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이세요? 아뇨, 빨간문데요...
악양면 <마을공방 두니> 단풍나무 아래, <빨간무마켙>
글 / 정진이
사진 / 빨간무마켙
하동 악양에서 열리는 <빨간무마켙>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왜 ‘빨간무’냐고 다들 물어보더라고요. 사실은 ‘당근마켓’처럼 흥하고 싶어서 따라한 거예요. 하동에서는 당근을 ‘빨간무’라고 한대요. 마켓의 티읕 받침은 옛날 느낌 내고 싶어서 붙여 봤어요.
올 초, 아직 추울 때 <마을공방 두니> 사람들이 모여서 불멍하며 이런저런 작당모의를 매일같이 하던 때였어요. 지난해 몇 차례 열었던 플리마켓을 다시 해보면 어떻겠냐고요. 마침 새로운 젊은 피가 가득 수혈돼 공방이 들썩들썩했거든요. 슬슬 봄도 다가오니 재밌는 일을 한번 벌이고 싶었어요.
시간 날 때마다 <카페평사리>에 모여 앉아 한땀 한땀 손바느질해 현수막 만드는 일부터 시작했죠. 모아뒀던 자투리 천을 끌어모아 이리저리 배치해 보고, 커다란 천을 한 귀퉁이씩 붙들고, 그리고, 꿰매고. 완성하고 보니 어찌나 예쁘던지요. 마당에 펼쳐놓고 깔깔 웃으며 사진을 찍어댔습니다.
그리하여 아직은 쌀쌀한 3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첫 <빨간무마켙>을 시작했습니다. 셀러는 따로 모집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원하는 마켓은 뭘까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이해하지 못한 채 단지 다양한 물품을 판매하는 마켓을 만들지는 말자는 공감대가 생겼거든요. 물론 <빨간무마켙>이 <마을공방 두니>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자 하는 목표가 있지만, 조금씩 천천히 나아가보자고 의견을 모았죠. 그래서 두니 공방 운영자들과 이곳을 사랑방처럼 자주 드나드는 사람들끼리 시작했어요. 여섯 번의 마켓을 열었고, 지금도 큰 변화는 없지만 정말로 조금씩 천천히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참 신기한 일이에요.
<빨간무마켙>에서는 <마을공방 두니> 운영자들이 만든 물품들과 지역민들이 가지고 오는 중고 물품, 곳곳에 숨어있는 재주꾼들이 만든 수공예품, 텃밭에서 가꾼 농산물 들을 만날 수 있어요. 지역 작가가 만든 목다구(나무로 만든 차 도구)도 매번 나오고요. 마당에 지천으로 자란 허브를 가지고 나오기도 하고, 말리던 콩을 뿌리째 들고 오기도 해요.
플리마켓에서 빠지면 절대 안 되는 요소가 먹을거리에요. <두니> 공방에는 <카페평사리>가 있으니 음료는 당연히 준비되어 있고, 4월부터는 직접 기른 부추로 부추전을 하는 참여자가 있지요. 매달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어요. 마들렌, 스콘을 구워 나오는 친구도 있고요. 부산에서 귀촌한 <손놀이터> 운영자는 부산 사람만 안다는 계란만두를 전파하기도 했지요. 지난 8월에는 야심차게 타코를 준비했는데 아주 인기가 좋았어요. 그런데 재료를 너무 아끼지 않았는지 나중에 정산하고 보니 적자였다는 슬픈 이야기….
<빨간무마켙>은 참가비가 없어요. 누구든 올 수 있어요. 현수막에 “시골 할매들이 나물 팔러 오는 그날까지”라고 원대한 꿈을 써놓기도 했는데요. 마켓에 경계가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 그런 말을 꺼냈던 것 같아요. 요즘 플리마켓에 참여하려면 조건들이 꽤 있더라고요. 예쁘게 꾸미기도 해야 하고요. 가지고 나오는 물품도 그야말로 ‘상품’이어야 하죠.
보기만 좋은 거 말고, 팔려고만 하는 거 말고, 그냥 그날이 한 달 동안 보고 싶었던 사람들 만나는 반가운 날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거기 가면 재밌다!’고 느꼈으면 싶고요. 반갑고 재밌는데 볼 것도 먹을 것도 있으면 금상첨화잖아요.
지난 8월에는 여름의 대미를 장식하는 의미로 ‘악양 워터밤’을 기획했어요. 지름 3미터짜리 수영장도 설치하고, 물총놀이 장비도 구비하고, 만들고 색칠해서 물풍선 터트리기도 했어요. 어린이들이 진짜 좋아했어요. 어른들이 어린이처럼 놀기도 했고요. 물총 싸움은 ‘장비빨’이라는 엄청난 깨달음을 얻었죠. 여러분, 무조건 물통이 큰 물총이 이깁니다!!!
