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 글로 자연농을 배웠다가 실패한 초보농부
- 사당역을 지날 때마다 귀농, 귀촌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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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서석곤은 2008년 귀농해 다품종소량으로 14년 째 논농사, 밭농사, 고사리농사를 짓고 있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서석곤은 기본소득만 주어져도 세상에서 가장 즐겁게 농사지을 농부’라는 말을 들었다. 1년 중 가장 바쁘다는 6월, 지리산 작은변화베이스캠프 <들썩>에서 농부 서석곤을 만났다. 첫 만남의 어색함을 지리산 시골살이학교* 이야기로 풀고 궁금했던 고사리 농사에 대해 물었다.
| * 지리산시골살이학교는 시골에서의 대안적인 삶을 제시하고자 지리산이음이 진행했던 프로그램으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6기가 운영되었다. |

옥수수밭에 서 있는 서석곤 농부
산내농장 고사리가 유명하죠, 올해 산내 고사리 농사가 잘 안되었다고 하던데요, 어떻습니까?
저희는 농사가 안되진 않았어요. 이유는 모르겠는데, 동네를 다녀보니 상황이 조금씩 다르더라고요. 산내도 고사리 종류가 다르고 재배하는 스타일도 다 달라요. 우리도 초기에는 많이 안 나왔는데 끝날 때는 거의 평년작으로 나왔어요. 동네에서 우리 고사리가 좋다고 소문이 나있다고는 하는데 제가 심은 건 아니에요. 누구한테 받은 건데 마침 그 고사리가 좋은 거여서 제가 덕을 많이 보고 있어요.
고사리가 아무 데나 뿌려 놓고 그대로 뒀다가 다음 해에 수확하는 게 아니더군요.
말로 하면 그런 게 되게 편하고 좋은데 고사리밭도 잡초관리를 해줘야 해요. 다른 농사 같으면 밭에 풀을 베어버리면 되는데 고사리는 잡초를 뽑는 거 말고 방법이 없어요. 고사리밭을 갈아엎을 순 없으니까 일일이 뽑아줘야 해요. 그게 만만치 않아요.
그런데 고사리가 워낙 세기 때문에 한번 관리되면 계속 관리가 돼요. 안 되는 땅은 아무리 해도 안돼요. 계속 고사리 농사를 짓지만 우리가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우리 밭도 관리가 안 되는 데는 아무리 해봐도 고사리가 없어요. 그런데 관리가 잘 된 데는 또 고사리만 있어요.
몇 년 전, 입석마을을 산책하다 비탈진 곳에 누워있는 풀들 사이로 삐죽삐죽 고사리들이 자라는 걸 처음 봤다. ‘오, 이게 자연산 고사리인건가’했는데 마을 사람들에게 ‘그거 다 주인 있는 고사리 밭이야’라는 말을 듣고 조금 놀랐다. 꺾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농촌이라 해도 언덕과 길가의 고사리, 콩, 호박은 모두 주인이 있다. 함부로 손대면 안 된다.
올해 고사리 값은 괜찮았나요?
값이 좀 올랐다고는 하는데 우리는 못 올리죠. 유기농이라 원래 좀 비싸게 팔았으니까. 거기다 직거래를 하다 보니 일반 소비자가격이 오른다 해도 우리는 가격을 많이 올리지 못해요. 그러다보니 일반 고사리와 유기농 고사리 값이 비슷해져버렸어요. 예전에 근당 4만 원할 때 유기농은 6만 원 이상 받기도 했는데 지금은 거의 따라왔어요.
유기농 하는 농부들이 지금 어려운 게 처음에는 생협 같은 농산물 유통에서 어느 정도 보호를 해줬어요. 가격이 폭락해도 거둬주기도 하고. 그런데 지금은 일반농산물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어도 유기농산물 가격은 계속 그대로 잡혀 있어요. 소비자 입장에서는 오르는 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나마 유기농을 할 수 있는 건 생협 같은 곳이 있어 가능하죠.
생산자에게 가격결정권이 없는 구조네요. 산내농장은 주로 직거래로 판매하나요?
우리는 100% 직거래 합니다. 주로 밴드를 이용하는데 기존 고객들이 알음알음 소개도 하고 추천해서 연결되는 방식이에요. 최근에는 생산양이 좀 늘어 네이버 스마트팜을 이용합니다. 고사리는 초기에는 장모님이 주로 판매를 도와줬어요. 소비하는 세대가 달라요. 우리세대 밑으로는 잘 안 먹어요. 윗세대는 한 근, 두 근 단위로 사는데 젊은 층은 100g, 많아야 300g 정도예요.
회원제는 아니지만 기존의 고객들 네트워크로 계속 유지가 되고 있는 거네요. 그렇게만 해도 생산품이 모두 판매가 되나요?
워낙에 양이 적어요. 이름만 농장이지 밭농사 조금 짓는 거예요.
동네 분들에게 ‘서석곤 농부 밭에 꼭 한번 가봐라’ 말을 들었어요. 부지런한 농부의 아주 잘 생긴 밭이라고. 일 년 내내 가지런히 여러 가지 작물들이 밭에서 자라고 있다고 하던데요, 어떤 작물을, 몇 종이나 키우나요?
지금은 많이 줄었어요. 다품종소량이 좋아요. 좋은데, 좋아 보이는데 굉장히 어려워요.
하다못해 택배를 보낼 때도 고사리, 보리, 무, 땅콩 박스가 다 달라요. 우리 집 창고에는 각종 농산물 상자로 가득 차 있어요. 어찌 보면 굉장한 낭비거든요 감자를 대량으로 하면 한 번에 내보내면 끝나니까 편하고 돈도 되지요. 우리는 할 때마다 새로 만들어야 되고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는 부적합이죠. 이익도 남기기 어려운 구조고요.
처음에 귀농해서 자연농한다고 책도 보고 이것저것 공부해서 해봤어요. 귀농학교나 시골살이학교에서 ‘자연농하고 다품종소량 해야 한다’는 얘기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이런 농법이 대를 이어온 게 아니에요. 기껏해야 3~40년 된 농법이거든요. 시작한 분은 잘 되지만 따라서 한 사람 중에 잘 된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누구나 잘 할 수 있는 농법처럼 얘기해요. 제가 내려올 때도 계속 들었어요. 들으면 따라 해보고 싶어져요. 저도 따라 해 봤어요. 그게 현실에서 맞지 않다는 걸 깨닫는 데 보통 2~3년이 걸린다고 하는데 저는 오래 걸렸어요. 하나하나를 조목조목 실험하다시피 하다보니까. 6년이 넘게 걸린 것 같아요.
그래도 자연농이 좋다고 배웠으니까 배운 대로 하다가 차츰차츰 줄어서 지금은 판매하는 것까지 10가지 정도 밖에 안 되는 것 같은데요. 봄에는 고사리하고, 지금 한창 수확해서 판매하는 게 양파, 마늘, 양배추, 감자, 보리 5가지 정도 되고요. 가을에는 적어요. 팥, 벼, 고구마 같은 일반적인 거예요. 그래서 지금이 제일 바빠요.
그럼 겨울에는 쉬나요?
겨울에는 쉬어야죠. 지금만 바쁘고.

드론으로 촬영한 서석곤 농부의 밭
아무리 바빠도 수확은 직접 하시죠?
네. 직접 해요. 농사도 경영인데 지금이 제일 바쁜 철이라 내 맘대로 인력을 쓰고 싶지만, 쓸 수 있는 인력도 없고. 또 사람을 필요할 때 쓰고 버리고 싶을 때 버릴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게다가 농산물이 워낙 싸서 인건비가 안 나와 사람을 막 쓸 수도 없어요. 손이 오그라든다니까요. 저는 경영자 스타일이 아닌가 봐요. 예를 들어 매출이 100만 원인데 사람 두 명 쓰면 인건비가 10만 원 이상 나가요. 밭 멜 때, 수확할 때 2~3번 쓰면 2~30만원 훌쩍 나가버리면 안 된다는 거예요.
고사리 정도만 되어도 판로만 있으면 사람을 써도 인건비는 나와요. 그런데 양파, 감자 농사하면서 기계도 쓰지 않고 대량으로 짓는 것도 아닌데 사람을 쓰면 손이 오그라들어요. 그래서 무리해서 우리가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어요.
일 년 내내 농사를 짓는데 농사만으로 경제적 활동이 영위되나요?
그게 처음에 귀농했을 때는 보충수입이 있었죠. 다니던 회사에서 나오는 수입이 어느 정도 있었어요. 지금은 점점 줄어서 용돈 정도 수준이에요. 그 수입이 있을 때는 농사를 조금 못 지어도 괜찮았어요. 그래서 내려와서 처음 3년 동안 자연농을 할 수 있었죠. 그런데 그쪽 수입이 점점 줄어드니 어느 날 불안해지는 거예요. 그때는 농사가 망해도 내 수입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데 ‘오 이게 망하면 내 수입이 하나도 없는데’가 되니까 불안해지는 거예요.
망하지 않게, 유지해주는 게 다품종이에요. 다품종이 좋은 게 그거예요. 하나가 망해도 다른 게 안 망하는 게 있거든요. 작년만 해도 수수농사가 비와서 엉망이 되었는데, 다른 게 도와줬어요. 그래서 다품종이 대박은 아니지만 평균수입을 어느 정도는 유지는 해줘요.
수박, 참외 과수는 대박 나면 3년은 버틴다고 하는데 올인해서 망하면 빚더미에 앉는 거죠. 농산물 대박 나 봐야 손실 안보는 거지 대박이라고 할 수도 없어요. 아무튼 다품종의 장점이 이런 거예요.
다양한 품종의 모종이나 씨앗을 직접 채종하거나 키우나요?
