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 글로 배운 토종, 친환경 농사를 직접 실천해보고 싶은 귀농, 귀촌을 준비하는 예비 농부
- 함양에서 같이 농사지으며, 농기구를 직접 만들어 보고 싶은 호기심 많은 농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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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의 가능성을 믿는 채화석 농부는 부산에서 함양으로 귀농한 12년차 농부다. 함양으로 귀농한 선배를 부러워하던 아내의 권유(?)로 귀농을 결심하고 여행 오듯 왔다고 한다.
다품종소량농산물을 친환경으로 재배하는 고집스런 농부이자, 7년차 양봉업자이기도 하다. 토종 배추와 고추 농사를 짓고 감자와 양파는 한살림과 계약재배로 출하한다. 함양토종씨앗모임대표를 맡기도 했다. 자유분방한 농부만큼이나 하우스 작물들이 들쑥날쑥 자라 있다.
함양에서 만난 채화석 농부가 배추밭을 소개해주고 있다.
부산에서 함양으로 귀농했다고 들었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결혼할 때부터 시골로 가자는 얘기는 했어요. 귀농 1년 전에 함양으로 귀촌한 선배네 집을 다녀온 아내가 너무 좋다고 했어요. ‘그래? 그럼 우리도 가자’했죠. 당시에 저는 부산에서 풍물을 하고 있어서 정리하고 1년 후에 갈 테니 아내에게 먼저 가있으라고 했어요. 그런데 집을 구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어요. 어쩌다보니 제가 먼저 함양으로 들어오고 아내가 뒤에 들어왔어요.
귀농·귀촌 교육 없이 무작정 함양으로 온 건가요? 귀농해서 어떤 농사를 짓고 싶었나요?
저는 도시에서도 농사를 지었어요. 시골로 가고 싶은 마음은 늘 있었고, 마침 부산에서 살던 집 앞에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구체적인 농사 계획은 없었어요. 그래서 와서 후회했죠. 지리산 천왕봉을 보면서 ‘내가 왜 왔지?’하면서.
워낙 돌아다니기 좋아하다 보니 귀농도 그냥 놀러 간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논에서 문득 일하다가 천왕봉을 보는 순간 ‘내가 아무 준비 없이 왔구나, 놀러온 게 아니다’ 그때 느꼈죠. 계획 없이 온 걸 후회한 거지 귀농을 후회했던 건 아닙니다.
성격이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마음 가는대로 이것저것 해보는 편입니다. 누가 ‘이거 한번 해 볼래?’ 하면 그걸 다 받아요. 주위에 사람들이 안한다고 하는 건 결국 저한테 와요. 그렇게 하다 보니 늘 일이 많아요. 시골에 와서 보니 외지인에게 주는 땅은 농사지을 만한 땅이 아니에요. 저는 어떻게든 해 봤으니까 지금은 그 경험으로 사람들한테 얘기해줄 게 생겨요. ‘그 땅은 이래서 힘들다. 그러니까 하지마라’
함양에서의 첫 농사는 어땠나요?
처음에는 고추농사를 지었어요. 해보니 고추가 만만한 작물이 아니었어요. 병이 엄청 많더라고요. 키우기는 쉬운데 수확하는 데까지가 엄청 신경을 많이 써야 해요. 물론 농약을 치고 고추농사에만 매달리면 되는데 저는 고추에만 신경을 쓰지 못하니까 수확량이 점점 줄어들더라고요.
부산에서 함양으로 간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당시에 어머니들 대상으로 풍물 수업을 했는데 그 분들 반응이 ‘아이고 서운하다’가 아니라 아이들 교육 어떻게 시키려고 하느냐를 먼저 얘기해요. 결혼을 늦게 해서 아이가 두 살이었는데 다들 그걸 제일 걱정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좋은 대학 안 보내면 시골만큼 좋은데도 없다고. 하하하.
지금 농사는 어떻게 짓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기본적으로 고추농사는 짓고요, 소소하게 배추, 감자, 양파 그리고 벼농사도 합니다. 양봉은 7년 째 하고 있습니다. 농사는 모두 친환경으로 짓습니다. 친환경 인증은 지금은 무농약으로 되어 있지만 저는 처음부터 유기농으로 지었어요. 친환경 인증 받은 밭이 2,500평정도 되고, 논은 1,000평만 인정이 되어 있습니다. 규모로만 따지면 벼농사가 열두 마지기로 비중이 제일 큽니다. 그 다음이 양파와 감자인데 한살림 계약재배를 하고 있어요. 한살림 생산자가 된지 6년째입니다.
배추밭을 배경으로 선 채화석 농부의 모습
그래도 작물이 꽤 많은데요, 1년 농사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1년으로 보면 2월 초에 고추모종을 냅니다. 제 한 해 농사에서 중요합니다. 하우스에서 모종을 키우면 가온(加溫)을 해줘야 해요. 그래서 아침, 저녁으로 하우스 걷어내고 씌워주는 작업도 해야 하고 물을 두 번씩 줘야 해서 일이 많습니다. 올해는 아침에 비닐을 걷어주지 않았더니 모종이 다 익어버렸어요. 3월에는 감자와 고추 심을 밭을 장만하죠. 감자는 3월 중순이나 4월에 심어서 날씨 따라 차이가 좀 있지만 6월 하지에 수확하죠. 고추는 5월에 옮겨 심고요. 10월에 심은 양파도 그즈음에 수확을 하고요. 마늘이나 양파는 월동작물이니까. 12월, 1월이 농한기라고는 해도 한가하지는 않아요. 그 때 집안일이나 미뤄놓은 일을 해야죠.
그럼 배추는 고추를 수확하고 난 밭에 심는 건가요?
