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 구례에서 살아보고 싶지만 비빌 언덕이 없어 망설이는 귀향, 귀농, 귀촌 희망자
- 지원사업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농촌에 잘 정착하고 싶은 예비 귀농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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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예 농부는 남편 김용일 농부의 고향 구례로 귀농, 지리산 채담빛 농원을 운영하는 5년차 농부다. 고향 가서 어머니와 함께 살자는 남편의 제안에 흔쾌히 OK!하고 어릴 적 남편이 살았던 간전면으로 2018년에 이주했다.
마을 안 골목에 차를 세우고 이 집이 맞나? 싶은 순간, 이지예 김용일 이름이 나란히 새겨진 문패를 발견했다.
차곡차곡 개어 놓은 옷들과 건조대에 널린 양말을 보니 만만치 않은 규모의 살림살이다.

구례군 간전면에서 만난 이지예 농부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저는 농부 이지예입니다. 11살, 8살, 7살 아들 셋을 둔 엄마고요.
‘어머니가 보고 싶다. 고향 가서 살자’는 남편 제안에 정말 흔쾌히 오케이 했나요?
(웃음)처음에는 ‘흔쾌히’가 아니었죠. 나중에는 ‘흔쾌히’가 됐지만. 신앙생활의 힘입니다. 서울에서 구례로 내려가면 뭘 할까, 잘 살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있었죠, 당연히.
내려와서 처음 10개월 동안은 다섯 식구가 용방면에 있는 체류형 농업창업지원센터에서 지냈어요. 농사 공부도 굉장히 열심히 했어요. 집을 구할 때가 되자 남편이 어머니와 같이 살자고 어려운 제안을 했었죠. 같이 사는 것보다 가까이 살면서 자주 들러 보는 게 낫지 않겠냐며 거절했는데 계속 마음이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기도해 보고 얘기해 주겠다고 했어요. 결국 저는 함께 살기로 결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2017년 12월에 어머니가 살던 집을 허물고 집을 새로 지어서 2018년 3월부터 같이 살고 있어요.
3대가 같이 사니까 되게 좋아요. 물론 조금 불편한 점도 있죠. 저희는 친환경으로 농사를 짓는데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농사짓던 방식이 있으니까 ‘왜 이렇게 하느냐’, ‘농약 안치면 안 된다’고 가끔 말씀하세요. 그런 부분에서 갈등이 종종 있었어요. 그 때마다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서 제가 좀 힘들었죠(웃음).
다 좋은데 농사 방식의 차이가 의외의 복병이었네요. 그래도 많은 귀농, 귀촌인들이 겪는 집 문제와 마을 정착은 자연스럽게 해결되었겠어요.
네. 우리 마을이 24가구 정도 되는데 젊은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저희가 할 일이 많아요. 어르신들이 젊은 사람이 해야 한다고 해서 남편은 작년부터 마을이장으로 봉사도 하고 있고요. 남편 고향이기도 하고 어머니가 계신 덕분에 순탄하게 잘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 농사짓는 작물은 몇 가지나 되나요? 1년 농사 얘기 좀 해주세요.
고추, 양파, 마늘, 감자, 옥수수, 콩, 배추까지 7가지 정도 되네요.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맞게 친환경 농사를 지어요. 저희는 모두 인증 받은 무농약 농산물이에요.
늦가을에 양파, 마늘 심어서 겨울 지나고, 이듬해 6월에 양파와 마늘이 나와요. 감자도 6월에 나와요. 7월에는 옥수수가 나오고 7월 말부터 고추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11월 초에는 콩을 수확합니다. 11월 중순 되면 절임 배추로 김치도 담가 팔아요. 저희 김치 엄청 반응이 좋아요. 11월 초에 하우스 감자 농사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2월 말에 수확을 하죠.
1년, 12달 쉬지 않고 농사만 하신다는 거네요.
김용일 하우스 농사를 시작하면서 그렇게 돼버렸네요. 겨울 하우스 농사가 그다지 힘들진 않아요. 심을 때, 수확할 때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지만 중간에 관리하고 친환경으로 약치는 건 편해요.
농한기 얘기가 나오자 옆에 있던 김용일 농부가 한마디 보탠다. 이지예, 김용일 농부는 작년부터 하우스 감자 농사를 짓고 있다. 첫 해 농사는 한파로 수확량도 많지 않았고, 코로나 때문에 학교 급식도 중단되어 매출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구례군 용방면에서 생산되는 시설 감자는 한때 20kg에 16만원까지 가격이 오르기도 했지만 보통은 7~8만 원 선에서 거래된다고 한다.
농사는 둘이서 짓는 거죠?
대부분 둘이 같이 다 해요. 인부를 쓰려고 해도 올해는 특히 사람이 없네요. 고추는 남편과 둘이 다 따요. 형님 부부가 휴가차 내려와서 도와주시기도 해요. 사람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서울에서 누가 인력 좀 보내주면 좋겠어요.
친환경이라 손이 더 많이 갈 테고요. 친환경농사를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친환경은 귀농교육 받으면서 처음 공부했어요. 김용일 농부가 농업인 대학에서 공부하더니 친환경 농사에 완전히 꽂혀서 이 길로 들어섰죠.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힘들어요. 작년에는 하우스 감자 농사가 처음이라 진딧물을 다 못 잡았어요. 세 동 중에 한 동은 거의 망쳤어요.
주변에 관행농업하는 분들이 저희 친환경농사 짓는 거 보면서 나 같으면 친환경 안 한다, 때려치워라, 약 한번 쳐도 모른다, 그냥 약 쳐라 그런 얘기들을 막 하세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해요. 검사에서 농약이 안 나온다고 해도 절대 그럴 수는 없죠. 저희는 인증 받아야 하고, 그리고 절대 속이면 안 된다고 말하죠.
‘채소는 팔아도 양심은 팔지 않는다’는 어록이 여기서 탄생하는 거군요.
하하하 저희 블로그 보셨어요? 우리 농장 슬로건이에요. 3년 전에 고추를 친환경으로 농사지었는데 다른 데서 날라 온 농약 때문에 인증을 받지 못했어요. 진짜 너무 황당하고 억울했어요. 한번 취소되면 1년 동안은 친환경 인증 신청을 못해요. 그래도 저희는 1년 동안 계속 친환경으로 농사지었어요. 그렇게 다음해에 다시 인증을 받았어요.

‘채소는 팔아도 양심은 팔지 않는’ 채담빛농원의 이지예, 김용일 농부
친환경으로 농사지으려면 모종부터 다른가요?
네. 모종부터 친환경으로 키워야 해요. 고추는 경북 청송에서 5,000평 규모 고추 농사를 무농약으로 하시는 저희 농사 멘토에게 친환경 모종을 구해 와서 심어요. 올해 배추모종은 지인 통해서 아이쿱에 신청해 놨어요. 바빠서 직접 채종을 못하니까 씨앗을 부탁했어요. 저희가 아직 모종을 안 키워 봤는데 그것도 이제 시도해 봐야죠. 양파는 9월초에 파종하는데 벌써 9월이네요(웃음). 요즘 날씨가 안 좋아서 아직 밭을 못 만들어요.
무농약 친환경은 화학성분이 들어간 농약을 쓰지 않는 의미인거죠?
네. 친환경은 무농약과 유기농 둘 다 포함해요. 단계가 있는데 무농약으로 3년이 지나면 다시 3년의 유기전환기를 거쳐요. 그 기간이 지나면 유기농으로 넘어가는 거예요. 무농약 친환경은 화학농약을 전혀 쓰지 않고 비료도 3분의 1만 사용해요. 유기농은 아예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단계로 가는 거예요.
두 분의 목표는 유기농 친환경이겠죠?
좀 겁나지만 목표는 유기농 친환경 농산물 인증을 받는 거예요. 김용일 농부가 액비도 만들어야 하고 할 일은 많지만 진취적인 스타일이라 할 수 있을 거예요.
옆에 있던 김용일 농부가 무농약과 유기농의 차이는 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정도인데 가격은 유기농이 월등히 높다며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남편은 너무 쉽게 얘기해요. 농사를 짓는 것도 어렵지만 제가 어려운 건 고객들의 인식이에요. 이번에 우리가 고춧가루를 600g에 2만 4천 원에 파는데 어떤 사람은 ‘너무 비싸요’하고 어떤 사람은 ‘왜 이렇게 싸게 파느냐’고 해요. 비싸다는 분들에게 관행보다 왜 비싼지 일일이 설명을 해요.
