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 귀농, 귀촌 정착을 위해 진정성 있고 현명한 상담이 필요한 초보 귀농·귀촌자
- 반농반X의 삶을 택한, 나만의 X를 찾고 싶은, 언니의 조언이 필요한 여성 귀농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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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뒤햇살농장’ 강영경 대표는 산청에서 무농약 친환경 농사를 짓는 귀농 12년차 농부다. 직접 생산한 다양한 농산물은 로컬푸드 매장 산청 <농부애곳간>과 <진주텃밭>에 출하한다.
반농반X의 삶을 지향하는 강영경 농부는 귀농·귀촌 상담사, 대안학교 사감, 산청농민회 활동으로 사람과 지역, 사람과 사람, 사람과 정보를 이어주는 연결술사이기도 하다. 가을비 내리는 날, 산 중턱에 자리한 농부의 집에서 산청을 바라보니 이곳이 무릉도원이다. 정작 농부는 길어진 가을장마에 한숨이 늘고, 아침마다 밭에서 양봉용 모자를 쓰고 벌과 모기에 맞서야 한단다.

산청에서 만난 강영경 농부
2010년에 산청으로 귀농했다고 들었어요. 전업농이 아닌 ‘반농반X의 삶’을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반농 반X를 처음부터 선택한 건 아니에요. 사실은 전업농으로 살고 싶었어요.
그런데 저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고 젊은 시절 도시에서 시민단체 활동을 하다보니까 자본도 없고 땅도 없어서 전업농이 될 수 없었어요. 귀농해서 농사도 지으면서 직장을 다녔어요. 농사가 너무 재미있어서 잠깐 전업농을 해 본적도 있었어요. 둘 다 일을 그만두고 1년 정도를 농사만 지었는데 가계부가 계속 마이너스가 되는 거예요(웃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둘 다 다시 일을 시작했어요. 당연히 텃밭 농사는 계속 지었어요.
강영경 농부의 산청 정착기부터 들어봐야겠어요.
산청에 귀농해서 이사를 세 번 했거든요. 처음 3년은 마을재실 살림집에서 무상으로 살면서 동네 밤 산을 임대해서 밤농사를 지었어요. 5년 정도 밤농사를 지었는데 자연농을 했기 때문에 1년에 한 달 반, 수확시기에만 일을 했어요. 정착하려면 집도 있어야 하고, 그렇게 해서는 생활이 안 되죠. 그래서 계속 직장을 다녔어요.
다음 이사 간 곳에서 7년을 살았는데 큰 농지가 없어 500평정도 밭을 빌려서 좀 큰 텃밭 수준의 농사를 지었어요. 작년에 이 마을로 이사 왔어요. 3년 전에 이미 600평 연동하우스를 사서 남편은 전업농을 꿈꾸며 친환경으로 멜론과 애플수박 농사를 지었는데… 망했어요(웃음).
멜론과 애플수박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산청군 농민회에 자연농법연구회라는 소모임이 있었거든요. 땅을 살리는 농사공부를 같이 하면서 다른 지역에 사는 멘토 선생님이 유기농 멜론 농사 하는 걸 보고 따라한 거죠. 멜론은 난이도가 높은 작물인데다 시설농사도 처음인데 덜컥 친환경으로 시작한 거죠. 하우스가 오래돼 단열이나 환풍 시설도 부족하고 친환경 자재로 병충해가 안 잡혀서 애플수박은 열매가 주렁주렁 열렸는데도 당도가 안 나와 수확을 못했어요. 2년간 고생은 많이 했지만 우리 수준으로는 안 되는 거였죠.
남편은 지금 3동에 레몬과 포도나무를 심어 키우는 중이고, 나머지 2동은 제가 여름에는 생강을, 겨울에는 조생 양파를 무농약으로 재배하고 있어요.
양파와 생강 농사만 짓나요?
주종으로 하는 건 양파와 생강이에요. 제가 양파, 생강 같은 뿌리 식물을 좋아해요. 배추나 무처럼 벌레들이 좋아하는 작물은 친환경이 쉽지 않은데 양파나 생강은 풀만 잡아주면 비교적 쉽거든요. 생강은 감자처럼 생강을 잘라서 심는데 싹이 늦게 나지만 안 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양파는 씨앗을 심어 모종으로 키워 비닐 멀칭하고 심으니까 풀 잡을 때 좀 수월해요.
농사 멘토에게 배운 지식인가요? 농사를 지으면서 스스로 터득한 건가요?
지어 보니까 그렇던데요(웃음). 공부도 하고 직접 해보면서 알게 된 거죠. 저희 양파는 조생이라서 가을에 심어 4월부터 수확하니까 겨울을 나잖아요. 하우스가 따뜻해서 풀이 자라지만 그래도 봄, 여름만큼 자라지는 않아요. 화학비료 안 쓰고 농약 안치고 저희가 자가제조한 액비만으로 이렇게 농사짓는 게 좋아요. 생강은 자라면서 줄기, 잎에서도 연한 향이 나는데 참 좋더라고요.
4월에 양파를 수확하고 나면 그 자리에 생강을 심나요?
네. 올해는 고추도 친환경 재배교육 받고 70포기 심었어요. 작년에 멜론이 죽어버린 게 아까워서 고추를 몇 주 심었는데 하우스라 그런지 한겨울까지 수확할 수 있더라고요.
그럼 레몬이 아니라 고추를 본격적으로 해야 하는 건 아닐까요?
그 고민도 있어요. 친환경으로 소득이 될 작물이 뭘까 계속 생각하는데 내년에는 한 동 정도 소득 작물로 고추를 해 볼 생각이에요. 한편으론 제가 낮에 일이 많아지니까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긴 해요. 레몬과 포도나무 심은 하우스에 쪽파, 상추도 심었는데 겨울 내내 자라서 로컬푸드 매장에 내고 있어요. 큰돈은 안 되지만 소소하게 재미있어요.
소량이지만 다품종으로 계속 출하하니까 많은 분들이 ‘도대체 몇 개의 농사를 짓는 거냐’ 물어봐요. 4월에 나온 조생양파는 끝났지만 노지에 두 고랑 심었던 양파가 지금 매장이 있거든요. 그래서 농사를 크게 짓는 걸로 보이나 봐요(웃음). 농사로 돈을 엄청 많이 버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소량이에요.