아니요. 저도 처음에는 좋은 것만 듣고 와서 ‘토종으로 해 봐야겠다.’ 했어요. 토종의 제일 큰 문제가 뭐냐면 저도 그렇고 토종에 달려드는 사람들이 주로 농사전문가가 아니에요. 그래서 농사가 잘못되어도 씨가 잘못된 건지, 내 기술이 잘못된 건지 구분을 못한다는 게 제일 큰 문제에요. 내가 채종을 했는데 내가 채종한 씨앗이 잘못일까, 내가 싹을 잘못 틔웠나, 재배를 잘못 했나 그걸 알 수가 없어요.
또 하나 큰 문제가 토종이 진짜 토종이 아닌 게 많아요. ‘이거 우리 이웃집에서 얻었어. 토종이야’라고 하는데 토종이 아닌 게 많거든요. 옛날에는 어르신들이 씨를 받아서 쓰는 게 당연했는데 지금은 시장에서 사서 쓰는 게 많아요. 그 종자의 근원을 몰라요. 분명히 토종이라고 했는데 2~3년 지나서 농사가 안돼요. 사서 쓰는 종자 중에 2~3년 지나면 퇴화되는 것들이 많은 거예요. 토종이 아닌데 토종이라고 생각했다가 실패하는 거죠. 그런 걸 초보자들이 판별할 능력이 없어요. 3년 지나서 농사가 안 되면 ‘아, 내가 뭔가 잘못한 걸 거야’ 자책해버리는 거죠.
토종이 굉장히 어려워요. 토종을 지켜주시는 분들에게 저는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저도 이어갈 수 있는 건 이어가죠. 우리가 토종으로 농사를 짓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경쟁에서 살아남기 때문이거든요. 조선오이 같은 거. 조선오이는 내가 대충 씨 받아서 뿌리면 싹도 나고 잘 크거든요. 시금치도 그렇고. 씨를 받을 수 있고 우리 주변에 저절로 잘 되는 들깨, 참깨는 그냥 받아서 하면 되거든요. 울타리콩, 동부도 지금까지 살아남았잖아요.
토종이라서 꼭 해야 하겠다, 내가 지켜야겠다. 이런 건 아니고 그냥 심어놓으면 잘 크고, 맛있고, 잘 먹으니까 계속하는 거예요. 서리태도 마찬가지고요.
잘 자라고 우리 토양에 잘 맞는 토종이 살아남는 거네요.
한쪽의 논리인지 진실은 모르지만, 토종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농업도 농사도 계속 연구 개발하잖아요. 가령 지금과 같이 기후가 급변할 때 토종 콩이 잘 클지, 연구해서 나온 콩이 잘 클지는 모르거든요. 새로 나오는 콩들은 기후조건에 맞춰 연구해서 나온 거거든요. 그러면 그게 더 잘 클 수도 있잖아요. 농부 입장에선 그 콩이 좋은 콩이잖아요.

서석곤 농부의 밭
지금 기후위기라는 말이 엄청 나와요. 서석곤 농부의 농사에도 영향이 있나요?
많아요. 지금 양배추가 한창 크고 익는 시기거든요. 그런데 알이 작고 익지도 않아요. 동네 다녀보면 감자도 제대로 안 되는 것 같고. 다 이상해요. 잘 안되는 게 초보라서 내가 잘못한 건가 할 수도 있는데 이유가 뭔지 알 수 없는 게 많아요. 콩 농사도 잘 안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아요.
자연농은 자연스럽지 않다
‘자연농. 자연농을 처음 만날 때 들은 말들. 무경운, 무투입, 무제초 등등. 주로 무(無)를 많이 듣는다. 무엇인가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것들은 주로 인위적인 것들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자연농은 두 가지 정도. 하나는 소규모 텃밭에 가능하거나, 하나는 매우 넓은 면적에 적은 작물을 키울 때 가능하다. 둘은 같은 말이다. 소규모 텃밭이라 해도 면적이 작으면 자연농은 가능하지 않다. (…)지구를 살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내가 사는 일도 중요하기 때문에.
(…)나는 더이상 자연농이라는 것을 따라가지 않겠다. 이 불합리성을 아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른 사람들이 자연농 같은 것에 현혹되지 않기를 바란다. 특히 전업농이라면.
자연농이 할 수 있는 역할은 그저 장식품으로써의 역할이다. ‘나는 이것을 이렇게 한다’는 광고문구로만 사용가능한 농법이다.‘
산내농장 블로그 <자연농닮기-자연농 이야기 27. 자연농은 자연스럽지 않다>중에서
아주 정갈하고 잘 생긴 밭에 비닐멀칭도 하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다 자기 스타일대로 짓는 거죠. 거기서 전공이 나오는 거죠.(웃음) 군인은 군인처럼 짓고, 과학자는 과학자처럼 짓고.
산내에서도 멀칭 안하는 밭은 드물죠.
서석곤의 농법을 3無농법이라고 이름 지어보았는데요, 제초제, 화학비료, 퇴비를 쓰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자연농 처음 할 때 얘기에요. 지금은 아니에요. 저도 계속 첨단만 생각하다 어쩌다 자연농을 생각하게 된 건지 모르겠어요. 처음 듣고 배울 때는 너무 감동적이고, 귀농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걸 두고 사람들이 왜 멍청하게 농사를 짓는 거지 하면서 밑줄 그어가면서 읽었어요. 그런데 따라서 농사를 지어보니 진짜 그런 사기가 없더라고요. 그 분들이 사기를 치려는 건 아니잖아요. 해 보니 90%가 현실에 맞지 않더라고요.
자연농 하라는 책 표지에 광고문구로 크게 ‘산길을 가다 도토리를 만나면 묻어주지 마라’는 말이 나와요. 안 묻어주면 싹이 안 나와요. 그 방식은 벼농사와 밀농사를 교차하는 농법에는 맞을지 몰라도 밭농사에 맞지 않아요. 벼는 뿌려놓으면 나거든요. 그런데 밭농사는 안 돼요. 해보면 ‘아, 이건 이래서 안 되는 거구나’하고 알게 돼요. 어떤 사람들은 1~2년 해보고 ‘이거 엉터리네’ 하면서 다른 사람들한테 하지 말라고 하는데 저는 ‘왜 안 되지?’하면서 계속했던 거죠.
자연농이 진짜 자연스러우려면 자연농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연농으로 먹고살고 있어야 해요. 그런데 대부분 교육으로 먹고 살아요. 농사가 아니라. 농사를 지으면서 다양한 파생상품 만들어서 파는 건 좋은데 농사짓지 않으면서 ‘농사는 이런 거야’ ‘농사는 이렇게 지어야 해’라고 말하면 안 된다고 봐요. 그대로 따라 하는 저 같은 피해자가 생기잖아요.(웃음) 충북에도 자연농 하는 분이 계신데 혼자는 먹고살 수 있을지 몰라도 농사지어서 가족을 부양하기는 힘들 거예요. 저도 혼자면 자연농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비닐 멀칭을 하지 않는 밭과 허수아비
산내는 농부들이 창작자들과 함께 참여하는 프로젝트가 있었어요. 지리산 살래펀드 같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꽤 재미있는 시도지만 농부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까? 싶기도 해요.
누군가 해주면 도움이 돼요. 지리산 살래펀드는 기획자가 발도 넓고 기획력도 있어서 우리는 곁다리로 껴서 한 거니까. 그런 분들이 있어서 가능한 거죠. 그 만큼의 판로가 생겼으니 내 물건을 같이 팔수는 있는데 내가 주도적으로 그 정도의 판매력을 가지고 추진하는 건 힘들어요. 모여서 하면 재미는 있어요. 우리는 재밌는데 그 분들도 즐겼는지 희생을 한 건지 모르겠어요. 내 입장에서 볼 때는 저 분들이 희생을 해서 내가 이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꾸러미라는 게 굉장히 비싼 값이거든요. 소비자입장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보통 시장에 가서 구매하는 것보다 비싸요. 농부 입장에서는 꾸러미를 살 수 있는 고객을 만들어내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능력자들이 같은 마을에 있는 게 고맙죠. 지금 산내는 살래펀드가 다시 생긴다고 해도 팔 농산물이 없어요. 귀농자들이 농사를 많이 안 지어요. 지금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손에 꼽아요. 여기는 원래 농지도 별로 없고 산내의 특징이 문화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게 많아요. 좋아요. 저도 그게 싫어하지는 않는데 농부입장에서는 같이 팔 수 있는 생산품이 없다는 거죠.
팔기 어려운 게 고사리와 쌀이에요. 워낙 대량이라. 쌀은 판로가 없어서 어르신들은 땅을 다 내놓는 분위기인데 팔수만 있다면 농사짓는 사람들이 생길 거예요. 쌀은 워낙 대량이고 고사리는 판로가 없어서 제일 문제죠. 그거 말고는 ‘못 팔아서 못 짓겠네’ 이런 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에는.
마을에 점점 농사짓는 분들이 줄면 농사 정보를 공유하거나 도움을 주고받기가 힘들어지겠네요.
농사도 이제 변해가는 거죠. 10년 전에 내려왔을 때만 해도 나락을 길가에 펴서 말렸거든요. 지나가다 이웃집에서 일하고 있으면 걷어주고 했어요. 지금은 콤바인으로 거두고 나면 바로 건조기로 가져가요. 그냥 개인화 되는 거예요. 스마트폰처럼 농사도 기계가 하나씩 개발될 때마다 개인화되는 거예요.
그럼 정보는 주로 어디서 얻나요?
그런 건 기술센터나…

인터뷰를 위해 만난 서석곤 농부
그동안 자연농도 그렇고 독학으로 농사를 지어 온 건가요?