해 보니까 친환경은 수확량이 확실히 떨어져요. 관행의 반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유기 약재를 저희가 만들기도 하지만 탄저병을 잡으려면 유기농 인증 약재를 살 수 밖에 없는데 일반 약재보다 가격이 두 배나 비싸요. 그리고 당연히 손이 많이 가니까 인부들도 더 많이 써야 되고요. 들어가는 정성이나 원가를 모르고 ‘너무 비싸요, 왜 이렇게 비싸게 파느냐’ 얘기 들으면 좀 속상해요.
지난해 구례 하동 일대가 수해를 입었는데 이 마을은 어땠나요?
저희도 작년에 섬진강 유역 다른 농가들처럼 수해를 입었어요. 고추밭이 다섯 군데 총 1,400평 규모인데 800평이 침수되면서 5,200주가 망가졌어요. 그 밭은 하나도 수확을 못했어요. 작년에 남편은 이장이라 마을 어르신들 윗동네 마을회관으로 피신시킨다고 바빴어요. 차로 모시고 왔다 갔다 하면서 밭 상태를 보긴 했는데 처음에는 우리 밭까지 물이 안 들어왔어요. 저녁에 결국 물이 들어와 버리니까 허망하더라고요.
그런데 저희 뿐 아니라 다른 농장들도 피해가 컸어요. 구례 전체가 난리였으니까. 아직 보상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상황이에요.

이지예 농부의 고추밭 풍경
1년이 지났지만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거군요. 부부가 같이 농사를 짓는데 각자의 역할이 정해져 있나요?
저는 농사와 마케팅을 다 하고요. 김용일 농부는 농사만 지어요(웃음).
그럼 판로 개척도 이지예 농부의 몫인가요?
그건 같이 하죠. 저희가 귀농하자마자 트럭을 샀어요. 그 트럭에 대봉감이며 고춧가루, 농산물 싣고 화엄사, 사성암으로 다니며 팔았어요. 그다음 해부터는 이래선 제대로 판매가 안 되겠다 싶어서 둘이서 무조건 하루에 한 사람씩 고객을 유치하자, 판로를 개척하자고 했어요. 고추 따면서도 전화했다니까요.
이제 5년 쯤 되니까 정직하게 농사짓는 걸 알아주는 분들도 계시고, 알음알음 소개도 시켜주시곤 해요. 작년에 수해로 밭이 잠겨서 무농약 고춧가루를 못 판다고 양해를 구했더니 올해 다시 찾아주시는 고객들도 있어요.
저희 김치 인기가 좋다고 했잖아요. 저희가 키우는 품종이 황금배추인데 항암배추, 암탁배추라고도 해요. 세계최초 기능성 배추인데 포기가 작지만 속이 아주 샛노랗고 단단하고 달아요. 이 배추만 드시는 분들은 벌써부터 연락이 와요. 이제 다른 배추는 못 먹으니 올해도 꼭 보내줘야 한다고.
요즘 추세가 그래요. 많이 안 드시니까 작아도 달고 맛있는 걸 찾아요. 절임배추 팔고 마지막에 저희 집 김장하면서 미리 주문받은 김장김치를 보내드려요. 그렇게 해마다 20kg 김치가 30~40박스가 나가는 것 같아요.
그럼 채담빛 농원 농산물은 하루에 한 명씩 확보했던 고객들과 100% 직거래로 유통되나요?
네. 100% 직거래예요.
주로 어떤 채널을 이용하나요? 다른 농장들 보면 스토어팜이나 밴드, 카카오스토리까지 꽤 다양하던데요.
저희는 블로그와 서울에 사는 지인 모임 밴드, 카카오스토리를 주로 이용해요. 아무래도 개인 네트워크가 제일 믿을 수 있고, 혹시 농사가 잘 되지 않았을 때 양해를 구할 수 있는 관계가 되니까요.
작년에 저희가 수해 입기 전에 고춧가루 가격을 정하고 홍보도 미리 해서 주문과 입금까지 한 분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수해 이후에 고춧가루 가격이 엄청 올랐어요. 농약을 친 고춧가루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래서 입금한 분들에게 우선 보내드리고 나머지 분들에게는 양해 문자를 보냈어요. 이런 저런 사정으로 저희들도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올려야 하는 상황인데 그래도 주문하시겠냐고 했더니 감사하게도 대부분이 주문을 해주시더라고요. 그마저도 양이 얼마 안돼서 모든 분들에게 보내지도 못했어요. 너무 죄송했죠. 그런데 주문해준 분들 마음이 꼭 선물을 받은 것 같았어요.
고객들과는 어떻게 관계를 이어가나요?
저희 고객이 300명 정도 돼요. 한번 드신 분들은 저희 농장을 믿고 계속 저희 것만 드세요. 처음 주문한 분들도 다음에는 뭐 나오느냐 물어보고요. 저희도 고춧가루 보내면서 11월에는 절임배추가 나오고 12월에는 김치가 나옵니다. 기대해 주세요. 메시지를 꼭 보내요. 그러면 황금배추도 기대하겠습니다. 답장이 오기도 해요.
작년에는 수해 입고 난 뒤에 양파를 많이 심었어요. 그래서 양파즙을 만들었어요. 농산물 보낼 때 두 팩씩 넣어서 맛보고 괜찮으면 주문하시라고 같이 보냈어요(웃음). 이런 식으로 홍보도 하죠.
역시 채담빛농원 대표이자 홍보마케팅 담당이십니다.
친환경 농사를 시작하고 ‘하지 말 걸 괜히 했다’ 후회한 순간 없었나요?
가끔 있죠. 하우스 농사를 진짜 열심히 지었는데 감자 진딧물도 못 잡고, 그냥 약치라고 하는 얘기까지 들으니까 너무 속상하더라고요. 그런데다 수확량이 그렇게 많지 않으니까 잠시 그런 생각이 들긴 했죠. 그런데 이제는 저희가 관행으로 농사를 못 지을 것 같아요. 친환경을 아니까 농약 치면서 농사짓는 건 못할 것 같아요.
김용일 농부는 나름대로 무농약 친환경 농사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었다.
(김용일) 아버지가 물려준 논, 밭이 그렇게 넓지는 않습니다. 귀농 첫해 논농사로는 경쟁이 안 된다는 걸 알았어요. 밭농사를 짓기로 하고 고추농사를 무농약 친환경을 한다고 했을 때 ‘농사가 무농약으로 되겠느냐’ 무시하는 말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무농약을 고집한 이유는 어렸을 때의 기억 때문입니다. 그때는 농약이 엄청 독했어요. 우리 동네만 해도 한 여름에 약 치다가 중독돼서 죽은 어른들이 있었어요. 지금은 저독성으로 가고 있고, 젊은 분들은 드론으로 항공방조도 하고 많이 편해졌지만 저는 농약이 안 좋다는 걸 어릴 때 경험으로 알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지리산권에는 친환경이 맞겠다, 오히려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채담빛농원이 자랑하는 고춧가루. 직거래로 판매한다.
올해는 어떤 작물 심었나요? 벼농사는 아예 안 짓나요?
쌀농사는 우리 먹을 것, 가족들 보낼 것만 지어요.
올해는 고추를 하우스 600평, 노지 560평에 2,400주 심어서 총 4,000주 심었어요. 고추농사 끝나면 노지에는 배추 심고, 하우스에는 11월에 감자를 심어야죠. 9월 말에는 노지에 마늘 심고, 11월 초에는 양파를 심어요. 내년에 일찍 옥수수 심고, 감자 심어야죠.
사람도 쉴 틈이 없고 밭도 쉴 틈이 없네요. 연중무휴네요.
그래도 저희 밭은 호강하는 거예요. 농약을 안치잖아요. 제초제하는 밭은 회복하려면 힘들지만 친환경농사는 땅을 살리는 일이기도 해요.
이지예 농부의 귀농 정착까지의 과정이 귀농, 귀촌을 생각하는 분들에게 좋은 사례라고 생각했어요.
지원 사업을 아주 적절히 잘 활용하신 것 같거든요.