앞치마와 모자를 차려 입고 밭에 선 강영경 농부
‘비온뒤 햇살농장’ 이름도 참 예쁘더라고요.
남편이 ‘비온뒤’고 제가 ‘햇살’이어서 비온뒤 햇살농장입니다.
매장에서 농장 이름 보고 ‘이 집 농사는 괜찮다. 양심적이고 친환경으로 짓는다’고 인정해주고 드시는 분들이 있으니까 그것도 굉장히 고맙죠.
강영경농부의 생산물은 <농부애곳간>과 <진주텃밭>에서만 판매하나요?
네. 처음에는 도시에 사는 지인들한테 판매하기도 하고 밤은 택배로 판매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산청에 사는 지인들로 줄였다가 지금은 모두 <농부애곳간>, <진주텃밭>에 내고 있어요. 왜냐하면 신경 쓸 일이 훨씬 적거든요. 수확해서 갖다 주면 팔아주니까요. 전에는 양파를 2kg씩 망에 넣어서 가져갔는데 요즘은 포장도 많이 안하는 추세라 박스째로 가져가요.
예전에 밤농사 지을 때는 농협에 수매를 했어요. 10월이 넘어가면 농협에서 더 이상 수매를 안 하는데 밤은 계속 나온단 말이에요. 그게 아까워서 도시에 사는 지인들에게 판매를 했어요. 엄청 반응이 좋았죠. 그런데 아무리 골라내도 속에 있는 밤벌레는 골라낼 수가 없는데 벌레 때문에 환불한 경우들이 있었어요. 돈보다 마음이 안 좋아서 택배는 못 하겠더라고요. 지금은 로컬푸드 매장들이 있어서 좋아요.
믿을 수 있는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네요.
(웃음) 다양한 걸 더 많이 지어달라고 얘기하시고 저도 농사가 재미있고 욕심도 나서 더 해보고 싶은데 생각보다 여력이 안 되네요. 올해 처음으로 낮에 농사지으려고 저녁에 하는 일을 구했거든요. 그런데 해보니까 힘들더라고요.
(집 아래 밭을 가리키며)여기도 다 밭인데 풀이 완전 난리잖아요. 묵혀 있는 밭을 빌려서 기계로 갈아보려고 했는데 돌이 너무 많아 일일이 손으로 일궜어요. 강낭콩, 옥수수 수확하고 후작으로 배추 심고, 서리태, 호박, 들깨, 토란도 심어놨거든요. 그런데 지금 계속 비가 오잖아요. 질척거려서 밭에 들어갈 수가 없어요. 풀은 너무 잘 자라고.
자연스럽게 기후위기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될 것 같은데요.
기후위기 심각해요. 농사짓기가 너무 힘들어졌어요. 지금 날씨가 농사절기에 맞는 날이 아니잖아요. 봄에는 갑자기 너무 추워져서 냉해 입고, 여름에는 가뭄 오고, 9월이 이렇게 비가 올 때가 아니잖아요. 햇볕이 가장 좋을 때인데 장마가 굉장히 오래 계속되고 있어요. 그러니까 병충해도 훨씬 더 심해져서 노지에서 농사를 제대로 짓기가 어려워요. 다들 앞으로 노지에서 어떻게 농사를 짓을 것인가, 노지 농사가 가능한가 걱정들이 많아요. 특히나 노지에서 친환경으로 농사짓는 건 더 어려워질 것 같아요.
비가 계속 오니까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에요. 당장 눈앞에 있는 들깨 밭에도 못 들어가고 그냥 손 놓고 있는 거예요. 배추도 겨우 심고 조금 더 심어보려고 밭을 만들려고 하는데 밭도 못 만들고 있어요. 제 바람은 우리 먹는 것 보다 조금 더 농사지어서 다양한 농산물을 내고 싶은 정도인데 제 여건도 그렇고 기후까지 너무 안 따라주니까 쉽지 않네요.
어떤 분은 지금 대한민국 농부를 걱정해야지 북극곰 걱정할 때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다양한 작물들을 실험하고, 소량다품종으로 친환경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는데요, 당연히 농사기록 하시겠죠?
영농일지는 쓰고 있어요. 친환경인증을 받으려면 일지는 기본으로 꼭 써야 하니까요. 농사에 관한 무슨 일을 했는지 기록하죠. 저보다 남편이 더 열심히 잘 써요.
10년이 됐는데도 늘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하고 초심자의 마음으로 농사를 짓고 있어요. 한 가지를 계획해서 전업으로 하는 분들은 3년만 해도 결과가 나오는데 저희는 농촌에 살아야겠다, 농사는 지어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전업농이 될 계획이나 준비, 여건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11년 동안 여러 가지 시도와 경험을 한 거죠.

왼쪽부터 인터뷰 중인 강영경, 이현주(진행), 이경원(작가)
강영경 농부에게 농사일지가 실제 농사에 도움이 되기도 하나요?
네. 실패의 경험들이 도움이 되죠(웃음). 남편이 애썼던 멜론은 아쉬움이 많아요. 제가 ‘이건 여기까지다’해서 멈춘 거라 남편은 작게라도 계속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언제든 하고 싶으면 다시 농사일지를 펼쳐보려고요.
그동안은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지으니 계속 환경이 바뀔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다양한 걸 시도했던 것 같아요. 이제 4년째 우리 하우스에서 농사를 지으니까 경험이 계속 쌓이겠죠? 앞으로 우리가 가진 시설과 규모에서 가장 적정하고 꾸준히 할 수 있는 친환경 농사를 소농으로 해 나가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어요.
전업농을 꿈꾸며 귀농한 농부의 입장에서 산청은 어떤 곳인가요?
산청은 귀촌하기는 좋은데 귀농하기는 좀 쉽지 않은 곳이에요. 농지가 많이 없어 농사를 지으려는 사람들한테는 땅값이 좀 비싸요. 대신 곶감을 하거나 양봉을 하거나 가공을 하는 분들은 정착하기가 좀 나은 것 같아요.
이제 강영경 농부의 X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해요. X에 어떤 걸 담으며 살고 있는지 궁금해요.
제 경우는 반농반X의 X가 직장이었던 경우가 많아요.
