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 실패가 두려워서 시도하지 못하거나 작은 실패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초보 농부
- 정원구 농부와 함께 남원 친환경 복숭아 작목반을 만들고 싶거나 가입하고 싶은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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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딴농장 정원구 대표는 2015년 남원으로 귀농한 7년차 농부다.
자칭 ‘야무진 농사꾼. 꿋꿋한 농사꾼’으로 2017년 12월부터 친환경으로 복숭아 농사를 시작했다. ‘스포츠 마케팅 전문기획자에서 복숭아 농부로 변신’이라는 약간은 진부한 서사의 언론기사보다 귀농 첫해부터 블로그에 꼼꼼하게 기록한 농부의 귀농일지가 더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귀농 후 지금까지 농한기에는 사과, 버섯, 딸기 농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정원구 농부를 만났다. “내년에 바꿀 거긴 한데…….” 얘기하며 명함을 건네는 농부에게 이유를 물어보지 않았다면 그는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남원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원구 농부
내년에 왜 명함을 바꾸는 건가요?
친환경 무농약 복숭아에서 유기농 복숭아로 인증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명함도 바꿔야 합니다. 이제 완전히 유기농이 됩니다.
축하합니다! 유기농 복숭아를 재배하는, 야무진 농사꾼 정원구 농부 소개 부탁합니다.
어쩌다 귀농해서, 어쩌다 복숭아를 선택했고 어쩌다 보니 남들이 하지 말라는 친환경농사까지 짓고 있는 정원구입니다. 야무진 농사꾼, 꿋꿋한 농사꾼은 딴딴농장을 만들며 스스로에게 한 다짐이자 약속이기도 합니다.
농사를 짓고 싶어 남원으로 내려왔고, 지난 7년을 뒤돌아보니 재밌게 농사짓고 살았어요. 어제 저희 둘째 아들이 그러더라고요. 아빠는 농사짓는 거 재미있어 하는 것 같다고. 자기도 농부가 될 거래요. 아직 1학년이라(웃음). 그래서 “아빠가 쉽게 널 농사 시킬 거 같으냐? 아직 멀었어.”라고 했죠.
아들만 넷이라고요.
네. 큰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그다음 8살, 6살, 4살입니다. 두 살 터울로 서울에서 둘, 남원에서 둘을 낳았어요. 아들 넷 키우다 보니 아내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어요. 하하하.
어쩌다 귀농했다지만 그래도 계기가 있었을 것 같아요.
인생은 누구나 똑같이 한 번 살잖아요. 저는 제 삶을 4쿼터로 나눴어요. 지금 저는 3쿼터입니다. 1쿼터는 누구나 비슷하게 학교 다니는 20살 정도까지라고 봤고, 2쿼터는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했던 것 같아요. 세 번째 쿼터는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고 건강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었어요. 그게 농업이더라고요. 마흔 살 이후에 농사지으면서 내가 사장이 되면 가능할 거라 생각했어요.
스포츠 마케터로 직장 생활 10년 하고 서른다섯 살에 창업을 할까, 좀 일찍 농사지으러 내려갈까 고민했어요. 그런데 왠지 창업해서 잘 되면 내려가기 싫을 것 같고, 잘 안 되면 있는 돈마저 까먹고 내려가게 될 것 같은 거예요. 지금 내가 좋아하는 일은 언제든지 또 할 수 있으니까 먼저 내려가자 해서 오게 됐죠.
계획보다 먼저 시작된 3쿼터 현재 스코어는 어떤가요.
돈은 정말 못 벌었습니다. 잘 버텼다고만 생각해요. 지금까지. 다행히 올해가 저에게는 희망의 해였어요.
정원구 농부의 배우자와 네 아들 ⓒ정원구
‘희망의 해’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만, 귀농정착기부터 들어볼게요.
농사짓고 싶어서 땅도 없이 무작정 내려왔어요. 농사교육도 내려와서 받았고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어서 원래 복숭아도 안 먹었어요. 어쩌다 복숭아를 하게 되었다고 한 것도 복숭아 농사를 짓겠다가 아니라 저희보다 조금 일찍 귀농한 장인어른이 복숭아를 하시니까 그냥 하게 된 거예요.
귀농 후 처음 2년 동안은 아르바이트만 다녔어요.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그런데 계속 그렇게만 살 수 없잖아요. 어디서 뭘 하면 좋을지 농사지을 농장과 작물을 진짜 열심히 찾았어요. 그런데 제가 2년 동안 그나마 봤던 게 복숭아였어요. ‘그럼 복숭아를 해보자’ 했죠. 여담이지만 제가 복숭아 알레르기는 없는 것 같아요. 정확하게 확인된 건 아니지만 농약 알레르기가 있는 것 같아요.
아무튼, 학연, 지연은 물론이고 정보도 없이 2015년에 내려와서 2017년부터 정식으로 복숭아 농사를 짓기 시작했어요. 진짜 맨땅에 헤딩하듯. 저희 부모님은 간혹 그런 말씀을 하시죠. 이왕 갈 거 임실 갔으면 땅이라도 있지 않았냐고(웃음). 부모님 고향이고 할머니가 아직 임실에 살고 계시거든요. 그런데 거긴 정말 산골짜기예요. 그래서 아내를 설득할 자신이 없었어요.
여기가 좋았던 이유는 딱 한 가지였어요. 남원이 도농지역이라는 거. 시골이지만 집에서 시내도 가깝고 무엇보다 마트가 가까워요. 서울에서도 마트는 차타고 가야하잖아요. 그리고 아내를 설득했죠. ‘나는 남원 가면 아는 사람 한명도 없는데, 너는 부모님이 옆에 계시지 않느냐’고. 그렇게 그냥 내려왔어요.
복숭아 농장은 어떻게 조성했나요?
복숭아 농사는 귀농 2년 후에 시작했지만 내려와서 서울에서 살던 집 전세금으로 산을 1만 평 샀어요. 호두농사 지으려고요. 당시에는 작물은 무조건 심으면 다 잘 자라는 줄 알았어요. 귀농인들의 착각이죠. 장인어른과 복숭아 농사를 같이 짓고, 복숭아 수확이 끝나면 호두를 수확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그 산이 돌산이었어요. 흙이 아니라. 땅을 박박 긁어가면서 겨우 구덩이 파서 나무를 심었는데 결국 다 죽었어요. 뿌리를 못 내리니까. 흙이 아니라 돌인데 모르니까 그냥 심었던 거예요.
‘어, 이건 아닌 것 같다’ 싶었어요. 다시 아르바이트 열심히 했죠. 시간이 좀 지나니까 이렇게는 안 될 것 같았어요. 그 산은 쳐다보지 않고 다시 농사지을 땅을 알아보기 시작했죠. 지금은 6천 평에 400주 조금 넘는 규모로 농사짓고 있습니다. 지금 이 농사도 감당을 못하는데 산까지는 도저히 엄두가 안 나요.
농장을 소개하고 있는 정원구 농부의 모습
그럼 복숭아 농사는 6천 평 규모로 짓고 있는 거군요.
네. 송동면이 남원에서 복숭아로 제일 유명한 지역이에요. 주작물이죠. 거기에 임대한 3천 평이 있고,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집 뒷밭 3천 평도 복숭아 농장입니다. 이 땅은 제가 살던 집주인이 내 놨는데 조금 비싸기는 했지만 저희 할머니가 웃돈을 주고라도 사야 한다고 하셨어요. 길도 가깝고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이 이렇게 큰 덩어리로 쉽게 나오지 않는대요. 그래서 샀죠. 지금 보니 할머니 말씀 듣고 사길 잘했다 싶어요. 농사를 지어보니 알겠더라고요.
송동 농장은 조생종 위주로 심어서 7월 20일이면 수확이 끝나요. 그러면 저희 집으로 넘어와서 수확할 수 있게 품종을 심어놨어요. 농장 두 군데를 왔다갔다 농사를 짓다보면 장비가 두 배가 들어요. 삽자루를 사더라도 두개씩 사게 돼요. 그동안 호스 끌고 다니면서 손으로 약을 치다가 올해 처음으로 장비를 한 대 샀거든요. 만약에 작은 규모로 여러 군데 나눠져 있었으면 어떻게 농사지었을까 싶어요.
귀농 초기 비싼 수업료 치렀지만 배움이 있었네요.
저는 실패를 많이 한 농부예요. 그런데 그걸 별로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막 저지르고 다니는데 XX놈이라는 소리도 들어요. 나무는 바로바로 수확이 안 되잖아요. 심고 3년은 있어야 하는데 먹고 살아야 되니까 1천만 원 대출 받아서 양파농사를 지었다 망한 경험도 있어요. 지금도 원금은 못 갚고 이자만 계속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경험으로 내가 배운 게 더 많고, 귀농한 분들 만나거나 어디 가서 얘기할 기회가 생기면 현실적인 조언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귀농한 분들 중에 은근히 고집 센 분들 많거든요. ‘그래? 너 그렇게 해 봐. 나 그렇게 해서 망했어’ 라고 얘기해주면 그제야 조금 고민을 하시더라고요.
