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 욕심 없는 이야기꾼 농부의 삶과 농사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 귀농·귀촌 관심자
- 가족을 설득하지 못해 귀농·귀촌이 늦어지고 있는 귀농·귀촌 희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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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블루블루농원 대표 공문조 농부는 귀농 12년차다. 농사 경험도 없이 농촌에서 살고 싶어 귀농교육을 받았고, 가족을 설득해 하동으로 왔다. 농사 경험 없던 도시농부는 취나물을 재배하다 2013년부터 블루베리 농사를 짓는다. 사람 만나는 게 좋아 시작한 하동군 농민회에서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이런 곳에 마을이 있을까’하는 마음으로 언덕을 넘자 적량면 마을이 나타났다. 다리 건너에 고무신을 신은 공문조 농부가 우리를 기다리며 서있다.

하동에서 만난 공문조 농부가 블루베리 농장을 배경으로 서 있다.
하동으로 귀농한지 12년 정도 되었다고 들었어요. 적량면이 고향은 아니죠?
네. 고향은 부산입니다. 하동은 전혀 연고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귀농교육을 같이 받았던 동기가 하동에 먼저 내려와서 ‘여기도 괜찮다’고 했어요. 저도 귀농교육 인턴으로 봉화에서도 지내보고, 여러 곳에 다녀봤는데 인연이 여기로 닿았나 봐요. 2010년에 아내, 두 딸과 함께 귀농했습니다. 와보니까 좋더라고요.
귀농 후 바로 블루베리 농사를 시작 한 건 아니죠?
네. 무조건 농사를 짓겠다는 생각으로 귀농했지만 작물은 정하지 않았어요. 농사를 지어본 경험도 없었고요. 대신 생태적인 농사를 짓겠다는 결정만 하고 왔어요. 앞으로 지속가능한 농업이 돼야 하고, 땅도 살리고 나도 살리고, 모두를 살리는 농업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왔습니다. 처음 내려와서 마침 제가 받아서 농사지을 수 있는 농작물이 취나물이었어요. 그래서 취나물농사를 짓게 된 거죠.
농사를 짓다보니 취나물이 저랑은 좀 안 맞더라고요. 계속 쪼그리고 앉아서 해야 하고 풀을 뽑아내야하고. 저도 저지만 아내가 적응을 못하더라고(웃음). 아내가 많이 힘들어 했어요. 평생 안 해본 일이니까. 특히 시골 밭일은 쪼그리고 앉아서 하루 종일 해야 되니까 여성들에게 육체적으로 강도가 세잖아요. 전체 규모가 800평정도 되는데 2013년에 블루베리로 모두 바꿨습니다. 블루베리 농사는 햇수로 9년째입니다.
귀농을 결심했을 때 가족의 반대는 없었나요?
많았죠. 아내가 반대 많이 했죠(웃음). 저 혼자 가라고 했는데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하면서 100% 아니어도 85% 정도 마음이 바뀌었을 때 억지로 데리고 왔죠. 아직도 도시로 나가자고 합니다(웃음).

블루베리 나무가 자라고 있는 하우스
이렇게 반대가 심했는데 지금 블루베리 농사는 부부가 같이 짓나요?
네, 같이 짓고 있습니다. 800평 규모니까 바쁠 때만 사람들 힘 빌리고 거의 둘이서 합니다. 작년부터 윗마을 아는 형님이 짓던 농사를 제가 짓게 되어서 규모가 두 배로 늘었어요. 작년에는 6, 7월에 수확하고 관리만 했는데 올해는 준비부터 해야 해서 일은 좀 많아졌습니다. 규모는 천 평정도 인데 땅에서 키우니까 풀 관리가 엄청 힘들었어요. 아직까지도 해결이 안 되고 있습니다. 제초제, 농약을 안치니까 더 힘드네요.
취나물의 대체 작물로 블루베리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취나물이 힘들어서 규모를 좀 줄이자 할 때 저희 사정을 잘 아는, 주변에 블루베리 농사짓는 분들이 추천하시더라고요. 블루베리가 작업강도도 약하고 취나물보다 괜찮을 거라고. 그래서 과감하게 바꿨는데 훨씬 좋더라고요. 아내도 그렇게 힘들어 하지 않고.
저한테는 블루베리가 그렇게 까다로운 작물이 아니었어요. 저는 농약이나 제초제를 쓰지 않고 농사를 짓습니다. 블루베리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 20년 정도 된 작물이라 병의 접근이 아직까지는 없는 편입니다. 해충이 나무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른다고 해야 할까요. 작년에는 갈색날개매미충 때문에 문제가 됐었는데 그래도 다른 작물보다는 훨씬 낫죠. 수시로 다니면서 잡아낼 수 있는 정도입니다.
먼저 하신 분들 얘기 많이 듣고 농업기술원 최고농업과정도 듣고, 경남 마이스터 과정도 하고. 공부도 많이 했어요.
키우는 품종은 몇 가지 정도 되는지, 묘목은 주로 어디서 구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우리 같은 경우는 지금 5개 품종입니다. 품종이 많으면 아무래도 수분이 잘 되겠죠. 블루베리는 품종이 엄청 다양하고 품종마다 특성이 다 달라요. 품종 따라 크기, 맛, 저장기간도 다르기 때문에 품종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감당이 잘 안 돼요. 소비자들이 받았을 때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요.
지금 저희농장에 있는 블루베리는 거의 10년생입니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경상남도 고성에 모종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농장에서 3년생 나무를 사왔어요. 블루베리는 삽목이 쉬워요. 저도 처음에는 삽목을 했는데 어느 정도 일정한 양이 되니까 관리가 힘들더라고요.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사오는 게 나아서 지금의 거의 안합니다.