네. 지원사업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귀농초기에 청년창업농으로 지원을 받았고, 지금은 강소농작지만 강한 소농 모임에서 교육도 받고 지원도 받고 교류도 하고 있어요.
귀농 교육, 농업대학에서 꾸준히 교육도 받으니까 도움 되는 지원사업이 있으면 담당 공무원이 신청해보라고 연락을 주기도 해요. 덕분에 귀농활성화 지원사업으로 컨설팅 받아서 농장 브랜딩작업도 했어요. 그동안 저희도 하려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는데 연결해 주시니까 감사하죠.
교육 잘 받고 모범적으로 농사지으면 공무원들이 먼저 정보를 준다. 꿀팁인데요!
요즘 지원사업이 잘 되어 있는데 제대로 잘 활용하지 않는 것도 뒤처지는 거예요. 우리가 안 받아도 누군가가 받잖아요. 지원을 받는 대신 우리가 도움 받은 만큼 돌려주려고 해요.
작년에 수해 입었을 때 진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전국에서 구례로 온 봉사자들, 군인들이 저희 고추밭 정리를 도와 주셨어요. 봉사자 25명이 그 폭염에 힘든 일도 안 해보신 분들이 열정적으로 도와주시는 거예요. 하루 만에 세 군데 밭이 다 정리되어서 배추를 심었어요. 안 그랬으면 저희 배추도 못 심었을 거예요. 그 짧은 시간에 정리하는 건 진짜 상상할 수도 없었어요.
너무 감사한데 제대로 대접도 못해서 돌아가는 분께 연락처를 달라고 해서 문자메시지를 보냈어요. 너무 감사하고 우리 금방 일어나겠다. 그리고 농산물이 나오면 좀 보내드리겠다고 약속했어요. 이번에 옥수수 보내드리면서 그 약속을 지켰죠.
어머님이 동네에서 베푸는 걸 진짜 잘하세요. 저희가 그런 걸 보고 배우는 것 같아요.
5년 전에 시골로 내려간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어요.
남편 주변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제 주변에서는 모두 반대했죠. 가족들보다 지인들이 먹고 사는 건 둘째 치고 애들 교육 어떻게 할 거냐고 반대하더라고요. 또 시골가면 여자가 일을 많이 한다는 얘기도 했어요.
지금은 저희가 잘 정착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전혀 걱정 안 해요. 저희 가족도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주고.
남편 주변에는 혹시 동네에 빈집 없냐고 물어보는 친구들도 꽤 있어요. 귀농한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친구들 중 귀농 1호거든요. 나중에 은퇴하고 돌아오고 싶을 때 집이라도 하나 있으면 좋으니까.
귀농, 귀촌 환영인가요? 신중하게 생각하라는 입장인가요?
저희는 환영합니다. 앞으로 농업이 대세라고 하잖아요. 그렇지만 지금은 직장 다니는 게 훨씬 수입이 많을 거예요.
주변에 애호박 농사하는 분들은 1년에 1억 5천만 원 매출을 올리기도 해요. 저희는 이제 시작하는 단계지만 5년 동안 해마다 점점 나아지고 있어요. 나아지고 있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더 괜찮아질 거라는 희망이 있어요.
우선은 너무 환경이 너무 좋아서 저는 내려온 게 너무 잘 한 것 같아요.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어요.
지인들이 자녀 교육을 걱정했다고 했는데 실제로 농촌 교육환경은 어때요?
아직 아이들이 초등학생이어서 그런지 큰 어려움은 없어요. 오히려 서울에서 아파트 생활이 너무 힘들었어요. 층간 소음 때문에 경비실 통해서 전화 받으면… 어휴, 그때 생각하면 애들한테 너희는 여기 와서 행복한 줄 알라고 하죠(웃음).

고추밭의 이지예 농부
지리산권 농부들을 만나보니 다른 지역 농부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아요.
맞아요. 저도 궁금한 게 많아요. 친환경 농사하는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나 커뮤니티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친환경 농사지으면 기록이 엄청 중요하잖아요. 인증기간 1년마다 영농일지 기록해서 제출도 해야 하죠?
저희는 친환경 인증기관에서 나온 영농일지에 기록하고 있어요. 청년창업농 선정 후 3년 동안 진짜 열심히 영농일지를 썼어요. 지금은 친환경 인증을 위해서도 계속 농사일지를 쓰고 있고요. 그렇게 썼던 기록들이 도움이 돼요.
매년 하는데 이상하게 작년 이맘때 뭘 심었는지 모르겠는 거예요. 기억이 안나요. 그럴 때 옛날에 쓴 노트를 펼쳐보게 돼요.
이지예 농부는 2018년 전남농업기술원이 주최한 경영기록경진대회에 참가,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농사를 몇십 년 동안 지어 온 분들도 같은 얘기를 하시더군요.
아! 그분들도 그래요? 베테랑들은 안 그럴 것 같은데.
친환경을 위한 농사일지 외 채담빛 농원 블로그도 이지예 농부가 직접 관리하나요?
네. 제가 해요.
친환경농사는 김용일 농부가 짓자고 했는데 일은 이지예 농부가 더 많이 하는 것 같은데요. 대표님이신데…
(모두 웃음) 한번은 제가 고추밭에서 혼자 줄을 치고 있었는데 큰 아들이 “엄마, 힘들어?” 하는 거예요. 11살 아이 눈에 제가 힘들어 보였나 봐요. 그래서 그냥 “아니” 하고 그 순간은 지나갔어요.
집에 와서 제가 물어봤죠. “예담아, 엄마 힘들어 보였어?”했더니 “고추밭이 너무 넓어서” 하더라고요. 그때는 정말 별로 힘들지 않았거든요. 저는 힘들면 힘들다고 표현해요. 애들한테도 ‘엄마 오늘 일 많이 해서 너무 힘들다’고. 집에 와도 쉬는 게 아니잖아요. 빨래, 청소, 집에 오면 또 집안일이 기다리고 있어요..
집에서 밭으로 출근했다가 밭에서 퇴근하면서 집으로 출근한다고 해야겠죠?
그 말이 딱 맞네요. 집으로 출근하면 퇴근은 11시. 빠르면 10시예요. 애들 자고 다 정리하면 그 때 틈틈이 블로그에 글도 쓰고 하죠.
만약에 농부들이 농사일지를 쓸 수 있는 온라인 채널이 생기면 어떨까요?
저는 제가 사용하던 블로그가 있기 때문에 바꾸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기후변화로 과수농가들 냉해피해가 심하고 꽃 피는 시기도 점점 빨라진다고 해요.
올해는 폭염에 가뭄도 길었잖아요. 저희도 감자 심었던 밭에 배추 심으려고 계속 담수하고 소독하려고 밭을 갈아 놓았는데 날씨가 가물어서 시기를 놓쳤어요. 근데 지금은 또 비가 와서 두둑을 못 만들어 배추를 못 심고 있어요. 올해는 가을장마가 좀 긴 것 같아요.
5년이면 기후위기가 아주 민감하게 와 닿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김용일) 올해 폭염이 그런 거 아닐까요? 동네 선배가 작년에 하우스에서 고추농사를 지어서 제법 재미를 봤어요. 그래서 올해 또 한다고 했는데 폭염 때문에 꽃이 피지도 않고 핀 꽃도 낙과가 되어버린다는 거예요. 뜨거운 열기가 밖으로 못 빠져나가서 위로 올라가잖아요. 천장을 뚫어서 환풍기를 대서 열기를 빼내야 하는데 그런 시설이 안 되어있으니까 올해는 하우스 농사짓는 사람들이 재미를 영 못 보게 돼버렸죠.
비닐을 창문처럼 개폐식으로 해서 뜨거운 공기가 빠져나갈 수 있게끔 하면 되는데 올해 농자재 값이 너무 올랐어요. 철강이나 원자재가 수입이 제대로 안되다 보니까 100% 이상 가격이 올랐어요. 저희도 비가림 하우스를 지었는데 50% 지원사업을 받아도 계획했던 비용보다 더 많이 들었어요.
거기다 작년 겨울은 또 엄청 추웠잖아요. 그래서 하우스 감자가 다 얼어버렸어요. 서리도 늦게까지 오고, 기온이 영하 10도로 내려가는 일도 없었는데 이런 게 다 이상기온이고 기후위기죠.