귀농한 분들은 이상하게 친환경을 고집해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양파 농사로 천만 원 날렸을 때 제초제도 안하면서 투명비닐을 씌웠어요. 그게 좋다고 하니까. 그런데 그게 비닐하우스 효과가 된 거죠. 양파보다 풀이 더 잘 자랐어요. 1천 4백 평에 양파를 심었는데 풀을 뽑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어림도 없었어요. 어쨌든 실패 속에서 저는 얻는 게 있었으니까 그게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오히려 좋은 기회들이 많이 생겼다고 생각해요.
정원구 농부가 농사정보를 주고받는 복숭아 어벤져스가 있다고요.
2017년에는 책 보고 농사를 지었어요. 복숭아 농사 책이 아니라 장인어른이 갖고 있던 농업기술센터에서 나온 10장 내외 유인물 같은 거였는데, 그 얇은 책자를 보면서 복숭아 전지를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하고 멍청했죠. 그 다음 해에 농업기술센터에서 하는 교육받으면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아 혹시 그 분들이 피치파이브인가요? 기사에서 본 것 같아요.
네. 지금은 7명이 모이거든요. 그 중에서도 지리산이음에 절 소개도 해주었던 방극완 형님이 옆에서 되게 많이 도와주셨죠. 맨날 농장에 찾아와서 ‘이건 이렇게 해야 한다, 저건 저렇게 해라’고 얘기하는데 처음에는 엄청 불편했어요. 내 건 내가 해야 된다는 생각이 있어서 좀 안 왔으면 좋겠더라고요(웃음). ‘안 도와줘도 돼. 내가 알아서 할게’ 했더니 그 형님이 ‘내가 너를 1년만 먼저 알았어도 나무가 저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라고 얘기하더라고요.
복숭아는 가지를 조금씩 당겨가면서 나무를 Y자 모양으로 만들어가면서 키워야 해요. 저는 모르니까 두꺼운 가지를 다 잘라버렸어요. 지금 송동농장에서 키우는 나무들이 저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죠.
나무와 농부가 실패를 겪으며 같이 성장한 거라고 생각해야겠네요.
네. 그래서 되게 고마워요. 나무들한테 혼잣말로 얘기하죠. ‘난 여기를 농장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아. 여기는 너희들을 위한 연구소야’라고(웃음). 지금 나무들이 나이는 7년, 8년 되는데 고생을 엄청 해서 다른 농장의 같은 나이 나무들보다 많이 작아요. 그래서 저는 ‘고맙다.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고 해요.
복숭아 과실에 봉지를 씌우는 작업 ⓒ정원구
친환경, 이제 완전 유기농으로 인증을 받게 되었는데 그동안 농사짓기 힘들지는 않습니까? 복숭아는 벌레도 많이 생기잖아요.
가끔 ‘어떻게 아직도 친환경을 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는데 저는 처음부터 친환경으로 농사지어서 그 과정이 전혀 번거롭지 않았어요. 송동 농장에서 제가 직접 살충제 만들어서 뿌리는 걸 본 분들이 ‘나는 귀찮아서 그렇게 못 한다. 그냥 농약상 가서 약 사서 하면 되는 걸’ 얘기해요. 저는 처음부터 그렇게 했으니까 그게 번거롭다는 생각을 안 해요. 오히려 재밌어요. 그리고 나무들을 위해서 이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서울에서는 먹고 살기 쉬운가요? 아무것도 안 하고 버튼 하나 눌러서 돈 버는 건 아니잖아요.
복숭아는 유기농 묘목이 따로 있나요? 모종 같은 경우는 다르다고 들었는데 묘목은 유기농 묘목을 따로 판매하는 곳을 못 본 것 같아요.
저는 묘목을 주로 사서 심고요, 일부 품종들은 접을 붙이기도 하죠. 처음에는 실패율이 높은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접을 붙였죠. 요즘은 저도 저를 안 믿어서 가급적이면 사다 심으려고 하는데 필요한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접을 붙이기도 합니다(웃음).
저희처럼 복숭아 잘 모르는 사람도 알고 있는 품종이 꽤 되는데요, 딴딴농장은 몇 종이나 키우고 있나요?
매우 많죠. 남원에는 그린황도가 제일 많은 편이에요. 마침 제가 엊그제 세어 봤는데요. 저희 농장에 심어진 복숭아나무가 품종 수로는 한 17~18개 되는 것 같아요. 초반에는 소비자들에게 일일이 품종을 설명했는데 다들 잘 모르시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황도, 백도, 딱딱이, 말랑이. 딱 이 정도로만 얘기해요. 그게 서로 편해요. 드셔보고 맛있으면 그 다음 해에 ‘그때 먹었던 복숭아 주세요’ 라고 연락을 주십니다. 복숭아를 엄청 좋아하시는 분들은 ‘제가 먹었던 게 도대체 어떤 거냐’고 물어보고 그 품종을 기억했다가 계속 주문하시죠. 일반적으로 그런 경우는 흔치 않아요.
그럼 딴딴농장의 ‘엉덩이가 빨간 복숭아’도 특별한 품종은 아니겠네요?
하하하 네. 복숭아가 익으면 빨개지잖아요. 거기서 착안해서 제가 딴딴농장 복숭아 브랜드로 만들고 싶어서 해본 거예요. 저는 브랜딩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농장명이 없을 때는 그냥 ‘친환경 복숭아 합니다’ 하고 다녔어요. 그러다 재작년인가 농장이름을 많이 고민했어요. 부르기 쉽고 한번 들으면 절대 안 까먹는 이름이면 좋겠는데 이것저것 지어서 불러 봐도 귀에 잘 안 들어오는 거예요. 뭐가 좋을까 뭐가 좋을까 생각하다 어느 날 ‘딴딴하다’를 검색했는데 ‘야무지다. 간단하다의 전라도 지방의 말’이라고 나오는 거예요. 이거 되게 좋다 싶었어요. ‘나는 남원에서 야무지게 농사짓고 싶으니까 농장이름도 딴딴농장으로 하자’ 했죠.
정말 잘 지은 이름입니다. 부르기 쉽고 들으면 절대 잊어버리지도 않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정원구 농부와도 잘 어울리고요.
스스로 나의 길, 나의 나무, 나의 농장에 가치를 부여하고 인정해주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요즘 체험 농장을 구상하고 있는데 단발성 수확 체험이 아닌 우리 농장만의 이야기가 있는 체험농장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남들보다 복숭아 잘 키워서 많이 수확하고 돈 많이 벌어야지 보다는 농장에 온 분들에게 한 시간 동안 농장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면 그게 더 재밌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렇게 사람들이 찾아와주고 알아주는 농장을 만들고 싶습니다.
복숭아는 묘목을 심으면 수확은 몇 년 후에 할 수 있나요?
복숭아는 올해 나무를 심으면 내년에도 딸 수는 있어요. 그런데 좀 작죠. 열매가 달려 있을 때는 나무가 영양생장보다 생식생장을 더해요. 그래서 가급적이면 2~3년 동안 나무만 더 키우는 게 좋아요. 눈일 때 밀어버리기도 하고, 꽃 피었을 때 훑어버리기도 하고. 그래서 나무가 영양생장으로 더 클 수 있게.
제가 굉장히 실패를 많이 했다고 그랬잖아요. 송동 농장은 제가 처음 갔을 때 그렇게 큰 나무들이 아니었어요.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그 작은 나무에 열매를 무지하게 많이 달았던 거예요. 그래서 나무들이 엄청 고생했죠. 지금 집 뒤 농장에 심은 나무들은 제가 조금 알고 키우니까 심은 지 만 2년이 안되었는데 그때보다 훨씬 좋은 나무들이 많아요.
사람처럼 나무도 어릴 때 제대로 키워놓지 못하면 나중에 잘 안 커요. 어느 순간이 넘어가면 아무래도 힘들어져요. 그래서 어느 정도 키워놓고 열매를 달게 하죠. 지금 농장도 내년에 열매를 달아도 되지만 4~5개씩만 달고 나머지는 좀 더 키우고 나서 제대로 열매를 달자 이런 생각을 갖고 있어요.
복숭아 농사는 몇 월부터 시작되는 거라고 볼 수 있나요?
1년 내내 짓는 거죠. 모든 농사가 그렇잖아요.
저도 처음에는 ‘수확하고 나면 열매도 없는데 끝이지’ 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가을에 바빠야 봄에 좀 편해져요. 나무의 생리를 봤을 때 여름에 수확하고 나면 열매가 떨어지기 시작하니까 가지들이 막 쫙쫙 커요. 가지들이 올라오면 햇빛이 잘 들어가게끔 적심을 해줘야 해요. 이 가지들을 안 잘라주면 얘들이 미친 듯이 막 올라가서 쭉쭉 위로 서요. 그럼 밑에 가지들에 그늘이 생겨서 가지로서 역할을 못하고 말라 죽어요. 그러니까 여름에 바빠야 돼요. 복숭아는 올해 나온 가지가 내년에 열매를 달아요. 수확하고 농장에 안 가면 그런 작업을 못하는 거죠. 수확 후부터 바로 열심히 이 작업을 해주면 가을에는 일을 많이 안 해도 되더라고요.
‘수확은 끝나도 농사는 끝난 것이 아니다’군요.
제가 옛날에는 아르바이트를 마음 편하게 갔어요. 아무 것도 몰랐으니까. 요즘에는 내가 아르바이트를 가면 이 일을 못 하니까 그 안에 2~3일 동안 빡세게 돌아다니면서 해요. 갔다 오자마자 못했던 일을 또 하죠. 마침 지난주[11월 초]에 아르바이트가 끝나서 이번 주 부터는 퇴비 나르고 나무에 지주 세우고, 올해 또 새로운 나무들을 심으려고요.
