 없죠. 그것도 시설비 투자도 많이 해야 하고 일이 굉장히 많긴 한데 수확량이 많다보니까 참나무 표고버섯하고는 가격이 비교가 안돼요. 그래서 참나무로 표고를 키우는 농가가 점차 없어지고 있는 추세예요. 노동력은 많이 드는데 가격은 경쟁력이 없으니까 임실에도 지금 참나무 표고버섯 재배를 그만두는 분들이 굉장히 많대요.
여러모로 표고버섯 농사가 어렵군요.
네. 참나무가 너무 무거우니까 저는 구멍 뚫기도 힘들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작은 미달목 정도예요. 좀 얇은 아이들. 그마저도 처음에는 드는 게 너무 힘들어서 사람을 썼더니 인건비가 너무 많이 들었어요. 1,500본에 종균 한번 넣으려면 참나무 원목, 종균, 인건비까지 해서 한번에 2천만 원 정도가 들어요. 그래서 작년에는 버섯종균기능사 공부해서 필기는 합격했는데 실기가 남았어요(웃음).
밑에 있는 종균이 위로 가도록 흐름을 좋게 하려면 참나무를 한 번씩 뒤집어 주면 굉장히 좋아요. 힘이 들지만 저희도 봄 수확 끝나고 한 번, 가을 수확 끝나고 한 번 이렇게 뒤집어줘요.
사람을 써서 해보니까 나무를 지그재그로 잘 세워야 하는데 그걸 이해 못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잘 못 세워서 하나가 넘어지면 도미노처럼 다 넘어가서 나무껍질이 까져서 나쁜 균이 침투할 수 있어서 굉장히 위험해요. 상처가 나면 다 긁어내줘야 하거든요. 그래서 직접 해요.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겨서 혼자서도 하루 만에 다 할 순 있더라고요.
올해 초부터 친환경 인증을 받으려고 준비도 하고 있는데 코로나 상황이 계속되고 제가 자본이 많은 것도 아니어서 계속할 수 있을지 망설여져요. 앞으로 3년을 보고 친환경 인증을 받을지 아니면 다른 작물을 선택해야 할지. 친환경 인증을 받으려면 주변 농장에서 제초제나 농약을 치지 말아야 하는데 주위 분들한테 ‘제가 친환경을 받아야 되니까 약 좀 치지 말아주세요’라고 말씀 드리기도 참 어려워요.
매실과 버섯 중에 고지민 농부가 더 자신 있는 건 매실이겠네요?
네. 제가 매실 농사를 잘 짓고, 병해충을 전부 다 아는 건 아니지만 밭에 가서 제초 작업하고 수확하면 그냥 마음이 좋아요. 풀들이 나무를 막 타고 올라가는데 그걸 걷어내 주면 나무들이 되게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제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웃음).
이제는 한꺼번에 수확 안 하고 잘 키워서 크기별로 선별해 따니까 작았던 매실들이 3일 지나고 가면 알이 단단하게 잘 자라 익어 있어요. 그런 걸 보는 게 너무너무 좋아요.
매실 농사에서 제가 꼭 지키려는 원칙이 있어요. 매실은 망종 이후에, 매실이 잘 여물고 독성이 많이 없을 때 수확한다는 거. 그리고 방제작업을 안 할 수는 없지만 수확 한 달 전에는 절대 약을 치지 않아요. 정해진 약을, 정해진 용량만큼만 친다는 건 꼭 지키고 있어요.
저는 사업자 등록증도 없고 가공 허가증도 없으니까 매실청이나 가공식품을 제조, 판매할 수는 없다는 게 좀 아쉽긴 해요. 농산물 가공 교육을 받으면 센터의 좋은 시스템, 좋은 시설을 활용할 수 있고 실제로 정말 잘 사용하시는 분들도 계시다고 하는데 제가 적극적이지 않아서 그런지 좋은 취지만큼 농민들에게 가까이 와 있지는 않다고 느꼈어요. 제 개인적인 마음의 벽일지도 모르겠어요. 열심히 교육도 받고 했는데 접근이 쉽지 않았어요.

농사로 바쁜 날들 틈틈이 배웠던 교육 자료들을 보여주는 고지민 농부
농사도 바쁠 텐데 공부도 열심히 하고 정리도 굉장히 잘 해 놓으셨네요.
농업인 대학도 다니고 교육을 진짜 열심히 받았어요. 교육을 받을 때는 열의가 넘쳐요. 이제 나도 할 수 있겠다 싶다가도 농사지으면서 그런 노하우들을 모두 적용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농사일지도 습관적으로 이건 꼭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일주일 정도는 열심히 적다가 농번기에 딱 들어가면 너무 힘드니까 메모장에다 일단 기록만 해 놓고 옮겨 적지를 못해요. 잘 연계가 안 되더라고요.
올해는 꼭 농사일지를 쓰겠다고 농사일지 앱도 받았는데 용량이 생각보다 굉장히 컸어요. 잘 쓰지도 않게 되고 괜히 놔두면 안 되겠다 싶어서 없앴어요. 그래도 표고버섯 친환경 인증을 받으려면 농사일지가 필요하니까 그건 녹차연구소(하동지역 친환경 인증 대행기관)에서 제공하는 양식에 맞춰 작성하고 있어요.
그럼 농사 정보는 주로 어디서 얻나요?
매실 농사는 하동 정보화농업인 모임이 있어서 농업인들끼리 교류도 하고 정보도 교환해요. 지금은 코로나로 전면금지지만 교육도 자주 있어요. 모르는 건 밴드에 올리면 매실 농사 잘 짓는 분들이 알려주시곤 하는데 마을에서는 매실 농사짓는 분들이 연세가 아주 많은 분들이라 실질적인 소통은 잘 안돼요.