참 재밌게 놀았던 여섯 번의 마켓을 지났지만, 마냥 즐겁기만 한 건 아니었어요. 아직도 우리에게는 숙제와 고민이 가득 남아있습니다. 첫 번째, 길가에 있지만 보이지 않고, 올라오는 길도 헷갈려서 사람들이 찾아오기 힘들다는 점. 이것은 마켓뿐만 아니라 <마을공방 두니>가 가진 고질적인 문젠데요. 위치를 바꿀 수는 없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는 매력을 갖는 방법, 찾기 쉽게 표지판이나 간판 등을 설치하는 방법이 있을 거예요.
두 번째는 우리와 뜻을 함께할 더 많은 참여자를 모으는 일이에요. 지금은 공방 운영자들의 지인, 지인의 지인 정도로 꾸려나가고 있는데요. 꼭 우리와 아는 사이가 아니어도 함께 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찾고 싶은 거죠.
세 번째는 마켓을 지속할 수 있는 구심점을 찾는 거예요. 참여자들 간의 끈끈한 연대라든지, 공연이나 체험처럼 꾸준히 운영할 프로그램 같은 거요. 그런데 이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 고민 중이에요
운영자들 모두 직업이 있고, 하는 일이 다양하기 때문에 고민과 대화가 충분히 깊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어려움도 있지요. 아마 지역에서 마켓을 열어 본 경험이 있는 단체나 개인 모두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거예요. 그래서 천천히 갈 수밖에 없고요. 지치지 않는 게 일단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요점은 말이죠.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 <빨간무마켙>에서 같이 놀아요!
글 쓴 사람. 정진이
하동으로 귀촌한지 6년. 악양 <마을공방 두니>에서 <탐구생활>이라는 식물공방을 운영한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기록활동가로 사람들을 만나고 글을 쓰면서 하동에 대해 더 알아가는 중이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의
지역 밀착형 유기농 매거진
< Asak! 아삭 >
Coming Soon 2024.01
Goal!
🎯 우리가 아는 지리산권을 말하기
🎯 기웃거리고 싶은 마음 만들기
🎯 활동의 연결지점 만들기
당근이세요? 아뇨, 빨간문데요...
악양면 <마을공방 두니> 단풍나무 아래, <빨간무마켙>
글 / 정진이
사진 / 빨간무마켙
하동 악양에서 열리는 <빨간무마켙>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왜 ‘빨간무’냐고 다들 물어보더라고요. 사실은 ‘당근마켓’처럼 흥하고 싶어서 따라한 거예요. 하동에서는 당근을 ‘빨간무’라고 한대요. 마켓의 티읕 받침은 옛날 느낌 내고 싶어서 붙여 봤어요.
올 초, 아직 추울 때 <마을공방 두니> 사람들이 모여서 불멍하며 이런저런 작당모의를 매일같이 하던 때였어요. 지난해 몇 차례 열었던 플리마켓을 다시 해보면 어떻겠냐고요. 마침 새로운 젊은 피가 가득 수혈돼 공방이 들썩들썩했거든요. 슬슬 봄도 다가오니 재밌는 일을 한번 벌이고 싶었어요.
시간 날 때마다 <카페평사리>에 모여 앉아 한땀 한땀 손바느질해 현수막 만드는 일부터 시작했죠. 모아뒀던 자투리 천을 끌어모아 이리저리 배치해 보고, 커다란 천을 한 귀퉁이씩 붙들고, 그리고, 꿰매고. 완성하고 보니 어찌나 예쁘던지요. 마당에 펼쳐놓고 깔깔 웃으며 사진을 찍어댔습니다.
그리하여 아직은 쌀쌀한 3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첫 <빨간무마켙>을 시작했습니다. 셀러는 따로 모집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원하는 마켓은 뭘까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이해하지 못한 채 단지 다양한 물품을 판매하는 마켓을 만들지는 말자는 공감대가 생겼거든요. 물론 <빨간무마켙>이 <마을공방 두니>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자 하는 목표가 있지만, 조금씩 천천히 나아가보자고 의견을 모았죠. 그래서 두니 공방 운영자들과 이곳을 사랑방처럼 자주 드나드는 사람들끼리 시작했어요. 여섯 번의 마켓을 열었고, 지금도 큰 변화는 없지만 정말로 조금씩 천천히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참 신기한 일이에요.