농업기술센터에서 귀농귀촌 상담사로, 장애인생활시설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기도 했어요. 면사무소에서 업무 보조도 했었고 올해 3월부터 대안학교 기숙사 사감으로 일하고 있어요.
이번 여름에 『반농반X의 삶』이라는 책을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제 눈이 반짝 뜨였어요. ‘이게 뭐지?’ 하고. 올해부터 낮에 농사지으면서 아버님을 돌보고 저녁에는 직장에서 일하는 삶으로 생활이 바뀐 데다 코로나로 사람들도 못 만나는 상황이었죠. 그 책을 보고 X에는 여러 가지가 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직장도 있고 사람들과 모임도 있잖아요.
이 얘기를 친구한테 했더니 바로 저한테 “햇살은 이미 반농반X잖아. 반농반연결술사.” 제가 연결해주는 사람이래요. 귀농·귀촌 상담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정보를 주고 사람들을 연결시켜주었던 일이 산청으로 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지금은 특별히 뭘 하고 있지 않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그럴 수도 있구나 싶어 좋았어요.
학교에서 아이들과 생활하니까 아이들을 바라봐주는 역할을 해요. 대안학교에 온 아이들은 대부분 다양한 삶을 고민하는 친구들이라 깊게는 아니지만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도 같이 얘기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저만의 X를 계속 찾아가고 싶어요. 앞으로도.
산청군 농민회 활동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농민회 활동을 했다고 말하기는 좀 부끄러운데요, 농민회 활동에 관심이 없었어요. 약간은 외면했던 것도 같아요. 도시에서도 활동은 충분히 했으니까. 남편은 내려와서 지역에서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고 집회에 나가기도 했지만 저는 직장을 다닌다는 이유로 거의 활동을 안했어요.
산청군 농민회는 없어졌다가 새롭게 만들어졌어요. 그러면서 농민회 자격도 농민이 아니어도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게 되었어요. ‘농민회가 제대로 되겠어?’ 생각했는데 꾸준히 하더라고요. 남편도 자연농법연구회 모임을 만들어서 농사 공부를 같이 하더라고요. 완전히 자연농은 아니지만 친환경 농사에 대해서 공부하는데 저도 농사를 지으니까 관심이 생겨서 소모임 활동을 같이 하게 됐어요. 공부도 하고 견학도 가다 보니까 되게 재미있었어요. 농사에도 도움이 되고.
그러다 농민회 안에서 여성 회원 소모임을 만들었어요. 산청에서 여성 모임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여성모임을 만들고 싶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20년 동안 여성 단체에서 일했어요. 여성이란 주제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이고, 농촌에서 여성문제를 함께 나누고 여성으로서 힘 받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쉽지가 않더라고요. 마침 농민회에서 여성회원 모임을 만들면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겠다는 얘기가 나와서 모임을 시작했죠.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에서 프로젝트 지원도 받게 되었고요.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는 2019 하반기 일반공모지원사업:지리산 작은변화의 시나리오 로 산청군 농민회 활성화를 위한 ‘농사체험 발자국’과 ‘여성회원모임 별노래’ 프로젝트를 지원했다. |
여성회원모임에는 어떤 분들이 참여 했는지, 어떤 활동을 했는지 궁금해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특이한 모임이었어요. 딸기 농사짓는 농부, 치유농장과 체험농장을 운영하는 분, 저처럼 반농하는 사람들, 농민회 회원이지만 학원을 운영하는 분, 상담사, 교사도 있었어요. 얼굴은 서로 아는데 깊이 있는 이야기는 나누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요. 타로 프로그램도 하고 통영 여행도 가고. 자기 얘기를 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나누고 힘을 받으며 자기를 찾아가는 프로그램을 많이 했어요.
어떻게 농민회 여성모임에 이렇게 다양한 분들이 모였나 궁금해지네요. 지금 어떻게 활동하고 있나요?
산청에 ‘목화장터’라는 여성들이 많이 모이는 굉장히 큰 네트워크가 있고 지속가능협의회에도 여성회원들이 많아요. 다양한 취미모임들도 있는데 여성을 주제로 한 모임이 별로 없어요. 그때 모인 구성원들도 ‘나는 농민회 회원이다, 여성농부다’ 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많이 없었어요. 농민회가 열린 구조를 갖고 있으니까 그냥 후원만 하고 이름만 올려놓는 정도가 많았죠.
저희가 마지막 만남에서 모임 이름을 예쁘게 지었거든요. 농사 농農이 별 진辰에 노래 곡曲 이잖아요. 그래서 ‘별노래’라고 지었어요. 농사는 별을 보고 짓는다고(웃음). 이름만 예쁘게 지어놓고 그 이후에 코로나로 만나지 못하고 있어요. 만나서 서로 알아가고 나누면서 함께 할 프로젝트를 계획하는 중에 코로나가 온 거예요. 내용이 단단하게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오랫동안 못 모이니까 같이 일하는 것도 좀 어렵더라고요. 마음은 늘 있고, 가끔씩 연락은 하지만 다 같이 못 모이는 아쉬움이 있죠.

다품종 소량으로 농사짓는 강영경 농부의 밭
농민회 소모임인 자연농법연구회 활동이 여성 모임으로 이어지게 되었는데요. 농사 정보도 연구회에서 주로 얻나요?
자연농법연구회에 모이는 농부들도 다양해요. 딸기, 감, 쌀 농사를 하는 분도 있고, 농사를 전업으로 하는 농부도 있고, 노지 농사를 하는 분도 있고요. 초기에는 공부를 같이 했는데 구성원들이 너무 다양하다 보니까 갈수록 같이 공부하기는 쉽지 않았어요. 그래도 서로 나눌 게 있고, 힘든 얘기도 하고 나면 서로 위로가 되니까 계속 만났어요. 그런데 지금은 못 모여서 아쉽죠.
혹시 도시의 지인들과 자주 연락하세요?