표고버섯은 인근에 재배하는 농가가 저희밖에 없기 때문에 농업기술센터나 전북 임실로 가는데 버섯은 병이 워낙 많아서 농사지으셨던 분들한테 사진을 찍어서 보내줘도 모르고 농업기술센터도 잘 모를 때가 많아요.
처음에 병이 생겼을 때는 너무 답답해서 진주에 있는 연남공과대학교에서 버섯 연구하는 박사님께 갔어요. 그분 하시는 말씀이 종균 접종 시기가 너무 늦었다는 거예요. 책에서는 5월 벚꽃 피기 전에 접종하라고 되어 있어요. 여기는 남쪽이라 2월 전에 종균 접종을 해야 되는데 그걸 몰라서 3월, 4월에 했더니 배양이 잘 안되고 날씨까지 습해지면서 병이 온 거더라고요. 그렇게 배우면서 알아가고 있어요.
농장 홍보는 어떻게 하세요? SNS나 주로 활용하는 채널이 있나요?
SNS를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고 처음에는 블로그도 운영했었는데 지금은 안 해요.
대신 저는 제가 생산한 농산물을 정성껏, 양심껏 보내드려요. 그리고 드셔보시라고 제철에 키운 다른 농산물과 손편지를 같이 넣어요. 처음에는 편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손으로 적었는데 주문이 많아지니까 그게 좀 힘들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지금은 감사인사를 프린트해서 우진농원 스탬프 찍고 거기에 제가 그림을 그리거나 간단하게 메시지를 넣어요. 잘 그리는 그림은 아니지만.

파일에 차곡차곡 모아놓은 자료들
매사에 열심이지만 여성 농부라서 힘든 점이 있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기계를 대여하거나 기계를 다루는 것에 조금 서툴다는 거요. 제일 힘든 건, 체력적으로 많이 힘든 것 같아요. 무언가를 들고 움직이는 게, 좀 우습긴 한데 30대와 40대는 완전히 다르더라고요.(웃음)
그리고 지역에서 여성들이 농업인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시골에서는 아직까지 ‘여성농부 누구’보다는 누구의 아내, 누구 집 며느리여야 인정받는 게 강한 것 같아요. 그것도 저만 그렇게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아, 나는 다른 사람을 그렇게 판단해서는 안 되겠다’ 마음을 다잡는 중이에요.
고지민 농부만의 마음을 다잡는 비법이라도 있나요.
남편의 사고 후에 몸이 힘들기는 해도 내가 불쌍하다고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렇게 가다가는 내가 너무 원망하는 마음이 들것 같았어요. 나는 걸을 수도 있고 내 마음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데 내가 돌봐야 하는 사람을 떠난다는 죄책감에 주춤하게 되고 손을 놓지 못했는데, 제가 맞는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결심을 했던 거고요. 후회는 없어요. 정말로 최선을 다했었거든요. 그래도 늘 좀 아프죠. 멍하게 있는 날도 있고. 모든 게 제가 안달한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 지금은 ‘농사 열심히 짓고 판매를 잘하자’ 이 생각만 하려고요.
여성농부로 힘든 과정이 있었고 여전히 어려움이 있지만 계속 농사짓는 건 보람도 있기 때문이겠죠?
있죠. 제가 마음을 담아서 보낸 농산물을 받은 고객들이 고맙다고 해주실 때 보람 있어요. 그 힘으로 버티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저는 농업은 분명히 희망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큰아이 고등학교 진학도 특성화고등학교를 선택했고요. 큰 아이가 지금은 잘 못 느끼겠지만 제가 꾸준히 농사를 짓고 기반을 마련해 놓으면 와서 농사를 지을 것 같아요. 돌아왔을 때 제가 힘들었던 것보다는 덜 힘들게 해주고 싶어요. 지금 그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믿고 기다려봐야죠.

하동군 금남면에서 만난 고지민 농부가 표고버섯 하우스를 배경으로 서 있다.
자식위한 농사 말고 농업인 고지민은 앞으로 어떤 꿈을 갖고 있나요? 꿈꾸는 농장의 모습이어도 좋고요.
저는 넓지 않더라도 제 공간이 생기면 좋겠어요. 임야라도 좋아요. 표고버섯 키우기든, 매실 따기든 체험할 수 있는 농장을 만들고 싶어요. 농장에 집과 작업장 넣고 뒤쪽에는 과실수도 심어져 있으면 좋겠고요. 그게 안 된다면 아이들이 와서 재활용 만들기도 하고 누구든 와서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생각은 굉장히 많이 하고 계획도 있는데 아직 구체적으로 알아보는 단계는 아니에요.
요즘은 중앙부처나 지자체에서 농업인들을 지원하는 사업들도 많잖아요.
사실 제가 우수 후계농에 선정됐었어요. 매실 농장에 체험농장을 해보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2019년에 어쩔 수 없이 그걸 포기했어요. 한번 신청했다가 포기하면 페널티처럼 일정기간동안 신청을 할 수 없어요. 당분간은 우수후계농은 좀 어려울 것 같아요.
정부지원 사업은 영농조합법인이 되어야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가 있고, 개인에게 해주는 지원은 되게 한정적이에요. 지원 조건에 맞는 법인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허위로 만들거나 무턱대고 일을 벌이고 싶진 않아요. 정말로 뜻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서 제대로 하고 싶어요. 지금 큰 아이가 고등학교 2학년인데 1년 동안 마음을 잘 추스르고, 저는 그동안 준비를 하고 있다가 나중에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어요.