다 그렇죠 뭐. 다 그런 거 아닌가? 저는 어릴 때 시골 살았으니까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그게 도움이 됐어요. 어릴 적에 형들에 비해 집에서 일을 많이 안 시켰어요. 그럼에도 알게 모르게 제 몸에 배인 게 있어요. 제 친구들은 어릴 때 일을 많이 해서 시골 엄청 싫어해요.
말씀하신 거처럼 제일 힘든 게 뭐냐면 비교대상이 없어요. 정보를 얻는 건 둘째 치고 내가 심어놓은 참깨가 지금 정상적으로 잘 크고 있는 건가 알 수가 없어요. 왜냐면 농사짓는 방식이 다르니까. 옆 밭은 비닐 멀칭해서 짓거든요. 저는 비닐 없이 지으니까 비교가 안 되는 거예요. 비교대상이 없는 게 제일 힘든 거예요. 양배추를 키우는데 지금쯤 어느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그걸 모르는 거예요. 뭔가 잘못된 거 같아서 조치를 취할 때는 이미 늦어요. 옆에 같은 방식으로 농사짓는 밭이 여러 개 있으면 내 밭이 좀 이상하면 금방 알거든요. 양배추, 옥수수, 감자 다 그래요. 나만 비닐 없이 지으니까 나만 풀 씌워져 있으니까 남들보다 조금 늦다보다 했는데 결국 안 되는 거예요. 시기를 놓쳐버리는 거죠.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요?
망하는 거죠 뭐.
작년에 망한 걸 올해 만회하기 위한 방안은요?
그래서 기록이 필요해요. 기록이 생명이죠. 농사는 무조건 기록이에요. 뭐든지. 다 기록해야 돼요. 어르신들도 그래요. 50년 농사지어도 이 동네말로 ‘새잽이’ 라고. 처음 해보는 거라고. 쌀농사 50번 지어도 머릿속에는 아무 것도 안 들어가거든요.
저만 해도 올해 쌀농사 짓는다고 뭔가 좋을 걸 막 해요. 충실한 볍씨 골라낸다고 염수선도 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뭘 해요. 그런데 다음 해에 하려고 하면 작년에 어떻게 했는지 하나도 생각 안나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도 있는데, 원래 사람이 좀 그런 게 있잖아요.(웃음) 염수선 같은 건 그나마 간단하지만 아주 어릴 때 체화되지 않은 것들은 머릿속에 들어갔다가 나가버리는 거예요.
농사는 일 년에 한 번씩 하는 거라 다 잊어버려요. 일 년에 두세 번 하지 않잖아요.
그러고 보니 농부가 쌀농사를 아무리 짓는다 해도 평생 동안 50번을 못 지을 수도 있겠네요.
어른들은 “농사 도사시네요?” 하면 “50번 밖에 안 지어 봤어요.” 그렇게 얘기해요.
‘농사는 무조건 기록이다’라고 했는데요, 14년 동안의 농사기록이면 꽤 어마어마할 것 같아요. 자연농을 해보려는 초보농부들에게 교재가 될 것 같은.
그 정도는 아니에요. 블로그에 쓰고 또 농부들은 영농일지 다 쓰니까요. 그걸 쓰다 보면 기후변화에 관해 얘기할 때 차이를 좀 알게 돼요.
날씨가 따뜻해지니까 서리 오는 날짜가 점점 늦어지거나 서리 끝나는 날짜가 빨라지거나 할 것 같지만 안 그렇거든요. 서리는 태양의 변화에 따라 온도가 확 올라갈 때 나타나는 거라 기후변화가 와도 서리가 오는 날짜는 일정해요. 단지 기후가 변동되는 거 이런 게 좀 보이죠. 아무튼 기록이 중요해요. 무조건 기록해야 해요.
지리산이음(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에서 농부들의 농사기록을 아카이빙하려는 계획이 있어요.
글쎄… 블로그에 있는 것 말고는 더 이상 없는데…

직접 키운 양배추
다품종소량을 자연농으로 지으려면 무엇부터 배워야 하나요?
저는 고등학교든, 대학교든 전공이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농사를 지으려는 사람들이 잘해야 되는 건 많이 배우는데 하면 안 되는 걸 잘 안 배워요.
전공으로 농사를 꾸준히 배우면 하면 안 되는 것이 체화되고 익숙해져서 하면 안 되는 건 하지 않을 거예요. 무의식중에라도. 그런데 잘 되는 것만 배운 사람들은 ‘하면 좋다’는 건 잘 해요. 하지만 하지 말아야 할 것도 굉장히 많이 해요. 문제는 거기서 발생해요. 엉뚱한 데서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농사상식이 없이 자연농을 배우면 실패해요.
자연농은 땅을 잘 만들어야 한다고 배워요. ‘3년 있으면, 7년 있으면 땅이 변할 거야. 토양이 잘 되어야 옥수수가 잘 될 거야’ 저도 언젠가 잘 될 거야 하면서 믿고 해 봤는데 4~5년 지나니까 내가 옥수수를 재배하는데 옥수수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고 있더라고요. 땅 덮고 풀 관리 하는 것에만 신경 쓰니까 정작 옥수수가 언제 싹이 나고 언제 열리는지는 재배를 하면서도 잘 모르는 거예요. 옥수수, 땅콩, 파를 키우면 사이사이에 해줄 일이 너무 많은데 그냥 지나가버리는 거예요. 농업을 제대로 배운 사람들이 자연농을 배우면 옥수수에 대해서도 잘 아니까 토양관리를 이렇게 하면 잘 되겠구나 하면서 놓치지 않는데, 실제로 자연농을 하는 사람들은 땅만 보면서 옥수수 잘 못 키울 거예요.
다품종소량 생산이 어려운 게 작물마다 다 다르다는 거예요. 내가 옥수수 대농이면 연구 엄청 하고 옥수수 하나면 파서 잘 할 텐데 옥수수 키우다 땅콩 봐야지, 땅콩 보다가 양배추 공부해야지 그래서 다품종 소량이 어려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 넘게 다품종소량을 하는 이유는 연구자의 마음 같은 건가요?
이제 ‘빼박’이에요. 다른 걸로 갈 수가 없어요. 이게 내 기술이니까.
예를 들어 내가 열심히 풀 농사를 지었어요. 해보니까 너무 불편한 거야 그래서 풀을 베어버리고 제초기 사서 농사를 지으면 풀 농사를 지을 때 불편했던 건 사라지지만 새로운 문제가 또 생겨요. 풀로 덮여 있을 때는 땅에 침식이 하나도 안 돼요. 풀이 없어지면 비가 오면 흙이 쓸려 내려가는 그런 일이 막 생겨요. 지금 내가 농사방식을 바꾸면 여러 가지 문제가 또 생겨요. 그래서 또 그거 해결하느라 10년을 보내야 할지도 몰라요. 그래서 쉽게 바꾸지는 못해요. 누구나 그럴 거예요
‘이게 좋아 내 방식이 옳아’ 그래서가 아니라 이걸 바꾸려면 2년, 3년 또 희생해야 해요. 물론 처음보다는 좀 짧아지겠지만. 그리고 지금 이 방식이 그렇게 나쁘지도 않아요. 괜찮아요.
서석곤 농법이 생긴 거네요.
우리 밭에서는요. 굉장히 어려워요. 농사가.
저는 자연농 하려고 땅을 사서 농사를 시작했어요. 안 그러면 쫓겨나니까. 누가 풀밭 만들어놓는 걸 좋아하겠어요. 사람들은 땅을 팔고 나서도 자기 땅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밭을 풀밭을 만들어놨어.’ 그렇게 얘기하는데 자기 밭을 그렇게 만들어 놓으면 다음 해 당장 쫓겨나죠.
마을에 한 농부가 있어요. 농사를 아주 잘 짓는. 농사를 왜 잘 짓는다고 하냐면 이 양반은 메뚜기 농법을 해요. 이 밭에서 짓다가 저 밭에서 짓다가 해요. 대충 짓는 것 같지만 땅도 알고 작물도 아니까 그게 가능한 거거든요. 그 사람은 엄청난 농사기술이 있는 거예요. 저는 그게 안 되거든요.
저는 우리 밭에서 10년 넘게 해보니까 여기엔 이걸 심고, 저기엔 저걸 심고를 이제 알겠어요. 그 양반은 아무 밭에나 가서 잘 하더라고요. 처음엔 몰랐어요. 대충 짓네 했는데 내가 다른 땅에서 지어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아, 그 힘든 걸 했구나.’
올해 새로 밭을 얻었는데 속수무책이에요. 우리 밭은 비가 온 다음 날도 들어가서 일을 할 수 있어요. 물이 잘 빠지니까. 새로 얻은 밭은 진흙탕이에요. 일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어요. 이제 괜찮나 싶어서 일 하러 가보면 또 말라서 일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농사를 지을 때 함부로 얘기할 수가 없어요. 단지 얘기할 수 있는 건 ‘나는 이렇게 하고 있어’ 정도인거지 ‘이렇게 해야 해’는 다 엉터리에요. 내가 보기엔 다 그래요. 기후도 다르지, 땅도 다르지, 사람도 다르지. 심는 식물도 다른데. 그래서 우리가 농사 배울 때는 ‘아, 그 사람은 그렇게 짓고 있구나’ 정도로 생각해요.
저도 우리 밭에서나 제대로 농사짓지 새로 얻은 밭은 고생 엄청 하고 있어요.

농사일을 하고 있는 부부
도시 생활을 접고 농사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나요?
없어요. 그냥 시골 와서 살려고 왔어요. 도시에서 살기 싫었어요.
도시에서 살기 싫은 것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잖아요.