가끔 연락이 와요. 여기서 해야 할 일들이 많다보니까 아무래도 제가 적극적으로 연락은 잘 못해요. 가끔 연락 오면 무슨 농사를 짓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물어봐요. 오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동안은 먹고 사는 문제나 활동에서도 제가 모델로서 구체적으로 답을 얘기해줄 수 없었어요. 저도 지금까지는 계속 모색을 했던 같고요. 그래서 『반농반X의 삶』을 보고 답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 농촌에 와서 다 농사만 지을 필요는 없어. 근데 시골에 왔으면 텃밭 정도는 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 해도 돼’라고 이제는 얘기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강영경 농부의 실제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라 귀농, 귀촌을 꿈꾸지만 진짜 내가 시골 가서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도 힘이 될 것 같아요.
제가 귀농·귀촌 상담을 해 보니까 중년 이후에 힐링하러 농촌에 오는 분들도 있고, 농촌에 와서 의미 있고 재미있게 살아 보고 싶다는 분들도 있어요. 어떻게 왔든지 삶은 재미있어야 하잖아요. 삶이 재미있으려면 친구도 있어야 하고 보람도 있으면 좋지요. 그렇게 하려면 X가 필요한 것 같아요. 저는 산청이 자기만의 X를 많이 만드는 재미있는 곳이 되면 좋겠어요.
자기만의 X를 찾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시골에서 자기만의 X를 만들면서 살고 싶은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나요?
글쎄요. 어쨌든 경제적인 활동이 있어야 해요. 대신 돈은 노동력에 대한 대가로 주어지는 거니까 시간을 좀 적게 쓰고 적게 벌면서 시골에서 살다 보면 기회들이 생기고 스스로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방과 후 학교 교사를 한다거나 군에서 하는 여러 가지 공공일자리들도 많이 있더라고요. 지자체에서 하는 프로젝트 사업 활동가가 될 수도 있고요. 평생직장이나 일이 될 수는 없지만 경험을 쌓는 거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로 경제력이 해결되면 나머지 X는 지역에 맞는 걸로, 내가 원하는 걸로 알아보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은 집이 제일 중요하겠죠. 살아야 되니까(웃음).
귀농귀촌 상담사, 대안학교 기숙사 사감, 사회복지사까지. 강영경 농부의 X가 엄청 다양해요.
그걸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아요. 어떻게 이런 다양한 일들을 계속 찾아서 일을 하냐고 물어요. 저는 산청군청 홈페이지, 교육청 홈페이지, 워크넷을 활용해요. 워크넷에 들어가서 산청 일자리로 검색도 하고 군에서 하는 일자리 사업도 해봤어요. 면사무소에서 6개월간 업무 보조를 했는데 한 번도 안 해 본 일이잖아요. 근데 되게 공부가 되더라고요. 사람들 만나고 지역도 알게 되고.
면사무소, 청소년상담센터, 농업기술센터처럼 공공기관에서 일한 경험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귀농·귀촌에도 어차피 과도기가 필요하잖아요. 사람도 알아야 되고 지역도 알아야 되고. 일하면서 소속과 동료가 생기고 일로 만난 사람들이 자원으로 계속 쌓이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농촌에서 살아가는 데는 사람이 제일 큰 것 같아요.

산청에서 만난 강영경 농부
그게 바로 관계자원이 아닐까 싶어요. 어디든 그렇지만 농촌에서는 특히나 가장 든든한 비빌 언덕, 믿는 구석이 사람이죠.
그렇죠. 저는 누가 일손 필요하다고 하면 도우러 많이 갔어요. 품앗이도 가고 일당 받고 일하러도 많이 갔어요. 농번기에는 일손이 너무너무 필요하거든요. 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건 필요할 때 도움이 되는 거예요. 그래야 그 사람이 고마운 거잖아요. 산청은 감 딸 때, 곶감 깎을 때, 양파 캘 때가 제일 바빠요. 이때는 동시에 사람이 필요한데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럴 땐 무조건 도우러 가요. 봄에는 제다원에서 차 만드는 일도 해요. 참! 내년 봄에 일자리 필요한 분 있으면 저한테 얘기하세요. 4월부터 5월까지 제다원에서는 사람이 많이 필요해요.
이래서 연결술사라고 하는 거군요!
(웃음) 그러고 보니 제가 일자리 연결을 많이 했네요.
산청 농민회 여성 모임 외에 지리산권 농부들과 해보고 싶은 일이 있나요? 지원이 꼭 필요하다거나.
저는 시민단체에서 계속 일했기 때문에 늘 수입이 적었어요.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산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나이 들어서 대출 받아 이 집과 농사지을 땅을 샀단 말이에요. 계속 갚아나가야 하니까 일정 수입이 있어야 해요.
코로나 끝나면 여성 모임을 계속 하고 싶지만 낮에 농사짓고, 밤에 일하면서 이것까지 할 수 있을까 망설여져요. 가끔 30만 원 정도 받는 아르바이트를 하는데요, 딱 그 정도 활동비만 내게 주어진다면 그만큼의 시간을 낼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거잖아요. 그러면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여성 모임을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지원 사업처럼 활동이 크든 작든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 모임을 만들고 이끌어 가는 사람을 꾸준히 지원해 주면 좋겠어요. 제가 올해는 제 생활패턴을 만들고 적응하느라 여력이 없었지만 이제 어느 정도 자리도 잡았고 코로나도 좀 잠잠해지면 내년에는 저도 도전해 보고 싶어요.
현실조언이란 이런 것이다. 이처럼 현실적인 반농반X의 노하우를 듣게 될 줄 몰랐다. 이게 다 연결술사 강영경 농부가 나만의 X를 차곡차곡 쌓아온 덕분이다. 농촌에서 농사짓고 살기로 마음먹고 귀농한 이상 ‘내가 도시에서는 말이야…’는 통하지 않는다.
적게 벌고 적게 쓰면서 살다보면 나만의 X를 찾을 기회가 찾아오고 스스로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잘 살고 싶다면 망설임과 체면은 던져버려야 하지 않을까?
2021년 11월, 강영경 농부는 <산청 평화비건립위원회>에 이어 소녀상 보존과 평화와 인권을 위한 활동을 할 <함께 평화> 사무국장을 맡았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여성모임을 함께 한 회원들도 참여하고 있다니 더더욱 반갑다.
글 이경원
기획, 기록, 연결로 변화를 만드는 일과 사람을 돕는다. 2014년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궁금해서 찾았던 지리산시골살이학교 덕분에 지리산이음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때는 몰랐다. 7년이 지난 2021년 구례 남원 산청 하동 함양을 다니며 ‘농사를 업으로 하는 농부’들의 이야기를 글로 전하게 될 줄은.