농약과 제초제 없이 농사를 지으시는데 친환경 인증을 목표로 하는 건가요?
(큰 한숨) 친환경 인증에는 제가 할 말이 좀 많은데요. 친환경은 1년마다 인증검사를 하거든요. 인증을 받고 작년에 검사를 하니 저희가 치지도 않은 농약이 나왔대요. 그런데 그 이유를 우리가 알아내야 한대요. 그걸 못 알아내서 결국 인증이 취소되었어요. 처음에는 너무 억울해서 행정소송까지 하려고 청문회까지 했는데 결국에는 마찬가지겠더라고요. 근거가 없으니까 방법이 없어요.
두 개 농장을 한 사람이 지으면 같이 묶어서 보거든요. 저희도 각각 인증을 받아도 되는데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으니 같이 묶어서 인증을 받았어요. 위에 있는 농장에서 채취한 샘플에서 농약이 나오니 아래 농장까지 취소가 되어버린 거죠. 더구나 위의 농장은 유기농이었는데 그렇게 나와 버렸으니…. 저희는 지금 100% 직거래로 판매를 해서 유기농 인증이 크게 중요하지는 않지만 농사규모도 좀 늘었고 앞으로 유통망을 늘리려면 필요할 것 같아서 준비했는데 결국 마음 상하는 일만 생겼어요. 다시 준비를 해보려고 해도 그 농약이 어디에서 들어왔는지 지금도 모르는 상황이어서 좀 답답합니다.
구례에서 유기농을 지키기 위해 옆의 논까지 제초를 해 준다는 농부를 만난 적이 있어요.
원칙을 지키면서 농사를 짓는 것도 힘든데 정말 난감하네요.

인터뷰를 하고 있는 공문조 농부의 모습
블루베리 농사는 두 달만 고생하면 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전지부터 수확까지 공문조 농부의 1년 농사 일정이 궁금합니다.
정말 6, 7월 반짝하면 되는 건가요?
하하하 6, 7월은 수확이니까 제일 바쁜 시기입니다. 저희도 수확할 때는 두 사람을 고정으로 쓰는데요, 새벽 7시부터 가장 덥기 전인 11시까지 따요. 풀 많은 데는 모기가 엄청 많습니다.
지금 현 상태로는 풀 제거 작업도 8월부터 11월까지는 계속 해야 할 것 같고요. 12월부터 2월까지는 가지치기, 토양보충, 수피회복과 양분을 공급해줘야 합니다. 수확 전까지 5월과 6월에도 풀 관리를 해야 하고요. 1년 농사과정은 대략 이렇습니다.
블루베리는 평균적으로 몇 년생일 때 수확량이 가장 많나요? 나무의 수명은 어느 정도나 되는지도 궁금해요.
심은 지 7, 8년 이후가 수확량이 제일 많아요. 그런데 블루베리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사과나 배처럼 이 나무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몇 년을 산다는 정확한 데이터는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그리고 저처럼 백bag에 심는 농장도 있고 땅에 심는 농장도 있는데 백에 심은 나무가 클 때는 잘 크는데 수명이 짧다는 얘기도 있어요. 아무래도 뿌리를 내리는 면적이 작으니까. 그런데 확실한 결과는 아니에요.
우리나라는 아직 자체적으로 새로운 품종을 개발할 단계는 아니죠?
조금씩 실험 삼아 해보시는 분도 계신데 아직 상용화는 안 된 걸로 알고 있어요.
블루베리는 주로 직거래로 판매하신다고요? 주로 소비자들은 어떤 분인가요?
제가 농사지은 블루베리는 가족들, 친구들 통해서 100% 직거래 판매됩니다. 가장 큰 거래처는 제 막내 동생입니다. 제가 어떻게 농사를 짓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한테 자신 있게 권하는 모양이더라고요. 쉽게 말하면 품질이 좋으니까요. 크고 달고(웃음).
100% 생과로 판매되면 가공품 생산이나 블루베리 따기 체험 프로그램은 할 게 없겠군요.
네. 상품으로 출고할 수 있는 B품들은 버릴 수 없으니까 냉동시키기도 하는데 소비자들에게 나가는 생과는 남는 게 없습니다. 가공품이나 체험 프로그램을 하려면 면적도 더 늘리고 해야 하는데 저는 딱 이만큼이 좋습니다. 지금 천 평이 늘어나니까 조금 힘듭니다. 다른 게 힘든 게 아니고 풀 관리 때문에.
풀 관리가 공문조 농부를 가장 힘들게 하고 있군요. 기계의 힘을 빌릴 순 없나요?
블루베리는 바닥에 라인이 있습니다. 분수처럼 물을 분사하는 스틱이 있기 때문에 예초기로 거의 못해요. 가까운 데만 조금 할 수 있지 나머지는 일일이 손으로 해야 됩니다. 저처럼 도시에서 살다 온 사람들은 낫도 안 써봐서 위험해요. 몇 번 손을 다치고 나니까 호미로 살짝 긁어서 손으로 뽑는 게 제일 낫더라고요.

공문조 농부와 인터뷰를 맡은 이경원 작가가 길가에서 농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혹시 농사 외에 다른 경제 활동을 하시나요?
농사만으로 생활이 안 돼요. 아르바이트를 많이 합니다.
