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 밀의 고장, 구례에서 뚝심 있게 밀 농사짓고자 신념을 불태우는 예비 혹은 초보 농부
- 농촌에서의 삶이 궁금한 귀농 귀촌 희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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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30년 차 한율년 농부는 고향 구례에서 15년째 밀농사를 짓는다. 대농은 아니지만 문척면 외에도 구례에 몇 곳의 밀밭을 조성해 유기농과 관행농으로 밀농사를 짓고 있다고 한다.
사람이 없는 농촌에 살다 보니 청년회장도 하고, 의용소방대장도 하고 각종 기관, 단체 활동을 하고 있어 농사짓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한율년 농부를 어렵게 만났다. 무뚝뚝한 첫인상의 농부는 인터뷰가 난생 처음이라 무척 떨린다고 슬쩍 고백했다.
구례에서 만난 한율년 농부
구례가 고향인가요? 농사는 언제부터 지었는지요.
저는 구례에서 태어나서 고등학교까지 구례에서 자랐습니다. 졸업하고 잠깐 나가 있었는데 신청해 놓은 농업후계인 자금이 나왔다고 아버지가 연락을 하셔서 바로 들어왔죠. 그때부터 농사지어서 지금 30년 됐습니다. 뭐 별다른 기술도 없었고(웃음). 그 이전부터 기계장비로 아버지의 농사일을 거들었어요.
벼는 수도작으로 150마지기 정도 짓습니다. 처음부터 밀농사를 지었던 건 아니고 15년 전에 시작했어요. 그 당시만 해도 밀이 별로 돈이 안 되었거든요. 그때는 보리를 심었죠. 그런데 보리가 잘 쓰러져요. 그래서 기계로 일하기가 힘든데 밀은 잘 안 쓰러져요. 아무래도 보리보다 쉽죠. 그래서 밀로 바꿨습니다. 밀농사는 100마지기를 지었는데 올해[2021]는 50마지기만 했어요.
밀농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보리 키우기가 어려워서인가요?
그런 것도 있지만 결정적인 건 돈이죠. 벼만 심어서는 수익을 창출할 수 없으니까 이모작을 하잖아요. 그러니까 밀을 심게 되는 거죠. 밀, 보리는 동계작물이니까 벼를 수확하고 나서 밀을 심고, 밀을 수확한 다음에 바로 모내기에 들어가고. 이렇게 연이어서 할 수 있고 밀은 수확하면 받아주는데도 있고요.
지금 밀농사는 조합이나 공동농장 형태가 아니라 혼자 짓나요?
네. 농사는 개인으로 짓고 출하는 광의면에 있는 <우리밀가공공장>으로 전량 납품하고 있어요. 농사를 짓다 보면 판로가 제일 문제죠. 판로를 해결해 줄 공장이 있기 때문에 밀을 많이 심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판로가 걱정되면 농사 못 짓잖아요.
밀농사를 유기농과 관행농을 같이 한다고 들었어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유기농하는 분들은 밭 만들 때부터 퇴비를 많이 줘서 땅을 만든다고 하던데요.
네. 다르죠. 파종 때부터 다릅니다. 유기농은 화학비료나 제초제를 전혀 안 쓰죠. 무농약은 예전부터 했었고 유기농 인증을 받은 건 3년째예요, 인증은 쌀 품목에 밀을 추가해서 받아요. 밀처럼 유기농하기 좋은 품목은 없어요. 비료 안 해도 되니까요. 저는 거름을 좀 많이 해요. 밀을 생산하고 남은 짚이나 부산물들을 다시 땅에다 돌려주는 순환농법으로 퇴비를 만들어서 뿌려요.
밀도 품종이 되게 다양하죠.
다양하죠. 그런데 저는 금강밀 한 가지 품종만 합니다.
금강밀 한 품종만 짓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수매와 관계가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저도 작년까지는 새금강, 금강, 백강 이렇게 세 가지 품종을 했었어요. 올해는 금강밀만 받는다고 해서 한 품종만 한 거죠. 금강밀이 중력분으로 가장 많이 쓰인다고 하더라고요.
밀을 수매하는 공장이 어떤 밀을 원하느냐에 따라서 재배 품종이 결정되는 구조군요.
그렇죠. 아무래도 거기서 안 받아주면 못 파는 거니까요. 처음에는 밀농사를 굉장히 많이 장려했었어요. 그런데 너무 포화 상태가 돼서 공장에 재고가 쌓이니까 못 받겠다고 한 거예요. 한동안 농가들 간에 갈등도 생기고 경지면적이 많이 줄었어요. 지금은 또 장려하는 추세이긴 합니다.
한율년 농부도 농사규모가 줄었나요?
저는 친환경으로 농사짓기 때문에 100% 전량 수매를 해줘서 면적이 안 줄었죠. 그래서 밀농가 마을협회장들 만나면 ‘친환경하면 다 받아주는데 왜 안 하느냐, 받아줄까 안 받아 줄까 걱정 안 해도 되는데 왜 안 하느냐’고 하는데 다들 친환경은 힘들다고 못 하겠다고 해요.