사진 임현택
진행 이현주
🌱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비온뒤햇살농장’ 강영경 대표는 산청에서 무농약 친환경 농사를 짓는 귀농 12년차 농부다. 직접 생산한 다양한 농산물은 로컬푸드 매장 산청 <농부애곳간>과 <진주텃밭>에 출하한다.
반농반X의 삶을 지향하는 강영경 농부는 귀농·귀촌 상담사, 대안학교 사감, 산청농민회 활동으로 사람과 지역, 사람과 사람, 사람과 정보를 이어주는 연결술사이기도 하다. 가을비 내리는 날, 산 중턱에 자리한 농부의 집에서 산청을 바라보니 이곳이 무릉도원이다. 정작 농부는 길어진 가을장마에 한숨이 늘고, 아침마다 밭에서 양봉용 모자를 쓰고 벌과 모기에 맞서야 한단다.
산청에서 만난 강영경 농부
2010년에 산청으로 귀농했다고 들었어요. 전업농이 아닌 ‘반농반X의 삶’을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반농 반X를 처음부터 선택한 건 아니에요. 사실은 전업농으로 살고 싶었어요.
그런데 저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고 젊은 시절 도시에서 시민단체 활동을 하다보니까 자본도 없고 땅도 없어서 전업농이 될 수 없었어요. 귀농해서 농사도 지으면서 직장을 다녔어요. 농사가 너무 재미있어서 잠깐 전업농을 해 본적도 있었어요. 둘 다 일을 그만두고 1년 정도를 농사만 지었는데 가계부가 계속 마이너스가 되는 거예요(웃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둘 다 다시 일을 시작했어요. 당연히 텃밭 농사는 계속 지었어요.
강영경 농부의 산청 정착기부터 들어봐야겠어요.
산청에 귀농해서 이사를 세 번 했거든요. 처음 3년은 마을재실 살림집에서 무상으로 살면서 동네 밤 산을 임대해서 밤농사를 지었어요. 5년 정도 밤농사를 지었는데 자연농을 했기 때문에 1년에 한 달 반, 수확시기에만 일을 했어요. 정착하려면 집도 있어야 하고, 그렇게 해서는 생활이 안 되죠. 그래서 계속 직장을 다녔어요.
다음 이사 간 곳에서 7년을 살았는데 큰 농지가 없어 500평정도 밭을 빌려서 좀 큰 텃밭 수준의 농사를 지었어요. 작년에 이 마을로 이사 왔어요. 3년 전에 이미 600평 연동하우스를 사서 남편은 전업농을 꿈꾸며 친환경으로 멜론과 애플수박 농사를 지었는데… 망했어요(웃음).
멜론과 애플수박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산청군 농민회에 자연농법연구회라는 소모임이 있었거든요. 땅을 살리는 농사공부를 같이 하면서 다른 지역에 사는 멘토 선생님이 유기농 멜론 농사 하는 걸 보고 따라한 거죠. 멜론은 난이도가 높은 작물인데다 시설농사도 처음인데 덜컥 친환경으로 시작한 거죠. 하우스가 오래돼 단열이나 환풍 시설도 부족하고 친환경 자재로 병충해가 안 잡혀서 애플수박은 열매가 주렁주렁 열렸는데도 당도가 안 나와 수확을 못했어요. 2년간 고생은 많이 했지만 우리 수준으로는 안 되는 거였죠.
남편은 지금 3동에 레몬과 포도나무를 심어 키우는 중이고, 나머지 2동은 제가 여름에는 생강을, 겨울에는 조생 양파를 무농약으로 재배하고 있어요.
양파와 생강 농사만 짓나요?
주종으로 하는 건 양파와 생강이에요. 제가 양파, 생강 같은 뿌리 식물을 좋아해요. 배추나 무처럼 벌레들이 좋아하는 작물은 친환경이 쉽지 않은데 양파나 생강은 풀만 잡아주면 비교적 쉽거든요. 생강은 감자처럼 생강을 잘라서 심는데 싹이 늦게 나지만 안 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양파는 씨앗을 심어 모종으로 키워 비닐 멀칭하고 심으니까 풀 잡을 때 좀 수월해요.
농사 멘토에게 배운 지식인가요? 농사를 지으면서 스스로 터득한 건가요?
지어 보니까 그렇던데요(웃음). 공부도 하고 직접 해보면서 알게 된 거죠. 저희 양파는 조생이라서 가을에 심어 4월부터 수확하니까 겨울을 나잖아요. 하우스가 따뜻해서 풀이 자라지만 그래도 봄, 여름만큼 자라지는 않아요. 화학비료 안 쓰고 농약 안치고 저희가 자가제조한 액비만으로 이렇게 농사짓는 게 좋아요. 생강은 자라면서 줄기, 잎에서도 연한 향이 나는데 참 좋더라고요.
4월에 양파를 수확하고 나면 그 자리에 생강을 심나요?
네. 올해는 고추도 친환경 재배교육 받고 70포기 심었어요. 작년에 멜론이 죽어버린 게 아까워서 고추를 몇 주 심었는데 하우스라 그런지 한겨울까지 수확할 수 있더라고요.
그럼 레몬이 아니라 고추를 본격적으로 해야 하는 건 아닐까요?
그 고민도 있어요. 친환경으로 소득이 될 작물이 뭘까 계속 생각하는데 내년에는 한 동 정도 소득 작물로 고추를 해 볼 생각이에요. 한편으론 제가 낮에 일이 많아지니까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긴 해요. 레몬과 포도나무 심은 하우스에 쪽파, 상추도 심었는데 겨울 내내 자라서 로컬푸드 매장에 내고 있어요. 큰돈은 안 되지만 소소하게 재미있어요.
소량이지만 다품종으로 계속 출하하니까 많은 분들이 ‘도대체 몇 개의 농사를 짓는 거냐’ 물어봐요. 4월에 나온 조생양파는 끝났지만 노지에 두 고랑 심었던 양파가 지금 매장이 있거든요. 그래서 농사를 크게 짓는 걸로 보이나 봐요(웃음). 농사로 돈을 엄청 많이 버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소량이에요.