지리산이음에서 지리산권 농부들, 그리고 농부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을 해보려고 해요. 어떤 지원을 하면 좋을까요?
농사짓는 입장에서는 지리산이음이 연계할 수 있다면 소농들을 위해서 같은 농산물끼리 사용할 수 있는 제품 패키지나 스티커 제작을 도와주면 좋겠어요. 우리도 환경을 생각하고 친환경 포장재를 쓰고 싶은 마음도 있으니까 그런 것도 지원해주면 좋고요.
그리고 농부들의 만남이 하동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지리산권 다른 지역 농부들과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교육에서 만나는 건 좀 일시적이에요. 다른 지역에서 농사짓는 분들을 만나면 정보도 다양하고, 젊은 농부들에게도 배울 게 많고요. 경력이 많은 분들에게는 노하우도 배울 수 있으니 작물이 같지는 않더라도 소통할 수 있는 소모임이 있으면 좋겠어요.
내가 농사를 지었는데 뭔가 더 하고 싶거나 다른 걸 해 보고 싶은데 뭘 해야 할지 모를 때 있잖아요. 다른 작물 하는 분들 이야기 들으면 제 입장에서 접목할 수 있는 부분들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요즘은 기후 변화 때문에 지역에서 생산되는 작물들이 점차 바뀌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같은 지역이 아닌 게 훨씬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 소통의 시간들을 가질 수 있으면 참 좋겠어요.
개인적으로 힘들었을 텐데 꺼내기 쉽지 않은 이야기를 해 주셨어요.
고지민 농부에게 지금 가장 고마운 사람은 누구인가요?
여기 표고버섯 하우스를 임대해서 쓰고 있는 친구요. 다른 일 하면서 농사도 같이 짓고 있는데 매실 철에는 수확하고 선별해서 포장하는 것도 도와주고요. 제가 농사짓도록 힘을 실어주고, 가장 도움도 많이 받고 있는 고마운 분이죠.
공식적인 인터뷰는 여기까지다. 농사이야기를 위해 힘들었던 시간을 다시 꺼내야 한다는 게 쉽지 않은 결심이었을 것이다. 큰 용기를 내고도 두서없이 말을 많이 한 건 아닌지 걱정하는 고지민 농부에게 낯선 이의 공감이 조금은 힘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짧은 만남으로 얼마나 절실한 마음으로 농사를 짓는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얼마나 큰 용기를 내고 있는지 전부 알 순 없지만 여성농부로 당당히 독립할 수 있기를 기원하고 응원한다. 체험농장을 만들고 싶은 농부의 꿈, 아들과 함께 농사짓고 싶은 어머니의 희망도 모두 이루어지길.
글 이경원
기획, 기록, 연결로 변화를 만드는 일과 사람을 돕는다. 2014년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궁금해서 찾았던 지리산시골살이학교 덕분에 지리산이음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때는 몰랐다. 7년이 지난 2021년 구례 남원 산청 하동 함양을 다니며 ‘농사를 업으로 하는 농부’들의 이야기를 글로 전하게 될 줄은.
사진 임현택
진행 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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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에서 매실농사를 짓는 고지민 농부는 <지금, 여기 우진농원> 대표농부다. 우리는 매실농장이 아닌, 참나무 표고목이 지그재그로 세워진 표고버섯 농장에서 만났다. 농업인대학 수료증, 고객들에게 보낸 편지, 농사일지와 그동안의 기록들을 차곡차곡 쌓아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터뷰 내내 내리던 비는 잠시 멈췄다 거세지기를 반복했고, 고지민 농부는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금, 여기서.
하동군 금남면에서 만난 고지민 농부
농장 이름 우진농원 앞에 ‘지금, 여기’라는 수식어가 붙어요.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저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굉장히 소중하기 때문이에요. 처음 농사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많은, 큰 변화가 있었거든요.
농사라는 걸 결혼해서 처음 지었어요. 2007년쯤 드라마에서 매실 효능이 부각되면서 매실 붐이 일었거든요. 남편과 ‘우리도 매실 농사짓자’해서 좋은 매실나무들을 찾아 심고 가꾸다가 갑자기 2009년에 남편에게 교통사고가 났어요. 큰 아이가 여섯 살, 작은 아이가 네 살 되던 해였는데 모든 게 올 스톱 돼버렸어요. 사고 후에 2년 정도를 병원에서 생활했어요.
큰 아이 학교 보내려고 어쩔 수 없이 하동으로 다시 내려왔는데 매실나무가 엉망이기는 해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거예요. 4년 전에 저희가 정말로 큰 뜻을 품고 심었던 나무들이었거든요. 그때 ‘지금, 여기에서 다시 시작하자’가 그냥 제 마음이었어요. 우진은 큰 아이 이름이고요.
그때부터 고지민 농부가 혼자 매실농사를 짓기 시작한 거예요?
네. 결혼해서 처음에는 그냥 도와드리는 정도였어요. 밤나무 산이 있으니까 가을 되면 밤도 줍고. 시골은 대부분 농사를 조금씩 짓잖아요. 몸은 좀 힘들어도 저는 농사가 너무 재밌었어요.
매실 농사는 남편 따라서 다니기만 했지 주도적으로 해보지 않았어요. 그런데 남편이 사고가 나니까 제가 실질적 가장이 돼버린 거예요. 남편을 돌봐야 하니 종일 근무 직장을 구할 수는 없었어요. 다행히 병설유치원 계약직 일자리를 구했어요. 제가 유아교육을 전공했거든요. 오전에는 남편 챙기고 집안일하고, 오후 반나절 유치원에서 일하면서 매실 나오는 철 되면 주말에 수확해서 팔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4년을 생활했어요.