2년 전까지는 겨울마다 산불감시원도 했고, 일용직 노동도 하고요. 지금은 재첩 가공공장에 나가고 있습니다. 아내는 농사규모를 좀 더 늘려서 가공이나 체험을 하는 걸 생각하는데 저는 농사 규모를 더 키울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제일 잘하는 게 1차 생산이고 이 정도 규모여야 혼자 할 수 있으니까요. 규모가 조금만 더 커져도 사람을 써야 해요. 작년부터 규모가 커져서 수확량이 두 배까지는 아니어도 좀 늘었어요.
농사지으면서 어려운 점은 없습니까?
저는 농사짓는데 어려운 건 별로 없어요. 단지 돈이 안 되니까 좀 그렇죠. 특히 애들한테는 아직까지 돈이 들어가야 되는데 도시에서 만큼 수입이 안 되니까 그런 게 좀 걸리죠.
처음에는 조금 그런 게 있었어요. 당시만 해도 친환경이란 개념이 없어서 농사를 지으면 무조건 주위가 깨끗해야 된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게 안 되잖아요. “너는 왜 항상 풀을 둬서 풀씨가 우리 농장까지 오게 만드느냐”며 우리 몰래 와서 제초제를 뿌려놓고 가는 분도 있었어요. 대판 싸웠죠. 처음부터 뭐라하지는 못하고 몇 년 지나서 저도 지역에서 좀 자리 잡고 나서. 그리고 마을에 문제제기를 했죠.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혹시 블루베리 농사일지 쓰나요?
농사일지를 쓰지는 않습니다. 필요성을 느끼는데 쓰려고 하면 잘 안되더라고요.
낮에 일하고 들어오면 피곤하니까 잠깐 쉬고 밤에는 자기 바빠요. 지역 활동 안 하고 농사만 짓는 분들은 그게 가능할 것도 같은데 핑계일지도 모르지만 저는 농민회 활동도 하고 지역 활동도 하다보니까 시간이 늘 부족합니다. 농사일 하다가 나오라고 하면 중간에라도 나가야 되고 밤 되면 회의하자 하면 가야 되고… 그렇습니다(웃음).
블루베리 농사 전망은 어떤가요? 하동에 블루베리 농가가 더 많아질까요?
블루베리도 이제 어느 정도 정체기여서 크게 늘어나지는 않을 겁니다. 하동이 새로운 작물 투입하는 게 상당히 빨라요. 블루베리도 빨리 도입해서 군에서 이제는 관심이 별로 없어요. 어느 정도 기반이 되어 있으니까 더 이상 보조도 안돼요. 체리도 하다가 이제 거의 사그라들고 지금은 씨 없는 포도, 샤인머스켓, 열대 과일 패션 프루츠도 나오는데 블루베리가 아직까진 나아요. 그래도 크게 늘지는 않을 것 같아요.
농민회 활동 얘기를 듣고 싶은데요, 지금 하동군 농민회 사무국장이시죠?
하동군 농민회는 지역에서 어떤 역할을 하나요?
전국농민총연합회에서 지역으로 내려오는 의제를 실행하는 위치죠. 의제는 주로 농업형태를 공공개념으로 돌리자, 농산물 최저가격을 보장하자입니다.
농민회 하면 트랙터와 쌀 시위가 먼저 생각나요. 그런데 시위는 소농들이 하고 수혜는 대농들이 본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런 말씀 많이 하세요. 요즘 회원들이 잘 참석하지 않는 이유가 ‘내가 가서 해봐야 득 보는 거는 결국 대농들이다’라고 해요. 대농들은 시위나 회의에 참석도 잘 안 하거든요. 일이 많으니까 여기 나오면 하루 일이 안 되고, 이틀 일이 안 되면 자기 농사가 안 되니까.

백에 담겨 자라는 블루베리 나무를 손으로 잡고 있는 공문조 농부
10년 가까이 농민회 활동을 했는데요, 농업인으로 삶에 좋은 변화가 느껴지나요?
바뀐 점은… 저는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사람 만나러 다니는 거지 농민회 활동으로 우리 삶이 나아질 거라는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정부 보조금에 대한 기대도 없고, 솔직히 해봐야 별로 도움도 안 되고 절차도 까다로워요. ‘그런 기대도 없이 농민회 활동을 왜 하느냐’고 묻는 분들도 있습니다.
제가 지금 55살인데 마을에 들어올 때 막내였는데 아직까지 막내거든요. 저보다 먼저 활동하신 분들은 지금 60~70대예요. 그분들은 ‘내가 이 정도로 열심히 했는데 실질적으로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게 없다’고 느끼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그게 밑바탕이 되어서 농촌이 그래도 이 정도 유지가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분들은 그것으로는 만족을 못 하시는 거고요.
농민회에 젊은 농부들은 점점 관심이 없어지겠네요.
제가 제일 젊다니까요(웃음). 적량면에는 가업을 이어서 농사짓는 젊은 농부들은 한두 분 있지만 새로 농사짓겠다고 들어오는 젊은 농부들은 거의 없어요.
농민회에서도 기후위기에 대해 많이 얘기 하시죠?
네. 매실이나 감 농사 하는 분들은 이런 날씨가 계속 되면 이제는 작물을 바꿔야 된다고 많이 말씀하세요. 그런데 다 나이가 있으니까 새로운 걸 하는 데 많이 두려워하시죠. 저도 귀농교육을 받을 때는 농촌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있으니까 의욕도 충만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지금은 새로 배운다는 게 조금 두렵기도 해요. 그때는 새로 배우는 게 좋으니까 교육이 있으면 가고, 모임이나 단체에도 가입했는데 지금은 조금 두려워요. 새로 시작하는 게.