아니오. 그러기에는 시간이 안 맞아요. 그렇게 하는 분도 있는데 저는 배추밭은 따로 해요. 함양은 춥고 제가 있는 곳이 해발 4~500m정도 되니까 작물의 작기가 좀 짧아요. 그래서 같이 하기가 조금 힘든 거죠.
양파도 벼가 익는 시기가 늦으니까 양파를 심어야 할 시기와 겹쳐서 이모작이 힘들죠. 함양에서 양파를 이모작하게 되면 문제가 쌀이 맛이 없어요. 아무래도 빨리 수확을 해야 하니까. 반대로 벼를 심으려면 양파도 수확이 빨라야 되잖아요. 그러면 조생종을 심어야 하는 거죠. 사과로 치면 만생종 부사가 추석 때 나오는 조생종 홍로보다 맛있듯이 양파도 만생종이 제일 맛이 좋아요. 만생종 양파를 심으려면 이모작이 안 되는 거죠.
채화석 농부의 작물 선택 기준이 궁금해지는데요. 농업기술센터의 지원이나 주변 농부들의 추천인가요? 아니면 농부의 감에 맡기는지요.
제 기준은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어서’입니다. 지금 하는 거 외에도 다른 시도들을 많이 해봤어요. 지금 짓고 있는 작물들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해오고 있는 거고요. 여기서도 더 줄여야 해요. 벌이면 벌, 고추면 고추 하나만 해서 먹고 살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이것저것 다 하는 거죠.
지금 계약재배중인 양파를 올해까지만 할까 고민하고 있어요. 양파가 심고 뽑을 때까지 기간도 길고 규모가 크니까 사람을 써야 하는 비용이 많이 들어가요. 양파 값은 오르지 않는데 차포 떼고 나면 별로 남는 게 없는 거죠. 제가 시작은 좋은데 마무리를 잘 못하니까 그게 문제이긴 한데 저는 재미있게 농사지으려고 합니다.
감자와 양파는 한살림에서 계약재배를 하는데 고추나 배추는 어떻게 판매하나요?
말씀드렸듯이 배추는 소소하게 농사지어요. 저희 먹고 같이 농사짓는 사람들과 나눠주고 나머지를 판매하는 정도예요. 몇 년간 토종 배추 농사를 계속 지었는데 올해는 병이 와서 안 되는 바람에 급하게 다른 배추를 구해 심었어요. 고추는 전체 5,000포기 중에 3,500포기는 모종으로 내고 1,500포기만 제가 농사짓습니다. 토종씨앗모임에 나눔도 하는데 올해는 고추 농사가 잘 안 되서 나눔도 못했어요.
함양토종씨앗모임 활동을 열심히 한다고 들었습니다. 모든 작물을 토종으로 재배하나요?
한살림 계약재배 작물인 감자와 양파는 토종은 아닙니다. 고추와 배추는 토종으로 농사를 짓고 있고요, 내년에 토종고추를 한살림 계약재배를 해볼까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한살림에서도 토종은 이제 시작하는 단계이고 권장은 하지만 생산량이 그만큼 나오지 않아요. 토종에 대한 관심이 우선 있어야 ‘아, 나도 한번 바꿔보겠다’ 할 텐데 생산자들도 바꾸기가 쉽지는 않죠.
농부들도 토종에 대해 무조건 호의적이진 않은 것 같아요. 기후위기 대응이나 수확량도 그렇고 지금 우리나라의 토양에 맞지 않다는 얘기도 있고요.
사람들이 토종이 ‘맛’이 없어서 사라졌다고 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토종이 왜 사라졌나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규모가 작아서 사라진 것도 있어요. 우리나라 토질 자체가 산성이고 외국, 특히 미국과는 비교가 안돼요. 사람으로 설명하자면 미국 토지가 20대 청년이라고 하면 우리나라는 80대 노인이에요. 그래서 퇴비가 안 들어가면 농작물이 안 돼요. 옛날에는 집에서 퇴비를 만들어서 땅에 넣어가면서 잘 키우려고 했는데 지금은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 버렸으니까 그런 노동을 할 필요까지는 없어졌습니다만.
한때는 맛 상관없이 무조건 큰 게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달라졌잖아요. ‘맛’을 생각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서 토종이 경쟁력이 있다고 봐요. 고추도 당도나 식감의 단계가 있어요. 우리가 고추 본연의 맛을 잘 몰라요. 그런데 그 맛을 찾아내면 얘기가 달라져요.
디지털 음원으로만 음악을 듣는 사람은 그게 전부인줄 알지만 진공관이나 LP의 매력을 알게 되면 그때부터 음악을 듣는 귀가 달라지는 거죠. 그걸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게 문제인거죠. 모두 먹어보고 비교해 보고 토종이 정말 맛이 없다면 도태되는 게 맞아요. 토종을 무조건 고집할 게 아니라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는 한 방은 있어야죠.
토종으로 농사를 잘 지어서 생산량도 많고 뭔가 풍성한 결과를 보여주면서 ‘이것 봐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제 스스로 조금 위축되는 부분이 있어요. 제가 시작은 좋은데 농부로서 게으른 부분이 있어서 마무리가 흐지부지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알면서도 잘 안 고쳐져요(웃음).
채화석 농부가 꽃차로 출하할 말린 금화규 꽃잎을 보여주고 있다.
농기계를 직접 만드신다고요?
제가 손재주가 있는 편입니다. 어릴 때부터 기계 다루는 게 남들보다 몇 배는 뛰어나다고 생각해요. 기계 고치는 걸 좋아하고 그걸 즐기니까 계속 하는 거죠. 돈이 없어서 새로운 농기계를 사지는 못하고 고물상을 뒤지는 게 취미입니다. 거기서 ‘아! 저거다’하는 걸 사와서 필요한 기계를 조합해서 만들죠. 관리기, 예초기, 엔진 톱 같은 거. 우리 같은 소규모 밭농사에는 관리기 하나 있으면 끝나요. 거기다 트랙터까지 있으면 일이 다 되죠.