겨울이 되면 동계전지작업을 하죠. 그런데 제가 남들보다 실패한 게 많다보니까 아직까지는 먹고 사는 게 100% 안정적이지는 않아요. 올해 처음으로 복숭아 농사가 괜찮았거든요. 이정도면 우리 가족 먹고 사는 데까지는 문제없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그런데 귀농자금을 받다보니까 내후년 2월부터는 원금과 이자를 상환해야 하는 시기예요. 딱 1년만 뒤로 미뤘으면 좋겠는데 안 된대요. 그 부분이 조금 걸리긴 한데 일단 한번 가보자 하고 있어요.
겨울에 전지작업 하면서 아는 형님께 부탁해서 딸기농장 아르바이트를 오전만 하려고 해요. 아르바이트에만 집중하니까 농사가 안 되더라고요. 돈이 많이 필요한 건 아니고 어차피 겨울에는 아침 10시 전에는 일을 나간다 한들 발이 시려서 일을 못 하거든요. 오전에 아르바이트하고 오후에 볕이 나면 3~4시간씩, 4월까지 쫙 펼쳐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봉지에 싼 복숭아 ⓒ정원구
농사는 지금 혼자 짓는 거죠?
아직까지는 사람들 안 쓰고 혼자서 다 하고 있어요. 복숭아 하는 분들하고 얘기하면 저는 안 끼워줘요. 양이 너무 적다고. 복숭아 농사 하는 분들이 “너 올해 몇 장 쌌어?” 이런 얘기를 해요. 복숭아 봉지 몇 장 쌌냐는 건데 저는 올해 2만 장 조금 넘게 쌌어요. 혼자 가위질 해가면서 쌀 수 있을 정도예요. 그 모임에서 복숭아 농사 좀 짓는다는 분들은 적어도 7만 장은 싸요. 봉지에 안 싸는 품종들도 있는데 그걸 제외하고도 7만 장정도 쌌다고 해요. 거기에 비하면 저는 엄청 조금 싼 거죠.
올해가 ‘희망의 해’였다고도 했는데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그동안 진짜 생산을 못 했어요. 2020년에 2.5kg 기준으로 200박스 정도 수확했거든요. 비싸게 팔아서 한 박스 5만원에 판다고 해도 200박스면 1천만 원이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팔지 않았으니까 돈은 그보다 못 벌었다는 얘기예요. 그런데 ‘내가 할 수 있겠구나’ 자신감이 생겼어요.
2019년에 제 나무들에게 코로나가 닥쳤어요. 천공병이라는 세균성구멍병인데요, 눈에는 안 보이는데 계속 확산이 되는 거예요. 저는 벌레는 별로 신경을 안 써요. 친환경이니까. 벌레가 나오면 얘기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균은 좀 심각해요. 어떤 약을 써야 되는지도 모르고 항상 천연 약재만 쓰다가 그때부터 공부를 했죠. 그 이후[2020년]에 균을 죽인다기보다 다양한 균을 더 넣어줬어요. 나쁜 균이 활성화 못하게 미생물 유황, 미생물 유황 이렇게 돌아가면서 계속 쳤어요. 그러다보니 지금의 희망이 보였습니다.
복숭아 농사 3년차였던 2019년에는 수확을 어떻게 했냐면 그냥 다 바닥에 떨어뜨렸어요. 그 해에는 20박스 정도 했어요. 그래서 친환경은 이제 접어야겠다고 했을 때 농작물재해보험이 저를 살려줬어요. 내가 절대로 수확해서 벌 수 없는 금액을 보험금으로 받은 거예요. ‘이건 친환경을 계속 하라고 하나님이 나한테 기회를 주신 거다’ 생각했어요. 그렇게 해서 2020년에 200박스 정도가 된 거예요. 확신을 갖고 계속 할 수 있게 된거죠.
저는 농사는 사람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몸속에도 잘은 모르지만 장내에 유익한 미생물도 있고 유해한 미생물도 있잖아요. 다만 비율에서 유익이 조금 더 많으면 우리가 평온한 것처럼 농사에서도 좋은 균들을 자꾸 넣어주고 다양한 균이 많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올해 1,000박스가 나왔어요. 작년보다 복숭아 봉지를 3~4,000장은 더 쌌어요. 너무 많이 쌌다 싶어서 무리하게 숫자를 안 늘렸는데도 1,000박스를 한 거예요. 올해 첫 수확하기 전날 엄청 긴장되더라고요. ‘올해는 얼마나 될까?’ 긴장하고 있는데 담양농협에서 전화가 왔어요. 친환경센터가 있는데 저희 복숭아를 받고 싶대요. 학교급식도 있고 다양한 몰을 운영하는데 고객층이 임산부 바우처, 친환경 바우처로 구매하는 분들이라 가격에 대한 걱정이나 부담감도 없다고 품질만 좋으면 제가 원하는 금액으로 팔 수 있대요. 수확 전이라 양도 정확히 모르고 성분 검사도 아직 나오기 전이었는데, 검사도 속성으로 진행해주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올해 첫 수확을 했는데 2년 전과 정반대였어요. 버리는 게 거의 없고 먹을 수 있는 복숭아들이 훨씬 더 많이 나온 거예요. 1,000박스 중 300박스를 다양농협에 납품했어요.
생산에서는 정말 희망의 해였네요. 나머지 700박스도 판매도 잘 되었나요?
올해는 지인들도 어마어마하게 구입을 해줬어요. 지금까지 그런 적이 없었거든요. 올해는 우리농장 뿐 아니라 유달리 복숭아가 맛있었어요. 저는 특히나 복숭아를 먹어보지도 않았는데 누가 전화해서 맛 물어보면 솔직히 말해요. ‘제가 알레르기가 있어서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아내에게 물어보고 말씀 드릴게요(웃음)’ 그랬는데 진짜 맛있었나 봐요. 재주문이 계속 들어왔어요. 700박스를 팔 만큼.
저는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 강요하지 않아요. 다른 분들에 비해서 비싸게 파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친환경이니까 가격에 부담을 가질 수도 있잖아요. 결혼한 친구들은 본인들 집, 양가 부모님 딱 이 정도예요. 그 정도도 감사하죠. 그런데 코로나가 심해지니까 그것도 빠지더라고요. 그런데 올해는 ‘야, 이거 똑같은 거 있느냐’고 바로 전화가 와요. 한 번도 안 샀던 지인들도 올해는 우리 꺼 사 먹고 싶다고 연락이 오고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2019년 20박스, 2020년 200박스, 2021년 1,000박스면 엄청난 발전이자 성공이네요. 그래서 2021년이 희망의 해였군요.
2022년이 더 기대되겠는데요,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요?
저희가 올해 2.5kg을 택배비 포함해서 30,000원 정도에 팔았어요. 아내는 좀 더 올려도 된다고 했는데 내년에 유기농 되니까 그때 조금 올리고 올해까지는 이 가격으로 하자고 했죠. 그런데 이걸 작목반 통해서 시장에 내면 10,000원 정도 받아요. ‘무농약’을 붙여도 의미가 없어요. 자기 판로가 없고, 학교 급식이나 친환경센터 같은 곳에 납품하지 못하면 친환경 하는 분들은 농산물 제 값 받기가 쉬운 일이 아니에요. 관행보다 수확량도 현저하게 떨어지니까 내 기술이 아주 뛰어나지 않는 이상 친환경을 한다는 건 어려워요.
올해 새로 생긴 꿈이 ‘친환경 복숭아 작목반을 만들자’ 예요. 저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제일 안타까운 것 중에 하나가 나는 친환경 농사를 짓는데 복숭아를 싸는 부자재들이 대부분 플라스틱이고, 스펀지도 너무 많아요. 이게 다 안 쓸 수가 없는 포장용 부자재들이거든요. 제가 알아봤더니 자연 해초 추출물로 만든 게 있는데 기본 수량이 10만 장인 거예요. 1,000박스면 2,000개거든요. 나 혼자서 2,000개 밖에 못하는데 10만 개면 턱도 없는 소리죠.
그래서 내가 뭔가 하고 싶으면 내가 지금보다 조금 더 잘 되어야 할 것 같아요. 판로도 충분히 늘려놓고. 지금 유기농 전문 유통 채널과도 협의 중이고요, 내년에는 지인 판매 위주의 직거래는 조금 줄이려고 해요. 유통 채널을 더 넓히고 확보한 상태에서 작목반을 만드는 것이 맞다고 보거든요.
농업기술센터에서 만난 분들, 피치파이브와는 계속 교류하고 있나요?
코로나로 잘 모이지는 못하지만 계속 만나고 있죠. 복숭아 얘기는 많이 해요. 제가 많이 배우기도 하지만 생각해 보면 같이 성장하는 것 같아요. 모임의 한 형님 같은 경우는 부모님과 함께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는데, 모임에 가면 저한테 ‘지금 이거 쳐야 돼’라고 얘기해요. 그러면 저는 ‘나 그거 못 치는 거 알잖아. 그냥 막 치라고 하지 말고 성분을 알려줘. 비슷한 거 찾아봐야 하니까’ 해요. 제가 계속 그렇게 얘기하니까 형님도 공부를 하는 거예요. 어떤 성분인지 찾아서 알려주면 저는 또 제 나름의 공부를 하죠.
