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군[아삭!] 소소한 참여로 확실하게 변화하는, 작은 행성_산청읍 <청소년자치공간 명왕성>

지리산이음
2023-12-11

소소한 참여로 확실하게 변화하는, 작은 행성

산청읍 <청소년자치공간 명왕성> 김한범 코디네이터


글, 사진 / 푸른





‘청소년 자치’라는 걸 경험한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아요. <청소년자치공간 명왕성>은 어떤 곳이에요? 
‘청소년 문화의 집’이나 ‘청소년수련관’과는 어떤 점이 다른가요?

<명왕성>은 ‘청소년 자치’ 공간이니만큼 말 그대로 청소년들이 ‘우리가 해야겠다’거나 ‘하고 싶다’ 하는 것들이 있을 때 그런 것들을 스스로 시도할 수 있는 곳이에요. 보통 알고 있는 청소년 공간들과 다르게 프로그램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 <명왕성>만의 매력이죠. 청소년들이 먼저 ‘우리가 이런 걸 해보고 싶어요. 배우고 싶어요.’라고 하지 않는 이상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죠. 연간계획에는 없지만, 청소년이 주도하는 활동을 언제든지 지원할 수 있게끔 예산을 잡아 두긴 해요. 그래서 청소년들이 만약에 갑자기 ‘우리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데 파티 같은 거 해보고 싶어요.’ 하면 ‘합시다’ 할 수 있죠. 

<명왕성>의 또 다른 특징은 관리자(코디네이터)인 제가 있지만 공간을 관리하지, 사람을 관리하지는 않거든요. 대부분 청소년이 와서 뭘 하시든 크게 갈등을 일으키는 일이 없고 위험한 일이 아니라면 개입하지 않아요. 그래서 청소년들이 눈치를 보지 않고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죠. 이 부분은 청소년들에게 굉장히 인식이 굳어져서 실제로 저는 있는 듯 없는 듯 공기 같은 존재예요.


아직 이런 공간이 낯설거나 그 필요성에 대해 갸우뚱하는 사람들에게 <명왕성>이 꼭 필요한 이유를 들려주실 수 있나요? 

꼭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휴대폰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에 이걸 만든다고 했을 때 ‘그게 왜 필요하지?’라고 생각하지만, 쓰고 활용하기 시작하면 ‘이게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라고 말하게 되는, 그런 거죠.

자치 참여를 통해서 실제로 청소년들이 스스로 눈에 보이는 변화를 만들어 냈을 때 자기 효능감을 느낄 수 있고, 자기가 속한 지역, 자기 주변의 사회를 바꿔나갈 수 있다는 확신 같은 것들을 배워나갈 수 있다는 것이 의미 있죠. ‘나의 참여로 뭔가 바꿀 수 있다.’는 경험을 통해서 민주시민으로서 참여하는 태도를 길러내는 데에 도움이 될 거라고 믿어요. 누군가 절대적인 영향력으로 ‘이러면 안 돼’라고 정해놓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아,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혹은) 안 되는구나.’하고 체감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자치 공간이 필요하죠.






휴대폰만큼이나 없어선 안 될 곳처럼 느껴져요. 사회 참여나 주민 자치를 가르치지 않지만 배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네요! <명왕성>에는 6명의 청소년 운영진이 있다고도 들었는데요. 자치가 잘 이루어지나요?

아쉽게도 뭔가를 시도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청소년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명왕성>을 통해서 할 수 있다는 인식도 아직은 많지 않은 상태예요. <명왕성>을 잘 활용할 수 있는 그런 청소년들이 자꾸 나타나 주면 <명왕성> 입장에서도 훨씬 보람차겠죠.  

다만 <명왕성>은 좀 특별한 운영 시스템이 있어요. 청소년 운영진들에게 회의비를 지급한다든지, 운영진이 근무를 서는 날이 있으면 근무비를 지급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운영진으로서의 참여하고 기능하는 것에 대한 대우를 최대한 하려고 노력해요. 