그런데 매실을 수확해서 3톤 정도를 농협에 갖다주는데 평균 단가로 kg당 천 원도 못 받았어요. 저희가 신품종을 심어서 크기는 괜찮은데 이걸 제대로 키워서 따지 못하고 한꺼번에 수확해버리니까 제값을 못 받는 거예요. 인건비 주고 나면 남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저도 반나절 유치원에서 일하고, 애들 키우면서 남편 간호하고, 농사를 짓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남편 재활도 제대로 안 되는 것 같아서 과감하게 유치원을 그만뒀어요. 그만두고 농사를 한번 지어봐야겠다고.
절실함과 절박함이 전업농이 된 계기군요.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농업기술센터나 여러 곳에서 하는 교육을 열심히 다녔어요. 교육을 받으면서 조금만 차별화해서 판매하면 매실 3톤을 팔아서 생기는 순수익이 백만 원에서 2백, 3백만 원까지도 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1년에 한 번씩 주위 사람들한테 매실 사달라고 얘기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우연히 교육에 다모아영농조합법인 대표님이 강사로 오신 거예요. 그냥 가서 “선생님, 저는 사업자 등록증도 없고, 판로도 없는데 매실 농사는 진짜 잘 지을 자신 있습니다. 대표님이 우리 매실 좀 팔아주시면 안 돼요?” 하고 여쭤봤어요. 그랬더니 “되죠!” 하시는 거예요. 그때 우리 매실도 판로가 생겼고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어요.
사업자 등록증이 없어도 농지원부와 임대차 계약서만 있으면 영농조합법인에 우진농원 직거래로 제품을 올릴 수 있고, 통신판매는 영농조합법인이 대신 해 주는 거죠. 수수료를 공제하고 판매대금을 받는 구조인데, 수수료를 내고도 두 배 이상 가격을 받게 되니까 제가 전정이나 농사짓는 게 미숙해서 수확량이 줄어도 수입은 더 괜찮았어요.
그럼 지금도 매실과 버섯은 이 쇼핑몰 한 군데서만 판매하나요?
아니오. 지금은 직거래도 하고 농산물밴드에 올려서 판매도 해요. 농산물밴드는 농사를 짓고 있는 검증된 농부들만 농산물을 팔 수 있어요. 밴드 운영자가 저희 농장에 오셔서 매실을 보고 좋다 해서 3년 째 판매하고 있어요. 제가 10만원을 팔든, 천만 원을 팔든 정해진 수수료를 입금하면 한 달 동안 제 생산품을 올리고 팔 수 있어요.
버섯도 아직 규모가 작긴 한데 새로 인연을 맺은 온라인 사이트에서 판매하고 있어요. 우진농원을 전부터 알던 분들께는 제가 직거래로 팔기도 하고요.
판매망은 구했지만 혼자 농사짓는 게 가능한가요? 어떻게 하셨어요?
농사의 반은 제초작업인데 제가 그걸 낫으로 다 할 수 없었어요. 넓지는 않지만 밭이 세 군데로 나눠져 있었거든요. 다른 분께 부탁을 하게 되면 제가 원하는 날에 할 수도 없고 경제적인 것도 부담이 됐어요. 풀은 한번 베고 나도 또 자라잖아요.
저는 예초기를 굉장히 무서워했어요. 2017년에 처음 제가 예초기로 풀을 벴어요. 우리 땅은 논이어서 내가 한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처음에는 겁도 나고 한번 돌리고 나면 젓가락도 못 들었어요. 위험하다고 걱정하면서도 수확은 해야겠고, 낫으로는 도저히 못 베겠고 방법이 없었어요. 제가 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니까. 그때부터 풀은 제가 다 벴죠.
제일 좋은 건 제가 원하는 시기, 원하는 시간에 풀을 벨 수 있다는 거였어요. 인건비도 줄이고요. 저는 매실 수확하기 전에 풀 베고, 따면서도 한 번 더 벴어요. 도와주는 사람이 저희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풀이 너무 자라면 아이들이 다니기 힘드니까요. 그렇게 농사짓고 판매도 하고 굉장히 힘들었지만 10년을 잘 버텼는데 2019년 말에 남편과 헤어졌어요. 제 삶터도 이곳으로 바뀌게 되었어요. 10년 동안 지키려고 했던 것들을 모두 두고 나온다는 게 정말 쉽지 않았어요. 마을 이장 임기도 마치지 못하고 나왔지만 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인터뷰를 진행한 고지민 농부의 참나무 표고버섯 하우스
또 다시 ‘지금, 여기서’ 시작하게 된 거네요. 10년 동안 가꿔 온 삶의 터전을 옮겨 농사를 시작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네. 힘들었죠. 지금은 매실, 참나무 표고버섯, 그리고 감 농사를 지어요.
감사하게도 그동안 농사지으면서 알게 된 분들이 제 사정을 듣고 땅을 임대해 주셔서 다시 매실 농사를 짓기 시작했어요. 참나무 표고버섯은 먼저 시작한 친구의 표고버섯 하우스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알게 됐어요. 마침 폐목 시기가 된 참나무가 있어서 제가 한번 지어보고 싶다고 해서 지금은 7동 중 2동을 친구와 같이 키우고 있어요. 창고도 같이 쓰고 농사도 서로 도와가면서.