앞치마와 모자를 차려 입고 밭에 선 강영경 농부
‘비온뒤 햇살농장’ 이름도 참 예쁘더라고요.
남편이 ‘비온뒤’고 제가 ‘햇살’이어서 비온뒤 햇살농장입니다.
매장에서 농장 이름 보고 ‘이 집 농사는 괜찮다. 양심적이고 친환경으로 짓는다’고 인정해주고 드시는 분들이 있으니까 그것도 굉장히 고맙죠.
강영경농부의 생산물은 <농부애곳간>과 <진주텃밭>에서만 판매하나요?
네. 처음에는 도시에 사는 지인들한테 판매하기도 하고 밤은 택배로 판매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산청에 사는 지인들로 줄였다가 지금은 모두 <농부애곳간>, <진주텃밭>에 내고 있어요. 왜냐하면 신경 쓸 일이 훨씬 적거든요. 수확해서 갖다 주면 팔아주니까요. 전에는 양파를 2kg씩 망에 넣어서 가져갔는데 요즘은 포장도 많이 안하는 추세라 박스째로 가져가요.
예전에 밤농사 지을 때는 농협에 수매를 했어요. 10월이 넘어가면 농협에서 더 이상 수매를 안 하는데 밤은 계속 나온단 말이에요. 그게 아까워서 도시에 사는 지인들에게 판매를 했어요. 엄청 반응이 좋았죠. 그런데 아무리 골라내도 속에 있는 밤벌레는 골라낼 수가 없는데 벌레 때문에 환불한 경우들이 있었어요. 돈보다 마음이 안 좋아서 택배는 못 하겠더라고요. 지금은 로컬푸드 매장들이 있어서 좋아요.
믿을 수 있는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네요.
(웃음) 다양한 걸 더 많이 지어달라고 얘기하시고 저도 농사가 재미있고 욕심도 나서 더 해보고 싶은데 생각보다 여력이 안 되네요. 올해 처음으로 낮에 농사지으려고 저녁에 하는 일을 구했거든요. 그런데 해보니까 힘들더라고요.
(집 아래 밭을 가리키며)여기도 다 밭인데 풀이 완전 난리잖아요. 묵혀 있는 밭을 빌려서 기계로 갈아보려고 했는데 돌이 너무 많아 일일이 손으로 일궜어요. 강낭콩, 옥수수 수확하고 후작으로 배추 심고, 서리태, 호박, 들깨, 토란도 심어놨거든요. 그런데 지금 계속 비가 오잖아요. 질척거려서 밭에 들어갈 수가 없어요. 풀은 너무 잘 자라고.
자연스럽게 기후위기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될 것 같은데요.
기후위기 심각해요. 농사짓기가 너무 힘들어졌어요. 지금 날씨가 농사절기에 맞는 날이 아니잖아요. 봄에는 갑자기 너무 추워져서 냉해 입고, 여름에는 가뭄 오고, 9월이 이렇게 비가 올 때가 아니잖아요. 햇볕이 가장 좋을 때인데 장마가 굉장히 오래 계속되고 있어요. 그러니까 병충해도 훨씬 더 심해져서 노지에서 농사를 제대로 짓기가 어려워요. 다들 앞으로 노지에서 어떻게 농사를 짓을 것인가, 노지 농사가 가능한가 걱정들이 많아요. 특히나 노지에서 친환경으로 농사짓는 건 더 어려워질 것 같아요.
비가 계속 오니까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에요. 당장 눈앞에 있는 들깨 밭에도 못 들어가고 그냥 손 놓고 있는 거예요. 배추도 겨우 심고 조금 더 심어보려고 밭을 만들려고 하는데 밭도 못 만들고 있어요. 제 바람은 우리 먹는 것 보다 조금 더 농사지어서 다양한 농산물을 내고 싶은 정도인데 제 여건도 그렇고 기후까지 너무 안 따라주니까 쉽지 않네요.
어떤 분은 지금 대한민국 농부를 걱정해야지 북극곰 걱정할 때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다양한 작물들을 실험하고, 소량다품종으로 친환경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는데요, 당연히 농사기록 하시겠죠?
영농일지는 쓰고 있어요. 친환경인증을 받으려면 일지는 기본으로 꼭 써야 하니까요. 농사에 관한 무슨 일을 했는지 기록하죠. 저보다 남편이 더 열심히 잘 써요.
10년이 됐는데도 늘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하고 초심자의 마음으로 농사를 짓고 있어요. 한 가지를 계획해서 전업으로 하는 분들은 3년만 해도 결과가 나오는데 저희는 농촌에 살아야겠다, 농사는 지어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전업농이 될 계획이나 준비, 여건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11년 동안 여러 가지 시도와 경험을 한 거죠.
왼쪽부터 인터뷰 중인 강영경, 이현주(진행), 이경원(작가)
강영경 농부에게 농사일지가 실제 농사에 도움이 되기도 하나요?
네. 실패의 경험들이 도움이 되죠(웃음). 남편이 애썼던 멜론은 아쉬움이 많아요. 제가 ‘이건 여기까지다’해서 멈춘 거라 남편은 작게라도 계속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언제든 하고 싶으면 다시 농사일지를 펼쳐보려고요.
그동안은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지으니 계속 환경이 바뀔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다양한 걸 시도했던 것 같아요. 이제 4년째 우리 하우스에서 농사를 지으니까 경험이 계속 쌓이겠죠? 앞으로 우리가 가진 시설과 규모에서 가장 적정하고 꾸준히 할 수 있는 친환경 농사를 소농으로 해 나가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어요.
전업농을 꿈꾸며 귀농한 농부의 입장에서 산청은 어떤 곳인가요?
산청은 귀촌하기는 좋은데 귀농하기는 좀 쉽지 않은 곳이에요. 농지가 많이 없어 농사를 지으려는 사람들한테는 땅값이 좀 비싸요. 대신 곶감을 하거나 양봉을 하거나 가공을 하는 분들은 정착하기가 좀 나은 것 같아요.
이제 강영경 농부의 X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해요. X에 어떤 걸 담으며 살고 있는지 궁금해요.
제 경우는 반농반X의 X가 직장이었던 경우가 많아요.
농업기술센터에서 귀농귀촌 상담사로, 장애인생활시설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기도 했어요. 면사무소에서 업무 보조도 했었고 올해 3월부터 대안학교 기숙사 사감으로 일하고 있어요.