가끔 관행농하는 분들과 얘기하면서 답답한 것 중에 하나가 왜 하는지 모르는 거예요. 저는 ‘그냥 하던 거니까’ 라는 말이 너무 싫어요. 질문했을 때 그런 답을 들으면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아요. 저는 농사지으면서 무조건 외우려고 하지 않아요. 이건 왜 이럴까? 파고들고 원리를 이해하려고 해요. 그래서 한해 농사가 끝나면 다시 책을 펼쳐보고 ‘이게 이래서 이런 거구나’ 복습하죠.
수업 들으면서 봤던 책들, 가지고 있는 책들을 가을에는 꼭 한 번씩 다시 봅니다. 그냥 스쳐지나갔던 문장들인데 다시 눈에 확 들어오는 게 있어요. 그렇게 하나씩 배움이 늘어나고 한 단계 성장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기별로 할 일을 담은 복숭아 농사 재배력 초안 ⓒ정원구
정원구 농부 블로그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2015년부터 지금까지 농사일지를 적고 있죠? 기록하는 걸 좋아하나요?
농사 관련한 기록은 그냥 하고 싶어서 계속 했어요. 적어놓지 않으면 잊어버리니까요 저는 내 머리를 믿지 않아요, 내 손을 믿지. 외우지 않고 직접 해봐요. 그리고 계속 보고 익혀요. 일 년 지나면 다시 또 보고. 유기농 하면 어쩔 수 없이 기록은 해야 하잖아요.
1년 농사동안 안 쉬고 계속 한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강도의 차이일 뿐 1년을 잘 분배해서 일해야 한다는 의미예요. 제가 올해 반드시 하고 싶은 것 중에 하나가 나만의 재배력을 만드는 건데요. 집에 가면 3년 치 달력이 있어요. 그래서 2년 전에 내가 뭐 했지 찾아보면서 해마다 농사일을 하거든요. 나만의 재배력을 만들어서 앞으로도 계속 보완해 나가려고 해요.
겨울에 비와서 밖에서 일 못하는 날은 이런 일을 해요. 둘째가 아빠는 일쟁이라고 하고, 아내한테도 아이들과 좀 안 놀아준다고 잔소리를 듣기도 하지만요(웃음).
혹시 재배력을 다른 농부들과 공유해줄 수 있나요?
재배력이요? 네, 얼마든지 하죠.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일반 농사하는 형들한테도 “형, 내가 재배력 만들면 줄 테니까 필요하면 써. 그런데 농약 얘기는 별로 없을 거여(웃음).” 얘기했어요.
재배력에 담기는 월별 내용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이런 시스템을 만드는 것 자체가 농부들, 앞으로 농사를 지으려는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렇죠.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해요. 내가 하는 걸 외우지 말고 내가 왜 해야 하며, 왜 이때 했는지를 알면 굳이 적지 않아도 다음부터는 알아서 할 수 있다고. 다만, 아직은 내가 그런 단계까지 안 갔기 때문에 이 시기에 뭘 했는지 찾아 봐야 하는 거라고.
대부분은 마치 규칙이나 공식처럼 약을 쳐요. 제 기억으로는 복숭아는 균 관련해서는 첫 번째 방제가 3월 말입니다. 유황을 제일 먼저 치거든요. 그런데 기후위기로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고 있어요. 그럼 좀 더 빨리 쳐야 해요. 그 기준을 다시 잡아야 된단 말이에요. 그런데 3월 말에 쳤으니까 그때 되면 치지 얘기하는 분들이 있어요. 다른 농장에 약치는 소리 들리면 그때서야 약 친다는 분들도 있고요. 자기 농사짓는데 남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제가 찾아보니 복숭아 첫 방제는 매화꽃이 50% 폈을 즈음에 하는 게 제일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그 시기에는 내 주변 농장에 매화꽃이 언제 피는지 항상 보고 다녀야 해요. 기상 상황을 고려해서 첫 방제를 언제 해야겠다는 걸 본인이 결정해야 되는데 대부분은 그렇지 않는다는 얘기죠.
작년에 우연한 계기로 충북 옥천에 귀농 실패사례를 얘기하러 간 적이 있어요. 저를 초대한 분이 실패를 많이 한 분을 초대하고 싶은데 그게 저인 것 같다고(웃음). 그때 강의에서 농약상 가는 것을 뭐라고 하지는 않는다. 다만 가서 무슨 약을 달라고는 하지 말라고 얘기했어요. ‘내 농사를 농약상이 짓는 거 아니지 않느냐’고. 무슨 약이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면 차라리 작물을 뽑아가서 이런 문제가 있다고 물어보고 거기에 맞는 약을 사라고 했어요. 농부는 농작물 진단은 자기가 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저도 아직 못해요. 그래도 제가 주도적으로 하려고 노력하거든요.
친환경으로 농사짓는다고 제가 방제를 별로 안 할 것 같죠? 올해 32번을 했어요. 농사도 사람과 비슷하다고 했잖아요. 우리가 아이들에게 맛있는 거 먹이면서 잘 키우려고 하지 네가 아프면 좋은 병원 데리고 갈게 하진 않잖아요. 나무도 그렇게 접근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얘가 뭘 먹고 싶어 할 것 같은데, 이 시기에 뭘 줘야 될 것 같은데’ 그런 걸 자꾸 찾아주려고 방제를 해요. 그러니까 미생물이 유기물을 분해해줘서 나무가 잘 흡수할 수 있게 만들어줘요.
유기농 하는 분들 얘기 들어보면 땅이 살아나는 데 7~8년이 걸린대요. 저도 언젠가 균에 대한 극복이 되는 순간이 오면 땅과 나무를 믿고 안 치고 싶어요. 지금 이대로 계속하다보면 언젠가 그걸 느끼는 날이 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직접 기록해가며 만든 복숭아 재배력 ⓒ정원구
기후위기 잠깐 얘기했는데 복숭아 농사지으면서 많이 느끼나요?
수확시기도 그렇고 조금씩 계속 빨라지고 있어요. 최근 2년 동안 어떤 문제가 있었냐면 3월이 되게 따뜻해요. 그래서 꽃눈이 부풀어 오르는 게 보여요. 점점 부풀어 오르다가 탁 터져야 하는데 4월에 갑자기 추워져 버렸어요. 그래서 작년에는 부지런한 농부들이 손해를 많이 봤어요. 4월에 바쁘니까 미리미리 부지런히 작업을 해놨는데 4월에 냉해 와서 꽃이 다 얼면 열매가 없는 거예요.
오늘 얘기 나눠보니 실패는 많았지만 진짜 재미있게 농사짓는 농부가 분명합니다. 둘째 아들이 제대로 봤네요.
저는 농사짓는 게 되게 재미있어요.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이니까. 계속 뭔가 달라지고 있잖아요.
저는 밭농사에서 실패한 경험을 과수에 되게 많이 적용해요. 미생물을 주는데 나무에 진짜 좋은지, 내가 잘 하고 있는 건지 못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잖아요. 느껴지지도 않고. 그런데 밭작물은 1년 안에 그걸 확인할 수 있잖아요. 복숭아는 수확 끝났다고 나무를 뽑을 순 없지만 고추는 나무여도 수확 끝나면 뽑아서 뿌리의 상태를 볼 수 있잖아요. ‘아! 효과가 있구나. 꾸준히 해보자’가 되는 거예요.
지금까지 저의 농사이야기는 모두 실패담이에요. 그런데 실패에서 쏙쏙 찾아내는 게 다음 농사에서 성공하는 거예요. 그래서 새롭게 도전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어요.
올해는 장비도 한 개 생겼어요. 남들 고소작업차로 작업할 때 저는 열심히 사다리 타고 손으로 하다가 올해 약치는 기계를 장만했어요. 그 장비로 삶이 윤택해졌죠. 장비 없으면 약 한번 치려면 4시간을 해야 하는데 이제 1시간이면 끝나요. 저는 운전만 하면 되니까요.
실패에 성공한 농부. 사람을 대하듯, 아이와 얘기하듯 정답게 농사를 짓는다.
3,000평 농장에 나무를 더 심으라는 형님들에게 ‘140주를 더 크게 잘 키우겠다’고 말할 수 있는 두둑한 배짱과 남다른 농사 철학의 소유자다. 2022년 귀농 8년차가 된 농부는 겨울동안 꼭 만들고 싶다고 했던 복숭아 농사 재배력을 완성하고 선별 작업장까지 완공했다.
집 뒤의 농장을 걸으며 여기에는 원두막을 만들고 여기에는 카페를 만들어서 사계절 복숭아를 즐기는 농장을 만들겠다고 얘기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꿈이 이루어지기까지 몇 번의 실패가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딴딴농장과 야무진 농사꾼 정원구 농부의 농사는 더 재미있어지리라 의심치 않는다. 올해는 더욱 복숭아 농사에 매진할 수 있기를 바라며, 아직 듣지 못한 정원구 농부의 4쿼터를 들어볼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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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경원
기획, 기록, 연결로 변화를 만드는 일과 사람을 돕는다. 2014년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궁금해서 찾았던 지리산시골살이학교 덕분에 지리산이음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때는 몰랐다. 7년이 지난 2021년 구례 남원 산청 하동 함양을 다니며 ‘농사를 업으로 하는 농부’들의 이야기를 글로 전하게 될 줄은.