잘 모르겠어요. 어릴 때는 ‘시골 살 게 못 된다’ 그런 생각 했는데. 그래서 고등학교부터 도시로 나와서 30년 정도 살았죠. 적당히 잘 살았는데 도시생활이라는 게 팍팍하잖아요. 회사가 강남이라 의왕에서 출퇴근하는데 사당역 가는 버스에서는 보기 싫은 정치뉴스 계속 나오고, 역에 내리면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할 때라 사람들이 엄청 줄 서 있는데 전광판 번쩍이고, 지하철 북적거리는 건 어쩔 수 없어도 거기도 광고 방송 계속 나오잖아요. 머리에 쥐나더라고요. ‘아 안 되겠다. 시골로 가야겠다’ 해서 내려왔죠.
산내가 고향은 아니죠? 어떻게 오게 되었나요.
고향은 충북 영동이에요. 그때는 귀농지 찾아 삼천리처럼 여러 군데 다녔어요. 큰 애가 세 살, 아내가 둘째 임신 중이었는데 계속 찾아다니는 것도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지도 놓고 ‘여기로 가자’ 찍어서 곡성으로 갔어요.
2008년에 둘째가 태어났는데 마을에 애들 친구가 없더라고요. 또래도 없고. 엄마, 아빠한테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거예요. 곡성에도 귀농한 사람들이 더러 있긴 했는데 여기 저기 흩어져 있었던 거죠. 교류도 없고. 그러다 산내에 살던 직장 선배가 지금 우리 집을 소개해줬어요. 그 집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몇 년 동안 안 팔리고 있다가 인연이 되어서 지금도 잘 살고 있어요. 그 집 좋아요. 그 때는 다들 엄청 비싸게 샀다고 했는데… 집 앞에 밭도 엄청 비싸게 샀거든요.
아! 마을 안에 있는, 겨울에도 정갈한 그 밭인가요?
다른 건 모르겠고 우리 밭은 항상 뭔가 심어져 있어요. 어쨌든 그것도 자연농에서 배운 건데 겨울이든 여름이든 빈자리 없이 계속 있어요. 안 그러면 관리가 힘들어요.
그것도 배우고 터득한 거네요.
뭐든 심겨져 있지 않으면 그 다음이 힘드니까.
우리나라 농업정책에 관해서는 할 얘기 없나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저도 관심 있어요. 정책에 관심 없는 건 아니고, 다만, 저는 운동하는 거 말고 내가 타샤 튜터처럼 살고 싶어요. 내가 농촌에서 잘 살면 될 것 같아요. 그래도 굳이 얘기하자면 평소에 블로그에 글을 써요. 쓰다가 지우는 글이 많아요.
‘농사직불금제’를 개선한 건 잘 한 거라고 봐요. 아직 남아있는 게 ‘친환경의무자조금’인데 친환경농업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납부하는 돈이에요. 그 명목으로 걷어서 자기 조직 관리하는데 쓰는 거죠. 전혀 관심이 없어서 모르시겠지만 저는 균등하게 걷는 것도 별로 마음에 안 드는데, 금액으로 따지면 소농들에게 더 많이 걷어가요. 심지어 만평이상 대농은 면제도 해주면서. 그 돈으로 친환경 농산물 광고하면 농부들한테도 조금은 도움이 되겠지만 저처럼 소규모로 직거래 하는 사람들은 크게 이득 보는 게 없어요. 내 입장에서는 친환경자조금을 만평이 넘는 대농에게도 그대로 받아야지, 면제해주고 이런 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산내도 그렇고 소농들이 쌀값 조정하라고 시위하는데 많이 가요. 마을에서도 가끔 얘기하는데 노동력 대비 쌀만큼 많이 남는 농산물이 별로 없어요. 기계화되어 있기 때문에. 천 평에서 평단 단가를 얘기하면 엄청 싸 보이지만 이백 마지기, 삼백 마지기 짓는 대농들은 그 규모가 엄청나거든요. 쌀값 올리려고 데모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인데 한마지기 두마지기 짓는 산내나 우리 소농들이 그 데모해서 얼마나 더 벌겠어요. 구체적으로 조사해 볼 필요가 있는데 어딘가에 왜곡된 정보가 있는 것 같아요.
농업정책이나 지원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향하면 좋겠어요. 왜 기업과 기계를 지원하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기계를 쓰지 않고 농사를 지어요. 그런데 지원은 기계를 쓰는 사람만 받을 수 있어요. 콤바인이 한 대 1억이라면 오천만원을 지원해주거든요. 그 돈 나한테도 좀 지원을 하라는 거죠. 내가 짓는 농사가 경쟁력이 있는 농사예요. 조건이 평등하다면. 그런데 지원이 한쪽으로 쏠리면 점점 경쟁력이 없어지는 거죠.
기본소득이나 기금이 만들어져서 농부들에게 직접적으로 혜택이 가는 게 필요하다는 거군요.
기본소득제는 되어야 한다고 봐요. 우리나라에서 기본소득 얘기가 나오는 건 때가 되어서 그런 얘기들이 나오는 거죠. 이제는 직접분배방식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내가 우리 아이를 집에서 키우고 싶은데 집에서 키우면 지원을 하나도 못 받잖아요. 내가 애도 봐야 되고 농사도 지어야 되는데 이제는 직접적인 지원이 필요한 시기라고 봐요. 기본소득이 그래서 중요하고요.
직불금도 그렇고 제도나 정책들이 좋은 의도잖아요. 사회 곳곳에 다양한 제도나 지원들이 있잖아요. 청년수당, 농민수당, 노인수당, 이제는 사각지대 없이 펼치는 것이 좋지 않겠나 싶어요. 다 전해들은 풍월입니다.(웃음) 지금 변하고 있는 거잖아요. 누군가 투쟁해주니까 너무 고마워요.

서석곤 농부가 가꾸는 옥수수밭
농사는 연구자처럼 짓고, 블로그 글도 그렇고 얘기를 나눠보니 철학자 같아요.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많이 하는.
책은 많이 보는 편이었지만 지금은 눈도 아프고 더 볼 것도 마땅찮아서 별로 보지 않아요. 돌아보니 전공을 잘못 선택한 것 같아요. 철학과를 갔어야 했는데… 흘러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 사는 형태가 나는 마음에 들어요. 불교 공부도 꽤 오래 했어요. 제가 생각하고 체험한 것들을 글로 올려요. 그래서 좋은 글이 많아요. 하하하.
누군가 서석곤 농부에게 ‘나도 단정한 밭을 만들면서 농사짓고 싶다’고 찾아온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요?
그건 못 하죠. 그냥 여기 와서 살면 되지.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면 제가 사람들 많이 안 만나는데 말하는 건 좋아해서 막 쏟아내죠. 말하고 나서 후회해요. 농사는 가르치기보다 이렇게 해보고 있다 정도예요. 그보다 우리 밭을 예쁘게 꽃밭으로 꾸미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올해 산내에 꽃밭소모임이 생겼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꽃그림도 그리고 모종을 나누고, 각자 집에서 키우는 꽃을 자랑하기도 한다. 모임이 정착되면 마을 곳곳에 꽃을 심고 예쁘게 꾸미려고 한다. 도시에서도 기후위기의 한 대안으로 꽃을 심는 프로젝트도 생기고 있다.
소농의 즐거움은 무엇인가요?
즐거움 많죠. 어쨌든 많이 놀잖아요. 제가 농사로 수입이 부족해서 뭔가 해보겠다고 지리산 지킴이를 두 달 정도 했어요. 한 달 지나니까 못하겠더라고요. 일은 하나도 힘들지 않은데 구속된 느낌이 드는 거예요.
겨울에 놀고 여름은 낮에 더우니까 계곡 가서 놀고. 노는 시간이 엄청 많아요. 그런데 산재가 생기죠. 기계 안 쓰니 허리, 무릎, 손목. 이런 데가 별로 안 좋아요. 이런 게 나쁜 점이고 노는 건 좋아요.
쉴 때는 주로 뭐 하세요?
놀 줄을 몰라서 특별히 하는 건 없어요. 그래서 놀고 있으면 갑갑하기도 해요. 영화 보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심심하긴 한데 놀 수 있으니 좋잖아요.
부지런하다고 해서 일 년 내내 일만 하는 줄 알았어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농부 서석곤에게 불교와 공부하는 삶이 농사짓는데 도움이 되나요?
불교는 아무 데나 도움이 되지요. 농사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는 몰라도 불안, 초조, 좌불안석이 좀 덜하지 않을까 해요. 제가 많이 따지는 스타일이에요. ‘이건 아닌 것 같은데’ 하는 게 있으면 끝까지 묻고 공부해봐야 해요. 돌이켜 보니 나는 생각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요. ‘철학과를 갔으면 성공했겠다.’ 생각도 해요. 돈도 많이 벌고. 공부도, 농사도 지금은 열심히 수행하면 돼요.
해보지 않고서야 알 수 없는 농사.
농부 서석곤의 자연농은 조금 느려도 스스로 해보고 나서야 깨닫고 정진하는 수행의 길이기도 하다.
만나보지 않고서야 알 수 없는 사람.
농부 서석곤을 만나기 전, 여기저기서 얻은 얕은 정보로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사는 들을 꿈꾸며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자연의 힘으로 작물을 키우는 소농’으로 이미지를 미리 정해놓고 너무 진지하기만 한 사람이면 어쩌나 혼자 걱정했다. 괜한 걱정이었다. 진중하면서도 그렇게 잘 웃을 줄이야.