감은 임대 받아서 대봉감과 고종시를 짓고 있어요. 고종시라고 곶감 만드는 작은 감인데요. 저는 곶감 덕장이 없어서 말랭이로 만들어서 판매하고 있어요. 매실은 청매실 2,500평, 익으면 빨개지는 남고매실(홍매실)이 800평 정도 되는데, 작년에는 봄에 냉해 입고, 비도 자주 와서 벌레도 많이 생기고 병이 많아서 수확량이 반으로 줄어버렸어요. 매실 농사지으면서 가장 수확이 안 좋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거기다 제가 매실농사에 100% 정성을 쏟지 못했고, 처음부터 제가 농사를 지은 게 아니라 다른 분이 짓던 농사를 이어받아서 하다보니까 적응하는데 어려웠던 것도 있었고요.
처음에 밭에 가서 봤을 때는 매실 상태가 괜찮았는데 수확시기가 되니까 더 안 좋아졌더라고요. 다행히 하동농협에서 식품에 들어가는 매실용으로 받아줬어요. 우리는 망에 담은 거라고 망매실이라고 부르는데 kg당 900원에서 1,000원 정도까지 가격을 받았어요. 제가 가지고 가면 사람들이 이런 건 생과로 팔아도 되는데 망매실로 파냐고 했어요. 보통 20kg 짜리 망에 21kg를 채우는데 농가마다 매실상태는 다양해요. 농부들의 생각이 다 다르니까요(웃음)
저는 먹거리는 정말로 정직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처음부터 조금만 흠집이 있으면 생과로는 안 팔아요. 그래서 밭에 버리는 매실도 굉장히 많았어요.
애써 키운 매실인데 좀 안타깝네요.
그렇긴 한데 그걸로 또 새로운 인연이 생겼어요. 예전에 제가 운영했던 블로그를 보고 진주에서 온새미로 농업으로 꽈리고추를 키우는 분이 전화가 왔어요. 천적으로 약을 치는데 버려지는 매실을 사고 싶다고. 매실 상태를 아셔야 하니까 사진을 찍어서 보내드렸어요. 그런데 물컹해진 것도 전혀 상관이 없대요.
처음에는 6콘티(콘티:20kg용 과일상자를 세는 단위), 7콘티 정도를 kg당 500원 드렸어요. 앞으로 상처가 나서 망매실에 넣을까 말까 고민되는 건 이 분께 드리면 되겠다 생각하면서 그 분께 제가 제안을 했어요. 양은 원하는 만큼 드릴 수 있으니 가격을 kg당 500원은 좀 그렇고 1,000원으로 정하자고. 그리고 10콘티 주문하시면 한 콘티를 그냥 더 드리겠다고. 그렇게 해서 그 분과 3년째 인연을 이어가고 있어요. 올해도 20콘티를 구입하셨어요. 가끔 저는 좋은 매실 집에서 드시라고 보내드리고, 그 분도 오실 때 쌀농사 지으신 걸 갖다 주세요. 이렇게 인연이 이어지는 게 너무 감사하죠.
매실은 생과, 가공용 망매실, 약재용 출하 비율이 어느 정도 되나요?
아무래도 생과로 나가는 게 제일 많죠. 80% 정도예요.
참나무 표고버섯농사도 궁금해요.
제가 참나무 표고버섯에 대한 갈망이 있어서 시작한 건 아니에요. 처음 시작하신 분은 바른 먹거리에 대한 신념으로 선택하셨대요. 저는 그 분들 가는 길에 운 좋게 얻어 타게 된 거죠. 버섯은 한 동에 1,500본이니까 총 3,000본 정도 돼요.
버섯의 원리가 폐목에 종균을 넣어서 그 나무가 썩어서 올라오는 거거든요. 참나무 표고목에 구멍을 뚫고 나면 종균 넣고 눕혀요. 어느 정도 배양이 되면 베개목으로 세우고 또 지그재그로 쌓아요. 물 작업하고 10일이 지나면 움이 트는데 다시 세워주는 과정을 거쳐야 해요. 표고버섯은 종균이 있다고 해서 전부 다 한꺼번에 올라오지는 않아요. 그리고 한 번 올라왔던 데는 버섯이 안 올라와요. 그리고 버섯을 따다보면 꽁지가 야무지게 안 따질 때가 있거든요. 그럼 비가 오거나 습해지면 파놓은 홈에 곰팡이가 생겨버려요. 종균도 균이긴 하지만 곰팡이는 버섯에 안 좋으니까 일일이 파내줘야 해요. 너무 많다보니까 다 파내지는 못해요.(웃음) 이렇게 해서 봄, 가을, 겨울로 표고버섯은 수확할 수 있어요.
표고버섯은 여름 빼고는 계속 수확을 할 수 있군요. 그런데 여름엔 매실 수확해야 하니까 고지민 농부는 1년 내내 쉬지 않고 농사짓는 거네요.
매실은 5월 말부터 해서 6월 망종 이후에 수확하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는데 7월 10일 전후로 끝나요. 올해처럼 추석이 빠를 때는 생표고를 내면 좋은데 기온이 올라가면 버섯 품질이 떨어져요. 그래서 올해는 수확을 안 할 거예요. 그렇다 보니까 7월부터 8월에 생산품이 없어서 추석 명절을 쇠야 하는데 좀 어려움이 있네요.
표고는 봄, 가을, 겨울 세 계절 동안 생산한다고 해도 계속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봄이 3월부터 5월까지라고 하면 3개월 동안 수확하는 게 아니라 한 번 수확하고 나면 좀 쉬어야 해요. 그래서 봄에 한 번, 가을에 한 번 생산한다고 보면 돼요. 대신 겨울은 좀 길죠. 버섯은 기온이 낮을수록 잘 자라고 품질이 좋아요. 색깔은 봄 버섯이 제일 좋고요.