고무신을 신고 인터뷰어들을 맞이하러 나온 공문조 농부의 발
농민으로 10년, 우리나라 농업 정책에 대해서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면 부탁합니다.
일단 농촌에 사람이 계속 살 수 있는, 지속가능한 농촌 환경을 만들어줘야죠. 그러려면 인구가 계속 유입되어야겠죠?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이 시골에 와서 못 먹고 사는데 어떻게 들어오겠어요. 그래서 농민수당이든지, 복지수당이든지 이름은 다르지만 수당을 주자는 얘기를 계속 하고 있어요. 농민수당은 내가 농촌에 와서 살 수 있는 기본 소득이거든요. 경상남도도 농민회가 주도해서 2022년부터 시행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농가의 농민당 연 30만원으로 배우자까지는 인정이 된다고 해요. 그러면 우리는 연 60만원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경남도 농어업인수당은 2022년부터 농어업경영체로 등록한 농어가당 연간 30만원, 공동경영주로 등록된 농어가당 연간 60만원으로 정했다. (출처 : 한국농어민신문) |
농민수당이 제도적으로 정착되면 농민들의 삶도 조금보다 나아지겠죠?
매달 일정한 금액이 나온다면 내가 농사짓는 게 조금 왔다 갔다 하더라도 기본 소득이 있으니까 그래도 좀 안정적으로 생활이 안 되겠습니까? 전농에서는 최저 가격 보장하라고 몇 년부터 했지만 그건 될 리가 없고. 어떻게든 농촌이 살아남아야 되잖아요. 그런 안전장치라도 있으면 좋지요.
젊은 농부의 유입이 전혀 없는 동네지만 그래도 앞으로 귀농이나 귀촌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정도는 준비하라고 해 주고 싶은 얘기가 있을까요?
저는 그냥 시골이 좋아서 농사를 짓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들어왔지만 앞으로 귀농을 하는 분들은 적어도 자기가 농사지을 작물 정도는 정해오면 좋겠어요. 공부도 미리 좀 하고.
농사짓다가 어렵다고 다른 데로 가려면 그것도 낭비잖아요. 그러니까 자기가 짓고 싶은 작물을 선택해서 지역을 선택하는 것도 방법이죠. 처음 농사를 짓는다면 그 지역에서 잘 되는 작물을 선택하는 게 재배과정이나 판로에도 좋을 것 같아요. 힘들면 옆에 물어볼 사람이 있으니까 도움도 받을 수 있고요. 어느 정도 기반이 되면 다른 사람들을 이끌어 갈 수도 있는 거죠.
공문조 농부는 농사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짓고, 농민회 활동도 하고 공부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지만 아주 행복한 농부 같습니다.
저는 불만은 없어요. 그런데 아내는 그게 좀 불만이지요. 뭐든지 조금만 더 하면 되는데 그걸 안한다고.
취나물 농사를 지을 때도 그랬어요. 취나물이 1월 되면 나오거든요. 전국에서 제일 빨리 나와서 가격을 잘 받아요. 4월 말에서 5월 초까지는 그냥 그대로 팔 수 있어요. 그 이후에는 말려서 파는데 상인들이 건취 가격을 너무 안 쳐주더라고요. 그래서 서울에 큰 식당과 연결해서 직거래로 납품했는데 다른 데 보다 가격을 잘 받았어요. 동네 건취도 제가 받아서 같이 납품도 했었어요. 그런데 제가 취나물을 안 하니까 품질 보장을 못하겠더라고요. 내가 농사지은 취나물은 농약 안치고 제초제 안하니까 건강하고 좋은 거라고 자신하면서 팔 수 있었는데 내가 농사를 안 지으니까 다른 분들이 어떻게 농사짓는지 계속 확인할 수도 없고 납품하는 게 상당히 부담되더라고요. 그래서 안하게 되었는데 아내는 그걸 계속 했더라면 하더라고요.
유통을 하셔도 잘 하셨을 것 같아요.
아이쿠. 복잡해서 안 돼요.
기후 위기 얘기가 계속 나오는데 십년 후 하동에서 감농사를 지을 수 없을지도 모르잖아요.
지리산 이음이 지리산권 농부들과 지역의 이야기나 농사기록들을 남기는 작업으로 농사 일지를 같이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해요. 약간의 지원을 해 드리면 공문조 농부가 블루베리를 맡아주시겠습니까?
기록은 어떻게 살았다는 게 남는 거니까 농사뿐 아니라 전통을 기록하는 건 필요하다고 봅니다. 여기 농사짓는 분들 돌아가시고 나면 다 끊어져 버릴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그런 작업은 빨리 할수록 좋은 것 같아요. 특별하게 지원해주실 건 없을 것 같은데요, 그냥 내가 해야 한다면 하면 되죠.
공문조 농부는 욕심이 필요한 농부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위해 최대한 곁가지를 쳐내고 누구에게 특별히 요구하거나 기대하지도 않는다.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수확이 끝난 블루베리 하우스에서 한 시간이 넘게 내내 웃으며 얘기했지만 친환경 인증 취소는 같이 억울했고, 우리의 농촌과 농업의 현재는 여전히 답답했다. ‘제가 뭐 할 얘기도 없고 이 정도는 다들 하시는 얘기여서…’ 인터뷰 제안을 처음에는 거절했다는 공문조 농부를 만나지 않았다면 들을 수 없었던 귀한 이야기들. 이제라도 들을 수 있어 다행이다.
글 이경원
기획, 기록, 연결로 변화를 만드는 일과 사람을 돕는다. 2014년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궁금해서 찾았던 지리산시골살이학교 덕분에 지리산이음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때는 몰랐다. 7년이 지난 2021년 구례 남원 산청 하동 함양을 다니며 ‘농사를 업으로 하는 농부’들의 이야기를 글로 전하게 될 줄은.