트랙터는 부산에 있을 때 아주 오래된, 고장 난 걸 한 대 샀어요. 그걸 한 달 동안 다니면서 부속도 구하고 해서 수리했어요. 그걸 함양까지 가지고 왔어요. 같이 농사짓는 모임에서 그걸 가지고 밭도 갈고 했어요. 저는 이앙기, 콤바인 다 있습니다. 콤바인은 비싼 거에 비해 활용하는 기간이 일 년 중 한 달 밖에 안 돼요. 그런데 고장률이 제일 높습니다. 고장 원인도 복합적이고. 그래서 저는 제 것하고 다른 분들 거 까지 해주는 비용을 받아서 일 년 수리비로 써요. 그건 제가 수리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모든 걸 맡겨야 하거든요.
농사만 짓기에 재능이 너무 많은 것 같은데요, 농사가 생업인가요? 다른 일도 하나요?
다른 일도 하지요. 짐 옮기는 일도 하고, 아직 부산에서 하는 일도 있어서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말린 금화규 꽃잎.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은’ 채화석 농부는 다양한 품목에 도전한다.
한살림 계약재배를 하시니 친환경 농사일지를 써야겠네요?
그렇죠. 의무적으로라도 써야죠.
친환경 농사 해보니 어때요?
초창기 선배들은 친환경 운동이라 할 정도로 맨땅에 헤딩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죠. 저도 친환경을 ‘먹거리 운동’으로 생각하는데 사람들을 만나보니까 처음부터 친환경 농사를 짓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하는 농부가 있는 반면에, 철저하게 비즈니스로 접근하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관행농산물보다 가격이 보장되니까요. 지금은 친환경 자재들이 많이 나오고, 농사짓는 마음들도 예전과는 좀 달라진 것 같아요.
채화석 농부가 농사지으면서 제일 어려운 건 어떤 건가요?
제일 어려운 건 농촌에 사람이 없는 거죠. 규모가 있는 일을 하려면 같이 해야 하는데 사람을 구하기가 힘들어요.
여기서 사람은 같이 일할 동료인가요? 손을 보탤 사람들인가요?
둘 다인데요, 처음에 시골로 왔을 때는 여러 농가들과 작목반을 만들어서 어느 규모가 있는 농사를 지어보려고 했는데, 막상 와서 보니까 의외로 텃밭 수준의 농사를 지어요. 혼자 하면 아무래도 규모가 한계가 있으니까 몇 사람이 같이 모여서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같이 할 사람을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 거예요. 뭔가 일을 도모할 사람도 좀 없고 일손도 자체도 없고.
그럼에도 지금 이 하우스에서 공동농사를 짓고 있다고요? 같이 하는 농사에 어려움이 없나요?
저는 농부잖아요. 사실 이 일은 제가 하는 농사일에 하나가 더 추가되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 오는 다른 사람들은 이게 재미인 거예요. 일을 대하는 태도라고 해야 할까요? 그게 저랑은 좀 다르더라고요.
제가 반장이다 보니까 일일이 지시를 할 수 밖에 없는데 누군가는 제가 하는 말을 ‘아! 맞다’라고 받아들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잔소리가 되는 거예요. 제가 속에 안 담아두고 말을 해야 하는 성격이다 보니까 그런 게 조금 힘들어요. 어쩌다 쓴소리를 하게 되면 반응이 ‘재밌자고 하는 건데 뭐 이렇게까지’인거예요. 말은 못했지만 ‘재미는 나도 있어야지’ 하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예전에 벼농사를 같이 지을 때도 벼를 심어놓고 수확할 때까지 한 번도 안 오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게 어떻게 같이 농사짓는 거냐?”고 했더니 바빠서 그렇대요. 그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농사를 잘 못 지어도 농사를 짓고자 하는 마음에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흙 묻은 토란을 햇볕에 말리는 모습
농부로 지내면서 제일 즐거운 순간은 없나요?
저는 농부로서는 매일 즐거워요. 그게 좀 단점이죠. 사람들 대하는데 벽이 없는 편인데다 잘 웃고, 말 많고, 말이 빠르기까지 하니까 가끔 실없는 사람이 될 때가 있어요. 어느 순간 저를 좀 쉽게 본다는 느낌을 받아요.
양봉도 7년 동안 하고 있는데요, 기후위기나 여러 위기로 꿀벌이 사라지면 농작물도 사라진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농사지으면서 기후위기를 실감하나요?
양봉업자 입장으로 얘기하면 꿀 수확량이 많이 줄었죠. 우리나라는 아카시아 꿀을 제일로 치는데 꽃이 필 시기에 갑자기 추워지거나 비가 오면 꿀이 안 나와요. 그러면 망하는 거예요. 이건 어디까지나 업자입장이고요. 벌은 끊임없이 자기 할 일을 해요. 사라지지도 않을 거고요. 수확량이 줄어 양봉업자가 줄어들면 아무래도 벌이 눈에 띄게 줄어들겠죠. 서식지가 사라지니까.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도 기후가 바뀌면서 없던 병충해도 생기잖아요. 그게 제일 큰 문제죠. 날씨가 들쭉날쭉 하니까 농사짓기가 힘이 든 거죠. 신경 쓸 것도 많아지고요. 앞으로 더 힘들어질 거예요. 더 민감하게 대응해야 농사시기를 맞출 수 있게 되겠죠. 고추를 심어놨는데 그동안 하던 방식으로는 제대로 크지가 않아요. 비가 안 오면 물을 대줘야 되고, 하우스가 너무 뜨거우니까 차광막을 설치해서 온도를 낮추는 작업을 해야 하는 거죠. 물리적인 자원과 사람 손이 계속 들어가야 만이 수확이 되니까 시설재배를 하는 사람들은 결국 빈부의 격차가 더 생겨 버려요.