푸릇한 싹이 자라고 있는 한율년 농부의 밀밭
밀은 7월에 수매가 끝나면 조금 여유가 있다고 하던데요, 1년 밀농사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일 년 중 10월, 11월이 제일 한가하죠. 수확은 6월 초, 보통 6월 7일에서 9일 정도에 합니다. 날씨가 좋아야 해요. 비가 오면 안 돼요. 항상 날씨를 보고 일을 하죠.
밀 수확이 끝나면 6월 초에 바로 모내기 들어가서 20일까지는 끝내야 해요. 그리고 11월 초에 밀 파종을 하죠. 파종은 심혈을 기울여서 해야 하니까 이틀 정도는 잡아야 하는데 기계로 바로 논에다 해요. 파종하고 나면 물 관리를 잘 해줘야 하고요. 동계작물이라 그렇게 힘들거나 큰 피해도 없어요.
옛날에 어르신들이 보리밟기 한다고 하잖아요. 날씨가 추워서 땅이 얼면 뿌리와 흙 사이가 떠서 밀이 죽어버려요. 요즘은 일일이 밟지 않고 기계로 다짐질을 해주죠. 12월에도 날씨가 따뜻하면 밀싹이 올라와요. 겨울에 추우면 성장을 멈췄다가 봄이 되면 다시 쑥쑥 올라오죠. 그때는 하루하루가 달라요.
밀농사 전 과정을 혼자 짓는 건가요?
혼자는 못 하죠. 수확할 때는 한 사람이 계속 따라다니면서 탱크에 부어야 하니까 나 혼자 할 수는 없어요.
혹시 밀 외에 경제 활동을 위해서 따로 재배하는 작물이 있나요?
네. 많이 있어요. 복합영농입니다(웃음).
수박도 하고요, 작년에는 초당옥수수도 좀 해 봤고, 지금은 마늘을 심어 놨어요. 면적으로 치면 수박은 2천 평 정도 되고, 초당옥수수는 천 평 정도 돼요. 마늘은 작년에 처음 했는데 경험이 없고 작물을 잘 모르니까 병이 좀 있더라고요. 캘 때는 좋았어요. 병균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말리는 과정에서 텅 비어버리는 거예요. 저는 마늘을 심어놓으면 그냥 되는 줄 알았어요. 마늘에 비하면 밀은 진짜 쉬운 거예요. 심어 놓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웃음).
초당옥수수는 봄에 수확해서 자연의 뜰 김상수 농부(구례 단감 마이스터 김종옥 농부 아들)에게 보내요. 거기서 전부 취합해서 팔아줘요. 저희가 일일이 할 수 없거든요. 농부들은 제 값만 받을 수 있게 팔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죠. 고맙고.
30년 농사짓는 동안 어떤 점이 제일 어려운가요?
농사가 어렵다기보다 농촌에서 제일 어렵고 힘든 것은 인력 부족이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농사는 내가 마음먹고 하면 금방 하고, 오늘 못 한 걸 내일 할 수 있으면 내일 하면 돼요. 그런데 구례라는 지역이 좁다 보니까, 지역에서 봉사하고 단체 활동이 많이 일어나니까 농사 시간을 많이 뺏겨요. 지금도 맨날 나간다고 아내에게 한소리 듣고 나왔어요(웃음). 저는 청년회장도 해봤고 의용소방대장도 해봤어요. 지역에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봉사 차원에서도 해야 되니까 하고 있어요.
농민회 활동도 하신 것 같던데요.
20대에는 농민회 활동을 열심히 했어요. 아주 적극적으로. 그런데 몇 년 하다 보니까 주위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욕을 많이 먹더라고요. 맨날 빚만 지는 사람들이 농민회 활동을 한다고. 그래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 내 집안이 먼저다’ 해서 농민회 활동은 안 하는데 다른 단체 활동을 또 해요. 그런데 다 그 사람이 그 사람들이에요. 다들 그런 걸 좀 힘들어 해요. 그런데 하긴 해야 돼요. 하긴 해야 하는데…….
혹시 구례를 떠나거나 다른 일을 해 볼 생각도 해 보셨나요?
구례를 떠나서 다른 데 가서 뭘 하겠습니까, 고향 떠나서 잘 되면 몰라도. 내가 특별히 배운 것도 없지만 그래도 여기 있는 게 제일 마음 편해요. 큰돈은 못 벌어도 그냥 먹고 사는 거지요. 농사짓는 사람은 먹고 사는 것이 남는 거예요. 먹는 것이 남는 거예요.
구례의 한 카페에서 만나 농사 이야기를 들려주는 한율년 농부의 모습
농사 정보는 주로 어떻게 얻나요?
밀은 협의회장들 만나서 얘기하고 다른 작물은 작목반 만나서 얘기하는데 그것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에요(웃음). 밀 회장단은 각 면마다 있는데 밀공장 협의회 분들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다른 작물 얘기도 나올 수 있고 그런 거죠 뭐.
유기농하면 농사 일지를 기록하셔야 하죠? 꼼꼼하게 잘 하시는 편인가요? 요즘은 블로그에 적는 분들도 많던데요.