사진/진행 이현주
🌱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하동 블루블루농원 대표 공문조 농부는 귀농 12년차다. 농사 경험도 없이 농촌에서 살고 싶어 귀농교육을 받았고, 가족을 설득해 하동으로 왔다. 농사 경험 없던 도시농부는 취나물을 재배하다 2013년부터 블루베리 농사를 짓는다. 사람 만나는 게 좋아 시작한 하동군 농민회에서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이런 곳에 마을이 있을까’하는 마음으로 언덕을 넘자 적량면 마을이 나타났다. 다리 건너에 고무신을 신은 공문조 농부가 우리를 기다리며 서있다.
하동에서 만난 공문조 농부가 블루베리 농장을 배경으로 서 있다.
하동으로 귀농한지 12년 정도 되었다고 들었어요. 적량면이 고향은 아니죠?
네. 고향은 부산입니다. 하동은 전혀 연고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귀농교육을 같이 받았던 동기가 하동에 먼저 내려와서 ‘여기도 괜찮다’고 했어요. 저도 귀농교육 인턴으로 봉화에서도 지내보고, 여러 곳에 다녀봤는데 인연이 여기로 닿았나 봐요. 2010년에 아내, 두 딸과 함께 귀농했습니다. 와보니까 좋더라고요.
귀농 후 바로 블루베리 농사를 시작 한 건 아니죠?
네. 무조건 농사를 짓겠다는 생각으로 귀농했지만 작물은 정하지 않았어요. 농사를 지어본 경험도 없었고요. 대신 생태적인 농사를 짓겠다는 결정만 하고 왔어요. 앞으로 지속가능한 농업이 돼야 하고, 땅도 살리고 나도 살리고, 모두를 살리는 농업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왔습니다. 처음 내려와서 마침 제가 받아서 농사지을 수 있는 농작물이 취나물이었어요. 그래서 취나물농사를 짓게 된 거죠.
농사를 짓다보니 취나물이 저랑은 좀 안 맞더라고요. 계속 쪼그리고 앉아서 해야 하고 풀을 뽑아내야하고. 저도 저지만 아내가 적응을 못하더라고(웃음). 아내가 많이 힘들어 했어요. 평생 안 해본 일이니까. 특히 시골 밭일은 쪼그리고 앉아서 하루 종일 해야 되니까 여성들에게 육체적으로 강도가 세잖아요. 전체 규모가 800평정도 되는데 2013년에 블루베리로 모두 바꿨습니다. 블루베리 농사는 햇수로 9년째입니다.
귀농을 결심했을 때 가족의 반대는 없었나요?
많았죠. 아내가 반대 많이 했죠(웃음). 저 혼자 가라고 했는데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하면서 100% 아니어도 85% 정도 마음이 바뀌었을 때 억지로 데리고 왔죠. 아직도 도시로 나가자고 합니다(웃음).
블루베리 나무가 자라고 있는 하우스
이렇게 반대가 심했는데 지금 블루베리 농사는 부부가 같이 짓나요?
네, 같이 짓고 있습니다. 800평 규모니까 바쁠 때만 사람들 힘 빌리고 거의 둘이서 합니다. 작년부터 윗마을 아는 형님이 짓던 농사를 제가 짓게 되어서 규모가 두 배로 늘었어요. 작년에는 6, 7월에 수확하고 관리만 했는데 올해는 준비부터 해야 해서 일은 좀 많아졌습니다. 규모는 천 평정도 인데 땅에서 키우니까 풀 관리가 엄청 힘들었어요. 아직까지도 해결이 안 되고 있습니다. 제초제, 농약을 안치니까 더 힘드네요.
취나물의 대체 작물로 블루베리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취나물이 힘들어서 규모를 좀 줄이자 할 때 저희 사정을 잘 아는, 주변에 블루베리 농사짓는 분들이 추천하시더라고요. 블루베리가 작업강도도 약하고 취나물보다 괜찮을 거라고. 그래서 과감하게 바꿨는데 훨씬 좋더라고요. 아내도 그렇게 힘들어 하지 않고.
저한테는 블루베리가 그렇게 까다로운 작물이 아니었어요. 저는 농약이나 제초제를 쓰지 않고 농사를 짓습니다. 블루베리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 20년 정도 된 작물이라 병의 접근이 아직까지는 없는 편입니다. 해충이 나무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른다고 해야 할까요. 작년에는 갈색날개매미충 때문에 문제가 됐었는데 그래도 다른 작물보다는 훨씬 낫죠. 수시로 다니면서 잡아낼 수 있는 정도입니다.
먼저 하신 분들 얘기 많이 듣고 농업기술원 최고농업과정도 듣고, 경남 마이스터 과정도 하고. 공부도 많이 했어요.
키우는 품종은 몇 가지 정도 되는지, 묘목은 주로 어디서 구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우리 같은 경우는 지금 5개 품종입니다. 품종이 많으면 아무래도 수분이 잘 되겠죠. 블루베리는 품종이 엄청 다양하고 품종마다 특성이 다 달라요. 품종 따라 크기, 맛, 저장기간도 다르기 때문에 품종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감당이 잘 안 돼요. 소비자들이 받았을 때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요.
지금 저희농장에 있는 블루베리는 거의 10년생입니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경상남도 고성에 모종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농장에서 3년생 나무를 사왔어요. 블루베리는 삽목이 쉬워요. 저도 처음에는 삽목을 했는데 어느 정도 일정한 양이 되니까 관리가 힘들더라고요.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사오는 게 나아서 지금의 거의 안합니다.