인터뷰를 마친 후 서석곤 농부로부터의 전언이 있었다. 혹여 이 인터뷰를 읽은 분들 중에 양배추를 구입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꼭 한번 연락 달라는 이야기. 인터뷰에서도 언급되었던 것처럼 서석곤 농부의 농산물은 100% 직거래로 거래된다. 농부와 인연을 맺고 싶은 사람도, 알이 꽉 찬 양배추를 먹고 싶은 사람도, 부지런한 농부의 농사일지가 궁금한 사람도 그의 블로그에 한번 들러보기를 권한다. 서석곤 농부 블로그 https://m.blog.naver.com/sense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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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경원
기획, 기록, 연결로 변화를 만드는 일과 사람을 돕는다. 2014년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궁금해서 찾았던 지리산시골살이학교 덕분에 지리산이음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때는 몰랐다. 7년이 지난 2021년 구례 남원 산청 하동 함양을 다니며 ‘농사를 업으로 하는 농부’들의 이야기를 글로 전하게 될 줄은.
사진 임현택
진행 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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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서석곤은 2008년 귀농해 다품종소량으로 14년 째 논농사, 밭농사, 고사리농사를 짓고 있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서석곤은 기본소득만 주어져도 세상에서 가장 즐겁게 농사지을 농부’라는 말을 들었다. 1년 중 가장 바쁘다는 6월, 지리산 작은변화베이스캠프 <들썩>에서 농부 서석곤을 만났다. 첫 만남의 어색함을 지리산 시골살이학교* 이야기로 풀고 궁금했던 고사리 농사에 대해 물었다.
옥수수밭에 서 있는 서석곤 농부
산내농장 고사리가 유명하죠, 올해 산내 고사리 농사가 잘 안되었다고 하던데요, 어떻습니까?
저희는 농사가 안되진 않았어요. 이유는 모르겠는데, 동네를 다녀보니 상황이 조금씩 다르더라고요. 산내도 고사리 종류가 다르고 재배하는 스타일도 다 달라요. 우리도 초기에는 많이 안 나왔는데 끝날 때는 거의 평년작으로 나왔어요. 동네에서 우리 고사리가 좋다고 소문이 나있다고는 하는데 제가 심은 건 아니에요. 누구한테 받은 건데 마침 그 고사리가 좋은 거여서 제가 덕을 많이 보고 있어요.
고사리가 아무 데나 뿌려 놓고 그대로 뒀다가 다음 해에 수확하는 게 아니더군요.
말로 하면 그런 게 되게 편하고 좋은데 고사리밭도 잡초관리를 해줘야 해요. 다른 농사 같으면 밭에 풀을 베어버리면 되는데 고사리는 잡초를 뽑는 거 말고 방법이 없어요. 고사리밭을 갈아엎을 순 없으니까 일일이 뽑아줘야 해요. 그게 만만치 않아요.
그런데 고사리가 워낙 세기 때문에 한번 관리되면 계속 관리가 돼요. 안 되는 땅은 아무리 해도 안돼요. 계속 고사리 농사를 짓지만 우리가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우리 밭도 관리가 안 되는 데는 아무리 해봐도 고사리가 없어요. 그런데 관리가 잘 된 데는 또 고사리만 있어요.
몇 년 전, 입석마을을 산책하다 비탈진 곳에 누워있는 풀들 사이로 삐죽삐죽 고사리들이 자라는 걸 처음 봤다. ‘오, 이게 자연산 고사리인건가’했는데 마을 사람들에게 ‘그거 다 주인 있는 고사리 밭이야’라는 말을 듣고 조금 놀랐다. 꺾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농촌이라 해도 언덕과 길가의 고사리, 콩, 호박은 모두 주인이 있다. 함부로 손대면 안 된다.
올해 고사리 값은 괜찮았나요?
값이 좀 올랐다고는 하는데 우리는 못 올리죠. 유기농이라 원래 좀 비싸게 팔았으니까. 거기다 직거래를 하다 보니 일반 소비자가격이 오른다 해도 우리는 가격을 많이 올리지 못해요. 그러다보니 일반 고사리와 유기농 고사리 값이 비슷해져버렸어요. 예전에 근당 4만 원할 때 유기농은 6만 원 이상 받기도 했는데 지금은 거의 따라왔어요.
유기농 하는 농부들이 지금 어려운 게 처음에는 생협 같은 농산물 유통에서 어느 정도 보호를 해줬어요. 가격이 폭락해도 거둬주기도 하고. 그런데 지금은 일반농산물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어도 유기농산물 가격은 계속 그대로 잡혀 있어요. 소비자 입장에서는 오르는 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나마 유기농을 할 수 있는 건 생협 같은 곳이 있어 가능하죠.
생산자에게 가격결정권이 없는 구조네요. 산내농장은 주로 직거래로 판매하나요?
우리는 100% 직거래 합니다. 주로 밴드를 이용하는데 기존 고객들이 알음알음 소개도 하고 추천해서 연결되는 방식이에요. 최근에는 생산양이 좀 늘어 네이버 스마트팜을 이용합니다. 고사리는 초기에는 장모님이 주로 판매를 도와줬어요. 소비하는 세대가 달라요. 우리세대 밑으로는 잘 안 먹어요. 윗세대는 한 근, 두 근 단위로 사는데 젊은 층은 100g, 많아야 300g 정도예요.
회원제는 아니지만 기존의 고객들 네트워크로 계속 유지가 되고 있는 거네요. 그렇게만 해도 생산품이 모두 판매가 되나요?
워낙에 양이 적어요. 이름만 농장이지 밭농사 조금 짓는 거예요.
동네 분들에게 ‘서석곤 농부 밭에 꼭 한번 가봐라’ 말을 들었어요. 부지런한 농부의 아주 잘 생긴 밭이라고. 일 년 내내 가지런히 여러 가지 작물들이 밭에서 자라고 있다고 하던데요, 어떤 작물을, 몇 종이나 키우나요?
지금은 많이 줄었어요. 다품종소량이 좋아요. 좋은데, 좋아 보이는데 굉장히 어려워요.
하다못해 택배를 보낼 때도 고사리, 보리, 무, 땅콩 박스가 다 달라요. 우리 집 창고에는 각종 농산물 상자로 가득 차 있어요. 어찌 보면 굉장한 낭비거든요 감자를 대량으로 하면 한 번에 내보내면 끝나니까 편하고 돈도 되지요. 우리는 할 때마다 새로 만들어야 되고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는 부적합이죠. 이익도 남기기 어려운 구조고요.
처음에 귀농해서 자연농한다고 책도 보고 이것저것 공부해서 해봤어요. 귀농학교나 시골살이학교에서 ‘자연농하고 다품종소량 해야 한다’는 얘기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이런 농법이 대를 이어온 게 아니에요. 기껏해야 3~40년 된 농법이거든요. 시작한 분은 잘 되지만 따라서 한 사람 중에 잘 된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누구나 잘 할 수 있는 농법처럼 얘기해요. 제가 내려올 때도 계속 들었어요. 들으면 따라 해보고 싶어져요. 저도 따라 해 봤어요. 그게 현실에서 맞지 않다는 걸 깨닫는 데 보통 2~3년이 걸린다고 하는데 저는 오래 걸렸어요. 하나하나를 조목조목 실험하다시피 하다보니까. 6년이 넘게 걸린 것 같아요.
그래도 자연농이 좋다고 배웠으니까 배운 대로 하다가 차츰차츰 줄어서 지금은 판매하는 것까지 10가지 정도 밖에 안 되는 것 같은데요. 봄에는 고사리하고, 지금 한창 수확해서 판매하는 게 양파, 마늘, 양배추, 감자, 보리 5가지 정도 되고요. 가을에는 적어요. 팥, 벼, 고구마 같은 일반적인 거예요. 그래서 지금이 제일 바빠요.
그럼 겨울에는 쉬나요?
겨울에는 쉬어야죠. 지금만 바쁘고.
드론으로 촬영한 서석곤 농부의 밭
아무리 바빠도 수확은 직접 하시죠?
네. 직접 해요. 농사도 경영인데 지금이 제일 바쁜 철이라 내 맘대로 인력을 쓰고 싶지만, 쓸 수 있는 인력도 없고. 또 사람을 필요할 때 쓰고 버리고 싶을 때 버릴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게다가 농산물이 워낙 싸서 인건비가 안 나와 사람을 막 쓸 수도 없어요. 손이 오그라든다니까요. 저는 경영자 스타일이 아닌가 봐요. 예를 들어 매출이 100만 원인데 사람 두 명 쓰면 인건비가 10만 원 이상 나가요. 밭 멜 때, 수확할 때 2~3번 쓰면 2~30만원 훌쩍 나가버리면 안 된다는 거예요.
고사리 정도만 되어도 판로만 있으면 사람을 써도 인건비는 나와요. 그런데 양파, 감자 농사하면서 기계도 쓰지 않고 대량으로 짓는 것도 아닌데 사람을 쓰면 손이 오그라들어요. 그래서 무리해서 우리가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어요.
일 년 내내 농사를 짓는데 농사만으로 경제적 활동이 영위되나요?
그게 처음에 귀농했을 때는 보충수입이 있었죠. 다니던 회사에서 나오는 수입이 어느 정도 있었어요. 지금은 점점 줄어서 용돈 정도 수준이에요. 그 수입이 있을 때는 농사를 조금 못 지어도 괜찮았어요. 그래서 내려와서 처음 3년 동안 자연농을 할 수 있었죠. 그런데 그쪽 수입이 점점 줄어드니 어느 날 불안해지는 거예요. 그때는 농사가 망해도 내 수입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데 ‘오 이게 망하면 내 수입이 하나도 없는데’가 되니까 불안해지는 거예요.
망하지 않게, 유지해주는 게 다품종이에요. 다품종이 좋은 게 그거예요. 하나가 망해도 다른 게 안 망하는 게 있거든요. 작년만 해도 수수농사가 비와서 엉망이 되었는데, 다른 게 도와줬어요. 그래서 다품종이 대박은 아니지만 평균수입을 어느 정도는 유지는 해줘요.