저는 직접 손으로 쓰죠. 컴퓨터랑은 안 친해서 블로그 같은 걸 하지는 않고요. 친환경 하면서 농사일지는 계속 쓰고 있는데 이 기록장을 인증 받고 놔두잖아요. 그러면 다음에 보려면 어디다 둔 지 몰라서 막 찾아요(웃음). 어떻게 찾아가지고 작년에 뭐 했더라 하면서 봐요. 이런 식이죠. 아마 다들 그럴 겁니다. 찾아서 보면 날짜만 좀 다르지 거의 비슷해요. 딱히 모아 놓은 것도 없고 워낙 정리를 못해서 남들한테 보여줄 정도도 못 돼요. 아직까지 누가 한 번도 보여 달라고 한 적도 없어요.
농사지을 시간이 부족해서 그게 좀 아쉽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농사지으면서 언제가 제일 뿌듯하고 보람된 순간이었습니까?
저는 큰돈보다는 살면서 애들 가르치고 키우는 게 보람되지요. 지금 큰애가 5학년, 둘째가 4학년, 셋째가 1학년, 막둥이가 두 살입니다. 요즘 막둥이 보는 맛에 삽니다. 그래서 농사 앞으로 계속 열심히 지어야 합니다(웃음).
기후 위기 얘기를 조금 하려고 하는데요. 작년에 구례는 큰 수해를 입었어요. 농부들을 만나면 기후변화로 아열대 작물로 바꿔야 하나 걱정하는 농부도 있고 최근에 병충해도 너무 많아졌다고 해요. 밀은 어떤가요?
밀도 그런 경우가 있어요. 밀을 빨리 심으면 4월, 5월 꽃 필 때 서리가 와서 굉장히 피해가 많아요. 작년에 고추 농사는 5월에 우박이 내려서 싹 떨어져버렸고요.
작년 수해가 났을 때 밀은 수확이 다 끝난 시기였는데 다른 작물들, 저희는 하우스 50% 정도가 잠겼어요. 보상도 아직 안 나왔고 모르겠어요. 조만간 된다하는데 언제나 될지, 또 얼마나 나올지 모르겠어요. 나와야 나오는 거지요. 저는 저지대에 있으니까 피해도 많았고, 하류에 있는 사람들은 시설이 많이 좋아졌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물대는 과정이 힘들어요.
요즘 농업, 농촌, 그리고 농부들을 지원하는 정책들이 많잖아요. 농부의 입장에서 필요한 지원을 요청한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군 보조금도 있고 정부 보조금도 많이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제도가 아주 좋다고는 생각 안 해요. 그 보조금을 통해서 힘을 얻고 뭔가 하려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또 그걸 바탕으로 열심히 해서 성공하면 좋은 거죠. 그런데 좀 달리 생각해보면 지원받아서 좀 해보다가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서 그게 좀 안타깝더라고요.
한편에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누구는 받고 누구는 못 받고 그런 얘기도 많이 나오고 있고요. 모순도 많아요. 설령 내가 받더라도 다른 사람이 배 아파하지 않아야 하고, 못 받은 사람은 자기도 열심히 해서 받으려고 해야 하는데 노력도 안하면서 남이 받으면 배 아파하는 사람도 있고, 또 그런 정보를 잘 알아서 지원만 받으려는 사람도 있어요.
우리 농부들은 그런 정보를 잘 몰라요. 그래서 저는 잘 안 받으려고 해요. 왜냐하면 그런데 의지를 하면 제가 좀 나태해지는 것 같아요. 단지 받은 건 농기계 보조금. 예전에는 50%까지 보조를 해줬는데 지금은 900만원으로 한도가 생긴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트랙터가 보통 1억원이 넘습니다.
그럼 9100만원을 농부가 부담해야 하나요?
그렇죠. 나머지는 자부담이죠. 보통 융자를 하지요. 빚을 내서 사서 돈을 좀 벌려고 하면 고장이 나요. 그래서 기계 관리도 잘해야 돼요. 많은 사람에게 많이 지원해주면 좋죠. 그런데 그게 안 되잖아요. 예를 들어 지원을 한번 받으면 2~3년은 지원대상이 안돼요. 어차피 4~5년은 있어야 다시 대상이 되는데 저희는 일을 하려면 당장 기계가 필요한데… 그래서 별로 바라지 않아요.
황금빛으로 익어가고 있는 밀 (사진출처 : 국립수목원)
요즘 농사를 짓겠다는 청년들도 많고, 중년들도 은퇴를 대비해서 미리 귀농, 귀촌해서 농사를 지으려는 사람들도 많아요.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은 없습니까?
저는 농사도 잘 못 짓고 말하는 재주가 없어서 저한테 물어오는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제 주위만 해도 농사짓겠다는 사람들은 많이 있어요. 도시에 나가 있는 동네 선배들도 ‘좀 있으면 내려가야지’ 해요. 고향에 와서 농사짓겠다고 하는데 100% 안 옵니다. 못 옵니다. 농사짓는 거 힘들어요.
젊은 분들이 귀농해서 농사짓겠다고 하는 분들 대단하십니다. 모든 걸 버리고 들어와야 하는데, 제 주위엔 없는데 그런 분들이 농사 제대로 짓겠다고 여기저기 많이 쫓아다니고 물어본다고 하더라고요. 광의면만 해도 귀농인이 많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 문척면에는 없어요. 기본적으로 뭐가 있어야 해볼 텐데 문척면에는 농사지을 땅이 없어요. 그래서 저도 밀을 여기저기 나눠짓고 있고요.