농약과 제초제 없이 농사를 지으시는데 친환경 인증을 목표로 하는 건가요?
(큰 한숨) 친환경 인증에는 제가 할 말이 좀 많은데요. 친환경은 1년마다 인증검사를 하거든요. 인증을 받고 작년에 검사를 하니 저희가 치지도 않은 농약이 나왔대요. 그런데 그 이유를 우리가 알아내야 한대요. 그걸 못 알아내서 결국 인증이 취소되었어요. 처음에는 너무 억울해서 행정소송까지 하려고 청문회까지 했는데 결국에는 마찬가지겠더라고요. 근거가 없으니까 방법이 없어요.
두 개 농장을 한 사람이 지으면 같이 묶어서 보거든요. 저희도 각각 인증을 받아도 되는데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으니 같이 묶어서 인증을 받았어요. 위에 있는 농장에서 채취한 샘플에서 농약이 나오니 아래 농장까지 취소가 되어버린 거죠. 더구나 위의 농장은 유기농이었는데 그렇게 나와 버렸으니…. 저희는 지금 100% 직거래로 판매를 해서 유기농 인증이 크게 중요하지는 않지만 농사규모도 좀 늘었고 앞으로 유통망을 늘리려면 필요할 것 같아서 준비했는데 결국 마음 상하는 일만 생겼어요. 다시 준비를 해보려고 해도 그 농약이 어디에서 들어왔는지 지금도 모르는 상황이어서 좀 답답합니다.
구례에서 유기농을 지키기 위해 옆의 논까지 제초를 해 준다는 농부를 만난 적이 있어요.
원칙을 지키면서 농사를 짓는 것도 힘든데 정말 난감하네요.
인터뷰를 하고 있는 공문조 농부의 모습
블루베리 농사는 두 달만 고생하면 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전지부터 수확까지 공문조 농부의 1년 농사 일정이 궁금합니다.
정말 6, 7월 반짝하면 되는 건가요?
하하하 6, 7월은 수확이니까 제일 바쁜 시기입니다. 저희도 수확할 때는 두 사람을 고정으로 쓰는데요, 새벽 7시부터 가장 덥기 전인 11시까지 따요. 풀 많은 데는 모기가 엄청 많습니다.
지금 현 상태로는 풀 제거 작업도 8월부터 11월까지는 계속 해야 할 것 같고요. 12월부터 2월까지는 가지치기, 토양보충, 수피회복과 양분을 공급해줘야 합니다. 수확 전까지 5월과 6월에도 풀 관리를 해야 하고요. 1년 농사과정은 대략 이렇습니다.
블루베리는 평균적으로 몇 년생일 때 수확량이 가장 많나요? 나무의 수명은 어느 정도나 되는지도 궁금해요.
심은 지 7, 8년 이후가 수확량이 제일 많아요. 그런데 블루베리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사과나 배처럼 이 나무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몇 년을 산다는 정확한 데이터는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그리고 저처럼 백bag에 심는 농장도 있고 땅에 심는 농장도 있는데 백에 심은 나무가 클 때는 잘 크는데 수명이 짧다는 얘기도 있어요. 아무래도 뿌리를 내리는 면적이 작으니까. 그런데 확실한 결과는 아니에요.
우리나라는 아직 자체적으로 새로운 품종을 개발할 단계는 아니죠?
조금씩 실험 삼아 해보시는 분도 계신데 아직 상용화는 안 된 걸로 알고 있어요.
블루베리는 주로 직거래로 판매하신다고요? 주로 소비자들은 어떤 분인가요?
제가 농사지은 블루베리는 가족들, 친구들 통해서 100% 직거래 판매됩니다. 가장 큰 거래처는 제 막내 동생입니다. 제가 어떻게 농사를 짓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한테 자신 있게 권하는 모양이더라고요. 쉽게 말하면 품질이 좋으니까요. 크고 달고(웃음).
100% 생과로 판매되면 가공품 생산이나 블루베리 따기 체험 프로그램은 할 게 없겠군요.
네. 상품으로 출고할 수 있는 B품들은 버릴 수 없으니까 냉동시키기도 하는데 소비자들에게 나가는 생과는 남는 게 없습니다. 가공품이나 체험 프로그램을 하려면 면적도 더 늘리고 해야 하는데 저는 딱 이만큼이 좋습니다. 지금 천 평이 늘어나니까 조금 힘듭니다. 다른 게 힘든 게 아니고 풀 관리 때문에.
풀 관리가 공문조 농부를 가장 힘들게 하고 있군요. 기계의 힘을 빌릴 순 없나요?
블루베리는 바닥에 라인이 있습니다. 분수처럼 물을 분사하는 스틱이 있기 때문에 예초기로 거의 못해요. 가까운 데만 조금 할 수 있지 나머지는 일일이 손으로 해야 됩니다. 저처럼 도시에서 살다 온 사람들은 낫도 안 써봐서 위험해요. 몇 번 손을 다치고 나니까 호미로 살짝 긁어서 손으로 뽑는 게 제일 낫더라고요.
공문조 농부와 인터뷰를 맡은 이경원 작가가 길가에서 농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혹시 농사 외에 다른 경제 활동을 하시나요?
농사만으로 생활이 안 돼요. 아르바이트를 많이 합니다.