농민회 활동도 하셨죠?
재작년까지 사무국장을 했었는데, 지금은 안 해요. 농민회 활동하면서 토종, 친환경 문제도 같이 결합시키고, 농민회가 지역에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하게 싶었는데 각자 생각하는 방향이 좀 달랐던 것 같아요.
어떻게 달랐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처음에 저희들이 수익사업으로 양배추를 했어요. 생양배추도 팔고 즙도 짜고 했는데 저는 농민회에서 하는 거니까 약을 치지 않고 재배한 양배추로 해야 되지 않겠냐고 했는데 얘기가 잘 안 통하더라고요.
채화석 농부가 토란을 들어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농사는 어떻게 지을 계획인가요?
아내가 들으면 큰일날 테지만 저는 귀농해서 농사를 지으며 큰돈은 벌지 못하지만 생활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내가 농사에 올인해서 돈을 많이 벌어서 저축해야겠다는 생각이 없다보니까 조금 느슨해집니다. 제가 농사 말고도 다른 데 관심이 많고 조금 게을러요. 그래서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돌고 도는 문제이긴 한데 내가 농사를 못 지었다고 ‘아이고 내가 좀 보태줄게’ 하면서 누가 돈을 주는 거 아니잖아요. 그러면 결국 생활 자체가 자꾸 줄어드니까 다른 데 눈이 갈 수밖에 없는 거죠.
농사규모는 조금씩 더 줄이려고 하는데, 올해 400평 밭을 새로 더 빌렸어요. 왜 그러냐면 요즘은 논이나 밭을 빌려는 주는데 계약을 안 해줘요. 계약을 안 해 준다는 건 명의는 주인이 갖고, 농사만 내가 짓는 거죠. 옛날에는 주인이 농사짓는다고 해서 직불금을 탈 수 있었죠. 농사를 안 지어도 농업인으로 등록만 해 놓으면 의료보험료도 반으로 줄어드니까 농지임대 계약을 안 해 주려고 하죠.
지금은 공익직불제가 되면서 전산화 작업이 잘 되어 있고 저도 친환경 농산물 등록이 되어 있으니까 정식계약이 필요해요. 새로 빌린 400평은 계약을 해 준다고 했어요. 밭이 달라지면 몇 년 동안 지었던 친환경 농산물 인증은 이제 무효가 돼 버려서 새 땅에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럼 인증도 다시 받아야 되는 상황이군요. 좀 억울하겠는데요?
억울하지는 않은데… 제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법은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겠다는데 정작 땅을 가진 사람이 그걸 이용하는 거니까. 이런 게 드러나면 농지임대 계약을 하든지, 주인이 직접 농사를 짓든지 하라고 조치를 해요. 모두 잡아내지는 못하더라고요. 그래도 예전에는 논에 누가 농사짓는다고 하면 그대로 인정해줬는데 지금은 직접 나와서 뭘 짓고 있는지 조사를 해요. 예전보다는 조금 더 철저하게, 발로 뛰는 거죠. 트랙터, 관리기, 예초기, 콤바인처럼 농기구에 들어가는 기름은 일정부분 면세가 되거든요, 그걸 또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농촌에 살다보면 그런 일들 많이 봅니다. 맹점이 많죠.
전혀 몰랐던 세계인데요, 얘기 들어보니 지금 농업이나 농업인을 지원하는 사업에도 농업인으로서 하고 싶은 얘기 많을 것 같아요.
정부나 지자체에서 농업에 지원하는 게 많아요. 그래서 농민회에서 예전처럼 싸울 명분이 없어진 게 많아요. 그래서 농부들이 지금 안 뭉쳐져요. 예전에는 뭉쳐서 고함을 질러야만 뭔가 나왔는데 지금은 안 해도 다 지원을 다 해주기 때문에. 물론 큰 덩어리로 봤을 때는 정치적인 이슈가 분명히 있겠지만 일반 농민들은 거기까지는 크게 의식을 안 하는 거죠.
함양도 곧 농민수당을 준다는데 1년에 30만 원이면 한 달에 2만 5천 원 준다는 얘기인데…. 저는 처음에 월 30만원인줄 알았어요(웃음). 그래도 출발이니까 그것도 의미가 있는 거겠죠?
“제가 시작은 잘 하는데 마무리를 잘 못해요.”
시끌벅적했던 인터뷰 내내 채화석 농부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이다. 격이 없고 자유분방한 성격과 달리 사람들과의 관계는 늘 어렵고, 농사에만 집중하기에는 관심사와 재능이 너무 많다. 어쩌면 농촌에서 농부로 살아가기에는 조금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농부, 시작은 창대하고 결과는 미비할지 모르나 누구보다 농사에 진심이다. 토종농산물을 향한 애정과 콤바인, 트랙터 제작기를 들려줄 때는 ‘열정뿜뿜’이다. 농사를 잘 짓는 농부도 좋지만 즐겁고 슬기롭게 농촌생활의 주인공으로 활약해주기를 바란다.
글 이경원
기획, 기록, 연결로 변화를 만드는 일과 사람을 돕는다. 2014년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궁금해서 찾았던 지리산시골살이학교 덕분에 지리산이음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때는 몰랐다. 7년이 지난 2021년 구례 남원 산청 하동 함양을 다니며 ‘농사를 업으로 하는 농부’들의 이야기를 글로 전하게 될 줄은.