경작할 수 있는 땅이 별로 많이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논농사는 한 두 사람 지을 정도밖에 안 돼요.
앞으로 농사지으면서 해보고 싶은 게 있습니까?
저는 뭘 더 해보고 싶다보다는 이제 나이가 있으니까 조금 편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규모를 줄일 수도 있고 작물을 바꿀 수도 있는데 지금 돌파구를 찾아보려고 수박도 하고 초당옥수수, 마늘도 계속 해보는 거예요. 해봐야 아니까요. 초당옥수수는 작년에 노지에 했는데 괜찮았어요. 단기간에 수확할 수 있고 해 볼만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하우스에 한번 해보려고 계획하고 있어요.
지리산권 농부들이 좀 더 재미있게 농사를 지으며 살려면 어떤 지원이나 도움이 될까요? 지리산이음이 그런 활동들을 해보려고 합니다.
농사꾼이 농사지으면서 재미있게 사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돈’이죠.
저도 그렇고 솔직히 말해서 가장 기본적인 건 ‘삶의 질’이잖아요. 재밌게 사는 것도 삶의 질의 문제인데, 기본적인 자산이 있어야 행복을 가질 수 있다고 봐요. 마음을 놓은 분들은 도를 닦은 분들이겠지요.
요즘 농민소득, 농민 수당에 대한 얘기도 많이 나오는데요, 그런 걸 의미하는 건가요?
농민수당이 나온다고는 하던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것도 농민 개개인에게 줄지, 한 가구당 줄지 모르겠지만 자기가 열심히 해서 버는 게 제일 낫죠. 나라에서 지원금 많이 나오잖아요. 저도 바라고 한 건 아니지만 다자녀 가정이라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거 별로 신경 안 씁니다. 나오면 나오는 거고. 내가 주어진 일 제대로 해야지 정부가 뭘 해 줄 거라는 기대는 별로 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넷이고 늦게 낳아서 다른 사람들이 돈 많이 벌어야겠다고 하는데 그 생각하면 머리가 아픕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안 합니다. 애들 생각해서 계획을 잡으면 내 머리가 너무 아프고 인상만 써지고 한숨만 쉬어지니까. ‘현재에 충실하자’ 그렇게 살아요. 그게 최고 현명한 것 같아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한율년 농부가 농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엇인가요?
농사는 제가 노력하는 게 제일로 중요하죠. 우리 농가 중에 마늘농사가 제대로 안돼서 밭에서 시료 채취해서 성분 검사를 했더니 산도가 4.4가 나왔어요. 작물이 뿌리를 내릴 수 없는 땅인데 몰랐어요. 그런 땅이 있는가 싶었어요. 그걸 몰라서 작년에 망했어요. 땅이 그렇게 무서워요.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고 하잖아요. 하다 보면 잘 될 때가 있고 안 될 때도 있는데 우리도 노력을 많이 해야죠. 곡식이 더 잘 되려면 그냥 맨 땅에 심는 것과 땅을 잘 만들어 심는 게 다르다는 건 알아야죠. 저는 거름, 소퇴비를 많이 사용합니다. 땅을 완화 시키는 역할도 해준다고 그러더라고요.
저는 항상 밀을 갈게 되면 짚을 썰어 놓고 거름하고 갈아엎어서 로타리치고 파종을 하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시간이 아주 많이 걸려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좀 늦더라도 그렇게 해야죠. 땅에 거름을 한 것과 안 한 건 천지 차이예요.
특히 밀이 거름탐을 많이 하거든요. 거름을 아주 좋아합니다. 거름 안 뿌리고 비료만 하는 다른 농가들은 저보고 왜 이렇게 늦게 하느냐고 해요. 그런데 봄이 되면 아무래도 달라요. 그 때 다들 느끼죠. ‘아 거름을 해야 하는구나’ 저는 사람들한테 얘기합니다. ‘땅을 먼저 만들어라, 그래야 작물이 살 수 있다’ 농사는 그렇게 해야 하는 거예요. 그게 맞는 거예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몰랐으면 그냥 풀인가 싶었을 한율년 농부의 밀밭에는 초록빛 밀이 자라고 있었다. 땅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농부의 신념을 보여주듯 건강한 흙이 든든히 받치고 있다. 유기농을 지키기 위해 옆의 논까지 제초를 해 준다는 무심한 듯 무뚝뚝한 농부의 목소리에는 절실함과 자부심이 가득하다.
현재에 충실하고 누구에게 기대기보다 자신이 노력해서 얻는 것이 제일 좋다고 힘주어 말하는 30년차 농부의 ‘노오력’에 밀과 아이들도 쑥쑥 잘 자라주리라 믿는다.
글 이경원
기획, 기록, 연결로 변화를 만드는 일과 사람을 돕는다. 2014년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궁금해서 찾았던 지리산시골살이학교 덕분에 지리산이음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때는 몰랐다. 7년이 지난 2021년 구례 남원 산청 하동 함양을 다니며 ‘농사를 업으로 하는 농부’들의 이야기를 글로 전하게 될 줄은.