사실 그런 의미도 잘 전달되지 않는 경우들이 꽤 있긴 하지만, 제가 적극 개입해서 일일이 가르치는 것은 <명왕성>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잘 안되는 것도 경험해 보고,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을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도 경험하는 거죠. ‘다음에는 더 잘해봅시다.’하고 좋지 않은 결과까지 과정으로서 수용하는 것이 <명왕성>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부분이 청소년 자치를 어렵게 만드는 걸까요?

그건 사실 ‘어른들의 자치는 왜 어려운가?’와 똑같은 대답이 나올 거라고 생각을 해요. 자치가 어려운 건 참여하는 태도가 잘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인 경우가 많고, 나이의 문제는 아닌 거죠. 성인 모임에서도 열심히 주도하는 사람이 있고, ‘그런가 보다’ 하는 사람도 있고, 아무런 기여는 없지만 그 모임에서 어떤 수혜는 입을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있는 것처럼 청소년들도 그런 부분들이 있죠. 






<명왕성>은 워낙 많은 매체에서 인터뷰를 해서 새롭게 질문하느라 힘들었어요. 최근에는 오마이TV에서도 인터뷰하셨잖아요. 
그런데 아직 아무도 안 물어본, 하고 싶었던 얘기가 있으실까요?

글쎄요. 저도 인터뷰를 하면서나 매체에 원고를 보내거나 하면서 <명왕성>에 대해서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방향성이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시간들을 갖는데, 사실 늘 심층적으로 얘기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한 번쯤 내부적으로 정리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명왕성> 웹사이트가 있거든요. 보통은 SNS(페이스북, 인스타그램)를 보시는데 그쪽은 그날그날의 이벤트나 공지사항 위주로 포스팅하고 있어서요. 그동안의 활동이 궁금하시다면 웹사이트에서 아카이빙 자료들을 확인할 수가 있어서 <명왕성>을 조금 깊이 살펴보고 싶으신 분들은 웹사이트(scpluto.i234.me)에 들어가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물리적인 공간이 궁금하신 분들은 사진으로도 만날 수 있고, 직접 방문해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정신적으로 <명왕성>이라는 공간을 지탱하고 있는 세 가지 기둥이 있다면 그건 뭘까요?

일단 첫째로 <명왕성>에 대한 후원일 수도 있고 저에 대한 후원일 수도 있는데, <명왕성>을 믿고 후원해 주시는 분들이 계세요. 금전적인 후원인 경우도 있고, <명왕성>이라는 공간은 <하마>라고 하는 단체를 통해서 운영되고 있는 형태인데, <하마>의 일원으로서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시는 형태의 후원도 있죠. 그렇게 후원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최소한의 유지가 가능하거든요. 그렇게 애써주시고 후원해 주시는 분들한테 이렇게 최소한이라고 말씀드리기가 죄송하지만 사실 아직 넉넉하지가 않아서…. (머쓱한 웃음) 아무튼 후원자의 존재가 가장 큰 것 같아요.

또 하나의 기둥은 <명왕성>을 이용하거나 운영진이라는 이름으로 참여하고 있는 청소년들이죠. 꾸준히 와서 시간을 보내면서 이 공간을 의미 있게 이용하고 있는 거, 자기들이 가장 편한 형태로 편하게 눈치 안 보고 이 공간을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왕성>을 <명왕성>으로 남게 해주는 기둥이라고 생각하고요. 

마지막 기둥은 나예요 나. 이렇게 얘기하고 싶지 않은데, 객관적으로 이 공간에서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라도 ‘이걸 누가 할까?’ 생각했을 때 기꺼이 하겠다는 사람이 안 보이는 거죠. 뭐 좋든 싫든 문을 계속 열 수 있는 건 거기서 ‘기꺼이 일할게요.’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서인데 그게 나니까, 아마 제가 세 번째 기둥일 거예요. 






올해 <명왕성>이 5주년을 맞이하잖아요. 10주년을 맞은 <명왕성>을 상상해 본다면요? 어떤 모습이길 바라세요? 

적극적으로 <명왕성>을 쓰는 사람이 꾸준히 있으면 저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작년까지 <명왕성>을 이용하다가 올해 대학생이 된 친구들이 여름방학 때 명왕성에 와서 놀러 갈 계획을 세우고 있더라고요. 종이랑 펜을 빌려달라고 하더니 테이블에서 뭔가를 열심히 하는데, 신나게 '주루마블(술자리용 부루마블 게임)'을 만드는 거였어요.