사진 채지연
진행 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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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딴농장 정원구 대표는 2015년 남원으로 귀농한 7년차 농부다.
자칭 ‘야무진 농사꾼. 꿋꿋한 농사꾼’으로 2017년 12월부터 친환경으로 복숭아 농사를 시작했다. ‘스포츠 마케팅 전문기획자에서 복숭아 농부로 변신’이라는 약간은 진부한 서사의 언론기사보다 귀농 첫해부터 블로그에 꼼꼼하게 기록한 농부의 귀농일지가 더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귀농 후 지금까지 농한기에는 사과, 버섯, 딸기 농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정원구 농부를 만났다. “내년에 바꿀 거긴 한데…….” 얘기하며 명함을 건네는 농부에게 이유를 물어보지 않았다면 그는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남원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원구 농부
내년에 왜 명함을 바꾸는 건가요?
친환경 무농약 복숭아에서 유기농 복숭아로 인증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명함도 바꿔야 합니다. 이제 완전히 유기농이 됩니다.
축하합니다! 유기농 복숭아를 재배하는, 야무진 농사꾼 정원구 농부 소개 부탁합니다.
어쩌다 귀농해서, 어쩌다 복숭아를 선택했고 어쩌다 보니 남들이 하지 말라는 친환경농사까지 짓고 있는 정원구입니다. 야무진 농사꾼, 꿋꿋한 농사꾼은 딴딴농장을 만들며 스스로에게 한 다짐이자 약속이기도 합니다.
농사를 짓고 싶어 남원으로 내려왔고, 지난 7년을 뒤돌아보니 재밌게 농사짓고 살았어요. 어제 저희 둘째 아들이 그러더라고요. 아빠는 농사짓는 거 재미있어 하는 것 같다고. 자기도 농부가 될 거래요. 아직 1학년이라(웃음). 그래서 “아빠가 쉽게 널 농사 시킬 거 같으냐? 아직 멀었어.”라고 했죠.
아들만 넷이라고요.
네. 큰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그다음 8살, 6살, 4살입니다. 두 살 터울로 서울에서 둘, 남원에서 둘을 낳았어요. 아들 넷 키우다 보니 아내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어요. 하하하.
어쩌다 귀농했다지만 그래도 계기가 있었을 것 같아요.
인생은 누구나 똑같이 한 번 살잖아요. 저는 제 삶을 4쿼터로 나눴어요. 지금 저는 3쿼터입니다. 1쿼터는 누구나 비슷하게 학교 다니는 20살 정도까지라고 봤고, 2쿼터는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했던 것 같아요. 세 번째 쿼터는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고 건강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었어요. 그게 농업이더라고요. 마흔 살 이후에 농사지으면서 내가 사장이 되면 가능할 거라 생각했어요.
스포츠 마케터로 직장 생활 10년 하고 서른다섯 살에 창업을 할까, 좀 일찍 농사지으러 내려갈까 고민했어요. 그런데 왠지 창업해서 잘 되면 내려가기 싫을 것 같고, 잘 안 되면 있는 돈마저 까먹고 내려가게 될 것 같은 거예요. 지금 내가 좋아하는 일은 언제든지 또 할 수 있으니까 먼저 내려가자 해서 오게 됐죠.
계획보다 먼저 시작된 3쿼터 현재 스코어는 어떤가요.
돈은 정말 못 벌었습니다. 잘 버텼다고만 생각해요. 지금까지. 다행히 올해가 저에게는 희망의 해였어요.
정원구 농부의 배우자와 네 아들 ⓒ정원구
‘희망의 해’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만, 귀농정착기부터 들어볼게요.
농사짓고 싶어서 땅도 없이 무작정 내려왔어요. 농사교육도 내려와서 받았고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어서 원래 복숭아도 안 먹었어요. 어쩌다 복숭아를 하게 되었다고 한 것도 복숭아 농사를 짓겠다가 아니라 저희보다 조금 일찍 귀농한 장인어른이 복숭아를 하시니까 그냥 하게 된 거예요.
귀농 후 처음 2년 동안은 아르바이트만 다녔어요.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그런데 계속 그렇게만 살 수 없잖아요. 어디서 뭘 하면 좋을지 농사지을 농장과 작물을 진짜 열심히 찾았어요. 그런데 제가 2년 동안 그나마 봤던 게 복숭아였어요. ‘그럼 복숭아를 해보자’ 했죠. 여담이지만 제가 복숭아 알레르기는 없는 것 같아요. 정확하게 확인된 건 아니지만 농약 알레르기가 있는 것 같아요.
아무튼, 학연, 지연은 물론이고 정보도 없이 2015년에 내려와서 2017년부터 정식으로 복숭아 농사를 짓기 시작했어요. 진짜 맨땅에 헤딩하듯. 저희 부모님은 간혹 그런 말씀을 하시죠. 이왕 갈 거 임실 갔으면 땅이라도 있지 않았냐고(웃음). 부모님 고향이고 할머니가 아직 임실에 살고 계시거든요. 그런데 거긴 정말 산골짜기예요. 그래서 아내를 설득할 자신이 없었어요.
여기가 좋았던 이유는 딱 한 가지였어요. 남원이 도농지역이라는 거. 시골이지만 집에서 시내도 가깝고 무엇보다 마트가 가까워요. 서울에서도 마트는 차타고 가야하잖아요. 그리고 아내를 설득했죠. ‘나는 남원 가면 아는 사람 한명도 없는데, 너는 부모님이 옆에 계시지 않느냐’고. 그렇게 그냥 내려왔어요.
복숭아 농장은 어떻게 조성했나요?
복숭아 농사는 귀농 2년 후에 시작했지만 내려와서 서울에서 살던 집 전세금으로 산을 1만 평 샀어요. 호두농사 지으려고요. 당시에는 작물은 무조건 심으면 다 잘 자라는 줄 알았어요. 귀농인들의 착각이죠. 장인어른과 복숭아 농사를 같이 짓고, 복숭아 수확이 끝나면 호두를 수확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그 산이 돌산이었어요. 흙이 아니라. 땅을 박박 긁어가면서 겨우 구덩이 파서 나무를 심었는데 결국 다 죽었어요. 뿌리를 못 내리니까. 흙이 아니라 돌인데 모르니까 그냥 심었던 거예요.
‘어, 이건 아닌 것 같다’ 싶었어요. 다시 아르바이트 열심히 했죠. 시간이 좀 지나니까 이렇게는 안 될 것 같았어요. 그 산은 쳐다보지 않고 다시 농사지을 땅을 알아보기 시작했죠. 지금은 6천 평에 400주 조금 넘는 규모로 농사짓고 있습니다. 지금 이 농사도 감당을 못하는데 산까지는 도저히 엄두가 안 나요.
농장을 소개하고 있는 정원구 농부의 모습
그럼 복숭아 농사는 6천 평 규모로 짓고 있는 거군요.
네. 송동면이 남원에서 복숭아로 제일 유명한 지역이에요. 주작물이죠. 거기에 임대한 3천 평이 있고,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집 뒷밭 3천 평도 복숭아 농장입니다. 이 땅은 제가 살던 집주인이 내 놨는데 조금 비싸기는 했지만 저희 할머니가 웃돈을 주고라도 사야 한다고 하셨어요. 길도 가깝고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이 이렇게 큰 덩어리로 쉽게 나오지 않는대요. 그래서 샀죠. 지금 보니 할머니 말씀 듣고 사길 잘했다 싶어요. 농사를 지어보니 알겠더라고요.
송동 농장은 조생종 위주로 심어서 7월 20일이면 수확이 끝나요. 그러면 저희 집으로 넘어와서 수확할 수 있게 품종을 심어놨어요. 농장 두 군데를 왔다갔다 농사를 짓다보면 장비가 두 배가 들어요. 삽자루를 사더라도 두개씩 사게 돼요. 그동안 호스 끌고 다니면서 손으로 약을 치다가 올해 처음으로 장비를 한 대 샀거든요. 만약에 작은 규모로 여러 군데 나눠져 있었으면 어떻게 농사지었을까 싶어요.
귀농 초기 비싼 수업료 치렀지만 배움이 있었네요.
저는 실패를 많이 한 농부예요. 그런데 그걸 별로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막 저지르고 다니는데 XX놈이라는 소리도 들어요. 나무는 바로바로 수확이 안 되잖아요. 심고 3년은 있어야 하는데 먹고 살아야 되니까 1천만 원 대출 받아서 양파농사를 지었다 망한 경험도 있어요. 지금도 원금은 못 갚고 이자만 계속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경험으로 내가 배운 게 더 많고, 귀농한 분들 만나거나 어디 가서 얘기할 기회가 생기면 현실적인 조언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귀농한 분들 중에 은근히 고집 센 분들 많거든요. ‘그래? 너 그렇게 해 봐. 나 그렇게 해서 망했어’ 라고 얘기해주면 그제야 조금 고민을 하시더라고요.
귀농한 분들은 이상하게 친환경을 고집해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양파 농사로 천만 원 날렸을 때 제초제도 안하면서 투명비닐을 씌웠어요. 그게 좋다고 하니까. 그런데 그게 비닐하우스 효과가 된 거죠. 양파보다 풀이 더 잘 자랐어요. 1천 4백 평에 양파를 심었는데 풀을 뽑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어림도 없었어요. 어쨌든 실패 속에서 저는 얻는 게 있었으니까 그게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오히려 좋은 기회들이 많이 생겼다고 생각해요.