사진 채지연
진행 이현주
🌱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농사 30년 차 한율년 농부는 고향 구례에서 15년째 밀농사를 짓는다. 대농은 아니지만 문척면 외에도 구례에 몇 곳의 밀밭을 조성해 유기농과 관행농으로 밀농사를 짓고 있다고 한다.
사람이 없는 농촌에 살다 보니 청년회장도 하고, 의용소방대장도 하고 각종 기관, 단체 활동을 하고 있어 농사짓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한율년 농부를 어렵게 만났다. 무뚝뚝한 첫인상의 농부는 인터뷰가 난생 처음이라 무척 떨린다고 슬쩍 고백했다.
구례에서 만난 한율년 농부
구례가 고향인가요? 농사는 언제부터 지었는지요.
저는 구례에서 태어나서 고등학교까지 구례에서 자랐습니다. 졸업하고 잠깐 나가 있었는데 신청해 놓은 농업후계인 자금이 나왔다고 아버지가 연락을 하셔서 바로 들어왔죠. 그때부터 농사지어서 지금 30년 됐습니다. 뭐 별다른 기술도 없었고(웃음). 그 이전부터 기계장비로 아버지의 농사일을 거들었어요.
벼는 수도작으로 150마지기 정도 짓습니다. 처음부터 밀농사를 지었던 건 아니고 15년 전에 시작했어요. 그 당시만 해도 밀이 별로 돈이 안 되었거든요. 그때는 보리를 심었죠. 그런데 보리가 잘 쓰러져요. 그래서 기계로 일하기가 힘든데 밀은 잘 안 쓰러져요. 아무래도 보리보다 쉽죠. 그래서 밀로 바꿨습니다. 밀농사는 100마지기를 지었는데 올해[2021]는 50마지기만 했어요.
밀농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보리 키우기가 어려워서인가요?
그런 것도 있지만 결정적인 건 돈이죠. 벼만 심어서는 수익을 창출할 수 없으니까 이모작을 하잖아요. 그러니까 밀을 심게 되는 거죠. 밀, 보리는 동계작물이니까 벼를 수확하고 나서 밀을 심고, 밀을 수확한 다음에 바로 모내기에 들어가고. 이렇게 연이어서 할 수 있고 밀은 수확하면 받아주는데도 있고요.
지금 밀농사는 조합이나 공동농장 형태가 아니라 혼자 짓나요?
네. 농사는 개인으로 짓고 출하는 광의면에 있는 <우리밀가공공장>으로 전량 납품하고 있어요. 농사를 짓다 보면 판로가 제일 문제죠. 판로를 해결해 줄 공장이 있기 때문에 밀을 많이 심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판로가 걱정되면 농사 못 짓잖아요.
밀농사를 유기농과 관행농을 같이 한다고 들었어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유기농하는 분들은 밭 만들 때부터 퇴비를 많이 줘서 땅을 만든다고 하던데요.
네. 다르죠. 파종 때부터 다릅니다. 유기농은 화학비료나 제초제를 전혀 안 쓰죠. 무농약은 예전부터 했었고 유기농 인증을 받은 건 3년째예요, 인증은 쌀 품목에 밀을 추가해서 받아요. 밀처럼 유기농하기 좋은 품목은 없어요. 비료 안 해도 되니까요. 저는 거름을 좀 많이 해요. 밀을 생산하고 남은 짚이나 부산물들을 다시 땅에다 돌려주는 순환농법으로 퇴비를 만들어서 뿌려요.
밀도 품종이 되게 다양하죠.
다양하죠. 그런데 저는 금강밀 한 가지 품종만 합니다.
금강밀 한 품종만 짓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수매와 관계가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저도 작년까지는 새금강, 금강, 백강 이렇게 세 가지 품종을 했었어요. 올해는 금강밀만 받는다고 해서 한 품종만 한 거죠. 금강밀이 중력분으로 가장 많이 쓰인다고 하더라고요.
밀을 수매하는 공장이 어떤 밀을 원하느냐에 따라서 재배 품종이 결정되는 구조군요.
그렇죠. 아무래도 거기서 안 받아주면 못 파는 거니까요. 처음에는 밀농사를 굉장히 많이 장려했었어요. 그런데 너무 포화 상태가 돼서 공장에 재고가 쌓이니까 못 받겠다고 한 거예요. 한동안 농가들 간에 갈등도 생기고 경지면적이 많이 줄었어요. 지금은 또 장려하는 추세이긴 합니다.
한율년 농부도 농사규모가 줄었나요?
저는 친환경으로 농사짓기 때문에 100% 전량 수매를 해줘서 면적이 안 줄었죠. 그래서 밀농가 마을협회장들 만나면 ‘친환경하면 다 받아주는데 왜 안 하느냐, 받아줄까 안 받아 줄까 걱정 안 해도 되는데 왜 안 하느냐’고 하는데 다들 친환경은 힘들다고 못 하겠다고 해요.