귀농 5년 차 이지예 농부에게 가장 기억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가장 뿌듯한 순간도 좋고요.
작년 수해가 굉장히 기억에 남아요. 힘들었던 걸로. 저희로선 어렵게 무농약 인증을 받았는데 이틀 만에 수해로 고추밭이 잠겨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황당하죠. 좋은 건 해마다 저희 농산물을 드시는 고객들의 반응이 매년 좋아지고 있으니까 거기에서 뿌듯함을 느껴요. 고춧가루 왜 이렇게 좋으냐고 하세요(웃음).
우리 농장은 고춧가루 가공해서 소포장으로 판매하는 게 최종목표예요. 이번에 컨설팅 받아서 다섯 근씩 포장에 담았는데 주변에서 이제 제법 기업 분위기가 난다고 얘기해요. 저는 이정도만 돼도 뿌듯하고 기분 좋더라고요.
힘들어도 뿌듯한 순간이 있어 다행입니다. 귀농, 귀촌 하려는 분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요?
우선 농업인 대학을 다니면서 공부도 하고 공무원들과 좀 친해지면 좋을 것 같아요. 사람을 많이 알면 알수록 좋아요. 인적 자원이라고 하잖아요. 공무원뿐만이 아니라 농업인 대학도 다니면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요. 그분들한테 도움을 굉장히 많이 받을 수 있어요. 서로 이제 유인하는 거죠. 사람을 알아가는 것, 그게 먼저인 것 같아요.
우리는 비빌 언덕이 있었기 때문에 더 쉽게 정착하는 거고, 그게 없는 사람들은 우선 관계부터 잘해야 돼요. 농업대학에 가서 인위적으로라도 사람들 사귀고 비빌 언덕을 만들어야 해요.
김용일 농부도 하고 싶은 얘기가 있을 것 같은데요.
(김용일) 저는 무엇보다 마을에서 주민들과 화합해서 살겠다는 마음을 갖고 오라고 얘기해주고 싶네요. 마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시골 인심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하지만 시골 사람들은 그대로예요. 도시 사람들이 땅값만 올려놓고, 그러다 포기하고 도시로 나가버리면 그게 시골을 흐려놓는 거예요.
그리고 귀농, 귀촌을 결심하신 분들은 우리처럼 급하게 하지 말고 미리 생각해서 몇 년 동안 공부도 하고 필요한 자격증도 따고 땅도 알아보고 준비해서 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저희보다 먼저 20년 전에 내려오신 분들은 트랙터도 없이 농사짓고 힘들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자기 자산도 형성이 돼 있고, 노후 대책이 다 되어 있어요. 우리는 늦게 내려와서 이제 시작이지만 희망을 가지는 건 그 분들 보면서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인터뷰 현장에서 나눠 먹은 옥수수와 농원의 양파즙 홍보물
농업인들을 지원해주는 정책이나 제도에서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겠네요.
귀농, 귀촌한 소농들을 대상으로 농기계 구입비용을 50% 지원하는 사업이 있어요. 저희는 처음에 관리기를 샀거든요. 그런데 요즘 시골에서 농사도 농기계 없이는 못해요. 이런 사업을 귀농한 소농으로 한정하지 말고 소농들로 확대해주면 좋겠어요. 매년 지원할 수 있게. 왜냐하면 고추는 건조기도 사야 되고, 세척기도 사야 되는데 대농들은 트렉터 한번 사는데 900만원이 지원되는데 우리는 한번 지원을 받으면 5년 동안은 못 받는 걸로 제한돼 있어요. 그럼 5년 이내에는 뭘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거예요. 뭐라도 하려면 무조건 우리 돈 들여서 해야 해요. 지자체마다 좀 다르다고는 하는데 그런 제한을 좀 풀어주면 좋겠어요. 우리 마음은 그래요.
저리로 빌려주는 귀농정책자금도 귀농 후 5년까지로 제한되어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정착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면 5년 안에 뭔가를 하지 못할 수도 있잖아요. 5년 지나서 창고를 지으려면 대상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런 건 유예 기간을 좀 늘려주면 좋겠어요.
구례가 청년들이 들어와서 살 수 있는 정책들이 아직까지 미약하긴 해요. 청년들이 살 집이 없어 정착하지 못하고 올라가버리죠. 마을에서 오래된 집을 리모델링을 해서 귀농, 귀촌인들에게 내주고 수익금을 마을로 잡는 사업을 계속 진행은 하고 있어요. 그런데 집을 안파니까 쉽지 않아요. 저희가 체류형 귀농귀촌 1기생인데 정착률이 80%예요. 그런데 농사를 적극적으로 짓는 사람들은 30%밖에 안돼요. 귀촌에 가깝죠.
현재 이지예 농부가 농장의 대표인데요, 여성농업인을 지원하는 사업은 없나요?
네. 여성 농업인을 지원하는 정책은 딱히 없는 것 같아요.
마을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남편은 이장이고 저도 작년부터 안음마을 부녀회장으로 봉사하고 있어요.
지리산이음이 지리산권 농부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을 고민하고 있어요.
농사를 짓고 있지만 농사와 관련되지 않아도 농부들끼리 한번 해 보고 싶은 활동이 있나요?
요즘은 다 인터넷으로 소통하는 시대잖아요. 지리산권 농부들의 밴드를 만든다든지 해서 서로 소통하는 게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요? 어떻게 사는지 서로 이야기도 주고받고 농산물도 서로 팔아주기도 하고.
마을이장으로 김용일 농부가 농사 외에 마을에서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김용일) 해보고 싶지만 시기가 시기인지라 쉽지 않습니다만, 도시인들이 우리 마을에 와서 체험도 하고 봉사도 하는 프로그램을 해보고 싶어요. 아이들에게 추억이 될 농촌체험도 하고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봉사도 하고, 수제비도 같이 끓여먹고 서로 교류하면서 우리 농산물까지 사가면 좋잖아요.
저희는 아이들을 키우니까 섬진강 은어 잡아서 구워먹고 강가에서 노는 장면을 가끔 SNS에서 올려요. 거기에 부럽다는 댓글을 다는 것 보면 도시 사람들은 그런 장면만으로도 힐링이 되나보더라고요.
이런 생각도 해 봤어요. 지리산권 농업인들이 2박 3일로 마을에 와서 체험도 하고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도 미약하지만 아는 범위에서 친환경 농사를 알려주고 우리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코로나가 끝나면 지리산권 농부들이 모여서 교류하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어요. 농촌체험관광도 지자체 통해서만 하지 말고 지리산권 농부들이 교류해서 새로운 코스로 만들어도 좋잖아요. 그래서 공유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요?
어떤 분이 조언해주기를 뭘 하더라도 10년은 해야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온다고 이 작물 하다가 때려치우고 저 작물 하다가 때려치우고 하면 안 된다고.
무농약 친환경농사를 정직하게 꾸준히 해 나가면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봐요. 우리는 영농조합법인도 만들려고 계획하고 있어요. 규모를 갖춰서 가공공장도 만들고, 조그맣게 창고, 사무실도 만들어서 남들이 하듯이 우리도 하나씩 단계를 밟아가려고 해요. 욕심내지 않고.
역시나 이지예 농부도 참 많은 일을 하면서 살고 있었다. 가족을 돌보고 농사를 짓고 마을과 동네 어르신들을 살핀다. 다른 여성농부들처럼 아무렇지 않게. 예정에는 없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인터뷰를 함께 한 김용일 농부도 마찬가지다. 말 그대로 젊고 성실한 마을 이장이다.
두 농부는 틈틈이 은근슬쩍 서로를 지지하고 칭찬하고 거들어주었다. 곤란한 질문은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넘기는 환상의 호흡이다. 5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고추, 감자, 양파 농사를 성실하고 환상적으로 짓고 있지 않을까 싶다.
약속이나 한 듯 농업에 미래가 있고,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그래서 더 좋아질 거라 믿는다는 두 농부의 이야기에 모처럼 홀가분하다.
글 이경원
기획, 기록, 연결로 변화를 만드는 일과 사람을 돕는다. 2014년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궁금해서 찾았던 지리산시골살이학교 덕분에 지리산이음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때는 몰랐다. 7년이 지난 2021년 구례 남원 산청 하동 함양을 다니며 ‘농사를 업으로 하는 농부’들의 이야기를 글로 전하게 될 줄은.