정원구 농부가 농사정보를 주고받는 복숭아 어벤져스가 있다고요.
2017년에는 책 보고 농사를 지었어요. 복숭아 농사 책이 아니라 장인어른이 갖고 있던 농업기술센터에서 나온 10장 내외 유인물 같은 거였는데, 그 얇은 책자를 보면서 복숭아 전지를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하고 멍청했죠. 그 다음 해에 농업기술센터에서 하는 교육받으면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아 혹시 그 분들이 피치파이브인가요? 기사에서 본 것 같아요.
네. 지금은 7명이 모이거든요. 그 중에서도 지리산이음에 절 소개도 해주었던 방극완 형님이 옆에서 되게 많이 도와주셨죠. 맨날 농장에 찾아와서 ‘이건 이렇게 해야 한다, 저건 저렇게 해라’고 얘기하는데 처음에는 엄청 불편했어요. 내 건 내가 해야 된다는 생각이 있어서 좀 안 왔으면 좋겠더라고요(웃음). ‘안 도와줘도 돼. 내가 알아서 할게’ 했더니 그 형님이 ‘내가 너를 1년만 먼저 알았어도 나무가 저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라고 얘기하더라고요.
복숭아는 가지를 조금씩 당겨가면서 나무를 Y자 모양으로 만들어가면서 키워야 해요. 저는 모르니까 두꺼운 가지를 다 잘라버렸어요. 지금 송동농장에서 키우는 나무들이 저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죠.
나무와 농부가 실패를 겪으며 같이 성장한 거라고 생각해야겠네요.
네. 그래서 되게 고마워요. 나무들한테 혼잣말로 얘기하죠. ‘난 여기를 농장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아. 여기는 너희들을 위한 연구소야’라고(웃음). 지금 나무들이 나이는 7년, 8년 되는데 고생을 엄청 해서 다른 농장의 같은 나이 나무들보다 많이 작아요. 그래서 저는 ‘고맙다.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고 해요.
복숭아 과실에 봉지를 씌우는 작업 ⓒ정원구
친환경, 이제 완전 유기농으로 인증을 받게 되었는데 그동안 농사짓기 힘들지는 않습니까? 복숭아는 벌레도 많이 생기잖아요.
가끔 ‘어떻게 아직도 친환경을 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는데 저는 처음부터 친환경으로 농사지어서 그 과정이 전혀 번거롭지 않았어요. 송동 농장에서 제가 직접 살충제 만들어서 뿌리는 걸 본 분들이 ‘나는 귀찮아서 그렇게 못 한다. 그냥 농약상 가서 약 사서 하면 되는 걸’ 얘기해요. 저는 처음부터 그렇게 했으니까 그게 번거롭다는 생각을 안 해요. 오히려 재밌어요. 그리고 나무들을 위해서 이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서울에서는 먹고 살기 쉬운가요? 아무것도 안 하고 버튼 하나 눌러서 돈 버는 건 아니잖아요.
복숭아는 유기농 묘목이 따로 있나요? 모종 같은 경우는 다르다고 들었는데 묘목은 유기농 묘목을 따로 판매하는 곳을 못 본 것 같아요.
저는 묘목을 주로 사서 심고요, 일부 품종들은 접을 붙이기도 하죠. 처음에는 실패율이 높은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접을 붙였죠. 요즘은 저도 저를 안 믿어서 가급적이면 사다 심으려고 하는데 필요한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접을 붙이기도 합니다(웃음).
저희처럼 복숭아 잘 모르는 사람도 알고 있는 품종이 꽤 되는데요, 딴딴농장은 몇 종이나 키우고 있나요?
매우 많죠. 남원에는 그린황도가 제일 많은 편이에요. 마침 제가 엊그제 세어 봤는데요. 저희 농장에 심어진 복숭아나무가 품종 수로는 한 17~18개 되는 것 같아요. 초반에는 소비자들에게 일일이 품종을 설명했는데 다들 잘 모르시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황도, 백도, 딱딱이, 말랑이. 딱 이 정도로만 얘기해요. 그게 서로 편해요. 드셔보고 맛있으면 그 다음 해에 ‘그때 먹었던 복숭아 주세요’ 라고 연락을 주십니다. 복숭아를 엄청 좋아하시는 분들은 ‘제가 먹었던 게 도대체 어떤 거냐’고 물어보고 그 품종을 기억했다가 계속 주문하시죠. 일반적으로 그런 경우는 흔치 않아요.
그럼 딴딴농장의 ‘엉덩이가 빨간 복숭아’도 특별한 품종은 아니겠네요?
하하하 네. 복숭아가 익으면 빨개지잖아요. 거기서 착안해서 제가 딴딴농장 복숭아 브랜드로 만들고 싶어서 해본 거예요. 저는 브랜딩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농장명이 없을 때는 그냥 ‘친환경 복숭아 합니다’ 하고 다녔어요. 그러다 재작년인가 농장이름을 많이 고민했어요. 부르기 쉽고 한번 들으면 절대 안 까먹는 이름이면 좋겠는데 이것저것 지어서 불러 봐도 귀에 잘 안 들어오는 거예요. 뭐가 좋을까 뭐가 좋을까 생각하다 어느 날 ‘딴딴하다’를 검색했는데 ‘야무지다. 간단하다의 전라도 지방의 말’이라고 나오는 거예요. 이거 되게 좋다 싶었어요. ‘나는 남원에서 야무지게 농사짓고 싶으니까 농장이름도 딴딴농장으로 하자’ 했죠.
정말 잘 지은 이름입니다. 부르기 쉽고 들으면 절대 잊어버리지도 않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정원구 농부와도 잘 어울리고요.
스스로 나의 길, 나의 나무, 나의 농장에 가치를 부여하고 인정해주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요즘 체험 농장을 구상하고 있는데 단발성 수확 체험이 아닌 우리 농장만의 이야기가 있는 체험농장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남들보다 복숭아 잘 키워서 많이 수확하고 돈 많이 벌어야지 보다는 농장에 온 분들에게 한 시간 동안 농장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면 그게 더 재밌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렇게 사람들이 찾아와주고 알아주는 농장을 만들고 싶습니다.
복숭아는 묘목을 심으면 수확은 몇 년 후에 할 수 있나요?
복숭아는 올해 나무를 심으면 내년에도 딸 수는 있어요. 그런데 좀 작죠. 열매가 달려 있을 때는 나무가 영양생장보다 생식생장을 더해요. 그래서 가급적이면 2~3년 동안 나무만 더 키우는 게 좋아요. 눈일 때 밀어버리기도 하고, 꽃 피었을 때 훑어버리기도 하고. 그래서 나무가 영양생장으로 더 클 수 있게.
제가 굉장히 실패를 많이 했다고 그랬잖아요. 송동 농장은 제가 처음 갔을 때 그렇게 큰 나무들이 아니었어요.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그 작은 나무에 열매를 무지하게 많이 달았던 거예요. 그래서 나무들이 엄청 고생했죠. 지금 집 뒤 농장에 심은 나무들은 제가 조금 알고 키우니까 심은 지 만 2년이 안되었는데 그때보다 훨씬 좋은 나무들이 많아요.
사람처럼 나무도 어릴 때 제대로 키워놓지 못하면 나중에 잘 안 커요. 어느 순간이 넘어가면 아무래도 힘들어져요. 그래서 어느 정도 키워놓고 열매를 달게 하죠. 지금 농장도 내년에 열매를 달아도 되지만 4~5개씩만 달고 나머지는 좀 더 키우고 나서 제대로 열매를 달자 이런 생각을 갖고 있어요.
복숭아 농사는 몇 월부터 시작되는 거라고 볼 수 있나요?
1년 내내 짓는 거죠. 모든 농사가 그렇잖아요.
저도 처음에는 ‘수확하고 나면 열매도 없는데 끝이지’ 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가을에 바빠야 봄에 좀 편해져요. 나무의 생리를 봤을 때 여름에 수확하고 나면 열매가 떨어지기 시작하니까 가지들이 막 쫙쫙 커요. 가지들이 올라오면 햇빛이 잘 들어가게끔 적심을 해줘야 해요. 이 가지들을 안 잘라주면 얘들이 미친 듯이 막 올라가서 쭉쭉 위로 서요. 그럼 밑에 가지들에 그늘이 생겨서 가지로서 역할을 못하고 말라 죽어요. 그러니까 여름에 바빠야 돼요. 복숭아는 올해 나온 가지가 내년에 열매를 달아요. 수확하고 농장에 안 가면 그런 작업을 못하는 거죠. 수확 후부터 바로 열심히 이 작업을 해주면 가을에는 일을 많이 안 해도 되더라고요.
‘수확은 끝나도 농사는 끝난 것이 아니다’군요.
제가 옛날에는 아르바이트를 마음 편하게 갔어요. 아무 것도 몰랐으니까. 요즘에는 내가 아르바이트를 가면 이 일을 못 하니까 그 안에 2~3일 동안 빡세게 돌아다니면서 해요. 갔다 오자마자 못했던 일을 또 하죠. 마침 지난주[11월 초]에 아르바이트가 끝나서 이번 주 부터는 퇴비 나르고 나무에 지주 세우고, 올해 또 새로운 나무들을 심으려고요.