푸릇한 싹이 자라고 있는 한율년 농부의 밀밭
밀은 7월에 수매가 끝나면 조금 여유가 있다고 하던데요, 1년 밀농사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일 년 중 10월, 11월이 제일 한가하죠. 수확은 6월 초, 보통 6월 7일에서 9일 정도에 합니다. 날씨가 좋아야 해요. 비가 오면 안 돼요. 항상 날씨를 보고 일을 하죠.
밀 수확이 끝나면 6월 초에 바로 모내기 들어가서 20일까지는 끝내야 해요. 그리고 11월 초에 밀 파종을 하죠. 파종은 심혈을 기울여서 해야 하니까 이틀 정도는 잡아야 하는데 기계로 바로 논에다 해요. 파종하고 나면 물 관리를 잘 해줘야 하고요. 동계작물이라 그렇게 힘들거나 큰 피해도 없어요.
옛날에 어르신들이 보리밟기 한다고 하잖아요. 날씨가 추워서 땅이 얼면 뿌리와 흙 사이가 떠서 밀이 죽어버려요. 요즘은 일일이 밟지 않고 기계로 다짐질을 해주죠. 12월에도 날씨가 따뜻하면 밀싹이 올라와요. 겨울에 추우면 성장을 멈췄다가 봄이 되면 다시 쑥쑥 올라오죠. 그때는 하루하루가 달라요.
밀농사 전 과정을 혼자 짓는 건가요?
혼자는 못 하죠. 수확할 때는 한 사람이 계속 따라다니면서 탱크에 부어야 하니까 나 혼자 할 수는 없어요.
혹시 밀 외에 경제 활동을 위해서 따로 재배하는 작물이 있나요?
네. 많이 있어요. 복합영농입니다(웃음).
수박도 하고요, 작년에는 초당옥수수도 좀 해 봤고, 지금은 마늘을 심어 놨어요. 면적으로 치면 수박은 2천 평 정도 되고, 초당옥수수는 천 평 정도 돼요. 마늘은 작년에 처음 했는데 경험이 없고 작물을 잘 모르니까 병이 좀 있더라고요. 캘 때는 좋았어요. 병균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말리는 과정에서 텅 비어버리는 거예요. 저는 마늘을 심어놓으면 그냥 되는 줄 알았어요. 마늘에 비하면 밀은 진짜 쉬운 거예요. 심어 놓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웃음).
초당옥수수는 봄에 수확해서 자연의 뜰 김상수 농부(구례 단감 마이스터 김종옥 농부 아들)에게 보내요. 거기서 전부 취합해서 팔아줘요. 저희가 일일이 할 수 없거든요. 농부들은 제 값만 받을 수 있게 팔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죠. 고맙고.
30년 농사짓는 동안 어떤 점이 제일 어려운가요?
농사가 어렵다기보다 농촌에서 제일 어렵고 힘든 것은 인력 부족이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농사는 내가 마음먹고 하면 금방 하고, 오늘 못 한 걸 내일 할 수 있으면 내일 하면 돼요. 그런데 구례라는 지역이 좁다 보니까, 지역에서 봉사하고 단체 활동이 많이 일어나니까 농사 시간을 많이 뺏겨요. 지금도 맨날 나간다고 아내에게 한소리 듣고 나왔어요(웃음). 저는 청년회장도 해봤고 의용소방대장도 해봤어요. 지역에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봉사 차원에서도 해야 되니까 하고 있어요.
농민회 활동도 하신 것 같던데요.
20대에는 농민회 활동을 열심히 했어요. 아주 적극적으로. 그런데 몇 년 하다 보니까 주위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욕을 많이 먹더라고요. 맨날 빚만 지는 사람들이 농민회 활동을 한다고. 그래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 내 집안이 먼저다’ 해서 농민회 활동은 안 하는데 다른 단체 활동을 또 해요. 그런데 다 그 사람이 그 사람들이에요. 다들 그런 걸 좀 힘들어 해요. 그런데 하긴 해야 돼요. 하긴 해야 하는데…….
혹시 구례를 떠나거나 다른 일을 해 볼 생각도 해 보셨나요?
구례를 떠나서 다른 데 가서 뭘 하겠습니까, 고향 떠나서 잘 되면 몰라도. 내가 특별히 배운 것도 없지만 그래도 여기 있는 게 제일 마음 편해요. 큰돈은 못 벌어도 그냥 먹고 사는 거지요. 농사짓는 사람은 먹고 사는 것이 남는 거예요. 먹는 것이 남는 거예요.
구례의 한 카페에서 만나 농사 이야기를 들려주는 한율년 농부의 모습
농사 정보는 주로 어떻게 얻나요?
밀은 협의회장들 만나서 얘기하고 다른 작물은 작목반 만나서 얘기하는데 그것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에요(웃음). 밀 회장단은 각 면마다 있는데 밀공장 협의회 분들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다른 작물 얘기도 나올 수 있고 그런 거죠 뭐.
유기농하면 농사 일지를 기록하셔야 하죠? 꼼꼼하게 잘 하시는 편인가요? 요즘은 블로그에 적는 분들도 많던데요.