수박, 참외 과수는 대박 나면 3년은 버틴다고 하는데 올인해서 망하면 빚더미에 앉는 거죠. 농산물 대박 나 봐야 손실 안보는 거지 대박이라고 할 수도 없어요. 아무튼 다품종의 장점이 이런 거예요.
다양한 품종의 모종이나 씨앗을 직접 채종하거나 키우나요?
아니요. 저도 처음에는 좋은 것만 듣고 와서 ‘토종으로 해 봐야겠다.’ 했어요. 토종의 제일 큰 문제가 뭐냐면 저도 그렇고 토종에 달려드는 사람들이 주로 농사전문가가 아니에요. 그래서 농사가 잘못되어도 씨가 잘못된 건지, 내 기술이 잘못된 건지 구분을 못한다는 게 제일 큰 문제에요. 내가 채종을 했는데 내가 채종한 씨앗이 잘못일까, 내가 싹을 잘못 틔웠나, 재배를 잘못 했나 그걸 알 수가 없어요.
또 하나 큰 문제가 토종이 진짜 토종이 아닌 게 많아요. ‘이거 우리 이웃집에서 얻었어. 토종이야’라고 하는데 토종이 아닌 게 많거든요. 옛날에는 어르신들이 씨를 받아서 쓰는 게 당연했는데 지금은 시장에서 사서 쓰는 게 많아요. 그 종자의 근원을 몰라요. 분명히 토종이라고 했는데 2~3년 지나서 농사가 안돼요. 사서 쓰는 종자 중에 2~3년 지나면 퇴화되는 것들이 많은 거예요. 토종이 아닌데 토종이라고 생각했다가 실패하는 거죠. 그런 걸 초보자들이 판별할 능력이 없어요. 3년 지나서 농사가 안 되면 ‘아, 내가 뭔가 잘못한 걸 거야’ 자책해버리는 거죠.
토종이 굉장히 어려워요. 토종을 지켜주시는 분들에게 저는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저도 이어갈 수 있는 건 이어가죠. 우리가 토종으로 농사를 짓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경쟁에서 살아남기 때문이거든요. 조선오이 같은 거. 조선오이는 내가 대충 씨 받아서 뿌리면 싹도 나고 잘 크거든요. 시금치도 그렇고. 씨를 받을 수 있고 우리 주변에 저절로 잘 되는 들깨, 참깨는 그냥 받아서 하면 되거든요. 울타리콩, 동부도 지금까지 살아남았잖아요.
토종이라서 꼭 해야 하겠다, 내가 지켜야겠다. 이런 건 아니고 그냥 심어놓으면 잘 크고, 맛있고, 잘 먹으니까 계속하는 거예요. 서리태도 마찬가지고요.
잘 자라고 우리 토양에 잘 맞는 토종이 살아남는 거네요.
한쪽의 논리인지 진실은 모르지만, 토종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농업도 농사도 계속 연구 개발하잖아요. 가령 지금과 같이 기후가 급변할 때 토종 콩이 잘 클지, 연구해서 나온 콩이 잘 클지는 모르거든요. 새로 나오는 콩들은 기후조건에 맞춰 연구해서 나온 거거든요. 그러면 그게 더 잘 클 수도 있잖아요. 농부 입장에선 그 콩이 좋은 콩이잖아요.
서석곤 농부의 밭
지금 기후위기라는 말이 엄청 나와요. 서석곤 농부의 농사에도 영향이 있나요?
많아요. 지금 양배추가 한창 크고 익는 시기거든요. 그런데 알이 작고 익지도 않아요. 동네 다녀보면 감자도 제대로 안 되는 것 같고. 다 이상해요. 잘 안되는 게 초보라서 내가 잘못한 건가 할 수도 있는데 이유가 뭔지 알 수 없는 게 많아요. 콩 농사도 잘 안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아요.
아주 정갈하고 잘 생긴 밭에 비닐멀칭도 하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다 자기 스타일대로 짓는 거죠. 거기서 전공이 나오는 거죠.(웃음) 군인은 군인처럼 짓고, 과학자는 과학자처럼 짓고.
산내에서도 멀칭 안하는 밭은 드물죠.
서석곤의 농법을 3無농법이라고 이름 지어보았는데요, 제초제, 화학비료, 퇴비를 쓰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자연농 처음 할 때 얘기에요. 지금은 아니에요. 저도 계속 첨단만 생각하다 어쩌다 자연농을 생각하게 된 건지 모르겠어요. 처음 듣고 배울 때는 너무 감동적이고, 귀농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걸 두고 사람들이 왜 멍청하게 농사를 짓는 거지 하면서 밑줄 그어가면서 읽었어요. 그런데 따라서 농사를 지어보니 진짜 그런 사기가 없더라고요. 그 분들이 사기를 치려는 건 아니잖아요. 해 보니 90%가 현실에 맞지 않더라고요.
자연농 하라는 책 표지에 광고문구로 크게 ‘산길을 가다 도토리를 만나면 묻어주지 마라’는 말이 나와요. 안 묻어주면 싹이 안 나와요. 그 방식은 벼농사와 밀농사를 교차하는 농법에는 맞을지 몰라도 밭농사에 맞지 않아요. 벼는 뿌려놓으면 나거든요. 그런데 밭농사는 안 돼요. 해보면 ‘아, 이건 이래서 안 되는 거구나’하고 알게 돼요. 어떤 사람들은 1~2년 해보고 ‘이거 엉터리네’ 하면서 다른 사람들한테 하지 말라고 하는데 저는 ‘왜 안 되지?’하면서 계속했던 거죠.
자연농이 진짜 자연스러우려면 자연농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연농으로 먹고살고 있어야 해요. 그런데 대부분 교육으로 먹고 살아요. 농사가 아니라. 농사를 지으면서 다양한 파생상품 만들어서 파는 건 좋은데 농사짓지 않으면서 ‘농사는 이런 거야’ ‘농사는 이렇게 지어야 해’라고 말하면 안 된다고 봐요. 그대로 따라 하는 저 같은 피해자가 생기잖아요.(웃음) 충북에도 자연농 하는 분이 계신데 혼자는 먹고살 수 있을지 몰라도 농사지어서 가족을 부양하기는 힘들 거예요. 저도 혼자면 자연농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비닐 멀칭을 하지 않는 밭과 허수아비
산내는 농부들이 창작자들과 함께 참여하는 프로젝트가 있었어요. 지리산 살래펀드 같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꽤 재미있는 시도지만 농부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까? 싶기도 해요.
누군가 해주면 도움이 돼요. 지리산 살래펀드는 기획자가 발도 넓고 기획력도 있어서 우리는 곁다리로 껴서 한 거니까. 그런 분들이 있어서 가능한 거죠. 그 만큼의 판로가 생겼으니 내 물건을 같이 팔수는 있는데 내가 주도적으로 그 정도의 판매력을 가지고 추진하는 건 힘들어요. 모여서 하면 재미는 있어요. 우리는 재밌는데 그 분들도 즐겼는지 희생을 한 건지 모르겠어요. 내 입장에서 볼 때는 저 분들이 희생을 해서 내가 이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꾸러미라는 게 굉장히 비싼 값이거든요. 소비자입장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보통 시장에 가서 구매하는 것보다 비싸요. 농부 입장에서는 꾸러미를 살 수 있는 고객을 만들어내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능력자들이 같은 마을에 있는 게 고맙죠. 지금 산내는 살래펀드가 다시 생긴다고 해도 팔 농산물이 없어요. 귀농자들이 농사를 많이 안 지어요. 지금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손에 꼽아요. 여기는 원래 농지도 별로 없고 산내의 특징이 문화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게 많아요. 좋아요. 저도 그게 싫어하지는 않는데 농부입장에서는 같이 팔 수 있는 생산품이 없다는 거죠.
팔기 어려운 게 고사리와 쌀이에요. 워낙 대량이라. 쌀은 판로가 없어서 어르신들은 땅을 다 내놓는 분위기인데 팔수만 있다면 농사짓는 사람들이 생길 거예요. 쌀은 워낙 대량이고 고사리는 판로가 없어서 제일 문제죠. 그거 말고는 ‘못 팔아서 못 짓겠네’ 이런 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에는.
마을에 점점 농사짓는 분들이 줄면 농사 정보를 공유하거나 도움을 주고받기가 힘들어지겠네요.
농사도 이제 변해가는 거죠. 10년 전에 내려왔을 때만 해도 나락을 길가에 펴서 말렸거든요. 지나가다 이웃집에서 일하고 있으면 걷어주고 했어요. 지금은 콤바인으로 거두고 나면 바로 건조기로 가져가요. 그냥 개인화 되는 거예요. 스마트폰처럼 농사도 기계가 하나씩 개발될 때마다 개인화되는 거예요.
그럼 정보는 주로 어디서 얻나요?
그런 건 기술센터나…
인터뷰를 위해 만난 서석곤 농부
그동안 자연농도 그렇고 독학으로 농사를 지어 온 건가요?
다 그렇죠 뭐. 다 그런 거 아닌가? 저는 어릴 때 시골 살았으니까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그게 도움이 됐어요. 어릴 적에 형들에 비해 집에서 일을 많이 안 시켰어요. 그럼에도 알게 모르게 제 몸에 배인 게 있어요. 제 친구들은 어릴 때 일을 많이 해서 시골 엄청 싫어해요.