사진/진행 이현주
🌱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토종의 가능성을 믿는 채화석 농부는 부산에서 함양으로 귀농한 12년차 농부다. 함양으로 귀농한 선배를 부러워하던 아내의 권유(?)로 귀농을 결심하고 여행 오듯 왔다고 한다.
다품종소량농산물을 친환경으로 재배하는 고집스런 농부이자, 7년차 양봉업자이기도 하다. 토종 배추와 고추 농사를 짓고 감자와 양파는 한살림과 계약재배로 출하한다. 함양토종씨앗모임대표를 맡기도 했다. 자유분방한 농부만큼이나 하우스 작물들이 들쑥날쑥 자라 있다.
함양에서 만난 채화석 농부가 배추밭을 소개해주고 있다.
부산에서 함양으로 귀농했다고 들었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결혼할 때부터 시골로 가자는 얘기는 했어요. 귀농 1년 전에 함양으로 귀촌한 선배네 집을 다녀온 아내가 너무 좋다고 했어요. ‘그래? 그럼 우리도 가자’했죠. 당시에 저는 부산에서 풍물을 하고 있어서 정리하고 1년 후에 갈 테니 아내에게 먼저 가있으라고 했어요. 그런데 집을 구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어요. 어쩌다보니 제가 먼저 함양으로 들어오고 아내가 뒤에 들어왔어요.
귀농·귀촌 교육 없이 무작정 함양으로 온 건가요? 귀농해서 어떤 농사를 짓고 싶었나요?
저는 도시에서도 농사를 지었어요. 시골로 가고 싶은 마음은 늘 있었고, 마침 부산에서 살던 집 앞에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구체적인 농사 계획은 없었어요. 그래서 와서 후회했죠. 지리산 천왕봉을 보면서 ‘내가 왜 왔지?’하면서.
워낙 돌아다니기 좋아하다 보니 귀농도 그냥 놀러 간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논에서 문득 일하다가 천왕봉을 보는 순간 ‘내가 아무 준비 없이 왔구나, 놀러온 게 아니다’ 그때 느꼈죠. 계획 없이 온 걸 후회한 거지 귀농을 후회했던 건 아닙니다.
성격이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마음 가는대로 이것저것 해보는 편입니다. 누가 ‘이거 한번 해 볼래?’ 하면 그걸 다 받아요. 주위에 사람들이 안한다고 하는 건 결국 저한테 와요. 그렇게 하다 보니 늘 일이 많아요. 시골에 와서 보니 외지인에게 주는 땅은 농사지을 만한 땅이 아니에요. 저는 어떻게든 해 봤으니까 지금은 그 경험으로 사람들한테 얘기해줄 게 생겨요. ‘그 땅은 이래서 힘들다. 그러니까 하지마라’
함양에서의 첫 농사는 어땠나요?
처음에는 고추농사를 지었어요. 해보니 고추가 만만한 작물이 아니었어요. 병이 엄청 많더라고요. 키우기는 쉬운데 수확하는 데까지가 엄청 신경을 많이 써야 해요. 물론 농약을 치고 고추농사에만 매달리면 되는데 저는 고추에만 신경을 쓰지 못하니까 수확량이 점점 줄어들더라고요.
부산에서 함양으로 간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당시에 어머니들 대상으로 풍물 수업을 했는데 그 분들 반응이 ‘아이고 서운하다’가 아니라 아이들 교육 어떻게 시키려고 하느냐를 먼저 얘기해요. 결혼을 늦게 해서 아이가 두 살이었는데 다들 그걸 제일 걱정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좋은 대학 안 보내면 시골만큼 좋은데도 없다고. 하하하.
지금 농사는 어떻게 짓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기본적으로 고추농사는 짓고요, 소소하게 배추, 감자, 양파 그리고 벼농사도 합니다. 양봉은 7년 째 하고 있습니다. 농사는 모두 친환경으로 짓습니다. 친환경 인증은 지금은 무농약으로 되어 있지만 저는 처음부터 유기농으로 지었어요. 친환경 인증 받은 밭이 2,500평정도 되고, 논은 1,000평만 인정이 되어 있습니다. 규모로만 따지면 벼농사가 열두 마지기로 비중이 제일 큽니다. 그 다음이 양파와 감자인데 한살림 계약재배를 하고 있어요. 한살림 생산자가 된지 6년째입니다.
배추밭을 배경으로 선 채화석 농부의 모습
그래도 작물이 꽤 많은데요, 1년 농사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1년으로 보면 2월 초에 고추모종을 냅니다. 제 한 해 농사에서 중요합니다. 하우스에서 모종을 키우면 가온(加溫)을 해줘야 해요. 그래서 아침, 저녁으로 하우스 걷어내고 씌워주는 작업도 해야 하고 물을 두 번씩 줘야 해서 일이 많습니다. 올해는 아침에 비닐을 걷어주지 않았더니 모종이 다 익어버렸어요. 3월에는 감자와 고추 심을 밭을 장만하죠. 감자는 3월 중순이나 4월에 심어서 날씨 따라 차이가 좀 있지만 6월 하지에 수확하죠. 고추는 5월에 옮겨 심고요. 10월에 심은 양파도 그즈음에 수확을 하고요. 마늘이나 양파는 월동작물이니까. 12월, 1월이 농한기라고는 해도 한가하지는 않아요. 그 때 집안일이나 미뤄놓은 일을 해야죠.
그럼 배추는 고추를 수확하고 난 밭에 심는 건가요?