저는 직접 손으로 쓰죠. 컴퓨터랑은 안 친해서 블로그 같은 걸 하지는 않고요. 친환경 하면서 농사일지는 계속 쓰고 있는데 이 기록장을 인증 받고 놔두잖아요. 그러면 다음에 보려면 어디다 둔 지 몰라서 막 찾아요(웃음). 어떻게 찾아가지고 작년에 뭐 했더라 하면서 봐요. 이런 식이죠. 아마 다들 그럴 겁니다. 찾아서 보면 날짜만 좀 다르지 거의 비슷해요. 딱히 모아 놓은 것도 없고 워낙 정리를 못해서 남들한테 보여줄 정도도 못 돼요. 아직까지 누가 한 번도 보여 달라고 한 적도 없어요.
농사지을 시간이 부족해서 그게 좀 아쉽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농사지으면서 언제가 제일 뿌듯하고 보람된 순간이었습니까?
저는 큰돈보다는 살면서 애들 가르치고 키우는 게 보람되지요. 지금 큰애가 5학년, 둘째가 4학년, 셋째가 1학년, 막둥이가 두 살입니다. 요즘 막둥이 보는 맛에 삽니다. 그래서 농사 앞으로 계속 열심히 지어야 합니다(웃음).
기후 위기 얘기를 조금 하려고 하는데요. 작년에 구례는 큰 수해를 입었어요. 농부들을 만나면 기후변화로 아열대 작물로 바꿔야 하나 걱정하는 농부도 있고 최근에 병충해도 너무 많아졌다고 해요. 밀은 어떤가요?
밀도 그런 경우가 있어요. 밀을 빨리 심으면 4월, 5월 꽃 필 때 서리가 와서 굉장히 피해가 많아요. 작년에 고추 농사는 5월에 우박이 내려서 싹 떨어져버렸고요.
작년 수해가 났을 때 밀은 수확이 다 끝난 시기였는데 다른 작물들, 저희는 하우스 50% 정도가 잠겼어요. 보상도 아직 안 나왔고 모르겠어요. 조만간 된다하는데 언제나 될지, 또 얼마나 나올지 모르겠어요. 나와야 나오는 거지요. 저는 저지대에 있으니까 피해도 많았고, 하류에 있는 사람들은 시설이 많이 좋아졌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물대는 과정이 힘들어요.
요즘 농업, 농촌, 그리고 농부들을 지원하는 정책들이 많잖아요. 농부의 입장에서 필요한 지원을 요청한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군 보조금도 있고 정부 보조금도 많이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제도가 아주 좋다고는 생각 안 해요. 그 보조금을 통해서 힘을 얻고 뭔가 하려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또 그걸 바탕으로 열심히 해서 성공하면 좋은 거죠. 그런데 좀 달리 생각해보면 지원받아서 좀 해보다가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서 그게 좀 안타깝더라고요.
한편에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누구는 받고 누구는 못 받고 그런 얘기도 많이 나오고 있고요. 모순도 많아요. 설령 내가 받더라도 다른 사람이 배 아파하지 않아야 하고, 못 받은 사람은 자기도 열심히 해서 받으려고 해야 하는데 노력도 안하면서 남이 받으면 배 아파하는 사람도 있고, 또 그런 정보를 잘 알아서 지원만 받으려는 사람도 있어요.
우리 농부들은 그런 정보를 잘 몰라요. 그래서 저는 잘 안 받으려고 해요. 왜냐하면 그런데 의지를 하면 제가 좀 나태해지는 것 같아요. 단지 받은 건 농기계 보조금. 예전에는 50%까지 보조를 해줬는데 지금은 900만원으로 한도가 생긴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트랙터가 보통 1억원이 넘습니다.
그럼 9100만원을 농부가 부담해야 하나요?
그렇죠. 나머지는 자부담이죠. 보통 융자를 하지요. 빚을 내서 사서 돈을 좀 벌려고 하면 고장이 나요. 그래서 기계 관리도 잘해야 돼요. 많은 사람에게 많이 지원해주면 좋죠. 그런데 그게 안 되잖아요. 예를 들어 지원을 한번 받으면 2~3년은 지원대상이 안돼요. 어차피 4~5년은 있어야 다시 대상이 되는데 저희는 일을 하려면 당장 기계가 필요한데… 그래서 별로 바라지 않아요.
황금빛으로 익어가고 있는 밀 (사진출처 : 국립수목원)
요즘 농사를 짓겠다는 청년들도 많고, 중년들도 은퇴를 대비해서 미리 귀농, 귀촌해서 농사를 지으려는 사람들도 많아요.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은 없습니까?
저는 농사도 잘 못 짓고 말하는 재주가 없어서 저한테 물어오는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제 주위만 해도 농사짓겠다는 사람들은 많이 있어요. 도시에 나가 있는 동네 선배들도 ‘좀 있으면 내려가야지’ 해요. 고향에 와서 농사짓겠다고 하는데 100% 안 옵니다. 못 옵니다. 농사짓는 거 힘들어요.
젊은 분들이 귀농해서 농사짓겠다고 하는 분들 대단하십니다. 모든 걸 버리고 들어와야 하는데, 제 주위엔 없는데 그런 분들이 농사 제대로 짓겠다고 여기저기 많이 쫓아다니고 물어본다고 하더라고요. 광의면만 해도 귀농인이 많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 문척면에는 없어요. 기본적으로 뭐가 있어야 해볼 텐데 문척면에는 농사지을 땅이 없어요. 그래서 저도 밀을 여기저기 나눠짓고 있고요.