이번 여름에 『반농반X의 삶』이라는 책을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제 눈이 반짝 뜨였어요. ‘이게 뭐지?’ 하고. 올해부터 낮에 농사지으면서 아버님을 돌보고 저녁에는 직장에서 일하는 삶으로 생활이 바뀐 데다 코로나로 사람들도 못 만나는 상황이었죠. 그 책을 보고 X에는 여러 가지가 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직장도 있고 사람들과 모임도 있잖아요.
이 얘기를 친구한테 했더니 바로 저한테 “햇살은 이미 반농반X잖아. 반농반연결술사.” 제가 연결해주는 사람이래요. 귀농·귀촌 상담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정보를 주고 사람들을 연결시켜주었던 일이 산청으로 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지금은 특별히 뭘 하고 있지 않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그럴 수도 있구나 싶어 좋았어요.
학교에서 아이들과 생활하니까 아이들을 바라봐주는 역할을 해요. 대안학교에 온 아이들은 대부분 다양한 삶을 고민하는 친구들이라 깊게는 아니지만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도 같이 얘기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저만의 X를 계속 찾아가고 싶어요. 앞으로도.
산청군 농민회 활동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농민회 활동을 했다고 말하기는 좀 부끄러운데요, 농민회 활동에 관심이 없었어요. 약간은 외면했던 것도 같아요. 도시에서도 활동은 충분히 했으니까. 남편은 내려와서 지역에서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고 집회에 나가기도 했지만 저는 직장을 다닌다는 이유로 거의 활동을 안했어요.
산청군 농민회는 없어졌다가 새롭게 만들어졌어요. 그러면서 농민회 자격도 농민이 아니어도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게 되었어요. ‘농민회가 제대로 되겠어?’ 생각했는데 꾸준히 하더라고요. 남편도 자연농법연구회 모임을 만들어서 농사 공부를 같이 하더라고요. 완전히 자연농은 아니지만 친환경 농사에 대해서 공부하는데 저도 농사를 지으니까 관심이 생겨서 소모임 활동을 같이 하게 됐어요. 공부도 하고 견학도 가다 보니까 되게 재미있었어요. 농사에도 도움이 되고.
그러다 농민회 안에서 여성 회원 소모임을 만들었어요. 산청에서 여성 모임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여성모임을 만들고 싶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20년 동안 여성 단체에서 일했어요. 여성이란 주제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이고, 농촌에서 여성문제를 함께 나누고 여성으로서 힘 받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쉽지가 않더라고요. 마침 농민회에서 여성회원 모임을 만들면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겠다는 얘기가 나와서 모임을 시작했죠.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에서 프로젝트 지원도 받게 되었고요.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는 2019 하반기 일반공모지원사업:지리산 작은변화의 시나리오 로 산청군 농민회 활성화를 위한 ‘농사체험 발자국’과 ‘여성회원모임 별노래’ 프로젝트를 지원했다.
여성회원모임에는 어떤 분들이 참여 했는지, 어떤 활동을 했는지 궁금해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특이한 모임이었어요. 딸기 농사짓는 농부, 치유농장과 체험농장을 운영하는 분, 저처럼 반농하는 사람들, 농민회 회원이지만 학원을 운영하는 분, 상담사, 교사도 있었어요. 얼굴은 서로 아는데 깊이 있는 이야기는 나누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요. 타로 프로그램도 하고 통영 여행도 가고. 자기 얘기를 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나누고 힘을 받으며 자기를 찾아가는 프로그램을 많이 했어요.
어떻게 농민회 여성모임에 이렇게 다양한 분들이 모였나 궁금해지네요. 지금 어떻게 활동하고 있나요?
산청에 ‘목화장터’라는 여성들이 많이 모이는 굉장히 큰 네트워크가 있고 지속가능협의회에도 여성회원들이 많아요. 다양한 취미모임들도 있는데 여성을 주제로 한 모임이 별로 없어요. 그때 모인 구성원들도 ‘나는 농민회 회원이다, 여성농부다’ 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많이 없었어요. 농민회가 열린 구조를 갖고 있으니까 그냥 후원만 하고 이름만 올려놓는 정도가 많았죠.
저희가 마지막 만남에서 모임 이름을 예쁘게 지었거든요. 농사 농農이 별 진辰에 노래 곡曲 이잖아요. 그래서 ‘별노래’라고 지었어요. 농사는 별을 보고 짓는다고(웃음). 이름만 예쁘게 지어놓고 그 이후에 코로나로 만나지 못하고 있어요. 만나서 서로 알아가고 나누면서 함께 할 프로젝트를 계획하는 중에 코로나가 온 거예요. 내용이 단단하게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오랫동안 못 모이니까 같이 일하는 것도 좀 어렵더라고요. 마음은 늘 있고, 가끔씩 연락은 하지만 다 같이 못 모이는 아쉬움이 있죠.
다품종 소량으로 농사짓는 강영경 농부의 밭
농민회 소모임인 자연농법연구회 활동이 여성 모임으로 이어지게 되었는데요. 농사 정보도 연구회에서 주로 얻나요?
자연농법연구회에 모이는 농부들도 다양해요. 딸기, 감, 쌀 농사를 하는 분도 있고, 농사를 전업으로 하는 농부도 있고, 노지 농사를 하는 분도 있고요. 초기에는 공부를 같이 했는데 구성원들이 너무 다양하다 보니까 갈수록 같이 공부하기는 쉽지 않았어요. 그래도 서로 나눌 게 있고, 힘든 얘기도 하고 나면 서로 위로가 되니까 계속 만났어요. 그런데 지금은 못 모여서 아쉽죠.
혹시 도시의 지인들과 자주 연락하세요?
가끔 연락이 와요. 여기서 해야 할 일들이 많다보니까 아무래도 제가 적극적으로 연락은 잘 못해요. 가끔 연락 오면 무슨 농사를 짓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물어봐요. 오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동안은 먹고 사는 문제나 활동에서도 제가 모델로서 구체적으로 답을 얘기해줄 수 없었어요. 저도 지금까지는 계속 모색을 했던 같고요. 그래서 『반농반X의 삶』을 보고 답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 농촌에 와서 다 농사만 지을 필요는 없어. 근데 시골에 왔으면 텃밭 정도는 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 해도 돼’라고 이제는 얘기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강영경 농부의 실제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라 귀농, 귀촌을 꿈꾸지만 진짜 내가 시골 가서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도 힘이 될 것 같아요.