화고성이라고 하는데 버섯 보면 등이 갈라져서 하얀 빛이 나잖아요. 이게 해하고 날씨가 다 받쳐줘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백화고는 하늘이 주는 거래요. 백화고가 올라와도 비가 오면 색깔이 싹 변해버려요. 습도에 굉장히 민감하거든요. 그래서 보관도 잘해야 돼요. 저도 처음에는 수확해서 바로 출하를 못하니까 보관했다가 한꺼번에 하겠다고 저장창고에 넣었어요. 그랬더니 색깔이 변해버린 거예요. 그 다음부터는 조금 빛을 띠는 건 건조시켜서 판매해요.
하우스에 줄 지어 늘어선 표고목들의 모습
버섯은 참나무 홈에 종균을 넣고 나서 수확하기까지 얼마나 걸리나요?
1년 6개월이요. 한번 참나무에 종균을 넣으면 3년 정도 수확을 할 수 있어요. 나무는 굵을수록 더 좋다고 해요. 수명도 길고 수확도 3년 보다 더 길게 할 수 있는 확률이 커진다고.
작년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물이 하우스 앞까지 꽉 찼어요. 보트를 타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저희 표고목은 올해 겨울까지 수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안 될 것 같아요. 다른데서 지금 이쪽으로 옮겨온 것들은 괜찮은데 물에 잠겼던 나무들은 가을에 올라오는 것까지만 수확하고 겨울에는 나무보일러 떼는 곳에 나눔을 해야 될 것 같아요.
참나무 표고버섯을 키우는 표고목은 수명이 3년 정도 되는 거군요. 그럼 종균은 어떻게 만드나요? 직접 키우시는 건가요?
아니요. 종균은 김제에 있는 종균 연구소에서 받아와서 참나무에 넣어줘요.
전북 임실은 참나무 표고버섯을 많이 재배해서 지원도 잘 되는 편인데 하동은 그렇진 않아요. 먼저 시작한 친구는 임실에 1년 동안 다니면서 일하면서 배웠대요. 배운다고 해도 정말로 중요한 노하우는 농장에서 안 가르쳐 줘요. 배우는 입장에서는 알고 있는 걸 가르쳐주면 서로 잘 살 것 같은데 아직까지는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지역에서 정보 얻기도 힘들군요. 하동에서 표고농사를 짓는데 임실까지 가야 한다니…
네. 어려워요. 하동은 참나무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농가 지원도 굉장히 약하고요.
요즘은 종균을 참나무 원목배지에 안하고 아예 종균 작업을 해서 파는 배지버섯이 있어요. 보통 배지를 중국에서 수입을 많이 하니까 순수한 국산이 될 수는 없죠. 그것도 시설비 투자도 많이 해야 하고 일이 굉장히 많긴 한데 수확량이 많다보니까 참나무 표고버섯하고는 가격이 비교가 안돼요. 그래서 참나무로 표고를 키우는 농가가 점차 없어지고 있는 추세예요. 노동력은 많이 드는데 가격은 경쟁력이 없으니까 임실에도 지금 참나무 표고버섯 재배를 그만두는 분들이 굉장히 많대요.
여러모로 표고버섯 농사가 어렵군요.
네. 참나무가 너무 무거우니까 저는 구멍 뚫기도 힘들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작은 미달목 정도예요. 좀 얇은 아이들. 그마저도 처음에는 드는 게 너무 힘들어서 사람을 썼더니 인건비가 너무 많이 들었어요. 1,500본에 종균 한번 넣으려면 참나무 원목, 종균, 인건비까지 해서 한번에 2천만 원 정도가 들어요. 그래서 작년에는 버섯종균기능사 공부해서 필기는 합격했는데 실기가 남았어요(웃음).
밑에 있는 종균이 위로 가도록 흐름을 좋게 하려면 참나무를 한 번씩 뒤집어 주면 굉장히 좋아요. 힘이 들지만 저희도 봄 수확 끝나고 한 번, 가을 수확 끝나고 한 번 이렇게 뒤집어줘요.
사람을 써서 해보니까 나무를 지그재그로 잘 세워야 하는데 그걸 이해 못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잘 못 세워서 하나가 넘어지면 도미노처럼 다 넘어가서 나무껍질이 까져서 나쁜 균이 침투할 수 있어서 굉장히 위험해요. 상처가 나면 다 긁어내줘야 하거든요. 그래서 직접 해요.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겨서 혼자서도 하루 만에 다 할 순 있더라고요.
올해 초부터 친환경 인증을 받으려고 준비도 하고 있는데 코로나 상황이 계속되고 제가 자본이 많은 것도 아니어서 계속할 수 있을지 망설여져요. 앞으로 3년을 보고 친환경 인증을 받을지 아니면 다른 작물을 선택해야 할지. 친환경 인증을 받으려면 주변 농장에서 제초제나 농약을 치지 말아야 하는데 주위 분들한테 ‘제가 친환경을 받아야 되니까 약 좀 치지 말아주세요’라고 말씀 드리기도 참 어려워요.
매실과 버섯 중에 고지민 농부가 더 자신 있는 건 매실이겠네요?
네. 제가 매실 농사를 잘 짓고, 병해충을 전부 다 아는 건 아니지만 밭에 가서 제초 작업하고 수확하면 그냥 마음이 좋아요. 풀들이 나무를 막 타고 올라가는데 그걸 걷어내 주면 나무들이 되게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제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웃음).
이제는 한꺼번에 수확 안 하고 잘 키워서 크기별로 선별해 따니까 작았던 매실들이 3일 지나고 가면 알이 단단하게 잘 자라 익어 있어요. 그런 걸 보는 게 너무너무 좋아요.