경작할 수 있는 땅이 별로 많이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논농사는 한 두 사람 지을 정도밖에 안 돼요.
앞으로 농사지으면서 해보고 싶은 게 있습니까?
저는 뭘 더 해보고 싶다보다는 이제 나이가 있으니까 조금 편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규모를 줄일 수도 있고 작물을 바꿀 수도 있는데 지금 돌파구를 찾아보려고 수박도 하고 초당옥수수, 마늘도 계속 해보는 거예요. 해봐야 아니까요. 초당옥수수는 작년에 노지에 했는데 괜찮았어요. 단기간에 수확할 수 있고 해 볼만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하우스에 한번 해보려고 계획하고 있어요.
지리산권 농부들이 좀 더 재미있게 농사를 지으며 살려면 어떤 지원이나 도움이 될까요? 지리산이음이 그런 활동들을 해보려고 합니다.
농사꾼이 농사지으면서 재미있게 사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돈’이죠.
저도 그렇고 솔직히 말해서 가장 기본적인 건 ‘삶의 질’이잖아요. 재밌게 사는 것도 삶의 질의 문제인데, 기본적인 자산이 있어야 행복을 가질 수 있다고 봐요. 마음을 놓은 분들은 도를 닦은 분들이겠지요.
요즘 농민소득, 농민 수당에 대한 얘기도 많이 나오는데요, 그런 걸 의미하는 건가요?
농민수당이 나온다고는 하던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것도 농민 개개인에게 줄지, 한 가구당 줄지 모르겠지만 자기가 열심히 해서 버는 게 제일 낫죠. 나라에서 지원금 많이 나오잖아요. 저도 바라고 한 건 아니지만 다자녀 가정이라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거 별로 신경 안 씁니다. 나오면 나오는 거고. 내가 주어진 일 제대로 해야지 정부가 뭘 해 줄 거라는 기대는 별로 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넷이고 늦게 낳아서 다른 사람들이 돈 많이 벌어야겠다고 하는데 그 생각하면 머리가 아픕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안 합니다. 애들 생각해서 계획을 잡으면 내 머리가 너무 아프고 인상만 써지고 한숨만 쉬어지니까. ‘현재에 충실하자’ 그렇게 살아요. 그게 최고 현명한 것 같아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한율년 농부가 농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엇인가요?
농사는 제가 노력하는 게 제일로 중요하죠. 우리 농가 중에 마늘농사가 제대로 안돼서 밭에서 시료 채취해서 성분 검사를 했더니 산도가 4.4가 나왔어요. 작물이 뿌리를 내릴 수 없는 땅인데 몰랐어요. 그런 땅이 있는가 싶었어요. 그걸 몰라서 작년에 망했어요. 땅이 그렇게 무서워요.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고 하잖아요. 하다 보면 잘 될 때가 있고 안 될 때도 있는데 우리도 노력을 많이 해야죠. 곡식이 더 잘 되려면 그냥 맨 땅에 심는 것과 땅을 잘 만들어 심는 게 다르다는 건 알아야죠. 저는 거름, 소퇴비를 많이 사용합니다. 땅을 완화 시키는 역할도 해준다고 그러더라고요.
저는 항상 밀을 갈게 되면 짚을 썰어 놓고 거름하고 갈아엎어서 로타리치고 파종을 하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시간이 아주 많이 걸려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좀 늦더라도 그렇게 해야죠. 땅에 거름을 한 것과 안 한 건 천지 차이예요.
특히 밀이 거름탐을 많이 하거든요. 거름을 아주 좋아합니다. 거름 안 뿌리고 비료만 하는 다른 농가들은 저보고 왜 이렇게 늦게 하느냐고 해요. 그런데 봄이 되면 아무래도 달라요. 그 때 다들 느끼죠. ‘아 거름을 해야 하는구나’ 저는 사람들한테 얘기합니다. ‘땅을 먼저 만들어라, 그래야 작물이 살 수 있다’ 농사는 그렇게 해야 하는 거예요. 그게 맞는 거예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몰랐으면 그냥 풀인가 싶었을 한율년 농부의 밀밭에는 초록빛 밀이 자라고 있었다. 땅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농부의 신념을 보여주듯 건강한 흙이 든든히 받치고 있다. 유기농을 지키기 위해 옆의 논까지 제초를 해 준다는 무심한 듯 무뚝뚝한 농부의 목소리에는 절실함과 자부심이 가득하다.
현재에 충실하고 누구에게 기대기보다 자신이 노력해서 얻는 것이 제일 좋다고 힘주어 말하는 30년차 농부의 ‘노오력’에 밀과 아이들도 쑥쑥 잘 자라주리라 믿는다.
글 이경원
기획, 기록, 연결로 변화를 만드는 일과 사람을 돕는다. 2014년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궁금해서 찾았던 지리산시골살이학교 덕분에 지리산이음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때는 몰랐다. 7년이 지난 2021년 구례 남원 산청 하동 함양을 다니며 ‘농사를 업으로 하는 농부’들의 이야기를 글로 전하게 될 줄은.
사진 채지연
진행 이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