겨울이 되면 동계전지작업을 하죠. 그런데 제가 남들보다 실패한 게 많다보니까 아직까지는 먹고 사는 게 100% 안정적이지는 않아요. 올해 처음으로 복숭아 농사가 괜찮았거든요. 이정도면 우리 가족 먹고 사는 데까지는 문제없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그런데 귀농자금을 받다보니까 내후년 2월부터는 원금과 이자를 상환해야 하는 시기예요. 딱 1년만 뒤로 미뤘으면 좋겠는데 안 된대요. 그 부분이 조금 걸리긴 한데 일단 한번 가보자 하고 있어요.
겨울에 전지작업 하면서 아는 형님께 부탁해서 딸기농장 아르바이트를 오전만 하려고 해요. 아르바이트에만 집중하니까 농사가 안 되더라고요. 돈이 많이 필요한 건 아니고 어차피 겨울에는 아침 10시 전에는 일을 나간다 한들 발이 시려서 일을 못 하거든요. 오전에 아르바이트하고 오후에 볕이 나면 3~4시간씩, 4월까지 쫙 펼쳐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봉지에 싼 복숭아 ⓒ정원구
농사는 지금 혼자 짓는 거죠?
아직까지는 사람들 안 쓰고 혼자서 다 하고 있어요. 복숭아 하는 분들하고 얘기하면 저는 안 끼워줘요. 양이 너무 적다고. 복숭아 농사 하는 분들이 “너 올해 몇 장 쌌어?” 이런 얘기를 해요. 복숭아 봉지 몇 장 쌌냐는 건데 저는 올해 2만 장 조금 넘게 쌌어요. 혼자 가위질 해가면서 쌀 수 있을 정도예요. 그 모임에서 복숭아 농사 좀 짓는다는 분들은 적어도 7만 장은 싸요. 봉지에 안 싸는 품종들도 있는데 그걸 제외하고도 7만 장정도 쌌다고 해요. 거기에 비하면 저는 엄청 조금 싼 거죠.
올해가 ‘희망의 해’였다고도 했는데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그동안 진짜 생산을 못 했어요. 2020년에 2.5kg 기준으로 200박스 정도 수확했거든요. 비싸게 팔아서 한 박스 5만원에 판다고 해도 200박스면 1천만 원이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팔지 않았으니까 돈은 그보다 못 벌었다는 얘기예요. 그런데 ‘내가 할 수 있겠구나’ 자신감이 생겼어요.
2019년에 제 나무들에게 코로나가 닥쳤어요. 천공병이라는 세균성구멍병인데요, 눈에는 안 보이는데 계속 확산이 되는 거예요. 저는 벌레는 별로 신경을 안 써요. 친환경이니까. 벌레가 나오면 얘기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균은 좀 심각해요. 어떤 약을 써야 되는지도 모르고 항상 천연 약재만 쓰다가 그때부터 공부를 했죠. 그 이후[2020년]에 균을 죽인다기보다 다양한 균을 더 넣어줬어요. 나쁜 균이 활성화 못하게 미생물 유황, 미생물 유황 이렇게 돌아가면서 계속 쳤어요. 그러다보니 지금의 희망이 보였습니다.
복숭아 농사 3년차였던 2019년에는 수확을 어떻게 했냐면 그냥 다 바닥에 떨어뜨렸어요. 그 해에는 20박스 정도 했어요. 그래서 친환경은 이제 접어야겠다고 했을 때 농작물재해보험이 저를 살려줬어요. 내가 절대로 수확해서 벌 수 없는 금액을 보험금으로 받은 거예요. ‘이건 친환경을 계속 하라고 하나님이 나한테 기회를 주신 거다’ 생각했어요. 그렇게 해서 2020년에 200박스 정도가 된 거예요. 확신을 갖고 계속 할 수 있게 된거죠.
저는 농사는 사람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몸속에도 잘은 모르지만 장내에 유익한 미생물도 있고 유해한 미생물도 있잖아요. 다만 비율에서 유익이 조금 더 많으면 우리가 평온한 것처럼 농사에서도 좋은 균들을 자꾸 넣어주고 다양한 균이 많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올해 1,000박스가 나왔어요. 작년보다 복숭아 봉지를 3~4,000장은 더 쌌어요. 너무 많이 쌌다 싶어서 무리하게 숫자를 안 늘렸는데도 1,000박스를 한 거예요. 올해 첫 수확하기 전날 엄청 긴장되더라고요. ‘올해는 얼마나 될까?’ 긴장하고 있는데 담양농협에서 전화가 왔어요. 친환경센터가 있는데 저희 복숭아를 받고 싶대요. 학교급식도 있고 다양한 몰을 운영하는데 고객층이 임산부 바우처, 친환경 바우처로 구매하는 분들이라 가격에 대한 걱정이나 부담감도 없다고 품질만 좋으면 제가 원하는 금액으로 팔 수 있대요. 수확 전이라 양도 정확히 모르고 성분 검사도 아직 나오기 전이었는데, 검사도 속성으로 진행해주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올해 첫 수확을 했는데 2년 전과 정반대였어요. 버리는 게 거의 없고 먹을 수 있는 복숭아들이 훨씬 더 많이 나온 거예요. 1,000박스 중 300박스를 다양농협에 납품했어요.
생산에서는 정말 희망의 해였네요. 나머지 700박스도 판매도 잘 되었나요?
올해는 지인들도 어마어마하게 구입을 해줬어요. 지금까지 그런 적이 없었거든요. 올해는 우리농장 뿐 아니라 유달리 복숭아가 맛있었어요. 저는 특히나 복숭아를 먹어보지도 않았는데 누가 전화해서 맛 물어보면 솔직히 말해요. ‘제가 알레르기가 있어서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아내에게 물어보고 말씀 드릴게요(웃음)’ 그랬는데 진짜 맛있었나 봐요. 재주문이 계속 들어왔어요. 700박스를 팔 만큼.
저는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 강요하지 않아요. 다른 분들에 비해서 비싸게 파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친환경이니까 가격에 부담을 가질 수도 있잖아요. 결혼한 친구들은 본인들 집, 양가 부모님 딱 이 정도예요. 그 정도도 감사하죠. 그런데 코로나가 심해지니까 그것도 빠지더라고요. 그런데 올해는 ‘야, 이거 똑같은 거 있느냐’고 바로 전화가 와요. 한 번도 안 샀던 지인들도 올해는 우리 꺼 사 먹고 싶다고 연락이 오고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2019년 20박스, 2020년 200박스, 2021년 1,000박스면 엄청난 발전이자 성공이네요. 그래서 2021년이 희망의 해였군요.
2022년이 더 기대되겠는데요,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요?
저희가 올해 2.5kg을 택배비 포함해서 30,000원 정도에 팔았어요. 아내는 좀 더 올려도 된다고 했는데 내년에 유기농 되니까 그때 조금 올리고 올해까지는 이 가격으로 하자고 했죠. 그런데 이걸 작목반 통해서 시장에 내면 10,000원 정도 받아요. ‘무농약’을 붙여도 의미가 없어요. 자기 판로가 없고, 학교 급식이나 친환경센터 같은 곳에 납품하지 못하면 친환경 하는 분들은 농산물 제 값 받기가 쉬운 일이 아니에요. 관행보다 수확량도 현저하게 떨어지니까 내 기술이 아주 뛰어나지 않는 이상 친환경을 한다는 건 어려워요.
올해 새로 생긴 꿈이 ‘친환경 복숭아 작목반을 만들자’ 예요. 저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제일 안타까운 것 중에 하나가 나는 친환경 농사를 짓는데 복숭아를 싸는 부자재들이 대부분 플라스틱이고, 스펀지도 너무 많아요. 이게 다 안 쓸 수가 없는 포장용 부자재들이거든요. 제가 알아봤더니 자연 해초 추출물로 만든 게 있는데 기본 수량이 10만 장인 거예요. 1,000박스면 2,000개거든요. 나 혼자서 2,000개 밖에 못하는데 10만 개면 턱도 없는 소리죠.
그래서 내가 뭔가 하고 싶으면 내가 지금보다 조금 더 잘 되어야 할 것 같아요. 판로도 충분히 늘려놓고. 지금 유기농 전문 유통 채널과도 협의 중이고요, 내년에는 지인 판매 위주의 직거래는 조금 줄이려고 해요. 유통 채널을 더 넓히고 확보한 상태에서 작목반을 만드는 것이 맞다고 보거든요.
농업기술센터에서 만난 분들, 피치파이브와는 계속 교류하고 있나요?
코로나로 잘 모이지는 못하지만 계속 만나고 있죠. 복숭아 얘기는 많이 해요. 제가 많이 배우기도 하지만 생각해 보면 같이 성장하는 것 같아요. 모임의 한 형님 같은 경우는 부모님과 함께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는데, 모임에 가면 저한테 ‘지금 이거 쳐야 돼’라고 얘기해요. 그러면 저는 ‘나 그거 못 치는 거 알잖아. 그냥 막 치라고 하지 말고 성분을 알려줘. 비슷한 거 찾아봐야 하니까’ 해요. 제가 계속 그렇게 얘기하니까 형님도 공부를 하는 거예요. 어떤 성분인지 찾아서 알려주면 저는 또 제 나름의 공부를 하죠.