10주년 됐을 때도 <명왕성>을 거쳐 갔던 청소년들이 우르르 와서 <명왕성>에 대한 얘기를 서로 나누고, 끝나고 술 마시러 나가고, 아직 청소년인 친구들은 <명왕성>에 남아서 자기들끼리 노래하면서 놀고, 혼자 있고 싶은 친구들은 셀 안에 들어가서 혼자 놀고. 이 공간을 적극적으로 잘 활용할 수 있는 모습이면 저는 더할 나위 없다고 생각해요. 

부족하고 아쉬우면 그런대로 그 공간을 활용하는 방법들을 스스로 만들어 가면서요. 사실 그게 더 바람직하잖아요. 자꾸 누가 메꿔주고 사주고 채워주고 하는 게 아니라 ‘이건 이렇게 할 수 있지 않나?’ 해서 없는 데서부터 청소년들이 스스로 천천히 메워가면 좋겠어요.

좀 더 바라자면, 청소년들의 삶이랑 지역 주민들의 삶이 어떤 형태로든 연결이 되길 바라요. 청소년들을 키워주는 것이 아니라, 대등하게 하나의 기능과 역할들을 할 수 있는 형태로요. 일방적으로 지역공동체 내에서 보살핌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에서 기능하는 청소년’으로 성장하길 바라죠.







저는 특별한 공간을 볼 때마다 생각해요. ‘이런 곳을 만들어 낸 사람은 누굴까? 어떤 사람이 이런 공간을 운영할 수 있는 걸까?’하고요. 
산청 청소년자치공간 <명왕성>. 이 공간을 꾸려가는 김한범 님은 어떤 사람이에요?

이 사회의 주류가 생각하기에 성공적이라고 느끼는 삶을 살진 않는 것 같아요. 주류가 ‘이렇게 살면 안 돼.’라고 한다면 ‘뭐? 이렇게도 살 수 있어~’라는 걸 입증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것 같아요. 12년간 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학교를 그만둘 때 아이들에게 했던 말 중 하나가 그런 거였어요. “나도 너희처럼 맨손으로 사회에 나간다. 근데 대학을 잘 나오고, 돈을 많이 벌고, 좋은 곳에 취직하고 그런 형태가 아니더라도 살 수 있는 삶의 사례를 보여주고 싶다.”라고요. 지금 사는 게 그런 거죠. 

가치 있고 의미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그런 삶을 살아내 보고 싶은 부분이 있어요. 굉장히 절제하는 삶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사실 재밌는 거 다 하면서 살아요. 함양과 산청에 걸쳐 있는 <빈둥밴드>로도 활동하고 있고, 지역에 비슷한 삶을 선택하신 분들 혹은 그런 삶을 살려고 애쓰시는 분들이랑 연결되면서 훨씬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의 스트레스나 이런 것들이 더 많이 줄었죠. 공감하는 사람들끼리 소소한 걸로 즐거워하며 살아가요.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절망하기보다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가장 즐거운 것들, 희망들을 계속 만들어 가는 게 저는 살아있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리고 많은 사람이 제가 <명왕성>을 통해서 무언가를 베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명왕성>을 통해서 이런 삶을 ‘선물 받은’ 부분이 커요. 그래서 호호 할아버지가 되어서 웃으면서 청소년들을 맞이하고, 힘닿는 데까지 계속해 보고 싶은 마음들도 있어요. 누구에게 주요 관리자의 자리를 물려주더라도 <명왕성>에서 제가 얻어갈 수 있는 것들을 계속 얻어가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저는 그런 사람입니다. (웃음)







글 쓴 사람. 푸른

#어린이 #평화 #교육 #농촌에 주로 마음을 두고 산청에 살아가며 하루에도 수십 가지 재미난 꿈을 꾼다. 직장도 직업도 없지만 하는 일은 꽤 많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의
지역 밀착형 유기농 매거진
< Asak! 아삭 >

 Coming Soon 2024.01


Goal!

🎯 우리가 아는 지리산권을 말하기
🎯 기웃거리고 싶은 마음 만들기
🎯 활동의 연결지점 만들기




아삭은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에서 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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