제가 귀농·귀촌 상담을 해 보니까 중년 이후에 힐링하러 농촌에 오는 분들도 있고, 농촌에 와서 의미 있고 재미있게 살아 보고 싶다는 분들도 있어요. 어떻게 왔든지 삶은 재미있어야 하잖아요. 삶이 재미있으려면 친구도 있어야 하고 보람도 있으면 좋지요. 그렇게 하려면 X가 필요한 것 같아요. 저는 산청이 자기만의 X를 많이 만드는 재미있는 곳이 되면 좋겠어요.
자기만의 X를 찾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시골에서 자기만의 X를 만들면서 살고 싶은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나요?
글쎄요. 어쨌든 경제적인 활동이 있어야 해요. 대신 돈은 노동력에 대한 대가로 주어지는 거니까 시간을 좀 적게 쓰고 적게 벌면서 시골에서 살다 보면 기회들이 생기고 스스로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방과 후 학교 교사를 한다거나 군에서 하는 여러 가지 공공일자리들도 많이 있더라고요. 지자체에서 하는 프로젝트 사업 활동가가 될 수도 있고요. 평생직장이나 일이 될 수는 없지만 경험을 쌓는 거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로 경제력이 해결되면 나머지 X는 지역에 맞는 걸로, 내가 원하는 걸로 알아보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은 집이 제일 중요하겠죠. 살아야 되니까(웃음).
귀농귀촌 상담사, 대안학교 기숙사 사감, 사회복지사까지. 강영경 농부의 X가 엄청 다양해요.
그걸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아요. 어떻게 이런 다양한 일들을 계속 찾아서 일을 하냐고 물어요. 저는 산청군청 홈페이지, 교육청 홈페이지, 워크넷을 활용해요. 워크넷에 들어가서 산청 일자리로 검색도 하고 군에서 하는 일자리 사업도 해봤어요. 면사무소에서 6개월간 업무 보조를 했는데 한 번도 안 해 본 일이잖아요. 근데 되게 공부가 되더라고요. 사람들 만나고 지역도 알게 되고.
면사무소, 청소년상담센터, 농업기술센터처럼 공공기관에서 일한 경험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귀농·귀촌에도 어차피 과도기가 필요하잖아요. 사람도 알아야 되고 지역도 알아야 되고. 일하면서 소속과 동료가 생기고 일로 만난 사람들이 자원으로 계속 쌓이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농촌에서 살아가는 데는 사람이 제일 큰 것 같아요.
산청에서 만난 강영경 농부
그게 바로 관계자원이 아닐까 싶어요. 어디든 그렇지만 농촌에서는 특히나 가장 든든한 비빌 언덕, 믿는 구석이 사람이죠.
그렇죠. 저는 누가 일손 필요하다고 하면 도우러 많이 갔어요. 품앗이도 가고 일당 받고 일하러도 많이 갔어요. 농번기에는 일손이 너무너무 필요하거든요. 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건 필요할 때 도움이 되는 거예요. 그래야 그 사람이 고마운 거잖아요. 산청은 감 딸 때, 곶감 깎을 때, 양파 캘 때가 제일 바빠요. 이때는 동시에 사람이 필요한데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럴 땐 무조건 도우러 가요. 봄에는 제다원에서 차 만드는 일도 해요. 참! 내년 봄에 일자리 필요한 분 있으면 저한테 얘기하세요. 4월부터 5월까지 제다원에서는 사람이 많이 필요해요.
이래서 연결술사라고 하는 거군요!
(웃음) 그러고 보니 제가 일자리 연결을 많이 했네요.
산청 농민회 여성 모임 외에 지리산권 농부들과 해보고 싶은 일이 있나요? 지원이 꼭 필요하다거나.
저는 시민단체에서 계속 일했기 때문에 늘 수입이 적었어요.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산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나이 들어서 대출 받아 이 집과 농사지을 땅을 샀단 말이에요. 계속 갚아나가야 하니까 일정 수입이 있어야 해요.
코로나 끝나면 여성 모임을 계속 하고 싶지만 낮에 농사짓고, 밤에 일하면서 이것까지 할 수 있을까 망설여져요. 가끔 30만 원 정도 받는 아르바이트를 하는데요, 딱 그 정도 활동비만 내게 주어진다면 그만큼의 시간을 낼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거잖아요. 그러면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여성 모임을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지원 사업처럼 활동이 크든 작든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 모임을 만들고 이끌어 가는 사람을 꾸준히 지원해 주면 좋겠어요. 제가 올해는 제 생활패턴을 만들고 적응하느라 여력이 없었지만 이제 어느 정도 자리도 잡았고 코로나도 좀 잠잠해지면 내년에는 저도 도전해 보고 싶어요.
현실조언이란 이런 것이다. 이처럼 현실적인 반농반X의 노하우를 듣게 될 줄 몰랐다. 이게 다 연결술사 강영경 농부가 나만의 X를 차곡차곡 쌓아온 덕분이다. 농촌에서 농사짓고 살기로 마음먹고 귀농한 이상 ‘내가 도시에서는 말이야…’는 통하지 않는다.
적게 벌고 적게 쓰면서 살다보면 나만의 X를 찾을 기회가 찾아오고 스스로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잘 살고 싶다면 망설임과 체면은 던져버려야 하지 않을까?
2021년 11월, 강영경 농부는 <산청 평화비건립위원회>에 이어 소녀상 보존과 평화와 인권을 위한 활동을 할 <함께 평화> 사무국장을 맡았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여성모임을 함께 한 회원들도 참여하고 있다니 더더욱 반갑다.
글 이경원
기획, 기록, 연결로 변화를 만드는 일과 사람을 돕는다. 2014년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궁금해서 찾았던 지리산시골살이학교 덕분에 지리산이음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때는 몰랐다. 7년이 지난 2021년 구례 남원 산청 하동 함양을 다니며 ‘농사를 업으로 하는 농부’들의 이야기를 글로 전하게 될 줄은.
사진 임현택
진행 이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