아니오. 그러기에는 시간이 안 맞아요. 그렇게 하는 분도 있는데 저는 배추밭은 따로 해요. 함양은 춥고 제가 있는 곳이 해발 4~500m정도 되니까 작물의 작기가 좀 짧아요. 그래서 같이 하기가 조금 힘든 거죠.
양파도 벼가 익는 시기가 늦으니까 양파를 심어야 할 시기와 겹쳐서 이모작이 힘들죠. 함양에서 양파를 이모작하게 되면 문제가 쌀이 맛이 없어요. 아무래도 빨리 수확을 해야 하니까. 반대로 벼를 심으려면 양파도 수확이 빨라야 되잖아요. 그러면 조생종을 심어야 하는 거죠. 사과로 치면 만생종 부사가 추석 때 나오는 조생종 홍로보다 맛있듯이 양파도 만생종이 제일 맛이 좋아요. 만생종 양파를 심으려면 이모작이 안 되는 거죠.
채화석 농부의 작물 선택 기준이 궁금해지는데요. 농업기술센터의 지원이나 주변 농부들의 추천인가요? 아니면 농부의 감에 맡기는지요.
제 기준은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어서’입니다. 지금 하는 거 외에도 다른 시도들을 많이 해봤어요. 지금 짓고 있는 작물들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해오고 있는 거고요. 여기서도 더 줄여야 해요. 벌이면 벌, 고추면 고추 하나만 해서 먹고 살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이것저것 다 하는 거죠.
지금 계약재배중인 양파를 올해까지만 할까 고민하고 있어요. 양파가 심고 뽑을 때까지 기간도 길고 규모가 크니까 사람을 써야 하는 비용이 많이 들어가요. 양파 값은 오르지 않는데 차포 떼고 나면 별로 남는 게 없는 거죠. 제가 시작은 좋은데 마무리를 잘 못하니까 그게 문제이긴 한데 저는 재미있게 농사지으려고 합니다.
감자와 양파는 한살림에서 계약재배를 하는데 고추나 배추는 어떻게 판매하나요?
말씀드렸듯이 배추는 소소하게 농사지어요. 저희 먹고 같이 농사짓는 사람들과 나눠주고 나머지를 판매하는 정도예요. 몇 년간 토종 배추 농사를 계속 지었는데 올해는 병이 와서 안 되는 바람에 급하게 다른 배추를 구해 심었어요. 고추는 전체 5,000포기 중에 3,500포기는 모종으로 내고 1,500포기만 제가 농사짓습니다. 토종씨앗모임에 나눔도 하는데 올해는 고추 농사가 잘 안 되서 나눔도 못했어요.
함양토종씨앗모임 활동을 열심히 한다고 들었습니다. 모든 작물을 토종으로 재배하나요?
한살림 계약재배 작물인 감자와 양파는 토종은 아닙니다. 고추와 배추는 토종으로 농사를 짓고 있고요, 내년에 토종고추를 한살림 계약재배를 해볼까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한살림에서도 토종은 이제 시작하는 단계이고 권장은 하지만 생산량이 그만큼 나오지 않아요. 토종에 대한 관심이 우선 있어야 ‘아, 나도 한번 바꿔보겠다’ 할 텐데 생산자들도 바꾸기가 쉽지는 않죠.
농부들도 토종에 대해 무조건 호의적이진 않은 것 같아요. 기후위기 대응이나 수확량도 그렇고 지금 우리나라의 토양에 맞지 않다는 얘기도 있고요.
사람들이 토종이 ‘맛’이 없어서 사라졌다고 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토종이 왜 사라졌나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규모가 작아서 사라진 것도 있어요. 우리나라 토질 자체가 산성이고 외국, 특히 미국과는 비교가 안돼요. 사람으로 설명하자면 미국 토지가 20대 청년이라고 하면 우리나라는 80대 노인이에요. 그래서 퇴비가 안 들어가면 농작물이 안 돼요. 옛날에는 집에서 퇴비를 만들어서 땅에 넣어가면서 잘 키우려고 했는데 지금은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 버렸으니까 그런 노동을 할 필요까지는 없어졌습니다만.
한때는 맛 상관없이 무조건 큰 게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달라졌잖아요. ‘맛’을 생각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서 토종이 경쟁력이 있다고 봐요. 고추도 당도나 식감의 단계가 있어요. 우리가 고추 본연의 맛을 잘 몰라요. 그런데 그 맛을 찾아내면 얘기가 달라져요.
디지털 음원으로만 음악을 듣는 사람은 그게 전부인줄 알지만 진공관이나 LP의 매력을 알게 되면 그때부터 음악을 듣는 귀가 달라지는 거죠. 그걸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게 문제인거죠. 모두 먹어보고 비교해 보고 토종이 정말 맛이 없다면 도태되는 게 맞아요. 토종을 무조건 고집할 게 아니라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는 한 방은 있어야죠.
토종으로 농사를 잘 지어서 생산량도 많고 뭔가 풍성한 결과를 보여주면서 ‘이것 봐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제 스스로 조금 위축되는 부분이 있어요. 제가 시작은 좋은데 농부로서 게으른 부분이 있어서 마무리가 흐지부지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알면서도 잘 안 고쳐져요(웃음).
채화석 농부가 꽃차로 출하할 말린 금화규 꽃잎을 보여주고 있다.
농기계를 직접 만드신다고요?
제가 손재주가 있는 편입니다. 어릴 때부터 기계 다루는 게 남들보다 몇 배는 뛰어나다고 생각해요. 기계 고치는 걸 좋아하고 그걸 즐기니까 계속 하는 거죠. 돈이 없어서 새로운 농기계를 사지는 못하고 고물상을 뒤지는 게 취미입니다. 거기서 ‘아! 저거다’하는 걸 사와서 필요한 기계를 조합해서 만들죠. 관리기, 예초기, 엔진 톱 같은 거. 우리 같은 소규모 밭농사에는 관리기 하나 있으면 끝나요. 거기다 트랙터까지 있으면 일이 다 되죠.