말씀하신 거처럼 제일 힘든 게 뭐냐면 비교대상이 없어요. 정보를 얻는 건 둘째 치고 내가 심어놓은 참깨가 지금 정상적으로 잘 크고 있는 건가 알 수가 없어요. 왜냐면 농사짓는 방식이 다르니까. 옆 밭은 비닐 멀칭해서 짓거든요. 저는 비닐 없이 지으니까 비교가 안 되는 거예요. 비교대상이 없는 게 제일 힘든 거예요. 양배추를 키우는데 지금쯤 어느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그걸 모르는 거예요. 뭔가 잘못된 거 같아서 조치를 취할 때는 이미 늦어요. 옆에 같은 방식으로 농사짓는 밭이 여러 개 있으면 내 밭이 좀 이상하면 금방 알거든요. 양배추, 옥수수, 감자 다 그래요. 나만 비닐 없이 지으니까 나만 풀 씌워져 있으니까 남들보다 조금 늦다보다 했는데 결국 안 되는 거예요. 시기를 놓쳐버리는 거죠.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요?
망하는 거죠 뭐.
작년에 망한 걸 올해 만회하기 위한 방안은요?
그래서 기록이 필요해요. 기록이 생명이죠. 농사는 무조건 기록이에요. 뭐든지. 다 기록해야 돼요. 어르신들도 그래요. 50년 농사지어도 이 동네말로 ‘새잽이’ 라고. 처음 해보는 거라고. 쌀농사 50번 지어도 머릿속에는 아무 것도 안 들어가거든요.
저만 해도 올해 쌀농사 짓는다고 뭔가 좋을 걸 막 해요. 충실한 볍씨 골라낸다고 염수선도 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뭘 해요. 그런데 다음 해에 하려고 하면 작년에 어떻게 했는지 하나도 생각 안나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도 있는데, 원래 사람이 좀 그런 게 있잖아요.(웃음) 염수선 같은 건 그나마 간단하지만 아주 어릴 때 체화되지 않은 것들은 머릿속에 들어갔다가 나가버리는 거예요.
농사는 일 년에 한 번씩 하는 거라 다 잊어버려요. 일 년에 두세 번 하지 않잖아요.
그러고 보니 농부가 쌀농사를 아무리 짓는다 해도 평생 동안 50번을 못 지을 수도 있겠네요.
어른들은 “농사 도사시네요?” 하면 “50번 밖에 안 지어 봤어요.” 그렇게 얘기해요.
‘농사는 무조건 기록이다’라고 했는데요, 14년 동안의 농사기록이면 꽤 어마어마할 것 같아요. 자연농을 해보려는 초보농부들에게 교재가 될 것 같은.
그 정도는 아니에요. 블로그에 쓰고 또 농부들은 영농일지 다 쓰니까요. 그걸 쓰다 보면 기후변화에 관해 얘기할 때 차이를 좀 알게 돼요.
날씨가 따뜻해지니까 서리 오는 날짜가 점점 늦어지거나 서리 끝나는 날짜가 빨라지거나 할 것 같지만 안 그렇거든요. 서리는 태양의 변화에 따라 온도가 확 올라갈 때 나타나는 거라 기후변화가 와도 서리가 오는 날짜는 일정해요. 단지 기후가 변동되는 거 이런 게 좀 보이죠. 아무튼 기록이 중요해요. 무조건 기록해야 해요.
지리산이음(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에서 농부들의 농사기록을 아카이빙하려는 계획이 있어요.
글쎄… 블로그에 있는 것 말고는 더 이상 없는데…
직접 키운 양배추
다품종소량을 자연농으로 지으려면 무엇부터 배워야 하나요?
저는 고등학교든, 대학교든 전공이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농사를 지으려는 사람들이 잘해야 되는 건 많이 배우는데 하면 안 되는 걸 잘 안 배워요.
전공으로 농사를 꾸준히 배우면 하면 안 되는 것이 체화되고 익숙해져서 하면 안 되는 건 하지 않을 거예요. 무의식중에라도. 그런데 잘 되는 것만 배운 사람들은 ‘하면 좋다’는 건 잘 해요. 하지만 하지 말아야 할 것도 굉장히 많이 해요. 문제는 거기서 발생해요. 엉뚱한 데서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농사상식이 없이 자연농을 배우면 실패해요.
자연농은 땅을 잘 만들어야 한다고 배워요. ‘3년 있으면, 7년 있으면 땅이 변할 거야. 토양이 잘 되어야 옥수수가 잘 될 거야’ 저도 언젠가 잘 될 거야 하면서 믿고 해 봤는데 4~5년 지나니까 내가 옥수수를 재배하는데 옥수수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고 있더라고요. 땅 덮고 풀 관리 하는 것에만 신경 쓰니까 정작 옥수수가 언제 싹이 나고 언제 열리는지는 재배를 하면서도 잘 모르는 거예요. 옥수수, 땅콩, 파를 키우면 사이사이에 해줄 일이 너무 많은데 그냥 지나가버리는 거예요. 농업을 제대로 배운 사람들이 자연농을 배우면 옥수수에 대해서도 잘 아니까 토양관리를 이렇게 하면 잘 되겠구나 하면서 놓치지 않는데, 실제로 자연농을 하는 사람들은 땅만 보면서 옥수수 잘 못 키울 거예요.
다품종소량 생산이 어려운 게 작물마다 다 다르다는 거예요. 내가 옥수수 대농이면 연구 엄청 하고 옥수수 하나면 파서 잘 할 텐데 옥수수 키우다 땅콩 봐야지, 땅콩 보다가 양배추 공부해야지 그래서 다품종 소량이 어려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 넘게 다품종소량을 하는 이유는 연구자의 마음 같은 건가요?
이제 ‘빼박’이에요. 다른 걸로 갈 수가 없어요. 이게 내 기술이니까.
예를 들어 내가 열심히 풀 농사를 지었어요. 해보니까 너무 불편한 거야 그래서 풀을 베어버리고 제초기 사서 농사를 지으면 풀 농사를 지을 때 불편했던 건 사라지지만 새로운 문제가 또 생겨요. 풀로 덮여 있을 때는 땅에 침식이 하나도 안 돼요. 풀이 없어지면 비가 오면 흙이 쓸려 내려가는 그런 일이 막 생겨요. 지금 내가 농사방식을 바꾸면 여러 가지 문제가 또 생겨요. 그래서 또 그거 해결하느라 10년을 보내야 할지도 몰라요. 그래서 쉽게 바꾸지는 못해요. 누구나 그럴 거예요
‘이게 좋아 내 방식이 옳아’ 그래서가 아니라 이걸 바꾸려면 2년, 3년 또 희생해야 해요. 물론 처음보다는 좀 짧아지겠지만. 그리고 지금 이 방식이 그렇게 나쁘지도 않아요. 괜찮아요.
서석곤 농법이 생긴 거네요.
우리 밭에서는요. 굉장히 어려워요. 농사가.
저는 자연농 하려고 땅을 사서 농사를 시작했어요. 안 그러면 쫓겨나니까. 누가 풀밭 만들어놓는 걸 좋아하겠어요. 사람들은 땅을 팔고 나서도 자기 땅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밭을 풀밭을 만들어놨어.’ 그렇게 얘기하는데 자기 밭을 그렇게 만들어 놓으면 다음 해 당장 쫓겨나죠.
마을에 한 농부가 있어요. 농사를 아주 잘 짓는. 농사를 왜 잘 짓는다고 하냐면 이 양반은 메뚜기 농법을 해요. 이 밭에서 짓다가 저 밭에서 짓다가 해요. 대충 짓는 것 같지만 땅도 알고 작물도 아니까 그게 가능한 거거든요. 그 사람은 엄청난 농사기술이 있는 거예요. 저는 그게 안 되거든요.
저는 우리 밭에서 10년 넘게 해보니까 여기엔 이걸 심고, 저기엔 저걸 심고를 이제 알겠어요. 그 양반은 아무 밭에나 가서 잘 하더라고요. 처음엔 몰랐어요. 대충 짓네 했는데 내가 다른 땅에서 지어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아, 그 힘든 걸 했구나.’
올해 새로 밭을 얻었는데 속수무책이에요. 우리 밭은 비가 온 다음 날도 들어가서 일을 할 수 있어요. 물이 잘 빠지니까. 새로 얻은 밭은 진흙탕이에요. 일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어요. 이제 괜찮나 싶어서 일 하러 가보면 또 말라서 일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농사를 지을 때 함부로 얘기할 수가 없어요. 단지 얘기할 수 있는 건 ‘나는 이렇게 하고 있어’ 정도인거지 ‘이렇게 해야 해’는 다 엉터리에요. 내가 보기엔 다 그래요. 기후도 다르지, 땅도 다르지, 사람도 다르지. 심는 식물도 다른데. 그래서 우리가 농사 배울 때는 ‘아, 그 사람은 그렇게 짓고 있구나’ 정도로 생각해요.
저도 우리 밭에서나 제대로 농사짓지 새로 얻은 밭은 고생 엄청 하고 있어요.
농사일을 하고 있는 부부
도시 생활을 접고 농사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나요?
없어요. 그냥 시골 와서 살려고 왔어요. 도시에서 살기 싫었어요.
도시에서 살기 싫은 것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잖아요.
잘 모르겠어요. 어릴 때는 ‘시골 살 게 못 된다’ 그런 생각 했는데. 그래서 고등학교부터 도시로 나와서 30년 정도 살았죠. 적당히 잘 살았는데 도시생활이라는 게 팍팍하잖아요. 회사가 강남이라 의왕에서 출퇴근하는데 사당역 가는 버스에서는 보기 싫은 정치뉴스 계속 나오고, 역에 내리면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할 때라 사람들이 엄청 줄 서 있는데 전광판 번쩍이고, 지하철 북적거리는 건 어쩔 수 없어도 거기도 광고 방송 계속 나오잖아요. 머리에 쥐나더라고요. ‘아 안 되겠다. 시골로 가야겠다’ 해서 내려왔죠.
산내가 고향은 아니죠? 어떻게 오게 되었나요.