사진 임현택
진행 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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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예 농부는 남편 김용일 농부의 고향 구례로 귀농, 지리산 채담빛 농원을 운영하는 5년차 농부다. 고향 가서 어머니와 함께 살자는 남편의 제안에 흔쾌히 OK!하고 어릴 적 남편이 살았던 간전면으로 2018년에 이주했다.
마을 안 골목에 차를 세우고 이 집이 맞나? 싶은 순간, 이지예 김용일 이름이 나란히 새겨진 문패를 발견했다.
차곡차곡 개어 놓은 옷들과 건조대에 널린 양말을 보니 만만치 않은 규모의 살림살이다.
구례군 간전면에서 만난 이지예 농부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저는 농부 이지예입니다. 11살, 8살, 7살 아들 셋을 둔 엄마고요.
‘어머니가 보고 싶다. 고향 가서 살자’는 남편 제안에 정말 흔쾌히 오케이 했나요?
(웃음)처음에는 ‘흔쾌히’가 아니었죠. 나중에는 ‘흔쾌히’가 됐지만. 신앙생활의 힘입니다. 서울에서 구례로 내려가면 뭘 할까, 잘 살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있었죠, 당연히.
내려와서 처음 10개월 동안은 다섯 식구가 용방면에 있는 체류형 농업창업지원센터에서 지냈어요. 농사 공부도 굉장히 열심히 했어요. 집을 구할 때가 되자 남편이 어머니와 같이 살자고 어려운 제안을 했었죠. 같이 사는 것보다 가까이 살면서 자주 들러 보는 게 낫지 않겠냐며 거절했는데 계속 마음이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기도해 보고 얘기해 주겠다고 했어요. 결국 저는 함께 살기로 결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2017년 12월에 어머니가 살던 집을 허물고 집을 새로 지어서 2018년 3월부터 같이 살고 있어요.
3대가 같이 사니까 되게 좋아요. 물론 조금 불편한 점도 있죠. 저희는 친환경으로 농사를 짓는데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농사짓던 방식이 있으니까 ‘왜 이렇게 하느냐’, ‘농약 안치면 안 된다’고 가끔 말씀하세요. 그런 부분에서 갈등이 종종 있었어요. 그 때마다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서 제가 좀 힘들었죠(웃음).
다 좋은데 농사 방식의 차이가 의외의 복병이었네요. 그래도 많은 귀농, 귀촌인들이 겪는 집 문제와 마을 정착은 자연스럽게 해결되었겠어요.
네. 우리 마을이 24가구 정도 되는데 젊은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저희가 할 일이 많아요. 어르신들이 젊은 사람이 해야 한다고 해서 남편은 작년부터 마을이장으로 봉사도 하고 있고요. 남편 고향이기도 하고 어머니가 계신 덕분에 순탄하게 잘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 농사짓는 작물은 몇 가지나 되나요? 1년 농사 얘기 좀 해주세요.
고추, 양파, 마늘, 감자, 옥수수, 콩, 배추까지 7가지 정도 되네요.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맞게 친환경 농사를 지어요. 저희는 모두 인증 받은 무농약 농산물이에요.
늦가을에 양파, 마늘 심어서 겨울 지나고, 이듬해 6월에 양파와 마늘이 나와요. 감자도 6월에 나와요. 7월에는 옥수수가 나오고 7월 말부터 고추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11월 초에는 콩을 수확합니다. 11월 중순 되면 절임 배추로 김치도 담가 팔아요. 저희 김치 엄청 반응이 좋아요. 11월 초에 하우스 감자 농사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2월 말에 수확을 하죠.
1년, 12달 쉬지 않고 농사만 하신다는 거네요.
김용일 하우스 농사를 시작하면서 그렇게 돼버렸네요. 겨울 하우스 농사가 그다지 힘들진 않아요. 심을 때, 수확할 때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지만 중간에 관리하고 친환경으로 약치는 건 편해요.
농한기 얘기가 나오자 옆에 있던 김용일 농부가 한마디 보탠다. 이지예, 김용일 농부는 작년부터 하우스 감자 농사를 짓고 있다. 첫 해 농사는 한파로 수확량도 많지 않았고, 코로나 때문에 학교 급식도 중단되어 매출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구례군 용방면에서 생산되는 시설 감자는 한때 20kg에 16만원까지 가격이 오르기도 했지만 보통은 7~8만 원 선에서 거래된다고 한다.
농사는 둘이서 짓는 거죠?
대부분 둘이 같이 다 해요. 인부를 쓰려고 해도 올해는 특히 사람이 없네요. 고추는 남편과 둘이 다 따요. 형님 부부가 휴가차 내려와서 도와주시기도 해요. 사람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서울에서 누가 인력 좀 보내주면 좋겠어요.
친환경이라 손이 더 많이 갈 테고요. 친환경농사를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친환경은 귀농교육 받으면서 처음 공부했어요. 김용일 농부가 농업인 대학에서 공부하더니 친환경 농사에 완전히 꽂혀서 이 길로 들어섰죠.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힘들어요. 작년에는 하우스 감자 농사가 처음이라 진딧물을 다 못 잡았어요. 세 동 중에 한 동은 거의 망쳤어요.
주변에 관행농업하는 분들이 저희 친환경농사 짓는 거 보면서 나 같으면 친환경 안 한다, 때려치워라, 약 한번 쳐도 모른다, 그냥 약 쳐라 그런 얘기들을 막 하세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해요. 검사에서 농약이 안 나온다고 해도 절대 그럴 수는 없죠. 저희는 인증 받아야 하고, 그리고 절대 속이면 안 된다고 말하죠.
‘채소는 팔아도 양심은 팔지 않는다’는 어록이 여기서 탄생하는 거군요.
하하하 저희 블로그 보셨어요? 우리 농장 슬로건이에요. 3년 전에 고추를 친환경으로 농사지었는데 다른 데서 날라 온 농약 때문에 인증을 받지 못했어요. 진짜 너무 황당하고 억울했어요. 한번 취소되면 1년 동안은 친환경 인증 신청을 못해요. 그래도 저희는 1년 동안 계속 친환경으로 농사지었어요. 그렇게 다음해에 다시 인증을 받았어요.
‘채소는 팔아도 양심은 팔지 않는’ 채담빛농원의 이지예, 김용일 농부
친환경으로 농사지으려면 모종부터 다른가요?
네. 모종부터 친환경으로 키워야 해요. 고추는 경북 청송에서 5,000평 규모 고추 농사를 무농약으로 하시는 저희 농사 멘토에게 친환경 모종을 구해 와서 심어요. 올해 배추모종은 지인 통해서 아이쿱에 신청해 놨어요. 바빠서 직접 채종을 못하니까 씨앗을 부탁했어요. 저희가 아직 모종을 안 키워 봤는데 그것도 이제 시도해 봐야죠. 양파는 9월초에 파종하는데 벌써 9월이네요(웃음). 요즘 날씨가 안 좋아서 아직 밭을 못 만들어요.
무농약 친환경은 화학성분이 들어간 농약을 쓰지 않는 의미인거죠?
네. 친환경은 무농약과 유기농 둘 다 포함해요. 단계가 있는데 무농약으로 3년이 지나면 다시 3년의 유기전환기를 거쳐요. 그 기간이 지나면 유기농으로 넘어가는 거예요. 무농약 친환경은 화학농약을 전혀 쓰지 않고 비료도 3분의 1만 사용해요. 유기농은 아예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단계로 가는 거예요.
두 분의 목표는 유기농 친환경이겠죠?
좀 겁나지만 목표는 유기농 친환경 농산물 인증을 받는 거예요. 김용일 농부가 액비도 만들어야 하고 할 일은 많지만 진취적인 스타일이라 할 수 있을 거예요.
옆에 있던 김용일 농부가 무농약과 유기농의 차이는 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정도인데 가격은 유기농이 월등히 높다며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남편은 너무 쉽게 얘기해요. 농사를 짓는 것도 어렵지만 제가 어려운 건 고객들의 인식이에요. 이번에 우리가 고춧가루를 600g에 2만 4천 원에 파는데 어떤 사람은 ‘너무 비싸요’하고 어떤 사람은 ‘왜 이렇게 싸게 파느냐’고 해요. 비싸다는 분들에게 관행보다 왜 비싼지 일일이 설명을 해요.