트랙터는 부산에 있을 때 아주 오래된, 고장 난 걸 한 대 샀어요. 그걸 한 달 동안 다니면서 부속도 구하고 해서 수리했어요. 그걸 함양까지 가지고 왔어요. 같이 농사짓는 모임에서 그걸 가지고 밭도 갈고 했어요. 저는 이앙기, 콤바인 다 있습니다. 콤바인은 비싼 거에 비해 활용하는 기간이 일 년 중 한 달 밖에 안 돼요. 그런데 고장률이 제일 높습니다. 고장 원인도 복합적이고. 그래서 저는 제 것하고 다른 분들 거 까지 해주는 비용을 받아서 일 년 수리비로 써요. 그건 제가 수리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모든 걸 맡겨야 하거든요.
농사만 짓기에 재능이 너무 많은 것 같은데요, 농사가 생업인가요? 다른 일도 하나요?
다른 일도 하지요. 짐 옮기는 일도 하고, 아직 부산에서 하는 일도 있어서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말린 금화규 꽃잎.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은’ 채화석 농부는 다양한 품목에 도전한다.
한살림 계약재배를 하시니 친환경 농사일지를 써야겠네요?
그렇죠. 의무적으로라도 써야죠.
친환경 농사 해보니 어때요?
초창기 선배들은 친환경 운동이라 할 정도로 맨땅에 헤딩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죠. 저도 친환경을 ‘먹거리 운동’으로 생각하는데 사람들을 만나보니까 처음부터 친환경 농사를 짓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하는 농부가 있는 반면에, 철저하게 비즈니스로 접근하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관행농산물보다 가격이 보장되니까요. 지금은 친환경 자재들이 많이 나오고, 농사짓는 마음들도 예전과는 좀 달라진 것 같아요.
채화석 농부가 농사지으면서 제일 어려운 건 어떤 건가요?
제일 어려운 건 농촌에 사람이 없는 거죠. 규모가 있는 일을 하려면 같이 해야 하는데 사람을 구하기가 힘들어요.
여기서 사람은 같이 일할 동료인가요? 손을 보탤 사람들인가요?
둘 다인데요, 처음에 시골로 왔을 때는 여러 농가들과 작목반을 만들어서 어느 규모가 있는 농사를 지어보려고 했는데, 막상 와서 보니까 의외로 텃밭 수준의 농사를 지어요. 혼자 하면 아무래도 규모가 한계가 있으니까 몇 사람이 같이 모여서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같이 할 사람을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 거예요. 뭔가 일을 도모할 사람도 좀 없고 일손도 자체도 없고.
그럼에도 지금 이 하우스에서 공동농사를 짓고 있다고요? 같이 하는 농사에 어려움이 없나요?
저는 농부잖아요. 사실 이 일은 제가 하는 농사일에 하나가 더 추가되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 오는 다른 사람들은 이게 재미인 거예요. 일을 대하는 태도라고 해야 할까요? 그게 저랑은 좀 다르더라고요.
제가 반장이다 보니까 일일이 지시를 할 수 밖에 없는데 누군가는 제가 하는 말을 ‘아! 맞다’라고 받아들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잔소리가 되는 거예요. 제가 속에 안 담아두고 말을 해야 하는 성격이다 보니까 그런 게 조금 힘들어요. 어쩌다 쓴소리를 하게 되면 반응이 ‘재밌자고 하는 건데 뭐 이렇게까지’인거예요. 말은 못했지만 ‘재미는 나도 있어야지’ 하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예전에 벼농사를 같이 지을 때도 벼를 심어놓고 수확할 때까지 한 번도 안 오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게 어떻게 같이 농사짓는 거냐?”고 했더니 바빠서 그렇대요. 그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농사를 잘 못 지어도 농사를 짓고자 하는 마음에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흙 묻은 토란을 햇볕에 말리는 모습
농부로 지내면서 제일 즐거운 순간은 없나요?
저는 농부로서는 매일 즐거워요. 그게 좀 단점이죠. 사람들 대하는데 벽이 없는 편인데다 잘 웃고, 말 많고, 말이 빠르기까지 하니까 가끔 실없는 사람이 될 때가 있어요. 어느 순간 저를 좀 쉽게 본다는 느낌을 받아요.
양봉도 7년 동안 하고 있는데요, 기후위기나 여러 위기로 꿀벌이 사라지면 농작물도 사라진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농사지으면서 기후위기를 실감하나요?
양봉업자 입장으로 얘기하면 꿀 수확량이 많이 줄었죠. 우리나라는 아카시아 꿀을 제일로 치는데 꽃이 필 시기에 갑자기 추워지거나 비가 오면 꿀이 안 나와요. 그러면 망하는 거예요. 이건 어디까지나 업자입장이고요. 벌은 끊임없이 자기 할 일을 해요. 사라지지도 않을 거고요. 수확량이 줄어 양봉업자가 줄어들면 아무래도 벌이 눈에 띄게 줄어들겠죠. 서식지가 사라지니까.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도 기후가 바뀌면서 없던 병충해도 생기잖아요. 그게 제일 큰 문제죠. 날씨가 들쭉날쭉 하니까 농사짓기가 힘이 든 거죠. 신경 쓸 것도 많아지고요. 앞으로 더 힘들어질 거예요. 더 민감하게 대응해야 농사시기를 맞출 수 있게 되겠죠. 고추를 심어놨는데 그동안 하던 방식으로는 제대로 크지가 않아요. 비가 안 오면 물을 대줘야 되고, 하우스가 너무 뜨거우니까 차광막을 설치해서 온도를 낮추는 작업을 해야 하는 거죠. 물리적인 자원과 사람 손이 계속 들어가야 만이 수확이 되니까 시설재배를 하는 사람들은 결국 빈부의 격차가 더 생겨 버려요.