고향은 충북 영동이에요. 그때는 귀농지 찾아 삼천리처럼 여러 군데 다녔어요. 큰 애가 세 살, 아내가 둘째 임신 중이었는데 계속 찾아다니는 것도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지도 놓고 ‘여기로 가자’ 찍어서 곡성으로 갔어요.
2008년에 둘째가 태어났는데 마을에 애들 친구가 없더라고요. 또래도 없고. 엄마, 아빠한테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거예요. 곡성에도 귀농한 사람들이 더러 있긴 했는데 여기 저기 흩어져 있었던 거죠. 교류도 없고. 그러다 산내에 살던 직장 선배가 지금 우리 집을 소개해줬어요. 그 집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몇 년 동안 안 팔리고 있다가 인연이 되어서 지금도 잘 살고 있어요. 그 집 좋아요. 그 때는 다들 엄청 비싸게 샀다고 했는데… 집 앞에 밭도 엄청 비싸게 샀거든요.
아! 마을 안에 있는, 겨울에도 정갈한 그 밭인가요?
다른 건 모르겠고 우리 밭은 항상 뭔가 심어져 있어요. 어쨌든 그것도 자연농에서 배운 건데 겨울이든 여름이든 빈자리 없이 계속 있어요. 안 그러면 관리가 힘들어요.
그것도 배우고 터득한 거네요.
뭐든 심겨져 있지 않으면 그 다음이 힘드니까.
우리나라 농업정책에 관해서는 할 얘기 없나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저도 관심 있어요. 정책에 관심 없는 건 아니고, 다만, 저는 운동하는 거 말고 내가 타샤 튜터처럼 살고 싶어요. 내가 농촌에서 잘 살면 될 것 같아요. 그래도 굳이 얘기하자면 평소에 블로그에 글을 써요. 쓰다가 지우는 글이 많아요.
‘농사직불금제’를 개선한 건 잘 한 거라고 봐요. 아직 남아있는 게 ‘친환경의무자조금’인데 친환경농업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납부하는 돈이에요. 그 명목으로 걷어서 자기 조직 관리하는데 쓰는 거죠. 전혀 관심이 없어서 모르시겠지만 저는 균등하게 걷는 것도 별로 마음에 안 드는데, 금액으로 따지면 소농들에게 더 많이 걷어가요. 심지어 만평이상 대농은 면제도 해주면서. 그 돈으로 친환경 농산물 광고하면 농부들한테도 조금은 도움이 되겠지만 저처럼 소규모로 직거래 하는 사람들은 크게 이득 보는 게 없어요. 내 입장에서는 친환경자조금을 만평이 넘는 대농에게도 그대로 받아야지, 면제해주고 이런 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산내도 그렇고 소농들이 쌀값 조정하라고 시위하는데 많이 가요. 마을에서도 가끔 얘기하는데 노동력 대비 쌀만큼 많이 남는 농산물이 별로 없어요. 기계화되어 있기 때문에. 천 평에서 평단 단가를 얘기하면 엄청 싸 보이지만 이백 마지기, 삼백 마지기 짓는 대농들은 그 규모가 엄청나거든요. 쌀값 올리려고 데모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인데 한마지기 두마지기 짓는 산내나 우리 소농들이 그 데모해서 얼마나 더 벌겠어요. 구체적으로 조사해 볼 필요가 있는데 어딘가에 왜곡된 정보가 있는 것 같아요.
농업정책이나 지원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향하면 좋겠어요. 왜 기업과 기계를 지원하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기계를 쓰지 않고 농사를 지어요. 그런데 지원은 기계를 쓰는 사람만 받을 수 있어요. 콤바인이 한 대 1억이라면 오천만원을 지원해주거든요. 그 돈 나한테도 좀 지원을 하라는 거죠. 내가 짓는 농사가 경쟁력이 있는 농사예요. 조건이 평등하다면. 그런데 지원이 한쪽으로 쏠리면 점점 경쟁력이 없어지는 거죠.
기본소득이나 기금이 만들어져서 농부들에게 직접적으로 혜택이 가는 게 필요하다는 거군요.
기본소득제는 되어야 한다고 봐요. 우리나라에서 기본소득 얘기가 나오는 건 때가 되어서 그런 얘기들이 나오는 거죠. 이제는 직접분배방식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내가 우리 아이를 집에서 키우고 싶은데 집에서 키우면 지원을 하나도 못 받잖아요. 내가 애도 봐야 되고 농사도 지어야 되는데 이제는 직접적인 지원이 필요한 시기라고 봐요. 기본소득이 그래서 중요하고요.
직불금도 그렇고 제도나 정책들이 좋은 의도잖아요. 사회 곳곳에 다양한 제도나 지원들이 있잖아요. 청년수당, 농민수당, 노인수당, 이제는 사각지대 없이 펼치는 것이 좋지 않겠나 싶어요. 다 전해들은 풍월입니다.(웃음) 지금 변하고 있는 거잖아요. 누군가 투쟁해주니까 너무 고마워요.
서석곤 농부가 가꾸는 옥수수밭
농사는 연구자처럼 짓고, 블로그 글도 그렇고 얘기를 나눠보니 철학자 같아요.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많이 하는.
책은 많이 보는 편이었지만 지금은 눈도 아프고 더 볼 것도 마땅찮아서 별로 보지 않아요. 돌아보니 전공을 잘못 선택한 것 같아요. 철학과를 갔어야 했는데… 흘러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 사는 형태가 나는 마음에 들어요. 불교 공부도 꽤 오래 했어요. 제가 생각하고 체험한 것들을 글로 올려요. 그래서 좋은 글이 많아요. 하하하.
누군가 서석곤 농부에게 ‘나도 단정한 밭을 만들면서 농사짓고 싶다’고 찾아온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요?
그건 못 하죠. 그냥 여기 와서 살면 되지.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면 제가 사람들 많이 안 만나는데 말하는 건 좋아해서 막 쏟아내죠. 말하고 나서 후회해요. 농사는 가르치기보다 이렇게 해보고 있다 정도예요. 그보다 우리 밭을 예쁘게 꽃밭으로 꾸미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올해 산내에 꽃밭소모임이 생겼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꽃그림도 그리고 모종을 나누고, 각자 집에서 키우는 꽃을 자랑하기도 한다. 모임이 정착되면 마을 곳곳에 꽃을 심고 예쁘게 꾸미려고 한다. 도시에서도 기후위기의 한 대안으로 꽃을 심는 프로젝트도 생기고 있다.
소농의 즐거움은 무엇인가요?
즐거움 많죠. 어쨌든 많이 놀잖아요. 제가 농사로 수입이 부족해서 뭔가 해보겠다고 지리산 지킴이를 두 달 정도 했어요. 한 달 지나니까 못하겠더라고요. 일은 하나도 힘들지 않은데 구속된 느낌이 드는 거예요.
겨울에 놀고 여름은 낮에 더우니까 계곡 가서 놀고. 노는 시간이 엄청 많아요. 그런데 산재가 생기죠. 기계 안 쓰니 허리, 무릎, 손목. 이런 데가 별로 안 좋아요. 이런 게 나쁜 점이고 노는 건 좋아요.
쉴 때는 주로 뭐 하세요?
놀 줄을 몰라서 특별히 하는 건 없어요. 그래서 놀고 있으면 갑갑하기도 해요. 영화 보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심심하긴 한데 놀 수 있으니 좋잖아요.
부지런하다고 해서 일 년 내내 일만 하는 줄 알았어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농부 서석곤에게 불교와 공부하는 삶이 농사짓는데 도움이 되나요?
불교는 아무 데나 도움이 되지요. 농사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는 몰라도 불안, 초조, 좌불안석이 좀 덜하지 않을까 해요. 제가 많이 따지는 스타일이에요. ‘이건 아닌 것 같은데’ 하는 게 있으면 끝까지 묻고 공부해봐야 해요. 돌이켜 보니 나는 생각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요. ‘철학과를 갔으면 성공했겠다.’ 생각도 해요. 돈도 많이 벌고. 공부도, 농사도 지금은 열심히 수행하면 돼요.
해보지 않고서야 알 수 없는 농사.
농부 서석곤의 자연농은 조금 느려도 스스로 해보고 나서야 깨닫고 정진하는 수행의 길이기도 하다.
만나보지 않고서야 알 수 없는 사람.
농부 서석곤을 만나기 전, 여기저기서 얻은 얕은 정보로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사는 들을 꿈꾸며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자연의 힘으로 작물을 키우는 소농’으로 이미지를 미리 정해놓고 너무 진지하기만 한 사람이면 어쩌나 혼자 걱정했다. 괜한 걱정이었다. 진중하면서도 그렇게 잘 웃을 줄이야.
인터뷰를 마친 후 서석곤 농부로부터의 전언이 있었다.
혹여 이 인터뷰를 읽은 분들 중에 양배추를 구입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꼭 한번 연락 달라는 이야기. 인터뷰에서도 언급되었던 것처럼 서석곤 농부의 농산물은 100% 직거래로 거래된다. 농부와 인연을 맺고 싶은 사람도, 알이 꽉 찬 양배추를 먹고 싶은 사람도, 부지런한 농부의 농사일지가 궁금한 사람도 그의 블로그에 한번 들러보기를 권한다.
서석곤 농부 블로그 https://m.blog.naver.com/sense97
글 이경원
기획, 기록, 연결로 변화를 만드는 일과 사람을 돕는다. 2014년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궁금해서 찾았던 지리산시골살이학교 덕분에 지리산이음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때는 몰랐다. 7년이 지난 2021년 구례 남원 산청 하동 함양을 다니며 ‘농사를 업으로 하는 농부’들의 이야기를 글로 전하게 될 줄은.
사진 임현택
진행 이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