매실 농사에서 제가 꼭 지키려는 원칙이 있어요. 매실은 망종 이후에, 매실이 잘 여물고 독성이 많이 없을 때 수확한다는 거. 그리고 방제작업을 안 할 수는 없지만 수확 한 달 전에는 절대 약을 치지 않아요. 정해진 약을, 정해진 용량만큼만 친다는 건 꼭 지키고 있어요.
저는 사업자 등록증도 없고 가공 허가증도 없으니까 매실청이나 가공식품을 제조, 판매할 수는 없다는 게 좀 아쉽긴 해요. 농산물 가공 교육을 받으면 센터의 좋은 시스템, 좋은 시설을 활용할 수 있고 실제로 정말 잘 사용하시는 분들도 계시다고 하는데 제가 적극적이지 않아서 그런지 좋은 취지만큼 농민들에게 가까이 와 있지는 않다고 느꼈어요. 제 개인적인 마음의 벽일지도 모르겠어요. 열심히 교육도 받고 했는데 접근이 쉽지 않았어요.
농사로 바쁜 날들 틈틈이 배웠던 교육 자료들을 보여주는 고지민 농부
농사도 바쁠 텐데 공부도 열심히 하고 정리도 굉장히 잘 해 놓으셨네요.
농업인 대학도 다니고 교육을 진짜 열심히 받았어요. 교육을 받을 때는 열의가 넘쳐요. 이제 나도 할 수 있겠다 싶다가도 농사지으면서 그런 노하우들을 모두 적용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농사일지도 습관적으로 이건 꼭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일주일 정도는 열심히 적다가 농번기에 딱 들어가면 너무 힘드니까 메모장에다 일단 기록만 해 놓고 옮겨 적지를 못해요. 잘 연계가 안 되더라고요.
올해는 꼭 농사일지를 쓰겠다고 농사일지 앱도 받았는데 용량이 생각보다 굉장히 컸어요. 잘 쓰지도 않게 되고 괜히 놔두면 안 되겠다 싶어서 없앴어요. 그래도 표고버섯 친환경 인증을 받으려면 농사일지가 필요하니까 그건 녹차연구소(하동지역 친환경 인증 대행기관)에서 제공하는 양식에 맞춰 작성하고 있어요.
그럼 농사 정보는 주로 어디서 얻나요?
매실 농사는 하동 정보화농업인 모임이 있어서 농업인들끼리 교류도 하고 정보도 교환해요. 지금은 코로나로 전면금지지만 교육도 자주 있어요. 모르는 건 밴드에 올리면 매실 농사 잘 짓는 분들이 알려주시곤 하는데 마을에서는 매실 농사짓는 분들이 연세가 아주 많은 분들이라 실질적인 소통은 잘 안돼요.
표고버섯은 인근에 재배하는 농가가 저희밖에 없기 때문에 농업기술센터나 전북 임실로 가는데 버섯은 병이 워낙 많아서 농사지으셨던 분들한테 사진을 찍어서 보내줘도 모르고 농업기술센터도 잘 모를 때가 많아요.
처음에 병이 생겼을 때는 너무 답답해서 진주에 있는 연남공과대학교에서 버섯 연구하는 박사님께 갔어요. 그분 하시는 말씀이 종균 접종 시기가 너무 늦었다는 거예요. 책에서는 5월 벚꽃 피기 전에 접종하라고 되어 있어요. 여기는 남쪽이라 2월 전에 종균 접종을 해야 되는데 그걸 몰라서 3월, 4월에 했더니 배양이 잘 안되고 날씨까지 습해지면서 병이 온 거더라고요. 그렇게 배우면서 알아가고 있어요.
농장 홍보는 어떻게 하세요? SNS나 주로 활용하는 채널이 있나요?
SNS를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고 처음에는 블로그도 운영했었는데 지금은 안 해요.
대신 저는 제가 생산한 농산물을 정성껏, 양심껏 보내드려요. 그리고 드셔보시라고 제철에 키운 다른 농산물과 손편지를 같이 넣어요. 처음에는 편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손으로 적었는데 주문이 많아지니까 그게 좀 힘들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지금은 감사인사를 프린트해서 우진농원 스탬프 찍고 거기에 제가 그림을 그리거나 간단하게 메시지를 넣어요. 잘 그리는 그림은 아니지만.
파일에 차곡차곡 모아놓은 자료들
매사에 열심이지만 여성 농부라서 힘든 점이 있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기계를 대여하거나 기계를 다루는 것에 조금 서툴다는 거요. 제일 힘든 건, 체력적으로 많이 힘든 것 같아요. 무언가를 들고 움직이는 게, 좀 우습긴 한데 30대와 40대는 완전히 다르더라고요.(웃음)
그리고 지역에서 여성들이 농업인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시골에서는 아직까지 ‘여성농부 누구’보다는 누구의 아내, 누구 집 며느리여야 인정받는 게 강한 것 같아요. 그것도 저만 그렇게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아, 나는 다른 사람을 그렇게 판단해서는 안 되겠다’ 마음을 다잡는 중이에요.
고지민 농부만의 마음을 다잡는 비법이라도 있나요.
남편의 사고 후에 몸이 힘들기는 해도 내가 불쌍하다고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렇게 가다가는 내가 너무 원망하는 마음이 들것 같았어요. 나는 걸을 수도 있고 내 마음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데 내가 돌봐야 하는 사람을 떠난다는 죄책감에 주춤하게 되고 손을 놓지 못했는데, 제가 맞는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결심을 했던 거고요. 후회는 없어요. 정말로 최선을 다했었거든요. 그래도 늘 좀 아프죠. 멍하게 있는 날도 있고. 모든 게 제가 안달한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 지금은 ‘농사 열심히 짓고 판매를 잘하자’ 이 생각만 하려고요.