해 보니까 친환경은 수확량이 확실히 떨어져요. 관행의 반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유기 약재를 저희가 만들기도 하지만 탄저병을 잡으려면 유기농 인증 약재를 살 수 밖에 없는데 일반 약재보다 가격이 두 배나 비싸요. 그리고 당연히 손이 많이 가니까 인부들도 더 많이 써야 되고요. 들어가는 정성이나 원가를 모르고 ‘너무 비싸요, 왜 이렇게 비싸게 파느냐’ 얘기 들으면 좀 속상해요.
지난해 구례 하동 일대가 수해를 입었는데 이 마을은 어땠나요?
저희도 작년에 섬진강 유역 다른 농가들처럼 수해를 입었어요. 고추밭이 다섯 군데 총 1,400평 규모인데 800평이 침수되면서 5,200주가 망가졌어요. 그 밭은 하나도 수확을 못했어요. 작년에 남편은 이장이라 마을 어르신들 윗동네 마을회관으로 피신시킨다고 바빴어요. 차로 모시고 왔다 갔다 하면서 밭 상태를 보긴 했는데 처음에는 우리 밭까지 물이 안 들어왔어요. 저녁에 결국 물이 들어와 버리니까 허망하더라고요.
그런데 저희 뿐 아니라 다른 농장들도 피해가 컸어요. 구례 전체가 난리였으니까. 아직 보상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상황이에요.
이지예 농부의 고추밭 풍경
1년이 지났지만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거군요. 부부가 같이 농사를 짓는데 각자의 역할이 정해져 있나요?
저는 농사와 마케팅을 다 하고요. 김용일 농부는 농사만 지어요(웃음).
그럼 판로 개척도 이지예 농부의 몫인가요?
그건 같이 하죠. 저희가 귀농하자마자 트럭을 샀어요. 그 트럭에 대봉감이며 고춧가루, 농산물 싣고 화엄사, 사성암으로 다니며 팔았어요. 그다음 해부터는 이래선 제대로 판매가 안 되겠다 싶어서 둘이서 무조건 하루에 한 사람씩 고객을 유치하자, 판로를 개척하자고 했어요. 고추 따면서도 전화했다니까요.
이제 5년 쯤 되니까 정직하게 농사짓는 걸 알아주는 분들도 계시고, 알음알음 소개도 시켜주시곤 해요. 작년에 수해로 밭이 잠겨서 무농약 고춧가루를 못 판다고 양해를 구했더니 올해 다시 찾아주시는 고객들도 있어요.
저희 김치 인기가 좋다고 했잖아요. 저희가 키우는 품종이 황금배추인데 항암배추, 암탁배추라고도 해요. 세계최초 기능성 배추인데 포기가 작지만 속이 아주 샛노랗고 단단하고 달아요. 이 배추만 드시는 분들은 벌써부터 연락이 와요. 이제 다른 배추는 못 먹으니 올해도 꼭 보내줘야 한다고.
요즘 추세가 그래요. 많이 안 드시니까 작아도 달고 맛있는 걸 찾아요. 절임배추 팔고 마지막에 저희 집 김장하면서 미리 주문받은 김장김치를 보내드려요. 그렇게 해마다 20kg 김치가 30~40박스가 나가는 것 같아요.
그럼 채담빛 농원 농산물은 하루에 한 명씩 확보했던 고객들과 100% 직거래로 유통되나요?
네. 100% 직거래예요.
주로 어떤 채널을 이용하나요? 다른 농장들 보면 스토어팜이나 밴드, 카카오스토리까지 꽤 다양하던데요.
저희는 블로그와 서울에 사는 지인 모임 밴드, 카카오스토리를 주로 이용해요. 아무래도 개인 네트워크가 제일 믿을 수 있고, 혹시 농사가 잘 되지 않았을 때 양해를 구할 수 있는 관계가 되니까요.
작년에 저희가 수해 입기 전에 고춧가루 가격을 정하고 홍보도 미리 해서 주문과 입금까지 한 분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수해 이후에 고춧가루 가격이 엄청 올랐어요. 농약을 친 고춧가루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래서 입금한 분들에게 우선 보내드리고 나머지 분들에게는 양해 문자를 보냈어요. 이런 저런 사정으로 저희들도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올려야 하는 상황인데 그래도 주문하시겠냐고 했더니 감사하게도 대부분이 주문을 해주시더라고요. 그마저도 양이 얼마 안돼서 모든 분들에게 보내지도 못했어요. 너무 죄송했죠. 그런데 주문해준 분들 마음이 꼭 선물을 받은 것 같았어요.
고객들과는 어떻게 관계를 이어가나요?
저희 고객이 300명 정도 돼요. 한번 드신 분들은 저희 농장을 믿고 계속 저희 것만 드세요. 처음 주문한 분들도 다음에는 뭐 나오느냐 물어보고요. 저희도 고춧가루 보내면서 11월에는 절임배추가 나오고 12월에는 김치가 나옵니다. 기대해 주세요. 메시지를 꼭 보내요. 그러면 황금배추도 기대하겠습니다. 답장이 오기도 해요.
작년에는 수해 입고 난 뒤에 양파를 많이 심었어요. 그래서 양파즙을 만들었어요. 농산물 보낼 때 두 팩씩 넣어서 맛보고 괜찮으면 주문하시라고 같이 보냈어요(웃음). 이런 식으로 홍보도 하죠.
역시 채담빛농원 대표이자 홍보마케팅 담당이십니다.
친환경 농사를 시작하고 ‘하지 말 걸 괜히 했다’ 후회한 순간 없었나요?
가끔 있죠. 하우스 농사를 진짜 열심히 지었는데 감자 진딧물도 못 잡고, 그냥 약치라고 하는 얘기까지 들으니까 너무 속상하더라고요. 그런데다 수확량이 그렇게 많지 않으니까 잠시 그런 생각이 들긴 했죠. 그런데 이제는 저희가 관행으로 농사를 못 지을 것 같아요. 친환경을 아니까 농약 치면서 농사짓는 건 못할 것 같아요.
김용일 농부는 나름대로 무농약 친환경 농사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었다.
(김용일) 아버지가 물려준 논, 밭이 그렇게 넓지는 않습니다. 귀농 첫해 논농사로는 경쟁이 안 된다는 걸 알았어요. 밭농사를 짓기로 하고 고추농사를 무농약 친환경을 한다고 했을 때 ‘농사가 무농약으로 되겠느냐’ 무시하는 말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무농약을 고집한 이유는 어렸을 때의 기억 때문입니다. 그때는 농약이 엄청 독했어요. 우리 동네만 해도 한 여름에 약 치다가 중독돼서 죽은 어른들이 있었어요. 지금은 저독성으로 가고 있고, 젊은 분들은 드론으로 항공방조도 하고 많이 편해졌지만 저는 농약이 안 좋다는 걸 어릴 때 경험으로 알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지리산권에는 친환경이 맞겠다, 오히려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채담빛농원이 자랑하는 고춧가루. 직거래로 판매한다.
올해는 어떤 작물 심었나요? 벼농사는 아예 안 짓나요?
쌀농사는 우리 먹을 것, 가족들 보낼 것만 지어요.
올해는 고추를 하우스 600평, 노지 560평에 2,400주 심어서 총 4,000주 심었어요. 고추농사 끝나면 노지에는 배추 심고, 하우스에는 11월에 감자를 심어야죠. 9월 말에는 노지에 마늘 심고, 11월 초에는 양파를 심어요. 내년에 일찍 옥수수 심고, 감자 심어야죠.
사람도 쉴 틈이 없고 밭도 쉴 틈이 없네요. 연중무휴네요.
그래도 저희 밭은 호강하는 거예요. 농약을 안치잖아요. 제초제하는 밭은 회복하려면 힘들지만 친환경농사는 땅을 살리는 일이기도 해요.
이지예 농부의 귀농 정착까지의 과정이 귀농, 귀촌을 생각하는 분들에게 좋은 사례라고 생각했어요.
지원 사업을 아주 적절히 잘 활용하신 것 같거든요.
네. 지원사업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귀농초기에 청년창업농으로 지원을 받았고, 지금은 강소농작지만 강한 소농 모임에서 교육도 받고 지원도 받고 교류도 하고 있어요.