2년 전까지는 겨울마다 산불감시원도 했고, 일용직 노동도 하고요. 지금은 재첩 가공공장에 나가고 있습니다. 아내는 농사규모를 좀 더 늘려서 가공이나 체험을 하는 걸 생각하는데 저는 농사 규모를 더 키울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제일 잘하는 게 1차 생산이고 이 정도 규모여야 혼자 할 수 있으니까요. 규모가 조금만 더 커져도 사람을 써야 해요. 작년부터 규모가 커져서 수확량이 두 배까지는 아니어도 좀 늘었어요.
농사지으면서 어려운 점은 없습니까?
저는 농사짓는데 어려운 건 별로 없어요. 단지 돈이 안 되니까 좀 그렇죠. 특히 애들한테는 아직까지 돈이 들어가야 되는데 도시에서 만큼 수입이 안 되니까 그런 게 좀 걸리죠.
처음에는 조금 그런 게 있었어요. 당시만 해도 친환경이란 개념이 없어서 농사를 지으면 무조건 주위가 깨끗해야 된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게 안 되잖아요. “너는 왜 항상 풀을 둬서 풀씨가 우리 농장까지 오게 만드느냐”며 우리 몰래 와서 제초제를 뿌려놓고 가는 분도 있었어요. 대판 싸웠죠. 처음부터 뭐라하지는 못하고 몇 년 지나서 저도 지역에서 좀 자리 잡고 나서. 그리고 마을에 문제제기를 했죠.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혹시 블루베리 농사일지 쓰나요?
농사일지를 쓰지는 않습니다. 필요성을 느끼는데 쓰려고 하면 잘 안되더라고요.
낮에 일하고 들어오면 피곤하니까 잠깐 쉬고 밤에는 자기 바빠요. 지역 활동 안 하고 농사만 짓는 분들은 그게 가능할 것도 같은데 핑계일지도 모르지만 저는 농민회 활동도 하고 지역 활동도 하다보니까 시간이 늘 부족합니다. 농사일 하다가 나오라고 하면 중간에라도 나가야 되고 밤 되면 회의하자 하면 가야 되고… 그렇습니다(웃음).
블루베리 농사 전망은 어떤가요? 하동에 블루베리 농가가 더 많아질까요?
블루베리도 이제 어느 정도 정체기여서 크게 늘어나지는 않을 겁니다. 하동이 새로운 작물 투입하는 게 상당히 빨라요. 블루베리도 빨리 도입해서 군에서 이제는 관심이 별로 없어요. 어느 정도 기반이 되어 있으니까 더 이상 보조도 안돼요. 체리도 하다가 이제 거의 사그라들고 지금은 씨 없는 포도, 샤인머스켓, 열대 과일 패션 프루츠도 나오는데 블루베리가 아직까진 나아요. 그래도 크게 늘지는 않을 것 같아요.
농민회 활동 얘기를 듣고 싶은데요, 지금 하동군 농민회 사무국장이시죠?
하동군 농민회는 지역에서 어떤 역할을 하나요?
전국농민총연합회에서 지역으로 내려오는 의제를 실행하는 위치죠. 의제는 주로 농업형태를 공공개념으로 돌리자, 농산물 최저가격을 보장하자입니다.
농민회 하면 트랙터와 쌀 시위가 먼저 생각나요. 그런데 시위는 소농들이 하고 수혜는 대농들이 본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런 말씀 많이 하세요. 요즘 회원들이 잘 참석하지 않는 이유가 ‘내가 가서 해봐야 득 보는 거는 결국 대농들이다’라고 해요. 대농들은 시위나 회의에 참석도 잘 안 하거든요. 일이 많으니까 여기 나오면 하루 일이 안 되고, 이틀 일이 안 되면 자기 농사가 안 되니까.
백에 담겨 자라는 블루베리 나무를 손으로 잡고 있는 공문조 농부
10년 가까이 농민회 활동을 했는데요, 농업인으로 삶에 좋은 변화가 느껴지나요?
바뀐 점은… 저는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사람 만나러 다니는 거지 농민회 활동으로 우리 삶이 나아질 거라는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정부 보조금에 대한 기대도 없고, 솔직히 해봐야 별로 도움도 안 되고 절차도 까다로워요. ‘그런 기대도 없이 농민회 활동을 왜 하느냐’고 묻는 분들도 있습니다.
제가 지금 55살인데 마을에 들어올 때 막내였는데 아직까지 막내거든요. 저보다 먼저 활동하신 분들은 지금 60~70대예요. 그분들은 ‘내가 이 정도로 열심히 했는데 실질적으로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게 없다’고 느끼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그게 밑바탕이 되어서 농촌이 그래도 이 정도 유지가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분들은 그것으로는 만족을 못 하시는 거고요.
농민회에 젊은 농부들은 점점 관심이 없어지겠네요.
제가 제일 젊다니까요(웃음). 적량면에는 가업을 이어서 농사짓는 젊은 농부들은 한두 분 있지만 새로 농사짓겠다고 들어오는 젊은 농부들은 거의 없어요.
농민회에서도 기후위기에 대해 많이 얘기 하시죠?
네. 매실이나 감 농사 하는 분들은 이런 날씨가 계속 되면 이제는 작물을 바꿔야 된다고 많이 말씀하세요. 그런데 다 나이가 있으니까 새로운 걸 하는 데 많이 두려워하시죠. 저도 귀농교육을 받을 때는 농촌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있으니까 의욕도 충만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지금은 새로 배운다는 게 조금 두렵기도 해요. 그때는 새로 배우는 게 좋으니까 교육이 있으면 가고, 모임이나 단체에도 가입했는데 지금은 조금 두려워요. 새로 시작하는 게.