가끔 관행농하는 분들과 얘기하면서 답답한 것 중에 하나가 왜 하는지 모르는 거예요. 저는 ‘그냥 하던 거니까’ 라는 말이 너무 싫어요. 질문했을 때 그런 답을 들으면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아요. 저는 농사지으면서 무조건 외우려고 하지 않아요. 이건 왜 이럴까? 파고들고 원리를 이해하려고 해요. 그래서 한해 농사가 끝나면 다시 책을 펼쳐보고 ‘이게 이래서 이런 거구나’ 복습하죠.
수업 들으면서 봤던 책들, 가지고 있는 책들을 가을에는 꼭 한 번씩 다시 봅니다. 그냥 스쳐지나갔던 문장들인데 다시 눈에 확 들어오는 게 있어요. 그렇게 하나씩 배움이 늘어나고 한 단계 성장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기별로 할 일을 담은 복숭아 농사 재배력 초안 ⓒ정원구
정원구 농부 블로그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2015년부터 지금까지 농사일지를 적고 있죠? 기록하는 걸 좋아하나요?
농사 관련한 기록은 그냥 하고 싶어서 계속 했어요. 적어놓지 않으면 잊어버리니까요 저는 내 머리를 믿지 않아요, 내 손을 믿지. 외우지 않고 직접 해봐요. 그리고 계속 보고 익혀요. 일 년 지나면 다시 또 보고. 유기농 하면 어쩔 수 없이 기록은 해야 하잖아요.
1년 농사동안 안 쉬고 계속 한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강도의 차이일 뿐 1년을 잘 분배해서 일해야 한다는 의미예요. 제가 올해 반드시 하고 싶은 것 중에 하나가 나만의 재배력을 만드는 건데요. 집에 가면 3년 치 달력이 있어요. 그래서 2년 전에 내가 뭐 했지 찾아보면서 해마다 농사일을 하거든요. 나만의 재배력을 만들어서 앞으로도 계속 보완해 나가려고 해요.
겨울에 비와서 밖에서 일 못하는 날은 이런 일을 해요. 둘째가 아빠는 일쟁이라고 하고, 아내한테도 아이들과 좀 안 놀아준다고 잔소리를 듣기도 하지만요(웃음).
혹시 재배력을 다른 농부들과 공유해줄 수 있나요?
재배력이요? 네, 얼마든지 하죠.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일반 농사하는 형들한테도 “형, 내가 재배력 만들면 줄 테니까 필요하면 써. 그런데 농약 얘기는 별로 없을 거여(웃음).” 얘기했어요.
재배력에 담기는 월별 내용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이런 시스템을 만드는 것 자체가 농부들, 앞으로 농사를 지으려는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렇죠.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해요. 내가 하는 걸 외우지 말고 내가 왜 해야 하며, 왜 이때 했는지를 알면 굳이 적지 않아도 다음부터는 알아서 할 수 있다고. 다만, 아직은 내가 그런 단계까지 안 갔기 때문에 이 시기에 뭘 했는지 찾아 봐야 하는 거라고.
대부분은 마치 규칙이나 공식처럼 약을 쳐요. 제 기억으로는 복숭아는 균 관련해서는 첫 번째 방제가 3월 말입니다. 유황을 제일 먼저 치거든요. 그런데 기후위기로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고 있어요. 그럼 좀 더 빨리 쳐야 해요. 그 기준을 다시 잡아야 된단 말이에요. 그런데 3월 말에 쳤으니까 그때 되면 치지 얘기하는 분들이 있어요. 다른 농장에 약치는 소리 들리면 그때서야 약 친다는 분들도 있고요. 자기 농사짓는데 남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제가 찾아보니 복숭아 첫 방제는 매화꽃이 50% 폈을 즈음에 하는 게 제일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그 시기에는 내 주변 농장에 매화꽃이 언제 피는지 항상 보고 다녀야 해요. 기상 상황을 고려해서 첫 방제를 언제 해야겠다는 걸 본인이 결정해야 되는데 대부분은 그렇지 않는다는 얘기죠.
작년에 우연한 계기로 충북 옥천에 귀농 실패사례를 얘기하러 간 적이 있어요. 저를 초대한 분이 실패를 많이 한 분을 초대하고 싶은데 그게 저인 것 같다고(웃음). 그때 강의에서 농약상 가는 것을 뭐라고 하지는 않는다. 다만 가서 무슨 약을 달라고는 하지 말라고 얘기했어요. ‘내 농사를 농약상이 짓는 거 아니지 않느냐’고. 무슨 약이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면 차라리 작물을 뽑아가서 이런 문제가 있다고 물어보고 거기에 맞는 약을 사라고 했어요. 농부는 농작물 진단은 자기가 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저도 아직 못해요. 그래도 제가 주도적으로 하려고 노력하거든요.
친환경으로 농사짓는다고 제가 방제를 별로 안 할 것 같죠? 올해 32번을 했어요. 농사도 사람과 비슷하다고 했잖아요. 우리가 아이들에게 맛있는 거 먹이면서 잘 키우려고 하지 네가 아프면 좋은 병원 데리고 갈게 하진 않잖아요. 나무도 그렇게 접근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얘가 뭘 먹고 싶어 할 것 같은데, 이 시기에 뭘 줘야 될 것 같은데’ 그런 걸 자꾸 찾아주려고 방제를 해요. 그러니까 미생물이 유기물을 분해해줘서 나무가 잘 흡수할 수 있게 만들어줘요.
유기농 하는 분들 얘기 들어보면 땅이 살아나는 데 7~8년이 걸린대요. 저도 언젠가 균에 대한 극복이 되는 순간이 오면 땅과 나무를 믿고 안 치고 싶어요. 지금 이대로 계속하다보면 언젠가 그걸 느끼는 날이 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직접 기록해가며 만든 복숭아 재배력 ⓒ정원구
기후위기 잠깐 얘기했는데 복숭아 농사지으면서 많이 느끼나요?
수확시기도 그렇고 조금씩 계속 빨라지고 있어요. 최근 2년 동안 어떤 문제가 있었냐면 3월이 되게 따뜻해요. 그래서 꽃눈이 부풀어 오르는 게 보여요. 점점 부풀어 오르다가 탁 터져야 하는데 4월에 갑자기 추워져 버렸어요. 그래서 작년에는 부지런한 농부들이 손해를 많이 봤어요. 4월에 바쁘니까 미리미리 부지런히 작업을 해놨는데 4월에 냉해 와서 꽃이 다 얼면 열매가 없는 거예요.
오늘 얘기 나눠보니 실패는 많았지만 진짜 재미있게 농사짓는 농부가 분명합니다. 둘째 아들이 제대로 봤네요.
저는 농사짓는 게 되게 재미있어요.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이니까. 계속 뭔가 달라지고 있잖아요.
저는 밭농사에서 실패한 경험을 과수에 되게 많이 적용해요. 미생물을 주는데 나무에 진짜 좋은지, 내가 잘 하고 있는 건지 못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잖아요. 느껴지지도 않고. 그런데 밭작물은 1년 안에 그걸 확인할 수 있잖아요. 복숭아는 수확 끝났다고 나무를 뽑을 순 없지만 고추는 나무여도 수확 끝나면 뽑아서 뿌리의 상태를 볼 수 있잖아요. ‘아! 효과가 있구나. 꾸준히 해보자’가 되는 거예요.
지금까지 저의 농사이야기는 모두 실패담이에요. 그런데 실패에서 쏙쏙 찾아내는 게 다음 농사에서 성공하는 거예요. 그래서 새롭게 도전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어요.
올해는 장비도 한 개 생겼어요. 남들 고소작업차로 작업할 때 저는 열심히 사다리 타고 손으로 하다가 올해 약치는 기계를 장만했어요. 그 장비로 삶이 윤택해졌죠. 장비 없으면 약 한번 치려면 4시간을 해야 하는데 이제 1시간이면 끝나요. 저는 운전만 하면 되니까요.
실패에 성공한 농부. 사람을 대하듯, 아이와 얘기하듯 정답게 농사를 짓는다.
3,000평 농장에 나무를 더 심으라는 형님들에게 ‘140주를 더 크게 잘 키우겠다’고 말할 수 있는 두둑한 배짱과 남다른 농사 철학의 소유자다. 2022년 귀농 8년차가 된 농부는 겨울동안 꼭 만들고 싶다고 했던 복숭아 농사 재배력을 완성하고 선별 작업장까지 완공했다.
집 뒤의 농장을 걸으며 여기에는 원두막을 만들고 여기에는 카페를 만들어서 사계절 복숭아를 즐기는 농장을 만들겠다고 얘기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꿈이 이루어지기까지 몇 번의 실패가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딴딴농장과 야무진 농사꾼 정원구 농부의 농사는 더 재미있어지리라 의심치 않는다. 올해는 더욱 복숭아 농사에 매진할 수 있기를 바라며, 아직 듣지 못한 정원구 농부의 4쿼터를 들어볼 날을 기다린다.
• 정원구 농부 블로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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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경원
기획, 기록, 연결로 변화를 만드는 일과 사람을 돕는다. 2014년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궁금해서 찾았던 지리산시골살이학교 덕분에 지리산이음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때는 몰랐다. 7년이 지난 2021년 구례 남원 산청 하동 함양을 다니며 ‘농사를 업으로 하는 농부’들의 이야기를 글로 전하게 될 줄은.
사진 채지연
진행 이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