<빨간무마켙>에서는 <마을공방 두니> 운영자들이 만든 물품들과 지역민들이 가지고 오는 중고 물품, 곳곳에 숨어있는 재주꾼들이 만든 수공예품, 텃밭에서 가꾼 농산물 들을 만날 수 있어요. 지역 작가가 만든 목다구(나무로 만든 차 도구)도 매번 나오고요. 마당에 지천으로 자란 허브를 가지고 나오기도 하고, 말리던 콩을 뿌리째 들고 오기도 해요.
플리마켓에서 빠지면 절대 안 되는 요소가 먹을거리에요. <두니> 공방에는 <카페평사리>가 있으니 음료는 당연히 준비되어 있고, 4월부터는 직접 기른 부추로 부추전을 하는 참여자가 있지요. 매달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어요. 마들렌, 스콘을 구워 나오는 친구도 있고요. 부산에서 귀촌한 <손놀이터> 운영자는 부산 사람만 안다는 계란만두를 전파하기도 했지요. 지난 8월에는 야심차게 타코를 준비했는데 아주 인기가 좋았어요. 그런데 재료를 너무 아끼지 않았는지 나중에 정산하고 보니 적자였다는 슬픈 이야기….
<빨간무마켙>은 참가비가 없어요. 누구든 올 수 있어요. 현수막에 “시골 할매들이 나물 팔러 오는 그날까지”라고 원대한 꿈을 써놓기도 했는데요. 마켓에 경계가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 그런 말을 꺼냈던 것 같아요. 요즘 플리마켓에 참여하려면 조건들이 꽤 있더라고요. 예쁘게 꾸미기도 해야 하고요. 가지고 나오는 물품도 그야말로 ‘상품’이어야 하죠.
보기만 좋은 거 말고, 팔려고만 하는 거 말고, 그냥 그날이 한 달 동안 보고 싶었던 사람들 만나는 반가운 날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거기 가면 재밌다!’고 느꼈으면 싶고요. 반갑고 재밌는데 볼 것도 먹을 것도 있으면 금상첨화잖아요.
지난 8월에는 여름의 대미를 장식하는 의미로 ‘악양 워터밤’을 기획했어요. 지름 3미터짜리 수영장도 설치하고, 물총놀이 장비도 구비하고, 만들고 색칠해서 물풍선 터트리기도 했어요. 어린이들이 진짜 좋아했어요. 어른들이 어린이처럼 놀기도 했고요. 물총 싸움은 ‘장비빨’이라는 엄청난 깨달음을 얻었죠. 여러분, 무조건 물통이 큰 물총이 이깁니다!!!
참 재밌게 놀았던 여섯 번의 마켓을 지났지만, 마냥 즐겁기만 한 건 아니었어요. 아직도 우리에게는 숙제와 고민이 가득 남아있습니다. 첫 번째, 길가에 있지만 보이지 않고, 올라오는 길도 헷갈려서 사람들이 찾아오기 힘들다는 점. 이것은 마켓뿐만 아니라 <마을공방 두니>가 가진 고질적인 문젠데요. 위치를 바꿀 수는 없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는 매력을 갖는 방법, 찾기 쉽게 표지판이나 간판 등을 설치하는 방법이 있을 거예요.
두 번째는 우리와 뜻을 함께할 더 많은 참여자를 모으는 일이에요. 지금은 공방 운영자들의 지인, 지인의 지인 정도로 꾸려나가고 있는데요. 꼭 우리와 아는 사이가 아니어도 함께 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찾고 싶은 거죠.
세 번째는 마켓을 지속할 수 있는 구심점을 찾는 거예요. 참여자들 간의 끈끈한 연대라든지, 공연이나 체험처럼 꾸준히 운영할 프로그램 같은 거요. 그런데 이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 고민 중이에요
운영자들 모두 직업이 있고, 하는 일이 다양하기 때문에 고민과 대화가 충분히 깊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어려움도 있지요. 아마 지역에서 마켓을 열어 본 경험이 있는 단체나 개인 모두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거예요. 그래서 천천히 갈 수밖에 없고요. 지치지 않는 게 일단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요점은 말이죠.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 <빨간무마켙>에서 같이 놀아요!
글 쓴 사람. 정진이
하동으로 귀촌한지 6년. 악양 <마을공방 두니>에서 <탐구생활>이라는 식물공방을 운영한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기록활동가로 사람들을 만나고 글을 쓰면서 하동에 대해 더 알아가는 중이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의
지역 밀착형 유기농 매거진
< Asak! 아삭 >
Coming Soon 2024.01
Goal!
🎯 우리가 아는 지리산권을 말하기
🎯 기웃거리고 싶은 마음 만들기
🎯 활동의 연결지점 만들기