농민회 활동도 하셨죠?
재작년까지 사무국장을 했었는데, 지금은 안 해요. 농민회 활동하면서 토종, 친환경 문제도 같이 결합시키고, 농민회가 지역에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하게 싶었는데 각자 생각하는 방향이 좀 달랐던 것 같아요.
어떻게 달랐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처음에 저희들이 수익사업으로 양배추를 했어요. 생양배추도 팔고 즙도 짜고 했는데 저는 농민회에서 하는 거니까 약을 치지 않고 재배한 양배추로 해야 되지 않겠냐고 했는데 얘기가 잘 안 통하더라고요.
채화석 농부가 토란을 들어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농사는 어떻게 지을 계획인가요?
아내가 들으면 큰일날 테지만 저는 귀농해서 농사를 지으며 큰돈은 벌지 못하지만 생활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내가 농사에 올인해서 돈을 많이 벌어서 저축해야겠다는 생각이 없다보니까 조금 느슨해집니다. 제가 농사 말고도 다른 데 관심이 많고 조금 게을러요. 그래서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돌고 도는 문제이긴 한데 내가 농사를 못 지었다고 ‘아이고 내가 좀 보태줄게’ 하면서 누가 돈을 주는 거 아니잖아요. 그러면 결국 생활 자체가 자꾸 줄어드니까 다른 데 눈이 갈 수밖에 없는 거죠.
농사규모는 조금씩 더 줄이려고 하는데, 올해 400평 밭을 새로 더 빌렸어요. 왜 그러냐면 요즘은 논이나 밭을 빌려는 주는데 계약을 안 해줘요. 계약을 안 해 준다는 건 명의는 주인이 갖고, 농사만 내가 짓는 거죠. 옛날에는 주인이 농사짓는다고 해서 직불금을 탈 수 있었죠. 농사를 안 지어도 농업인으로 등록만 해 놓으면 의료보험료도 반으로 줄어드니까 농지임대 계약을 안 해 주려고 하죠.
지금은 공익직불제가 되면서 전산화 작업이 잘 되어 있고 저도 친환경 농산물 등록이 되어 있으니까 정식계약이 필요해요. 새로 빌린 400평은 계약을 해 준다고 했어요. 밭이 달라지면 몇 년 동안 지었던 친환경 농산물 인증은 이제 무효가 돼 버려서 새 땅에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럼 인증도 다시 받아야 되는 상황이군요. 좀 억울하겠는데요?
억울하지는 않은데… 제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법은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겠다는데 정작 땅을 가진 사람이 그걸 이용하는 거니까. 이런 게 드러나면 농지임대 계약을 하든지, 주인이 직접 농사를 짓든지 하라고 조치를 해요. 모두 잡아내지는 못하더라고요. 그래도 예전에는 논에 누가 농사짓는다고 하면 그대로 인정해줬는데 지금은 직접 나와서 뭘 짓고 있는지 조사를 해요. 예전보다는 조금 더 철저하게, 발로 뛰는 거죠. 트랙터, 관리기, 예초기, 콤바인처럼 농기구에 들어가는 기름은 일정부분 면세가 되거든요, 그걸 또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농촌에 살다보면 그런 일들 많이 봅니다. 맹점이 많죠.
전혀 몰랐던 세계인데요, 얘기 들어보니 지금 농업이나 농업인을 지원하는 사업에도 농업인으로서 하고 싶은 얘기 많을 것 같아요.
정부나 지자체에서 농업에 지원하는 게 많아요. 그래서 농민회에서 예전처럼 싸울 명분이 없어진 게 많아요. 그래서 농부들이 지금 안 뭉쳐져요. 예전에는 뭉쳐서 고함을 질러야만 뭔가 나왔는데 지금은 안 해도 다 지원을 다 해주기 때문에. 물론 큰 덩어리로 봤을 때는 정치적인 이슈가 분명히 있겠지만 일반 농민들은 거기까지는 크게 의식을 안 하는 거죠.
함양도 곧 농민수당을 준다는데 1년에 30만 원이면 한 달에 2만 5천 원 준다는 얘기인데…. 저는 처음에 월 30만원인줄 알았어요(웃음). 그래도 출발이니까 그것도 의미가 있는 거겠죠?
“제가 시작은 잘 하는데 마무리를 잘 못해요.”
시끌벅적했던 인터뷰 내내 채화석 농부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이다. 격이 없고 자유분방한 성격과 달리 사람들과의 관계는 늘 어렵고, 농사에만 집중하기에는 관심사와 재능이 너무 많다. 어쩌면 농촌에서 농부로 살아가기에는 조금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농부, 시작은 창대하고 결과는 미비할지 모르나 누구보다 농사에 진심이다. 토종농산물을 향한 애정과 콤바인, 트랙터 제작기를 들려줄 때는 ‘열정뿜뿜’이다. 농사를 잘 짓는 농부도 좋지만 즐겁고 슬기롭게 농촌생활의 주인공으로 활약해주기를 바란다.
글 이경원
기획, 기록, 연결로 변화를 만드는 일과 사람을 돕는다. 2014년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궁금해서 찾았던 지리산시골살이학교 덕분에 지리산이음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때는 몰랐다. 7년이 지난 2021년 구례 남원 산청 하동 함양을 다니며 ‘농사를 업으로 하는 농부’들의 이야기를 글로 전하게 될 줄은.
사진/진행 이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