귀농 교육, 농업대학에서 꾸준히 교육도 받으니까 도움 되는 지원사업이 있으면 담당 공무원이 신청해보라고 연락을 주기도 해요. 덕분에 귀농활성화 지원사업으로 컨설팅 받아서 농장 브랜딩작업도 했어요. 그동안 저희도 하려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는데 연결해 주시니까 감사하죠.
교육 잘 받고 모범적으로 농사지으면 공무원들이 먼저 정보를 준다. 꿀팁인데요!
요즘 지원사업이 잘 되어 있는데 제대로 잘 활용하지 않는 것도 뒤처지는 거예요. 우리가 안 받아도 누군가가 받잖아요. 지원을 받는 대신 우리가 도움 받은 만큼 돌려주려고 해요.
작년에 수해 입었을 때 진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전국에서 구례로 온 봉사자들, 군인들이 저희 고추밭 정리를 도와 주셨어요. 봉사자 25명이 그 폭염에 힘든 일도 안 해보신 분들이 열정적으로 도와주시는 거예요. 하루 만에 세 군데 밭이 다 정리되어서 배추를 심었어요. 안 그랬으면 저희 배추도 못 심었을 거예요. 그 짧은 시간에 정리하는 건 진짜 상상할 수도 없었어요.
너무 감사한데 제대로 대접도 못해서 돌아가는 분께 연락처를 달라고 해서 문자메시지를 보냈어요. 너무 감사하고 우리 금방 일어나겠다. 그리고 농산물이 나오면 좀 보내드리겠다고 약속했어요. 이번에 옥수수 보내드리면서 그 약속을 지켰죠.
어머님이 동네에서 베푸는 걸 진짜 잘하세요. 저희가 그런 걸 보고 배우는 것 같아요.
5년 전에 시골로 내려간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어요.
남편 주변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제 주변에서는 모두 반대했죠. 가족들보다 지인들이 먹고 사는 건 둘째 치고 애들 교육 어떻게 할 거냐고 반대하더라고요. 또 시골가면 여자가 일을 많이 한다는 얘기도 했어요.
지금은 저희가 잘 정착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전혀 걱정 안 해요. 저희 가족도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주고.
남편 주변에는 혹시 동네에 빈집 없냐고 물어보는 친구들도 꽤 있어요. 귀농한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친구들 중 귀농 1호거든요. 나중에 은퇴하고 돌아오고 싶을 때 집이라도 하나 있으면 좋으니까.
귀농, 귀촌 환영인가요? 신중하게 생각하라는 입장인가요?
저희는 환영합니다. 앞으로 농업이 대세라고 하잖아요. 그렇지만 지금은 직장 다니는 게 훨씬 수입이 많을 거예요.
주변에 애호박 농사하는 분들은 1년에 1억 5천만 원 매출을 올리기도 해요. 저희는 이제 시작하는 단계지만 5년 동안 해마다 점점 나아지고 있어요. 나아지고 있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더 괜찮아질 거라는 희망이 있어요.
우선은 너무 환경이 너무 좋아서 저는 내려온 게 너무 잘 한 것 같아요.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어요.
지인들이 자녀 교육을 걱정했다고 했는데 실제로 농촌 교육환경은 어때요?
아직 아이들이 초등학생이어서 그런지 큰 어려움은 없어요. 오히려 서울에서 아파트 생활이 너무 힘들었어요. 층간 소음 때문에 경비실 통해서 전화 받으면… 어휴, 그때 생각하면 애들한테 너희는 여기 와서 행복한 줄 알라고 하죠(웃음).
고추밭의 이지예 농부
지리산권 농부들을 만나보니 다른 지역 농부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아요.
맞아요. 저도 궁금한 게 많아요. 친환경 농사하는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나 커뮤니티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친환경 농사지으면 기록이 엄청 중요하잖아요. 인증기간 1년마다 영농일지 기록해서 제출도 해야 하죠?
저희는 친환경 인증기관에서 나온 영농일지에 기록하고 있어요. 청년창업농 선정 후 3년 동안 진짜 열심히 영농일지를 썼어요. 지금은 친환경 인증을 위해서도 계속 농사일지를 쓰고 있고요. 그렇게 썼던 기록들이 도움이 돼요.
매년 하는데 이상하게 작년 이맘때 뭘 심었는지 모르겠는 거예요. 기억이 안나요. 그럴 때 옛날에 쓴 노트를 펼쳐보게 돼요.
이지예 농부는 2018년 전남농업기술원이 주최한 경영기록경진대회에 참가,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농사를 몇십 년 동안 지어 온 분들도 같은 얘기를 하시더군요.
아! 그분들도 그래요? 베테랑들은 안 그럴 것 같은데.
친환경을 위한 농사일지 외 채담빛 농원 블로그도 이지예 농부가 직접 관리하나요?
네. 제가 해요.
친환경농사는 김용일 농부가 짓자고 했는데 일은 이지예 농부가 더 많이 하는 것 같은데요. 대표님이신데…
(모두 웃음) 한번은 제가 고추밭에서 혼자 줄을 치고 있었는데 큰 아들이 “엄마, 힘들어?” 하는 거예요. 11살 아이 눈에 제가 힘들어 보였나 봐요. 그래서 그냥 “아니” 하고 그 순간은 지나갔어요.
집에 와서 제가 물어봤죠. “예담아, 엄마 힘들어 보였어?”했더니 “고추밭이 너무 넓어서” 하더라고요. 그때는 정말 별로 힘들지 않았거든요. 저는 힘들면 힘들다고 표현해요. 애들한테도 ‘엄마 오늘 일 많이 해서 너무 힘들다’고. 집에 와도 쉬는 게 아니잖아요. 빨래, 청소, 집에 오면 또 집안일이 기다리고 있어요..
집에서 밭으로 출근했다가 밭에서 퇴근하면서 집으로 출근한다고 해야겠죠?
그 말이 딱 맞네요. 집으로 출근하면 퇴근은 11시. 빠르면 10시예요. 애들 자고 다 정리하면 그 때 틈틈이 블로그에 글도 쓰고 하죠.
만약에 농부들이 농사일지를 쓸 수 있는 온라인 채널이 생기면 어떨까요?
저는 제가 사용하던 블로그가 있기 때문에 바꾸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기후변화로 과수농가들 냉해피해가 심하고 꽃 피는 시기도 점점 빨라진다고 해요.
올해는 폭염에 가뭄도 길었잖아요. 저희도 감자 심었던 밭에 배추 심으려고 계속 담수하고 소독하려고 밭을 갈아 놓았는데 날씨가 가물어서 시기를 놓쳤어요. 근데 지금은 또 비가 와서 두둑을 못 만들어 배추를 못 심고 있어요. 올해는 가을장마가 좀 긴 것 같아요.
5년이면 기후위기가 아주 민감하게 와 닿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김용일) 올해 폭염이 그런 거 아닐까요? 동네 선배가 작년에 하우스에서 고추농사를 지어서 제법 재미를 봤어요. 그래서 올해 또 한다고 했는데 폭염 때문에 꽃이 피지도 않고 핀 꽃도 낙과가 되어버린다는 거예요. 뜨거운 열기가 밖으로 못 빠져나가서 위로 올라가잖아요. 천장을 뚫어서 환풍기를 대서 열기를 빼내야 하는데 그런 시설이 안 되어있으니까 올해는 하우스 농사짓는 사람들이 재미를 영 못 보게 돼버렸죠.
비닐을 창문처럼 개폐식으로 해서 뜨거운 공기가 빠져나갈 수 있게끔 하면 되는데 올해 농자재 값이 너무 올랐어요. 철강이나 원자재가 수입이 제대로 안되다 보니까 100% 이상 가격이 올랐어요. 저희도 비가림 하우스를 지었는데 50% 지원사업을 받아도 계획했던 비용보다 더 많이 들었어요.
거기다 작년 겨울은 또 엄청 추웠잖아요. 그래서 하우스 감자가 다 얼어버렸어요. 서리도 늦게까지 오고, 기온이 영하 10도로 내려가는 일도 없었는데 이런 게 다 이상기온이고 기후위기죠.
귀농 5년 차 이지예 농부에게 가장 기억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가장 뿌듯한 순간도 좋고요.