고무신을 신고 인터뷰어들을 맞이하러 나온 공문조 농부의 발
농민으로 10년, 우리나라 농업 정책에 대해서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면 부탁합니다.
일단 농촌에 사람이 계속 살 수 있는, 지속가능한 농촌 환경을 만들어줘야죠. 그러려면 인구가 계속 유입되어야겠죠?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이 시골에 와서 못 먹고 사는데 어떻게 들어오겠어요. 그래서 농민수당이든지, 복지수당이든지 이름은 다르지만 수당을 주자는 얘기를 계속 하고 있어요. 농민수당은 내가 농촌에 와서 살 수 있는 기본 소득이거든요. 경상남도도 농민회가 주도해서 2022년부터 시행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농가의 농민당 연 30만원으로 배우자까지는 인정이 된다고 해요. 그러면 우리는 연 60만원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출처 : 한국농어민신문)
농민수당이 제도적으로 정착되면 농민들의 삶도 조금보다 나아지겠죠?
매달 일정한 금액이 나온다면 내가 농사짓는 게 조금 왔다 갔다 하더라도 기본 소득이 있으니까 그래도 좀 안정적으로 생활이 안 되겠습니까? 전농에서는 최저 가격 보장하라고 몇 년부터 했지만 그건 될 리가 없고. 어떻게든 농촌이 살아남아야 되잖아요. 그런 안전장치라도 있으면 좋지요.
젊은 농부의 유입이 전혀 없는 동네지만 그래도 앞으로 귀농이나 귀촌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정도는 준비하라고 해 주고 싶은 얘기가 있을까요?
저는 그냥 시골이 좋아서 농사를 짓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들어왔지만 앞으로 귀농을 하는 분들은 적어도 자기가 농사지을 작물 정도는 정해오면 좋겠어요. 공부도 미리 좀 하고.
농사짓다가 어렵다고 다른 데로 가려면 그것도 낭비잖아요. 그러니까 자기가 짓고 싶은 작물을 선택해서 지역을 선택하는 것도 방법이죠. 처음 농사를 짓는다면 그 지역에서 잘 되는 작물을 선택하는 게 재배과정이나 판로에도 좋을 것 같아요. 힘들면 옆에 물어볼 사람이 있으니까 도움도 받을 수 있고요. 어느 정도 기반이 되면 다른 사람들을 이끌어 갈 수도 있는 거죠.
공문조 농부는 농사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짓고, 농민회 활동도 하고 공부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지만 아주 행복한 농부 같습니다.
저는 불만은 없어요. 그런데 아내는 그게 좀 불만이지요. 뭐든지 조금만 더 하면 되는데 그걸 안한다고.
취나물 농사를 지을 때도 그랬어요. 취나물이 1월 되면 나오거든요. 전국에서 제일 빨리 나와서 가격을 잘 받아요. 4월 말에서 5월 초까지는 그냥 그대로 팔 수 있어요. 그 이후에는 말려서 파는데 상인들이 건취 가격을 너무 안 쳐주더라고요. 그래서 서울에 큰 식당과 연결해서 직거래로 납품했는데 다른 데 보다 가격을 잘 받았어요. 동네 건취도 제가 받아서 같이 납품도 했었어요. 그런데 제가 취나물을 안 하니까 품질 보장을 못하겠더라고요. 내가 농사지은 취나물은 농약 안치고 제초제 안하니까 건강하고 좋은 거라고 자신하면서 팔 수 있었는데 내가 농사를 안 지으니까 다른 분들이 어떻게 농사짓는지 계속 확인할 수도 없고 납품하는 게 상당히 부담되더라고요. 그래서 안하게 되었는데 아내는 그걸 계속 했더라면 하더라고요.
유통을 하셔도 잘 하셨을 것 같아요.
아이쿠. 복잡해서 안 돼요.
기후 위기 얘기가 계속 나오는데 십년 후 하동에서 감농사를 지을 수 없을지도 모르잖아요.
지리산 이음이 지리산권 농부들과 지역의 이야기나 농사기록들을 남기는 작업으로 농사 일지를 같이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해요. 약간의 지원을 해 드리면 공문조 농부가 블루베리를 맡아주시겠습니까?
기록은 어떻게 살았다는 게 남는 거니까 농사뿐 아니라 전통을 기록하는 건 필요하다고 봅니다. 여기 농사짓는 분들 돌아가시고 나면 다 끊어져 버릴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그런 작업은 빨리 할수록 좋은 것 같아요. 특별하게 지원해주실 건 없을 것 같은데요, 그냥 내가 해야 한다면 하면 되죠.
공문조 농부는 욕심이 필요한 농부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위해 최대한 곁가지를 쳐내고 누구에게 특별히 요구하거나 기대하지도 않는다.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수확이 끝난 블루베리 하우스에서 한 시간이 넘게 내내 웃으며 얘기했지만 친환경 인증 취소는 같이 억울했고, 우리의 농촌과 농업의 현재는 여전히 답답했다. ‘제가 뭐 할 얘기도 없고 이 정도는 다들 하시는 얘기여서…’ 인터뷰 제안을 처음에는 거절했다는 공문조 농부를 만나지 않았다면 들을 수 없었던 귀한 이야기들. 이제라도 들을 수 있어 다행이다.
글 이경원
기획, 기록, 연결로 변화를 만드는 일과 사람을 돕는다. 2014년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궁금해서 찾았던 지리산시골살이학교 덕분에 지리산이음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때는 몰랐다. 7년이 지난 2021년 구례 남원 산청 하동 함양을 다니며 ‘농사를 업으로 하는 농부’들의 이야기를 글로 전하게 될 줄은.
사진/진행 이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