여성농부로 힘든 과정이 있었고 여전히 어려움이 있지만 계속 농사짓는 건 보람도 있기 때문이겠죠?
있죠. 제가 마음을 담아서 보낸 농산물을 받은 고객들이 고맙다고 해주실 때 보람 있어요. 그 힘으로 버티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저는 농업은 분명히 희망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큰아이 고등학교 진학도 특성화고등학교를 선택했고요. 큰 아이가 지금은 잘 못 느끼겠지만 제가 꾸준히 농사를 짓고 기반을 마련해 놓으면 와서 농사를 지을 것 같아요. 돌아왔을 때 제가 힘들었던 것보다는 덜 힘들게 해주고 싶어요. 지금 그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믿고 기다려봐야죠.
하동군 금남면에서 만난 고지민 농부가 표고버섯 하우스를 배경으로 서 있다.
자식위한 농사 말고 농업인 고지민은 앞으로 어떤 꿈을 갖고 있나요? 꿈꾸는 농장의 모습이어도 좋고요.
저는 넓지 않더라도 제 공간이 생기면 좋겠어요. 임야라도 좋아요. 표고버섯 키우기든, 매실 따기든 체험할 수 있는 농장을 만들고 싶어요. 농장에 집과 작업장 넣고 뒤쪽에는 과실수도 심어져 있으면 좋겠고요. 그게 안 된다면 아이들이 와서 재활용 만들기도 하고 누구든 와서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생각은 굉장히 많이 하고 계획도 있는데 아직 구체적으로 알아보는 단계는 아니에요.
요즘은 중앙부처나 지자체에서 농업인들을 지원하는 사업들도 많잖아요.
사실 제가 우수 후계농에 선정됐었어요. 매실 농장에 체험농장을 해보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2019년에 어쩔 수 없이 그걸 포기했어요. 한번 신청했다가 포기하면 페널티처럼 일정기간동안 신청을 할 수 없어요. 당분간은 우수후계농은 좀 어려울 것 같아요.
정부지원 사업은 영농조합법인이 되어야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가 있고, 개인에게 해주는 지원은 되게 한정적이에요. 지원 조건에 맞는 법인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허위로 만들거나 무턱대고 일을 벌이고 싶진 않아요. 정말로 뜻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서 제대로 하고 싶어요. 지금 큰 아이가 고등학교 2학년인데 1년 동안 마음을 잘 추스르고, 저는 그동안 준비를 하고 있다가 나중에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어요.
지리산이음에서 지리산권 농부들, 그리고 농부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을 해보려고 해요. 어떤 지원을 하면 좋을까요?
농사짓는 입장에서는 지리산이음이 연계할 수 있다면 소농들을 위해서 같은 농산물끼리 사용할 수 있는 제품 패키지나 스티커 제작을 도와주면 좋겠어요. 우리도 환경을 생각하고 친환경 포장재를 쓰고 싶은 마음도 있으니까 그런 것도 지원해주면 좋고요.
그리고 농부들의 만남이 하동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지리산권 다른 지역 농부들과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교육에서 만나는 건 좀 일시적이에요. 다른 지역에서 농사짓는 분들을 만나면 정보도 다양하고, 젊은 농부들에게도 배울 게 많고요. 경력이 많은 분들에게는 노하우도 배울 수 있으니 작물이 같지는 않더라도 소통할 수 있는 소모임이 있으면 좋겠어요.
내가 농사를 지었는데 뭔가 더 하고 싶거나 다른 걸 해 보고 싶은데 뭘 해야 할지 모를 때 있잖아요. 다른 작물 하는 분들 이야기 들으면 제 입장에서 접목할 수 있는 부분들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요즘은 기후 변화 때문에 지역에서 생산되는 작물들이 점차 바뀌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같은 지역이 아닌 게 훨씬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 소통의 시간들을 가질 수 있으면 참 좋겠어요.
개인적으로 힘들었을 텐데 꺼내기 쉽지 않은 이야기를 해 주셨어요.
고지민 농부에게 지금 가장 고마운 사람은 누구인가요?
여기 표고버섯 하우스를 임대해서 쓰고 있는 친구요. 다른 일 하면서 농사도 같이 짓고 있는데 매실 철에는 수확하고 선별해서 포장하는 것도 도와주고요. 제가 농사짓도록 힘을 실어주고, 가장 도움도 많이 받고 있는 고마운 분이죠.
공식적인 인터뷰는 여기까지다. 농사이야기를 위해 힘들었던 시간을 다시 꺼내야 한다는 게 쉽지 않은 결심이었을 것이다. 큰 용기를 내고도 두서없이 말을 많이 한 건 아닌지 걱정하는 고지민 농부에게 낯선 이의 공감이 조금은 힘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짧은 만남으로 얼마나 절실한 마음으로 농사를 짓는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얼마나 큰 용기를 내고 있는지 전부 알 순 없지만 여성농부로 당당히 독립할 수 있기를 기원하고 응원한다. 체험농장을 만들고 싶은 농부의 꿈, 아들과 함께 농사짓고 싶은 어머니의 희망도 모두 이루어지길.
글 이경원
기획, 기록, 연결로 변화를 만드는 일과 사람을 돕는다. 2014년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궁금해서 찾았던 지리산시골살이학교 덕분에 지리산이음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때는 몰랐다. 7년이 지난 2021년 구례 남원 산청 하동 함양을 다니며 ‘농사를 업으로 하는 농부’들의 이야기를 글로 전하게 될 줄은.
사진 임현택
진행 이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