작년 수해가 굉장히 기억에 남아요. 힘들었던 걸로. 저희로선 어렵게 무농약 인증을 받았는데 이틀 만에 수해로 고추밭이 잠겨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황당하죠. 좋은 건 해마다 저희 농산물을 드시는 고객들의 반응이 매년 좋아지고 있으니까 거기에서 뿌듯함을 느껴요. 고춧가루 왜 이렇게 좋으냐고 하세요(웃음).
우리 농장은 고춧가루 가공해서 소포장으로 판매하는 게 최종목표예요. 이번에 컨설팅 받아서 다섯 근씩 포장에 담았는데 주변에서 이제 제법 기업 분위기가 난다고 얘기해요. 저는 이정도만 돼도 뿌듯하고 기분 좋더라고요.
힘들어도 뿌듯한 순간이 있어 다행입니다. 귀농, 귀촌 하려는 분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요?
우선 농업인 대학을 다니면서 공부도 하고 공무원들과 좀 친해지면 좋을 것 같아요. 사람을 많이 알면 알수록 좋아요. 인적 자원이라고 하잖아요. 공무원뿐만이 아니라 농업인 대학도 다니면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요. 그분들한테 도움을 굉장히 많이 받을 수 있어요. 서로 이제 유인하는 거죠. 사람을 알아가는 것, 그게 먼저인 것 같아요.
우리는 비빌 언덕이 있었기 때문에 더 쉽게 정착하는 거고, 그게 없는 사람들은 우선 관계부터 잘해야 돼요. 농업대학에 가서 인위적으로라도 사람들 사귀고 비빌 언덕을 만들어야 해요.
김용일 농부도 하고 싶은 얘기가 있을 것 같은데요.
(김용일) 저는 무엇보다 마을에서 주민들과 화합해서 살겠다는 마음을 갖고 오라고 얘기해주고 싶네요. 마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시골 인심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하지만 시골 사람들은 그대로예요. 도시 사람들이 땅값만 올려놓고, 그러다 포기하고 도시로 나가버리면 그게 시골을 흐려놓는 거예요.
그리고 귀농, 귀촌을 결심하신 분들은 우리처럼 급하게 하지 말고 미리 생각해서 몇 년 동안 공부도 하고 필요한 자격증도 따고 땅도 알아보고 준비해서 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저희보다 먼저 20년 전에 내려오신 분들은 트랙터도 없이 농사짓고 힘들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자기 자산도 형성이 돼 있고, 노후 대책이 다 되어 있어요. 우리는 늦게 내려와서 이제 시작이지만 희망을 가지는 건 그 분들 보면서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인터뷰 현장에서 나눠 먹은 옥수수와 농원의 양파즙 홍보물
농업인들을 지원해주는 정책이나 제도에서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겠네요.
귀농, 귀촌한 소농들을 대상으로 농기계 구입비용을 50% 지원하는 사업이 있어요. 저희는 처음에 관리기를 샀거든요. 그런데 요즘 시골에서 농사도 농기계 없이는 못해요. 이런 사업을 귀농한 소농으로 한정하지 말고 소농들로 확대해주면 좋겠어요. 매년 지원할 수 있게. 왜냐하면 고추는 건조기도 사야 되고, 세척기도 사야 되는데 대농들은 트렉터 한번 사는데 900만원이 지원되는데 우리는 한번 지원을 받으면 5년 동안은 못 받는 걸로 제한돼 있어요. 그럼 5년 이내에는 뭘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거예요. 뭐라도 하려면 무조건 우리 돈 들여서 해야 해요. 지자체마다 좀 다르다고는 하는데 그런 제한을 좀 풀어주면 좋겠어요. 우리 마음은 그래요.
저리로 빌려주는 귀농정책자금도 귀농 후 5년까지로 제한되어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정착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면 5년 안에 뭔가를 하지 못할 수도 있잖아요. 5년 지나서 창고를 지으려면 대상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런 건 유예 기간을 좀 늘려주면 좋겠어요.
구례가 청년들이 들어와서 살 수 있는 정책들이 아직까지 미약하긴 해요. 청년들이 살 집이 없어 정착하지 못하고 올라가버리죠. 마을에서 오래된 집을 리모델링을 해서 귀농, 귀촌인들에게 내주고 수익금을 마을로 잡는 사업을 계속 진행은 하고 있어요. 그런데 집을 안파니까 쉽지 않아요. 저희가 체류형 귀농귀촌 1기생인데 정착률이 80%예요. 그런데 농사를 적극적으로 짓는 사람들은 30%밖에 안돼요. 귀촌에 가깝죠.
현재 이지예 농부가 농장의 대표인데요, 여성농업인을 지원하는 사업은 없나요?
네. 여성 농업인을 지원하는 정책은 딱히 없는 것 같아요.
마을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남편은 이장이고 저도 작년부터 안음마을 부녀회장으로 봉사하고 있어요.
지리산이음이 지리산권 농부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을 고민하고 있어요.
농사를 짓고 있지만 농사와 관련되지 않아도 농부들끼리 한번 해 보고 싶은 활동이 있나요?
요즘은 다 인터넷으로 소통하는 시대잖아요. 지리산권 농부들의 밴드를 만든다든지 해서 서로 소통하는 게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요? 어떻게 사는지 서로 이야기도 주고받고 농산물도 서로 팔아주기도 하고.
마을이장으로 김용일 농부가 농사 외에 마을에서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김용일) 해보고 싶지만 시기가 시기인지라 쉽지 않습니다만, 도시인들이 우리 마을에 와서 체험도 하고 봉사도 하는 프로그램을 해보고 싶어요. 아이들에게 추억이 될 농촌체험도 하고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봉사도 하고, 수제비도 같이 끓여먹고 서로 교류하면서 우리 농산물까지 사가면 좋잖아요.
저희는 아이들을 키우니까 섬진강 은어 잡아서 구워먹고 강가에서 노는 장면을 가끔 SNS에서 올려요. 거기에 부럽다는 댓글을 다는 것 보면 도시 사람들은 그런 장면만으로도 힐링이 되나보더라고요.
이런 생각도 해 봤어요. 지리산권 농업인들이 2박 3일로 마을에 와서 체험도 하고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도 미약하지만 아는 범위에서 친환경 농사를 알려주고 우리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코로나가 끝나면 지리산권 농부들이 모여서 교류하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어요. 농촌체험관광도 지자체 통해서만 하지 말고 지리산권 농부들이 교류해서 새로운 코스로 만들어도 좋잖아요. 그래서 공유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요?
어떤 분이 조언해주기를 뭘 하더라도 10년은 해야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온다고 이 작물 하다가 때려치우고 저 작물 하다가 때려치우고 하면 안 된다고.
무농약 친환경농사를 정직하게 꾸준히 해 나가면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봐요. 우리는 영농조합법인도 만들려고 계획하고 있어요. 규모를 갖춰서 가공공장도 만들고, 조그맣게 창고, 사무실도 만들어서 남들이 하듯이 우리도 하나씩 단계를 밟아가려고 해요. 욕심내지 않고.
역시나 이지예 농부도 참 많은 일을 하면서 살고 있었다. 가족을 돌보고 농사를 짓고 마을과 동네 어르신들을 살핀다. 다른 여성농부들처럼 아무렇지 않게. 예정에는 없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인터뷰를 함께 한 김용일 농부도 마찬가지다. 말 그대로 젊고 성실한 마을 이장이다.
두 농부는 틈틈이 은근슬쩍 서로를 지지하고 칭찬하고 거들어주었다. 곤란한 질문은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넘기는 환상의 호흡이다. 5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고추, 감자, 양파 농사를 성실하고 환상적으로 짓고 있지 않을까 싶다.
약속이나 한 듯 농업에 미래가 있고,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그래서 더 좋아질 거라 믿는다는 두 농부의 이야기에 모처럼 홀가분하다.
글 이경원
기획, 기록, 연결로 변화를 만드는 일과 사람을 돕는다. 2014년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궁금해서 찾았던 지리산시골살이학교 덕분에 지리산이음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때는 몰랐다. 7년이 지난 2021년 구례 남원 산청 하동 함양을 다니며 ‘농사를 업으로 하는 농부’들의 이야기를 글로 전하게 될 줄은.
사진 임현택
진행 이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